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형 페미니즘이여 지네를 거부하고 칸(Cannes Film Festival)에서 박수를 받아라]
(성은 상품화 하면 안 되는가? - 한국형 페미니즘과 여성가족부, 수많은 여성단체에서 도출되는
상식밖의 여러 문제들의 근본 원인은 바로 경직된 우리의 성문화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따라서
이야기는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게 될 것입니다. 물론 모두 저의 주관적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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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한국형 페미니즘 운동을 보면 지네가 보입니다.
지네는 절지동물에 속하고, 몸이 가늘고 길며 여러 마디로 이루어져있는데 ... 그 마디마다
한 쌍의 걷는 다리가 있어서 많은 발을 가진 동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지네의 이동(방향성)은
선두가 결정합니다. 선두가 가자고 하면, 아니 선두가 가는대로 나머지 발들은 따라갈 수밖에
없죠.(맹목적 추종) ... 선택권이 배제된 채 가치 없는 노동을 나머지 발들은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가야 합니다. 심지어 꼬리부분에 달린 발은 보행에 쓰이지도 않습니다. 보행과 같은 이동욕구마저
거세된 발은 더 이상 발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오직 존재(소속)감 하나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정말 만족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 ~ 그리고 더 중요한건 지네의 눈입니다.
홑눈, 즉 밝거나 어두운 정도만 감지할 수 있는 원시적 형태의 눈만을 지네는 소유하고 있는 것인데,
이렇게 ‘밝다와 어둡다’라는 이분법적 시선이 지네가 세상을 바라보는 한계인 것처럼 한국형 페미니즘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지네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에게 세상은 오직
“한국형 페미니즘에 좋은(동조) 것과 나쁜 것”으로 이분되어 이해됩니다.
이분법은 사태를 간단명료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독단과 독선에 빠질 위험이
상시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다양한 사고체계가 요구되는 공동체 사회에서는 수시로 경계해야할 위험한
사고방식입니다. 또한 이러한 이분법적 이해, 즉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는 시선에는 암묵적 순결강박의
의미도 내포하게 되는데, 한마디로 한국형 페미니즘은 전제부터 무결점상태이므로 누구라도 문제(오류)를
지적하면 그것은 곧 한국형 페미니즘에 “나쁜 것”이 되어버립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태어남은 신의
특혜를 받아 이미 ‘원죄(Original Sin)’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무결점의
순결강박은 선두의 방향성을 합리적 의심이나 논리적 검증 따위가 전혀 필요치 않는 ‘절대선(善)’으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때문에 선두는(선두의 방향) 항상 옳습니다. 그래서인지 의미 없는 노동을 반복하는
수많은 지네의 발처럼 한국형 페미니즘에 합류한 상당수의 여성들을 마주할 때면 그녀들에게서 알 수 없는
슬픔과 마음의 가난이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 왜 자꾸만 ‘한국형!’, ‘한국형!’ ... ”한국형 페미니즘“이라고 하는지
궁금해 하실까봐 먼저 해명을 한 후에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학계는 오늘날의 페미니즘(Feminism) 운동이 대략적으로 50여 분야로(혹은 그 이상) 그 유형이
상당히 복잡하고 다양화되고 있다면서 그 외연이 현재도 계속해서 확장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소극적 형태의 페미니즘 운동에서부터 상당한 급진적 운동으로까지 그 범주가 넓어지고 다양화되고 있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 정치경제적 평등, 사회적 평등, 남성거부(분리주의), ‘남성과 여성’이라는 시선 자체를 거부하는
퀴어(queer)운동, 페미니즘의 이론적 관심과 실천(행동주의),심지어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의 뜨거운 섹.스(S.ex) 까지도
거침없이 간섭하며 <"삽.입이 이루어지는 모든 섹.스는 강간이다!(앤드리아 드워킨.Andrea Dworkin)"> 라는
주장을 펴는 급진을 넘어 극단에 가까운 페미니즘 운동도 존재합니다. 이처럼 오늘날 페미니즘의 운동 변화는
그 종류와 다양성(복잡성), 급진성 등에서 오랫동안 페미니즘을 연구해온 학자들조차 뭐라 딱히 정의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이것은 페미니즘(Feminism)이다!"라는 선언적 구호만 외치면 페미니즘으로 통용되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가 우리사회 페미니즘 운동에 굳이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를 갖다 붙인 이유는
현재 지구에서 진행 중인 페미니즘의 복잡성과 확장성을 고려했을 때, 그 안에서 한국만의 고유한 속성과 차별성을
구별해내기 위해서입니다.
최근의 (한국형)페미니즘 운동들의 과격한 양상들을 지켜보면서 혁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지네의 발’ 같았던 그녀들의 수고(?)에 어울리는, 그래서 그녀들이 자칭 ‘여성혁명’이라
스스로 칭송해 마지않는 이 과격한 퍼포먼스를 상징할 만한 적당한 이름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바로 <원숭이 정치학!>입니다.
인간에게 무리 짓는 본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도입한 국가에서 정당이 존재하는 이유인데 ... <정당>이라는 의미의 직관적 이해는
생각을 공유하지만 그 저변에는 각자의 이해관계가 끈적하게 결부되어 있는 매우 이기적인 무리들의
집합이 바로 정당이며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그 이해관계로 인하여 정당은
또 다시 <계파, 정파>로 세분화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정치는 각각의 집단들의 싸움입니다. 수많은
개개인의 생각들이 특정 집단(정당)이라는 한 곳에서 공통된 하나의 정신적 수원(水源)을 생성하고,
그렇게 생성된 집단의 공통정신이 다른 집단의 정신과 치열하게 싸우는 곳이 바로 정치적 공간입니다.
때문에 정치는 필연적으로 <권력투쟁의 공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한국형 페미니즘에
부여한 <원숭이 정치학>은 어떤 의미인가?
정치가 권력투쟁의 공간이라면, 투쟁은 당연히 싸움이며, 싸움은 승리를 목표로 합니다. 더불어
승리를 위해 정치를 극단까지 밀고 올라가다보면 물리적 힘과 만나는데, 그것이 바로 전쟁이며
대개 전쟁은 정치의 최후의 수단이 됩니다. 그래서 정치는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또 사태가 극단적
상황까지(전쟁)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선은 상대를 설득하는 작업을 시도하며 설득은 명분과 논리를
필요로 합니다. 때문에 정치는 치밀하고 정교한 두뇌싸움의 일종이며, 이러한 정치 놀음이 자국 내에서
벌어지면 그것은 정당간의 싸움이고, 자국을 벗어난 국가 간의 싸움이라면 우리는 이것을 <외교(전)>라고
합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형 페미니즘에는 이러한 요건들이 전무합니다. 쉽게 말해 승리를 위한(권력쟁취)
나름의 투쟁은 존재하지만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최소한의 명분과 기본적 논리는 이미 실종된 상태이며,
설사 있다손 치더라도 치밀하고 정교한 부분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그저 억지스럽고 어설픈,
그리고 설득력 없는 굉음만 들릴 뿐입니다. 때문에 정상적, 아니 상식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그녀들의
굉음에 이질감을 느끼며 동조나 응원을 해야 할 그 어떤 매력적 조건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녀들의 투쟁은 ‘정치의 부재’, 혹은 ‘정치흉내내기’속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일회성 이벤트, 그 이상을
넘어설 수 없는 어떤 한계점에 맞닿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이고! ~ 원통하고, 원통하다! ~ 아이고! ~ 아이고 ~ "
억겁(億劫)의 시간동안 땅을 치고 울분을 토하고 서럽게 노래해야만 딱딱하게 굳어있던 가슴속
시커먼 멍울이 비로소 슬픈 꽃으로 피어난다는 우리 조상들의 한(恨), 특히 <여자의 한(恨)> 입니다.
한(恨)의 깊이가 얼마나 깊었으면 억겁의 세월을 오직 구슬프게 울부짖는 데에만 힘을 쏟아야 하는지,
그래서 우리 선조들의 <열녀관>을 통하여 그동안 무심하게 잊혀지고 파묻혔던 그 처절한 한(恨)을
슬픈 꽃으로 승화시키고 <여자의 한(恨)>의 깊이 또한 미루어 짐작해보기로 합니다.
[◆ 용동 길가에 정각이 하나 있다. 처녀가 목화를 따고 있는데
왜놈들이 올라가면서 유방을 한 번 만지자 처녀가 바로 집으로 달려가서
부엌칼로 유방을 잘라버리고 죽었다. 임금이 친히 사액을 내린 것이
그 열효각이다. - (칠곡면 용동 열부각), 한국구비문학대계(8-10, 59면)]
[◆ 한 남자가 함께 공부하던 친구 여섯 명에게 각자의 집안에는
열녀가 많이 난다는데 그게 사실인지 각각 자신의 집에 가서 시험해보고자
하였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자기 집 담을 넘어 자신들 부인과
동침하고 왔다. 다음날 친구들 부인 모두가 자결했다는 부고가 날아왔다.
- (남편과 자고도 죽은 헛 열녀), 한국구비문학대계(7-17, 323~325면)]
[참고: 강등학 / 한국구비문학의이해. 156페이지/ 월인 출판]
위 두 사례는 극단적 정절관념을 보여줍니다. 특히 ‘열효각’ 사례는 완전무결한 신체적 정결성을
고집하는 열녀관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신체의 일부로 치환시키는 가치전도적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 열녀전설은 외적의 침입에 의한 전란이나 국가적 혼란기에 특히 많이 나타났는데
고려후기에 나타났던 신유학자들에 의해 기술된 본격적인 열녀전은 주로 고려말 왜구의 잦은 침입과
몽고란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며, 신유학적 이념을 기반으로 세워진 조선은 국초부터 열녀의식의
정착을 위해 꾸준히 시행했던 각종 포상정책의 결과 열관념이 광범위하게 자리잡아감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열녀이야기가 양산되었고 조선후기에는 전 계층에 걸쳐 수많은 열녀들이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 옛날에 한 아가씨가 흰가마를 타고 시집을 갔다.
흰가마는 신랑이 죽고 없을 때 타는 가마다. 과부살이를 하러
새 처녀가 시집에 간 것이다. 이 처녀과부는 시집에서 열녀(烈女)가
되기를 강요받는다. 왜냐하면 열녀로 소문나 정문(旌門)이 서면
그 집안에 관역(부역)이 면제되고 조세가 면제되며 병역이 면제되기
때문에 어느 가문이건 어떤 열녀가 될 조건만 구비되면 그것을 강요하게
마련이었다. 이 처녀는 태어나 한 번도 보지 못한 남편의 무덤에 가서
주야로 통곡하게 되어있다. 그렇게 하면 남편이 살아난다고 꾄 것이다.
처녀가 통곡하고 있는 밤중에 무덤이 갈라지고 이 처녀가 그 무덤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을 친정에서 처녀를 따라 함께 온 하녀가 보았다.
달려가 저고리섶을 잡고 늘어졌다. 옷섶이 세모꼴로 찢어지더니
찢긴 옷섶은 나비가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 이것이 한국의 나비 생성에
관한 설화 가운데 전형적인 하나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젖꼭지를
가렸던 세모꼴의 올리브 나무껍질이 나비가 되었다는 희랍의 그것에
비하면 한국의 나비는 슬픈 나비다. <정문(旌門) - 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하여 그 사는 집 앞이나 마을 입구에 세우던 붉은 문>
... (한국인의 기속 - 성과 미신. 91페이지/ 이규태/ 기린원)]
<춘향전>을 비롯한 선조들의 열녀관은 비록 이야기에서 그치지만, 당시 우리 여성들에게 가해졌던
억압과 극단적 정조관념의 무게는 이야기의 내용만 들여다봐도 어떠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듯 당시의 열녀관은 현대인에게 <여자의 한(恨)>의 깊이를 어느 정도는 가늠케 해줍니다. 더불어
우리 어머니들의, 어머니들의, 어머니들의 ... 어머니들에게 강요된 당시의 시대적, 묵시적 <열녀관>은
<여자의 한(恨)>과 서로 호환 가능한 용어로써 세대를 관통하는 여성억압의 대표적 상징으로 인정해도
큰 무리가 아니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한국형 페미니즘은 자신들의 ‘원숭이 정치학’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들의 확장성을 위해서
우리 선조들의 처절한 <열녀관>을 모두의 동정과 연민을 흡수하는 강렬한 페이소스(pathos) 용도로
활용함으로써 시대의 멍울마저 자신들것으로 둔갑시킨 뻔뻔한 절도행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태는 결국 진정성을 담아낼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대중을 향해 처절한 호소를 한다고 해도 그녀들
바깥의 정신들을 더 이상 그녀들 안으로 끌어올 수도 없으며, 끌려들어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결국
외부로의 확장성을 원하는 그녀들의 운동은 그 강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실질은 안으로만 점점 더
쪼그라드는, 즉 현실과의 괴리만 더 커지는 모순이 발생하고 한국형 페미니즘 운동을 통한 정치로의
연장은 단순한 염원에서 그치게 될 것입니다. 때문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소란스런 한국형 페미니즘은
한계를 드러낸 하나의 ‘정치흉내내기’이며, 오직 <무리지음> 자체에서 착란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저는 한국형 페미니즘을 <원숭이 정치학>이라 명명하려 하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저는 한국형 페미니즘을 한다는 분들에게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특히 <섹스(S.ex)>는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무기수에 가깝습니다. ... 최근 들어 "성인지 감수성"이
우리사회 주요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이 정체불명의 외계어는 유명인들의 미투 운동과 맞물리면서
성폭력,성희롱(추행) 사건에서 상당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 한마디로 법이 성(性)과 연계된
사건을 바라볼 때는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는 통계적 근거를 들어 여성의 입장을 좀 더 많이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때문에 여자는 일관된 진술과 눈물만 준비하면 그 즉시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일종의 법률적 인센티브를 얻게 된 상황입니다. 철저히 합리적이고, 또 형평성에
근거하여 법 적용이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태가 이 지경까지 된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섹스(s.ex)를 무기수로 가둬놓고 자유로운 성(性)담론을 허용하지 않는 경직된 문화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너무나 모순입니다. 요정 정치, 룸살롱 공화국이라는
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 현실적, 실질적으로 대한민국 사회는 전 세계 그 어느 국가보다 더 화려한
밤문화가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만 뜨면 한국 사회는 소녀 앨리스가 빠졌던
구멍 속의 ‘이상한나라’가 됩니다. 어느 국가보다 엄숙한 성(性)도덕이 강조되며, 과도한 성욕의 표출은
저급하고, 성(性) 상품화에는 극도의 히스테리 반응을 보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서서히 섹스(s.ex)를 가석방 시켜야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GDP 1조 6천억 달러($), 세계 경제규모 10위권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성(性)담론이 이렇게
경직되어 유통되고 있는 나라는 아마도 OECD 국가 중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입니다. 더불어 이러한
경제적, 문화적인 불편불일치(mismatch)로 인하여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희귀어가 탄생했다고 생각됩니다.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안희정 지사의 판결에 대해 김지은씨 측 변호인과 많은 여성단체는 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을 반영한 균형 있는 판결을 내렸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 만약 여기서 '안희정'을
익명으로 전환하고 사건(판결)을 바라본다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가장 논리적, 합리적이어야만 하는 법질서에 <감수성(感受性)>이라는 상당한 비논리를 개입시켜
유죄판결을 유도한 작금의 사태에 대해 2019년 한국사회 상당수가 환호하고 있습니다. 양심과 도덕이
살아있는 사회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일 것입니다. 하지만 <도덕재판>이
난립하는 사회는 질서가 붕괴되고 공포가 만연되는 사회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되는 대부분의 국가가 비논리의 대표적 상징인 도덕재판을 금지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인지 감수성 재판>은 <도덕 재판>과 등치관계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저는 안희정 지사를 옹호하거나 비난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 제 의견은 그냥 무관심입니다.)
[◆ 격렬한 섹스(S.ex)가 시작됩니다.
비명 같은 신음과 질펀하게 흘러내린 땀, 살덩어리들의 파도 같은 출렁거림을 오직 시선으로
받아들이지만, 차원을 뛰어 넘는 원시적 물성(物性)이 느껴집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상대의 입속에서
자신의 혀는 미친 듯이 녹아내립니다. 상기된 얼굴과 붉게 물든 귓불은 몽환적 눈빛과 잘 어울립니다.
아직 덜 녹은 혀가 잠시 바깥으로 흘러나와 얼굴과 귓불에 묻은 붉음을 닦아냅니다. 기형적 체위는
사마귀의 교접모습과 닮아있고 신기하다 생각할 때쯤 극한에 다다른 사정은 찰나(刹那)가 됩니다.
평온한 마무리 키스, 침대 위 ... 호흡이 먼지처럼 가라앉습니다. 정적속 전라의 남녀는 죽은 뱀처럼
말없이 똬리를 틀고 엉켜있어 미혹의 살덩어리들은 누가 누구의 것인지 주인을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 그렇게 황홀했던 섹스가 끝나자 수많은 사람들이 기립하여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 칸 영화제(Cannes Film Festival) ]
여자가 다리 아래로 많은 걸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현대사회는 충분히 그렇게 정의될 수 있습니다.
또한 그것이 터부시될 이유도 없습니다. 여자의 몸이 반드시 ‘영화’같은 문화예술 장르에 편입될 때에만
긍정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강제규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실제 현실에서는 여성 본인의 몸을
출세와 욕망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국형 페미니즘은 이러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며, 설사 그것이 만연된 사회현상이라고 해도 그것은 여성의
자의가 아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남성이 만든)사회 구조적 현실이라며 모든 원인을 여성 외부에서,
특히 남성에게서 찾으려고 합니다.
“내 몸은 내 것이다!”
(한국형)페미니즘이 외칩니다. ... 그녀들은 여성의 몸의 권한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도 정작 그 몸의
사용권한이 개인적 출세와 욕망 같은 조금은 속물적 근성과 결탁하여 민낯이 드러날 때면 마치 본인 몸에
다른 피가 섞여 들어오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는 순혈주의나 인종주의적 히스테리 반응을 보이는 것이
현재 한국형 페미니즘의 비린내 나는 날것 그대로의 실체입니다. 그래서 그녀들에게 페미니즘의 성공을 위한
더 나은, 더 효율적인 진보된 페미니즘을 소개해주고 싶습니다.
<“차라리 모든 패를 까고 솔직해져라!”> ... 한마디로 실천적 진실성입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이중적 태도의 페미니즘 정신이 아니라 여성들 그대들 몸을 마음대로, 그리고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당당하게 사용하라는 “여성들 몸은 진짜 여성들 것이다!” 라는 실천적 강령이며,
보다 현실적 메시지의 전달이고, 동시에 메시지의 정당화 노력입니다. 바로 사회(현실)를 칸(Cannes Film)으로
만들라는, 즉 현실과 영화(예술)의 합일인 것입니다.
사회가 칸이 될 수 있도록(칸의 사회화) 여성들 스스로가 각자의 심연에 숨겨진 출세와 욕망에
좀 더 솔직해짐으로써, 그리고 진실성을 담아 온전히 그 모습 그대로를 사회에 노출시켜 마음껏 박수를
받으라는 뜻입니다. ...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형 페미니즘은 한국사회 오래된 관습적
성 고정관념(gender stereotype) 및 일반 대중과의 충돌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페미니즘을 외치는
자칭 한국형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성)의 순결’ 자체를 바로 한국형 페미니즘의 <도덕적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페미니즘 입장에서는 한국 여성들은 최소한 도덕적으로 흠결 없는
순수한 처녀성의 결정체로 계속해서 남아있어야 하며, 혹시라도 그녀들의 ‘몸의 사용’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것은 절대로 한국형 페미니즘이 수용해서도 안 되는 것이며, 설사 수용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오직 남성(남성이 만든 제도나 사회구조)에 의한 결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전제될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한국형 페미니즘은 성매매 여성들을 구원의 대상으로 인식합니다.
그럼 이쯤에서 이런 물음이 필요해 보입니다. ... 진정 <성(性)은 상품화하면 안 되는 것인가?>
강제성이 배제된 성(性)은 현대사회에서 이미 많은 국가들에게 하나의 상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첫 눈에 반해 말을 걸어봅니다.
연락처를 받고, 손을 잡고, 낙엽 길을 걸어보고,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기도 합니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 탓에 차분히 서로를 감싸며 체온을 느껴보기도 합니다. ... 키스(kiss)를 하고,
섹스(S.ex)를 합니다. 상대의 슬픔에 함께 울어주고 기쁜 일엔 함께 행복해 합니다. <사랑>입니다.
여기서 중요한건 이 모든 사랑의 과정은 그 어떤 누구도 대신할 수 없으며 간섭할 수도 없다는 점입니다.
오직 사랑하는 연인들 당사자들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국가가 한 개인의 <사랑의 과정>까지
책임져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성 상품화>는 설렘과 두근거림, 기쁨과 슬픔의 과정이 모두 생략되고, 오직 쾌락(성욕)만이
화폐 가치로 전환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사랑의 과정>은 개인에게는 일종의 판타지이자
동시에 실존입니다. 평생에 한번(혹은 그 이상) 있을까 말까 한 가장 큰 이벤트이며 ... 더불어 어느
누군가에게는 사랑의 과정이 1년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이에게는 그 절반의 시간이면 충분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평생을 서두르지 않고 아껴가며 천천히 과정을 쌓아가는 연인들이 존재할 수도 있을 겁니다.
<사랑의 과정>은 이처럼 개개인마다 허락된 타임라인(timeline)이 모두 다 다릅니다. 때문에 규격화, 표준화가
불가능하며, 이것은 곧 <사랑은 상품화가 불가능하다!>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 그러나 (일회성)쾌락은
다릅니다. ‘과정’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지만, 원초적 쾌락(S.ex)은 돈과 10~30여분 남짓한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화폐는 <가격 기능>의 작동으로 대상, 즉 성(性)을 객관화 하는데 상당히 뛰어난 지표역할을 합니다.
더불어 시간은 언제든지 가격으로 <전환>될 수 있는 참 독특한 개념입니다. 그래서 쾌락은 상품성을 갖습니다.
[◆ 일본은 17세기부터 공창제가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남성에 비해 여성의 수가 모자라 은근슬쩍 사창도 생겨나기도 했는데
당시 꽤나 성업 중이던 상황에서 문제는 일시에 많은 사람(이용자)들이 몰려들었을
때였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들을 받아줄 여성들의 수가 부족하게
됩니다. 시계가 있었다면 정확한 (이용)시간을 다투어 문제를 해결 했었겠지만,
시계도 없었던 상황에서 잠시 짧은 시간을 내서 여자를 사야했기 때문에 그 시간(이용시간)을
측정하는 것이 상당한 고민이 됐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때 일본 사람들이 생각한 방법이
바로 향(香)입니다. 절에서도 향을 피우고 제사를 지낼 때도 향을 피웠던 것이 생각났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향시계>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향은 한번 불을 피우면 다 타는데 보통 15분~2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에, 손님들은 1시간정도를 놀고 싶으면 향 3개를 구입하고, 손님들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찾아오면 1인당 향 1개만 판매하는 방법을 써서 시간을 조절했다고 합니다.
성(性)이 가격과 시간(향)에 의해 규격화 및 표준화가 가능해지다보니 성(性)은 말 그대로
<상품>이 되었던 것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일본의 철저한 시간관념이 이때부터 형성되었고, 이러한 시간 관념이 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일본사회에서 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참고: 일본인과 에로스(18~22쪽). 서현섭) ]
한국형 페미니즘은 여성의 성(性)은 상품화 하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 말은 즉, <처녀성(virginity)>은 그 무엇보다 고귀한 가치를 지닌 (여성의)몸과 정신의 결정체인
것입니다. 따라서 처녀성이 훼손되면 고귀한 <가치>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 그런데 여기서 역설적으로
그녀들의 주장은 <처녀성(virginity)>은 가장 비싼 값이 매겨져야 하는 또 다른 상품이다! ~ 라고 외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한마디로 사회가 <처녀성(virginity)>에게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라는 일종의 강령이며
암묵적, 상업적 가격협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2002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고, 그 즈음에 서울 종암경찰서 김강자 서장이 서울의 대표적 집창촌인
<청량리588>과 <미아리 텍사스>를 집중 단속하면서 ... 이후로 서울의 사실상의 공창은 사라졌습니다.
[@ 당시 청량리588과 미아리 텍사스는 경찰과 구청의 공공연한 관리(?)아래 영업을 지속했었기 때문에
공창에 가까운 사창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그러나 성매매특별법과 집창촌 단속은 오히려 더 큰
풍선효과만 낳았습니다. 어설픈 도덕의 잣대가 정책의 실효성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권력이 개인들의
배꼽아래를 무리하게 통제하는 소위 <경찰국가화>를 초래했다는 비난으로 이어졌으며 ... 더불어 훗날
김강자 서장은 집창촌 폐쇄 정책에 대한 실패를 인정하면서 한국사회에 “제한적 공창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성매매와 집창촌 얘기만 나오면 여성단체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성매매 여성들의
착취의 문제입니다. 선진국 사례를 살펴보면 ... 영국과 프랑스는 집창촌 비즈니스를 금지하는 대신
개인적 매춘은 불법화하지 않습니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집창촌을 합법화해 성매매 여성들의 노동권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들의 인권보호에 정책적 노력을 보탭니다. 심지어 성매매 여성들의 <노조 결성권>
까지 허용하며, 이들에게 의료보험, 연금, 실업수당 등 일반 노동자가 받는 사회보장혜택을 국가가
최대한 보장하려 노력합니다. ... 참고로 성매매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이들이 느끼는
가장 위협적인 인권침해 요소는 다름 아닌 <사회적 시선>이었다고 합니다. 성을 판매한다는 주변의
차가운 시선이 이들을 가장 크게 괴롭힌 요인이었으며, 이로 인한 소외감과 외로움의 감정을 견디는게
가장 힘들었다고 합니다.
사랑이 배제된 쾌락(s.ex)은 비도덕적인가요?
오로지 성적 쾌락만 추구하는 행태는 저급한 겁니까? ... 질문을 바꿔 이렇게 다시 물어봅니다.
<도덕과 비도덕, 저급과 고급의 기준은 과연 누가 정하는 겁니까?>
앞서도 언급했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제 성(s.ex)은 터부시될 하등의 이유가 없으며, 더구나
성인은 주체적 개인으로서 자신의 성적 취향에 관해 국가권력의 간섭과 통제를 받아야할 그 어떤 의무도
없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자신의 저서 <결혼과 도덕>에서 혼전 섹스를
적극적으로 권장했습니다. 한 개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인 결혼을 육체관계 없이 결정한다는 것은
미래 결혼생활에 불확실성만 높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러셀 또한 사랑이 배제된 쾌락을 완전히 지지하지는
못했습니다. ... 다시 말해, 섹스에 도덕성이 부여되려면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니라 <사랑>이 교감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결론적으로 러셀은 섹스(sex)가 도덕적이며 고급스런 하나의 완전체가 되려면 사랑이 필요하다
생각했었던 것입니다.
사랑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섹스(s.ex)에 도덕성을 부여하고 정당화 시켜주는 매우 강력한 조건입니다.
사랑이 포함된 섹스는 성욕에만 집착하는 섹스보다 사회적으로 더 유리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따라서
사랑이 수반된 섹스는 결혼 및 출산과 무관하더라도 나름의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사랑이 <쾌락(s.ex)의 가치>를 평가하고 <도덕적 위상>을 부여하는 유일한 척도라 말하기에는 여전히 무언가
근거가 부족합니다.
이탈리아 작가 <조반니 보카치오(Giovani Boccaccio 1313~1375 )>는 근대소설의 선구자로 불리며
단테와 함께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던 대표적 문인입니다.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데카메론(Decameron)>인데, 이 소설집은 당시 가장 많은 국가에서 가장 오랜 시간동안 금서(禁書)로
지정된 소설이었습니다. ... 다만 인간의 심리가 거의 대부분 그렇듯이 ‘금기(taboo)’는 그 강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금기를 깨려는 욕망 또한 비례적으로 강해지는 속성을 지닙니다. 그래서 ‘데카메론’은
역설적으로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읽힌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데카메론의 시대적 배경은 기독교와 남성이 지배하던 전형적인 가부장적 세계를 반영합니다.
작품은 10일 동안 100건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작품 속 10명의 화자 중에서 7명이 여자입니다.
사회 여러 계층을 비유적으로 풍자하며 이야기의 대부분은 남녀 간의 사랑과 욕망(치정), 성(s.ex)의
문제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며 채워져 있습니다. 또한 여성이 주도적으로 일으킨 섹스(s.ex) 문제는
대부분 여성에게 유리하게 결론지어집니다. ... 대표적으로는 6일째 일어났던 필리파 부인의 이야기가
압권인데, 절세미인 필리파 부인은 간통의 현장을 남편에게 들킵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당시의
성(s.ex) 개념은 ‘사회적 제도’에 묶여있어, 특히 여성에게는 매춘뿐만 아니라, 남편 이외에 다른 남자에게
(돈을 받지 않고)몸을 허락하는 행위, 즉 간통을 저지른 행위도 사형에 처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법정에서 판사는 부인의 미모에 반해 그녀를 살려주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그녀가 자백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필리파 부인은 당당히 자신의 간통 사실을 인정하며 다음처럼 항변합니다.
