2020년 2월 29일 토요일

◆ ‘둘은 하나와 같다’ 라는 주장 [by. 물파스]

[◆ ‘둘은 하나와 같다’ 라는 주장]


(1) '우한폐렴' 걱정 말고 한국관광 즐기세요.
h ttps://www.sedaily.com/NewsView/1YXS8IM1WB

(2) "세금으로 마스크 중국에 전달?"...가짜뉴스 퍼트리는 정치권
h ttps://www.ytn.co.kr/_ln/0101_202002042129109510

(3) 중국서 메르스 치료받은 한국인, 수십억 물었다?
h ttps://news.v.daum.net/v/20200204210605832

(4) 文대통령, 참모들과 떡국 오찬…신종코로나 대응 논의
h ttps://news.nate.com/view/20200127n06814


분노와 혐오가 차고 넘치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그 근저에는 어떤 합당한 근거나 논리가 보이질
않습니다. ... 특히 사회상태의 용적이 분노와 혐오라는 일차원적 감정 배설로만 채워진다면, 사태의
외관은 물론 그 내부까지 모두 감정배설로 가득 차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우리 모두는 시나브로
“사회는 원래 그렇게 바라보는 것” 이라며 시선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될 것입니다.

언론이 세팅한 아젠다(agenda)에 의해 사회는 ‘성찰’의 자리를 ‘분노와 혐오’에게 내주며 또 다른
분노와 혐오를 불러오는 사태에까지 다다랐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분노와 혐오의 특징은
대상의 다양성이며 때로는 ‘분노와 혐오’ 자체가 목적인 경우도 많습니다. ... 오늘의 분노와 혐오는
오랜 시간이 요구되지 않는 즉흥성과 맹목성을 추종하기 때문에 휘발성이 강하지만, 동시에 출몰의
빈도 또한 높습니다. ~ ‘분노와 혐오’를 표출해야만 사태가 진실로 인정받는 시대. 그래서 우리 사회는
분별없는 분노와 혐오, 그로부터 유발되는 선명한 적(敵), 혹은 악(惡)의 출현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여기서 중요한건 ‘적(敵)’의 진위여부 보다 <신속하게 적(敵.惡)을 규정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즉흥성과 맹목성을 띤 휘발성 강한 ‘분노와 혐오’의 표출은 대개는 힘없고 무기력한 자들의
유일한 자신감입니다. 이들은 위기가 확산되고 증폭되어야만 안심이 되는, 아니 심지어 사회가 공황
상태에 빠져야만 새로운 희망이 도출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힘없고 무기력한 자들은 공멸(共滅)에서 공포와 쾌락을 동시에 봅니다. 이들을 프랑스의 사회학자
‘귀스타브 르봉(Gustave Le Bon)’의 견해를 빌려 표현한다면 바로 <군중(Crowd)>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분노와 혐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나름의 품격이 있습니다.
분노와 혐오의 원인에 타당한 근거가 있거나 논리를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군중(Crowd)’이 하는 일은
오로지 펄펄 끓어오르는 것이 전부입니다.

중국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세계는 연일 공포와 의심의 농도를 높여가며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언론들은 앞다투어 확진자수와 동선, 사망자수 등을 발표하며 취재 경쟁을
벌이고 있고, 이때다 싶어 정치권은 전염병과 유권자 표심의 상관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1) 신종 코로나 사태로 세계가 초비상 상황입니다. 우리 언론(서울경제)은 문체부 장관이(박양우)
‘우한폐렴 걱정 말고 한국 관광 즐기세요.’ 라는 발언을 했다며 속보를 내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기자는 몇 시간 뒤 기사제목을 수정했습니다. ... 그러나 처음의
기사 내용은 이미 SNS와 수많은 블로그, 커뮤니티 등으로 급속히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정권의
무능과 무책임을 비난했습니다. ~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거나 굳이 이성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그냥 단순 상식선에서 보면 충분히 의심과 확인(Cross check)을 해야만 했던 기사였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네티즌(군중)들은 즉각적인 분노와 혐오를 표출하며 신속하게 적(敵)을 규정했습니다.

(2) 한국의 제1야당 대표가 직접 기자회견까지 해가며 정부를 비판한 내용입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마스크 대란 공포가 온 국민을 엄습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갖다 준
300만 개 마스크에 이어서 중국인 관광객의 마스크 싹쓸이 그리고 해외 반출에 우리 국민은
분개하고 있습니다.“> ~ ‘마스크 300만개’의 진실은 황교안 대표의 말과는 달랐습니다. 물품(마스크)은
'중국유학총교우회’와 '중국우한대총동문회'가 준비하고, 한국정부는 긴급 공수만 지원한다는 것이
진실이었습니다. 정치권의 가짜뉴스는 야당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2차 감염자가
보건소 종사자라며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서둘러 발표하다 망신을 당했습니다. (YTN 뉴스 팩트체크)

(3)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중국에서 치료받은 한국인이 수십억 원의 병원비를 물었다며, 우리도
현재 한국에 입원한 외국인(특히 중국인)에게 당연히 치료비를 받아야 한다며 많은 네티즌(군중)들이
한국 정부의 중국에 대한 태도(저자세)에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가짜뉴스였고, 당시 중국 정부가
한국인 치료비 전액을 부담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외국인 감염자가 치료비 부담 때문에
신고하기를 주저할까봐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국제적 방역공조 차원에서 치료비를 전액 부담한다고
합니다. (SBS 8시뉴스)

(4) 대통령이 설 연휴 마지막 날 참모들과 오찬 떡국을 먹고 신종 코로나 사태를 포함해 시급한
국정 현안에 대해 논의를 한다는 내용입니다. 저는 기사제목을 보자마자 어떤 댓글이 달릴지 충분히
예상이 됐습니다. ~ “이 시국에 떡국이 목에 넘어 가냐!”, “무능한 정부!”, “갈수록 비호감이네!” 등
이 내용은 ‘언론기사’ 라고 언급하는 것 자체가 너무도 부끄러운 대단히 저급한 내용의 기사(?)입니다.
‘떡국’은 식사 메뉴의 한 종류일 뿐입니다. “대통령이 참모들과 점심을 먹고 국정 현안을 논의했다”가
기사의 본질임에도(사실 이것도 기사로써의 가치는 없습니다. 대통령 스케줄의 단순 나열일 뿐이죠.)
언론사는 여기서 ‘점심’을 ‘떡국’으로 바꿈으로써 네티즌(군중)들의 즉각적 반응(분노,혐오)을 유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떡국은 설에 즐기는 대표적 음식으로 화목함, 한가함 등을 상징하는데,
초비상시국(신종코로나 사태)에 ‘떡국’이라는 단어를 기사 제목과 내용에 의도적으로 배치함으로써
군중(Crowd)을 펄펄 끓어오르게 만들려는 목적성이 매우 농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 둘은 하나와 같다. >

(X=Y) => X^2 = XY
=> X^2 - Y^2 = XY - Y^2
=> (X-Y)(X+Y) = Y(X-Y)
=> X+Y = Y
=> X+X = X
=> 2X = X
=> 2 = 1

(2X = X)를 만족하는 유일한 X값은 ‘0’입니다. ... 그리고 양변을 X로 나눠주면 <둘은 하나와 같다(2=1)> 라는
어처구니없는 명제가 성립됩니다. 하지만 수학은 ‘0’으로 나누는 걸 금지하고 있습니다.

수학에서 ‘나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를 들어, <사과 4개를 2로 나누다(4/2)> 라는 것은, 먼저 2개의 바구니(분모)를 준비하고
4개의 사과를 각각의 바구니에 2개씩 균등하게 배분하여 담는다는 뜻입니다. ~ 바구니 하나당
동일한 개수의 사과가 담겨지게 됩니다. <사과 10개를 5로 나누다(10/5)> 이 또한 마찬가지로
먼저 바구니(분모) 5개를 준비하고 각각의 바구니에 사과 2개씩을 균등하게 담으면 됩니다.
<사과 1개를 2로 나누다(1/2)> 마찬가지로 2개의 바구니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바구니에
균등하게 배분한 ‘반쪽(0.5)’ 짜리 사과를 담는다는 의미입니다. ... 그렇다면 <‘0’으로 나누다>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 2로 나누다 = “사과를 균등하게 배분할 테니 바구니 2개를 준비하라”
@ 5로 나누다 = “사과를 균등하게 배분할 테니 바구니 5개를 준비하라”
@ 0으로 나누다 = “사과를 균등하게 배분할 테니 바구니를 준비하지 마라!”

결국 수학에서 ‘나눈다(÷)’는 의미는 “균등하게 배분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며, 그렇게
균등하게 배분된 각각의 몫을 준비된 바구니에 담는 행위인 것입니다. ... 그런데 ‘0’으로 나눈다는 것은
<“균등하게 배분한 각각의 몫을 담아야겠으니 바구니는 준비하지 마라!”> 라는 뜻입니다.
“균등하게 배분은 하는데 바구니는 준비하기 싫다!”, 아니 <“바구니는 준비할 수 없다”>가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모순>이라 하며, 모순은 두 가지 사실, 즉 <균등한 배분행위>와 <바구니 준비하지 않기>라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이 공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 따라서 수학은 ‘0’으로 나누는 걸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2X = X)를 만족하는 유일한 X값인 ‘0’으로 양변을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며(불능)
따라서 (2 = 1) 이라는 명제도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언론은 X값이 ‘0’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말해주지 않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침착하고 차분히 사태를
바라보며 ‘분노와 혐오’의 타당성을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론이 세팅해
놓은 아젠다, 즉 <2X = X>에서 양변을 X로 나눠서 (2 = 1) 된다는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둘은 하나와 같다”>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을 맹목적으로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 “시민은 뉴스가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강화해주길 기대하지 말고
뉴스를 열린 마음으로 접근할 의무가 있다.“ -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中/ 빌 코바치)

기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거치게 된다는 저널리즘의 대부 ‘빌 코바치(Bill Kovach)’는 언론 보도의
투명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뉴스를 접하는 시민에게도 일정부분 의무를 부여합니다. 기자들은 시민들이
궁금해 하는 정보를 단순 제공하는데 그치지 말고, 자신들이 어떤 원칙에 의해 일하는지도 시민들에게
반드시 이해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반면 시민들 또한 편견을 버리고 사회의 지적 구성원이 되기 위한 능력을
스스로 갖춰야 한다고 하면서 언론(기자)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꾸준히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 보도가 정직하게(투명성) 이루어졌는지, 뉴스가 어떻게, 또 어떠한 이유로
그러한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시민의 의무라고 말합니다. 더불어 언론에게 명백한
근거제시를 동시에 요구할 수 있는 시민의 권리를 성실히 행사하라고 주장합니다.

[ ◆ “기사는 정보의 취재원과 지식의 근거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기사의 독자 관련성과 함의는 기사가 제시되는 방식에 의해 명백히 드러나야 한다.
답을 찾지 못한 중요한 질문도 언급해야 한다. 사용된 다른 쪽 입장들은 각자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도록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지지를 덜 받는 쪽도 마찬가지다. 기사가 논쟁을
유발하게 된다면, 후속 보도를 해야 한다. 다른 기사들이 시간을 두고 공적인 토론을
지속하게 되면 진실이 드러날 수도 있다. ... 뉴스는 우리의 흥미를 끄는 데서 나아가
더 생각하게 해야 한다.“ -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398페이지/ 빌 코바치/ 한국언론진흥재단) ]

현대 언론의 속성 중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진실’ 보다는 ‘방향’을 설정한다는 점입니다.
진실을 말하는 언론보다 방향을 제시하는 언론이 많아지면, ‘분노와 혐오’에 타당한 근거와 논리가
부족해지며 즉흥성과 맹목성을 추종하게 됩니다. ~ 여기서 잠시 남성에게만 해당되는 질문을 하나 해봅니다.

“본인은 페니스(penis)를 주로 어느 쪽 방향에 놓습니까?”

남자들의 인생에서는 한 번 정도 있을까 말까한 매우 희귀한 질문이지만, 답은 의외로 ‘좌.우’ 라는
가장 흔한 패턴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정중앙’ 이라는 희귀한 답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개는 좌.우 어느 한쪽에 편안하게 자리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아무튼 지금
이러한 질문은 굉장히 쓸모없는 질문 같지만, 공간을 맞춤 양복점으로 이동한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영국의 전통 있는 테일러샵(Tailorshop)에서는 고객의 페니스 위치를 묻는 것이 당연하고도 일반화된
질문이라고 합니다. ... 재단사 입장에서는 자신의 기술력과 상품력을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이며, 고객은 ‘페니스의 부풀림까지 계산에 넣는 매우 정교하고 섬세한 서비스를 받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시민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페니스(penis)가 위치할 공간을 자신들이 마음대로 규정하는
언론들이 상당수 존재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페니스는 이미 그들이
설정한 위치에 놓여있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물론 언론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맞춤 정장을
차려입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페니스를 그들(언론)이 설정한 공간에 쉽게 가져다 놓아서도 안 되지만,
평생을 한 방향에만 페니스를 놓아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SNS, 1인 미디어, (파워)블로그, 공동커뮤니티 등 ... 이제는 전 국민 누구나가 정보의 생산자가
될 수 있는, 그야말로 언론의 대변혁기라 생각됩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진실과 정보를 독점했던
기존의 언론들은 더 이상 게이트키퍼(gatekeeper)로서의 언론권력을 향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언론사가 자신들의 저울을 사용해 독단적으로 진실의 무게를 측정하고 그 가치를 판별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거죠. 이제 언론은 더 이상 진실을 독점할 수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이는 특히 정치영역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대통령 및 국회의원, 자치단체장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의 개인 SNS 계정이 존재하는 시대입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자신의 견해와 의지를
기자를 통해 국민들에게 간접적으로 전하기보다, 트윗을 통해 본인이 직접 국민들에게 배달을 하는
사례가 더 많습니다. 이는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며 이미 전 세계 모든 정치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보편적 흐름입니다. 심지어 이슬람 급진 테러단체인 IS 마저도 자신들의 사상과 신념을 퍼뜨리는데
소셜미디어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쌍방향 직접적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언론이 진실을 독점하는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있으며,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맞이하여 누구나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는 사람보다 포털, 페이스북, 트위터, 커뮤니티 등에 공유된
기사를 클릭하는 사례가 더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 그렇다 하더라도 기존의 언론 권력은 계속해서
<“둘은 하나와 같다”>를 주장하고 있고, 이에 대해 상당수 시민들은 여전히 파블로프의 개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다양한 장치를 동원하여 <게이트키퍼(gatekeeper.편집권력)>로서의 힘을 영구적으로 유지하고픈
기존의 언론권력은 시민들이 조금이라도 방심할라치면 어느새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시민들의 페니스 위치를
자신들 마음대로 설정하려 합니다. ... 결국 우리는 앞서 빌 코바치(Bill Kovach)의 명령대로 시민의 의무와
성실한 권리행사를 통해 언론을 바로 보는 능력을 스스로 키워야 합니다.




[@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하루가 다르게 무섭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의 유통은 시민들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 건강들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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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번 ㅡ 민간업체라는 이름의 관변단체임.
단체장은 박정이라는 파주 국회의원이며
우한대학교 졸업자 대표이며
6.25때 적군이었던 인민군의 넋을 기리는 행사에
참여하여 논란이 되었음.

1번의 상황은 내가 잘 모르나,
1번과 비슷한 상황이 있었음.
후베이성 입국 금지 발표한 후 얼마되지않아
정부는 입국 금지를 입국 금지 검토로 말바꿈 함.

물파스님 진실은 가린다고 가려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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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님의 지적처럼 ~ 2번은 논쟁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다만 박정 의원이 여당 출신이라서 그가 속한 단체를 관변으로 단정짓는건
비약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2번 내용은 최초 언론 보도이후 YTN이 다시 후속보도 형식으로
팩트체크를 했던 상황이므로, 나름 검증과정(Cross check)을 거쳤다고 저 스스로 판단했습니다.

'중국우한대총동문회'는 정부의 공식발표로만 보면 민간의 외관을 갖춘 단체지만
정황상으로 보면 단체의 본질이 님 지적대로 관(官)의 느낌이 농후하다 생각되네요.
만약 저 단체의 진짜 정체가 '관변'이라면 저 역시 쉽게 펄펄 끓어오르는 '군중'의 하나였음이
증명되는 것일 겁니다. ~ 그리고 이 글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를 저 물파스가 실증하는 셈이 되겠군요.

참고로 각자 언론을 바라볼때 즉흥적 반응보다는 좀 더 중심을 잡고 균형있게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이 글을 올린 것입니다. ~ 조국 사태때 '인간 동일성'을 얘기하면서, 저는 조국이 원래부터
동일한 정체성(말과 행동이 다른 인간)을 가진 인물이라고 비판했었습니다. ~ 트위터를 통해
조국이 보여준 정의롭던 말과 실제 삶에서 드러난 그의 행동의 괴리와 간극이 너무나 컸음에도
여전히 그를 추종하는 집단들의 맹목성을 보면서 ... 우리가 무엇을 가장 크게 염려하고 경계해야 하는지를
이 글을 통해 알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대깨문이나 일베같은 '극단'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이며,
'비상식'을 경계하고 '상식'을 추종하는 굉장히 단순한 인간임을 다시한번 강조합니다.

좋은 지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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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관한생각

참 동감하는 이야기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한 결론을 내려버리면 편해서 그런걸까요? 때로는 스스로도 짐짓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서 놀랄때가 많습니다.
이제는 기사제목만 봐도 댓글 내용이 예상됩니다 온통 극단적인 의견(독사) 속에서 바로 보고 생각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맛이 너무 순해서 잘 먹혀들지도 않구요. 윗 댓글만해도 나름 네임드이신 물파스님에게도 단순한 편가르기로 결론 내려버리는 모습을 보이는게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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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진  
       
물파스님, 먼저 항상 좋은 글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학적 검증을 통해 대중은 매체를 통해 자기 생각을
강화시키는 것이아니라 중간의 입장에서 열린마음으로
받아드린다는건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오늘도 또 하나 배우고 갑니다.
허나, 2번 항목은 황교안 대표가 자극적으로 선동한 감은
분명 있지만 마스크를 배포한 해당 단체의 수장의
인물됨과 과거행동의 결과를 보고도 정부가 긴급상황이란
명목하에 자국민이 우선이 아니라 중국으로 제품 출하승인
을 한다는건 오히려 황대표의 가짜뉴스보다 더 가짜뉴스
처럼 와 닿네요. 현정부를 비판하고 있는 입장에서 다른 항목에 대해서 무지했던 부분은 이제야 알게되었고 스스로
비판하게 됩니다. 배움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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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물파스님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OECD 국가중 실질문맹률 최고인 대한민국에서 몇몇 사람들로 마음 상하지 마시고 힘내세요!
물파스님의 글을 보고, 아무 말없이 생각의 폭을 넓혀 가시는 분이 대다수라 생각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민중은 위정자의 일들은 잘 모르지만,
웃음을 가지고 긴 시간속에서 조금씩 변화해 가며 살아 왔습니다 (바흐친).
'상식'을 갖고 있는 우리 민중은 앞으로도 그렇게 변화와 새로운 생성을 하며 살아가리라 믿습니다.
옛날 보다 좋은 건, 과학기술의 발달로,
물파스님 말씀과 같이,
누구나 정보에 접근 할 수 있고 정보를 생산한다는 것이 겠지요.
그만큼 매개체를 통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다가가,
본질에 대한 정확한 생각과 판단할 기회가 많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들뢰즈).