[◆ "이 법은 여성을 속박하는 법입니다. 또한 이 법은 남성세계가 자의적 해석에 의해
만든 법이므로 일종의 악법이며, 사건 당사자인 여성의 동의가 배제되었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무효입니다. ... 만약 아내가 남편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야할 법적 의무가 존재한다면
나는 단 한 순간도 의무를 소홀히 한 적이 없으며 거절한 적도 없습니다. 다만 나는 보통의
아내들 보다 성적 욕구가 강했기 때문에 남편의 욕구가 다 채워지면, 여전히 식지 않고 뜨겁게
남아있던 나의 욕구를 위해 애인과 이용한 것뿐입니다. 다시 말해 나는 애인에게 몸을 준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애인을 일종의 쾌락의 도구쯤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쾌락의 도구로 삼는다면 아내들 또한 마찬가지로 자신의 필요에 의해 남자를 쾌락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나를 (계속해서)충족시켜주지 못한다면,
남아 있는 나의 성(性)에너지를 차라리 개에게 주는 것보다 다른 사내를 선택하는 것이
개인(아내)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전체의 효용이라는 측면에서도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될 것입니다. - (필리파 부인의 항변)]
신(기독교)과 남성이 지배하던 시대에서 놀랍게도 필리파 부인의 이러한 과감한 주장은 판사에게
받아들여졌고 부인은 석방되며 이야기는 마무리 됩니다. 돈을 받고 파는 사랑은(매춘) 형벌의 대상이
되지만, 개인의 만족을 위해 자유롭게 베푸는 사랑(s.ex)은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 작품은
여성이 성행위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당당히 전면에 나설 때 진정한 <여성해방>을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한국형 페미니즘과 여성단체는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주장합니다.
낙태죄 폐지 주장은 '여성 자기결정권'과 '태아 생명권'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대다수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 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들 것이니, 국가 권력이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죠.
그런데 참 웃깁니다. 국가 권력의 간섭을 운운하며 개인의 (자기)결정권이 헌법상의 권리라 그렇게 강조하던
집단들이 성(性)을 파는 경우에만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에 예외를 둔다는 것입니다. 낙태에 대해 여성단체가
찬성하는 자기결정권이 왜 <성적 자기결정권(性的自己決定權)>만 만나면 히스테리 반응을 보이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개인의 성생활(s.ex) 역시 자기책임하에 이루어지는 명백한
개인의 권리(자기결정권)입니다. ... 이쯤되면 무려 600여 전에 발표된 데카메론의 내용과 2019년 광장에 모여
탈코르셋과 낙태죄폐지를 외치는 한국형 페미니즘이 서로 자리가 뒤 바뀐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한국형 페미니즘이 이제는 <발전적 해체>의 과정을 거쳐 변질되고 난립한 기존의 많은
기형적 페미니즘이 아닌, 한국형 페미니즘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립이 우선되어야 하며, 이후에는
진정한 여성해방을 위한 <실천적 통합모델>이 필요하다 생각됩니다. 더불어 사회(남성)를 향한 그녀들의
반복적 스트레스테스트(stress test)는 대중의 지지와 호응 보다는 불신만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앞서도 언급했었지만 오늘날의 페미니즘(Feminism) 운동은 그 유형이 상당히 복잡하고 다양화되고
있으며, 현재도 계속해서 외연이 확장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형 페미니즘 또한
자신들의 좌표를 벡터공간 어딘가에 숨겨놓고 이것, 저것 잡다한 사유들을 주인의 허락도 없이 마구 훔쳐다
쓰고 있습니다. ... 세계에 대한 치열한 고뇌와 사유 없이, 단지 머리를 자르고, 남근 사진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브래지어를 벗어던지는 불꽃 페미쇼를 그녀들은 저항이라 부르고 스스로를 (한국형)페미니즘의 용기 있는 투사로
내면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운동이 아니며, 그동안 소심했던 본인을 바꿔보고자 집단최면 속에서
즉흥적으로 발흥하는 일종의 담력테스트일 뿐입니다.
‘불편한 용기’는 어느 페미니즘 단체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용기는 무모함과 겁먹음의 중간입니다. 균형을 중요시했던 그리스 철학은 용기를 그렇게 정의했습니다.
그런데 ‘불편한 용기’측은 이 고귀한 가치를 지닌 ‘용기’를 본인들 마음대로 가져다 난도질하려 합니다.
그녀들이 말하는 용기는 무모함과 겁먹음의 경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녀들의 말하는 용기는
처절한 외로움과 공포에 가까운 소외감속에서 생산된 일종의 바이러스입니다. 아주 치명적인 바이러스 말이죠.
그리고 저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페미니즘>이라는 운동이 훗날 이들에게 <향수>가 되는 것이
두렵습니다. 지금 활발히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세대들이 이후 후세대들에게 운동의 바톤을 넘겨주고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그녀들이 과거를 추억하며 지금의 운동을 아름다운 <향수>로 기억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마치 독재(박정희) 권력이 어떤 세대들에게는 찬양받는 <향수>가 되듯이 말입니다.
어떤 이념이든, 그 이념의 농도가 깊어지면 그것을 따르는 구성원들의 자발적 징집화는 가속화됩니다.
하지만 그 어떤 의문이나 질문을 거부하는 이러한 자발적 징집을 그들은 ‘연대’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현대 한국형 페미니즘은 본인들 할머니, 어머니 세대의 억압을 원래부터 자신들것인양 스스로의 내면에
단단히 착근시켜 자기자본화 시켰습니다. 그렇게 자본화된 ‘(그녀들의)억압’은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투쟁과 운동의 에너지로 전환되고, 그 힘은 증식과 증폭을 반복하며 <여성혐오 없는 세상 만들기>를
꿈꿉니다. ... 그런데 이러한 그녀들의 노력으로 여성혐오가 하나둘씩 사라질 때마다 그녀들은 역설적인
불안을 드러냅니다. 다시 말해 머리로는 ‘여성혐오 부재’를 외치면서도 그녀들의 심장은 ‘여성혐오 존재’에서
오히려 더 많은 안정과 평안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여성혐오의 지속>이 어느 순간부터 격렬한 갈망으로서 그녀들을 전복적(역설적) 인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회 안에 진정으로 여성혐오가 사라진다면 한국형 페미니즘의 존재이유 또한 함께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도 언급했었지만 한국형 페미니즘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여성에 대한 억압과 혐오가 사라지고 파괴되는것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억압과 혐오의 지속>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사회 안에서 여성혐오가 하나둘씩 사라질 때마다
사라진 혐오의 빈 자리를 채워줄 새로운 대체제가 필요하며, 때문에 공동체 그 누구라도 혐오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에
대하여 한국형 페미니즘은 <혐오가 아닌 것을 혐오로 둔갑시키려는 작업>에 더욱 더 매진할 수밖에 없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 결론적으로 이제 그녀들의 핵심적 목표는 여성혐오 반대가 아니라 기업들의 신상품 개발처럼
<새로운 여성혐오 개발 및 생산>을 목표로,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여성혐오의 대체제 만들기작업인 것입니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권력이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여성혐오 반대를 강하게 외치지만,
그 누구보다도 여성혐오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 또한 그녀들입니다. 즉 사회 안에 계속해서 여성혐오가 존재해야만
그녀들은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상태가 곧 그녀들이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가
기술적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 공동체가 말합니다.
<“알겠습니다! ~ 반드시 여성혐오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 그녀들이 말합니다.
<“아니오! ~ 100년, 200년 후에도 여성혐오는 계속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제발 여성혐오를 멈추지 말아주세요!”>
우리 사회 '여성혐오의 존재'는 그 자체로서 한국형 페미니즘 운동의 존립근거가 됩니다.
열정을 쏟아야할 적(敵)이 사라지면 이후에 찾아오는 것은 치명적 무력감뿐이며, 이것은 늙은 퇴직자의
소외감과 같고, 주인에게 버려진 개의 심정과 동일하며, 대중에게 잊혀지는 것이 두려운 스타의 절망감과 동일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녀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대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여성혐오가 사라진 세상인가? ~ 아니면
여성혐오가 사라진 세계에서 더 이상 싸울 상대가 없다는 무력감이 두려운 것인가? ~ 아니면
세상에서 서서히 잊혀지는 것이 두려운 것인가?
[◆ 남자아이는 여성이 자신과 같은 페니스를 소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를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만약 여성이
거세를 당해 버린 것이라면 자신의 페니스도 위험이 처할지 모른다는 공포감과 불안감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발로서, 혹은 일종의 경계 표시로서 자신의 페니스를
들여다보는 나르시시즘이 생겨나기도 한다. 나중에 성장해서 성인이 되었을 때도 거세 불안을
느낄만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공포감을 경험하고 비슷한 논리적 결과가 생긴다.
내가 잘못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아마 라포르그(Laforgue) 같은 학자는 이 경우
남자아이가, 여성이 자기처럼 페니스가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을 암소화(暗所化) 하려
한다고 설명할 것이다. 즉, 지각작용 자체를 마치 망막 암점증에 걸린 상태처럼 눈에 보이지
않게 지워버리려 한다고 설명할 것이다. (@ 암소화 - 환자가 자기의 자아와 상충되는 모든 것의
존재를 부정하려고 하는 정신적 암점(暗點)의 발달을 말한다. / 암점(暗點) - 빛깔이나 색을
느끼지 못하는 망막 시신경의 희고 둥근 부분) - (성욕에 관한 세편의 에세이. 29페이지/ 프로이트/ 열린책들) ]
=======
프로이트의 견해에 저 개인의 전복적 생각을 더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합니다.
< 생각의 전복 >
[◆ 여자아이는 남성이 자신과는 다르게 페니스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를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만약 남성이
페니스라는 축복을 선물 받은 것이라면 (여성)자신의 페니스 부재에 대한 허탈감과 질투의
감정이 동시적으로 발생한다. 그래서 이에 대한 반발로서, 혹은 일종의 소유욕으로서 페니스를
절도하거나 파괴하여 자신과 동등한 수준으로 남성을 끌어내리려는데 욕망을 내면화 한다. - 물파스 생각 ]
[@ 간혹 므흣한 게시물을 볼 때면 나도 한번쯤은 그 유명한 ‘대인’을 불러보고 싶었지만
그래도 물파스는 진지함과 긴 글로 승부하는 사람인데 ‘내가 어떻게 대인을 부르겠는가?’ ... 라며
어느 샌가 또 어느새 다른 내면에선 ... 잠시 뒤 전문적으로 대인을 외치는 분들이 등장할 것이니
물파스 너는 가만히 앉아 ‘품위를 지키라’며 비겁함과 소심함이 참 꼴값스럽게 교체되곤 했었습니다.
어쩌면 이 또한 경직된 우리 성문화에 대한 영향이 아닐까를 생각해 봅니다. ~ 편안한 주말 보내십시오.]
2019년 2월 18일 월요일
2019년 2월 6일 수요일
페미니즘의 난립 / 결국 그것도 돈, 정치, 권력
지금 페미니즘이 난립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운동권과 시민단체, 진보의 역사를 먼저 알아야해
여기 있는 나이 많으신 형님들은 아시겠지만
혹시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오랜만에 한번 길게 써봅니다
------------------------------------------
80년대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진보가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는 단순했어
1.민주화
2.반독재
3.대통령 직선제
이 세가지 기치 아래 모든 진보세력이 다 모여들었고
이것만으로도 시민들의 환호를 받을수 있었지
근데 문제는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90년대에 대통령 직선제도 결국 받아들여지고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YS 로 정권교체도 되면서
그토록 원하던 민주화도 결국 이루어지게돼지
근데 정작 민주화를 외치던 진보세력은 더이상 할게 없어진거야
더이상 욕할 독재자도 없고
더이상 요구할 목표도 없어진거지
한순간에 백수 실업자가 돼버린거야
그나마 정계에 연줄이 있던 운동권 유명 인사나
재야 거물들은 국회의원 보좌관 자리라도 하나 얻어 먹으면서
우르르 정계로 진출할수 있었지만
밑바닥에서 활동하던 다수의 <시다바리>들은
갈곳도 없고 할것도 없는 잉여 인력으로 사회에 내팽개쳐 진거야
아직도 80년대 운동권에서 활동하던 많은 사람들이
가난 속에서 궁핍한 인생을 연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운동권의 변절과 내부 이권 싸움이 지속되는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어
돌 던지면서 투쟁한건 다 똑같은데
나중에 국회의원이나 관료직같은 좋은 자리를 얻어간 인간들은
잘나가는 유명인 몇명 뿐이었기에 내부에 불만이 쌓일수 밖에 없었던거지
이렇듯 민주화 이후에 다수의 진보 세력이 갈 곳을 잃은 백수가 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가
발견한게 바로 <시민단체> 였어
더이상 민주화같은 관념적인 정치 이념으로는
시민들의 관심을 받을수도 없고
그런 방식의 정치 행위가 필요치도 않은 사회에서
일반인들의 생활에 직접 연결되는 문제를 테마로 삼는 시민단체는
낙오한 운동권에게는 좋은 일자리였던 거지
전국에 온갖 시민단체들이 난립하게 된게 이때부터였고
정치, 경제, 노동 같은 전통적인 분야뿐만 아니라
환경, 문화, 예술, 심지어 아이들 교육 분야까지 시민단체들의 밥그릇으로
비화되기 시작한것도 이때부터였어
지금도 동네에 듣도 보도 못한
XX연대, XX모임, XX연구회, 라면서 허름한 간판 하나 걸어놓고
시민단체 행세하는 애들이 넘처나는 이유를 이제 알수 있을거야
우리나라 시민단체의 가장 큰 문제는
시민단체가 <시민단체의 일>에 관심이 없다는거야
몰락한 운동권과 진보세력이 차린 신사업이 시민단체이다 보니
이 사람들의 궁국적인 목표는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지
시민단체의 임무가 아니거든
시민단체가 먹고 사는 방법을 알려줄께
1.사람들이 관심있어 하는 테마를 잡는다
(환경오염, 도시개발, 학원교육, 남녀차별 등등등)
2.사람들의 공포감과 분노감을 극대화시킨다
3.회원을 끌어모으고 조직을 확대한다
4.비대해진 조직과 회원들을 기반으로 정치인에게 접근한다
5.선거기간동안 특정후보를 지지하거나 낙선운동을 펼쳐 정치력을 과시한다
6.정계에 만들어진 연줄을 기반으로 정부사업을 따내거나 수익사업을 획득한다
7.전국 조직이 갖춰지면 이를 기반으로 정당에 공천을 요구하거나 장관직을 요구한다
대형 사건이 터지면
광화문에 평소에 알지도 못했던 온갖 시민단체들이
깃발을 들고 나온다
이 세력이 궁극적으로 원하는건
자신의 정치력을 과시해서 진보 내에 지분을 넓히고
유명세를 이용해 회원들을 끌어모으려는 것이다
광화문이 시민단체의 거대한 영업장소가 돼버리는거지
진보 정치인들은 이 세력들을 이용해 선거에서 이기려하고
권력을 쟁취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 시민단체 세력을 무시하지 못한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이다
이제
권력이 바뀐후로 시민단체들이 유난히 활개치는 이유
그리고
페미 정책이 엄청난 반발을 일으키는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반복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수 있을거야
이번 시장에서 돈이 되고, 표가 되고, 권력이 되는
가장 유망한 테마 주식이 바로 "페미니즘" 이기에
정치인과 시민단체 온갖 잡다한 진보세력이
한탕 크게 해먹으려고 분위기를 뛰우고 있는거지
물론 이 한탕주의는 지금까지 진보세력이 늘 그래왔듯이
"민주주의" "정의" "평등"으로 포장되겠지
---------------------------------------
보수가 부패한 만큼
진보 내부에 꽤 추악한 모습이 감춰져 있는걸
멍청한 애들이 잘 모르는것 같아서 한번 써봤습니다
운동권과 시민단체, 진보의 역사를 먼저 알아야해
여기 있는 나이 많으신 형님들은 아시겠지만
혹시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오랜만에 한번 길게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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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진보가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는 단순했어
1.민주화
2.반독재
3.대통령 직선제
이 세가지 기치 아래 모든 진보세력이 다 모여들었고
이것만으로도 시민들의 환호를 받을수 있었지
근데 문제는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90년대에 대통령 직선제도 결국 받아들여지고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YS 로 정권교체도 되면서
그토록 원하던 민주화도 결국 이루어지게돼지
근데 정작 민주화를 외치던 진보세력은 더이상 할게 없어진거야
더이상 욕할 독재자도 없고
더이상 요구할 목표도 없어진거지
한순간에 백수 실업자가 돼버린거야
그나마 정계에 연줄이 있던 운동권 유명 인사나
재야 거물들은 국회의원 보좌관 자리라도 하나 얻어 먹으면서
우르르 정계로 진출할수 있었지만
밑바닥에서 활동하던 다수의 <시다바리>들은
갈곳도 없고 할것도 없는 잉여 인력으로 사회에 내팽개쳐 진거야
아직도 80년대 운동권에서 활동하던 많은 사람들이
가난 속에서 궁핍한 인생을 연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운동권의 변절과 내부 이권 싸움이 지속되는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어
돌 던지면서 투쟁한건 다 똑같은데
나중에 국회의원이나 관료직같은 좋은 자리를 얻어간 인간들은
잘나가는 유명인 몇명 뿐이었기에 내부에 불만이 쌓일수 밖에 없었던거지
이렇듯 민주화 이후에 다수의 진보 세력이 갈 곳을 잃은 백수가 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가
발견한게 바로 <시민단체> 였어
더이상 민주화같은 관념적인 정치 이념으로는
시민들의 관심을 받을수도 없고
그런 방식의 정치 행위가 필요치도 않은 사회에서
일반인들의 생활에 직접 연결되는 문제를 테마로 삼는 시민단체는
낙오한 운동권에게는 좋은 일자리였던 거지
전국에 온갖 시민단체들이 난립하게 된게 이때부터였고
정치, 경제, 노동 같은 전통적인 분야뿐만 아니라
환경, 문화, 예술, 심지어 아이들 교육 분야까지 시민단체들의 밥그릇으로
비화되기 시작한것도 이때부터였어
지금도 동네에 듣도 보도 못한
XX연대, XX모임, XX연구회, 라면서 허름한 간판 하나 걸어놓고
시민단체 행세하는 애들이 넘처나는 이유를 이제 알수 있을거야
우리나라 시민단체의 가장 큰 문제는
시민단체가 <시민단체의 일>에 관심이 없다는거야
몰락한 운동권과 진보세력이 차린 신사업이 시민단체이다 보니
이 사람들의 궁국적인 목표는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지
시민단체의 임무가 아니거든
시민단체가 먹고 사는 방법을 알려줄께
1.사람들이 관심있어 하는 테마를 잡는다
(환경오염, 도시개발, 학원교육, 남녀차별 등등등)
2.사람들의 공포감과 분노감을 극대화시킨다
3.회원을 끌어모으고 조직을 확대한다
4.비대해진 조직과 회원들을 기반으로 정치인에게 접근한다
5.선거기간동안 특정후보를 지지하거나 낙선운동을 펼쳐 정치력을 과시한다
6.정계에 만들어진 연줄을 기반으로 정부사업을 따내거나 수익사업을 획득한다
7.전국 조직이 갖춰지면 이를 기반으로 정당에 공천을 요구하거나 장관직을 요구한다
대형 사건이 터지면
광화문에 평소에 알지도 못했던 온갖 시민단체들이
깃발을 들고 나온다
이 세력이 궁극적으로 원하는건
자신의 정치력을 과시해서 진보 내에 지분을 넓히고
유명세를 이용해 회원들을 끌어모으려는 것이다
광화문이 시민단체의 거대한 영업장소가 돼버리는거지
진보 정치인들은 이 세력들을 이용해 선거에서 이기려하고
권력을 쟁취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 시민단체 세력을 무시하지 못한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이다
이제
권력이 바뀐후로 시민단체들이 유난히 활개치는 이유
그리고
페미 정책이 엄청난 반발을 일으키는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반복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수 있을거야
이번 시장에서 돈이 되고, 표가 되고, 권력이 되는
가장 유망한 테마 주식이 바로 "페미니즘" 이기에
정치인과 시민단체 온갖 잡다한 진보세력이
한탕 크게 해먹으려고 분위기를 뛰우고 있는거지
물론 이 한탕주의는 지금까지 진보세력이 늘 그래왔듯이
"민주주의" "정의" "평등"으로 포장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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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가 부패한 만큼
진보 내부에 꽤 추악한 모습이 감춰져 있는걸
멍청한 애들이 잘 모르는것 같아서 한번 써봤습니다
◆ 칸트의 정언명령 [by. 물파스]
[◆ 칸트의 정언명령]
(@ 오래전 박근혜와 최순실 관계에 대해 상당히 긴 글을 올렸었는데, 그때 글의 일부내용입니다.)
모두가 그 어떤 배려나 양보 없이 오로지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한다면
세계는 그야말로 하루가 멀다고 온통 대립과 분쟁에 휩싸여 혼란스런 세상의 연속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분쟁의 해결을 위해서는 흔히 “이성적으로 판단하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감정에 휘둘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해 편향된 사고나 성급한 판단을 내리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는 이성을 힘을
빌려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인간들의 이기적이고 비양심적인 본성이 수시로 나타난다면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즉
혼란을 막을 수 있는일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공동체의 이성으로 만든 <법과 제도>라는
합의된 강제성을 활용한다면 문제가 비교적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성적인 결과인 거죠.
하지만 인간 사회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는 걸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너무나 많이 배워 왔고,
또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혼란스러운 사회 상태에 대해서 법과 제도로도 어찌해볼 수 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교통사고를 당해 피를 흘리며 도로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친다거나,
하루종일 굶었다며 거리에서 배고픔을 호소하며 돈이나 빵을 구걸하는 걸인을 보고도 그냥 모른 채 하며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들은(무관심한 사람들) 사회가 만든 법과 제도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 그래서 이러한 이기심과 무관심이 공동체 내에 만연하게 된다면 이성으로 만든, 아무리 훌륭한
법이 존재한다고 해도 사회는 그야말로 극단적인 삭막함 속에 놓이게 되어 공동체라는 말이 무색해 질 정도의
말 그대로 껍데기만 공동체인 사회가 될 가능성이 매우 커질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아무리 공동체의 선과 평화를 위한다 해도 인간의 <도덕적 양심>까지
우리 공동체가 강제할 수단은 없다는 것입니다. ... 한마디로 인간의 "도덕"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이성적 사고만으로는 어찌해볼 방법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좀 더 근원적인 해결 방법은
없는 것인가? ~ 하는 물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300년 전에 태어난 독일의 대철학자 칸트(Immanuel Kant)의
견해를 들어볼까 합니다.
등산객이 비탈진 등산로에서 아래로 굴러 떨어져서 다쳤다 해도 우리는 산(山) 에게 책임을 물을 수가 없습니다.
이는 단지 중력이라는 과학적 <인과법칙>에 따라 그러한 사고가 발생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윤리적, 도덕적 양심은 어떨까?
과학(법칙)같은 지식적 측면의 이성은 우리 인간이 얼마든지 사유가 가능한 영역입니다.(이론적 접근 가능)
한마디로 과학은 충분히 이성으로 사유가 가능한 대상인 것입니다. ... 하지만 신, 영혼, 자유, 도덕 같은 영역은
유의미 하지만 이성으로 사유(검증)하기에는 불완전, 혹은 불가능 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각자의 양심에 따른
도덕적 행동을 왜 해야만 하는지는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며, 대신 신과 종교가 과학적 질문을 허용하지 않듯이,
인간의 도덕적 행동에도 그 어떤 질문이나 이유를 묻지 않아야 한다고 칸트는 주장했습니다. ... 한마디로
인간의 도덕적 행동은 그 어떤 이유나 이해 없이 무조건 양심이 시키는 명령에 따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칸트의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칸트는, 과학은 이론적인 이성으로는 접근이 가능했지만 ... 신과 영혼, 도덕 등은
이론적으로는 접근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형이상학적 개념들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이성의 지식적 측면이 아닌,
다른 측면의 이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며, 인간의 도덕적 행동은 직접적인 <"실천(행동)">으로, 즉
아무 조건을 달지 말고 그냥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칸트는 이렇게 우리 내면에
우리를 도덕적으로 행동(실천)하게 만드는 "의무적인 의식"이 존재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실천이성">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살펴보면, 칸트가 규정한 "도덕"은 너무나 막연한 것 같습니다. ... 또한
<"의무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부분도 조금은 억지스럽고 이해하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좀 더 확실히 이해하려면 너무나 유명한 칸트의 발언을 살펴봐야 합니다.
◆ "너의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 타당하도록 행동하라." - 칸트(Immanuel Kant)
인간의 도덕은 지식적인(이론적인) 이성으로는 사유가 불가능 합니다. 그런데 칸트는 이러한
형이상학적(신, 영혼, 도덕 등) 영역을 과감히 이성의 영역 안으로 끌고 들어옵니다. ... 그리고
인간의 도덕(도덕적 행동)에도 과연 과학법칙(중력) 같은 "보편적인 원리"가 있을 수 있겠는가? ~ 를
끊임없이 사유하며 고뇌한 끝에 내 놓은 결론이 바로 위의 원칙입니다.
등산객이 넘어져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거나 밤나무에서 밤송이가 떨어지거나 ... 그리고
타자가 친 홈런 볼이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가다가 결국은 외야 관중석으로 떨어지는 것은
모두가 '중력법칙' 이라는 보편적인 과학 원리에 따른 결과인 것입니다. ... 그렇다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도덕의 원리가 있을 수 있을까? ... 여기에 칸트는
<"보편적 도덕법칙(원리)">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칸트의 주장처럼 모든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도덕법칙(원리)을
찾아보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 예를 들어, 거리에서 구걸하는 걸인에게 천 원짜리 한 장을 건넨 행위를
어떤 이는 매우 도덕적인 행동이라 생각하고 있는 반면, 이와는 반대로 그러한 행위(적선)는 오히려 걸인의 자활의지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별로 좋은 행동이 아니라는 의견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실제 인간사회의 현실에서는
"도덕적 행동"에 대한 기준이 개개인 마다 주관적이며 편차가 있기 때문에 칸트의 주장은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칸트가 주장한 것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 그래서 칸트를(칸트의 발언)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한 발짝 더 깊게 들어가서 ... 먼저 법(法)과 선(善)에 대한 그동안의 인식을 전환시켜야 합니다.
꾸준히 사회적 이슈로 많이 거론되고 있는 보복운전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구성원(국민)들이 보기에는 보복운전은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라고 얘기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보복운전은 "선(善)한 행동이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공동체는 보복운전을 하게 될 경우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공동체의 보편성이 담긴 법(法)을 만들어
적용하게 됩니다. ... 한마디로 우리는 보복운전을 하지 않는 것이 선(善) 이라는 보편적 시선을 갖기 때문에
이후에 법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선한 판단이 먼저 존재한 후에, 그 뒤를
법이 따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입법원리(법이 만들어지는 과정)는 선한 판단 뒤에 법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칸트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러한 입법의 원리를 전복시킵니다.
근대철학 이전까지만 해도 신(God)은 그 자체로서 진리였습니다.
때문에 신의 계율(말씀, 명령) 또한 묻고 따지지 말아야 할 엄격한 법(法) 이라고 할 수 있었으며,
그러한 신의 말씀(명령)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선이라 생각했습니다. ... 한마디로 법(신의 계율)이 먼저 존재한 후에,
그것을 따르는 것이(신의 말씀을 따르는 삶) 바로 선(善) 이라는 것입니다. ... 그리고 칸트는 여기서 힌트를 얻어,
인간의 <보편적 도덕법칙>또한 신의 계율처럼 그 자체로서 하나의 법(法)이며, 그것을 지키는 것이 선(善)이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선한 판단 같은 건 따지지 말자는 거죠. 그냥 (보편적)도덕법칙대로 행동하는 것! ~ 이 자체가
바로 선한 행동(도덕적 행동) 이라는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칸트가 주장한 <보편적 도덕법칙>이란
아무 조건도 따지지 말고 <“의무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 해야만 한다!) 규칙(원칙)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원칙(규칙)에 따라 사는 것이 바로 진정한 선이며, 도덕적 행동 이라고 했습니다.[◆ 의무에 따르는 삶!]
결국 앞의 사례에서 걸인에게 천원을 건넨 행위는 잘했다는 칭찬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칸트의 도덕법칙에 따르면 도덕적 행동은 아닌 것입니다. ...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도덕적 행동과 칸트가 생각하는 도덕적 행동과는 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아무튼 마음속 깊은 곳에서
타인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즉 동정심이 마구마구 샘솟아 자선을 베풀었다고 해도 칸트는 그것이 아무조건 없이
<“의무적(해야만 한다)”>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정한 도덕적 행동이 아니라고 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칸트의 도덕적 행동은 <“천원을 주고 싶다!”>가 아니라 <“천원을 줘야 한다!”>가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 "너의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 타당하도록 행동하라." 라는 칸트(Kant)의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 당신이 하려는 어떤 도덕적인 행동이(의지가) 모든 사람이 보기에
법으로 만들어져도 전혀 이상할 것 없을 정도로 보편성을 내포하고 있다면, 그렇게 행동하라!> ~ 라는 뜻입니다.
좀 더 쉽게 풀어보면, 당신이 지금 하는 행동에 대해서,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똑같이 본인을 따라 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행동은 보편성(일반원칙)을 가진 도덕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걸인을 볼 때 마다 나는 그에게 의지박약한 놈이라며 주먹질을 할 것이다!"
이러한 행동을 과연 다른 모든 사람에게 따라하도록 얘기할 수 있을까? ~ 당연히 이것은 칸트가 얘기한
도덕적 행동이 아닐 것입니다. ... 칸트에게 도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자 의무>였습니다.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었지만, 모든 인간이 개인의 이기심과 비양심적인 행동만을 추구하게 된다면
종국에는 모두의 자유가 박탈당하게 되는 상황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결국 참된 도덕은 이성에서 나오며,
도덕은 의무적인 법칙으로 규정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 정리하는 의미에서 윤리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조지아 주립대학 로버트 L. 애링턴 교수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 동정심이라는 동기는 "도덕적 내용이 부족하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동정심이라는
동기로부터 행위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옳은 것을 행하는데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단지 동정심이라는 경향성을 만족시키는데 관심을 쏟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이 행하는 바의
도덕성에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 사람은 분명히 “도덕적 가치”를 갖는 방식으로 행위 하는데
실패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칸트는 오직 의무라는 동기만이 행위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 (중략) ~ 칸트는 도덕적 가치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의무를 행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무에 따라
행위하는 경우라고(@ 이러한 경우에는 행위의 동기가 오직 의무감뿐이기 때문에) 주장한다.