언제나 그랬듯이,
빠른 과학기술의 발달로, 그에 맞는 에티켓(문화)가 따라오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쫒아 오리라 믿습니다.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다시한번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우리가 시선을 받아내는 방식, 또는 우리에게 시선이 접근하는 방식 [by. 물파스]

[◆ 우리가 시선을 받아내는 방식, 또는 우리에게 시선이 접근하는 방식 ]


필립스 전기면도기가 2개나 있음에도 자주 손 면도를 하는데, 어중간하게 수염이 자란경우에는
부러 하루를 더 기다립니다. 하루면 충분합니다. 적당하다 싶은 길이의 수염을 깎을 때에는 면도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손맛이 느껴집니다. ... 특히 의장대처럼 정직한 간격으로 겹겹이 쌓여있는
작은 6중 날이 스노보더가 눈발을 헤치며 내려오듯, 하얀 거품을 헤치며 볼에서 턱밑으로 내려올 때
속삭이는 ‘사각 사각!’ 거리는 그 느낌이 참 좋습니다. 하지만 그런 손맛도 잠시, 꽤나 오랜 시간의
손 면도 경력이 있는 사람들도 가끔은 살을 베일 때가 있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 그런 날에는 빠른 사정의 섹스(Sex)처럼 남성을 삽입하듯 면도날이
턱밑 적당한 곳을 찾아 자연스럽게 들곤 합니다. 면도 거품과 수염, 그리고 면도날의 바쁜 조우에서도
면도날의 외도는 피부세포가 눈치 채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감각적 섬세함을 지녔습니다. ... 그러나
빠른 사정처럼 살을 베이는 그 순간만큼은 이상하게도 그 섬세함이 너무나 쉽게 느껴집니다. 또한
그 찰나의 순간은 목덜미 아래로 서늘한 냉기가 스며들며 마음 한구석을 꽤나 불편하게 만듭니다.

솔직히 면도날의 외도는 물리적 고통은 거의 느낄 수 없을 만큼의 아주 작은 상처입니다.
그럼에도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곧 내게 닥쳐올 붉은 피의 부조화 때문일 것입니다. ... 하얀 거품과
창백한 얼굴 사이로 흐르는 붉은 피의 선명함. 이 사태에 좀처럼 적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물리적 고통보다는 <시각적 불편함>이 인간에게는 더 큰 불안과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시각적 불편함이 아니라 <시각적 아름다움>으로 시선을 돌려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물속에 담겨있습니다. 물속에 담긴 예수는 스스로 광원(光源)이 되어 공간을
황금빛으로 물들입니다. 예수 주위에 떠있는 수많은 황금빛 미세 공기방울은 예수를 무한 우주속의
중심으로 옮겨놓았습니다. ~ 이 광경을 마주하는 누구라도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의 극치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이 작품은 ‘안드레 세라노(Andres Serrano 미국)’라는 작가의 사진작품입니다. 여기서
중요한건 작품의 이름입니다.

<오줌 예수 Piss Christ. 1987>
h ttps://ameliadobson.wordpress.com/gallery/andres-serrano-piss-christ-1987-cibachrome-silicone-plexiglass-152x102cm-p156/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물이 아니라 <오줌(Piss)>에 담겨있었습니다.
작품 이름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작품을 접한다면 아마 대부분은 조금 전 제가 서술한 감정과 비슷한
느낌으로 작품을 이해했을 겁니다. 가장 높은 곳에 있어야할 신성한 존재가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인간의 노폐물 속에 담겨있다는 이 환상적인 부조화! ... 불편하지만 작품의 이름을 알고 난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작품에서 <시각적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대상이 어떤 매체(시선)를 통하여 우리에게 다가오는가?
다시 말해, 시선이 전달되는 과정과 방식(조작), 더불어 참여(경험)의 여부에 따라 우리한테 접근하는
미적 효과(시각적 효과)는 사유의 증폭과 사유의 전복을 동시에 진행시킵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을 향해 힘차게 달려오는 시선은 대중에게는 일종의 부역입니다.
대중과 함께하지 않는 대중은 대중을 배반한 반역자의 범주에 속하며 ~ 따라서 대중의 속성을 초월해
어찌됐든 대중은 쉬지 않고(사유하지 않고) 범람하는 시선에 의무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부역의 팔자를
타고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오늘은 미세먼지가 많다고 합니다.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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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마지막 문장에

대중과 함께하지 않는 대중은 대중을 배반한 반역자의 범주에 속하며 ~ 따라서 대중의 속성을 초월해
어찌됐든 대중은 쉬지 않고(사유하지 않고) 범람하는 시선에 의무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부역의 팔자를
타고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대중의 뜻에 반하는 대중은 대중의 속성을 초월한 대중이며
대중은 대중의 시선에 끝없이 맞춰야하는 팔자다.
이렇게 밖에 해석이 안되는데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머리좋은 형님들 알기쉽게 설명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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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군중은 잠자는 사람과 유사하다. 잠을 자는 동안에는 이성을 발휘할 수 없어
강렬한 이미지가 그의 머릿속에 출현한다. 만일 성찰로만 이어질 수 있다면 그 이미지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것이다. 하지만 군중은 성찰이나 추론할 능력이 없으므로
사실 같지 않은 일을 체험하지 못한다. 그런데 군중에게 가장 큰 인상을 주는 것 역시
도저히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이다. ~ (중략) ~ 오직 이미지를 통해서만 생각할 수 있는 군중은
오직 이미지에 의해서만 감동한다. 그들을 공포로 몰아넣거나 매혹하여 행동하게 하는 것은
오직 이미지뿐이다. - (군중심리. 81~82페이지/ 귀스타브 르봉/ 문예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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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소비의 비중이 커지면 커질수록 생각하는 능력, 즉 사유는 파편화되고 단순화되기 쉽습니다.
또한 많은 메시지를 내포하면서도 간결함을 잃지 않은 이미지는 그 강렬함의 농도가 매우 짙기 때문에
단 한 번의 소비만으로도 각인효과는 극대화되어 이미지를 접촉한 군중에게는 이미지 부정을 거부함과 동시에
그 이미지를 진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지게 됩니다. ... 결국 <군중의 맹목성>은 이미지 소비와,
소비되는 이미지의 순도가 얼마나 높은가에 따라서 결정되게 됩니다.(간결한 선동 문구의 중요성!)

'이미지'는 결국 <시선>입니다.
시선이란 어떤 대상이나 사태에 대해 주의나 관심을 갖고 바라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대상(혹은 사태,현상)을 바라보는 주체는 언제나 '나(개인)'로부터 시작됩니다. 여기서 '나(개인)'는
능동적 행위의 주체로써 <시선의 주관자>로 해석할수 있는데, 언제부턴가 사회가 생성하는 수많은
시선들(이미지)에 대해서 '능동적 행위의 나(개인)'는 사라지고, 대중이 만든 이미지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데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상태입니다. ... 결국 시선(이미지)을 각자의 고유한 사유능력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대중) 이미 만들어놓은 이미지만을 간편하게 소비하는데 만족하고 있는 것입니다. ~ 이쯤되면
능동적 주체로써의 나(개인)에게 '시선'의 의미는 바라보는(사유하는) 사태(대상)가 아니라, 나(개인)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타자적 속성>을 지닌, 즉 '시선(이미지)' 자체가 주체(스스로 행위하는)가 되어
나(개인)를 주관하는 형국으로 ... <시선 주관자의 전복>이 일어난 것입니다.

개인(자신)을 향해 강박적으로 달려드는 시선은 외칩니다. ~ "나(시선)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본문에서 예를 든 <오줌 예수 Piss Christ. 1987>를 바라봄(사유)에 있어서 남녀와 세대와 좌.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시선(이미지)은 쉬지않고 대중의 속성을 초월할 것을 요구합니다.

정보가 빛의 속도로 오고가는 시대입니다.
때문에 오랜 시간 머리를 쥐어짜며 자발적으로 사유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무게감이 가득 실린 담론꺼리는
점점 더 외면 받는 현실입니다. 이는 결국 단시간에 소화 가능한 (편향된)이미지의 선택적 소비만 증가하게 될 것이며,
동시에 우리 모두는 언제든 우매한 군중으로의 변태를 예비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느 인터넷 스타강사의 문제적 발언보다, 그 발언 자체가 사회가 생성한 하나의 시선으로 이미지화되어
대중은 남녀, 좌우, 세대라는 (개별)속성을 초월해 모두가 쉬지않고(사유하지 않고) 의무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모습이
저에게는 마치 죽으면 비로소 끝나는 죄수 또는 노예가 짊어진 부역의 모습으로 비춰졌습니다.

질) 자본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by. 물파스]

때야

물파스같은 형 있으면 설명 좀.

상식을 위해.

자본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고는 있는데
위키백과읽으면 더 헷갈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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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야//

마르크스는 '사회(인류 역사변화의 근본적 동력)'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경제'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또한 인류가 거쳐 온
사회의 역사단계를 단순화시켜 사회 구조와 그 본질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생산양식 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습니다.

<노예제 => 봉건제 => 자본주의 => 사회주의 => 공산주의>

이것이 마르크스가 생각한 인류역사를 '생산양식' 중심으로 분류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상당한 배경지식이 요구됩니다. ... 다시말해
우리가 마르크스를 이해하려면 헤겔을, 또 헤겔을 이해하려면 칸트를 ~ 또 칸트가 서있는
지점에서는 대륙 합리론, 독일 관념론, 영국 경험론을 이해해야 합니다. ...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과거로 회귀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 지점에 이르러 어쩔 수없이
탈레스, 데모크리토스, 헤라클레이토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과 같은
기원전(before Christ)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들과 한 번쯤은 차를 마셔야 될 상황에까지 가게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조만간 명쾌하게 정리하여 시리즈 글로 올려볼까 생각중입니다.

"너 빨갱이 새끼지?"

저는 네이버,다음,네이트 같은 여러 포털과 SNS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가볍게 '빨갱이'를 언급할때마다 아쉽고 답답한 마음이 참 많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물어야할 외침은 "빨갱이란 무엇인가?"가 되어야 합니다.

"쟤가 바로 빨갱이 새끼다!" 라고 외치는 순간 진리를 추구하는 우리의 물음은 상대적 가치로 주저앉게 됩니다.

"섹스란 무엇인가?"를 물었을때 우리는 번식, 쾌락, 사랑 등으로 사유가 확장됩니다.
그리고 다시 "사랑, 쾌락, 번식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 하지만
"누구와 섹스 했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 순간 섹스는 잃어버린 주인 찾기처럼 상대적 가치에 갇혀버려
사유의 확장은 거기서 멈추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대상에 대해 소유주(누가 빨갱이인가?)를 찾는 물음보다
진리추구적(빨갱이란 무엇인가?) 물음은 엄청난 사유의 결과물을 요구하게 되는
대단히 무거운 질문인 것입니다. ... 더불어 님의 질문은 진리추구적 물음이라
편리한 검색이나 사전적 정의 차원으로 단순하게 답하기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응집된
물음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정리해서 답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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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ㄹ~

물파스 피셜) 빨갱이란 단어 툭하면 입에오르는 머저리들 보면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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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ㄹ~//

아니오 ~ 맥락을 잘못 짚으셨습니다.

툭하면 빨갱이라는 단어를 입에담는 사람들이 피곤한게 아니라
툭하면 빨갱이라는 단어를 입에담는 사람들 대다수가 역설적으로 빨갱이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사용한다는 점이 답답하다는 거죠. ~ 이는 마치 '정당제도'를 모르는 사람들이
자한당과 민주당을 (맹목적으로)추종하는 사태와 유사하며, 인권과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삼청교육대'의 부활을 꿈꾸는 사태와 궤를 같이 하는 것입니다.

2020년 1월 12일 일요일

◆ 공간을 생산하는 시간의 벽(deadline) [by. 물파스]

[◆ 공간을 생산하는 시간의 벽(deadline)]



2019년 세밑에 서서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니 불안과 희망의 실타래가 생각보다 복잡하게
뒤엉켜 있습니다. 불안은 다짐했던 일들이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며, 희망은 또 다른 새로운
다짐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머니가 마을금고에서 받아온 소날, 뱀날이 인쇄된 새 달력을 바꿔 걸면서 ‘해가 바뀐다’는
의미를 차분히 생각해 봅니다. 시간은 명백히 연속적인 개념이지만 ~ ‘곗날’, ‘병원 가는 날’,
‘미순이 딸 결혼’ 등 올 한해 어머니 당신의 스케줄이 달마다 듬성듬성 정감 있게 기록된
2019년 달력을 아쉬운 마음으로 걷어내고 2020년의 달력을 마주하는 감정은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를 하는 것 같은, 마치 불연속적인 물리적 공간을 오고가는 기분입니다. ... ‘해 바뀜’은
분명 시간의 속성인데 해마다 세밑에서 달력을 바꾸는 행위만큼은 공간에서 공간으로 이를테면
버스에서 지하철로, 사무실 책상에서 내방의 침대로 ~ 형언할 수 없는 물리적 공간 변화와
규정되지 않은 어떤 사물의 신비한 물성이 ‘세밑의 달력 바꿈’이라는 행위로부터 느껴진다는 뜻입니다.

벽(경계)은 두 개의 공간을 생산합니다. A라는 공간에 벽이 세워지면 하나였던 A는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됩니다. ~ 그렇다면 시간에도 벽이 존재할까? 만약 벽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시한(deadline)>이 될 것입니다. ... 더불어 시한(deadline)도 관념적으로 공간을 분리(생산)합니다.
특히 국가(정부)나 정치권력이 국민들의 시간에 개입할 때 우리는 관념적 공간들의 과잉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 연속적 개념인 시간에 한계(시한)가 설정되면 시간은 불연속적 속성을 내포하며 각각
독립된 공간으로 변화합니다. 독립된 공간은 <닫힌계(닫힌 공간)>의 다른 이름입니다.

<닫혀있다> 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 예를 들면, 자연수(정수)의 집합은 덧셈과 곱셈에 대하여
‘닫혀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자연수끼리는 아무리 더하고 곱해도 자연수라는 범위 밖의 수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아시다시피 자연수는 사물의 개수를 세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수입니다. ... 사람은 1, 2, 3명 등으로 표현하고 자동차는 1대, 2대, 3대 등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수끼리는 아무리 더하거나 곱해도 결국 ‘자연수’라는 범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만
뺄셈과 나눗셈은 예외적으로 자연수 범위 밖의 숫자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 뺄셈은 작은 수에서
큰 수를 뺄 때 음수(-)가 나타나며, 나눗셈은 분자가 분모의 배수가 아닐 경우에 소수가 나타나므로
이럴 경우 자연수 집합은 예외적으로 뺄셈과 나눗셈에 대하여 <열려있다>라고 표현합니다. ~ 결국
<닫혀있다>라는 것은 자신과 동일한 속성을 가진 것들만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며 ... 이러한 균질의
가치들이 집합적으로 모여 있는 공간이 바로 <닫힌 공간>인 것입니다.

국회의 ‘회기(會期)’는 국회 스스로가 세운 벽(deadline)입니다. 회기 내에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그 책임과 고통은 오롯이 대의제를 선택한 국민들의 몫입니다. 특히 민생법안들은 국민들의 삶과
직결되기 때문에 고통은 가중됩니다. 따라서 국회가 자신의 시간에 ‘회기(會期)’라는 벽(deadline)을
세우면 국회는 <일하는 국회 vs 노는 국회> 라는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되고 각각의 관념공간은
독립적인 <닫힌 공간>이 됩니다. 국민들로부터 박수 받는 국회, 철저히 자신들의 밥그릇만을 위한
국회 ... 이렇게 두 개의 관념적 공간이 생산되는데, 이러한 예는 우리의 일상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속여부를 결정하는 영장실질심사의 시한(deadline)은 개인을 <구속인 vs 자유인>이라는 공간으로
분리하고, 납세 시한은 납세 충실도(성실도)에 따라 <성실 납세자 vs 고액.상습 체납자>라는 공간으로
분리합니다. 또한 이번 선거법 개정으로 18년 이라는 시간의 벽(deadline)은 <유권자 vs 학생>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냈습니다. ~ 입영통지서에 적힌 ‘입영일시’라는 시한(deadline)은 한국의 젊은 청춘들을
<군인 vs 시민> 이라는 공간으로 분리.생산합니다. 이 밖에도 한.일 간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뜻하는
'지소미아(GSOMIA)' 또한 그 핵심은 (종료)시한(deadline)의 문제였습니다. ~ <1982년(김지영)> 이라는
시간의 벽(deadline)은 소설과 영화를 통해 한국사회에 문제적 젠더공간을 생산해 냈으며, 만14세라는
시한(deadline)은 촉법소년으로 분류돼 <살인해도 처벌받지 않는 인간 vs 살인 범죄자>라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 이렇듯 정부와 정치권력은 국민들의 시간 속에 수많은 벽(deadline)을 세움으로써
다양하고 새로운 관념공간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 뿐만 아니라 자본권력도 소비자의
시간 속에 치밀한 시간의 벽(deadline)을 세워 상품소비를 강렬하게 유혹하기도 하는데, TV 홈쇼핑은
모든 혜택을 받으려면 지금 주문하라고 재촉하면서 ~ “3분! 마지막 기횝니다. 이제 3분 남았습니다!”,
“남은 수량 20개!” 라는 구호를 마법의 주문처럼 연신 외쳐 됩니다. 마트에 가도 이와 유사한 시간의
벽이 확인됩니다. 예를 들면, 아기들이 먹는 치즈에 단계별 시한(deadline)을 설정해 수많은 엄마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 유기농 아기치즈>
1단계 (6개월~12개월) - 면역력 강화 ‘튼튼 설계’
2단계 (13개월~24개월) - ‘영양 균형’
3단계 (25개월 이상) - ‘두뇌 및 성장발달’

국가와 정치권력 그리고 자본권력이 국민들과 소비자의 시간 속에 벽(deadline)을 세워 지속적으로
관념공간을 생산하면, 이후 그 공간들은 동일한 속성 혹은 가치의 균질을 지향하며 점점 더 폐쇄된
닫힌 공간으로 변해갑니다. ... 사이토 준이치 교수는(와세다대 정치경제) 저서 <민주적 공공성>에서
‘공동체와 공공성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 “공동체가 닫힌 영역을 형성하는데 반해서, 공공성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공공성은 독일어로 öffentlichkeit 라고 표현되는데, 그 어원은 ‘열려있다’는 의미의 ‘offen’이다.
열려있다는 것, 폐쇄된 영역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 공공성의 조건이다. ‘바깥’을 형상화함으로써
‘안’을 형상화하는 공동체에는 이 조건이 결여되어 있다.“ - (민주적 공공성 中) >

ex).
@ 성실 납세자 집합(공동체),
@ 고액.상습 체납자 집합(공동체),
@ 18세 유권자 집합(공동체)
@ 군인(군사) 공동체
@ 82년생 김지영 지지자 집합(공동체)
@ 촉법소년 집합(공동체)
@ TV홈쇼핑을 보며 3분 내에 주문을 하는 소비자 집합(공동체)
@ 2단계 유기농 아기치즈 소비자 집합(공동체)

그렇다면 이쯤에서 ‘공동체는 왜 닫힌 영역을 형성할 수밖에 없는가?’ 라는 질문을 해 봅니다.
권위 있는 교수(사이토 준이치)의 주장이니 그냥 편하게 받아들이고 동의하면 그만일 텐데,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나름의 설득력 있는 답을 찾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을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Sartre, Jean Paul)’의 철학에서 찾아볼까 합니다.