- 서양 윤리학사. (414~415 페이지)/ 로버트 L. 애링턴/ 서광사 ]
칸트는 개인의 동정심의 성취욕구나 타인을 도와줌으로써 칭찬받고 싶다는 마음 같은 것을
“경향성”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도덕적 행동은 이러한 경향성이 도덕적 행동의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으며, 인간에게 의무적으로 도덕적 행동을 유발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실천하는 능력”>밖에는 없으며 인간의 이성은 이러한 실천 능력에 쉬지 말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앞서 이미 언급했듯이 이러한 이성을 바로 칸트의 <"실천 이성">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도덕(도덕적 행동)이 “의무”라면 그것은 곳 명령이 됩니다.(@ 신의 말씀이 곧 명령인 것처럼)
그래서 칸트의 보편적 도덕원리(법칙)를 <"정언명령(定言命令)">이라고 부르며, 정언 명령은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상관하지 말고 행위 자체가 선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따라야할
도덕적 명령을 말합니다. ... 이와는 반대로 조건을 달고 행동하는 것을 <"가언명령(假言命令)"> 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칭찬받고 싶다면 거지에게 천원을 주어라!" ... 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결국 목적이 칭찬받는 것이기 때문에 가짜 도덕인 것입니다. 따라서 가언명령이 됩니다.
그래서 ... <"너의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 타당하도록 행동하라."> ~ 라는 명령은
칸트의 대표적인 정언 명령이 되는 것이며, 인간(타인)을 위해 행하는 도덕에는 그 어떤 조건도 달지 말고,
그냥 의무감으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서 대하라 뜻입니다.
[@ 의무감에서 남을 돕는 행위가 동정심보다는 더 도덕적인 것입니다!]
(@ 오래전 박근혜와 최순실 관계에 대해 상당히 긴 글을 올렸었는데, 그때 글의 일부내용입니다.)
모두가 그 어떤 배려나 양보 없이 오로지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한다면
세계는 그야말로 하루가 멀다고 온통 대립과 분쟁에 휩싸여 혼란스런 세상의 연속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분쟁의 해결을 위해서는 흔히 “이성적으로 판단하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감정에 휘둘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해 편향된 사고나 성급한 판단을 내리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는 이성을 힘을
빌려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인간들의 이기적이고 비양심적인 본성이 수시로 나타난다면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즉
혼란을 막을 수 있는일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공동체의 이성으로 만든 <법과 제도>라는
합의된 강제성을 활용한다면 문제가 비교적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성적인 결과인 거죠.
하지만 인간 사회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는 걸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너무나 많이 배워 왔고,
또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혼란스러운 사회 상태에 대해서 법과 제도로도 어찌해볼 수 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교통사고를 당해 피를 흘리며 도로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친다거나,
하루종일 굶었다며 거리에서 배고픔을 호소하며 돈이나 빵을 구걸하는 걸인을 보고도 그냥 모른 채 하며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들은(무관심한 사람들) 사회가 만든 법과 제도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 그래서 이러한 이기심과 무관심이 공동체 내에 만연하게 된다면 이성으로 만든, 아무리 훌륭한
법이 존재한다고 해도 사회는 그야말로 극단적인 삭막함 속에 놓이게 되어 공동체라는 말이 무색해 질 정도의
말 그대로 껍데기만 공동체인 사회가 될 가능성이 매우 커질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아무리 공동체의 선과 평화를 위한다 해도 인간의 <도덕적 양심>까지
우리 공동체가 강제할 수단은 없다는 것입니다. ... 한마디로 인간의 "도덕"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이성적 사고만으로는 어찌해볼 방법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좀 더 근원적인 해결 방법은
없는 것인가? ~ 하는 물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300년 전에 태어난 독일의 대철학자 칸트(Immanuel Kant)의
견해를 들어볼까 합니다.
등산객이 비탈진 등산로에서 아래로 굴러 떨어져서 다쳤다 해도 우리는 산(山) 에게 책임을 물을 수가 없습니다.
이는 단지 중력이라는 과학적 <인과법칙>에 따라 그러한 사고가 발생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윤리적, 도덕적 양심은 어떨까?
과학(법칙)같은 지식적 측면의 이성은 우리 인간이 얼마든지 사유가 가능한 영역입니다.(이론적 접근 가능)
한마디로 과학은 충분히 이성으로 사유가 가능한 대상인 것입니다. ... 하지만 신, 영혼, 자유, 도덕 같은 영역은
유의미 하지만 이성으로 사유(검증)하기에는 불완전, 혹은 불가능 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각자의 양심에 따른
도덕적 행동을 왜 해야만 하는지는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며, 대신 신과 종교가 과학적 질문을 허용하지 않듯이,
인간의 도덕적 행동에도 그 어떤 질문이나 이유를 묻지 않아야 한다고 칸트는 주장했습니다. ... 한마디로
인간의 도덕적 행동은 그 어떤 이유나 이해 없이 무조건 양심이 시키는 명령에 따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칸트의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칸트는, 과학은 이론적인 이성으로는 접근이 가능했지만 ... 신과 영혼, 도덕 등은
이론적으로는 접근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형이상학적 개념들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이성의 지식적 측면이 아닌,
다른 측면의 이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며, 인간의 도덕적 행동은 직접적인 <"실천(행동)">으로, 즉
아무 조건을 달지 말고 그냥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칸트는 이렇게 우리 내면에
우리를 도덕적으로 행동(실천)하게 만드는 "의무적인 의식"이 존재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실천이성">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살펴보면, 칸트가 규정한 "도덕"은 너무나 막연한 것 같습니다. ... 또한
<"의무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부분도 조금은 억지스럽고 이해하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좀 더 확실히 이해하려면 너무나 유명한 칸트의 발언을 살펴봐야 합니다.
◆ "너의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 타당하도록 행동하라." - 칸트(Immanuel Kant)
인간의 도덕은 지식적인(이론적인) 이성으로는 사유가 불가능 합니다. 그런데 칸트는 이러한
형이상학적(신, 영혼, 도덕 등) 영역을 과감히 이성의 영역 안으로 끌고 들어옵니다. ... 그리고
인간의 도덕(도덕적 행동)에도 과연 과학법칙(중력) 같은 "보편적인 원리"가 있을 수 있겠는가? ~ 를
끊임없이 사유하며 고뇌한 끝에 내 놓은 결론이 바로 위의 원칙입니다.
등산객이 넘어져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거나 밤나무에서 밤송이가 떨어지거나 ... 그리고
타자가 친 홈런 볼이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가다가 결국은 외야 관중석으로 떨어지는 것은
모두가 '중력법칙' 이라는 보편적인 과학 원리에 따른 결과인 것입니다. ... 그렇다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도덕의 원리가 있을 수 있을까? ... 여기에 칸트는
<"보편적 도덕법칙(원리)">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칸트의 주장처럼 모든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도덕법칙(원리)을
찾아보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 예를 들어, 거리에서 구걸하는 걸인에게 천 원짜리 한 장을 건넨 행위를
어떤 이는 매우 도덕적인 행동이라 생각하고 있는 반면, 이와는 반대로 그러한 행위(적선)는 오히려 걸인의 자활의지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별로 좋은 행동이 아니라는 의견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실제 인간사회의 현실에서는
"도덕적 행동"에 대한 기준이 개개인 마다 주관적이며 편차가 있기 때문에 칸트의 주장은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칸트가 주장한 것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 그래서 칸트를(칸트의 발언)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한 발짝 더 깊게 들어가서 ... 먼저 법(法)과 선(善)에 대한 그동안의 인식을 전환시켜야 합니다.
꾸준히 사회적 이슈로 많이 거론되고 있는 보복운전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구성원(국민)들이 보기에는 보복운전은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라고 얘기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보복운전은 "선(善)한 행동이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공동체는 보복운전을 하게 될 경우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공동체의 보편성이 담긴 법(法)을 만들어
적용하게 됩니다. ... 한마디로 우리는 보복운전을 하지 않는 것이 선(善) 이라는 보편적 시선을 갖기 때문에
이후에 법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선한 판단이 먼저 존재한 후에, 그 뒤를
법이 따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입법원리(법이 만들어지는 과정)는 선한 판단 뒤에 법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칸트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러한 입법의 원리를 전복시킵니다.
근대철학 이전까지만 해도 신(God)은 그 자체로서 진리였습니다.
때문에 신의 계율(말씀, 명령) 또한 묻고 따지지 말아야 할 엄격한 법(法) 이라고 할 수 있었으며,
그러한 신의 말씀(명령)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선이라 생각했습니다. ... 한마디로 법(신의 계율)이 먼저 존재한 후에,
그것을 따르는 것이(신의 말씀을 따르는 삶) 바로 선(善) 이라는 것입니다. ... 그리고 칸트는 여기서 힌트를 얻어,
인간의 <보편적 도덕법칙>또한 신의 계율처럼 그 자체로서 하나의 법(法)이며, 그것을 지키는 것이 선(善)이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선한 판단 같은 건 따지지 말자는 거죠. 그냥 (보편적)도덕법칙대로 행동하는 것! ~ 이 자체가
바로 선한 행동(도덕적 행동) 이라는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칸트가 주장한 <보편적 도덕법칙>이란
아무 조건도 따지지 말고 <“의무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 해야만 한다!) 규칙(원칙)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원칙(규칙)에 따라 사는 것이 바로 진정한 선이며, 도덕적 행동 이라고 했습니다.[◆ 의무에 따르는 삶!]
결국 앞의 사례에서 걸인에게 천원을 건넨 행위는 잘했다는 칭찬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칸트의 도덕법칙에 따르면 도덕적 행동은 아닌 것입니다. ...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도덕적 행동과 칸트가 생각하는 도덕적 행동과는 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아무튼 마음속 깊은 곳에서
타인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즉 동정심이 마구마구 샘솟아 자선을 베풀었다고 해도 칸트는 그것이 아무조건 없이
<“의무적(해야만 한다)”>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정한 도덕적 행동이 아니라고 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칸트의 도덕적 행동은 <“천원을 주고 싶다!”>가 아니라 <“천원을 줘야 한다!”>가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 "너의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 타당하도록 행동하라." 라는 칸트(Kant)의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 당신이 하려는 어떤 도덕적인 행동이(의지가) 모든 사람이 보기에
법으로 만들어져도 전혀 이상할 것 없을 정도로 보편성을 내포하고 있다면, 그렇게 행동하라!> ~ 라는 뜻입니다.
좀 더 쉽게 풀어보면, 당신이 지금 하는 행동에 대해서,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똑같이 본인을 따라 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행동은 보편성(일반원칙)을 가진 도덕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걸인을 볼 때 마다 나는 그에게 의지박약한 놈이라며 주먹질을 할 것이다!"
이러한 행동을 과연 다른 모든 사람에게 따라하도록 얘기할 수 있을까? ~ 당연히 이것은 칸트가 얘기한
도덕적 행동이 아닐 것입니다. ... 칸트에게 도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자 의무>였습니다.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었지만, 모든 인간이 개인의 이기심과 비양심적인 행동만을 추구하게 된다면
종국에는 모두의 자유가 박탈당하게 되는 상황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결국 참된 도덕은 이성에서 나오며,
도덕은 의무적인 법칙으로 규정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 정리하는 의미에서 윤리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조지아 주립대학 로버트 L. 애링턴 교수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 동정심이라는 동기는 "도덕적 내용이 부족하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동정심이라는
동기로부터 행위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옳은 것을 행하는데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단지 동정심이라는 경향성을 만족시키는데 관심을 쏟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이 행하는 바의
도덕성에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 사람은 분명히 “도덕적 가치”를 갖는 방식으로 행위 하는데
실패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칸트는 오직 의무라는 동기만이 행위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 (중략) ~ 칸트는 도덕적 가치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의무를 행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무에 따라
행위하는 경우라고(@ 이러한 경우에는 행위의 동기가 오직 의무감뿐이기 때문에) 주장한다.
- 서양 윤리학사. (414~415 페이지)/ 로버트 L. 애링턴/ 서광사 ]
칸트는 개인의 동정심의 성취욕구나 타인을 도와줌으로써 칭찬받고 싶다는 마음 같은 것을
“경향성”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도덕적 행동은 이러한 경향성이 도덕적 행동의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으며, 인간에게 의무적으로 도덕적 행동을 유발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실천하는 능력”>밖에는 없으며 인간의 이성은 이러한 실천 능력에 쉬지 말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앞서 이미 언급했듯이 이러한 이성을 바로 칸트의 <"실천 이성">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도덕(도덕적 행동)이 “의무”라면 그것은 곳 명령이 됩니다.(@ 신의 말씀이 곧 명령인 것처럼)
그래서 칸트의 보편적 도덕원리(법칙)를 <"정언명령(定言命令)">이라고 부르며, 정언 명령은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상관하지 말고 행위 자체가 선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따라야할
도덕적 명령을 말합니다. ... 이와는 반대로 조건을 달고 행동하는 것을 <"가언명령(假言命令)"> 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칭찬받고 싶다면 거지에게 천원을 주어라!" ... 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결국 목적이 칭찬받는 것이기 때문에 가짜 도덕인 것입니다. 따라서 가언명령이 됩니다.
그래서 ... <"너의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 타당하도록 행동하라."> ~ 라는 명령은
칸트의 대표적인 정언 명령이 되는 것이며, 인간(타인)을 위해 행하는 도덕에는 그 어떤 조건도 달지 말고,
그냥 의무감으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서 대하라 뜻입니다.
[@ 의무감에서 남을 돕는 행위가 동정심보다는 더 도덕적인 것입니다!]
2019년 1월 22일 화요일
◆ 제도(구조)가 권력적으로 작동한다는 의미에 대하여 [by. 물파스]
[◆ 제도(구조)가 권력적으로 작동한다는 의미에 대하여]
(@ 오래전 이슈인에서 한 번 얘기했던 내용입니다. 여기에 몇가지 내용을 추가합니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 서양에서는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면
극형에 처해져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성경이 쉬워지고 누구나 이해할수 있게 되면,
신부등 목회자의 권위가 사라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당시 사제들은 대중에 대해서는
일종의 특권을 가진 권력층 이었고, 이는 오늘날 소수 지배권력층과 다를바 없는 것이었습니다.
중세의 죄수들은 고문에 의해서 몸의 힘을 빼앗겼지만, 근대에 와서는
노동을 함으로써 몸의 힘을 생산하는 효율로 전환하게 됩니다. 즉, 몸에 가해지는 권력이
"고통과 억압의 권력"에서 "생산하는 권력"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 이러한 권력 관계를 단순히
수직적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더 나아가 현대사회의 <제도(구조)>안에서 횡적으로 분화된
"담론구조"를 밝혀냅니다.
우리는 몸이 아플때 병원을 방문해 의사와 상담을 합니다.
더불어 대부분의 환자들은 의학지식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의사의 말을 대부분 수용하면서
의사의 지시대로 약도 먹고 음식도 조절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특이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의사는 우리에게 그 어떤 물리적 폭력이나 협박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행동은 거절할수 없는 어떤 <"권력">에 의해 움직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는 제도가 만들어낸 '권력관계'가 너무나 많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즉, 사법적 권력관계를 넘어서서 사회제도(병원, 금융, 군대, 언론, NGO 등)가 생산한 권력관계는
사회 곳곳에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푸코는 이러한 제도영역 안에서 생산되는
전문적 언어양식을 <담론>이라 정의했습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전달하는 의학용어, 경제(금융)전문가의 경제용어, 그리고 법률용어 ... 그래서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에서는 <의학담론>이 생성되고, 이 과정에서 의사는 담론(의학담론)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 ~ ~ 더불어 담론의 주체는 "권력관계"에서 우위에 서게 되고, 이것은 과거 중세시대의
사제들이 소유한 성경해석 능력과 같은 하나의 특권과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하지만 전문적 지식인으로서의 "담론주체" 들이 위협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전문지식이 보편화 되고 대중화 될때인데, 푸코는 이것을 바로 "권력의 해체"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담론이 생성 됩니다. 담론이 권력을 만들어내고, 권력은 다시 담론을 재생산함으로서
권력관계는 지속성을 갖습니다. ... 이렇게 담론과 권력의 연대는 사라지지 않는 필연의 관계에 있습니다.
문제는 현대 사회에 있어서 담론이 미시화 되는 부분인데 ...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대 담론이 사라지고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작아져서 평범한 일상처럼 작동되는 방식입니다. 다시 말해, 담론 자체가
아주 당연시 되어 시민들이 이러한 은폐된 권력관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오늘날의 권력이 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권력이 은폐되었다>라는 의미는 '권력' 자체가 하나의
사회제도가 되고, 구조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원형 모양의 감옥이 하나 있습니다. ... 중앙에 높은 감시탑이 하나 있는데, 이 감시탑은 늘 어둡습니다.
그리고 죄수의 방은 밝게 해놓았는데, 이러한 구조는 감시탑 안에서는 감방안의 죄수들이 항상 보이므로
언제나 감시가 가능하지만, 감방안의 죄수들은 중앙 감시탑의 교도관이 어두워서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따라서
죄수는 교도관이 지금 잠시 자리를 비우거나 잠시 졸더라도 항상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탈옥 같은건 절대로 꿈꾸지 못합니다 ... 이 감옥이 바로 1791년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이
제안한 원형감옥 <판옵티콘(Panopticon)>의 모습입니다.
인간에게 쾌락을 가져다주는 행위가 바로 선이며 옳은 것이라는 윤리관이 "공리주의"입니다.
원형감옥 판옵티콘을 설계한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의 주장인데, 공리주의에서는
사회의 행복은 그 사회의 포함된 개인들 각각의 행복(쾌락)을 모두 합한 것입니다.
많이 들어보셨죠? ...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 입니다. 따라서 공리주의 주장대로라면,
사회의 이익(행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시켜야 합니다.
이를 '자본주의적 의미'로 해석해보면 이렇게 표현할수 있습니다. ~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한마디로 <생산성의 극대화>입니다. ... 그런데 판옵티콘은 이러한 자본주의적 의미에 가장 부합하는
구조를 가진 감옥입니다. 수많은 감방을 감시하는데 있어서 중앙의 감시탑 하나만(교도관 1명) 있으면
모든게 해결이 가능하므로, 이것은 감옥의 구조, 즉 <감시체제(제도)> 자체가 최대의 효과(성과)를
올릴수 있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산물에 가깝다 할수 있는 것입니다.
(사회)제도나 구조가 권력적으로 작동하는 사례는 사람의 <신체>에도 녹아들어 있습니다.
푸코(Foucault)는 근대사회에서 지식과 권력의 목적이 바로 인간을 "표준화" 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표준화 중에서는 인간의 <"신체">에 대한 표준화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신체는 고대나 현대, 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기능이나 (신체)기관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수백년전 사람의 몸이나 오늘날 사람의 몸은 차이가 없다는 것이죠! ... 눈, 코, 입, 손, 발, 내장기관 등
인간의 물리적 "몸" 자체로서는 과거나 현대나 그대로인 것입니다. 하지만 푸코(Foucault)는
<"신체도 하나의 사회제도다!"> 라는 ... 그야말로 푸코(Foucault)식의 정의를 내렸습니다. 무슨말인가 하면,
사람의 신체에는 권력이 주입한 어마어마한 비밀이 일종의 사회제도처럼 어떤 "의미에 엮여 있다" 라는 것입니다.
[@ 18세기 후반에 와서 병사는 만들어질수 있는 어떤 것으로 변했다.
형태가 갖추어지지 않은 진흙, 곧 부적격한 신체가, ...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있는
기계로(인간 기계) 변했다. 자세는 조금씩 교정될수 있는 것이었고, 계획적인 구속이 서서히
신체의 각 부분을 통하여 영위되었고 그것들을 자유롭게 지배하고 신체 전체를 복종시켜
항구적으로 취급 가능하게 만들고, 그리고 자동적인 습관이 되어 암묵리에 남게 되었다.
요컨대 "농민의 요소를 추방하고" ~ 그 대신 "병사의 태도"를 주입시킨 것이다.
- 푸코(Foucault). 감시와 처벌 中 ]
"신체도 하나의 사회제도다!" ... 라는 푸코의 정의는 가까운 일본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좀 더 쉽게 이해할수 있습니다.
1873년 일본에서는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천황의 이름으로 징병제를 도입했는데, 이것은 천황이 직접 지휘하는
군대를 조직화 하는 것으로 ... 농민, 상인, 평민에 관계 없이 만 20세의 남자는 모두 징병 대상이 되어
신체 검사에 합격하면 2년간의 국방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근대 일본의 군대 제도가 정비되기
시작했고, 군대는 메이지 정부의 근간 무력으로서 국내외의 위기 상황에 상당히 중요한 물리력으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근대 일본의 군대 창설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고,
수상과 원로로서 정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때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머릿속에는 <통제(권력)>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는데 ... 하나는 메이지 정부에 반항적이었던 각 번(藩.지역 행정단위)의
사족 병사를 통제하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무장(武裝)과는 거리가 멀었던 농민이나 상인 같은
평민들의 신체를 <표준화> 하는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는 신체에 권력을 주입하는 일,
즉 <"신체의 정치기술(신체의 제도화)">을 아마도 근대 일본사회에서 가장 푸코(Foucault)적으로
잘 이해했던 인물일 것입니다.
단지 몇 개월의 훈련이면 인간의 신체는 재조립 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공포를 느끼는지, 또 어떻게 하면
죽음도 불사하는 강력한 병사가 되는지 등의 신체조작 기술은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강렬한 전쟁(전투) 경험속에서
몸으로 얻어진 것이며 ... 이것은 야마가타의 고유의 기술이자 하나의 강력한 신념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신체의 정치기술"은 ... 이후 일본에서 <체조>의 도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메이지 19년(1886년) 문부대신이었던 모리 아리노리는 <군대식 체조>를 학교 교육현장에 도입하는데,
당시 학생들의 신체를 통제하는 것이 "도덕의 향상"과 "근대적인 국가체제 완성" 이라는 과업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국가주도의 체조 보급은 국민의 건강증진 같은
단순한 목적에 있지 않았습니다. 바로 <"조작가능한 신체"> 혹은 <"순종적인 신체">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 체조는 큰 힘을 기대할수 없는 군대의 신참들을 ... 호령과 함께 일제히 질서정연하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훈련입니다. 근대적 군대에서는 병사들이 개인적인 판단이나 능력 및 임기웅변으로
싸우는게 아니고, 집단속에서 사전에 정해진 작은 역할을 부여받고 신호에 따라 그것을 되풀이해서
반복하는 것입니다. ~ (중략) ~ 체조가 집단 질서를 높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은
이 전술상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평범한 능력의 개인들을 기대이상으로
유효하게 활용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 (건강한 일본사 中) ]
근대 국가에서는 예외없이 국민의 신체를 통제하고 표준화하는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즉 ... 관리하기 쉽고, 순종적인 신체를 만드는 것이 정치적으로 가장 우선시 되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체의 정치기술"은 처음에는 병사들의 신체를 표준화 하였고 ... 이후, 일본에서 모리 아리노리의
군대식 체조가 학교에 보급된 것처럼, 근대 국가에서는 반드시 통제가 필요한 계층과 집단들이 존재 했었는데,
다시말해, <감시와 훈련 및 교정>이 필요한 계층들이었습니다. ... 그들은 바로 광인들과 학교 아이들,
식민지 원주민 등이었고, 나중에는 "생산수단에 구속된 사람들", 즉! ~ <산업사회 노동자들> 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신체를 표준화 하는 작업의 궁극적 목적은 신체의 지배를 통한 정신의 지배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로 중요한 점은, 이러한 신체 지배가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통제를 받고있는 대상들은 자신들이 "통제를 받고있다" 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앞서 의사와 환자와의 담론구조에서 보셨던 것처럼) ~ 이것은 오직 자신의 의지와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결과인 것입니다.(@ 최소한 그들의 의식 속에서는) ... 결론적으로 신체의 표준화(신체의 정치기술)는
아무런 의심없이 대상들 스스로가 권력속으로 걸어 들어가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정치권력은 인간의 "정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장수를 쏘지 말고, 말을 쏘라!" 라는 뜻은
결국 정신의 통제 이전에 신체의 통제를 중요시 하라는 얘기입니다.
1960년대부터 일본의 초.중등 학교에서는 소위 <삼각앉기>, <체육앉기>라는 신체통제가
전국적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삼각앉기는 쭈그려 앉은상태에서 두손으로 무릎을 감싸고
머리(고개)를 무릅에 파묻는 모습입니다] ... 물론 "앉기놀이" 라는 건전한 명칭으로 보급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앉기는 ... 우선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고 있기 때문에 손장난을 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머리를 숙이고 있기 때문에 고개를 좌우로 돌릴수 없어 주의가 산만해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막을수 있으며, 무릎이 가슴부위를 압박해서 깊은 호흡이 어려워져 큰소리를 낼수 없을뿐만 아니라
친구들과의 대화의 단절이 일어납니다 ... 1958년 일본 문부성(교육부서)은 학생들을 따로 집합시키거나
통제가 필요한 상황에서 이러한 자세를 교육시키라고 공지하였습니다 ... 그런데 당시 학생들에게
주입했던 "삼각앉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편안하고 익숙한 몸의 사용법이 되었던 것입니다.
스스로의 몸(팔, 다리)을 수갑처럼 사용하여 자신을 구속하던 갑갑한 자세가 어느순간 부터는 아이들에게
일상의 편안한 상태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 이렇게 권력(사회제도)은 우리의 몸과 정신에 매우 자연스럽게
착근(着根)되고 있었습니다.
"삼각앉기"는 아이들의 몸이 자신들도 모르게 권력(신체의 정치기술)에 예속화 된 것과 같습니다.
몸의 기억은 생각보다 강렬합니다 ... 시간이 지나 <일상처럼> 편안한 상태가 되고, 이제 아이들은 선생님의
"집합!" 이라는 명령이 없어도 언제 어디서나 앉아야할 상황이 되면, 하나의 자발적 주체(주체화)로서
자유롭게 스스로 "편안한상태(삼각앉기)"를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 또한 이렇게 편안한 상태의 삼각앉기가
스스로 느끼고 선택한 하나의 주체적인 행위로 고착화되면, 그들의 자녀들, 즉 다음 세대들부터는 아무런 의심없이
편한상태(삼각앉기)를 기계적이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삼각앉기를 사회적 상식처럼 받아들인다!)
다시말해 이 모든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며, 모두가 본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한 일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작년(2018년) 10월부터 시작된 프랑스 사회의 <노란조끼 시위(Yellow Jackets movement)>가
현재도 우리 언론에 종종 보도되고 있습니다. 시위 역사가 풍부(?)한 프랑스 답게 시위의 '과격성'과 '폭력성'에 대한
지적이 많습니다. ... 더구나 광장에 수백만이 모였음에도 단 한건의 폭력시위도 없이 평화롭게 국가 최고권력까지
무너뜨렸던 경험을 가진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의 시선으로 보면, 프랑스 국민들의 시위행태는 어쩌면
대단히 미개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 그런데 이 지점에서 푸코의 시선을 대입해보면 전혀 다른 양상이 보입니다.
권력이 시위주체에게 행사하는 (시)공간적 규제는 일본의 삼각앉기 및 푸코의 신체에 가하는 폭력(통제)과
궤를 같이 합니다. 권력은 그러한 공간적 규제를 소위 < 평화적 질서유지>라는 좀더 순화된 표현으로
총괄지어 버립니다. 또한 시위 주체가 아닌, 보편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행정권력이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 하려는
노력으로 비춰져 <평화 시위>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시민권리'라는 상위 범주의 보편성을
일종의 도구로 사용하여 공간과 시간을 규제하게 된다면, 그리고 국가(권력)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 이후
모든 시위에 대해 이러한 규제(질서유지)가 반복되어 나타나게 된다면, 두려운 것은 지속적으로 규제의 익숙함만을
요구받게 되면서 시위 주체의 <분노의 이유>가 잊혀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시위 본질>을 망각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분노의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시위는 질서를 유지하는 평화로운 외침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결국 권력에 대한 저항 의지에 무기력함을 주입하고, 동시에 사회 안에서 시위의 내용(본질) 보다는
<시위의 기준(질서유지의 평화적 외침)>이 더 많이 강조되어 자리잡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청 광장에 버스산성으로
공간을 배분하여 한쪽은 시위주체를, 다른 한쪽은 일반적인 시민들로 분리하게 되면, 즉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 하고
질서유지를 위해 공간을 나누게 된다면 ... 결국 시위주체가 아닌 일반적인 시민들은 광장을 지날때마다
버스가 시위주체들과 자신을 철저히 구분지어 놓았기 때문에 ...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같은 병원을 이용하고,
같은 공공요금을 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철저히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버스가 이들을 구분짓지 않았다면 시위자들이 거리로 나오고 일반시민들은 그들과 물리적으로
좀더 근접한 관계안에서 서로 섞이게 되면서 불편과 불만을 하소연 할수도 있습니다.(무질서 양산) ... 하지만 이것은
확실히 "침묵" 보다는 나은 상황이라 생각됩니다. 버스(산성)는 두 개의 세계를 만들었지만, 버스가 없어지면
일반시민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수는 있어도,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시위 주체들과 일반시민들이
같은 공간속에 존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위 주체들과 시민들이 공간을 공동으로 점유하게 되면
권력에게는 하나의 공간속에 무질서하게 섞여있는 시위자들과 시민들을 솎아내야 하는 골아픈 문제도 발생하겠지만,
그보다는 시민들의 불만과 불편이 <"관심(시위의 본질, 저항하는 이유)">으로 전이될 가능성을 더 크게 염려해야
할 것입니다. 권력은 그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행정을 비롯한 통제 가능한 일부의 영역(ex 언론)은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광장에 섞여있는 수많은 독립적 의식 덩어리들은 웬만해선 통제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버스산성 같은 공간의 통제는
결국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의식(정신)의 통제와 그 의미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으며 ... 이것은 앞서 살펴본
일본의 삼각앉기와 푸코의 신체 통제 처럼, 통제에 관한 한 모두가 유사한 프로그램이 사용됐다고 말할수 있을것입니다.
또한 '질서(시위규제)'가 보이지 않는 하나의 '폭력'으로 작용한다고도 말할수 있으며, 이러한 공간의 규제가 반복되고
사회안에서 표준적 시위 방식이 합의된다면 ... 이제부터 시위 주체들은
<"시민들의 보행권을 침해하지 않도록(정해진 공간을 벗어나지 않도록)">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통제하게 될 뿐만 아니라
이러한 권력의 규제 요구에 익숙해 지면서, 배후의 숨은 제도가 권력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의 실체는 파악하지 못하고,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결정되어진 것이라며 조금씩 내면화 시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 평화시위 반대를 주장하는게 아닙니다. ... 우리가 그동안 너무나 당연시해왔던 일들에 대해
한번쯤 고민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다시말해 "사회제도가 암묵적 권력으로 기능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의미라고 봐주시면 되겠습니다.]
담론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권력관계"에서 영원히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설령 담론의 주체가 어렵다면 최소한 담론의 구조라도 스스로 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 그래서
국민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담론질서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무식(無識)과 무지(無知)는 언뜻 비슷한 의미로 생각되지만, 둘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무식은 지식과 정보의 빈곤입니다. ...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는 정보 과잉의 사회입니다.
때문에 무식은 언제든지 극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지는 <알고 싶지 않다> 라는 마음이 지속되는 상태입니다.
푸코의 말대로 (주류)담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단순한 용어의 정의를 안다고 뽑내기 보다는
그러한 용어가 그 사회안에서 어떠한 맥락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더불어 그런 용어가 생산한 담론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권력적으로 기능하는지를 파악하는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 급하게 쓰다보니 맞춤법이 틀린 단어가 있을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있다면 너그럽게 양해 바랍니다. ... 맞춤법을 염려하는 지금 제 모습 또한
어쩌면 제도가 암묵적 권력으로 기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 힘찬 한 주 되십시오.]
(@ 오래전 이슈인에서 한 번 얘기했던 내용입니다. 여기에 몇가지 내용을 추가합니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 서양에서는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면
극형에 처해져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성경이 쉬워지고 누구나 이해할수 있게 되면,
신부등 목회자의 권위가 사라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당시 사제들은 대중에 대해서는
일종의 특권을 가진 권력층 이었고, 이는 오늘날 소수 지배권력층과 다를바 없는 것이었습니다.
중세의 죄수들은 고문에 의해서 몸의 힘을 빼앗겼지만, 근대에 와서는
노동을 함으로써 몸의 힘을 생산하는 효율로 전환하게 됩니다. 즉, 몸에 가해지는 권력이
"고통과 억압의 권력"에서 "생산하는 권력"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 이러한 권력 관계를 단순히
수직적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더 나아가 현대사회의 <제도(구조)>안에서 횡적으로 분화된
"담론구조"를 밝혀냅니다.
우리는 몸이 아플때 병원을 방문해 의사와 상담을 합니다.
더불어 대부분의 환자들은 의학지식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의사의 말을 대부분 수용하면서
의사의 지시대로 약도 먹고 음식도 조절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특이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의사는 우리에게 그 어떤 물리적 폭력이나 협박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행동은 거절할수 없는 어떤 <"권력">에 의해 움직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는 제도가 만들어낸 '권력관계'가 너무나 많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즉, 사법적 권력관계를 넘어서서 사회제도(병원, 금융, 군대, 언론, NGO 등)가 생산한 권력관계는
사회 곳곳에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푸코는 이러한 제도영역 안에서 생산되는
전문적 언어양식을 <담론>이라 정의했습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전달하는 의학용어, 경제(금융)전문가의 경제용어, 그리고 법률용어 ... 그래서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에서는 <의학담론>이 생성되고, 이 과정에서 의사는 담론(의학담론)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 ~ ~ 더불어 담론의 주체는 "권력관계"에서 우위에 서게 되고, 이것은 과거 중세시대의
사제들이 소유한 성경해석 능력과 같은 하나의 특권과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하지만 전문적 지식인으로서의 "담론주체" 들이 위협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전문지식이 보편화 되고 대중화 될때인데, 푸코는 이것을 바로 "권력의 해체"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담론이 생성 됩니다. 담론이 권력을 만들어내고, 권력은 다시 담론을 재생산함으로서
권력관계는 지속성을 갖습니다. ... 이렇게 담론과 권력의 연대는 사라지지 않는 필연의 관계에 있습니다.
문제는 현대 사회에 있어서 담론이 미시화 되는 부분인데 ...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대 담론이 사라지고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작아져서 평범한 일상처럼 작동되는 방식입니다. 다시 말해, 담론 자체가
아주 당연시 되어 시민들이 이러한 은폐된 권력관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오늘날의 권력이 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권력이 은폐되었다>라는 의미는 '권력' 자체가 하나의
사회제도가 되고, 구조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원형 모양의 감옥이 하나 있습니다. ... 중앙에 높은 감시탑이 하나 있는데, 이 감시탑은 늘 어둡습니다.
그리고 죄수의 방은 밝게 해놓았는데, 이러한 구조는 감시탑 안에서는 감방안의 죄수들이 항상 보이므로
언제나 감시가 가능하지만, 감방안의 죄수들은 중앙 감시탑의 교도관이 어두워서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따라서
죄수는 교도관이 지금 잠시 자리를 비우거나 잠시 졸더라도 항상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탈옥 같은건 절대로 꿈꾸지 못합니다 ... 이 감옥이 바로 1791년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이
제안한 원형감옥 <판옵티콘(Panopticon)>의 모습입니다.
인간에게 쾌락을 가져다주는 행위가 바로 선이며 옳은 것이라는 윤리관이 "공리주의"입니다.
원형감옥 판옵티콘을 설계한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의 주장인데, 공리주의에서는
사회의 행복은 그 사회의 포함된 개인들 각각의 행복(쾌락)을 모두 합한 것입니다.
많이 들어보셨죠? ...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 입니다. 따라서 공리주의 주장대로라면,
사회의 이익(행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시켜야 합니다.
이를 '자본주의적 의미'로 해석해보면 이렇게 표현할수 있습니다. ~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한마디로 <생산성의 극대화>입니다. ... 그런데 판옵티콘은 이러한 자본주의적 의미에 가장 부합하는
구조를 가진 감옥입니다. 수많은 감방을 감시하는데 있어서 중앙의 감시탑 하나만(교도관 1명) 있으면
모든게 해결이 가능하므로, 이것은 감옥의 구조, 즉 <감시체제(제도)> 자체가 최대의 효과(성과)를
올릴수 있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산물에 가깝다 할수 있는 것입니다.
(사회)제도나 구조가 권력적으로 작동하는 사례는 사람의 <신체>에도 녹아들어 있습니다.
푸코(Foucault)는 근대사회에서 지식과 권력의 목적이 바로 인간을 "표준화" 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표준화 중에서는 인간의 <"신체">에 대한 표준화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신체는 고대나 현대, 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기능이나 (신체)기관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수백년전 사람의 몸이나 오늘날 사람의 몸은 차이가 없다는 것이죠! ... 눈, 코, 입, 손, 발, 내장기관 등
인간의 물리적 "몸" 자체로서는 과거나 현대나 그대로인 것입니다. 하지만 푸코(Foucault)는
<"신체도 하나의 사회제도다!"> 라는 ... 그야말로 푸코(Foucault)식의 정의를 내렸습니다. 무슨말인가 하면,
사람의 신체에는 권력이 주입한 어마어마한 비밀이 일종의 사회제도처럼 어떤 "의미에 엮여 있다" 라는 것입니다.
[@ 18세기 후반에 와서 병사는 만들어질수 있는 어떤 것으로 변했다.
형태가 갖추어지지 않은 진흙, 곧 부적격한 신체가, ...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있는
기계로(인간 기계) 변했다. 자세는 조금씩 교정될수 있는 것이었고, 계획적인 구속이 서서히
신체의 각 부분을 통하여 영위되었고 그것들을 자유롭게 지배하고 신체 전체를 복종시켜
항구적으로 취급 가능하게 만들고, 그리고 자동적인 습관이 되어 암묵리에 남게 되었다.
요컨대 "농민의 요소를 추방하고" ~ 그 대신 "병사의 태도"를 주입시킨 것이다.
- 푸코(Foucault). 감시와 처벌 中 ]
"신체도 하나의 사회제도다!" ... 라는 푸코의 정의는 가까운 일본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좀 더 쉽게 이해할수 있습니다.
1873년 일본에서는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천황의 이름으로 징병제를 도입했는데, 이것은 천황이 직접 지휘하는
군대를 조직화 하는 것으로 ... 농민, 상인, 평민에 관계 없이 만 20세의 남자는 모두 징병 대상이 되어
신체 검사에 합격하면 2년간의 국방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근대 일본의 군대 제도가 정비되기
시작했고, 군대는 메이지 정부의 근간 무력으로서 국내외의 위기 상황에 상당히 중요한 물리력으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근대 일본의 군대 창설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고,
수상과 원로로서 정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때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머릿속에는 <통제(권력)>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는데 ... 하나는 메이지 정부에 반항적이었던 각 번(藩.지역 행정단위)의
사족 병사를 통제하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무장(武裝)과는 거리가 멀었던 농민이나 상인 같은
평민들의 신체를 <표준화> 하는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는 신체에 권력을 주입하는 일,
즉 <"신체의 정치기술(신체의 제도화)">을 아마도 근대 일본사회에서 가장 푸코(Foucault)적으로
잘 이해했던 인물일 것입니다.
단지 몇 개월의 훈련이면 인간의 신체는 재조립 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공포를 느끼는지, 또 어떻게 하면
죽음도 불사하는 강력한 병사가 되는지 등의 신체조작 기술은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강렬한 전쟁(전투) 경험속에서
몸으로 얻어진 것이며 ... 이것은 야마가타의 고유의 기술이자 하나의 강력한 신념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신체의 정치기술"은 ... 이후 일본에서 <체조>의 도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메이지 19년(1886년) 문부대신이었던 모리 아리노리는 <군대식 체조>를 학교 교육현장에 도입하는데,
당시 학생들의 신체를 통제하는 것이 "도덕의 향상"과 "근대적인 국가체제 완성" 이라는 과업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국가주도의 체조 보급은 국민의 건강증진 같은
단순한 목적에 있지 않았습니다. 바로 <"조작가능한 신체"> 혹은 <"순종적인 신체">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 체조는 큰 힘을 기대할수 없는 군대의 신참들을 ... 호령과 함께 일제히 질서정연하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훈련입니다. 근대적 군대에서는 병사들이 개인적인 판단이나 능력 및 임기웅변으로
싸우는게 아니고, 집단속에서 사전에 정해진 작은 역할을 부여받고 신호에 따라 그것을 되풀이해서
반복하는 것입니다. ~ (중략) ~ 체조가 집단 질서를 높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은
이 전술상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평범한 능력의 개인들을 기대이상으로
유효하게 활용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 (건강한 일본사 中) ]
근대 국가에서는 예외없이 국민의 신체를 통제하고 표준화하는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즉 ... 관리하기 쉽고, 순종적인 신체를 만드는 것이 정치적으로 가장 우선시 되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체의 정치기술"은 처음에는 병사들의 신체를 표준화 하였고 ... 이후, 일본에서 모리 아리노리의
군대식 체조가 학교에 보급된 것처럼, 근대 국가에서는 반드시 통제가 필요한 계층과 집단들이 존재 했었는데,
다시말해, <감시와 훈련 및 교정>이 필요한 계층들이었습니다. ... 그들은 바로 광인들과 학교 아이들,
식민지 원주민 등이었고, 나중에는 "생산수단에 구속된 사람들", 즉! ~ <산업사회 노동자들> 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신체를 표준화 하는 작업의 궁극적 목적은 신체의 지배를 통한 정신의 지배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로 중요한 점은, 이러한 신체 지배가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통제를 받고있는 대상들은 자신들이 "통제를 받고있다" 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앞서 의사와 환자와의 담론구조에서 보셨던 것처럼) ~ 이것은 오직 자신의 의지와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결과인 것입니다.(@ 최소한 그들의 의식 속에서는) ... 결론적으로 신체의 표준화(신체의 정치기술)는
아무런 의심없이 대상들 스스로가 권력속으로 걸어 들어가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정치권력은 인간의 "정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장수를 쏘지 말고, 말을 쏘라!" 라는 뜻은
결국 정신의 통제 이전에 신체의 통제를 중요시 하라는 얘기입니다.
1960년대부터 일본의 초.중등 학교에서는 소위 <삼각앉기>, <체육앉기>라는 신체통제가
전국적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삼각앉기는 쭈그려 앉은상태에서 두손으로 무릎을 감싸고
머리(고개)를 무릅에 파묻는 모습입니다] ... 물론 "앉기놀이" 라는 건전한 명칭으로 보급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앉기는 ... 우선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고 있기 때문에 손장난을 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머리를 숙이고 있기 때문에 고개를 좌우로 돌릴수 없어 주의가 산만해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막을수 있으며, 무릎이 가슴부위를 압박해서 깊은 호흡이 어려워져 큰소리를 낼수 없을뿐만 아니라
친구들과의 대화의 단절이 일어납니다 ... 1958년 일본 문부성(교육부서)은 학생들을 따로 집합시키거나
통제가 필요한 상황에서 이러한 자세를 교육시키라고 공지하였습니다 ... 그런데 당시 학생들에게
주입했던 "삼각앉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편안하고 익숙한 몸의 사용법이 되었던 것입니다.
스스로의 몸(팔, 다리)을 수갑처럼 사용하여 자신을 구속하던 갑갑한 자세가 어느순간 부터는 아이들에게
일상의 편안한 상태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 이렇게 권력(사회제도)은 우리의 몸과 정신에 매우 자연스럽게
착근(着根)되고 있었습니다.
"삼각앉기"는 아이들의 몸이 자신들도 모르게 권력(신체의 정치기술)에 예속화 된 것과 같습니다.
몸의 기억은 생각보다 강렬합니다 ... 시간이 지나 <일상처럼> 편안한 상태가 되고, 이제 아이들은 선생님의
"집합!" 이라는 명령이 없어도 언제 어디서나 앉아야할 상황이 되면, 하나의 자발적 주체(주체화)로서
자유롭게 스스로 "편안한상태(삼각앉기)"를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 또한 이렇게 편안한 상태의 삼각앉기가
스스로 느끼고 선택한 하나의 주체적인 행위로 고착화되면, 그들의 자녀들, 즉 다음 세대들부터는 아무런 의심없이
편한상태(삼각앉기)를 기계적이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삼각앉기를 사회적 상식처럼 받아들인다!)
다시말해 이 모든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며, 모두가 본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한 일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작년(2018년) 10월부터 시작된 프랑스 사회의 <노란조끼 시위(Yellow Jackets movement)>가
현재도 우리 언론에 종종 보도되고 있습니다. 시위 역사가 풍부(?)한 프랑스 답게 시위의 '과격성'과 '폭력성'에 대한
지적이 많습니다. ... 더구나 광장에 수백만이 모였음에도 단 한건의 폭력시위도 없이 평화롭게 국가 최고권력까지
무너뜨렸던 경험을 가진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의 시선으로 보면, 프랑스 국민들의 시위행태는 어쩌면
대단히 미개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 그런데 이 지점에서 푸코의 시선을 대입해보면 전혀 다른 양상이 보입니다.
권력이 시위주체에게 행사하는 (시)공간적 규제는 일본의 삼각앉기 및 푸코의 신체에 가하는 폭력(통제)과
궤를 같이 합니다. 권력은 그러한 공간적 규제를 소위 < 평화적 질서유지>라는 좀더 순화된 표현으로
총괄지어 버립니다. 또한 시위 주체가 아닌, 보편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행정권력이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 하려는
노력으로 비춰져 <평화 시위>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시민권리'라는 상위 범주의 보편성을
일종의 도구로 사용하여 공간과 시간을 규제하게 된다면, 그리고 국가(권력)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 이후
모든 시위에 대해 이러한 규제(질서유지)가 반복되어 나타나게 된다면, 두려운 것은 지속적으로 규제의 익숙함만을
요구받게 되면서 시위 주체의 <분노의 이유>가 잊혀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시위 본질>을 망각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분노의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시위는 질서를 유지하는 평화로운 외침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결국 권력에 대한 저항 의지에 무기력함을 주입하고, 동시에 사회 안에서 시위의 내용(본질) 보다는
<시위의 기준(질서유지의 평화적 외침)>이 더 많이 강조되어 자리잡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청 광장에 버스산성으로
공간을 배분하여 한쪽은 시위주체를, 다른 한쪽은 일반적인 시민들로 분리하게 되면, 즉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 하고
질서유지를 위해 공간을 나누게 된다면 ... 결국 시위주체가 아닌 일반적인 시민들은 광장을 지날때마다
버스가 시위주체들과 자신을 철저히 구분지어 놓았기 때문에 ...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같은 병원을 이용하고,
같은 공공요금을 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철저히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버스가 이들을 구분짓지 않았다면 시위자들이 거리로 나오고 일반시민들은 그들과 물리적으로
좀더 근접한 관계안에서 서로 섞이게 되면서 불편과 불만을 하소연 할수도 있습니다.(무질서 양산) ... 하지만 이것은
확실히 "침묵" 보다는 나은 상황이라 생각됩니다. 버스(산성)는 두 개의 세계를 만들었지만, 버스가 없어지면
일반시민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수는 있어도,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시위 주체들과 일반시민들이
같은 공간속에 존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위 주체들과 시민들이 공간을 공동으로 점유하게 되면
권력에게는 하나의 공간속에 무질서하게 섞여있는 시위자들과 시민들을 솎아내야 하는 골아픈 문제도 발생하겠지만,
그보다는 시민들의 불만과 불편이 <"관심(시위의 본질, 저항하는 이유)">으로 전이될 가능성을 더 크게 염려해야
할 것입니다. 권력은 그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행정을 비롯한 통제 가능한 일부의 영역(ex 언론)은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광장에 섞여있는 수많은 독립적 의식 덩어리들은 웬만해선 통제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버스산성 같은 공간의 통제는
결국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의식(정신)의 통제와 그 의미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으며 ... 이것은 앞서 살펴본
일본의 삼각앉기와 푸코의 신체 통제 처럼, 통제에 관한 한 모두가 유사한 프로그램이 사용됐다고 말할수 있을것입니다.
또한 '질서(시위규제)'가 보이지 않는 하나의 '폭력'으로 작용한다고도 말할수 있으며, 이러한 공간의 규제가 반복되고
사회안에서 표준적 시위 방식이 합의된다면 ... 이제부터 시위 주체들은
<"시민들의 보행권을 침해하지 않도록(정해진 공간을 벗어나지 않도록)">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통제하게 될 뿐만 아니라
이러한 권력의 규제 요구에 익숙해 지면서, 배후의 숨은 제도가 권력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의 실체는 파악하지 못하고,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결정되어진 것이라며 조금씩 내면화 시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 평화시위 반대를 주장하는게 아닙니다. ... 우리가 그동안 너무나 당연시해왔던 일들에 대해
한번쯤 고민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다시말해 "사회제도가 암묵적 권력으로 기능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의미라고 봐주시면 되겠습니다.]
담론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권력관계"에서 영원히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설령 담론의 주체가 어렵다면 최소한 담론의 구조라도 스스로 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 그래서
국민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담론질서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무식(無識)과 무지(無知)는 언뜻 비슷한 의미로 생각되지만, 둘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무식은 지식과 정보의 빈곤입니다. ...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는 정보 과잉의 사회입니다.
때문에 무식은 언제든지 극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지는 <알고 싶지 않다> 라는 마음이 지속되는 상태입니다.
푸코의 말대로 (주류)담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단순한 용어의 정의를 안다고 뽑내기 보다는
그러한 용어가 그 사회안에서 어떠한 맥락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더불어 그런 용어가 생산한 담론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권력적으로 기능하는지를 파악하는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 급하게 쓰다보니 맞춤법이 틀린 단어가 있을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있다면 너그럽게 양해 바랍니다. ... 맞춤법을 염려하는 지금 제 모습 또한
어쩌면 제도가 암묵적 권력으로 기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 힘찬 한 주 되십시오.]
◆재미로 배워보는 금리(단리)와 은행의 시장성수신 이야기 [by. 물파스]
[ 재미로 배워보는 금리(단리)와 은행의 시장성수신 이야기 ]
이자를 계산하는 방법은 재무계산기나 엑셀을 활용하면 간단히 구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기본원리도 알아두신다면, 이자에 대한 자신감이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거라 생각합니다. ... 그래서 먼저 단리이자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 단리 적금이자 공식 = < P(월 납입금) × [n(n+1)/2] × (R/12) >
@ n=개월수, R=연이율
위 공식은 단리 적금의 "이자금액"을 구하는 공식입니다.
그전에 적금과 예금을 먼저 구분하셔야 하는데 ... 적금은 적립저금(積立貯金)의 줄임말입니다.
일정한 기간동안(1년,2년,3년 등) 매월 일정금액을 은행 상품에 불입하는 것입니다.
ex) “철수는 급여일(25일)에 맞춰, 매월25일에 국민은행에 30만원씩 1년동안 돈을 넣기로 했다“
또한 예금은 넓은 의미에서는 은행에 돈을 그냥 넣어두는 것입니다. 여기에 일정 기간동안(1,2,3년 등)
돈을 찾지 않겠다고 계약한다면, 이것을 보통 ‘정기예금(定期預金)’ 이라고 합니다.
ex) "철수는 적금으로 모은 목돈 1,000만원을 국민은행의 정기예금 상품에 1년동안 넣어두기로 했다“
자! ~ 그럼 단리이자공식에 대해서 계속 얘기해 보겠습니다.
은행의 적금상품은 보편적으로 단리이자를 많이 적용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자금유치를 위해
특판형태로 (월)복리상품을 판매하기도 합니다.
그럼 위 공식대로 한 번 단리이자를 계산해 봐야겠습니다.
위에서 철수는 급여일 25일에 맞춰, 매월 30만원씩 1년(12개월)동안 불입하기로 했습니다.
철수가 가입한 적금상품의 이율은 연5% 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 <P(월불입금 30만원) × [(12×13)/2] × (0.05/12)> = 97,500원(세전 이자금액임!)
따라서 매월 30만원씩 12개월동안 불입한 원금은 360만원이며, 여기에 이자금액 97,500원을 합하면
1년뒤 원리금(원금+이자)은 3,697,500원이 됩니다. ... 이것은 철수가 국민은행의 5%, 1년 단리적금에
월 30만원을 불입한 결과인 것입니다.
그럼 왜 저런 공식이 도출되었는지 한번 차분하게 살펴봐야 겠습니다.
[◆ 매월1일에, 1만원을 연이율12%, 1년 단리적금상품에 가입 했을때]
@ (1월1일): 은행에 1만원을 납입합니다. 상품의 가입기간이 1년이기 때문에,
1만원은 1월부터 12월까지 12개월동안 통장에 묶여있는것과 같습니다. 즉 1월1일 납입한 1만원은
1년짜리 정기예금상품에 가입한 것과 마찬가지란 뜻입니다. 그래서 연이율이 12% 이므로
이자는 1,200원이 발생합니다.
@ (2월1일): 은행에 1만원을 납입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11개월동안 통장에 머물러 있습니다.
연이율이 12%이므로, 월 1%의 이자금액 100원이 11번 발생해서, 총 이자금액은 1,100원이 발생합니다.
@ 3월1일에 납입하는 1만원에 대한 이자도 동일한 개념으로 총 발생하는 이자는 1,000원입니다.
@ 11월1일과 12월1일에 납입하는 1만원은 각각 통장에 2달과 1달동안 머물러 있습니다.
따라서 이자금액도 각각 200원과 100원 입니다.
자! ~ 그럼 매월1일에 납입했던 1만원이 통장에 머물러 있는 기간만큼 이자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1월부터 12월까지의 이자금액은 1,200원부터 시작해서 1100, 1000, 900, ...100원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을 모두 더해보면 7,800원 인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법칙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바로 가우스가 발견한 법칙입니다.
이자금액이 1,200원으로 시작해서 100원씩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에 거꾸로 100원으로
시작해서 개월수가 늘어날 때마다 100원씩 증가하는 모습을 덧붙여 더해 본다면, 1,300원이 12개가 됩니다.
그리고 각각의 이자를 두 번 계산했기 때문에 2로 나눠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식에서 N은 개월수 이므로, 적금이 1년8개월(20개월), 2년3개월(27개월) 처럼,
굳이 1년,2년 등의 단위가 아니라도 계산이 가능합니다.
======= ====
[은행의 시장성수신 이야기]
금융기관중 특히 은행의 자금운영 측면을 살펴본다면, 다를 잘 아시겠지만,
국내은행들에게는 아직도 예금과 대출이율의 차이인 예대율 마진이 가장 중요한 수익원중 하나입니다.
고객들이 은행에 예금을 하면, 그것은 은행입장에서 보면 부채가 됩니다. 또한 당연한 얘기지만,
고객이 돈을 돌려달라고 하면(예금해지) 은행은 지체없이 돈을 돌려줘야 합니다. 더불어
감독당국도 은행의 자금운용(대출)을 수시로 점검해야 합니다. 다시말해 고객의 예금기간과
은행의 대출기간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는지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객이 1년짜리 예금에 가입했다면, 은행도 그 돈을 1년짜리 대출에 이용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자금운용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보편적으로 은행의 건전성(안정성)을 평가할 때
유동성비율과 예대율을 대표적인 평가지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유동성비율 = (유동자산/유동부채)
@ 예대율 = (대출/예금)
먼저 유동자산이 100원이고, 유동부채가 100원 이라면 유동성비율은 100%가 됩니다.
이것은 은행이 자기의 보유자산 만으로도 빚을 모두 상환할수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 비율이 50% 라면 자산을 모두 처분해도 빚은 절반 밖에 갚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예대율은 말그대로 고객의 예금으로 대출을 얼마나 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A고객이 100원을 예금했는데, 은행이 그 돈을 전부 B고객에게 대출했다면 예대율은 100%가 됩니다.
부동산 광풍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부동산 시장이 뜨거웠던 2006년 당시
국내 시중은행들의 예대율은 약 125% 수준 이었습니다. ... 고객이 은행에 100원을 맡겼다면
은행은 그 돈으로 약 125원을 대출했다는 것이죠!
2008년 세계금융위기(서브프라임 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및 한국 등도 어느정도 부동산경기의
과열이 진정되기도 했는데, 그 당시(2011년) 기준으로는 예대율이 약 108% 수준으로 낮아졌습니다.
그리고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2012년 7월부터 예대율을 100% 이하로
유지하도록 예대율 규제를 공시했습니다.
객관적 수치를 통해 당시 국내 시중은행들의 예대율 수준을 알아보았는데,
여기서 거론하지 않을수 없는 상당히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 은행들은 보편적으로
자금조달구조가 단기인 반면에 자금운용(대출)은 장기로 하는것이 일반적입니다.
즉 고객들은 1년, 3년, 5년 등의 기간으로 은행에 돈을 맡기지만(수시입출금식 통장 포함)
(@사실 5년은 은행에게는 장기에 속합니다)은행의 주택대출 같은 경우만 보아도
보통은 10년이 넘어갑니다. 따라서 은행은 구조적으로 유동성 리스크에 상당히 취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고객의 예금이 만기가 다 되었다던지, 아니면 해지를 했을때 바로바로 돈을 돌려줘야 하는데
만약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현금화 하기도 쉽지않고, 대출 회수율도 낮아져서 당장 돌려줄 돈이 없는
상황에 처할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통 자산 및 부채의 유동성불일치(mismatch) 라고 하는데 ... 이렇게
은행에게 심각할 정도의 유동성 불일치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면, 은행도 빠른 시간안에 돈을 마련해야 할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은행에게 돈을 빌리기도 하고(@ 여기서 적용되는 이율을 우리는 보통 콜금리라고 합니다)
스왑(swap)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 아니면 은행 자체의 채권을 발행한다던지, 정말 긴급한 상황에서는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들었던 CD라는 양도성예금증서를(보통 90일 ~180일짜리)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 하게 됩니다.
참고로 은행이 이렇게 고객이 맡긴돈이 아닌 방법으로 조달하는 자금을 흔히 <시장성수신>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부동산 경기의 활황국면에서 대출수요는 늘어나는데 빌려줄 돈이 부족하게 된다면 보편적으로 가장먼저
<시장성 수신>이 증가하게 됩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 감독당국의 유동성비율(원화유동성) 기준은
잔존만기 3개월의 원화유동성 이었습니다. 다시말해 원화로 예금한 고객돈을 돌려주기 위해서
은행이 과연 원화자산을 어느정도 보유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는데. 기준은 100%(원화유동성비율) 이상을
유지하도록 한것입니다. 하지만 금융위기이후인 2008년 10월부터는 잔존만기 기준이 1개월로 바뀌게 됩니다.
예대율은 2008년 금융위기때 정점에 올랐다가, 정부의 예대율 규제와 유동성비율을 잔존만기
1개월로 변경하면서 낮아지기 시작해, 그 이후로는 100% 미만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대율을 살펴보면
고객예금의 예금특성(단기,중기,수시,정기 등)이 적절히 반영되지 못해서 위기때 각각의 예금들이 어느정도 속도로
유출될 것인지 파악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남아있었습니다. ... 더불어 유동성비율도 잔존만기를 1개월로 변경하긴 했지만,
은행들이 비율 보고시점인 월말 즈음에 CD(양도성예금증서)나 채권을 새로 발행해서 마련한 자금으로
유동성이 높은 유가증권을 매입 함으로써 유동성 규제인 100% 수준을 편법적으로 충족하는 행태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독기관은 좀더 정확한 은행의 유동성리스크를 평가하기 위해
LMI(liquidity mismatch index) 라는, 소위 "유동성불일치 지표"를 평가기준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 자세한 LMI 지표산출은 얘기가 길어지므로 생략하고, LMI 산출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내용인
자산과 부채의 항목별 가중치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언급하겠습니다.]