사르트르는 우리가 무엇을 <소유>했는지 관찰해보면 우리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구체적 사물의 경우 직접 만들거나 획득하면 소유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해 능동적으로
사물을 제작하거나 획득하는 것이 소유 개념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 그런데 여기서 사르트르는
소유의 개념을 좀 더 확장합니다. ‘구체적 사물’뿐만이 아니라 무형의 대상, 즉 정보나 지식 같은
‘앎’이나 ‘숙련된 기술’까지도 소유의 개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무형의 대상에 정통하면
우리는 그것을 자신의 ‘소유’로 인식한다는 것이 사르트르의 주장입니다. ... 예를 들어, 10년 넘게
매일 아침 북한산 백운대를 등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느 누구보다 더 등반코스를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등반코스는 이제 본인이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 닫힌 공간에 폐쇄적으로 모여 가치의 균질을 지향하는 공동체는 닫힌 영역의 바깥에
존재하는 이질적 존재들에 비해 스스로를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르트르의 관점에서 <잘 안다>는 것은
결국 공동체 성원 모두가 닫힌 공간을 함께 <소유하고 있다>가 됩니다. ~ 누구나 소유할 수 있다면
그것은 ‘열린 공간’이 되기 때문에 공동체는 자신들의 (관념적)소유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닫힌 영역>을 형성하게 되는 것 입니다.

시간의 벽(deadline)이 생산하는 수많은 관념의 공간들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폐쇄된 공동체를
형성하며, 그들 공동체는 스스로를 가장 잘 아는 작은 파편이자 동시에 전체를 <소유하는> 주인으로써
기능하게 됩니다. 특히 닫힌 영역 안에서는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이 소유하기> 때문에 소유가 정점에
달하면 공동체 성원들의 연대는 강화됩니다. ~ 이를테면 <82년생 김지영>에 대해 많이 안다는 것은
82년생 김지영의 삶이 바로 자신의 삶으로 치환될 수 있는 것입니다. ... 이는 나이에 상관없이 오직
<82년생 김지영>을 많이 안다는 조건 하나만 충족하면 성립됩니다. 결국 공간은 <82년생 김지영>을
잘 아는(소유하는) 공간과 잘 모르는(소유하지 않은) 공간으로 분리(생산) 되는 것이며, 각각의 공간은
서로에 대해 폐쇄성 높은 닫힌 공간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인간을 미워한 신이 앙심을 품고 인간을 혹사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노동이다!” - 호메로스 >

고대 그리스의 장편 서사시 ‘오디세이아(Odysseia)’의 작가 호메로스는 ‘노동’을 정의하면서
신이 인간을 고생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노동을 야만적이며
저주받은 행동으로 규정한 것은 당시 그리스가 <노예제>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노예제 사회에서
노동은 전적으로 노예의 몫입니다. 따라서 노예가 아닌 자가 노동을 하는 것은 야만적인 행위였으며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습니다.(참고: 조안B 시울라, ‘일의 발견’) ~ 심지어 고대 그리스인들은
노동이 사람을 노예로 만들어 타인의 의지에 종속시키며 영혼까지 타락시킨다고 보았습니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자유로운 신분이 아니라는 것, 단지 ‘말할 줄 아는 짐승‘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 결국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인간다움’이란 ‘노동하지 않음’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바쁘게 일한다는 것은 나름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반면
일하지 않는 실업 상태의 사람들은 속칭 ‘백수’로 격하되어 무능력을 상징하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고대 그리스 말고도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일하지 않는 한가함이 바로 <귀족>을
상징하는 징표였습니다. 근대 이전의 사회도 바쁘게 일하는 건 역시 노예나 머슴으로 불리는 하층계급
뿐이었던 것입니다. ... 문헌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1년에 고작 70일 정도만 일을 했으며, 고대
아테네인들은 연간 50~60회 정도 여러 날에 걸쳐 축제를 즐겼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 달력에는
1년 중 109일은 재판이나 정치적인 일을 하지 않도록 법에 의해 강력히 금지됐다고 합니다. 고대의
이러한 관습은 교회권력이 지배하던 중세까지 이어졌는데 ~ 중세에는 주일, 크리스마스, 부활절 같은
수많은 날들이 종교관련 축제로 채워졌고 이러한 상징적 축제일 사이사이에도 각종 계절 축제와
정치적 축제일 등이 넘쳐났습니다. ...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중세 영국은 연간 3분의 1 정도가
여가 시간이었고, 프랑스의 경우 대혁명(1789) 이전의 노동자들은 1년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휴일로 보장받았습니다.(참고: 알지니, ‘일이란 무엇인가’)

< “구체제에서 교회법은 노동자들에게 90일의 휴일, 52일의 일요일과 38일의 공휴일을
보장했는데, 이 기간의 노동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 (폴 라파르그, ‘게으를 수 있는 권리’) >

폴 라파르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근대 이전 사회의 노동자들은 ‘게으름’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았던
것입니다. ... 시대가 인간의 노동에 어떤 시간의 벽(deadline)을 세웠는지에 따라 <노예의 공간>,
<귀족의 공간>, <게으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공간> 등을 생산했던 것입니다. ~ 더불어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시간에 세워진 시간의 벽(deadline)에 따라 이전처럼 <백수 vs 근로자> 라는
단순한 공간에서 <백수 vs 근로자 vs 불로소득자(자산가) vs 연예인 vs 스포츠선수 vs 유튜버>와 같은,
노동의 속성이 전혀 다른 다원적 공간이 생산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러시아의 나무인형 ‘마트료시카(Matryoshka)’처럼 책 속에서 언급하는 또 다른 책을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오래전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가 알게 된 ‘존 업다이크(John Updike)’라는
미국의 작가가 있습니다. 그가 쓴 소설 ‘달려라, 토끼’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 “밧줄을 계속해서 비틀면 밧줄은 직선 형태를 잃고 갑자기 꼬이며 고리가 나타난다.
에클스의 말을 다 듣고 난 뒤 해리의 내부에서 그런 단단한 고리가 생긴다.“ - (존 업다이크/ ‘달려라, 토끼’ 382p) >

시간의 벽(deadline)은 국가, 정치, 자본권력에만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개인들도
각자의 내면에 불안과 희망을 섞어 다양한 시간의 벽(deadline)을 세우고 그것을 비틀면 직선 형태를 잃고
갑자기 꼬이면서 단단한 내면의 고리가 나타납니다. ~ 반지하 월세방에 살면서도 과도한 집값을 잡기위한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는 신랄한 비판을 하는 것은, 본인 미래의 어느 지점에 시간의 벽(deadline)을 세워두고
세상을 집주인의 시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1% vs 99%>에서 지금은 99%에 해당하지만 미래에 세워둔
시간의 벽(deadline)에 가까워지면 본인은 분명 1%에 서있을 거라는 확신(다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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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영광군 낙월면 안마도 ~

이집도 빈집일까. 인기척 없는 집 마당에 들어섰다 돌아서려는데 사람소리가 들린다.

“가지 마시오. 나는 사람 구경 못하고 사요. 어서 들어오시오.”

백발성성한 할머니 한 분이 방문을 열고 나그네를 부른다.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한지
다리를 끌며 마루로 나온다.

“서러워 죽겄소. 이라고 살믄 뭐한다우. 아들 죽고 울고 다니다가 한 다리가 부러져 버렸소.”

관절염에 시달인 할머니의 손가락도 모두 비틀려 있다.

“날마다 일만 하고 살았응께 손도 발도 이라고 오그라졌소.
어서 가야할 틴디, 안 강께 걱정이오.“

할머니는 광주에 살던 아들을 잃고 벌써 여섯 해째 상심에 빠져 허깨비처럼 살아왔다.
작년에는 딸마저 유방암으로 앞세워 보냈다.

“나 혼자 엎어져 있응께 사람도 아녀요. 날마다 눈물만 흘리며 살고 있소.
밤낮 앉아서 땅굴만 파고 있소. 며칠씩 잠도 안와 헛굴만 파고 앉았소.
자식 먼저 보내놓고 놈 부끄러워 집 밖으로도 못 나가고 담 안에서만 사요.“

할아버지는 일흔 넷에 돌아가셨다.

“아들이 참 잘났었는디, 마흔아홉에 가 버렸어. 내 아들 가 버링께
나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랑께 분하고 짠하제. ~ 영감은 자식들
하나도 안 앞세우고 갔어. 빙(병)나 갖고 여드레 만에 가 버렸제. 드러눕자
물 한 방울 안 마시고 여덟 날 누워있다 그냥 갔소. 험한 꼴 안 보고,
팔자가 좋은 양반 아니오. 참 복도 많은 영감이요.“

남은 자식들이 모시겠다고 해도 안 가고, 병원에 입원하라 해도 안 하고 섬에 혼자 사는 할머니.

“내가 뭐하러 병원에 간다우. 얼마나 더 살라고.
벌써 춥소. 추우면 뼉다구 오그라징께 불 넣고 사요.“

백발성성한 할머니는 여든 넷.

“내 나이 다 먹고 남의 나이 넷이요.”

지금은 덤으로 사는 중이다. 할머니는 벌써 선산에 묘지도 잡아 놓았다. 왔던 곳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린다. ~ 할머니는 거동도 못 하지만, 누구 눈치도 안 보며 울고 싶을 때 맘껏 울고
배고플 때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 수 있는 당신 집이 가장 좋다. 그래도 혼자 문밖출입을 하지
않고 틀어박혀 살아가니 더러 교회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자고 찾아오기도 한다.

“교회 다니라 하면 나가 그라요. 하느님 아부지가 누구는 차별하것소.
교회 다니나 안 다니나 아부지 아들이제. 어떤 자식은 자식 아니요.
하늘에서 내려다보믄 다 같은 자식이제. 교회 안 댕긴다고 자식이 아니겄소.
바람만 불어도 아부지 살려주쇼. 그라고 사는 세상 아니요. 그라요 내가.“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소설이다. 어머니전. 221~224 페이지. / 강제윤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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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광군 낙월면 안마도에 사는 여든넷의 할머니는 아들과 딸을 먼저 앞세워 보냈습니다.
할머니 당신 삶이 세워놓은 시간의 벽(deadline)은 ‘여든’이었지만 ~ 4년이라는 시간이 더해져
할머니의 삶의 벽은 처음보다 더 두꺼워졌습니다.

“가지 마시오. 나는 사람 구경 못하고 사요. 어서 들어오시오.”

자신이 세운 시간의 벽(deadline)을 초월해 사는 할머니의 공간은 비록 다리가 불편할지언정
지나가는 이름 모를 나그네조차 반길 정도로 활짝 <열린 공간>이었습니다. 또한 사이토 준이치
교수의 말대로 할머니의 공간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열려있는 <공공성>을 상징합니다.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은 사람이 항상 같은 자리에서 넘어진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폐쇄적인 닫힌 공간에 자주 머무르는 이유는, 대개 비슷한 시점에 벽(deadline)을 세우기
때문입니다. ... 시간의 벽(deadline)은 관념의 공간을 생산하고, 생산된 공간은 독립적.폐쇄적인
닫힌 공간으로써 타자를 부정하는 분열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 이는 열린 공간인
공공성 확장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2020년 한 해는 시간의 벽(deadline)에 가로막혀 방황하지 않고,
모두가 열린 공간으로 힘차게 뻗어나갈 수 있는 희망찬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19년 11월 26일 화요일

◆ 또 하나의 냉전, 한.미.일 관계와 그 이상의 경계에서 - (5) 국제 정치편 [by. 물파스]


(@ 한일 간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뜻하는 '지소미아(GSOMIA)' 종료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입니다. ~ 한국과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치밀한 수싸움을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과 미국은 각각 총선과 대선이라는 본격적인 선거모드에
돌입한 상황입니다. ~ 북미간 비핵화 협상 또한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미국이 왜 그렇게 지소미아 파기에 대해 우려하는지,
미국이 왜 그렇게 황당한 수치의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하는지 ... 이에 대한 근본적 이유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 분량이 너무 많아 이야기는 5편으로 나눠서 게시물이 새로
업데이트 될 때마다 한 편씩 올려볼 생각입니다. ~ 아래는 도움 받은 자료와 각 편마다 들어있는
중심내용을 소개한 것입니다.)

<@ 도움 받은 자료들 >

(국제분쟁의 이해/ 조지프 나이/ 한울 출판)
(거대한 체스판/ Z.브레진스키/ 삼인 출판)
(포스트콜로니얼/ 고모리 요이치/ 삼인 출판)
(일본 전후 정치사/ 이시카와 마스미/ 후마니타스 출판)
(결정의 본질/ 그레이엄 앨리슨, 필립 젤리코/ 모던아카이브 출판)
(인간.국가.전쟁/ 케네스 왈츠/ 아카넷 출판)
(냉전의 역사/ 존 루이스 개디스/ 에코리브르 출판)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 이용인, 테일러 워시번/ 창비)
(전환시대의 논리/ 리영희/ 창비)
~ 그 외 한국은행, KDI, 국회 등

(1) 경제편 - 일본의 경쟁력과 위기
(2) 국제정치 - 패전국 일본에 대한 GHQ 점령초기 상황
(3) 국제정치 - GHQ 점령기의 일본 신헌법 제정과정과 자민당 탄생과정
(4) 국제정치 - 일본의 대미추종과 자주파 그리고 신(新)미.일안보조약
(5) 국제정치 - 미국의 세계대전략(Grand Strategy)의 변화 과정과 동맹(alliance)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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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지난 게시물중 <반일 불매운동 근황>이라는 게시물에 올려져 있습니다.
2편: 지난 게시물중 <1991년, 인터넷의 발명과 인터넷 브라우저 전쟁>이라는 게시물에 올려져 있습니다.
3편: 지난 게시물중 <국민이 묻는다 참가자들>이라는 게시물에 올려져 있습니다.
4편: 지난 게시물중 <남편 용돈 최신 트렌드>라는 게시물에 올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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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나의 냉전, 한.미.일 관계와 그 이상의 경계에서 - (5) 국제 정치편
- 미국의 세계대전략(Grand Strategy)의 변화 과정과 동맹(alliance)의 의미

국가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국가들이 모인 공간이 바로 국제 정치의 세계이며, 국가들은
개인(국민)의 이성이 아닌 국가이성(Reason of State), 즉 <레종 데타(raison d’État)>의 지시를 받고
행동합니다. ... 따라서 국가 간의 동맹은 <레종데타와 레종데타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는 레종데타들의 결합이라 할 수 있는 <동맹(alliance)>, 특히 한.미.일 동맹관계와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특히 동아시아 전략변화) 과정에 대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전후(해방 후), 한.미.일 관계의 거의 대부분은 <미국의 세계전략(동아시아 전략)>이라는 큰 틀
안에서만 움직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 그중 한.일 관계의 공식적 시작점은 박정희
정권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에 형성된 한.일 관계가 냉전체제하에서의 한.일 관계의 기본적
성격을 규정하게 됩니다.

계속 언급했었지만, 전후 일본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의해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해야만 했습니다. ~ 그렇다면 왜 일본이었을까? ~ 패전 후, 일본이 아무리 굴욕적인 미국의
점령정책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일본은 1853년 미국의 해군 제독 페리의 통상압력에 의한 ‘개국’
선택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항복 선언까지 대략 백년 가까운 시간동안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
경쟁하면서 이미 상당한 수준의 국가경쟁력을 쌓아놓고 있었습니다. ... 이를테면 국민들의 높은
교육수준과 산업기술력, 관료조직 체계, 기업들의 기획.관리 및 연구개발 능력 등을 감안했을 때
당시 아시아에서 일본을 대체할만한 마땅한 국가가 없었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 이 때문에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한일 관계는 지금까지 미일 관계의 하부 시스템, 또는 부속 체계로서만
작동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따라서 <한일 관계>는 <미일 관계>라는 상위의 틀 안에서만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1961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경제발전에 모든 역량을 집중합니다. ... 천연자원은 물론
산업기술력과 도로, 항만, 전기, 통신, 철도 같은 산업인프라 그 어떤 것도 준비되지 않았던 당시의
한국 현실을 감안한다면 박정희 정권이 경제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건 너무나 당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때문에 외부의 자본유입 없이 자력으로 경제가 발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정권이 생각했던 건, 바로 일본의 경제협력 이었습니다. ~ 여기엔 박정희의
친일성향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장면과 박정희는 식민지시대 일본인들 통치하에 생활했다.
장면은 가톨릭계 중등학교 교장이었으며, 박정희는 만주, 일본 사관학교 졸업 후 일본장교를 지냈다.
두 사람 모두 식민지 정권에서 출세했고, 일본어와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을 알았으며, 많은 일본인
친구들을 사귀었다. 이승만에 있어서 일본은 적이었으나, 이 젊은 두 지도자들에게 일본은 하나의
본보기였다.“ - (한국과 일본: 정치적 관계의 조명. 1985. 이정식) ]

냉전체제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관계개선이 없다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보유지가 매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일본에게 일종의 동맹국으로서의 ‘책임분담’을
요구하게 되었고, 한일 관계는 이렇게 미국이 만든 <큰 틀(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안에서 규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보의 책임을 일정부분 나눠가진
일본은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가장 먼저 <경제협력>에 힘을 쏟습니다. 여기에 때마침 일본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박정희 정권은 <한일 국교정상화>를 서둘렀고, 한일 교섭은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 대신 과거사(식민지 지배청산) 문제와 영토분쟁(독도) 같은 한일
간의 핵심적 쟁점 사항들은 미국의 큰 틀과 일본의 경제협력에 가려져 외롭게 방치되어버립니다.
이렇게 박정희 정권 당시의 한일 관계는 미국의 전략적(동아시아 전략) 이해가 상당부분 반영되어
유지됩니다. (@ 물론 이후의 한일 관계도 미국의 큰 틀 안에서 작동되었습니다.)

이어서 1969년 11월 미국의 닉슨 대통령과 일본의 ‘사토 에이사쿠(자주파, 요시다 계열)’ 총리는
공동성명에서 <한국조항>을 추가했는데 그것은 <“한국의 안전이 곧 일본의 안전과 직결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 이는 만약 한국이 적(敵.소련.북한,중국 등의 공산권)으로부터 공격을 받는다면
일본은 그것을,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미국은
이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내 미군기지(주일미군)와 그 설비들을 즉각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일본이 최대한 협조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 이후 1975년 미국의 베트남전 종료, 같은 해
4월 김일성 북경방문과 전쟁 도발적 발언, 카터의 미 지상군 철수선언, 비무장지대(DMZ) 북한 땅굴
발견 등의 일련의 사건과 사태들은 한국과 일본이 <지역안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하여 서로간의
협력과 이해를 증진시킬 수밖에 없는 당위적 계기를 만들어주었습니다. ... 냉전시대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협력과 갈등을 반복하며 이어져 오다가 1990년대 초 공산진영의 붕괴,
즉 <탈냉전>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 이에 따라 미국에게는 탈냉전 시대에 맞는 새로운
세계전략이 요구되었고, 한국과 일본 또한 관계의 재설정을 필요로 하는 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냉전시대가 종식되었고(탈냉전), 세계는 ‘미국과 소련’의 <양극체제>에서
미국 중심의 <단극(일극)체제>로 힘의 전이가 일어납니다. ~ 이는 미국에게 수많은 동맹국들과의
동맹관계를 새롭게 조정해야할 필요성을 안겨주었습니다. 물론 여기엔 한국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2009년 <한.미 동맹을 위한 공동비전>에서 한국과 미국의 동맹관계는 북한 위협을 억지하는 단순한
군사동맹에서 ‘한반도를 넘어서 지역안정과 글로벌 위협에 대처‘하는 소위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한.미 동맹을 새롭게, 그리고 발전적으로 재규정합니다. [@ ‘포괄적 전략동맹’은 한.미 관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 미국과 일본(고이즈미 정권)은 우리보다 빠른 2005년 10월 29일
<미.일 동맹 – 미래를 위한 변혁과 재편>이라는 공동문서에 서명을 했는데 ... 이는 과거(1960년)
기시정권 때 체결했던 <신(新)미일안보조약>에 새로운 전략이 추가된 것이었습니다.(확장판) ~
이전까지만 해도 미.일 안보조약에 포함된 지역은 일본과 극동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확장판에서는
“미.일 동맹 관계는 글로벌 과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협력한다.”로 수정됩니다. 이는 미.일 간의
군사협력의 범위가 극동에서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냉전 시절 한국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절대적 조건은 바로 <한.미 동맹>이었습니다. 그런데
탈냉전시대를 맞이한 오늘날의 국제정치질서는 미국을 정점에 두는 <단극체제>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 이것은 냉전시대 형성된 동맹관계의 성격변화가 불가피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국을 예로 들면, 한국이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발생하는 ‘연루의 위험과 방기의 공포’,
‘자율성 제한’, ‘비용분담증가’ 같은 소위 <동맹 비용>과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이득>의 비교가
냉전시대 때와 탈냉전 시대인 지금의 시점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 한국입장에서 ‘연루의 위험과 방기의 공포’는 일종의 딜레마입니다. ~ 연루의 대표적 사례는
한국군의 해외파병과 사드배치 문제입니다. 국내적으로 찬반대립이 심해 국민들의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미국과의 동맹관계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 “한국과 미국은 동맹 관계이므로 한국은
미국이 계획하는 일에 참여하라“ ~ 국가안보의 핵심부분을 세계 최고수준의 무기체계를 보유한
미국에 의지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어쩔 수없이 미국의 세계전략(동아시아 전략)에 <연루>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 미국의 요구를 거절한다면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는 <방기의 공포>가
발생합니다.]

냉전의 해체로 세계는 벌써 30여 년째 탈냉전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 한국(남한)은 여전히
‘북한과의 대립’ 이라는 냉전모드를 지속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그렇다 하더라도 단극체제하의
<한.미 동맹의 성격변화>는 필연적인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냉전시대 미국이 동맹을 필요로 했던 이유는 아시다시피 공산진영, 특히 소련의 팽창위협을
억지하고 미국의 이익을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소련의 팽창위협이 사라진
지금에도 미국은 여전히 다수의 국가들과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 냉전시절 미국에게
‘소련’은 그 존재 자체가 <구조적 위협>이었지만 지금은 그러한 <구조적 위협(소련)>이 대부분
소멸되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동맹유지를 원하는 국가들 모두에게 동맹우산을 제공해야할
동기가 현재로서는 거의 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아직까지 많은 국가들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려는 걸까? ~ 그것은 아마도 <미국의 이익>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이것은 <◆“이제 미국은 자국의 필요에 따라 동맹 파트너를 일방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탈냉전 시대인 지금의 세계가 미국중심의 단극체제하에 놓인 상황에서
<(한.미)동맹의 성격변화>의 본질을 파악하려면 미국의 세계전략, 즉 <대전략(Grand Strategy)>을
반드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대전략(Grand Strategy)은 장기적, 거시적 측면에서의 <국가이익>을 먼저 규정하고 ... 그렇게
규정한 국가이익에 위협이 되는 모든 요인을 파악하여 다양한 정책수단 및 확실한 대응을 체계화한
<최상위 안보전략지침>입니다. ~ 대전략은 <국가이익>을 넓게 설정하면 할수록, 위협요인 또한
비례적으로 커지게 됩니다. 때문에 대응 전략에 더 많은 자원을 동원해야하고 또 배치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 북한을 위협요인으로 상정하면 이제 북한과 거래하는 국가 및 (초국적)기업들을 감사하고
정보를 수집해야하며, 그들 국가 및 (초국적)기업들과 거래하는 또 다른 연계 그룹들을 감시해야
합니다. ... 그러다보면 종국에는 수집해야할 정보와 감시대상이 엄청난 수로 증가하게 되고, 또한
그렇게 증가한 대상들의 가치(정보가치)를 판별하는 문제까지를 감안한다면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더 많은 군사력과 경제력, 치밀한 외교력과 정보수단 등이 총 망라되는
것입니다. ... 따라서 <대전략(Grand Strategy)>은 최초의 설정을 어떻게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1980년대 후반, 미국은 자신들의 최고의 정보력과 외교력으로 냉전의 해체를 예감합니다. 이에 따라
미국 의회는 ‘한.미 동맹’을 포함한, 아시아지역에서의 미국의 모든 동맹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동맹관계 재검토)>를 요청하기 시작합니다. ~ 상원군사위원회 ‘넌’ 위원장과 공화당의
‘워너’ 의원은 유럽지역의 주둔미군, 주일미군, 주한미군 및 해외주둔 미군속(군무원) 유지 경비 등에
관한 4개의 법안을 하나의 일괄법안으로 수정제출 하였고, ‘넌-워너’ 수정법안에 의거해 국방부는
1990년 1차보고서를, 1992년 2차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합니다. 이를 <넌-워너 보고서>라고 합니다.
이후 미국의 <대전략(Grand Strategy)>에 가까운 보고서들이 계속 발표됐는데, 클린턴 행정부시절인
1995년 <나이 보고서(Nye Report)>와 1998년에 국방부가 발표한 <동아시아전략보고서>가
대표적입니다.

부시 행정부시절(아버지 부시.George H. W. Bush)인 1990년 4월에 미 국방부가 의회에 제출한
<1차 동아시아전략보고서>는 냉전해체 이후의 미국이 자신들의 동맹전략에 대한 입장을 처음으로
정리한 문건입니다.(특히 아시아 국가들과의 동맹관계) ... 당시 보고서에서 부시행정부가 강조했던
대전략(Grand Strategy)의 핵심은 탈냉전시대 세계의 일극(pax americana)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한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과연 어떠한 전략(동맹관계)을 가져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데 ~ 이를
직관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미국의 압도적 힘의 우위만이 세계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 - (미국유일 우월전략)>

미국이 모든 잠재적 경쟁 상대국(주로 강대국)들을 압도적인 힘의 우위로 제압할 만큼의 충분한
역량을 키워야만 평화가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경쟁 국가들의 부상은 국제질서의 가장 큰
위협이자 동시에 미국의 최대 위협이며, 이는 자칫 전쟁발발의 위험으로까지 전이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이들 경쟁 국가들과 단순히 평화를 유지하는 차원을 넘어선 그 이상의 것(힘), 다시 말해
미국의 압도적인 정치, 군사, 경제적 우위로 잠재적 경쟁 국가들이 미국에 대한 도전 자체를 아예
시도조차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1992년 보고서(@방어지침) 또한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어떠한 국가도 잠재력 있는 미래 경쟁자로 부상하지 못하게
미국의 전략은 다시 집중되어야 한다.” - (New York Times. March 8. 1992) >

미국의 대전략(Grand Strategy)을 파악하면, 미국이 필요로 하는 동맹의 속성은 쉽게 도출됩니다.
잠재적 경쟁국가들(중국, 러시아,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을 가장 큰 위협이라 인지했던 미국이
그들의 출현(부상)을 최대한 억지하기 위해 세웠던 동맹전략의 핵심 골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나토(NATO)를 통해 러시아 견제와 독일의 독자적인 대외정책을 차단하고,
중국 견제와 일본 통제를 위해 ‘미.일 동맹’을 맺고, 걸프 지역의 사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과 후견관계를 유지한다.“ >

이와 같은 핵심 골격은 ~ 유럽, 중동 그리고 아시아를 포함, 사실상의 전 지구적인 영역이 모두
미국의 영향력아래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더불어 미국의 힘에 의한 우월전략에서 지역적 갈등이나
인종갈등, 환경, 종교 및 인권과 난민 같은 인도주의적 문제 등은 이제 더 이상 미국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다만 경쟁국 및 동맹국과 연관되어 세계패권 유지에 영향이 있을 때에만 미국은 비로소
지역갈등이나 인도주의적 문제 등에 적극적 개입의지를 보입니다. ... 냉전해체 이후, ‘소련’이라는
확실한 적(敵)이 사라지고, 이제는 그 빈 자리를 <경쟁국>이라는 존재가 차지함으로써 미국에게는
<적(敵) 개념>의 선명성이 상당히 흐려진 상황입니다. ~ 따라서 미국은 자신들의 압도적 힘의 우위,
특히 군사력을 탈냉전 시대에 맞게 재설정을 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했는데, 이는 냉전시기 소련의
팽창위협을 억지하기 위해 독일, 일본, 한국에 집중되었던 전진배치 병력을 재조정해야 하는 문제로
이어졌고, 그중에 가장 큰 규모로 병력 재조정을 고려했던 국가가 바로 한국이었습니다. ~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한.미 동맹의 성격변화(관계의 재설정)> 문제로 이어지게 됩니다.
(@ 이것이 무려 30여 년 전의 보고서 내용입니다.)

1990년 <1차 동아시아보고서>는 미군병력 감축과 전진배치의 필요성에 대한 재고를 주장합니다.
미국의 국내적 압력(특히 의회)과 동맹국의 경제성장과 같은 몇몇 조건들은 탈냉전 시대를 맞이한
미국에게 동아시아 지역 내의 새로운 안보환경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으며, 이는 결국 돈의 효율성
문제로 환원됩니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패권유지) ... 또한 당시 지상군 전진배치의 상당수가
한국이었기 때문에 현실적인 동아시아 안보재설정 대상의 1순위는 <한.미 동맹>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보고서에는 주한미군에 대한 한국 측의 기여, 즉 <방위비 분담금 증액>에 대한 요구와 함께
<미군감축>에 대한 내용도 함께 포함하고 있었는데, 이는 동아시아에서 <주한미군의 역할>을
새롭게 규정하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 따라서 과거 주한미군의 전통적 역할이었던
<지역 균형자 및 최종 안보 보증인>에서 단순한 <국지적 안정화>로 주한미군의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주장합니다. ~ 결국 <보증인>이라는 단어를 삭제함으로써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의
안보를 더 이상 보장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보고서는 반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동북아시아 지역의 갈등의 부재를 미국이 보장할 수는 없지만,
적대 행위를 국지화, 최소화함과 동시에 미국에게 갈등 해결에 필요한
외교적 레버리지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 (1차 동아시아전략보고서. 1990) >

정리해보면 ~ 미국은 한국 안보의 최종 보증인 역할에서 벗어나야하며 만약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그 분쟁의 확산을 방지하고 최소화, 국지화하는데 주한미군의 역할을 한계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보고서는 북한의 위협을 과소평가 하거나 외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는 않습니다. ~ 대신
주한미군이 아닌, <주일미군>이 북한위협을 억지하는데 훨씬 더 효율적이라 주장합니다. ... 그러나
이러한 <넌-워너 보고서. 1990. 1992>의 계획(주한미군 감축 및 역할축소)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유보됩니다. <넌-워너 보고서>는 탈냉전 초기, 미국의 동맹전략의 방향성을 알려줌으로써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분명한 것은 북한 위협에 대한 억지력의 상당부분이
한국의 경제성장과 맞물려 점진적으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 이를테면
핵을 제외한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에 대한 억지력은 전적으로 한국이 책임져야 한다는 부분입니다.

<넌-워너 보고서. 1990. 1992> 이후, ~ 1995년 <나이 보고서(Nye Report)>는 클린턴 행정부의
(안보)대전략을 <개입과 확산> 전략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 이 전략의 핵심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미국의 안보와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 <자유시장경제의 확산>이 필수적이어야 하고,
그것은 <지역 안보환경의 안정> 없이는 불가능 하다고 주장합니다. 더불어 지역안보의 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동맹 간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개입과 확산> 전략은 과거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는 큰 전쟁이 거의 없었다는 경험에 비추어, 오늘날 강대국들 상당수가 민주주의
국가들이거나 민주주의로 이행중인 국가들이라는 점에서 강대국들 사이에서는 대규모 전쟁이나
갈등이 촉발될 가능성이 낮다고 보며, 대신 약소국들의 군사도발과 소규모 국지적 분쟁 등을 오늘날
지역안보의 실질적 위협이라고 보고서는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클린턴 행정부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에게 실질적 위협이 되는 요소로 약소국들의 군사도발, 이를테면 <북한 핵보유> 등을
꼽습니다. ~ ~ 결론적으로 미국은 지역의 안보환경을 안정화 시키는데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적 자유시장경제공동체>가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최대한 힘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개입과 확산> 전략의 핵심내용입니다.

앞서 보셨듯이 <넌-워너 보고서>가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역할(특히 주한미군)을 축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 <나이 보고서(Nye Report)>는 반대로 동아시아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했습니다.
이는 한국, 중국, 대만과 같은 개도국들의 경제성장이 미국 경제와 연관되어 그 비중이 추세적으로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동아시아 지역의 안정적 안보환경과 경제성장이 미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에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강조하는데 ~ 특히, 동북아 안정의 핵심을 <한반도>라고
규정하고 이에 따라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합니다. ~ <넌-워너 보고서. 1990. 1992>가
한반도의 갈등을 국지적 차원으로 격하시켰다면, 클린턴 행정부는 한반도의 안정을 동북아 안정의
핵심이자 필수요인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클린턴 행정부의 <개입과 확산> 전략에 가장 방해가 되는 요인이자, 동시에
동아시아 안보에 심각한 위협요인이 됩니다. 여기에 북한의 재래식 군사위협까지 더해지기 때문에
주한미군의 주둔필요성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보고서는 주장합니다. 1990년의 <넌-워너 보고서>가
북한의 재래식 군사위협을 전적으로 한국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 <나이 보고서>는
주한미군의 계속적, 주도적인 역할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철수나 감축계획은 없어야하며,
무엇보다 <전시작전권 전환>같은 문제는 한국군이 지금보다 더 현명하고 성숙(maturity)해진 미래
어느 시점에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주장합니다. ~ 그런데 몇 년 뒤, 미국의 대전략에
큰 변화를 가져온 ‘초대형 사건’이 터져버립니다. 부시(George Walker Bush. 아들부시) 행정부 출범
초기였던 2001년에 일어난 <9.11테러>입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본토가 공격당한 그야말로 충격적인 테러사건이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납니다. ~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과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워싱턴)을 대상으로
항공기 자살 테러가 일어난 것입니다. ~ ~ 9.11 테러이후, 미국의 안보 대전략(Grand Strategy)은
전면적인 대변환을 계획합니다. ~ <치명적(lethal), 경량화(light), 이동성(mobile)>을 국방 변환의
중심적 지침으로 삼고 해외주둔 미군병력(특히 전진배치 지상군)에 대한 재배치 계획을 수립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전략적 유연성 계획>입니다. ... <전략적 유연성>은 말 그대로 해외주둔
미군을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라 언제든지 유연하게 활용하겠다는 의미인데, 주둔국의 동의 없이도
미군이 신속하게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주한미군’ 또한 미국이 원하면
언제든지 한국을 떠나 다른 곳에 배치될 수 있는 것입니다. [◆ 부시 행정부시절 미 국방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Rumsfeld)’와 그의 추종그룹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주한미군을
국제 분쟁지역(ex. 중동, 남중국해)에 적극적으로 활용(파견)하려는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하지만
미.중 간의 군사적 충돌 같은, 다시 말해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는 다른 나라들의 분쟁에 개입될 수
있다는 위험 때문에 한국정부는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도입에 거부의사를 밝힙니다. 그러나 결국
2000년대 중반 한미 양국은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를 합니다. 합의 내용은,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라 ‘주한미군’이 한국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데 한국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파견 병력이
다시 한국으로 귀환할 시에는 양국 간 논의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이는 앞서 언급했던
‘연루의 위험과 방기의 공포’의 전형적인 사례였습니다.]

9.11테러 이전까지 미국의 안보전략을 지배했던 기본 방침은 고정된 적들만 위협으로 간주한다는
<위협기반 전략> 이었습니다. ~ 그러다가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전략적 유연성’과 함께 내세운
전략이 <역량기반 전략>입니다. ~ <위협기반 전략> 하에서는 ‘적(敵)개념’이 선명합니다. 때문에
적(敵)의 위치와 성격, 힘의 크기 등이 뚜렷하여 대응전략 또한 현명하게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9.11 테러는 미국의 안보 전략이 더 이상 <위협기반>에 머무를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불확실성 시대에 <위협의 원천>이 더 이상 고정된 적이 아니라 <불확실성> 그 자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 이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우발적, 기습적 위협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반드시 <유연성>이 더해져야 합니다. ~ 물리적 힘(군사력)도 센데, 거기에 더해
그 힘이 너무나 치명적이며, 언제 어디서든 신속하게 나타날 수 있는 이동성까지 갖추고 있다면
예측하기 힘든(불확실성) 기습적 역량을 키우려했던 적(敵)의 계획 자체를 아무 의미 없는(futility)
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역량기반 전략>의 핵심인 것입니다.