[◆ LMI 유동성 가중치 비교]
<자산항목 - 가중치>
(1.00) - 현금, 지급준비금, CD, CP, 콜론
(0.95) - 국채, 통안채, 정부보증회사채 등
(0.50) - 회사채(정부보증 아닌것), 금융채, 주식
(0.35) - 주택담보대출 등
(0.15) - 잔존만기 1년 이내 대출(주택담보대출 제외)
(0.00) - 기타자산
<부채항목 - 가중치>
(1.00) - 잔존만기 1년 이내 시장성수신 및 차입금
(0.50) - 기업예금, 정부 예금
(0.15) - 가계예금
(0.00) - 자본, 잔존만기 1년 초과하는 은행채 및 차입금
======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 고객이 은행에 맡긴돈, 즉 예.적금 등은 은행의 입장에서 보면 부채가 됩니다.
따라서 은행의 유동성 측면에서는(은행경영 측면에서는) 고객에게 빨리 돌려줘야 하는 돈(단기예.적금 등)은
안정성이 떨어집니다. 더불어 예.적금 같은 고객이 맡긴돈이 아닌 은행 자체에서 조달한 자금인
CD(양도성예금증서), 은행채, 콜머니(다른은행에게 빌린돈) 같은 시장성수신 항목 중에서도
잔존만기가 짧은 것은(1년 이내)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한마디로 은행 입장에서는
빨리 돌려줘야(갚아야) 하는 상품일수록 안정성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동성을 평가할 때, 은행이 보유한 많은 자산항목 중에서는 무엇보다도 빚을 갚기위해
자산을 당장 현금으로 만들기 쉬운 자산들이 우수한 자산이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즉
"현금화 가능성이 높은 자산"일수록 좋은 평가를 받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LMI 자료에서 가중치가 가장 높은 자산항목 중에서 콜론이 보입니다. 이것은 예를들면,
우리은행이 국민은행에게 오늘(2019년 1월16일) 하루동안 1억원을 빌려주었다면,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국민은행에게 내일(1월17일) 받을 돈인 대출채권, 즉 자산인 것입니다.
하지만 국민은행 입장에서는 내일(1월17일) 우리은행에게 반드시 갚아야할 돈(부채)인 것입니다.
이렇게 금융기관끼리의 자금거래를 콜거래 라고 하는데, 보통은 1일물(하루) 거래가 대부분입니다.
참고로 돈을 빌려주는 우리은행을 콜론[call loan] 이라고 하고, 돈을 빌리게 되는 국민은행을
콜머니[call money] 라고 합니다. ... 그리고 콜거래에 적용하는 금리를 바로 "콜금리"라고 합니다.
콜거래는 대부분 1일물(하루짜리거래) 거래이기 때문에 위 자료에서도 자산항목(콜론)에서는
거의 현금과 같은 가중치를 부여하고 있고, 부채항목(콜머니)에서도 당장 갚아야할 돈이기 때문에
가장높은 가중치가 부여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도 빚(부채)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것이고, 자산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겁니다.
그래서 부채항목 중에서는 안정성이 떨어지는 항목들에게 좀더 많은 가중치를 부여하고,
자산은 현금화 가능성이 높은 항목들에게 높은 가중치를 부여해서 기존의 단순했던
유동성비율(유동자산/유동부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LMI(유동성불일치 지표)를 활용하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은행들의 자산과 부채항목에서 개별 항목들이 어떤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만
잘 살펴보아도 현재의 금융시장 상황(특히 돈의 장단기 흐름)의 감을 잡을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부동산 시장의 활황으로 CD나 은행채, 1년미만의 RP(환매조건부채권) 등의
시장성수신 등은 꾸준히 증가했으나 위기이후 증가세(비중)는 둔화되었습니다. ...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은행들이 시장성수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위기상황에서는 대응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 따라서 은행들의 시장성수신 규모(비중)가 증가세를 나타낸다면
가계는 되도록이면 현금 보유 비중을 늘리는 것이 좋습니다. ~ 왜냐하면 은행들의 시장성수신에는
위기시 은행의 유동성 위기를 가속화시키는 내부적 요인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일반 국민들의 저축과는 달리 시장성수신에는 금리 외에 "유동성프리미엄"이 포함됩니다.
2008년 금융위기때 이 '유동성 프리미엄'이 급격히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 예를들면 이런 것입니다.
@ 은행(은행채 발행): "우리가 지금 돈이 조금 필요한데, 이자 5% 줄테니 1억원만 빌려줘라!"
@ 투자자: "야! ~니들은 고객이 맡긴 돈으로 이자놀이 하면 되지, 뭔 돈이 또 필요하냐?"
@ 은행: "고객돈 말고, 따로 돈이 조금더 필요해서 그래! ~ 우리 채권좀 매입해줘라!"
@ 투자자: "니들 소문이 안좋던데 ... 그럼 이자 5% 이외에 추가로 2% 더 줘라(유동성프리미엄)"
이렇게 시장성수신에는 금리 이외에 유동성 프리미엄이 포함되기 때문에, 위기 상황이 발생한다면
유동성 프리미엄은 점점 높아지게 됩니다. 이것은 은행의 자금 재조달위험(refinancing risk)이 수반되어
위기대응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위 사례에서 투자자는 금리5%와 유동성프리미엄 2%를
추가로 요구하면서 총 7%의 금리를 원하고 있는데, 만약 채권만기가 도래할 즈음에 서브프라임같은 갑작스런
위기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면, 은행은 투자자에게 7%이자를 포함해 투자원금을 돌려줘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때 은행자금사정이 어려워 채권을 신규발행해서 상환하려 한다면, 이때에는 위기상황 이므로
금리도 5% 수준에서 조금더 올라가겠지만, 무엇보다도 유동성 프리미엄이 더 급격하게 상승해 기존 2% 수준이 아닌,
4%, 5%가 될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이것은 결국 은행의 자금 재조달위험(refinancing risk)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기의 징후가 보인다면, 은행 입장에서는 디레버리징(Deleveraging 부채축소)이나
자금 재조달리스크를 낮추기 위해 가장 먼저 LMI 지표 조정에 들어갑니다. 쉽게 말해 현금화 하기 어려운,
즉 LMI 자산항목 지표상에서 가중치가 낮은 항목 위주로 정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국채, 콜론 등은 금융시장에서
거의 현금과 동등한 대우를 받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지만(@ 손해 안보고 원금 회수 가능),
주식이나 주택담보대출 같은 경우는 주가하락, 고객의 연체나 담보가치 하락 등의 리스크가 존재하기 떄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현금화 시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 흔히 "은행이 시중의 돈 줄을 죈다!"는 의미에는
바로 이런 메커니즘이 숨어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 그리고 만약 은행 자체적으로 해결이 어렵다면
정부가 나서는데 ... 이때에 가장 고전적이고 대표적인 수법(유인정책)이 바로 가계부문의 돈을
은행에 장기로 예치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 기술적으로는 특정 상품에 비과세 혜택을 주는 대신
의무예치기간 설정 하는 제약을 두고(@ 은행에 장기로 돈 예금하면 비과세 혜택줄께!),
은행에게는 그 특정상품에 대한 지준율을 낮춰주는 것입니다. ... 그러면 시장에 돈이 풀리면서
조금은 숨통이 트입니다!
[@ 통계와 자료는 한국은행을 참조했습니다.
짧게 얘기하려 했는데 또 길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도 미세먼지가 많다고 하는데 ~ 다들 건강 잘 챙기십시오]
이자를 계산하는 방법은 재무계산기나 엑셀을 활용하면 간단히 구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기본원리도 알아두신다면, 이자에 대한 자신감이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거라 생각합니다. ... 그래서 먼저 단리이자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 단리 적금이자 공식 = < P(월 납입금) × [n(n+1)/2] × (R/12) >
@ n=개월수, R=연이율
위 공식은 단리 적금의 "이자금액"을 구하는 공식입니다.
그전에 적금과 예금을 먼저 구분하셔야 하는데 ... 적금은 적립저금(積立貯金)의 줄임말입니다.
일정한 기간동안(1년,2년,3년 등) 매월 일정금액을 은행 상품에 불입하는 것입니다.
ex) “철수는 급여일(25일)에 맞춰, 매월25일에 국민은행에 30만원씩 1년동안 돈을 넣기로 했다“
또한 예금은 넓은 의미에서는 은행에 돈을 그냥 넣어두는 것입니다. 여기에 일정 기간동안(1,2,3년 등)
돈을 찾지 않겠다고 계약한다면, 이것을 보통 ‘정기예금(定期預金)’ 이라고 합니다.
ex) "철수는 적금으로 모은 목돈 1,000만원을 국민은행의 정기예금 상품에 1년동안 넣어두기로 했다“
자! ~ 그럼 단리이자공식에 대해서 계속 얘기해 보겠습니다.
은행의 적금상품은 보편적으로 단리이자를 많이 적용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자금유치를 위해
특판형태로 (월)복리상품을 판매하기도 합니다.
그럼 위 공식대로 한 번 단리이자를 계산해 봐야겠습니다.
위에서 철수는 급여일 25일에 맞춰, 매월 30만원씩 1년(12개월)동안 불입하기로 했습니다.
철수가 가입한 적금상품의 이율은 연5% 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 <P(월불입금 30만원) × [(12×13)/2] × (0.05/12)> = 97,500원(세전 이자금액임!)
따라서 매월 30만원씩 12개월동안 불입한 원금은 360만원이며, 여기에 이자금액 97,500원을 합하면
1년뒤 원리금(원금+이자)은 3,697,500원이 됩니다. ... 이것은 철수가 국민은행의 5%, 1년 단리적금에
월 30만원을 불입한 결과인 것입니다.
그럼 왜 저런 공식이 도출되었는지 한번 차분하게 살펴봐야 겠습니다.
[◆ 매월1일에, 1만원을 연이율12%, 1년 단리적금상품에 가입 했을때]
@ (1월1일): 은행에 1만원을 납입합니다. 상품의 가입기간이 1년이기 때문에,
1만원은 1월부터 12월까지 12개월동안 통장에 묶여있는것과 같습니다. 즉 1월1일 납입한 1만원은
1년짜리 정기예금상품에 가입한 것과 마찬가지란 뜻입니다. 그래서 연이율이 12% 이므로
이자는 1,200원이 발생합니다.
@ (2월1일): 은행에 1만원을 납입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11개월동안 통장에 머물러 있습니다.
연이율이 12%이므로, 월 1%의 이자금액 100원이 11번 발생해서, 총 이자금액은 1,100원이 발생합니다.
@ 3월1일에 납입하는 1만원에 대한 이자도 동일한 개념으로 총 발생하는 이자는 1,000원입니다.
@ 11월1일과 12월1일에 납입하는 1만원은 각각 통장에 2달과 1달동안 머물러 있습니다.
따라서 이자금액도 각각 200원과 100원 입니다.
자! ~ 그럼 매월1일에 납입했던 1만원이 통장에 머물러 있는 기간만큼 이자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1월부터 12월까지의 이자금액은 1,200원부터 시작해서 1100, 1000, 900, ...100원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을 모두 더해보면 7,800원 인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법칙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바로 가우스가 발견한 법칙입니다.
이자금액이 1,200원으로 시작해서 100원씩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에 거꾸로 100원으로
시작해서 개월수가 늘어날 때마다 100원씩 증가하는 모습을 덧붙여 더해 본다면, 1,300원이 12개가 됩니다.
그리고 각각의 이자를 두 번 계산했기 때문에 2로 나눠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식에서 N은 개월수 이므로, 적금이 1년8개월(20개월), 2년3개월(27개월) 처럼,
굳이 1년,2년 등의 단위가 아니라도 계산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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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시장성수신 이야기]
금융기관중 특히 은행의 자금운영 측면을 살펴본다면, 다를 잘 아시겠지만,
국내은행들에게는 아직도 예금과 대출이율의 차이인 예대율 마진이 가장 중요한 수익원중 하나입니다.
고객들이 은행에 예금을 하면, 그것은 은행입장에서 보면 부채가 됩니다. 또한 당연한 얘기지만,
고객이 돈을 돌려달라고 하면(예금해지) 은행은 지체없이 돈을 돌려줘야 합니다. 더불어
감독당국도 은행의 자금운용(대출)을 수시로 점검해야 합니다. 다시말해 고객의 예금기간과
은행의 대출기간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는지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객이 1년짜리 예금에 가입했다면, 은행도 그 돈을 1년짜리 대출에 이용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자금운용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보편적으로 은행의 건전성(안정성)을 평가할 때
유동성비율과 예대율을 대표적인 평가지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유동성비율 = (유동자산/유동부채)
@ 예대율 = (대출/예금)
먼저 유동자산이 100원이고, 유동부채가 100원 이라면 유동성비율은 100%가 됩니다.
이것은 은행이 자기의 보유자산 만으로도 빚을 모두 상환할수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 비율이 50% 라면 자산을 모두 처분해도 빚은 절반 밖에 갚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예대율은 말그대로 고객의 예금으로 대출을 얼마나 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A고객이 100원을 예금했는데, 은행이 그 돈을 전부 B고객에게 대출했다면 예대율은 100%가 됩니다.
부동산 광풍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부동산 시장이 뜨거웠던 2006년 당시
국내 시중은행들의 예대율은 약 125% 수준 이었습니다. ... 고객이 은행에 100원을 맡겼다면
은행은 그 돈으로 약 125원을 대출했다는 것이죠!
2008년 세계금융위기(서브프라임 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및 한국 등도 어느정도 부동산경기의
과열이 진정되기도 했는데, 그 당시(2011년) 기준으로는 예대율이 약 108% 수준으로 낮아졌습니다.
그리고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2012년 7월부터 예대율을 100% 이하로
유지하도록 예대율 규제를 공시했습니다.
객관적 수치를 통해 당시 국내 시중은행들의 예대율 수준을 알아보았는데,
여기서 거론하지 않을수 없는 상당히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 은행들은 보편적으로
자금조달구조가 단기인 반면에 자금운용(대출)은 장기로 하는것이 일반적입니다.
즉 고객들은 1년, 3년, 5년 등의 기간으로 은행에 돈을 맡기지만(수시입출금식 통장 포함)
(@사실 5년은 은행에게는 장기에 속합니다)은행의 주택대출 같은 경우만 보아도
보통은 10년이 넘어갑니다. 따라서 은행은 구조적으로 유동성 리스크에 상당히 취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고객의 예금이 만기가 다 되었다던지, 아니면 해지를 했을때 바로바로 돈을 돌려줘야 하는데
만약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현금화 하기도 쉽지않고, 대출 회수율도 낮아져서 당장 돌려줄 돈이 없는
상황에 처할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통 자산 및 부채의 유동성불일치(mismatch) 라고 하는데 ... 이렇게
은행에게 심각할 정도의 유동성 불일치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면, 은행도 빠른 시간안에 돈을 마련해야 할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은행에게 돈을 빌리기도 하고(@ 여기서 적용되는 이율을 우리는 보통 콜금리라고 합니다)
스왑(swap)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 아니면 은행 자체의 채권을 발행한다던지, 정말 긴급한 상황에서는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들었던 CD라는 양도성예금증서를(보통 90일 ~180일짜리)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 하게 됩니다.
참고로 은행이 이렇게 고객이 맡긴돈이 아닌 방법으로 조달하는 자금을 흔히 <시장성수신>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부동산 경기의 활황국면에서 대출수요는 늘어나는데 빌려줄 돈이 부족하게 된다면 보편적으로 가장먼저
<시장성 수신>이 증가하게 됩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 감독당국의 유동성비율(원화유동성) 기준은
잔존만기 3개월의 원화유동성 이었습니다. 다시말해 원화로 예금한 고객돈을 돌려주기 위해서
은행이 과연 원화자산을 어느정도 보유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는데. 기준은 100%(원화유동성비율) 이상을
유지하도록 한것입니다. 하지만 금융위기이후인 2008년 10월부터는 잔존만기 기준이 1개월로 바뀌게 됩니다.
예대율은 2008년 금융위기때 정점에 올랐다가, 정부의 예대율 규제와 유동성비율을 잔존만기
1개월로 변경하면서 낮아지기 시작해, 그 이후로는 100% 미만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대율을 살펴보면
고객예금의 예금특성(단기,중기,수시,정기 등)이 적절히 반영되지 못해서 위기때 각각의 예금들이 어느정도 속도로
유출될 것인지 파악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남아있었습니다. ... 더불어 유동성비율도 잔존만기를 1개월로 변경하긴 했지만,
은행들이 비율 보고시점인 월말 즈음에 CD(양도성예금증서)나 채권을 새로 발행해서 마련한 자금으로
유동성이 높은 유가증권을 매입 함으로써 유동성 규제인 100% 수준을 편법적으로 충족하는 행태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독기관은 좀더 정확한 은행의 유동성리스크를 평가하기 위해
LMI(liquidity mismatch index) 라는, 소위 "유동성불일치 지표"를 평가기준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 자세한 LMI 지표산출은 얘기가 길어지므로 생략하고, LMI 산출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내용인
자산과 부채의 항목별 가중치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언급하겠습니다.]
[◆ LMI 유동성 가중치 비교]
<자산항목 - 가중치>
(1.00) - 현금, 지급준비금, CD, CP, 콜론
(0.95) - 국채, 통안채, 정부보증회사채 등
(0.50) - 회사채(정부보증 아닌것), 금융채, 주식
(0.35) - 주택담보대출 등
(0.15) - 잔존만기 1년 이내 대출(주택담보대출 제외)
(0.00) - 기타자산
<부채항목 - 가중치>
(1.00) - 잔존만기 1년 이내 시장성수신 및 차입금
(0.50) - 기업예금, 정부 예금
(0.15) - 가계예금
(0.00) - 자본, 잔존만기 1년 초과하는 은행채 및 차입금
======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 고객이 은행에 맡긴돈, 즉 예.적금 등은 은행의 입장에서 보면 부채가 됩니다.
따라서 은행의 유동성 측면에서는(은행경영 측면에서는) 고객에게 빨리 돌려줘야 하는 돈(단기예.적금 등)은
안정성이 떨어집니다. 더불어 예.적금 같은 고객이 맡긴돈이 아닌 은행 자체에서 조달한 자금인
CD(양도성예금증서), 은행채, 콜머니(다른은행에게 빌린돈) 같은 시장성수신 항목 중에서도
잔존만기가 짧은 것은(1년 이내)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한마디로 은행 입장에서는
빨리 돌려줘야(갚아야) 하는 상품일수록 안정성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동성을 평가할 때, 은행이 보유한 많은 자산항목 중에서는 무엇보다도 빚을 갚기위해
자산을 당장 현금으로 만들기 쉬운 자산들이 우수한 자산이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즉
"현금화 가능성이 높은 자산"일수록 좋은 평가를 받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LMI 자료에서 가중치가 가장 높은 자산항목 중에서 콜론이 보입니다. 이것은 예를들면,
우리은행이 국민은행에게 오늘(2019년 1월16일) 하루동안 1억원을 빌려주었다면,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국민은행에게 내일(1월17일) 받을 돈인 대출채권, 즉 자산인 것입니다.
하지만 국민은행 입장에서는 내일(1월17일) 우리은행에게 반드시 갚아야할 돈(부채)인 것입니다.
이렇게 금융기관끼리의 자금거래를 콜거래 라고 하는데, 보통은 1일물(하루) 거래가 대부분입니다.
참고로 돈을 빌려주는 우리은행을 콜론[call loan] 이라고 하고, 돈을 빌리게 되는 국민은행을
콜머니[call money] 라고 합니다. ... 그리고 콜거래에 적용하는 금리를 바로 "콜금리"라고 합니다.
콜거래는 대부분 1일물(하루짜리거래) 거래이기 때문에 위 자료에서도 자산항목(콜론)에서는
거의 현금과 같은 가중치를 부여하고 있고, 부채항목(콜머니)에서도 당장 갚아야할 돈이기 때문에
가장높은 가중치가 부여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도 빚(부채)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것이고, 자산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겁니다.
그래서 부채항목 중에서는 안정성이 떨어지는 항목들에게 좀더 많은 가중치를 부여하고,
자산은 현금화 가능성이 높은 항목들에게 높은 가중치를 부여해서 기존의 단순했던
유동성비율(유동자산/유동부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LMI(유동성불일치 지표)를 활용하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은행들의 자산과 부채항목에서 개별 항목들이 어떤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만
잘 살펴보아도 현재의 금융시장 상황(특히 돈의 장단기 흐름)의 감을 잡을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부동산 시장의 활황으로 CD나 은행채, 1년미만의 RP(환매조건부채권) 등의
시장성수신 등은 꾸준히 증가했으나 위기이후 증가세(비중)는 둔화되었습니다. ...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은행들이 시장성수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위기상황에서는 대응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 따라서 은행들의 시장성수신 규모(비중)가 증가세를 나타낸다면
가계는 되도록이면 현금 보유 비중을 늘리는 것이 좋습니다. ~ 왜냐하면 은행들의 시장성수신에는
위기시 은행의 유동성 위기를 가속화시키는 내부적 요인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일반 국민들의 저축과는 달리 시장성수신에는 금리 외에 "유동성프리미엄"이 포함됩니다.
2008년 금융위기때 이 '유동성 프리미엄'이 급격히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 예를들면 이런 것입니다.
@ 은행(은행채 발행): "우리가 지금 돈이 조금 필요한데, 이자 5% 줄테니 1억원만 빌려줘라!"
@ 투자자: "야! ~니들은 고객이 맡긴 돈으로 이자놀이 하면 되지, 뭔 돈이 또 필요하냐?"
@ 은행: "고객돈 말고, 따로 돈이 조금더 필요해서 그래! ~ 우리 채권좀 매입해줘라!"
@ 투자자: "니들 소문이 안좋던데 ... 그럼 이자 5% 이외에 추가로 2% 더 줘라(유동성프리미엄)"
이렇게 시장성수신에는 금리 이외에 유동성 프리미엄이 포함되기 때문에, 위기 상황이 발생한다면
유동성 프리미엄은 점점 높아지게 됩니다. 이것은 은행의 자금 재조달위험(refinancing risk)이 수반되어
위기대응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위 사례에서 투자자는 금리5%와 유동성프리미엄 2%를
추가로 요구하면서 총 7%의 금리를 원하고 있는데, 만약 채권만기가 도래할 즈음에 서브프라임같은 갑작스런
위기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면, 은행은 투자자에게 7%이자를 포함해 투자원금을 돌려줘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때 은행자금사정이 어려워 채권을 신규발행해서 상환하려 한다면, 이때에는 위기상황 이므로
금리도 5% 수준에서 조금더 올라가겠지만, 무엇보다도 유동성 프리미엄이 더 급격하게 상승해 기존 2% 수준이 아닌,
4%, 5%가 될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이것은 결국 은행의 자금 재조달위험(refinancing risk)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기의 징후가 보인다면, 은행 입장에서는 디레버리징(Deleveraging 부채축소)이나
자금 재조달리스크를 낮추기 위해 가장 먼저 LMI 지표 조정에 들어갑니다. 쉽게 말해 현금화 하기 어려운,
즉 LMI 자산항목 지표상에서 가중치가 낮은 항목 위주로 정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국채, 콜론 등은 금융시장에서
거의 현금과 동등한 대우를 받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지만(@ 손해 안보고 원금 회수 가능),
주식이나 주택담보대출 같은 경우는 주가하락, 고객의 연체나 담보가치 하락 등의 리스크가 존재하기 떄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현금화 시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 흔히 "은행이 시중의 돈 줄을 죈다!"는 의미에는
바로 이런 메커니즘이 숨어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 그리고 만약 은행 자체적으로 해결이 어렵다면
정부가 나서는데 ... 이때에 가장 고전적이고 대표적인 수법(유인정책)이 바로 가계부문의 돈을
은행에 장기로 예치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 기술적으로는 특정 상품에 비과세 혜택을 주는 대신
의무예치기간 설정 하는 제약을 두고(@ 은행에 장기로 돈 예금하면 비과세 혜택줄께!),
은행에게는 그 특정상품에 대한 지준율을 낮춰주는 것입니다. ... 그러면 시장에 돈이 풀리면서
조금은 숨통이 트입니다!
[@ 통계와 자료는 한국은행을 참조했습니다.
짧게 얘기하려 했는데 또 길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도 미세먼지가 많다고 하는데 ~ 다들 건강 잘 챙기십시오]
2019년 1월 8일 화요일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다는 것에 관하여 [by 물파스]
[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다는 것에 관하여 ]
최초의 순간 ~ '나의 삶' 이라는 발주처로부터 부여받은 첫 번째 임무는
다름 아닌 고독입니다. 그래서 고독은 '본인 삶'이라는 원청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영원의 책무입니다.
[◆ 한 번도 젖을 먹어 본 적이 없는 아기를 상상해 보라
배가 고프게 되고 그 아기는 무엇인가를 마음에 그리려 하고 있다.
그 아기는 욕구로부터 만족의 근원을 창조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아기가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그 이전의
경험이 없다. 그 순간에 엄마가, 아기가 무엇인가를 기대하려고
하는 곳에 젖가슴을 갖다 놓는다면, 그리고 유아가 오랫동안
입과 손으로 또한 후각으로 볼록한 젖가슴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아기는 거기서 발견된 것을 바로 자기가 "창조"한 것으로 경험한다.
- (울타리와 공간. 59페이지 / 마델레인 데이비스/ 한국심리치료연구소) ]
'울타리와 공간'은 세계적인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캇(Donald W. Winnicott, 1896-1971)의
이론을 설명한 책입니다. 프로이트 이후 가장 사랑받는 정신분석학자라는 위니캇은 한 개인의
삶의 타임라인에서 특히 유아기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한 정신분석학자였습니다.
아기는 자신의 욕구와 탐욕이 엄마의 젖가슴이라는 실재와 만나면 냄새와 맛, 촉감 등을
어딘가에 기록함과 동시에 그 욕구와 탐욕의 충족을 아기 자신이 창조한 것이라는 환상을 갖게 됩니다.
이후 아기는 엄마에게서 젖을 떼기 전까지 수천 번 외적 실재에 대한 소개를 받습니다.(젖과 젖가슴의 경험)
이 과정에서 아기는 수천 번 자신이 원하던 것을 창조하고, 그렇게 새로운 창조 때마다
실재(엄마의 젖가슴)가 그곳에 항상 존재한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한마디로 세상(실제 세계)은
아기 자신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언제나 존재하는 공간임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죠. 그 결과 아기는
내적 실재(욕구, 탐욕)와 외적 실재(엄마의 젖가슴) 사이에, 그리고 타고난 근원적 창조성과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일반적 세상 사이에는 소위 '살아있는 관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세상(현실)은 여백 없이 타인과의 소통과 교감으로만 가득 채워져 있는 숨 막히는 공간인 것입니다.
이쯤 되면 아기가 인식하는 세상에는 '고독'의 의미가 부여될 수 없습니다. ... 다만 아기가 최초로
엄마의 젖가슴을 경험하기 바로 이전의 상황이 아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험하는 고독의 원초적
의미인 것입니다.
성인이 되기 전, 우리는 많은 종류의 어른과 제도로부터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배려와 양보라는 긍정의 메시지를 삶의 심연에 단단히 내면화하기를 끊임없이 강요받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로 ... 우리는 다시 수많은 사회로부터 원만한 대인관계와 융통성 같은 처세의 달관을
요구당하며 '정치적 인간되기'를 부지런히 ~ 참으로 부지런히 시도합니다.
'정치적 인간되기'는 사실은 '수직형 인간' 또는 '체제 순응형 인간'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리고 사회는 우리에게 그런 인간형이 바로 어른의 전범(典範)이라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결국 고독을 부여한 최초 삶의 원청은 '현실'이라는 군락에서 우리 모두가 고독을 잊고
체제 순응적으로 아름답게 꽃피우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그래서 고독은 타인과의 교감과
소통에 의해 시나브로 파괴되어야 할 하청(현실적 삶)의 거친 책무로 재정의 됩니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우리가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모든 타인은 언제든 지옥의 조건으로
변할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보편적으로 사람이 무서워지면 관계는 지옥으로 향합니다. 때문에
타인과의 소통과 교감이라는 하청의 책무는 지옥 속에서 차갑게 녹아 흐르는 고독의 증발을
목격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운 좋게 만나는 '고독'이라는 상태는 지옥을 벗어나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물하기도 합니다.
타인을 향해 허리를 90도로 굽혀야 합니다.
타인의 멱살을 잡고 욕설을 퍼붓기도 합니다.
타인의 만족을 위해 노래 부르며 역겨운 춤을 춰야 할 때도 있습니다.
타인의 성공담과 무용담에 기계적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합니다.
타인의 가족이 나의 가족보다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타인은 소통과 교감의 대상이 아니라 형식과 절차의 대상이 된지 오래입니다.
타인과의 소통과 교감이라는 것들의 정체는 대개는 바로 이런 지옥의 조건 속에서 성립됩니다.
이곳에서 타인들은 구체적 신화를 만듭니다. ... '성공의 신화', '부자의 신화', '정치의 신화',
'아파트 신화', '창업의 신화' ... 이렇게 생산된 군락의 신화들은 지옥의 조건을 강화하고, 그래서
소통과 교감의 장막 아래는 시기와 질투, 증오와 혐오로 점철된 뜨거운 분열이 조용하고 위태롭게 흐릅니다.
이러한 이유로 현실은 우리에게 굴복을 요구하고, 저항을 부추기며, 자신을 위선으로 포장하라
유혹적으로 속삭입니다. 그것만이 현실의 군락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가장 합리적 방법이며,
그래야만 소통과 교감에 나름의 명분과 정당성이 확보되기 때문입니다. ... 더불어 마르크스는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 라는 섬뜩한 통찰로 이를 증명합니다.
고독은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혼자 있는 것'과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독방에 갇힌 죄수는 혼자가 되지만, 어쩌면 그는 홀로 있는 걸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즉
'홀수 있을 수 있는 능력'이 부재한 죄수일지도 모릅니다. 이때에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고독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이 힘을 발휘합니다.
체제 순응형 인간은 군락에서의 추방이 두려운 자들입니다. 추방이 두려운 자들은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자들입니다. 결국 고독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자들의 최선은 본인 삶의
대부분을 지옥의 조건 속에서 부지런히 ~ 참으로 부지런히 원만한 대인관계와 처세의 달관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탐구하는 일 만큼이나 섹스(S.ex)가 중요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타인과의 소통과 교감만큼이나 <고독을 즐기는 것>이 삶에서 꽤나 의미가 있고, 또한
한번은 본인 인생에서 반드시 필요한 책무라는 사실에는 관심이 덜합니다. ... 우리에게 고독이
필요한 이유는 현실의 군락에서 의무적으로 체제 순응적 꽃을 피우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 === ===
[◆ 폐암으로 죽은 내 주인 여자는 유언 대신 침을 뱉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노랗고 끈적끈적한
그 타액을 떠올린다. ~ (중략) ~ 침은 야성으로 빛나며 자유라고 외쳐댔다.
- 박판식. <서광> (시작, 2005년 여름호) ]
=== === ===
죽어가는 이들은 모두가 외롭습니다. ... 평론가들은 박판식의 시에서 몽환과 허무를 보았지만,
나는 진정한 자유를 품고 있는 고독의 극단을 봅니다. 고독하게 태어나서 고독하게 죽어갈 때
유언이라는 마지막 소통의 창구를 초월하며 여자는 침을 뱉습니다. ... 그리고 시의 마지막 구절
'침은 야성으로 빛나며 자유라고 외쳐댔다'
고독이 ... 그리고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이 극단에 이르면, 단 한 방울의 침으로도 자유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침은 날카롭게 이미지화되어 자기를 가둔 세계를 꿰뚫고 앞으로 전진 하려는
역동적 욕망을 그려냅니다. 그리고 이 역동성은 <사유의 전진>으로 이어집니다. ... 이는 마치
헤세의 데미안에서 자신의 세계를 뚫고 나오려는 알속의 새의 몸부림과 유사합니다.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면 알 속의 새는 자신의 껍질(기존의 인식 틀)을 뚫고 나와 새로운 세계와 조우해야 합니다.
설령 그것이 죽어가는 순간일지라도 말이죠. 그래서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다는 건,
군락에서 꽃을 피우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빛나고 또 의미 있는 일입니다.
[◆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 – (데미안. 123페이지/ 헤르만 헤세/ 민음사) ]
타인과의 소통과 교감의 풍요는 간혹 잘 된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잣대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민주주의의 끄트머리에서 고독은 자신의 농도를 더해갑니다. 때문에 한편으로
잘 된 민주주의는 고독이라는 소외된 공신에게 큰 빚을 졌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군락에서 체제 순응적으로 꽃을 피우기 위해 ... 그리고 잘 된 민주주의를 위해
2018년 마지막 공간에서 나는 소용이 없는 몇 개의 전화번호를 지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밑이 바뀔 때마다 계속해서 몇 개의 번호를 지우다보면, 어떤 세밑 즈음에 다다르면
더 이상 지울 번호가 없는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 그럼 그때엔 나는 진정으로
완벽히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인간이 되어있을까 참으로 궁금합니다. ... 물론 이러한
물리적이며 자발적인 망각의 행위가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나를 포함, 모두는 서툴게 지쳐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말하고 싶습니다.
< 타인이 곧 지옥이다 – 사르트르(Jean-Paul Sartre) >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건, 그래서 고독을 즐길 수 있다는 건
타인과의 소통과 교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당연히 소통과 교감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소통과 교감 능력이 부족한 자는 단순히 공감의 수치가 낮은 자들일 뿐입니다. ... 때문에
사르트르의 말이 진리라면 ~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 즉 고독을 소유할 수 있다는 건
한 개인에게는 아주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독은 타인과의 소통과 교감을 진즉이 초월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고독은 상시적으로 지옥을 견디는 힘이 내재된 상태인 것입니다.
위니캇의 설명처럼 한 번도 엄마 젖을 경험한 적이 없는 아기는 <원초적 고독상태>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아기의 고독상태는 모든 외적 실재(타인)와의 관계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습니다. 교감과 소통을 넘고,
타인을 초월해 이 모든 것을 아기 자신의 주관대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은 바로 이러한 아기의 <원초적 고독상태>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어느새 나는 2018년 마지막 공간에 서있는 신세입니다. ... 또한 <원초적 고독상태>를 추구할 만한
처지가 안 되다보니, 그래서 죽는 순간 유언 대신 야성으로 침 뱉기를 통해 자유를 갈구하는 꿈을 꿔 봅니다.
삶에서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다는 것이 비록 쉬운 일은 아니지만, 소통과 교감능력을 배양하는
현실의 삶(군락의 삶)이 수고스럽고 또 꾸준하게 우리 내면을 통해 삶의 민낯을 지옥의 메시지로 바꿔 전해주는
사려 깊은 친절함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체제 순응형 인간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018년 한 해 동안, <원초적 고독상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삶의 공백을
이슈인이라는 풍요로운 군락에서 놀다가는 것도 하청의 큰 복이라 생각됩니다. ~ 아무튼 잘 놀다 갑니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은 ~ 이 곳을 스쳐가는 모든 인연들에게
주체할수 없는 행복이 넘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더불어
모두가 '홀로 있을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는 한 해가 되기를 추가로 기원해 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최초의 순간 ~ '나의 삶' 이라는 발주처로부터 부여받은 첫 번째 임무는
다름 아닌 고독입니다. 그래서 고독은 '본인 삶'이라는 원청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영원의 책무입니다.
[◆ 한 번도 젖을 먹어 본 적이 없는 아기를 상상해 보라
배가 고프게 되고 그 아기는 무엇인가를 마음에 그리려 하고 있다.
그 아기는 욕구로부터 만족의 근원을 창조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아기가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그 이전의
경험이 없다. 그 순간에 엄마가, 아기가 무엇인가를 기대하려고
하는 곳에 젖가슴을 갖다 놓는다면, 그리고 유아가 오랫동안
입과 손으로 또한 후각으로 볼록한 젖가슴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아기는 거기서 발견된 것을 바로 자기가 "창조"한 것으로 경험한다.
- (울타리와 공간. 59페이지 / 마델레인 데이비스/ 한국심리치료연구소) ]
'울타리와 공간'은 세계적인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캇(Donald W. Winnicott, 1896-1971)의
이론을 설명한 책입니다. 프로이트 이후 가장 사랑받는 정신분석학자라는 위니캇은 한 개인의
삶의 타임라인에서 특히 유아기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한 정신분석학자였습니다.
아기는 자신의 욕구와 탐욕이 엄마의 젖가슴이라는 실재와 만나면 냄새와 맛, 촉감 등을
어딘가에 기록함과 동시에 그 욕구와 탐욕의 충족을 아기 자신이 창조한 것이라는 환상을 갖게 됩니다.
이후 아기는 엄마에게서 젖을 떼기 전까지 수천 번 외적 실재에 대한 소개를 받습니다.(젖과 젖가슴의 경험)
이 과정에서 아기는 수천 번 자신이 원하던 것을 창조하고, 그렇게 새로운 창조 때마다
실재(엄마의 젖가슴)가 그곳에 항상 존재한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한마디로 세상(실제 세계)은
아기 자신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언제나 존재하는 공간임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죠. 그 결과 아기는
내적 실재(욕구, 탐욕)와 외적 실재(엄마의 젖가슴) 사이에, 그리고 타고난 근원적 창조성과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일반적 세상 사이에는 소위 '살아있는 관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세상(현실)은 여백 없이 타인과의 소통과 교감으로만 가득 채워져 있는 숨 막히는 공간인 것입니다.
이쯤 되면 아기가 인식하는 세상에는 '고독'의 의미가 부여될 수 없습니다. ... 다만 아기가 최초로
엄마의 젖가슴을 경험하기 바로 이전의 상황이 아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험하는 고독의 원초적
의미인 것입니다.
성인이 되기 전, 우리는 많은 종류의 어른과 제도로부터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배려와 양보라는 긍정의 메시지를 삶의 심연에 단단히 내면화하기를 끊임없이 강요받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로 ... 우리는 다시 수많은 사회로부터 원만한 대인관계와 융통성 같은 처세의 달관을
요구당하며 '정치적 인간되기'를 부지런히 ~ 참으로 부지런히 시도합니다.
'정치적 인간되기'는 사실은 '수직형 인간' 또는 '체제 순응형 인간'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리고 사회는 우리에게 그런 인간형이 바로 어른의 전범(典範)이라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결국 고독을 부여한 최초 삶의 원청은 '현실'이라는 군락에서 우리 모두가 고독을 잊고
체제 순응적으로 아름답게 꽃피우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그래서 고독은 타인과의 교감과
소통에 의해 시나브로 파괴되어야 할 하청(현실적 삶)의 거친 책무로 재정의 됩니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우리가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모든 타인은 언제든 지옥의 조건으로
변할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보편적으로 사람이 무서워지면 관계는 지옥으로 향합니다. 때문에
타인과의 소통과 교감이라는 하청의 책무는 지옥 속에서 차갑게 녹아 흐르는 고독의 증발을
목격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운 좋게 만나는 '고독'이라는 상태는 지옥을 벗어나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물하기도 합니다.
타인을 향해 허리를 90도로 굽혀야 합니다.
타인의 멱살을 잡고 욕설을 퍼붓기도 합니다.
타인의 만족을 위해 노래 부르며 역겨운 춤을 춰야 할 때도 있습니다.
타인의 성공담과 무용담에 기계적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합니다.
타인의 가족이 나의 가족보다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타인은 소통과 교감의 대상이 아니라 형식과 절차의 대상이 된지 오래입니다.
타인과의 소통과 교감이라는 것들의 정체는 대개는 바로 이런 지옥의 조건 속에서 성립됩니다.
이곳에서 타인들은 구체적 신화를 만듭니다. ... '성공의 신화', '부자의 신화', '정치의 신화',
'아파트 신화', '창업의 신화' ... 이렇게 생산된 군락의 신화들은 지옥의 조건을 강화하고, 그래서
소통과 교감의 장막 아래는 시기와 질투, 증오와 혐오로 점철된 뜨거운 분열이 조용하고 위태롭게 흐릅니다.
이러한 이유로 현실은 우리에게 굴복을 요구하고, 저항을 부추기며, 자신을 위선으로 포장하라
유혹적으로 속삭입니다. 그것만이 현실의 군락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가장 합리적 방법이며,
그래야만 소통과 교감에 나름의 명분과 정당성이 확보되기 때문입니다. ... 더불어 마르크스는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 라는 섬뜩한 통찰로 이를 증명합니다.
고독은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혼자 있는 것'과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독방에 갇힌 죄수는 혼자가 되지만, 어쩌면 그는 홀로 있는 걸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즉
'홀수 있을 수 있는 능력'이 부재한 죄수일지도 모릅니다. 이때에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고독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이 힘을 발휘합니다.
체제 순응형 인간은 군락에서의 추방이 두려운 자들입니다. 추방이 두려운 자들은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자들입니다. 결국 고독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자들의 최선은 본인 삶의
대부분을 지옥의 조건 속에서 부지런히 ~ 참으로 부지런히 원만한 대인관계와 처세의 달관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탐구하는 일 만큼이나 섹스(S.ex)가 중요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타인과의 소통과 교감만큼이나 <고독을 즐기는 것>이 삶에서 꽤나 의미가 있고, 또한
한번은 본인 인생에서 반드시 필요한 책무라는 사실에는 관심이 덜합니다. ... 우리에게 고독이
필요한 이유는 현실의 군락에서 의무적으로 체제 순응적 꽃을 피우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 === ===
[◆ 폐암으로 죽은 내 주인 여자는 유언 대신 침을 뱉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노랗고 끈적끈적한
그 타액을 떠올린다. ~ (중략) ~ 침은 야성으로 빛나며 자유라고 외쳐댔다.
- 박판식. <서광> (시작, 2005년 여름호) ]
=== === ===
죽어가는 이들은 모두가 외롭습니다. ... 평론가들은 박판식의 시에서 몽환과 허무를 보았지만,
나는 진정한 자유를 품고 있는 고독의 극단을 봅니다. 고독하게 태어나서 고독하게 죽어갈 때
유언이라는 마지막 소통의 창구를 초월하며 여자는 침을 뱉습니다. ... 그리고 시의 마지막 구절
'침은 야성으로 빛나며 자유라고 외쳐댔다'
고독이 ... 그리고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이 극단에 이르면, 단 한 방울의 침으로도 자유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침은 날카롭게 이미지화되어 자기를 가둔 세계를 꿰뚫고 앞으로 전진 하려는
역동적 욕망을 그려냅니다. 그리고 이 역동성은 <사유의 전진>으로 이어집니다. ... 이는 마치
헤세의 데미안에서 자신의 세계를 뚫고 나오려는 알속의 새의 몸부림과 유사합니다.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면 알 속의 새는 자신의 껍질(기존의 인식 틀)을 뚫고 나와 새로운 세계와 조우해야 합니다.
설령 그것이 죽어가는 순간일지라도 말이죠. 그래서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다는 건,
군락에서 꽃을 피우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빛나고 또 의미 있는 일입니다.
[◆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 – (데미안. 123페이지/ 헤르만 헤세/ 민음사) ]
타인과의 소통과 교감의 풍요는 간혹 잘 된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잣대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민주주의의 끄트머리에서 고독은 자신의 농도를 더해갑니다. 때문에 한편으로
잘 된 민주주의는 고독이라는 소외된 공신에게 큰 빚을 졌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군락에서 체제 순응적으로 꽃을 피우기 위해 ... 그리고 잘 된 민주주의를 위해
2018년 마지막 공간에서 나는 소용이 없는 몇 개의 전화번호를 지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밑이 바뀔 때마다 계속해서 몇 개의 번호를 지우다보면, 어떤 세밑 즈음에 다다르면
더 이상 지울 번호가 없는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 그럼 그때엔 나는 진정으로
완벽히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인간이 되어있을까 참으로 궁금합니다. ... 물론 이러한
물리적이며 자발적인 망각의 행위가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나를 포함, 모두는 서툴게 지쳐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말하고 싶습니다.
< 타인이 곧 지옥이다 – 사르트르(Jean-Paul Sartre) >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건, 그래서 고독을 즐길 수 있다는 건
타인과의 소통과 교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당연히 소통과 교감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소통과 교감 능력이 부족한 자는 단순히 공감의 수치가 낮은 자들일 뿐입니다. ... 때문에
사르트르의 말이 진리라면 ~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 즉 고독을 소유할 수 있다는 건
한 개인에게는 아주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독은 타인과의 소통과 교감을 진즉이 초월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고독은 상시적으로 지옥을 견디는 힘이 내재된 상태인 것입니다.
위니캇의 설명처럼 한 번도 엄마 젖을 경험한 적이 없는 아기는 <원초적 고독상태>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아기의 고독상태는 모든 외적 실재(타인)와의 관계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습니다. 교감과 소통을 넘고,
타인을 초월해 이 모든 것을 아기 자신의 주관대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은 바로 이러한 아기의 <원초적 고독상태>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어느새 나는 2018년 마지막 공간에 서있는 신세입니다. ... 또한 <원초적 고독상태>를 추구할 만한
처지가 안 되다보니, 그래서 죽는 순간 유언 대신 야성으로 침 뱉기를 통해 자유를 갈구하는 꿈을 꿔 봅니다.
삶에서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다는 것이 비록 쉬운 일은 아니지만, 소통과 교감능력을 배양하는
현실의 삶(군락의 삶)이 수고스럽고 또 꾸준하게 우리 내면을 통해 삶의 민낯을 지옥의 메시지로 바꿔 전해주는
사려 깊은 친절함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체제 순응형 인간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018년 한 해 동안, <원초적 고독상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삶의 공백을
이슈인이라는 풍요로운 군락에서 놀다가는 것도 하청의 큰 복이라 생각됩니다. ~ 아무튼 잘 놀다 갑니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은 ~ 이 곳을 스쳐가는 모든 인연들에게
주체할수 없는 행복이 넘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더불어
모두가 '홀로 있을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는 한 해가 되기를 추가로 기원해 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18년 11월 27일 화요일
◆ 스왑(SWAP)과 외환거래 메커니즘에 대하여 [by. 물파스] [+댓]
[◆ 스왑(SWAP)과 외환거래 메커니즘에 대하여 ]
지난 30~40년 동안 진행되어온 신자유주의체제하에서
세계의 금융 산업은 (굴곡이 많았지만)그야말로 눈부신 성장을 이뤘습니다.
금융(산업)에 대한 개별 국가들의 내적규제가 완화되었고, 국가 간의 자본이동 또한 탈규제가
정답인 것처럼 자본은 세계를 마치 하나의 시장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금융은 전문가만이 한다!> ... 라는 주장은 금융(특히 외환)을 알고자 하는 많은 적극적인 분들에게
일종의 암묵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소위 그 '(금융)전문가'라는 집단은
전문용어 몇 개와 숫자적 복잡성을 이용해 자신들의 금융의 독점적 권위를 지속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고 금융이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라면처럼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접근성 좋은
대상이라는 건 절대 아닙니다. ... 다만 누군가(전문가)의 전유물로서 오직 그들(전문가)만이 유일하게
독점적 권위를 누릴만한 가치가 있다는 편견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올려봅니다.
(1997년 IMF 위기에 대한 내용은 전에도 많이 언급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외환시장' 자체에 대해,
특히 스왑거래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 1997년 금융위기는 '외환위기'였습니다.
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아시다시피 기축통화인 달러($)의 부족때문이었는데
이러한 달러의 부족은 결국 <외환관리>로 연결되며, 외환관리는 다시 <외환거래 메커니즘>이라는
국제적 금융질서로 이어집니다. ...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경제는 아무리 현재의 기초적 경제여건이
양호하다고 해도 원화(\)가 국제통화가 아닌이상은 외부충격, 특히 <환율변동>에 상시적으로
취약(민감)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부터 벌써 2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늘날 외환시장의 거래 메커니즘은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복잡, 다양화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 <스왑(SWAP)> 시장의 성장은 놀라울 정도이며, 작금의 외환시장은 이제 스왑을 빼놓고는
외환시장의 거래 메커니즘 자체를 논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스왑의 기초적 개념과
스왑거래가 오늘날 세계 외환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으며, 또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 당연히 분량이 엄청나게 많아질텐데, 그래서 이야기는 3편으로 나눠서
3일동안 시리즈로 이어갈 볼 생각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국제금융 시장에서 스왑(SWAP)만큼 급속한 성장을 한 시장은 없을 겁니다. ... 또한 향후에도
스왑시장은 그 규모와 질적(다양성)인 부분에서 지속적인 성장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선물과 옵션 같은 파생상품거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각자의 공신력 있는 <거래소>를 통해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흔히 <장내파생상품> 거래라고 하는데 ... 여기서 <거래소>가 존재한다는 얘기는
계약이 <표준화> 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장내거래>는 대부분의 거래가 정형화된
규칙(Rule)과 틀에 고정되어 있어 거래의 안전은 담보할 수 있어도 다양성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 그러나 스왑(swap)거래는 은행(상업, 투자)과 보험 등의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기업과 정부(국가), 국제기구 등 다양한 거래주체들이 환율과 금리, 상품, 주가, 자본비용,
재정거래, 합성증권 등 그 활용도(융통성) 측면, 즉 각각의 거래주체들의 (개별)거래목적에 따라
거래형태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거래의 다양성 측면에서 장내거래(선물.옵션) 보다
훨씬 더 선택의 폭이 넓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다만 각각의 거래주체들의 특수목적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아 표준적인 계약형태를 벗어나 거래형태를 변형시키는 수정조항이 많아지고, 이 때문에
관계서류가 복잡해져서 거래형태가 고정되어 있는 <장내거래>보다 비용이 많이 들고, 유동성 또한
낮아지는 경우가 잦습니다. 그래서 스왑(Swap)은 보통 <장외파생상품(장외거래)>으로 분류합니다.
[@ 스왑거래에서는 “금융기관”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이 부분은 뒤에서 자세히 설명합니다.]
스왑의 출발은 1970년대 초에 미국과 영국 사이에서 활발히 거래되었던 평행대출(parallel lone)과
국제상호직접대출(백투백대출.back to back lone)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에 많은 국가에서는 외환통제가 상당히 엄격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금융기관이나 해외지사를 둔 거대기업들 입장에서는 외환통제를 피하기 위해 다방면의
방법들을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평행대출과 상호직접대출은 이때에 가장 활발히 활용되었던 수단
이었습니다.
그럼 먼저 <◆직접대출>의 현금흐름부터 살펴봅니다.(ex. 미국 GM과 한국 삼성전자 비교)
@ [미국영토] = [ 미국에 있는 GM본사가 한국에 있는 GM 자회사에게 달러($)를 대출함. ]
@ [한국영토] = [ 한국에 있는 삼성전자 본사가 미국에 있는 삼성전자 자회사에게 원화를 대출함. ]
가장 기본적인 <직접대출>의 현금흐름입니다.
미국에 본사가 있는 GM은 한국에 있는 GM 자회사에 돈을 보내기 위해서는 외환에 대한 규제와
패널티를 감수 하고서라도 자국 화폐인 달러($)를 직접 한국으로 송금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삼성전자 본사도 미국 삼성전자 자회사에 우리 돈 원화(\)를 직접 송금해야 합니다.
또한 한국의 GM 자회사는 본사로부터 받은 달러($)를 한국에서는 원화(\)로 바꿔서 써야하고,
미국의 삼성전자 자회사도 본사로부터 받은 원화를 미국에서 쓰기 위해서는 다시 달러($)로 바꿔서
사용해야 합니다. ... 그래야만 각자 현지의 건물 사용료(임대료)나 인건비(현지인) 등을 지불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GM과 삼성전자는 왜 이런 불편한 절차를 거쳐 자회사에게 돈을 보내려는 걸까?
그냥 현지의 자회사들이 각자 현지 은행들에게 직접 대출받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한번쯤 이런 의문을 가져볼 수도 있을 겁니다.
보편적으로 모회사(본사)는 (현지)자회사보다 신용면에서 더 높게 평가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매출과 자본규모, 업력 등에서 대부분 모회사가 자회사보다 월등히 앞서기 때문에 차입비용을
따져본다면 모회사의 신용으로 대출받아 자회사에게 돈을 보내는 것이 경영전략상 훨씬 더 유리하다
할 수 있습니다. (대출)이자가 훨씬 적게 든다는 뜻이지요 ~ 이러한 이유 때문에 1970년대 초에는
다국적 기업들이 해외 자회사에 돈을 보내기 위해서는 바로 위와 같은 직접적 대출방식 이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외환에 대한 통제가 점점 더 심해지고, 더구나 1971년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되면서 환율변동 위험까지 발생하자(@본격적인 변동환율제 시작) 금융기관들과 기업들은
좀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고, 여기서 스왑(Swap)의 모태가 되는
<평행대출과 상호직접대출(백투백 론)>이 탄생하게 됩니다. ...
<◆ 평행대출>
@ [미국영토] = [ 미국에 있는 GM본사가 미국에 있는 삼성전자 자회사에게 달러($)를 대출함. ]
@ [한국영토] = [ 한국에 있는 삼성전자 본사가 한국에 있는 GM자회사에게 원화를 대출함. ]
위는 평행대출의 현금흐름을 보여주는데 ... 미국에서는 GM 본사가 미국에 진출한
삼성전자 자회사에게 달러($)를 대출해 줍니다. 이와 동시에 한국에서는 삼성전자 본사가 한국에
진출한 GM 자회사에게 원화를 대출해 줍니다. 이때 GM과 삼성전자는 달러와 원화간의 환율을
현물환율(최초 대출시의 환율)로 정하고, 동일한 액수를 대출해주게 됩니다. ... 쉽게 말해
최초 대출이 성사될 때의 환율이 [1$=1,000원] 이었고 대출금액도 10억 원 이었다면
GM 본사는 삼성전자 자회사에게 100만 달러($)를 대출해주고, 삼성전자 본사는 GM 자회사에게
10억 원을 대출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평행대출은 국제적으로는 자본이동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정부의 외환통제를 피할 수
있게 되고, 자금의 이동과정의 번거로움과 환율위험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 하지만
만약 거래 당사자 중에서 어느 한쪽이 도산하거나 고의적인 채무불이행이 발생한다면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 다시 말해 미국에서 GM 본사가 삼성전자 자회사에게 빌려준
100만 달러($) 대출계약과 한국에서 삼성전자 본사가 GM 자회사에게 빌려준 10억 원의 대출계약은
미국과 한국에서 각각 서로가 <독립적으로 이루어진 대출계약> 이기 때문에 채무불이행에 대한
상계권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 따라서 만약 GM이 미국 본사결정으로 한국시장을 떠나게 되면서
삼성전자 본사에게 <“나 파산합니다! 10억 못 갚음. 미안합니다!” > ... 라고 말해도 미국에 있는
삼성전자 자회사는 여전히 100만 달러($)를 GM 본사에게 갚아야 하는 의무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거래당사자들 사이의 채무불이행에 대한 불안요인이 존재한다면 거래당사자인
GM과 삼성전자는 서로에 대한 ‘신뢰’ 하나만으로는 계속해서 거래를 존속시키기 어렵게 될 것이며,
따라서 평행대출 같은 거래는 더 이상 활성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이 대두되자
시장에서는 조금씩 금융기관들의 개입이 요구되었고 금융기관들도 이 과정에서 새로운 수익모델을
발견하게 됩니다.
<◆ 상호직접대출(백투백)>
(1) 먼저 본사끼리[@ GM본사, 삼성전자 본사] 직접대출을 실시합니다. ... 다시 말해,
GM본사가 삼성전자 본사에게 100만 달러($)를 대출해주고, 삼성전자 본사는 GM본사에게 10억 원을
대출해 줍니다.
(2) 앞서 살펴본 평행대출을 실행합니다.
@ [미국영토] = [ 미국에 있는 GM본사가 미국에 있는 삼성전자 자회사에게 달러($)를 대출함. ]
@ [한국영토] = [ 한국에 있는 삼성전자 본사가 한국에 있는 GM자회사에게 원화를 대출함. ]
(1)과 (2)의 과정을 통해, 즉 본사끼리 서로에게 자금을 대출해서 신용위험(채무불이행)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바로 상호직접대출입니다. ... 하지만 상호직접대출은 GM과 삼성전자 본사 사이에
채무를 상계시킬 수는 있지만, 환울 변동 위험과 국제적인 자금이동이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전히 정부의 외환통제를 피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평행대출과 상호직접대출의 문제점(환율변동, 신용위험 등)을 모두 해결하면서
등장한 것이 바로 <◆ 통화스왑(currency swap)>입니다. ... 보편적인 통화스왑은 거래당사자들이
서로 각자가 준비한 통화($달러, \원)의 원금을 교환하고, 그 후에 서로가 합의한 기간 동안에
미리 약정한 이자를 주고받고 만기에는 다시 원금을 재 교환하는 것입니다.
통화스왑이 세계금융시장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81년 8월, 거대 투자은행이었던 살로먼 브라더스(Salomon Brothers)가
세계은행(World Bank)과 IBM 사이의 통화스왑 거래를 성사시키면서 부터입니다.
당시 IBM은 자금조달의 다변화 전략으로 달러($) 이외에 독일과 스위스의 자본시장(은행)에서
수년 동안 자금을 조달해 오고 있었습니다. 물론 독일은행에서는 마르크화로, 스위스 은행에서는
스위스프랑으로 돈을 빌렸었는데 ... 그 당시(1981년) 달러($)화의 가치가 급상승하자 IBM 입장에서는
달러화 기준으로 외화표시부채(마르크, 스위스 프랑)의 가치가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하게 됩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위해, 앞에서 얘기했던 한국 땅의 GM 자회사를 예를 들어 설명해보면,
GM 자회사가 한국의 국민은행에서 1천만 원을 빌렸습니다. 만약 이자가 10% 라면 GM 자회사는
연간 이자금액으로 1백만 원을 지급해야 합니다. 또한 이때의 환율이 [1$=1,000원]이고 이자금액을
달러로 환산하면 1,000달러($)가 됩니다. 그런데 이때에 갑자기 달러가치가 상승하여 [1$=1,250원]이
되었다면 GM 자회사가 국민은행에 지급해야 될 이자금액은 원화로는 예전과 똑같은 1백만 원
이겠지만 이것을 달러로 바꿔보면 800달러($)로 예전보다 200달러($)가 줄어들게 됩니다. ... 그리고
상황이 이쯤 되면 GM 자회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자지급을 원화가 아닌 달러($)로 바꾸고 싶을
것입니다. ... 다시 IBM 상황으로 돌아와서 얘기해보면, 당시 1980년 3월에 독일 마르크화와 달러의
환율은 [1$=DM 1.93] 이었던 것이 1981년 8월에는 [1$=DM 2.52]로 달러가치가 상승하게 됩니다.
[◆ 환율을 생각할 때, 상대 통화를 돈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의 “상품”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편합니다. ... 예를 들어, 달러($)를 미국의 돈(화폐)이 아닌 미국의 대표적인 상품인 맥도날드 버거로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맥도날드 버거 가격이 한 개에 1,000원 하다가 1,250원, 1500원 ... 등으로
상승했다면 버거의 품질(가치)이 올라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달러($)’라는 상품 가격이 1,000원에서
1,250원, 1,500원 등으로 비싸졌다면 이는 달러의 가치가 상승한 것입니다(@환율상승, 원화가치하락)]
이에 따라 IBM 입장에서는 독일은행에 지급해야 될 이자 100마르크가 달러로 환산하자
51.81달러($)에서 39.69달러($)로 무려 12.12달러($)가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IBM은 다음과
같은 조건의 상대방을 찾게 됩니다.
<@ “우리 IBM이 마르크와 스위스프랑으로 돈을 빌렸기 때문에, 이자도 마르크와 스위스프랑으로
지급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IBM을 대신해 마르크와 스위스프랑으로 이자를 지급해줄 상대방을
찾고 있습니다! ~ 그러면 우리 IBM은 달러로 이자를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
이때에 등장한 IBM의 거래 상대방이 바로 세계은행(World Bank) 이었던 것입니다.