미국의 안보 대전략이 <전략적 유연성>과 <역량기반 전략>으로 대변환 되면서 주한미군의 재배치
문제 등 전반적인 <한.미 동맹의 성격변화>가 불가피 했습니다. 결국 2004년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을 승인하였고, 당시 주한미군 2사단 3,600명 규모의 전투 병력을 이라크로
파견하게 됩니다. 여기에 3만 7,000명 규모의 주한미군을 2008년 9월 까지 2만 5,000명 수준으로
감축함과 동시에 주한미군의 허브를 한강 이남의 <오산.평택 및 대구> 기지로 재배치(이전)하는
계획을 발표합니다. 이는 주한미군이 북한의 재래식 군사위협, 즉 장사정포 사거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 아무튼) 주한미군 개입의 개연성을 최소화 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북한 재래식 군사위협이 예측하기 어려운 <역량기반>의 위협이 아닌, 충분히
예측 가능한 <위협기반>이라 판단하여 억지 가능한 위협으로 규정짓고, 대신 <오산.평택 및 대구>
두 곳의 허브기지에 병력을 집중 재배치함으로써 이제는 주한미군이 한반도를 넘어선 국제분쟁
지역에 언제든지 투입 가능한 <전략적 유연성>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미국의 핵심 안보자산이라는
의미도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2008년 게이트 국방장관 때 28,500명으로 주한미군의
숫자는 동결되었고, 현재 주한미군은 이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미국은 지난해
<2019회계연도 국방수권법>에서 주한미군을 현재의 수준보다 6,500명 적은 2만2,000명 수준으로
감축하려던 계획(“2만2,000명 이하로는 줄일 수 없다.”)에서 다시 지금 수준인 2만 8,500명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최근(2019년 5월)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가 발표한 상황입니다. ~ G2로 부상한 잠재
경쟁국 중국과 러시아 및 북한의 견제를 위해서 아직까지 주한미군이 현재 수준인 2만 8,500명에서
유지되는 것이 미국의 전략적 판단이라는 것인데, ~ 이러한 주한미군의 성격변화는 결국 미국의
‘세계대전략(Grand Strategy)’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주한미군의 병력 수 및 역할 변화의 문제는 미국의 의지와 대전략에 따른 결과입니다. 간혹 언론을
통해 ‘주한미군 감축 및 철수’ 같은 내용이 보도될 때마다 <“외교가 개판이네!”>라며, 사태 변화의
책임을 오롯이 한국 정부의 외교력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너무나 편협하고 무지에
가까운 단순한 시선입니다. 주한미군과 한.미 동맹의 성격변화는 한국정부의 이념 성향과는 무관한,
더불어 외교력의 유능과 무능과는 별개로 미국의 <대전략 논리>가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전략은 ~ 전 세계에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혹시 모를 다양한 가상의 긴박사태를
상정하고 그에 대한 수많은 대응 시나리오까지도 자신들 안보전략의 한 파트에 포함시켜놓고
있는데, ~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북한정권의 급작스런 붕괴>입니다.

다트머스대학 행정학과의 제니퍼 린드(Jennifer Lind) 교수와 미국 최대의 글로벌 정책연구소인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 베넷(Bennett) 박사는 2001년 하버드대학 케네디 행정대학원 산하
국제문제센터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국제안보(International Security)> 가을호에 게재한 논문
<북한의 붕괴: 군사임무와 소요사항 (The Collapse of North Korea: Military Missions and Requirements)>에서
북한 붕괴에 대비한 군사작전과 이때에 소요되는 군 인력을 산출해 발표했었습니다. ~ 당시 논문은
<북한 붕괴 시 필요한 병력 규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 (1)북한 전역의 안정화를
위해 18만~31만 2천명, (2)대량살상무기(WMD) 확보에 3천~1만명, (3)난민 유입이 예상되는 북한,
중국, 러시아, 한국 간 국경지대에 배치할 국경통제병력 2만 8천명, (4)저항세력 억지 및 궤멸 작전
투입 병력 7천명~1만 5천명, (5)재래식 무기 무장해제 4만 9천명 등 ~ 이를 모두 더한다면 필요
병력수는 최소 26만 7천명에서, 최대 40만 9천명 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 이와 같은 수치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미군과 나토(NATO) 평화유지군이 코소보나 이라크 등 세계 여러 국제분쟁
지역에서 실제 활동을 하면서 소요된 병력 수를 근거로 산출한 수치입니다. 이에 따라 린드 교수와
베넷 박사는 북한인구 1천 명당 13명의 안정화 병력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도 북한군의
큰 저항이 없는 낙관적 상황을 가정했을시의 수치라고 얘기했습니다.

린드 교수는 <북한의 급작스런 붕괴>에서, 필요병력 ‘수치’보다 세계가(특히 미국)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할 핵심중의 핵심을 <대량살상무기(WMD)의 안전한 확보>라고 주장합니다. ... 대량살상무기는
치명적 파괴력을 지닌, 말 그대로 인명을 대량으로 살상할 수 있는 핵폭탄, 생화학무기(ex.탄저균),
중장거리 미사일 등의 무기들을 말합니다.[@ Weapons of Mass Destruction] ~ 그런데 진짜 문제는
무기들의 가공할 살상력뿐만이 아닙니다. ~ 그 엄청난 살상력이 다른 곳으로도 전이될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그리고 이를 미국입장에서 보면 앞서 언급한 <역량기반 전략>과 맞닿아 있습니다.
미국의 안보전략은 2001년 9월 11일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 냉전해체 후, 세계 유일의 일극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었던 미국에게는 <고정된 적(敵)>만이 유일한 위협의 개념이었습니다.(위협기반)
하지만 9.11테러는 그동안 미국이 인식하고 있었던 위협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핵의 존재>는 북한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 미국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적(敵) 개념>이 되는 것입니다. ~ <북한의 핵 능력이(핵물질과 핵무기 제조기술)> 테러집단에게
이전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만에 하나라도 <북한의 핵능력>이 불확실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테러조직에게 이전되어 그들이 소형화된 전술핵무기나 핵배낭 같은 치명적인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게 된다면, 향후 미국의 <역량기반 전략>이 감당해야할 정치적, 심리적, 경제적
비용은 엄청나게 증가할 것입니다. 린드 교수가 강조했던 <대량살상무기(WMD)의 안전한 확보>는
바로 이런 맥락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한 집단의 의사결정 과정과 그 이면에서 펼쳐지는 숨은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들이
꽤나 많습니다. ~ 그중에 거대규모, 특히 국가단위의 전략과 정책결정(의사결정) 과정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국가이성’에 의한 의사결정, 즉 <레종데타에 의한 의사결정 과정>에는
우리가 모르는 신비한 <연역적 메커니즘>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 2003년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 안보 대전략의 핵심이었던 <전략적 유연성>에 보조를 맞추듯 이라크 파병을
결정합니다. 서민을 대표하며 진보를 상징하던 노무현 정권이 집권하자마자 가장 우파적 결정을
내렸던 이유는 대통령의 의지가 아니라 바로 <레종 데타(raison d’État)>라는 국가이성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때에도 분명히 <레종데타에 의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쳤을 것이며 그러한
과정 중에는 거부할 수 없는 어떤 신비한 힘(연역 메커니즘)이 작동됐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는
특히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주 경험되는데, 즉 한 국가의 의사결정은 비록 최고결정권자(대통령)가
존재하더라도 도출된 최종적 결과는 최고결정권자 단독에 의한 결정이 아니며, 정부 내의 다양한
구성원들의 권력배치와 거기서 양산되는 상호적 긴장관계의 연속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뒤에서 이어질 이야기를 위해 꼭 필요하다 생각되어, 과거 미국의 실제 의사결정
사례를 참고해 간략히 살펴보고 계속해서 나머지 이야기를 이어갈 볼 생각입니다.

@ 예전 경제학에서는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라는 이름하에 활발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주인-대리인 관계에서 최종 의사결정자는 당연히 ‘주인’입니다. ~ 주인은 의사결정을
내리거나 행동을 취할 때, 주변에서 도움이나 조언을 얻을 수 있는 ‘대리인’을 개입시킵니다.
이론적으로 대리인은 주인의 목적 달성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예컨대 대리인은
주인이 현명한 결정을 내리도록 돕기 위해 더 많은, 그리고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 주인 A가 의사와 변호사를 만나는 경우, 이때에 의사와 변호사는
대리인입니다. 의사는 암이라는 질병과 치료 방법에 대해, 변호사는 온갖 법률문제에 대해 A보다
월등히 많은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A가 최종선택을 했다고 해서 A가 단독으로
내용을 결정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수술을 받을지 말지에 대한 최종결정은 A가 내리지만,
역시 대리인이 제공하는 정보와 판단이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그렇게 내리는 결정은 대리인, 즉
전문가 조언 없이 내리는 결정보다 더 나은 결정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다만 여기서 주인과
대리인이 가진 각자의 정보는 <비대칭적>이며, ~ 동시에 양측의 이해관계 또한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약 처방만으로 충분한 단순 감기증상에 대해 의사는 주인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MRI, CT 등의 각종 비싼 검사를 권유합니다. 주인은 대리인의 행위가 진정으로 자신을 위한건지,
아니면 대리인 본인의 이익을 위한 행위인지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 이 지점에서
주인과 대리인의 <정보 비대칭성>이 문제가 됩니다. ... 회사 경영권 방어를 위해 주인(주주)은
변호사를 고용했지만, 변호사가 (더 큰 이익을 위해)상대측과 공모해 회사에 불리한 자문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이 절대 권력으로 결정을 내리는, 위계질서가 명확한 조직에서 명목상 대리인일지라도
그는 사실상 <능동적인 참가자> 입니다. 그들은 특별한 이해관계에 대해 적절히 주의를 환기시키고,
결정의 정당성을 위해 그런 이해관계를 대변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복합적인 결정에서
대리인은 주인의 의사를 충실히 대변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의사결정에 참가하는 일종의 <경기자>
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대리인(경기자)은 문제의 결정이나 행동의 결과에 꽤 많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대리문제>속에 내포된 부정적 영향을 억제하기 위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 “모든 정보를 공유(정보 비대칭성 제거)” 함으로써 정보의 불균형을 해소한다든지,
“주인의 이익이 곧 대리인의 이익”이 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자는 식의 연구들입니다. 하지만
‘케네스 애로(노벨 경제학상)’는 신탁 의무를 지우거나, 전문가 정신의 강조, 대리인 자신의 전문가적
평판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등의 제안은 전통 경제학의 연구영역 밖의 문제라고 얘기합니다.
더구나 집단의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대리문제>가 정부의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요소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면 ... <대리문제>는 당장이라도 위와 같은
개선방법을 적용시켜야 할 것입니다. ~ 앞서 얘기했듯, 대리인이 <대리인과 경기자의 경계>를
오고갈 때 복잡한 문제의 발생은 필연적입니다. 이는 클린턴 행정부시절 보스니아에 미군 2만 명을
보내는 문제에서 잘 드러났습니다.

[◆ 1995년 6월 어느 여름밤, 백악관에서는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를 위한 만찬이
열리고 있었다. 만찬이 끝날 무렵 국무부 차관보 ‘리처드 홀브룩’이 잠시 여유가 생긴 대통령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날 아침 클린턴은 보스니아에 주둔 중인 UN 평화유지군이 세르비아군에
포위됐다는 보고를 받았었다. 그 상황에서 프랑스.영국.네덜란드 군대가 주축이 된 UN 평화유지군이
철수하겠다고 할 때 미국이 해야 할 일을 놓고 백악관 참모들 사이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홀브룩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 ~ ~
내가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 멋진 저녁 분위기를 망치지나 않을까 우려됩니다만,
분명히 할 것이 있습니다. ... 지금의 NATO 계획에 따라 UN이 철수하기로
결정할 경우 미국은 보스니아에 군대를 파견키로 ‘이미’ 결정했습니다.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습니다만, 그 문제에 대해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통령이 놀라서 나를 보며 물었다.
“무슨 소리요? 병력파견 문제는 때가 되면 내가 결정할 겁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 내가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 NATO가 이미 철수 계획을 승인했습니다. ... 이 과정은 그러니까
자동적입니다. 특히 UN이 철수를 결정할 경우 NATO 병력을 지원한다고
우리가 공개적으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국무부 장관 워렌 크리스토퍼를 돌아봤다.
“이게 사실입니까?”
“예, 그런 것 같습니다.” ... 크리스토퍼가 짧게 답했다.
“이 문제는 내일 아침에 다시 얘기합시다.”

대통령이 불쾌한 듯 말했다. 그리고는 힐러리의 손을 잡고 입을 다문 채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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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개월 전 클린턴 대통령은 동맹국에 보스니아로의 파병을 권유하면서 만일 문제가 발생하면
철수를 돕겠다고 약속합니다. ~ 동맹국들은 군대를 파병했고, 클린턴은 다른 더 시급한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당시 NATO는 미국 국방부 전문가가 참석한 가운데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고,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안전한 철수를 위해 미군 2만 명을 파병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NATO
집행위원회는 이 계획을 승인했고 미국 대표도 대통령 아래 급에서 승인한 지침에 따라 찬성을
하게 됩니다. ~ 하지만 위에서 ‘리처드 홀브룩’이 묘사한 상황을 보면 클린턴 대통령은 ‘자신의’
정부가 내린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였습니다. ...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대통령 집무실
책상위에는 클린턴이 지금껏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수백 페이지짜리 긴급보고서가 놓여있었고,
거기에는 클린턴이 한 번도 브리핑 받은 적이 없는 대단히 세세한 작전계획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 하지만 보고서를 작성한 군인도 미군의 보스니아 파병에 관심이 없었고, 군부와
펜타곤에서 일하는 군무원들은 오히려 파병에 반대했습니다. ... ‘대통령’이라는 신분은 전체를
조망하는 자리입니다. 따라서 군부 의견도 중요했지만 동시에 외교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미국 정부의 외교를 전담하는 곳은 <미국 국무부>입니다. 당시 국무부 차관보였던
‘리처드 홀브룩’은 만약 미국이 파병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NATO 동맹에 균열이 생길 것이며,
모든 비난의 화살은 대통령(클린턴)을 향하게 될 것이라며, <국무부 관리로서> 해야 할 말을 강하게
주장한 것입니다. ... 이제 클린턴 대통령은 새로운 결정을 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
‘UN평화유지군’의 철수를 위해 미군 수만 명을 보스니아에 파병하든지, 아니면 보다 그럴듯한
다른 명분을 찾아내 파병하든지, 둘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클린턴 대통령, 펜타곤(Pentagon), 국무부 외교관(홀브룩)의 이해관계는 같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보와 전문지식은 철저히 <비대칭적> 이었습니다. 심지어 국무부 차관보
홀브룩은 펜타곤이 이미 2년 전에 작성해놨던, 긴급 상황에 대한 다양한 보고서(보스니아 사태포함)를
국무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6일 전에야 겨우겨우 펜타곤을 압박해서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견해를 접고, 양보하고 순응해야 했습니다. 결국 클린턴 대통령이
양보하고 순응하며 관리들의 견해를 따랐고, ~ 파병에 대해 방어적 입장을 취했던 펜타곤보다
더 강한 주장을 펼쳤던 국무부 관리 ‘리처드 홀브룩’의 견해가 최종적으로 승리(관철)하게 됩니다.
그러나! ~ 리처드 홀브룩의 견해가 관철되는 동안은 상황이 이미 늦었음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보스니아인 수천 명 이상이 학살당했고, 크로아티아가 공세를 취했으며, 동맹국들은 자체적으로
철수를 시작한 다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참고: (결정의 본질. 316~320페이지/ 그레이엄 앨리슨, 필립 젤리코/ 모던아카이브 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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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이 참가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 누가 어떤 자격으로 참가하는지를 알기 전에는
결과 예측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보스니아 사태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 메릴랜드 대학의
존 스타인브루너 교수는 정책결정 패턴을 <세 가지 부류>로 분류했습니다.

(1) 미정형 사고방식(uncommitted thinking) - 고위정책결정자들은 보다 많은 융통성이 있기
때문에 미정형 사고방식을 가집니다.

(2) 이론형 사고방식(theoretical thinking) - 전문가들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통하는
이론형 사고방식을 가집니다.

(3) 판에 박힌 사고방식(grooved thinking) - 직업관료(하위관료) 조직원들의 사고방식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임명되는 고위관리는 대개는 내부 발탁보다는 외부 인사를 추천받아
임명하는 정치적인 방식이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임명된 관리들과 직업관료 사이에
존재하는 사고방식 차이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사고방식의 차이는 결국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뭉치게 만듭니다. 세력이 형성되는 거죠. 흔히 <파벌 또는 계파>라고 하는데,
앞서 일본의 전후 정치를 얘기할 때, <당인파와 관료파>처럼 출신의 차이가 사고방식의 차이를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 정치적으로 임명된 관리들 대부분은 본인이 맡은 정부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편입니다. 설령 그 분야 전문가라 할지라도 오랜 시간동안 직업 관료들 사이에서만
형성되어온 공통문화와 끈끈한 신뢰관계, 다시 말해, 그들만의 <관료 생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방금 임명장을 받은 고위관리가 직업관료 생태계에 적응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정권이 끝나면 고위 관리도 대부분은 함께 떠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임명된 고위관리는 태생적으로
<한시적> 이라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 ~ 반면 직업적 관료 권력은 스스로가 사표를
던지지 않는 이상은 아주 긴 시간을, 즉 본인의 인생 전체를 관료로 시작해 관료로 끝을 맺을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한번 상승한 지위는 이후 능력이 떨어져도 최소한의 지위를 보장받습니다.
(@ 지위의 하방경직)

집단의 크기가 클수록, 특히 국가단위의 의사결정 과정에는 ~ 주인, 대리인, 경기자 등의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합니다. 더불어 이들 각자가 보유한 정보와 전문지식은 <비대칭적 상호관계>
하에 놓여있습니다. 또한 ‘(경기)참여자’가 누구냐에 따라 경합하는 사고방식도 제각각입니다. 때문에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교류(힘겨루기, 이해관계)>과정을 거쳐서 도출되는 최종결과는 일반의 처음
예상과는 다른 형태의 결론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마디로 <비대칭적 상호관계의 경기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죠. ... 이로 인해 <정부 부처 간 엇박자>, 임명직 고위
관리와 직업 관료간의 사고방식 차이로부터 유발되는 보고오류 및 누락 같은 <조직 내 소통불화>,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직업 관료에 대한 장악력 약화> 등의 문제들이 자주 발생하곤 합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비가측적 상황의 연출은 일시적,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잠재되어 있다가
정부의 의사결정이 있을 때마다 등장하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연역적 메커니즘>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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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단위의 의사결정 과정 속에 숨어있는 복잡성(비대칭적 상호성) 문제는 여기까지 살펴보고,
이제 다시 앞의 이야기를 가져와 계속 이어가 보겠습니다. ... <북한의 급작스런 붕괴>에 관하여
린드(Jennifer Lind) 교수는, 필요병력 수치보다 우리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할 핵심 사항으로
<대량살상무기(WMD)의 안전한 확보>를 언급했습니다. ~ 9.11테러 이후, 미국의 안보 대전략이
<전략적 유연성 및 역량기반 전략>으로 대변환 되면서부터 이제 북한을 바라보는 미국의 인식은
<대량살상무기(WMD)를 확산시키는 존재>로 초점이 이동한 상태입니다. ...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북한 인식변화 속에는 “북한의 재래식 군사위협은 남한이 충분히 억지할 수 있다.” 라는 의미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남한에서의 주한미군 역할의 점진적 축소를 예고하는
것입니다. 주한미군은 더 이상 <북한 억지>라는 하나의 목적에만 국한된 안보자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더불어 이러한 변화는 <전략적 유연성과 역량기반 전략>하에서 미국이 필요로 하는
동맹의 개념이 전 지구적 위협에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느냐의 <동맹 효율성> 개념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미국이 생각하는 동맹 개념이 <가성비>를 따져 묻는 단계까지 도달한 것이죠.

미국이 동맹에게 ‘효율성(가성비)’을 따져 묻겠다는 의미는 결국 <비용(돈)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은 천문학적인 돈을 썼습니다. ~ 과거와 같이
전 세계 주요 분쟁지역마다 개입하여 압도적 군사력(돈)을 쓸 여력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경험 때문에 국제문제 개입에 대해서는 이제 (미국)국내적으로도
정치적 부담이 많아진 상황입니다. ‘소련(공산진영)’ 이라는 선명하고 구조적인 위협요소가 사라진
지금의 현실에서 세계를 무대로 테러방지, 재해구조,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같은 수많은 안보이슈에
상당한 비용(군사력)을 반복적으로 지출하고 있는 정부에게 다수의 미국 유권자들은 많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 ~ ~ 그러나! ~ 미국은 이러한 현실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
<일극(pax americana)>으로서의 지위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 “미국의 세계패권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써야할 돈(군사력)이 부족하다?”>

결국 답은 기존 동맹국들과 지역안보 책임을 함께 나눠 갖는 것입니다.(돈과 군사력의 공동부담)
특히 미국에게 지속적인 패권유지의 당위성을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바로 중국의 부상인데
그중 미국이 유독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이 <중국 군사력의 질적 증강>입니다.

중국은 해양의 중요성과 장거리 공군력 및 정보화 전력 등에 힘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군의 현대화 및 정보화, 정예화로 대표되는 <군의 질적 증강>입니다. ~ 과거 ‘인해전술’의
국가로 상징되던 중국 ‘인민해방군(중국군)’이 환골탈태(換骨奪胎)하며 첨단 군대로 새롭게 거듭나고
있는 것입니다. ~ 인민을 대량 동원하는 ‘인민전쟁’ 개념을 더 이상 고수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에 따라 중국은 가장 먼저 병력을 감축하기 시작했습니다. ~ 여기에 항공모함 확보로 해군력을
증강시켰고, 전자기파(EMP) 무기 및 해커.바이러스 등의 정보마비 무기 같은 비대칭 전력증강,
스텔스 전투기 젠-20, 항공우주산업 육성으로 인한 유인우주선 발사 등 전반적인 군의 질적 증강
및 군사기술혁신(RMA: 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 이는
병력 1인당 군사비 지출내역을 보면 쉽게 이해됩니다.

◆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IISS(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의 자료를 참고로
2009년, 2014년 주요국의 병력 1인당 국방비 지출내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달러($) 기준]

<2009년 주요국의 병력 1인당 국방비 지출>
@ 미국 - 43만 7천 달러($)
@ 한국 – 3만 7천 달러($)
@ 일본 – 22만 8천 달러($)
@ 중국 – 3만 1천 달러($)
@ 러시아 – 4만 달러($)

<2014년 주요국의 병력 1인당 국방비 지출>
@ 미국 - 40만 5천 달러($)
@ 한국 – 5만 3천 달러($)
@ 일본 – 19만 3천 달러($)
@ 중국 – 5만 5천 달러($)
@ 러시아 – 9만 달러($)

미국은 한해 700조원에 가까운 국방비를 지출하는 세계 최고의 군사대국답게 ~ 병사 1명에게
지출되는 비용이 무려 40만 달러($)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원화로 환산(최근환율)하면 4억 5천만
원이 넘는 돈입니다. 압도적이죠! ~ 일본도 2억 원이 넘습니다. 물론 이 금액이 오롯이 병사를 위해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체 국방비를 병력수로 나눈 수치이기 때문에, 병사 1명당 국방비 지출이
높다는 것은 군대의 정예화 및 현대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자료(IISS)를 보면
중요한 변화가 보입니다. ~ 우선 한국은 북한과 직접 대치하고 있는 휴전국가라는 특수성 때문에
병력 1인당 국방비 지출의 증가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2014년 수치는
2009년과 비교해보면 병력 1인당 국방비 지출액수가 (추세적으로)줄어든 상황이며, ...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수치가 큰 폭으로 상승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2009년 한국보다 낮았던 중국은
2014년에 한국을 추월한 상황입니다. 이는 인민해방군의 정예화.현대화 속도가 한국군을 앞서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1인당 GDP(2018년 기준)가 한국은 3만 달러($)를 진즉에 넘어섰고,
중국은 이제 겨우 1만 달러($)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현재 중국의 인민해방군에 대한 자본집중도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 북한과 대치중인 상황이라 한국은 지상군(육군)의 절대규모가 반드시 요구되는 상황이며,
따라서 지상군 위주의 대병력 체계유지는 일정부분 당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대륙세력
견제를 원하는 미국도 한국 측에 강력한 지상군 운용을 바라기 때문에, 한국은 주변 강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해공군력의 자본집중도가 떨어집니다. ... 결국 한국군의 정예화 및 현대화는 지상군의
(점진적)축소 없이는 달성되기 어려운 목표이며, ~ 설령 지상군 축소를 계획한다고 해도 지상군의
‘절대규모’ 라는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한다면 한국 군대의 정예화 및 현대화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한국 지상군은 해공군력과의 조화, 즉 육.해.공 합동 전력을(첨단 정보화 전력포함)
극대화시킴으로써 전체 군사력을 증강시켜야 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한.미 동맹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련(공산진영)’ 이라는 명징한 적(敵)이 사라진 오늘날, 중국의 부상은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 한마디로 <경제는 중국 & 안보는 미국> 이라는 딜레마에
빠진 상태라는 것입니다. ...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조차 경제부문만 놓고 보면 중국시장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매력적인 가치를 지닌 시장입니다. ~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유럽도
마찬가지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패권 경쟁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적으로 커지게
될 것입니다. 다만 중국경제의 상당부분이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시장경제>의 틀 밖에서 작동되고
있다는 점이 미국을 자극합니다.(@특히 금융.자본시장) ~ 더불어 중국의 폐쇄적인 경제민족주의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아닌, 중국 자신들이 룰 메이커(Rule maker)로써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최근 타결된 ‘RCEP(알셉)’은 경제부문에서 중국의 존재감이 세계에 확실히
각인된 상징적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물론 RCEP의 핵심은 아세안 국가들이라는 의견도
많습니다. ~ 그렇다 하더라도 ‘RCEP 타결’이 전 세계에 중국의 부상을 알리는데 충분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지속적인 세계패권을 원하는 미국에게 지금 눈앞으로 다가온 현실적 문제는 결국 <비용>입니다.
특히 경제와 군사안보 분야에서 점점 더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중국의 존재는 ~ 그렇지 않아도
세계패권 유지에 많은 돈을 쓰고 있는 미국에게 더 많은 지출 부담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 결국
중국 견제와 동북아 지역에서의 지속적 패권유지를 원하는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은 <동맹의 포괄적 활용>입니다. ~ 여기에는 비용(돈)뿐만 아니라, 지역 안보의 공동책임까지
포함되는데 ... 그 핵심이 바로 <아시아 집단안보체제(다자동맹)>의 구축입니다. ~ 아시아의 안보를
미국이 홀로 책임지는 것보다, 다수의 동맹국들이 함께 나눠 책임지는 것이 비용측면에서 훨씬 더
부담이 덜하기 때문입니다.

야구에서 빈볼시비가 발생하면 더그아웃(dugout)의 모든 선수들이 뛰쳐나와 상대편으로 향합니다.
동료 선수에 대한 위협은 팀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모두 함께 싸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국제정치에서 말하는 ‘집단안보체제’의 의미는 바로 야구의 빈볼시비 개념과 유사합니다. 실제로도
<국제연합헌장 51조>에는 이러한 내용의 조약원칙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 “회원국 하나에 대한 공격은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된다.”
- (국제연합헌장 51조. ‘집단적 자위의 원칙’) >

미.소 냉전시기 ‘냉전의 설계자’라고 불리던 미국 외교전문가 조지 케넌(George F. Kennan)은
종전 이후의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세계에는 기술적, 산업적 창조력이 매우 뛰어난 네 곳의 중요 지역이 있는데,
이들 지역이 <어느 쪽과 동맹을 맺느냐>에 따라 국제적인 <세력균형>의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 ~ 그 네 곳의 지역은 미국, 소련, 유럽, 일본이다.“

케넌의 이러한 주장은 <집단안보> 개념으로 이어집니다. ~ 그리고 여기서 또 한 명의 전문가인
존 루이스 개디스(John Lewis Gaddis) 예일대 교수 말을 들어보면 집단안보 개념이 좀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 개디스 교수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남한의 위상은 국제 세력균형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남한의 방어를 위해 전쟁 참여를 신속하게 결정한
이유는 국제연합(UN)이 승인한 경계 38도선을 넘은 북한의 남침이 미국에게는 <집단안보체제>라는
전체 구도(국제질서)가 도전받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연맹>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연합(UN)> 창설은 그야말로
<집단안보체제>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제 1.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계인 모두는
지구에서 더 이상의 참혹한 전쟁비극은 없어야 한다며, 따라서 어떠한 형태의 침략전쟁도 불법으로
간주하고 이를 어기는 국가에 대해서는 다른 나머지 국가들이 합심하여 (자동적으로)처절한 응징에
나서야 한다며, <국제기구(국제연맹, 국제연합)> 창설을 통해 약속했던 것입니다. ... 그리고 이것이
국제기구를 통한 <집단안보체제>의 개념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 그렇다면 왜 아시아에서는
<나토(NATO)>와 같은 집단안보 체제가 구축되지 못했을까? ~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지난 글에서 말했듯이, 아시아에서 안보 동맹 체제는 (미국-일본), (미국-한국), (미국-대만), (미국-태국),
(미국-호주) 처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개별적인 양자동맹(쌍무동맹) 관계만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다같이 함께 참여하는 <다자안보체제>가 구축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 물론
<시토(SEATO)> 라는 동남아시아 집단방위 기구가 존재하긴 하지만, 여기엔 한국과 일본, 대만이
빠져있기 때문에 사실상 ‘다자안보기구’로써의 기능은 거의 작동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아시아에서는 나토(NATO)와 같은 서방자유진영의 다자 안보체제가 형성되지 못했는데,
그 대표적 이유로 일본에 대한 아시아 주변국들의 반감 및 거부감이 지적됩니다. 아시아 국가들
입장에서는 전범국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도 없는 상태에서 일본에게 큰 지분이 배분되는
<아시아 집단안보체제> 구축에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던 건 당연했습니다. 여기에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다자안보체제에 참여하려는 뜻이 별로 없었다는 점도 중요한 대목입니다.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미국에게 아시아 집단안보체제의 참여는 실익측면에서도
그렇게 매력적인 이벤트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 냉전시기 미국에게 중요했던 지역은 유럽이었으며,
조지 캐넌의 말처럼 유럽이 어느 쪽과 동맹을 맺느냐에 따라 국제적 <세력균형>의 판도가 달라질
것을 미국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미국에게 아시아는 문화적 수준이나 동질성이 매우
낮은 지역으로 인식되었고, 이러한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아시아 집단안보체제>
구축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 대신 아시아는 공산세력의 팽창을 막기 위해
일본 하나만 제대로 키우면 된다는 생각이 그 당시 미국의 세계대전략(Grand Strategy) 이었던
것입니다. ~ ~ 하지만 냉전이 끝난 지금의 동아시아 질서는 중국의 부상과 함께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진행 중입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전략적 유연성 & 역량기반 전략> 이라는 미국의 대전략(Grand Strategy)
변화는 해외 주둔 미군부대와 동맹국의 안보이익 범위가 전 지구적으로 넓어짐으로써, 동맹국들은
이제 미국과 안보이익을 함께 공유(?)하는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한 상황입니다. ~ 하지만 말이
안보이익 ‘공유(?)’지 실질은 미국이 원하는 지역안보에 동맹국들도 함께 동참해야(ex. 해외파병)
한다는 묵시적 강제성이 내포된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따라서 주일미군, 주한미군의 역할은
이제 일본과 한국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얽매인 안보자산이 아닌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동맹국의
군대인 자위대, 한국군 등은 <포괄적 동맹관계>하에서 전 지구적 안보에 미국과 함께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 다만 일본은 군대가 헌법상(9조) 제약에 걸려있고, 호주는 군사적(세계 군사력)
측면에서는 20위 수준으로 약소국에 가까우며 ~ 20위권 밖에 있는 태국이나 필리핀 등의 동남아
국가들에 비하면, 미국에게 한국군의 대전략적 가치는 상당히 우수합니다. ~ 한국은 세계 7위의
군사강국으로써 전장에 즉시 투입가능한 잘 훈련된 대규모 지상군 병력체계와 효율적 해공군력을
갖춘 국가입니다. ... 따라서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국들 중에 한국은 군사안보역량이 가장 뛰어난
국가라고 할 수 있으며 ~ 노무현 정부시절인 2005년 미국이 우리에게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강력히 요구한 이유도 바로 이러한 한국군의 즉각적 전투능력과 잠재력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09년 출범한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라는
미국의 새로운 대전략(Grand Strategy)을 발표합니다. ... 미국 외교의 중심축을 아태(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것인데, 그동안 중동(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지역에 주로 집중되었던 미국의
외교 및 군사안보 역량을 아시아지역으로 이동시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실질은 <중국 견제>
였습니다.

냉전 종식 후, 일극(pax americana)의 주체로써 많은 비용을 지출해가며 세계경찰 노릇을 하던
미국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그동안 세계경찰을 하면서 소요됐던 비용에
더해 천문학적 비용을 추가적으로 지출하게 됩니다. 여기에 중국의 부상(특히 군사력 질적 증강)은
미국의 대전략(Grand Strategy)을 수정.보완하게 만드는데, 그것이 바로 동맹을 활용하여 비용을
최대한 줄이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것입니다. ~ 그중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나토(NATO)와 같은
<아시아 집단안보체제(다자동맹)>인 것입니다. ... 하지만 앞서 보셨듯이 아시아 국가들의 일본에
대한 반감 때문에 이는 당장 성사되기는 어려웠고, 대신 미국이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전략이 바로 <소다자 동맹체제>였던 것입니다.

◆ 중국(북한 포함) 견제를 위한 미국의 ‘소다자 동맹체제’
(1) 동북아 지역안보 - (미국, 한국, 일본)
(2) 동남아 지역안보 - (미국, 일본, 호주)
(3) 인도양 지역안보 - (미국, 일본, 인도)

신속성과 정확성이 생명인 군사안보 분야에서 이러한 <소다자 동맹체제>가 효율적으로 운영되려면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가 바로 <정보공유 및 교류 >입니다. ... ‘동북아 지역’의 소다자 동맹
구축을 위해 오바마 대통령이 정권말기(2016년)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전략(Grand Strategy)에
따라 강력히 추진했던 정책 중 가장 큰 성과가 바로 <지소미아(GSOMIA)>라고 하는 한.일간 군사
정보보호협정 이었던 것입니다. ...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대전략(Grand Strategy)은 트럼프 정부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트럼프 정부가 내놓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라 오바마,
아니 그 이전 정부부터 조금씩 수정되고 보완되면서 이어진 미국 대전략(Grand Strategy)의 아주 큰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미국을 보면 ... 동쪽으로는 대서양, 서쪽은 태평양으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은 캐나다, 남쪽은 멕시코라는 우방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지리적 이점은
그 어떤 나라도 미국 이라는 나라를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 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 세계 최강의 해양세력 미국,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미국이
지금 나토(NATO), 독일, 일본, 한국 등 최고의 동맹국들을 상대로 엄청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우리에게는 주한미군 감축 및 철수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참고): 작년 8월 발효된 ‘국방수권법’은 2019년 한해를 기준으로하기 때문에 ...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말까지 결심한다면, 주한미군 숫자를 6,500명 감축하여 2만 2,000명 수준으로 만드는
것은 가능합니다. <주한미군 순환배치> 계획에 따라 내년(2020년) 3월 말까지는 반드시 한국을
떠나야 하는 미군부대가 있으며, 그 떠난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다시 한국에 들어와야 하는 새로운
미군부대가 있는데,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안에 한국에 들어올 새로운 미군 부대를 지정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그냥 끝이 납니다. 그럼 현재 2만 8,500명 수준인 주한미군 숫자에서 마이너스(-)
상황만 발생하게 되는 것이죠. 한마디로 주한미군이 자동적으로 감축된다는 것입니다. ~ 따라서
미국은(트럼프) 어쩌면 이 부분을 이번 지소미아(GSOMIA) 연장문제와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위한
‘협상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지금까지 보셨듯이, 주한미군 감축이나 이동 및 역할 변화는 미국의 세계대전략(Grand Strategy)
하에서 움직이는 부분이므로 우리의 외교력이 발휘되기는 어려운 영역입니다. 더구나 ‘지소미아’는
<소다자 동맹체제>라는 미국 대전략의 핵심이었습니다. ~ 결국 ‘지소미아’ 문제는 우리 외교력을
넘어선 <미국 대전략>에 속한 문제였기에 저는 개인적으로 현 정부가 너무 성급했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지소미아 문제가 원상복구 되지 않는다면, 그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돈의 문제는 다릅니다. 외교력은 이럴 때 발휘하는 것입니다. 최근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한국에게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요구는 일단 미국이 명분 하나를 얻고 출발하는 셈입니다.(한국은 이제 잘사는 나라다!)
하지만 현재 트럼프 정부의 요구는 아무리 생각해도 비상식적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을 상식선, 이를테면
15~20억 달러($) 수준의 액수로 낮춰 우선적으로 협상테이블에 올려놓고 ~ 여기서부터 협상을
진행하되, 협상과정에서 한국 측의 요구, 예를 들면 ~ 미사일 사거리 지침을 없애거나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하여 우라늄 농축을 현행 20%에서 30%이상으로 할 수 있게끔 요구하는 것입니다.
즉 줄건 주되, 최대한 우리도 주는 부분을 상쇄시킬 정도의 군사.경제적 이득을 요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미국의 대전략 범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 우리가 외교력을
얼마나 잘 발휘하느냐에 따라 결과 또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난 글(1~4편)에서 보셨듯이 ~ 미국이 일본을 다루는 방식을 보면 느끼는 점이 참 많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 미국입장에서는 한국과 일본에 과연 어떤
성향의 정부가 들어서는 게 이득일까? 좌파적인 정부일까, 우파적인 정부일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아마도 ~ ~ ~ <“미국이 다루기 쉬운 정부”>가 답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됩니다.
아니 역사적으로 항상 그러했습니다. 반면 동맹국 입장에서 트럼프 정부는 <예측하기 힘든 정부>
입니다. ~ 동맹을 다루는 방식이 과거의 전통적 방식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해고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트럼프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 어쩌면 앞서
얘기했던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가 현 트럼프정부 내에서 활발히 작동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예측하기 힘든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황당한 수치의 방위비 분담금 요구도 트럼프 정부 내 <비대칭적 상호관계의 경기>가 하나의
원인 제공을 했을 수도 있다는 개인적 추측을 해봅니다.