세계은행은 <달러($)표시> 유로본드(Euro Bond)를 2건을 발행하여 하나는 IBM의 마르크화 부채의
만기일에 맞추었고, 하나는 IBM의 스위스프랑 부채의 만기일과 같게 발행하였습니다. ... 그리고
IBM과 통화스왑을 거래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세계은행은 IBM의 마르크, 스위스프랑 부채를
인수하고, 이자도 IBM을 대신해 부담하게 됩니다.(마르크, 스위스프랑으로 이자지급) ... 반면 IBM은
세계은행이 발행한 2건의 달러표시 유로본드(Euro Bond)를 인수하고 이자도 달러로 부담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은행이 달러 표시 유로본드(채권)를 발행했다는 의미는 자본시장에서 투자자들을
상대로 달러($)로 돈을 빌렸고, 이자와 원금 모두 만기일에 달러($)로 갚겠다는 뜻입니다. ]
여기까지 얘기를 들어보면 IBM과 세계은행 사이의 통화스왑 거래는 IBM 에게만 유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통화)스왑 거래는 거래쌍방이 모두 만족하기 때문에 거래가 이루어 질수 있는
것입니다. ... 예를 들어 장동건은 가방가게 점원이고, 고소영은 향수가게 점원이라고 할 때
이들은 각자의 가게에서 가방과 향수를 구입하게 된다면 10% 직원할인의 혜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장동건은 데이트 때문에 향수가 필요하게 되었고, 고소영도 가방이 하나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장동건이 원하는 향수는 판매가격이 10만원 이었고, 고소영도 필요한 가방의 가격이
10만원 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각자의 가게에서 직원할인을 받아 장동건은 가방을 9만원에
구입하고 고소영도 향수를 9만원에 구입하여, 퇴근 후 공원에서 만나 가방과 향수를 교환하면
장동건과 고소영은 서로에게 모두 만족할만한 거래가 성사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방과 향수의
교환은 달러($)와 원(\)의 교환처럼 이종통화스왑과 같은 의미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
[◆ (참고) - 국제채권(International Bond) ]
보통 국제채권(International Bond)을 얘기할 때면
(1)외국채권(foreign bond), (2)유로채권(Euro Bond) ... 이렇게 두 종류로 구분합니다.
채권은 한마디로 돈을 빌려주면 언제까지 이자를 더해 갚겠다는 일종의 ‘차용증’과 같은 의미입니다.
다만 거래주체들이 대부분 큰 기업들이나 국가이기 때문에 거래 단위 자체가 개인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큰 규모이며 그래서 자격과(채권발행)과 형식(발행요건) 등의 절차가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 더불어 기업이나 국가가 자국영토 안에서 채권을 발행할 때와는 달리, 자국 이외의
지역에서 채권을 발행(자금 조달)할 때의 채권을 국제채권이라고 하며, 이때에 발행지역(국가)의
통화 단위로 채권을 발행하면 이것을 외국채권(foreign bond)이라고 하고, 자국 통화단위로 자국이
아닌 지역에서 발행하는 채권을 유로채권(Euro Bond) 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벤츠사가 자국 독일이 아닌 미국 영토에서 달러($) 표시로 채권을 발행하면
이때의 채권은 외국채권입니다. ... 쉽게 말해 벤츠사가 뉴욕 월가에서 <“달러($) 좀 빌려주세요! ~
원금과 이자 모두 달러($)로 갚아 드릴게요!“> 하면서 발행한 채권이 외국채권인 것입니다. 더불어
외국채권은 대부분 고유한 별칭이 있습니다.
독일 벤츠사처럼, 미국 자본시장에서 미국 국적이 아닌 다른 국적의 기업(국가)들이 달러($) 표시로
발행하는 채권을 일명 “양키본드(Yankee Bond)”라고 부릅니다. ... 만약 삼성이나 중국 샤오미가 일본
자본시장(일본영토)에서 엔화표시로 채권을 발행하게 된다면 이때의 채권을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보통
“사무라이본드(Samurai bond)” 라고 부르며, 미국 GM이나 일본 혼다가 우리 대한민국 자본시장에서
원화로 채권을 발행한다면 이때의 채권은 “아리랑본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발행되는
외국채권은 “불독본드(Bulldog bond)”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외국채권(foreign bond)과는 대조적으로 유로본드(유로채)는 채권을 발행하려는 기업(국가)이
자국의 통화단위로 다른 나라에서 발행하는 채권을 뜻합니다. ... 여기서 “유로(본드)”가 의미하는 바는
유로존 국가들이 사용하는 공통통화인 ‘유로화(€)’와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또한 유럽이라는 “지역”적
의미를 내포한 것도 아닙니다. ... 초창기 기업들이 (채권발행)규제가 느슨했던 유럽자본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유로”라는 말이 사용되었는데, 이제는 이러한 의미보다는
자국 통화표시로 채권을 발행하는 국가가 자국 이외의 지역에서 채권을 발행할 때 사용하는 <역외>
라는 의미만 있을 뿐입니다.... 한마디로 “유로”는 이제 국제금융시장에서 “역외” 라는 의미의 관행적
표현으로 굳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 GM이 뉴욕 월가가 아닌 런던에서 수많은 투자자들을 상대로 달러($) 표시로 채권을
발행하는 것입니다. ... 다시 말해 런던의 “시티”(뉴욕 월가나 한국의 여의도 같은 금융 중심가)에서
GM이 다음처럼 외치는 겁니다.
< “달러($) 좀 빌려주세요! ~ 만기 되면 원금과 이자 모두 달러($)로 갚아드리겠습니다!” - 유로달러>
만약 일본의 혼다가 런던의 “시티”에서 <“엔화 좀 빌려주세요! ~ 만기되면 원금과 이자 모두 엔화로
잘 갚겠습니다!”> ... 라고 외쳤다면 이때의 채권 또한 “유로채권(유로엔)”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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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앞서 설명 드린 IBM과 세계은행간의 통화스왑거래에서
세계은행이 2건의 달러($)표시 유로본드(Euro Bond)를 발행했다는 의미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세계은행은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달러($)표시 채권을 발행했습니다.(2건) ... 당연히 원금과 이자 모두
달러($)로 갚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IBM이 통화스왑거래로 인수한 것입니다. IBM이 세계은행이
갚아야할 달러($) 원금과 이자($)를 대신 갚아주고, 세계은행은 IBM이 갚아야했던 마르크화 원금과 이자,
스위스프랑 원금과 이자를 갚아주는 통화스왑 계약을 한 것입니다.
그럼 좀 더 자세한 통화스왑거래의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삼성전자는 1년 정도 원화자금이 필요해서 원화표시 채권을 발행하려 합니다.
[◆삼성전자는 지금 원화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하지만 국내(한국)에서는
이미 발행물량이 많아서 추가로 발행하려면 예전보다 더 높은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삼성전자는 아직은 발행물량도 적고 신용도 또한 생각보다 괜찮은 미국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하려 합니다.(@ 달러표시 채권 – 외국채권, 양키본드) .... 반면 GM도 자국(미국) 에서는
채권발행에 부담이 많아, 한국에서 원화표시 채권을 발행하려 합니다.(@ 아리랑본드)
그럼 이들 거래 당사자들의 좀 더 구체적인 조건을 살펴보겠습니다. ... [1$=1,000원이라 가정]
@ 조달금액 = [삼성전자: 10억원], [GM: 100만 달러($)]
@ 만기 = 1년
@ 원화 차입비용 = [삼성전자: 10.25%], [GM: 10%]
@ 달러 차입비용 = [삼성전자: 5%], [GM: 5.25%]
보시다시피 삼성전자는 한국에서 10억(원화자금)의 자금을 마련하는데(채권발행) 이자비용이
10.25% 이고, 미국에서 달러표시채권을 발행하면 5% 비용이 듭니다. ... 또한 GM은 미국에서
100만달러($)를 마련하는데 이자비용이 5.25% 이며, 한국에서 원화표시채권을 발행하면 그 비용은
10%가 듭니다. 결론적으로 원화표시 채권시장에서는 GM이 삼성전자보다 비교우위에 있고,
달러표시 채권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GM보다 비교우위(@싸게 돈을 조달할 수 있다.)에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삼성전자와 GM은 각자가 비교우위에 있는 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합니다.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100만 달러($) 규모의 달러표시 채권을 발행하고, GM은 한국에서 10억 원
규모의 원화표시 채권을 발행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삼성전자와 GM은 앞의 장동건과 고소영이
가방과 향수를 교환했던 것처럼 ... 원금(100만 달러, 10억)을 교환하는 <통화스왑>을 하게 되면,
삼성전자는 원화 10억에 대한 이자비용을 10.25% 보다 0.25% 낮은 10%에 차입하는 효과가 있고,
GM은 100만 달러($)를 5.25% 보다 0.25% 낮은 5%에 차입하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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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원금교환 – 삼성전자와 GM은 각각의 비교우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한다. ]
(1) 삼성전자 = 달러($) 표시 채권시장에서 조달한 100만 달러($)를 GM에게 지급
(2) GM = 원화표시 채권시장에서 조달한 10억 원을 삼성전자에게 지급
[◆ 이자의 현금흐름 ]
(1) 삼성전자 = 원화 이자 1억 원을 GM에게 지급한다.
(2) GM = 달러($)이자 5만 달러($)를 삼성전자에게 지급한다.
[◆ 만기일 – 원금 재교환]
(1) 삼성전자 = GM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돌려받아 처음 돈을 조달한 달러표시 채권시장에 상환
(2) GM = 삼성전자로부터 10억 원을 돌려받아 처음 돈을 조달한 원화표시 채권시장에 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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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자금 흐름을 보면 ~
통화스왑을 통해서 삼성전자는 최초 자신들이 원했던 <원화> 10억 원의 자금을 조달하면서
이자까지 원화로 지급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이자지급도 원래는 1억 250만원(10.25%)을
부담해야 했지만, 통화스왑을 통해 1억 원만(10%) 부담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GM도
자신들이 처음에 원했던 <미화> 100만 달러($)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고, 이자지급도
5만 2,500달러($)(5.25%)를 부담해야 했지만, 5만 달러($)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거래의 정식명칭을
<고정금리 통화스왑[cross currency fixed to fixed debt swap]> 이라고 하는데 ... 앞서 얘기한
IBM과 세계은행 사이에 이루어졌던 통화스왑이 바로 고정금리 통화스왑 이었습니다. ... 자금흐름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통화스왑 첫 단계에서는 거래 당사자들이 <합의된 환율(현물환율)>로 원금을
교환 합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원금교환 후 합의된 고정이자를 서로가 상대방에게 지급해주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최초 교환했던 원금을 재교환 함으로써 거래가 종결됩니다. ... 더불어
최초의 원금 교환과 마지막 원금의 재교환은 명목금액이 오고가는 것이므로 환위험은 제거되는
것입니다. (@ 최초 계약당시 환율은 원금 재교환시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원금이 변동하지 않음!)
지금까지는 가장 기본적 형태의 <통화스왑>을 살펴보았습니다. ... 그래서 이제부터는
스왑의 또 다른 형태인 <◆ 금리스왑(Interest rate swap)과 상품스왑(Commodity swap)>을
살펴보려 하는데 ... 마찬가지로 이들 스왑도 기본적인 구조만 살펴볼 것입니다.[@ 글의 후반부에서
좀 더 실무적인 부분을 다루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스왑의 기본적 구조만 알아도 충분하다
생각됩니다.]
앞서 살펴본 <통화스왑>의 특징은 교환되는 (명목)원금이 서로 다른 통화(이종통화스왑)였습니다.
더불어 만기일이 되면 최초 계약시점의 환율로 명목원금이 재교환 되는 구조였습니다. ... 하지만
지금부터 살펴볼 <금리스왑>에서는 교환되는 통화의 종류가 동일하면서 만기일에는 명목원금을
재교환 하지 않습니다. ... 그렇다면 무엇이 교환되는가? ~ 이름 그대로 <금리>를 교환합니다.
다시 말해 동일한 통화의 <고정금리와 변동금리>를 교환하는 것이 금리스왑의 가장 기본적 형태인
것입니다. ... (@ 사례를 통하면 이해가 더 편할 겁니다. ... 이번엔 삼성과 애플을 비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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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 고정금리 시장과 변동금리 시장에서의 삼성과 애플의 차입비용]
@ 삼성 = (고정금리: 6.5%), (변동금리: LIBOR+0.75%)
@ 애플 = (고정금리: 5.5%), (변동금리: LIBOR+0.25%)
앞에서도 계속 말씀드렸지만, 스왑은 거래 당사자 모두가 이익(유리)이 되니까 거래를 하는 겁니다.
Libor(리보)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 간략하게 설명해보면 런던은행간 대출 금리
(London Inter-Bank Offer Rate) 라고 하는데 유로통화시장에서 어느 정도 신용도가 우수한
은행들 끼리 주로 단기자금을 거래(대출)할 때 적용하는 대표적인 단기 변동금리입니다.
국제금리 시장의 조건을 살펴보니(@ 위의 사례)
미국의 애플사는 고정금리시장이나 변동금리시장, 어느 쪽에서도 한국의 삼성전자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이것은 결국 미국의 애플사가 삼성전자보다
시장에서 더 높은 신용등급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금리시장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재미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고정금리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애플사보다 1% 더 높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는데 비해
변동금리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애플사보다 0.5% 더 높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론적으로 삼성전자는 고정금리 시장보다는 변동금리 시장에서 조금 덜 이자를 부담하면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뜻인데 ... 한마디로 삼성전자는 변동금리 시장에서 약간의 비교우위가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여기서 비교우위가 있다는 뜻은 삼성이 애플사보다 이자율을 더 적게 적용받는다는
뜻이 아님을 주의해야 합니다! ... 그리고 애플사는 고정금리 시장에서 비교우위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삼성전자와 애플사가 각각 비교우위를 갖는 금리시장(변동, 고정)이 존재한다면,
서로가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스왑거래가 성사될 수 있습니다. ... 이제 삼성전자와 애플사가
각각 비교우위를 갖는 금리시장을 통해 스왑거래를 했을 때 실질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스왑거래 시작>
(1) 애플사는 비교우위를 갖는 고정금리 시장에서 5.5% 금리로 차입 합니다. ... 그리고
삼성전자에게 Libor 금리를 지급하는 계약을 합니다.
(2) 삼성전자는 비교우위를 갖는 변동금리 시장에서 (Libor+0.75%) 금리로 차입 합니다. ... 그리고
애플사에게 5.5% 금리를 고정적으로 지급하는 계약을 합니다.
<◆ 스왑거래 후 - 애플사와 삼성전자의 현금흐름 >
@ 애플사
(1) 최초 5.5% 금리로 차입했기 때문에, 5.5% 금리가 나가게 됩니다.
(2) 삼성전자로부터 5.5% 금리를 받게 됨과 동시에, 삼성전자에게 Libor금리를 지급합니다.
(3) 결론적으로 애플사는 Libor (변동)금리로 차입하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 삼성전자
(1) 최초 (Libor+0.75%) 금리로 차입했기 때문에, (Libor+0.75%) 금리가 나가게 됩니다.
(2) 애플사로부터 Libor 금리를 받게 됨과 동시에, 애플사에게 5.5% 금리를 지급합니다.
(3) 결론적으로 삼성전자는 6.25%(@ 5.5%+0.75%) 고정금리로 차입하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자! ~ 이제 스왑거래 후,
애플사는 비교우위가 없었던 변동금리 시장에서 원래는 (Libor+0.25%) 금리로 돈을 빌려야 했지만
스왑거래 후 0.25% 더 적은 Libor금리로 차입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 또한 삼성전자는
비교우위가 없었던 고정금리 시장에서 원래는 6.5% 금리로 돈을 빌려야 했지만 스왑거래 후 0.25%
더 적은 6.25% 금리로 차입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애플사와 삼성전자 모두 각각 0.25%의 금리 효과를 누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총이익이 <0.5%>가 되는 것이죠. ... 그렇다면 총이익 0.5%라는 수치는 임의적인가?
아닙니다. 0.5%는 애플과 삼성의 고정금리 차이인 1%에서 변동금리 차이인 0.5%를 빼주면 됩니다.
[(6.5-5.5)] - [(Libor+0.75)-(Libor+0.25)] = 0.5% 계산할 수 있습니다.
[◆ 참고: 사례에서는 애플과 삼성 모두 똑같이 0.25%의 스왑이익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왑이익은 거래 당사자의 신용도나 (스왑)거래에 누가 더 많은 거래욕구를 가졌는가? ~ 처럼
거래 당사자 A와 B의 <협상력>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현실에서는 스왑이익이
정확히 5대5의 비율로 배분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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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스왑거래는 쌍방 모두를 만족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IBM, 세계은행, GM, 애플, 삼성전자 같은 거래주체들이 언제 어느 때고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들에 딱 맞는 거래 상대방을 찾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 때문에
처음 스왑거래가 싹트기 시작할 무렵에는 금융기관들이 개입해 거래 상대를 찾아주곤 했습니다.
앞에서 예를 든 IBM과 세계은행도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살로먼 브라더스(Salomon Brothers)가
개입해 거래를 성사시켰습니다. 당시에 살로먼 브라더스의 역할은 단순한 브로커(중개) 역할에
머물렀는데, 단순 브로커는 거래쌍방으로부터 일정부분 수수료만 받으면 역할이 마무리 됩니다.
<@ 브로커 - “당신이 원하는 조건에 딱 알맞은 거래 상대방을 찾았습니다. 소개시켜 줄 테니 수수료 좀 주시죠?” >
하지만 스왑중개(브로커)는 각각의 거래당사자들이 원하는 조건에 최대한 완벽하게 일치하는
상대방을 찾아야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금융기관들(특히 은행)은
스왑거래자의 요구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켜줄 수 있는 거래 상대를 찾을 때 까지 우선은
은행 자신이 직접 스왑거래의 한쪽 당사자(상대)가 되기로 합니다. 그래서 초창기 스왑시장에서의
은행 역할은 브로커(중개)에서 시작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은행들은 딜러(Dealer)의 역할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또한 1985년 "ISDA" 라는 국제스왑딜러협회(International Swap Dealer Association)가
결성되어 오늘날의 스왑시장이 <딜러시장>으로 변모하는데 많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상품스왑(Commodity swap)>의 가장 기본적 거래형태를 살펴볼 텐데 ... 여기서는
스왑거래에 <딜러(Dealer)>가 개입했을 때 거래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도 함께 살펴볼 것입니다.
상품스왑에서는 교환되는 상품이 같을 수도, 혹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 상품의 종류가 같다면
앞서 금리스왑에서 보셨듯이 명목원금의 교환은 불필요하고, 만약 상품종류가 다르다면 명목원금
교환이 필요하긴 하지만 ~ (@실질적으로는 보통 명목원금 교환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앞서 여러 스왑거래형태를 살펴본 것처럼 상품스왑 또한 사례를 통해 살펴보는 것이 이해하는데
가장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 [◆ ex). 거래주체: (1)원유생산자, (2)정유회사, (3)스왑 딜러(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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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유생산자: [ 매월 5천 배럴규모의 원유를 생산하는데 최근 원유시장의 가격변동성이 커져서
경영의 안정과 가격변동을 헤지하기 위해 원유공급가격을 3년 정도는 배럴당 50.5달러($) 수준에서
고정시키고 싶어 합니다. ]
@ 정유회사: [ 매월 8천 배럴의 원유를 수입하는데, 정유회사도 원유생산자와 마찬가지로
원유시장의 불안정한 변동성 때문에 원유매입가격을 향후 3년 정도는 배럴당 50.7달러($) 수준에서
고정시키고 싶어 합니다. ]
@ 스왑 딜러: [ (원유)스왑 거래의 욕구가 있는 두 당사자인 원유생산자와 정유회사 사이에 개입해
각각의 거래 상대방이 되어줍니다. ... (딜러 - 원유생산자), (딜러 - 정유회사) ]
<◆ 스왑거래 시작 – 원유 현물 시장에서는 원유가격이 매일 변동하고 있음(@평균현물가격)>
(1) 원유생산자: [ 현물시장에 원유 5천 배럴을 공급(매도)하고 그날에 형성된 평균현물가격을
매도대금으로 받습니다. 그렇게 원유를 판매하고 받은 평균현물가격(매일변동)을 스왑딜러에게
지급합니다. 대신 스왑딜러로부터 50.5달러($)를 고정적으로 지급받습니다. ]
(2) 정유회사: [ 현물시장에서 원유 8천 배럴을 매입하고 평균현물가격을 스왑딜러로부터 지급받아
원유매입 대급으로 사용합니다. 대신 정유사는 50.7달러($)를 고정적으로 스왑딜러에게 지급합니다.]
(3) 스왑 딜러: [ 스왑거래에 개입해 원유생산자로부터 지급받은 평균현물가격을 정유회사에게
지급하고, 정유회사로부터 고정적으로 받은 50.7달러($)에서 0.2달러($) 제하고 나머지 50.5달러($)를
원유생산자에게 줍니다. 이 과정에서 스왑딜러는 0.2달러($)의 차익을 확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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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왑거래에서는 스왑딜러가 취한 0.2달러($)를 보통 <호가 스프레드(bid-ask spread) 차익> 이라고
하는데, 사례처럼 만약 스왑딜러의 개입이 없었다면 원유생산자나 정유회사 모두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의 거래 상대를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0.2달러($) 차익은 스왑딜러가 스왑시장에
일종의 <유동성을 공급한 대가>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더불어 원유생산자와 정유회사와의
원유거래량에서 3천 배럴의 갭(8천-5천)이 발생하는데, 이는 스왑딜러가 모두 감당해야할 몫입니다.
그래서 차이나는 3천 배럴에 대해 스왑딜러는 다른 거래상대(제3자)를 찾아야 합니다. ... 만약
제3자의 거래상대를 찾는데 시간이 예상보다 오래 걸린다면 스왑 딜러(금융기관)는 원유선물이나
원유옵션을 활용해 헤징작업을 진행합니다. [◆ 사례에서 만약 원유생산자가 자신이 원하는
스왑조건을 1월1일에 의뢰를 했을 때, 은행은 그 즉시 바로 원유생산자의 조건에 딱 맞은 상대를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 때문에 우선 은행 스스로가 원유생산자의 스왑거래 상대가 됩니다.
그리고 3개월 후에 조건에 딱 맞는 정유회사를 찾게 되면 은행 입장에서는 비로소 거래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은행은(dealer) 원유생산자와 정유회사가 각각 제시하는
호가차이, 즉 <호가 스프레드>를 조절하여 이익을 취하게 됩니다. ... 처음 스왑얘기를 시작할 때
“금융기관”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했던 이유를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
더불어 이렇게 은행이 스왑거래의 딜러(dealer)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 스왑거래자(기업) 입장에서는
은행은 언제 어느 때고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의 거래상대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스왑거래자들은
점점 더 증가하게 됩니다. 은행 입장에서도 다양한 거래자들과의 거래가 증가하면 할수록 다양한
<스왑조건>을 보유하게 되는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은행들(dealer)은 좀 더 여유로운 스왑운영이
가능해 집니다.(@ 스왑유동성 증가)
또한 사례에서 등장하는 삼성전자, GM, 애플 등의 여러 스왑거래자들은 딜러인 은행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분리되므로 은행(dealer) 입장에서는 스왑장부(swap book)를 관리하기가 예전보다 상당히
편리해집니다.
[◆ 스왑창고(swap warehouse)]
1. [ 삼성 6개월 외환스왑 – A딜러(dealer)]
2. [ 삼성 24개월 변동금리 스왑 – A딜러(dealer)]
3. [ 애플 만기 3년 통화스왑 – A딜러(dealer)]
4. [ IBM 만기 5년 통화스왑 – A딜러(dealer)]
5. [ GM 만기 1년 상품스왑 - A딜러(dealer)]
.
.
.
100. [ 살로만 은행 딥스왑(Diff swap) - A딜러(dealer)]
은행이 딜러(dealer)가 되어 여러 스왑조건의 거래자들과 거래하게 되면 스왑유동성은 늘어나지만,
이것이 모든 거래자들의 조건을 100%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맞춰주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미세한 조건 불일치가 발생하면 앞서 얘기했듯이 은행(dealer)은 또 다른 스왑거래나 선물, 옵션 같은
다른 분야의 파생상품을 활용하여 헤지를 하게 됩니다. ... 더불어 이러한 상황 속에서 거래가
다양한 형태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이어진다면 스왑딜러인 은행의 거래규모는 당연히 상당한 수준의
규모로 커지게 되고, 커진 규모만큼 은행은 수많은 스왑을 보관하고 있는 일종의 <창고>가 되는
것입니다. ... 그래서 <스왑창고(swap warehouse)> 라는 새로운 개념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A딜러(dealer)는 일단 각 거래자들의 조건에 맞는 상대를 찾기 어려워 A딜러(dealer)
스스로가 거래 상대가 되어 현재 100개의 다양한 스왑(Swap)을 보관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A은행은 현재 수많은 고객들과 100개의 스왑계약을 체결한 상태임.] ... 그리고 이때
101번째 새로운 스왑거래자(고객)가 A딜러(dealer)를 찾아와 자신의 스왑조건을 제시했을 때,
A딜러(dealer) 입장에서는 이미 100개의 다양한 스왑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101번째 거래자의
요구조건을 충족시켜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겁니다. ... 그래서 그 조건에 부합하는 스왑이 만약
80번째 스왑이었다면, 이후 A딜러(dealer)는 본격적으로 호가 스프레드를 조절하여 본인의 실질적인
스왑수익을 취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
<80번 거래자 – A딜러(dealer) - 101번 거래자>
그리고 이것이 바로 <스왑창고(swap warehouse)>의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스왑(Swap)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인 <통화스왑(currency swap)>과
<금리스왑(Interest rate swap)> ... 그리고 <상품스왑(Commodity swap)>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에 <스왑창고(swap warehouse)>의 개념과 함께 딜러(dealer)가 개입하면 스왑의 수익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스왑은 거래주체들의 개별적 거래조건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표준화하기가 쉽지만은 않지만, 그나마 <통화스왑, 금리스왑, 상품스왑> 등은
현재 상당부분 거래형태가 표준화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자주 먹는 아이스크림 중에
첨가물이 없는 가장 순수하고 흔한 아이스크림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대부분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생각할 것입니다. ... 그래서 업계에서는 <통화스왑, 금리스왑, 상품스왑> 등을 가장 순수하고 흔한
일반적(표준) 스왑이라는 의미에서 일명 <바닐라 스왑(Vanilla Swap)> 이라고 부르며, 좀 더 길게
부르고 싶을 땐 <플레인 바닐라 스왑(Plain Vanilla Swap)> 이라고도 부릅니다. ... 그럼 지금부터는
이러한 기본적(이론적) 지식을 바탕으로 좀 더 실무적인(현실적) 내용을 거시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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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편에서는 스왑거래와 외환시장의 상관관계, 즉 외환시장의 다양한 메커니즘에 대해서
실무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읽으신 기본적(이론적) 지식을 바탕으로
실무적인(현실적) 내용을 거시적 관점에서 살펴볼 것입니다. ... 2편(실무편)은 다음 업댓 게시물 중
최대한 금융경제와 관련된 게시물에 올려보려 하는데, 만약 관련 게시물이 올라오지 않았다면
첫 게시물에 올려보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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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2차면접을 남겨둔 취준생
물파스 형님 항상 양질의 글 정말 잘 읽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글은 제가 취업을 준비중인 분야와 관련된 글이라 특히 더 재밌게 읽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름 아니라 다음 2편과 관련된 내용을 접할수 있는 참고 사이트를 알 수 있을까요?? 당연 물파스 형님이 쓰는 글을 보는 것이 제일 좋지만 바쁠실 것을 알기에 부탁드립니다.
항상 댓글을 읽어보기만 하는 입장이라 염치 없는 부탁이라는 것은 알지만 부탁드립니다ㅠㅠ
지난 30~40년 동안 진행되어온 신자유주의체제하에서
세계의 금융 산업은 (굴곡이 많았지만)그야말로 눈부신 성장을 이뤘습니다.
금융(산업)에 대한 개별 국가들의 내적규제가 완화되었고, 국가 간의 자본이동 또한 탈규제가
정답인 것처럼 자본은 세계를 마치 하나의 시장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금융은 전문가만이 한다!> ... 라는 주장은 금융(특히 외환)을 알고자 하는 많은 적극적인 분들에게
일종의 암묵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소위 그 '(금융)전문가'라는 집단은
전문용어 몇 개와 숫자적 복잡성을 이용해 자신들의 금융의 독점적 권위를 지속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고 금융이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라면처럼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접근성 좋은
대상이라는 건 절대 아닙니다. ... 다만 누군가(전문가)의 전유물로서 오직 그들(전문가)만이 유일하게
독점적 권위를 누릴만한 가치가 있다는 편견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올려봅니다.
(1997년 IMF 위기에 대한 내용은 전에도 많이 언급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외환시장' 자체에 대해,
특히 스왑거래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 1997년 금융위기는 '외환위기'였습니다.