지난 글(4편-일본의 대미추종과 자주파)에서 얘기했듯이 현 일본 총리 아베의 외조부였던
기시 노부스케는 ‘강성 자주파’ 였습니다. ... 현재 겉으로 보여 지는 아베총리의 모습은 적극적
대미추종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아베의 내면에는 외조부 기시의 정신(자주파)이
아주 강렬하게 착근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평화헌법(9조) 개정으로 정상적 군대 갖기에서
단순하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의 혼이 아베에게 그대로 이어져 미국과의
종속관계를 벗어나 진정하고도 독립적인 군국주의로의 회귀의 염원이 아베의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 그래서 동아시아 안보질서의 가장 큰 변수는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이라 생각됩니다. ... 이는 현실적인 문제로도 도미노처럼 이어집니다. ~ 평화헌법 개정은
연이어 ‘미.일 안보조약 개정’으로, 다시 ‘한.미 안보조약 개정’으로 ... 그리고 미국의 세계대전략 중
하나였던 <소다자 동맹체제>와 이러한 변화는 중국, 러시아, 북한 등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 결국 동북아 전체를 뒤흔들 대형 사건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바로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글을 쓰면서 참고했던 <'결정의 본질'>이라는 책에 나왔던 문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 결정의 궁극적인 본질은 제3자가 이해할 수 없다.
사실, 결정하는 사람 자신도 모를 때가 많다. 의사결정 과정에는 가장 깊이 관여한
사람조차도 알 수 없는 어둡고 혼란스러운 부분이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 존F. 케네디 >

< 나는 공직에 참여하지도 않고 역사를 기록하는 지식인과, 생각하지도 않고
중대한 결정에 참여하는 정치인을 만난 적이 있다. 전자는 항상 일반적인 원인을 찾는
경향이 있는 반면, 후자는 일관성이 없는 일상을 살면서 모든 것이 특정 사건 탓이고
자신이 잡아당기는 밧줄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둘 다 세상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 알렉시 드 토크빌 >
============




[@ 사상, 이념, 이데올로기(Ideologie) ... 어떤 단어를 사용하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건 가치관이 개입되는 글을 쓸 때면 평범했던 글자 하나와 단어 하나도 어느새
거대한 빙산으로 바뀌어 비교적 짧은 구절하나 심는 작업도 마치 썰매개가 그 큰 빙산의 무게를
짊어지고 극한의 추위 속에서 수십, 수백키로를 달려 구토 직전의 노동(뜀박질)을 체험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면은 용암이 분출하듯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올라
온 몸의 신경을 타고 밖으로 그 열기를 내 뱉습니다. 이렇게 극저온의 껍질과 극고온의 내면을 오고가며
어느 정도 글이 완성될 즈음엔 정작 내 정신은 어느 온도에 맞춰야 안정이 될까 불안하기도 합니다. ...
글을 마무리 하며 모두분들이 각자 평안함을 느끼는 적당한 온도를 찾기를 바랍니다.
이와 더불어 단순한 사상의 기능공이나 가치관의 숙련공이 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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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글 주시는 분들마다 ~ 한분 한분 고맙다는 답글을 하고 싶지만
그럴수록 스크롤 압박만 더 커져 다른 분들의 불편이 우려됩니다. 다만
주시는 응원글 아래 투명하게 "고맙습니다"라는 답글이 달려있는셈 쳐주시면
저도 마음이 편할것 같습니다. ~

◆ 또 하나의 냉전, 한.미.일 관계와 그 이상의 경계에서 - (4) 국제 정치편 [by. 물파스]

(@ 한일 간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뜻하는 '지소미아(GSOMIA)' 종료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입니다. ~ 한국과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치밀한 수싸움을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과 미국은 각각 총선과 대선이라는 본격적인 선거모드에
돌입한 상황입니다. ~ 북미간 비핵화 협상 또한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미국이 왜 그렇게 지소미아 파기에 대해 우려하는지,
미국이 왜 그렇게 황당한 수치의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하는지 ... 이에 대한 근본적 이유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 분량이 너무 많아 이야기는 5편으로 나눠서 게시물이 새로
업데이트 될 때마다 한 편씩 올려볼 생각입니다. ~ 아래는 도움 받은 자료와 각 편마다 들어있는
중심내용을 소개한 것입니다.)

<@ 도움 받은 자료들 >

(국제분쟁의 이해/ 조지프 나이/ 한울 출판)
(거대한 체스판/ Z.브레진스키/ 삼인 출판)
(포스트콜로니얼/ 고모리 요이치/ 삼인 출판)
(일본 전후 정치사/ 이시카와 마스미/ 후마니타스 출판)
(결정의 본질/ 그레이엄 앨리슨, 필립 젤리코/ 모던아카이브 출판)
(인간.국가.전쟁/ 케네스 왈츠/ 아카넷 출판)
(냉전의 역사/ 존 루이스 개디스/ 에코리브르 출판)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 이용인, 테일러 워시번/ 창비)
(전환시대의 논리/ 리영희/ 창비)
~ 그 외 한국은행, KDI, 국회 등

(1) 경제편 - 일본의 경쟁력과 위기
(2) 국제정치 - 패전국 일본에 대한 GHQ 점령초기 상황
(3) 국제정치 - GHQ 점령기의 일본 신헌법 제정과정과 자민당 탄생과정
(4) 국제정치 - 일본의 대미추종과 자주파 그리고 신(新)미.일안보조약
(5) 국제정치 - 미국의 세계대전략(Grand Strategy)의 변화 과정과 동맹(alliance)의 의미
~~~~~~~~~

1편: 지난 게시물중 <반일 불매운동 근황>이라는 게시물에 올려져 있습니다.
2편: 지난 게시물중 <1991년, 인터넷의 발명과 인터넷 브라우저 전쟁>이라는 게시물에 올려져 있습니다.
3편: 지난 게시물중 <국민이 묻는다 참가자들>이라는 게시물에 올려져 있습니다.
==========


[◆ 또 하나의 냉전, 한.미.일 관계와 그 이상의 경계에서 - (4) 국제 정치편 ]
- 일본의 대미추종과 자주파 그리고 신(新)미.일안보조약

<기시 노부스케>는 총리에 오르자마자 가장 먼저 <외교>에 힘을 쏟았습니다. ... 1957년 5,6월
동남아시아와 미국을 방문했는데, 특히 미국 방문에서는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미일 신시대>를
주창하며 공동성명을 발표합니다. 당시 기시의 미국 방문의 실제 목적은 요시다 정권시절 체결했던
<구(舊)미일안보조약>을 개정하는 것이었습니다. ... 오늘날 미일 관계를(특히 안보관계) 제대로
이해하려면 기시 노부스케가 미국과 체결한 <신(新)미일안보조약>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시정권 때 개정된 <신(新)미일안보조약>이 지금까지 이어져오며 오늘날 미일안보관계의 기초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알려진 ‘기시 노부스케’의 이미지는 요시다 시게루와 마찬가지로 대미 추종적이었습니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일본의 보수합동, 즉 <자민당>의 탄생배경에는 미국 CIA의 정치자금 지원도
큰 부분을 차지했는데, 이에 대해 미국의 역사학자 ‘마이클 샬러(Michael Schaller)’는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합니다.

“미국무차관보인 로저 힐즈먼(정보 담당)에 따르면, 1960년대 초까지 CIA에서 일본 (보수)정당과
정치인에게 제공된 자금은 매년 200만~1,000만 달러 수준이었다.“ - 마이클 샬러(Michael Schaller)

1960년대 초, 미국 CIA가 자민당을 비롯한 일본 정계에 자금 지원을 했다는 사실은 훗날 미국
정부문서 공개와 함께 1994년 10월 9일자 ‘뉴욕 타임즈’ 보도를 통해 모든 내용이 명백한 사실로
밝혀집니다. ... 이렇듯 자민당 창당초기에 미국 CIA의 자금 지원이 있었다는 사실은 기시 내각이
<대미 추종적> 이미지로 각인되기에 충분한 근거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기시 노부스케는 ‘하토야마 이치로’, ‘이시바시 탄잔’처럼 강성 <자주파(자주노선)>였으며, 동시에
일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단히 실리적인 전략가이기도 했습니다.(@ 쇼와시대 요괴)

이시바시 내각에서 외무상을 지냈던 기시 노부스케는 요시다 시절의 <구(舊)미일안보조약>이
미국에만 유리한 조약이라 생각했습니다. ... 형식상 GHQ(연합국총사령부) 점령은 끝난 상태였지만
실질은 여전히 미국이 일본을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기시의 의식 속에 계속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기시 노부스케에게 <구(舊)미일안보조약의 개정> 문제는 기시 본인의 당위적 신념과도
맞닿아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시 노부스케의 회고록을 보면 우리는 이에 대한 기시의 신념의
농도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

[ Q: “3년 5개월이라는 집권기간 동안 기시 내각의 전체 업무를
10으로 했을 때, ‘안보조약 개정’ 문제는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했었나?“ ]

[ A: “글쎄 아마도 7이나 8정도 비중은 차지하지 않았었나 생각된다.
하토야마나 이시바시 정권에서도 부분적으로 안보조약 개정을 미국에
요구했었지만, 그때마다 미국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을 상대로
안보조약을 바꾸는 일은 상당한 용기와 추진력과 인내가 필요했다. 뿐만 아니라
야당의 견제와 여당(자민당)의 당내 의견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 - (기시 노부스케 회고록 中)

앞서도 보셨겠지만 <자민당>은 자유당이라는 대미 추종의 요시다 진영과 자주파인 하토야마의
민주당이 모여 보수합동으로 탄생한 정당입니다. ... 그래서 ‘구안보조약 개정’처럼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정책이 등장할 때마다 이에 반대하는 의견(대미 추종파)이 상당히 많았던 상황입니다.
그럼 이쯤에서 기시 노부스케의 정치적 사명이자 당위적 신념인 <신(新)미일안보조약>에 대한
내용을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기시 노부스케는 <헌법 9조>와 <구(舊)미일안보조약>을 개정해야만 미국과의 불평등한 관계, 즉
종속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헌법 9조>를 개정해야만 정상국가 수준의
군대를 보유하게 되고, 이러한 군사력만 뒷받침 되어준다면 안보조약 또한 편무적(일방적) 관계에서
<상호 방위>라는 좀 더 대등하고 쌍무적인 관계로 재정립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하지만
통합 사회당을 비롯한 좌파진영의 의석수가 1/3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개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며, 따라서 기시에게 당장 가능한 것은 <안보조약> 하나뿐이었던 것입니다.

기시 내각이 생각했던 <신(新)미일안보조약>은 ‘구안보조약’에 비해 분명 일본에 유리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 먼저 주일미군의 이동과 배치, (군사)행동에 대해 미일 양국 간 사전 협의를
의무적으로 하자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그 전까지 미국은 일본영토 내에서의 주일미군에 관한
그 어떤 부분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에 보고나 통보할 의무가 없었습니다. 이에 대한 좀 더 세밀한
내용은 <구(舊)미일안보조약>의 실무조항 격인 <미일행정협정(1952년 체결)>을 살펴보면 됩니다.

@ 일본은 미국에 대하여 안보조약 제1조의 목적 수행에 필요한
시설과 구역(미군기지) 사용을 허가한다.

@ 일본과 미국은 시설과 구역을 일본에 반환할 수 있고, 또는
새로운 시설과 구역을 제공할 수 있다.

< “ ~ 할 수 있다.”> ... ‘행정협정’의 내용을 보면 조항의 상당부분이 <“ ~ 할 수 있다.”>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는 일종의 ‘가능성’을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미국의 의지(선택)>에 따라
양국의 권리와 의무가 최종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원하면 일본은 언제든지 미국에
일본영토, 즉 미군 기지를 제공해야 하며, 기지(영토)반환 또한 미국이 원해야만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행정협정>에는 주일미군의 ‘주둔권리’와 그 이외의 주일미군에 관련된 다양한 실무적
내용들이 상당히 디테일하게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시는 우선적으로 큰 틀의 <안보조약>을
개정한다면 이후 <행정협정>은 수월하게(일본에 유리하게) 풀어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기시는 본인의 생각대로 행정협정까지 마무리가 잘 된다면 대담하게도 <주일미군 철수>까지
가능하리라 생각 했습니다.

[ “주일미군을 철수시키고, 긴급사용 시 필요한 미군 기지만 제공할 것을
제안하였다. 10년 후 오키나와와 오가사와라 군도 내 권리와 권익을 일본에게
반환하도록 원대한 제안도 하였다.“ - (기시 노부스케 회고록 中) ]

기시의 적극적인 미일안보조약(구안보조약) 개정의지에 결국 미일 양국은 <구(舊)미일안보조약>을
다시 검토하기로 합의를 합니다. ... 미국은 일본의(기시내각) 요구를 일정부분 수용하는 조건으로
핵심내용 하나를 <신(新)미일안보조약>에 추가합니다. 그것은 주일미군이 일본 이외의 ‘극동지역’
방위에도 포괄적으로 개입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는 일본이 미국의 세계전략(동아시아 전략)에
아주 깊숙이, 그리고 자동적으로 편입하게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 냉전체제 상황 하에서 일본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국과 연계된 전쟁(열전)에 자동개입 함으로써 동아시아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문제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여기에 기시 노부스케의 간절한 자주노선 의지는
야당 및 반대 측 의견을 모두 무시하고 <신(新)미일안보조약>을 강력하게 밀고나가게 했습니다.
[@ 기시의 ‘자주노선 의지’란 결국 <‘군국주의’의 회귀>에 대한 기시 노부스케의 간절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60년 1월 6일 미일 양국은 <신(新)미일안보조약>에 대해 잠정적 합의를 하고, 19일 워싱턴에서
공식적으로 안보조약 개정에 대한 조인을 하게 됩니다. ... 새로운 안보조약의 비준은 큰 문제없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당시 자민당의 중의원 의석은 288석으로 압도적 다수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신(新)미일안보조약>은 기시의 의지가 상당부분 반영되어
마치 일본에 유리하게 개정된 일종의 외교적 승리로 비춰졌습니다. 그러나 <신(新)미일안보조약>의
실질을 따져본다면 ~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의 세계전략(동아시아 전략)에 일본이 편입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 전역에서 소위 <안보투쟁>으로
이름 붙여진 ‘안보조약 개정저지 운동’이 불길처럼 타오르게 됩니다.

사회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에서는 신안보조약이 체결되기 이전부터 쉬지 않고 안보조약 개정의
위험성을 국민들에게 알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59년 3월부터 사회당과 한국의 민노총격인
<총평(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 그리고 <원수협(일본의 대표 반핵단체.전국조직)> 등의 130여개
단체가 <안보조약개정저지국민회의>를 결성하게 됩니다.
[@ 총평(1950년 7월 12일 결성): 일본의 노동운동은 ‘총평’이전, 즉 패전 이후 주로 공산당이
주도권을 잡고 활동해왔었습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상당수 조합 및 조합원들이 ‘민주화동맹’을
맺고 새로운 노동조직을 결성했는데 그것이 바로 ‘총평(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입니다. 더불어
반공적 성격이 강하다보니 총평 발족 당시 미국정부와 GHQ, 그리고 미국의 최대 노동연합인
<미국노동총연맹(The American Federation of Labor, AFL)> 등의 지원이 많았었습니다. ]

<신(新)미일안보조약>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기시정권의 예상을 벗어나 전국적으로 불타올랐습니다.
특히 학생과 지식인층이 대거 참여하면서 <안보투쟁(반대운동)>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는데,
이는 결국 <반(反) 기시정권> 운동으로 전이됩니다. ... 그러다가 1960년 6월 15일 <안보투쟁>은
정점에 다다릅니다. ~ 도쿄대 여학생 ‘시라카바 미치코’가 시위과정에서 사망을 한 것입니다.

[◆ 전학련(전일본학생자치회총연합) 국회 내부로 난입.
도쿄대학 여학생 ‘시라카바 미치코’ 사망. ~ 부상 4백 명, 경관 최루탄 사용.
6.15 행동일 저녁, 국회 데모에 나선 전학련 주류파 약 7천여 명은 중의원 뒷문으로
몰려갔다. 국회 구내에서 경찰관과 부딪쳐 난투극을 벌였다. 전학련 주류파 약 4천명은
국회 정원을 점거하여 항의집회를 계속했다. - (1960.6.15. 아사히 신문) ]

‘시라카바 미치코’의 사인은 흉부 압박과 뇌출혈로 판명되었고 ... 미치코의 사망은 불에 기름을
부은 듯, 그동안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까지 결집하게 만들었습니다. ... 3일 뒤인
6월 18일, 일본 정치역사상 최대 규모인 50여만 명의 시위대가 국회와 수상 관저를 둘러싸고
안보조약 개정 저지와 기시정권 타도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결국 <신(新)미일안보조약>은 다음날인
6월 19일 오전 0시, <“참의원이(중의원 가결 후) 30일 이내에 의결하지 않을 경우 중의원 의결을
국회의 결의로 간주한다.”>는 ‘예산과 조약에 관한 헌법 규정’에 의해 자동 승인됩니다. ... 더불어
기시 내각은 비준서 교환을 끝낸 6월 23일 총사퇴합니다. ~ 기시 정권의 사퇴로 일본 정치사에서
가장 뜨겁고 격렬했던 <안보투쟁>또한 차갑게 식어버립니다.

<안보투쟁>으로 전학련과 총평은 자신들의 요구사항 중 하나였던 ‘기시내각 타도’에는 성공했으나,
투쟁의 본질인 안보조약 개정 저지에는 실패합니다. 그리고 이때 개정된 <신(新)미일안보조약>이
오늘날까지 미일 안보관계의 기초로서 계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 1960년 <안보투쟁>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세력은 바로 전학련에 속해있던 <분트(Bund)>라는 조직입니다. 독일의 국채를
뜻하기도 하는 <분트(Bund)>는 ‘연대’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전후 일본에서는 공산주의자 동맹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였습니다. ~ 전학련은 GHQ 점령기 때인 1948년 9월, 일본 전국의 국공립 및
사립 145개 대학의 학생자치회가 결성한 연합 조직으로, 정식명칭은 <전일본학생자치회총연합>
입니다. 초창기 전학련은 일본 공산당의 강력한 지휘아래서 한국전쟁 반대와 같은 반전 및 평화운동
등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1955년 이후부터는 학생들 보통의 요구, 즉 <일상성 투쟁>을
시작하면서 독자적 조직으로 성장해 나갑니다. 그리고 앞서 보셨듯이 1960년 <안보투쟁>에서
운동(투쟁)의 정점을 찍는데, 안보투쟁 직전 시기에 전학련 학생들이 일본 공산당과 결별하면서
<분트(Bund)>를 조직합니다. ... 국회 의석을 가진 정당과 결별했으니, 당연히 학생들로만 조직된
분트(Bund)의 자금사정은 상당히 어려워졌습니다. 거리로 나가 투쟁기금을 모으기도 했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재계가 나서서 전학련(분트Bund)에 자금을 지원합니다. ... 만약
당시 전학련에 외부의 자금지원이 없었다면 1960년 그 뜨거웠던 안보투쟁도 그냥 흐지부지 끝났을
겁니다.

전학련(분트Bund)에 자금을 지원한 재계의 핵심 인사로는 <이마자토 히로키(일본정공 회장)>와
<나카야마 소헤이(일본흥업은행 부회장)>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보수합동(자민당 탄생)을 종용했던
‘경제동우회’ 창립 멤버들이며, 경제동우회는 일본의 대표적인 대미추종 모임입니다.(경영자 그룹)
이 때문에 분트(Bund)가 자금걱정 없이 <안보투쟁>에 전념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자금지원의
최종적 배후에는 미국이 크게 관여하고 있었다는 견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추론에는 많은
의문점이 있습니다. 우선 <신(新)미일안보조약>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거의 대부분 반영되어
미국 입장에서는 만족할만한 조약이었습니다. 더구나 기시 정권의 <재군비(자위대 강화)> 의지는
일본 산업계에도 상당한 기회(기업성장)가 될 거라 예상됐습니다. 따라서 미국이나 일본재계가 굳이
기시 정권을 반대할 그 어떤 합리적 이유는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보조약
개정 반대와 기시정권 타도를 외쳤던 <전학련(분트bund)>에 미국은 자금지원을 용인했던 것입니다.

~ 왜일까?

◆ 앞서 자민당의 탄생배경을 살펴보았듯이, 전후 일본보수를 상징하는 대표적 보수정당이 바로
<자민당>입니다. ... 하지만 자민당을 분해해보면 그 속에는 <대미추종>의 요시다 진영(자유당)과
<자주노선(자주파)>의 하토야마 진영(민주당)으로 나뉘며 ... 오늘날까지도 자민당 당내에는 여러
<파벌(계파)>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안보투쟁 당시의 기시정권은 강성 <자주파>였습니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려면 <재군비(자위대 강화)>는 반드시
필요했던 일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라는 견고한 ‘틀(Frame)’ 안에서만
성립되는 논리입니다. ~ 그런데 기시는 일본만의 독자적인 <자주노선(군국주의 회귀)>을 미국이
만든 ‘틀(Frame)’ 바깥에서 추진하려 했던 것입니다. ... 더불어 기시의 당내 기반이나 관료 장악력이
미국의 예상보다 강해서 정권의 내부 분열을 이용해 붕괴시키려는 전략은 큰 효과가 없을 거라
예측되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바로 <반정부 시위>같은, 주로 독재국가를 무너뜨릴 때
활용되는 방법이었습니다. ... 그리고 재계(경제동우회)를 통한 외부자금 지원이 기시 정권 붕괴의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안보투쟁 이후, 기시 정권이 물러난 자리에 <‘이케다 하야토’ 내각>이 들어섭니다. 앞서 계속해서
언급했지만, 자민당에는 <대미추종 vs 자주파(독자노선)>라는 정치독립과 종속 성향으로 구분되는
파벌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당인파 vs 관료파>라는 소위 <출신별 파벌>까지 얽혀있습니다.
물론 일본의 사실상의 파벌(계파)을 언급할 때는 한국의 동교동계(김대중), 상도동계(김영삼), 친노,
친박 처럼 인물중심의 파벌을 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일본의 파벌을 구분할 때는 먼저
인물중심의 계파를 따져본 후, 여기에 대미추종과 자주노선, 그리고 출신별 파벌을 더해야 합니다.
출신 파벌의 하나인 당인파는 처음 정치를 ‘정당’에서부터 시작한 사람들을 뜻합니다. 반면 관료파는
관료출신의 정치인들을 의미하는데, 기시 노부스케(56.57대 총리), 이케다 하야토(58.59.60대 총리),
사토 에이사쿠(61.62.63대 총리) 등이 바로 관료파 정치인들입니다. ... 이 때문에 기시의 후임으로
총리 자리에 오른 <이케다 하야토>는 당시 정치부 기자들로부터 “기시의 아류” 라는 평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케다는 기시와는 정반대의 정책을 추진합니다. ... 기시와 같은 관료파임에도
개헌을 포기한다는 태도를 취하며, ‘안보(자주노선)’ 측면보다는 <“10년 안에 국민소득을 2배로”>
같은 슬로건을 내세우며, 과거 <요시다 노선>처럼 정책의 방점을 <경제>에 찍습니다.(@ 대미추종)
기시 정권하에서 안보이슈로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국민들에게 ‘경제’에 방점을 찍은
이케다의 신정책은 성공적이었고, 이에 뒤질세라 사회당 또한 <“4년 안에 국민소득 1.5배”>라는
슬로건으로 맞받아치며 대응합니다. 이로써 1960년 뜨겁게 타올랐던 ‘안보투쟁’의 열기는 이케다
정권에서 시나브로 빠르게 식어버립니다. ... 기시와 같은 파벌(관료파) 임에도 불구하고 이케다는
‘자주노선’이 아닌 <대미추종>을 선택한 것입니다. [@ 이케다 내각이 끝난 후, 1964년 11월 9일
관료파였던 ’사토 에이사쿠‘가 총리(수상) 자리에 오르는데, 이때 사토 내각은 이케다의 “대미추종”을
과감히 버리고, 기시 때와 같은 “자주노선”을 택합니다.] ... 참고로 이케다 내각이 들어설 당시의
미국의 생각이(수뇌부 분위기) 어땠는지는 미국의 역사학자 마이클 샬러(Michael Schaller)의 저서
‘미일 관계는 무엇이었나?’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 1960년 6월 6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CIA 대표 에모리는 기시가 사임하고,
가능하면 요시다가 다시 복귀해야 한다고 말했다. CIA는 자민당에 대한 재정적 영향력을
이용해 기시를 대신할 좀 더 온건한 보수 정치가로 새로운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후 맥아더 주일 대사(맥아더 2세, 맥아더 장군의 친조카)는 요시다와 만난 자리에서
기시를 대신에 수상(총리)을 제의했으나, 요시다는 본인 대신 ‘이케다’와 ‘사토’를 추천했다.
6월 21일 이케다는 맥아더 대사를 찾아가 기시의 뒤를 잇고 싶다며 간절하게 부탁했고
맥아더 주일대사도 이케다가 미일 협력의 충실한 신봉자이며, 가장 뛰어난 수상 재목이라
평가했다. - (마이클 샬러, 미일 관계는 무엇이었나? 中) ]

샬러의 책을 보면 ... 1960년대 까지도 백악관, CIA, 주일대사 등 미국의 핵심 기관 모두에게는
대미추종에 가장 적합하고 적극적이었던 요시다의 향수가 오랫동안 남아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같은 파벌임에도(관료파) 자주노선이 아닌, 대미추종을 선택했던 이케다의 권력욕과 미국의
요시다 향수가 더해져 <‘이케다 하야토’ 내각>이 탄생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일본을(전후 일본) 정확히 이해하려면 <자민당 탄생 과정과 정치 파벌(계파)>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전후 일본을 지금까지 움직여온 사실상의 권력주체가 바로 자민당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 <요시다 시게루 - 하토야마 이치로 - 기시 노부스케 - 이케다 하야토>로 이어지는
일본의 핵심 정치인들을 언급했던 이유는 이들이 자민당의 탄생 과정과 대미추종, 자주파(독자노선),
관료파, 당인파 같은 일본 정치파벌의 역학관계를 가장 잘 설명해주기 때문이었습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해 소위 ‘평화국가’로 새롭게 태어난 일본은, 그 이후로 지금까지
대미추종과 자주노선을 수시로 번갈아가며 정권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 그러다가 1980년대부터
서서히 대미추종 파벌이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1990년대 후반부터 ‘기시 노부스케’와 같은 강성
자주파는 사라졌고, 선택적 대미저항과 대미추종이 계속됐습니다. ... 요시다 이후, 대미추종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줬던 대표적 사례는 1982년 11월 27일에 취임한 <‘나카소네 야스히로(71.72.73대)>
총리였습니다.[@ 선택적 대미저항은 미국과 적절한 타협을 하면서도 다른 부분(특히 안보)에서는
대미저항(자주적 성격)적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카소네 얘기를 하려면, 나카소네 이전의 총리였던 <스즈키 젠코(70대 총리)>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 1980년 7월 17일 일본 70대 총리로 취임한 <스즈키 젠코>는 대미추종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자주파도 아니었으며, 전반적인 대미 스탠스는 <선택적 대미 저항> 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총리 취임 후, 이듬해인 1981년 5월 미국을 방문한 스즈키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킬만한 매우 충격적 발언을 하게 되는데, 이때에 기자회견으로 일본 정계가 발칵
뒤집힙니다. ... <“미일 동맹에 반드시 군사적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라는 미국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괘씸한 발언을 한 것입니다. 이는 기시 정권 때 개정한 <신(新)미일안보조약>을 부정하는
발언으로 오해될 수 있었습니다. ‘미일 군사협력’ 이라는 명목 하에 일본 자위대가 미국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또 미국의 세계전략을(동아시아 전략) 위해 활용되는(자위대 파견 등) 것을 스즈키는
처음부터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불어 스즈키 총리의 최우선 외교과제와 외교 철학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우호관계 강화 및 아시아에서 일본의 정치적 입지강화> 였습니다.

[@ 미국과 관계를 악화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일본은 아시아 국가로서 이들 국가와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미국, 유럽, 또는 소련, 중국처럼 3국 혹은 4국으로 분리된 국제정세가
시작될 것이다. 일본은 아시아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아시아의 존경과 지원, 이해와 협력을
얻은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주장 및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아시아 외교 및 아시아
우호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외교의 최대 목표다. - (총리 스즈키 젠코. 일본 정치를 말하다 中)]

미국에서의 스즈키 발언이후, 일본 외무성은 국내외 언론들을 상대로 부랴부랴 수습하기 바빴고,
이 사태로 스즈키는 “안보문제를 전혀 모르는 무식한 수상(총리)” 이라는 이미지가 박혀버립니다.
앞서 <선택적 대미저항>이라고 했던 ‘스즈키 젠코’ 총리는 사실 <평화주의자>에 더 가까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스즈키 본래의 신념이 처음부터 ‘평화주의’는 아니었고 당시의 냉전질서가
그를 <평화주의자>로 이끌었다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많았습니다. 즉 외부요인에 따른 신념의
변화였던 것이죠. ... 그렇다면 당시의 냉전 상황은 어땠으며, 그로인해 일본이 느꼈던 중압감의
무게는 어느 정도였을까?

미국이 자신들의 압도적 군사력을 활용하는 보편적인 방법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입니다. ~ 하나는
전 세계 퍼져있는(65개국 800여 미군기지) 해외 미군부대를 활용하는 것이며(@ 여기서는 ‘주일미군’)
다른 하나는 동맹국의 군대를(자위대, 한국군 등) 활용하는 것입니다. ... 참고로 미국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자위대를 활용하고자 여러 번 시도했었습니다. 그때마다 ‘헌법 9조’를 근거로 내민
일본의 저항에 부딪혀 자위대 활용계획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 심지어 일본의 적극적 대미추종
파벌들조차 직접적 전투에 참여하는 자위대 파병(전투병)에는 거부감을 나타냈습니다. 평화적 재건
목적이나 의료 같은 전투 목적 이외의 파병에는 어느 정도 긍정적 의사를 내비쳤으나 ... 직접적인
전투병 파병에는 일본도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것입니다.

1970년대 말부터 소련은 오호츠크 해 인근에 원자력 잠수함을 배치하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1970~80년대는 냉전이 절정에 이른 시기였습니다. ... 당시 소련의 기술력이라면 오호츠크 해 깊은
바다 속에 숨어있는 잠수함에서 미사일을 발사하여 8천 킬로미터 떨어진 미국 본토에 핵미사일을
떨어뜨릴 수 있었습니다.(@ SLBM) ... 때문에 미국이 일본 자위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었던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 더불어 대미추종 파벌이 강세를 보이던 시기였기
때문에 미국은 자위대를 활용하고자 하는 속내를 계속해서 공공연하게 내비쳤습니다.
[◆ 미국을 포함, 전 세계가 가장 두려워하는 무기가(무기체계) 바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즉
‘SLBM’(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 입니다. ~ 사전포착이 매우 어려운(불가능에 가까운),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미사일공격 체계는 이동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공격지점에 대한 선택이 자유롭고,
더 중요한 것은 공격 후 재빨리 다른 곳으로 회피하여 생존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상대에게 본토가 선제 핵공격을 받는다고 해도, 바다 속의 핵전력(SLBM)은 그대로 살아남아
동일한 핵 보복이 가능한 체계이기 때문에(@보복공격 전력의 핵심!) ...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은
각각 상대의 이러한 SLBM 전력체계 때문에 서로를 쉽사리 위협하지 못했고, 따라서 공포의 균형
상태만을 생성했던 것입니다. 이를 소위 <'상호확증파괴(MAD, Mutual Assured Destruction)'>
이론이라고 합니다. ~ 상대가 나를 선제핵공격 한다면, 살아남은 나의 핵전력(SLBM)이 다시 상대를
공격하게 되고, 또 다시 상대의 살아남은 핵전력(SLBM)이 나를 공격하고 ~ ~ 이러한 쌍방 간의
상호적 공격의 반복으로 종국에는 모두가 전멸되는(파괴의 점진적 확대. 상호확증파괴) 상황까지
갈 수 있기 때문에, 쌍방모두에서 기계적인 핵억제가 일어난다는 이론이 ‘상호확증파괴’ 입니다.
결국 <상호확증파괴>가 성립되는 양국 간에는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는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그것을 실제로 증명했습니다. ... 참고로 현재 SLBM 체계를 완성한 국가로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이 있으며, 최근 북한의 SLBM(북극성3형) 발사 소식이 전해지자
그동안 다른 미사일 발사에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던 유럽과 미국이 유엔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 하는 등 ... SLBM 발사에는 상당히 민감해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속사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이나 지상에 배치된 핵무기는 감시(첩보)위성으로 비교적 쉽게 포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다 속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SLBM은 사전 포착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당시에 소련의 SLBM을 사전에 막고 싶었던 미국은 잠수함을 수색.탐지할 항공기가 절실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꼭 맞는 비행기가 바로 <P-3C>라는 ‘대잠초계기’였는데 ... 미국은 일본이 <P-3C>를
대량으로 구매해 오호츠크 해에 숨어있는 소련 잠수함을 찾아주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자위대 파병(전투병)처럼, 자칫하면 미.소 양강의 전쟁에 일본이 어쩔 수없이 휘말릴 수
있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 이러한 냉전 분위기 속에서 스즈키의 충격적 발언은 미국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심지어 미국은 ~ “스즈키는 총리 그릇이 아니다.”, “바보 같은 총리” 라는 거친 비난까지
쏟아냈습니다.

스즈키 이후 ... 1982년 11월 27일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일본의 71대 총리에 취임합니다.
취임 후, 두 달도 안 된 시점인 1983년 1월 17일에 나카소네는 미국을 방문하여 레이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습니다. 이렇게 서둘러 미일 정상회담을 추진한 이유는 스즈키 발언으로 심기가 많이
불편했던 미국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였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 워싱턴에 도착한 나카소네는
다음날 ‘워싱턴포스트’ 사주인 그레이엄 여사의 조찬모임에 초대됩니다. ~ 그리고 조찬모임에서
나카소네 총리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합니다.

<◆ “적군(소련)의 침공에 대비해 일본열도 전체를 큰 성벽을 세운 거대한 배처럼 만들겠다!”>

이것이 그 유명한 나카소네의 <불침항모(不沈航母)> 발언입니다. 공산주의 팽창을 막는 방파제,
즉 소련의 태평양 진출을 막기 위해서 일본열도 전체를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만들겠다는
의미인데 ... 물론 이 발언은 미국의 세계전략(동아시아 전략)에 일본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일종의 상징적 표현이었습니다. 또한 미국을 위한 일본의 ‘적극적 협조’는 단순히 말에서 그치지
않았고, 미국이 원했던 대로 나카소네는 ‘대잠초계기’ <P-3C>를 100기 이상 구입합니다. ... 이때
미국은 일본에게 일방적으로 <P-3C> 구입을 요구(강매)한 것은 아닙니다. 미국도 나름의 명분을
마련했습니다.

< “소련이 중동석유 운반 항로인 해상교통로(시레인.Sea Lane)를 공격할지 모르니까
일본이 P-3C를 대량으로 구매하여 시레인 방위를 책임지고 맡아줬으면 좋겠다.“ >

만약 당시 소련이 실제 일본을 공격하고자 했다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이면 충분했습니다.
결국 일본의 <P-3C> 구입은 일본을 방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미국의 안전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나카소네의 <불침항모(不沈航母)> 발언과 <P-3C> 구입은 스즈키 총리 때 쌓인 미국의 불신을
한 번에 씻어냈습니다. [@ 나카소네는 플라자합의로 엔고의 토대를 만든 인물이기도 합니다.]

<◆ “일본은 자신들의 돈으로 미국이 판매하는 무기(P-3C)를 구입해, 미국을 지키는데 사용한다!”>

나카소네의 대미추종 사례는 우리에게 <동맹(alliance)> 개념에 대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지역안보라는 명분과 우호적 동맹관계 유지를 위한 행위가 국익과 상충되거나 혹은 큰 효용이 없을
때에 과연 어떤 선택이 최선이며 바람직한 것인지 한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이후에도 일본의 대미 스탠스는 대미추종과 자주노선, 그리고 선택적 저항을
번갈아가며 정권을 이어갔는데 ... 총리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다케시타 노보루(74대), 선택적 저항 – (금융은 협력, 자위대 협력은 거절)
@ 미야자와 기이치(78대), 자주 노선 - (기본적 사항은 협조, 클리턴 정권에 대등외교 교섭)
@ 호소카와 모리히로(79대), 자주 노선 - (미일 동맹 보다는 다자 및 다각적 안보 중시)
@ 하시모토 류타로(82.83대), 선택적 저항 - (미국 국채 대량 매도를 희망)

@ 고이즈미 준이치로(87.88.89대), 대미추종 - (자위대 해외파견, 우정민영화 등 미국식 신자유주의
적극 도입)

@ 후쿠다 야스오(91대), 선택적 저항 - (아프가니스탄 육상자위대 파견거부,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당시 미국 금융회사에 대한 거액 융자 거부)

@ 하토야마 유키오(93대), 자주 노선 - (일본 오키나와 현 기노완 시에 있는 미군 군용 비행장
‘후텐마기지’를 오키나와 현 외부 이전과 동아시아공동체를 제창)

이후 ~ 간 나오토(94대), 노다 요시히코(95대), 아베 신조(96.97.98대) - 모두 대미 추종적 성향




[@ 다음 마지막 5편이 이번 지소미아 문제와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분량도 가장 많을거 같습니다. ~ 5편은 게시물중
최대한 한.미.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된 게시물에 올려보려 하는데, 만약 그런 게시물이 올라오지 않았다면
관련성이 적더라도 첫 게시물에 올려보겠습니다. ~ 지면을 너무 많이 차지하는것 같아 죄송한 마음입니다.
영자님께도 죄송합니다.]

부동산과 경제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