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아시다시피 기축통화인 달러($)의 부족때문이었는데
이러한 달러의 부족은 결국 <외환관리>로 연결되며, 외환관리는 다시 <외환거래 메커니즘>이라는
국제적 금융질서로 이어집니다. ...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경제는 아무리 현재의 기초적 경제여건이
양호하다고 해도 원화(\)가 국제통화가 아닌이상은 외부충격, 특히 <환율변동>에 상시적으로
취약(민감)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부터 벌써 2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늘날 외환시장의 거래 메커니즘은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복잡, 다양화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 <스왑(SWAP)> 시장의 성장은 놀라울 정도이며, 작금의 외환시장은 이제 스왑을 빼놓고는
외환시장의 거래 메커니즘 자체를 논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스왑의 기초적 개념과
스왑거래가 오늘날 세계 외환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으며, 또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 당연히 분량이 엄청나게 많아질텐데, 그래서 이야기는 3편으로 나눠서
3일동안 시리즈로 이어갈 볼 생각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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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금융 시장에서 스왑(SWAP)만큼 급속한 성장을 한 시장은 없을 겁니다. ... 또한 향후에도
스왑시장은 그 규모와 질적(다양성)인 부분에서 지속적인 성장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선물과 옵션 같은 파생상품거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각자의 공신력 있는 <거래소>를 통해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흔히 <장내파생상품> 거래라고 하는데 ... 여기서 <거래소>가 존재한다는 얘기는
계약이 <표준화> 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장내거래>는 대부분의 거래가 정형화된
규칙(Rule)과 틀에 고정되어 있어 거래의 안전은 담보할 수 있어도 다양성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 그러나 스왑(swap)거래는 은행(상업, 투자)과 보험 등의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기업과 정부(국가), 국제기구 등 다양한 거래주체들이 환율과 금리, 상품, 주가, 자본비용,
재정거래, 합성증권 등 그 활용도(융통성) 측면, 즉 각각의 거래주체들의 (개별)거래목적에 따라
거래형태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거래의 다양성 측면에서 장내거래(선물.옵션) 보다
훨씬 더 선택의 폭이 넓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다만 각각의 거래주체들의 특수목적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아 표준적인 계약형태를 벗어나 거래형태를 변형시키는 수정조항이 많아지고, 이 때문에
관계서류가 복잡해져서 거래형태가 고정되어 있는 <장내거래>보다 비용이 많이 들고, 유동성 또한
낮아지는 경우가 잦습니다. 그래서 스왑(Swap)은 보통 <장외파생상품(장외거래)>으로 분류합니다.
[@ 스왑거래에서는 “금융기관”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이 부분은 뒤에서 자세히 설명합니다.]
스왑의 출발은 1970년대 초에 미국과 영국 사이에서 활발히 거래되었던 평행대출(parallel lone)과
국제상호직접대출(백투백대출.back to back lone)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에 많은 국가에서는 외환통제가 상당히 엄격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금융기관이나 해외지사를 둔 거대기업들 입장에서는 외환통제를 피하기 위해 다방면의
방법들을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평행대출과 상호직접대출은 이때에 가장 활발히 활용되었던 수단
이었습니다.
그럼 먼저 <◆직접대출>의 현금흐름부터 살펴봅니다.(ex. 미국 GM과 한국 삼성전자 비교)
@ [미국영토] = [ 미국에 있는 GM본사가 한국에 있는 GM 자회사에게 달러($)를 대출함. ]
@ [한국영토] = [ 한국에 있는 삼성전자 본사가 미국에 있는 삼성전자 자회사에게 원화를 대출함. ]
가장 기본적인 <직접대출>의 현금흐름입니다.
미국에 본사가 있는 GM은 한국에 있는 GM 자회사에 돈을 보내기 위해서는 외환에 대한 규제와
패널티를 감수 하고서라도 자국 화폐인 달러($)를 직접 한국으로 송금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삼성전자 본사도 미국 삼성전자 자회사에 우리 돈 원화(\)를 직접 송금해야 합니다.
또한 한국의 GM 자회사는 본사로부터 받은 달러($)를 한국에서는 원화(\)로 바꿔서 써야하고,
미국의 삼성전자 자회사도 본사로부터 받은 원화를 미국에서 쓰기 위해서는 다시 달러($)로 바꿔서
사용해야 합니다. ... 그래야만 각자 현지의 건물 사용료(임대료)나 인건비(현지인) 등을 지불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GM과 삼성전자는 왜 이런 불편한 절차를 거쳐 자회사에게 돈을 보내려는 걸까?
그냥 현지의 자회사들이 각자 현지 은행들에게 직접 대출받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한번쯤 이런 의문을 가져볼 수도 있을 겁니다.
보편적으로 모회사(본사)는 (현지)자회사보다 신용면에서 더 높게 평가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매출과 자본규모, 업력 등에서 대부분 모회사가 자회사보다 월등히 앞서기 때문에 차입비용을
따져본다면 모회사의 신용으로 대출받아 자회사에게 돈을 보내는 것이 경영전략상 훨씬 더 유리하다
할 수 있습니다. (대출)이자가 훨씬 적게 든다는 뜻이지요 ~ 이러한 이유 때문에 1970년대 초에는
다국적 기업들이 해외 자회사에 돈을 보내기 위해서는 바로 위와 같은 직접적 대출방식 이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외환에 대한 통제가 점점 더 심해지고, 더구나 1971년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되면서 환율변동 위험까지 발생하자(@본격적인 변동환율제 시작) 금융기관들과 기업들은
좀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고, 여기서 스왑(Swap)의 모태가 되는
<평행대출과 상호직접대출(백투백 론)>이 탄생하게 됩니다. ...
<◆ 평행대출>
@ [미국영토] = [ 미국에 있는 GM본사가 미국에 있는 삼성전자 자회사에게 달러($)를 대출함. ]
@ [한국영토] = [ 한국에 있는 삼성전자 본사가 한국에 있는 GM자회사에게 원화를 대출함. ]
위는 평행대출의 현금흐름을 보여주는데 ... 미국에서는 GM 본사가 미국에 진출한
삼성전자 자회사에게 달러($)를 대출해 줍니다. 이와 동시에 한국에서는 삼성전자 본사가 한국에
진출한 GM 자회사에게 원화를 대출해 줍니다. 이때 GM과 삼성전자는 달러와 원화간의 환율을
현물환율(최초 대출시의 환율)로 정하고, 동일한 액수를 대출해주게 됩니다. ... 쉽게 말해
최초 대출이 성사될 때의 환율이 [1$=1,000원] 이었고 대출금액도 10억 원 이었다면
GM 본사는 삼성전자 자회사에게 100만 달러($)를 대출해주고, 삼성전자 본사는 GM 자회사에게
10억 원을 대출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평행대출은 국제적으로는 자본이동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정부의 외환통제를 피할 수
있게 되고, 자금의 이동과정의 번거로움과 환율위험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 하지만
만약 거래 당사자 중에서 어느 한쪽이 도산하거나 고의적인 채무불이행이 발생한다면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 다시 말해 미국에서 GM 본사가 삼성전자 자회사에게 빌려준
100만 달러($) 대출계약과 한국에서 삼성전자 본사가 GM 자회사에게 빌려준 10억 원의 대출계약은
미국과 한국에서 각각 서로가 <독립적으로 이루어진 대출계약> 이기 때문에 채무불이행에 대한
상계권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 따라서 만약 GM이 미국 본사결정으로 한국시장을 떠나게 되면서
삼성전자 본사에게 <“나 파산합니다! 10억 못 갚음. 미안합니다!” > ... 라고 말해도 미국에 있는
삼성전자 자회사는 여전히 100만 달러($)를 GM 본사에게 갚아야 하는 의무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거래당사자들 사이의 채무불이행에 대한 불안요인이 존재한다면 거래당사자인
GM과 삼성전자는 서로에 대한 ‘신뢰’ 하나만으로는 계속해서 거래를 존속시키기 어렵게 될 것이며,
따라서 평행대출 같은 거래는 더 이상 활성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이 대두되자
시장에서는 조금씩 금융기관들의 개입이 요구되었고 금융기관들도 이 과정에서 새로운 수익모델을
발견하게 됩니다.
<◆ 상호직접대출(백투백)>
(1) 먼저 본사끼리[@ GM본사, 삼성전자 본사] 직접대출을 실시합니다. ... 다시 말해,
GM본사가 삼성전자 본사에게 100만 달러($)를 대출해주고, 삼성전자 본사는 GM본사에게 10억 원을
대출해 줍니다.
(2) 앞서 살펴본 평행대출을 실행합니다.
@ [미국영토] = [ 미국에 있는 GM본사가 미국에 있는 삼성전자 자회사에게 달러($)를 대출함. ]
@ [한국영토] = [ 한국에 있는 삼성전자 본사가 한국에 있는 GM자회사에게 원화를 대출함. ]
(1)과 (2)의 과정을 통해, 즉 본사끼리 서로에게 자금을 대출해서 신용위험(채무불이행)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바로 상호직접대출입니다. ... 하지만 상호직접대출은 GM과 삼성전자 본사 사이에
채무를 상계시킬 수는 있지만, 환울 변동 위험과 국제적인 자금이동이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전히 정부의 외환통제를 피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평행대출과 상호직접대출의 문제점(환율변동, 신용위험 등)을 모두 해결하면서
등장한 것이 바로 <◆ 통화스왑(currency swap)>입니다. ... 보편적인 통화스왑은 거래당사자들이
서로 각자가 준비한 통화($달러, \원)의 원금을 교환하고, 그 후에 서로가 합의한 기간 동안에
미리 약정한 이자를 주고받고 만기에는 다시 원금을 재 교환하는 것입니다.
통화스왑이 세계금융시장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81년 8월, 거대 투자은행이었던 살로먼 브라더스(Salomon Brothers)가
세계은행(World Bank)과 IBM 사이의 통화스왑 거래를 성사시키면서 부터입니다.
당시 IBM은 자금조달의 다변화 전략으로 달러($) 이외에 독일과 스위스의 자본시장(은행)에서
수년 동안 자금을 조달해 오고 있었습니다. 물론 독일은행에서는 마르크화로, 스위스 은행에서는
스위스프랑으로 돈을 빌렸었는데 ... 그 당시(1981년) 달러($)화의 가치가 급상승하자 IBM 입장에서는
달러화 기준으로 외화표시부채(마르크, 스위스 프랑)의 가치가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하게 됩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위해, 앞에서 얘기했던 한국 땅의 GM 자회사를 예를 들어 설명해보면,
GM 자회사가 한국의 국민은행에서 1천만 원을 빌렸습니다. 만약 이자가 10% 라면 GM 자회사는
연간 이자금액으로 1백만 원을 지급해야 합니다. 또한 이때의 환율이 [1$=1,000원]이고 이자금액을
달러로 환산하면 1,000달러($)가 됩니다. 그런데 이때에 갑자기 달러가치가 상승하여 [1$=1,250원]이
되었다면 GM 자회사가 국민은행에 지급해야 될 이자금액은 원화로는 예전과 똑같은 1백만 원
이겠지만 이것을 달러로 바꿔보면 800달러($)로 예전보다 200달러($)가 줄어들게 됩니다. ... 그리고
상황이 이쯤 되면 GM 자회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자지급을 원화가 아닌 달러($)로 바꾸고 싶을
것입니다. ... 다시 IBM 상황으로 돌아와서 얘기해보면, 당시 1980년 3월에 독일 마르크화와 달러의
환율은 [1$=DM 1.93] 이었던 것이 1981년 8월에는 [1$=DM 2.52]로 달러가치가 상승하게 됩니다.
[◆ 환율을 생각할 때, 상대 통화를 돈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의 “상품”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편합니다. ... 예를 들어, 달러($)를 미국의 돈(화폐)이 아닌 미국의 대표적인 상품인 맥도날드 버거로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맥도날드 버거 가격이 한 개에 1,000원 하다가 1,250원, 1500원 ... 등으로
상승했다면 버거의 품질(가치)이 올라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달러($)’라는 상품 가격이 1,000원에서
1,250원, 1,500원 등으로 비싸졌다면 이는 달러의 가치가 상승한 것입니다(@환율상승, 원화가치하락)]
이에 따라 IBM 입장에서는 독일은행에 지급해야 될 이자 100마르크가 달러로 환산하자
51.81달러($)에서 39.69달러($)로 무려 12.12달러($)가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IBM은 다음과
같은 조건의 상대방을 찾게 됩니다.
<@ “우리 IBM이 마르크와 스위스프랑으로 돈을 빌렸기 때문에, 이자도 마르크와 스위스프랑으로
지급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IBM을 대신해 마르크와 스위스프랑으로 이자를 지급해줄 상대방을
찾고 있습니다! ~ 그러면 우리 IBM은 달러로 이자를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
이때에 등장한 IBM의 거래 상대방이 바로 세계은행(World Bank) 이었던 것입니다.
세계은행은 <달러($)표시> 유로본드(Euro Bond)를 2건을 발행하여 하나는 IBM의 마르크화 부채의
만기일에 맞추었고, 하나는 IBM의 스위스프랑 부채의 만기일과 같게 발행하였습니다. ... 그리고
IBM과 통화스왑을 거래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세계은행은 IBM의 마르크, 스위스프랑 부채를
인수하고, 이자도 IBM을 대신해 부담하게 됩니다.(마르크, 스위스프랑으로 이자지급) ... 반면 IBM은
세계은행이 발행한 2건의 달러표시 유로본드(Euro Bond)를 인수하고 이자도 달러로 부담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은행이 달러 표시 유로본드(채권)를 발행했다는 의미는 자본시장에서 투자자들을
상대로 달러($)로 돈을 빌렸고, 이자와 원금 모두 만기일에 달러($)로 갚겠다는 뜻입니다. ]
여기까지 얘기를 들어보면 IBM과 세계은행 사이의 통화스왑 거래는 IBM 에게만 유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통화)스왑 거래는 거래쌍방이 모두 만족하기 때문에 거래가 이루어 질수 있는
것입니다. ... 예를 들어 장동건은 가방가게 점원이고, 고소영은 향수가게 점원이라고 할 때
이들은 각자의 가게에서 가방과 향수를 구입하게 된다면 10% 직원할인의 혜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장동건은 데이트 때문에 향수가 필요하게 되었고, 고소영도 가방이 하나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장동건이 원하는 향수는 판매가격이 10만원 이었고, 고소영도 필요한 가방의 가격이
10만원 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각자의 가게에서 직원할인을 받아 장동건은 가방을 9만원에
구입하고 고소영도 향수를 9만원에 구입하여, 퇴근 후 공원에서 만나 가방과 향수를 교환하면
장동건과 고소영은 서로에게 모두 만족할만한 거래가 성사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방과 향수의
교환은 달러($)와 원(\)의 교환처럼 이종통화스왑과 같은 의미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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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국제채권(International Bond) ]
보통 국제채권(International Bond)을 얘기할 때면
(1)외국채권(foreign bond), (2)유로채권(Euro Bond) ... 이렇게 두 종류로 구분합니다.
채권은 한마디로 돈을 빌려주면 언제까지 이자를 더해 갚겠다는 일종의 ‘차용증’과 같은 의미입니다.
다만 거래주체들이 대부분 큰 기업들이나 국가이기 때문에 거래 단위 자체가 개인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큰 규모이며 그래서 자격과(채권발행)과 형식(발행요건) 등의 절차가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 더불어 기업이나 국가가 자국영토 안에서 채권을 발행할 때와는 달리, 자국 이외의
지역에서 채권을 발행(자금 조달)할 때의 채권을 국제채권이라고 하며, 이때에 발행지역(국가)의
통화 단위로 채권을 발행하면 이것을 외국채권(foreign bond)이라고 하고, 자국 통화단위로 자국이
아닌 지역에서 발행하는 채권을 유로채권(Euro Bond) 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벤츠사가 자국 독일이 아닌 미국 영토에서 달러($) 표시로 채권을 발행하면
이때의 채권은 외국채권입니다. ... 쉽게 말해 벤츠사가 뉴욕 월가에서 <“달러($) 좀 빌려주세요! ~
원금과 이자 모두 달러($)로 갚아 드릴게요!“> 하면서 발행한 채권이 외국채권인 것입니다. 더불어
외국채권은 대부분 고유한 별칭이 있습니다.
독일 벤츠사처럼, 미국 자본시장에서 미국 국적이 아닌 다른 국적의 기업(국가)들이 달러($) 표시로
발행하는 채권을 일명 “양키본드(Yankee Bond)”라고 부릅니다. ... 만약 삼성이나 중국 샤오미가 일본
자본시장(일본영토)에서 엔화표시로 채권을 발행하게 된다면 이때의 채권을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보통
“사무라이본드(Samurai bond)” 라고 부르며, 미국 GM이나 일본 혼다가 우리 대한민국 자본시장에서
원화로 채권을 발행한다면 이때의 채권은 “아리랑본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발행되는
외국채권은 “불독본드(Bulldog bond)”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외국채권(foreign bond)과는 대조적으로 유로본드(유로채)는 채권을 발행하려는 기업(국가)이
자국의 통화단위로 다른 나라에서 발행하는 채권을 뜻합니다. ... 여기서 “유로(본드)”가 의미하는 바는
유로존 국가들이 사용하는 공통통화인 ‘유로화(€)’와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또한 유럽이라는 “지역”적
의미를 내포한 것도 아닙니다. ... 초창기 기업들이 (채권발행)규제가 느슨했던 유럽자본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유로”라는 말이 사용되었는데, 이제는 이러한 의미보다는
자국 통화표시로 채권을 발행하는 국가가 자국 이외의 지역에서 채권을 발행할 때 사용하는 <역외>
라는 의미만 있을 뿐입니다.... 한마디로 “유로”는 이제 국제금융시장에서 “역외” 라는 의미의 관행적
표현으로 굳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 GM이 뉴욕 월가가 아닌 런던에서 수많은 투자자들을 상대로 달러($) 표시로 채권을
발행하는 것입니다. ... 다시 말해 런던의 “시티”(뉴욕 월가나 한국의 여의도 같은 금융 중심가)에서
GM이 다음처럼 외치는 겁니다.
< “달러($) 좀 빌려주세요! ~ 만기 되면 원금과 이자 모두 달러($)로 갚아드리겠습니다!” - 유로달러>
만약 일본의 혼다가 런던의 “시티”에서 <“엔화 좀 빌려주세요! ~ 만기되면 원금과 이자 모두 엔화로
잘 갚겠습니다!”> ... 라고 외쳤다면 이때의 채권 또한 “유로채권(유로엔)”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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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앞서 설명 드린 IBM과 세계은행간의 통화스왑거래에서
세계은행이 2건의 달러($)표시 유로본드(Euro Bond)를 발행했다는 의미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세계은행은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달러($)표시 채권을 발행했습니다.(2건) ... 당연히 원금과 이자 모두
달러($)로 갚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IBM이 통화스왑거래로 인수한 것입니다. IBM이 세계은행이
갚아야할 달러($) 원금과 이자($)를 대신 갚아주고, 세계은행은 IBM이 갚아야했던 마르크화 원금과 이자,
스위스프랑 원금과 이자를 갚아주는 통화스왑 계약을 한 것입니다.
그럼 좀 더 자세한 통화스왑거래의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삼성전자는 1년 정도 원화자금이 필요해서 원화표시 채권을 발행하려 합니다.
[◆삼성전자는 지금 원화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하지만 국내(한국)에서는
이미 발행물량이 많아서 추가로 발행하려면 예전보다 더 높은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삼성전자는 아직은 발행물량도 적고 신용도 또한 생각보다 괜찮은 미국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하려 합니다.(@ 달러표시 채권 – 외국채권, 양키본드) .... 반면 GM도 자국(미국) 에서는
채권발행에 부담이 많아, 한국에서 원화표시 채권을 발행하려 합니다.(@ 아리랑본드)
그럼 이들 거래 당사자들의 좀 더 구체적인 조건을 살펴보겠습니다. ... [1$=1,000원이라 가정]
@ 조달금액 = [삼성전자: 10억원], [GM: 100만 달러($)]
@ 만기 = 1년
@ 원화 차입비용 = [삼성전자: 10.25%], [GM: 10%]
@ 달러 차입비용 = [삼성전자: 5%], [GM: 5.25%]
보시다시피 삼성전자는 한국에서 10억(원화자금)의 자금을 마련하는데(채권발행) 이자비용이
10.25% 이고, 미국에서 달러표시채권을 발행하면 5% 비용이 듭니다. ... 또한 GM은 미국에서
100만달러($)를 마련하는데 이자비용이 5.25% 이며, 한국에서 원화표시채권을 발행하면 그 비용은
10%가 듭니다. 결론적으로 원화표시 채권시장에서는 GM이 삼성전자보다 비교우위에 있고,
달러표시 채권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GM보다 비교우위(@싸게 돈을 조달할 수 있다.)에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삼성전자와 GM은 각자가 비교우위에 있는 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합니다.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100만 달러($) 규모의 달러표시 채권을 발행하고, GM은 한국에서 10억 원
규모의 원화표시 채권을 발행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삼성전자와 GM은 앞의 장동건과 고소영이
가방과 향수를 교환했던 것처럼 ... 원금(100만 달러, 10억)을 교환하는 <통화스왑>을 하게 되면,
삼성전자는 원화 10억에 대한 이자비용을 10.25% 보다 0.25% 낮은 10%에 차입하는 효과가 있고,
GM은 100만 달러($)를 5.25% 보다 0.25% 낮은 5%에 차입하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
[◆ 최초 원금교환 – 삼성전자와 GM은 각각의 비교우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한다. ]
(1) 삼성전자 = 달러($) 표시 채권시장에서 조달한 100만 달러($)를 GM에게 지급
(2) GM = 원화표시 채권시장에서 조달한 10억 원을 삼성전자에게 지급
[◆ 이자의 현금흐름 ]
(1) 삼성전자 = 원화 이자 1억 원을 GM에게 지급한다.
(2) GM = 달러($)이자 5만 달러($)를 삼성전자에게 지급한다.
[◆ 만기일 – 원금 재교환]
(1) 삼성전자 = GM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돌려받아 처음 돈을 조달한 달러표시 채권시장에 상환
(2) GM = 삼성전자로부터 10억 원을 돌려받아 처음 돈을 조달한 원화표시 채권시장에 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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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자금 흐름을 보면 ~
통화스왑을 통해서 삼성전자는 최초 자신들이 원했던 <원화> 10억 원의 자금을 조달하면서
이자까지 원화로 지급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이자지급도 원래는 1억 250만원(10.25%)을
부담해야 했지만, 통화스왑을 통해 1억 원만(10%) 부담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GM도
자신들이 처음에 원했던 <미화> 100만 달러($)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고, 이자지급도
5만 2,500달러($)(5.25%)를 부담해야 했지만, 5만 달러($)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거래의 정식명칭을
<고정금리 통화스왑[cross currency fixed to fixed debt swap]> 이라고 하는데 ... 앞서 얘기한
IBM과 세계은행 사이에 이루어졌던 통화스왑이 바로 고정금리 통화스왑 이었습니다. ... 자금흐름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통화스왑 첫 단계에서는 거래 당사자들이 <합의된 환율(현물환율)>로 원금을
교환 합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원금교환 후 합의된 고정이자를 서로가 상대방에게 지급해주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최초 교환했던 원금을 재교환 함으로써 거래가 종결됩니다. ... 더불어
최초의 원금 교환과 마지막 원금의 재교환은 명목금액이 오고가는 것이므로 환위험은 제거되는
것입니다. (@ 최초 계약당시 환율은 원금 재교환시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원금이 변동하지 않음!)
지금까지는 가장 기본적 형태의 <통화스왑>을 살펴보았습니다. ... 그래서 이제부터는
스왑의 또 다른 형태인 <◆ 금리스왑(Interest rate swap)과 상품스왑(Commodity swap)>을
살펴보려 하는데 ... 마찬가지로 이들 스왑도 기본적인 구조만 살펴볼 것입니다.[@ 글의 후반부에서
좀 더 실무적인 부분을 다루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스왑의 기본적 구조만 알아도 충분하다
생각됩니다.]
앞서 살펴본 <통화스왑>의 특징은 교환되는 (명목)원금이 서로 다른 통화(이종통화스왑)였습니다.
더불어 만기일이 되면 최초 계약시점의 환율로 명목원금이 재교환 되는 구조였습니다. ... 하지만
지금부터 살펴볼 <금리스왑>에서는 교환되는 통화의 종류가 동일하면서 만기일에는 명목원금을
재교환 하지 않습니다. ... 그렇다면 무엇이 교환되는가? ~ 이름 그대로 <금리>를 교환합니다.
다시 말해 동일한 통화의 <고정금리와 변동금리>를 교환하는 것이 금리스왑의 가장 기본적 형태인
것입니다. ... (@ 사례를 통하면 이해가 더 편할 겁니다. ... 이번엔 삼성과 애플을 비교해봅니다.)
======================
[◆ ex). 고정금리 시장과 변동금리 시장에서의 삼성과 애플의 차입비용]
@ 삼성 = (고정금리: 6.5%), (변동금리: LIBOR+0.75%)
@ 애플 = (고정금리: 5.5%), (변동금리: LIBOR+0.25%)
앞에서도 계속 말씀드렸지만, 스왑은 거래 당사자 모두가 이익(유리)이 되니까 거래를 하는 겁니다.
Libor(리보)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 간략하게 설명해보면 런던은행간 대출 금리
(London Inter-Bank Offer Rate) 라고 하는데 유로통화시장에서 어느 정도 신용도가 우수한
은행들 끼리 주로 단기자금을 거래(대출)할 때 적용하는 대표적인 단기 변동금리입니다.
국제금리 시장의 조건을 살펴보니(@ 위의 사례)
미국의 애플사는 고정금리시장이나 변동금리시장, 어느 쪽에서도 한국의 삼성전자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이것은 결국 미국의 애플사가 삼성전자보다
시장에서 더 높은 신용등급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금리시장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재미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고정금리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애플사보다 1% 더 높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는데 비해
변동금리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애플사보다 0.5% 더 높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론적으로 삼성전자는 고정금리 시장보다는 변동금리 시장에서 조금 덜 이자를 부담하면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뜻인데 ... 한마디로 삼성전자는 변동금리 시장에서 약간의 비교우위가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여기서 비교우위가 있다는 뜻은 삼성이 애플사보다 이자율을 더 적게 적용받는다는
뜻이 아님을 주의해야 합니다! ... 그리고 애플사는 고정금리 시장에서 비교우위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삼성전자와 애플사가 각각 비교우위를 갖는 금리시장(변동, 고정)이 존재한다면,
서로가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스왑거래가 성사될 수 있습니다. ... 이제 삼성전자와 애플사가
각각 비교우위를 갖는 금리시장을 통해 스왑거래를 했을 때 실질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스왑거래 시작>
(1) 애플사는 비교우위를 갖는 고정금리 시장에서 5.5% 금리로 차입 합니다. ... 그리고
삼성전자에게 Libor 금리를 지급하는 계약을 합니다.
(2) 삼성전자는 비교우위를 갖는 변동금리 시장에서 (Libor+0.75%) 금리로 차입 합니다. ... 그리고
애플사에게 5.5% 금리를 고정적으로 지급하는 계약을 합니다.
<◆ 스왑거래 후 - 애플사와 삼성전자의 현금흐름 >
@ 애플사
(1) 최초 5.5% 금리로 차입했기 때문에, 5.5% 금리가 나가게 됩니다.
(2) 삼성전자로부터 5.5% 금리를 받게 됨과 동시에, 삼성전자에게 Libor금리를 지급합니다.
(3) 결론적으로 애플사는 Libor (변동)금리로 차입하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 삼성전자
(1) 최초 (Libor+0.75%) 금리로 차입했기 때문에, (Libor+0.75%) 금리가 나가게 됩니다.
(2) 애플사로부터 Libor 금리를 받게 됨과 동시에, 애플사에게 5.5% 금리를 지급합니다.
(3) 결론적으로 삼성전자는 6.25%(@ 5.5%+0.75%) 고정금리로 차입하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자! ~ 이제 스왑거래 후,
애플사는 비교우위가 없었던 변동금리 시장에서 원래는 (Libor+0.25%) 금리로 돈을 빌려야 했지만
스왑거래 후 0.25% 더 적은 Libor금리로 차입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 또한 삼성전자는
비교우위가 없었던 고정금리 시장에서 원래는 6.5% 금리로 돈을 빌려야 했지만 스왑거래 후 0.25%
더 적은 6.25% 금리로 차입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애플사와 삼성전자 모두 각각 0.25%의 금리 효과를 누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총이익이 <0.5%>가 되는 것이죠. ... 그렇다면 총이익 0.5%라는 수치는 임의적인가?
아닙니다. 0.5%는 애플과 삼성의 고정금리 차이인 1%에서 변동금리 차이인 0.5%를 빼주면 됩니다.
[(6.5-5.5)] - [(Libor+0.75)-(Libor+0.25)] = 0.5% 계산할 수 있습니다.
[◆ 참고: 사례에서는 애플과 삼성 모두 똑같이 0.25%의 스왑이익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왑이익은 거래 당사자의 신용도나 (스왑)거래에 누가 더 많은 거래욕구를 가졌는가? ~ 처럼
거래 당사자 A와 B의 <협상력>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현실에서는 스왑이익이
정확히 5대5의 비율로 배분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게 됩니다. ]
============================
이렇게 스왑거래는 쌍방 모두를 만족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IBM, 세계은행, GM, 애플, 삼성전자 같은 거래주체들이 언제 어느 때고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들에 딱 맞는 거래 상대방을 찾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 때문에
처음 스왑거래가 싹트기 시작할 무렵에는 금융기관들이 개입해 거래 상대를 찾아주곤 했습니다.
앞에서 예를 든 IBM과 세계은행도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살로먼 브라더스(Salomon Brothers)가
개입해 거래를 성사시켰습니다. 당시에 살로먼 브라더스의 역할은 단순한 브로커(중개) 역할에
머물렀는데, 단순 브로커는 거래쌍방으로부터 일정부분 수수료만 받으면 역할이 마무리 됩니다.
<@ 브로커 - “당신이 원하는 조건에 딱 알맞은 거래 상대방을 찾았습니다. 소개시켜 줄 테니 수수료 좀 주시죠?” >
하지만 스왑중개(브로커)는 각각의 거래당사자들이 원하는 조건에 최대한 완벽하게 일치하는
상대방을 찾아야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금융기관들(특히 은행)은
스왑거래자의 요구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켜줄 수 있는 거래 상대를 찾을 때 까지 우선은
은행 자신이 직접 스왑거래의 한쪽 당사자(상대)가 되기로 합니다. 그래서 초창기 스왑시장에서의
은행 역할은 브로커(중개)에서 시작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은행들은 딜러(Dealer)의 역할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또한 1985년 "ISDA" 라는 국제스왑딜러협회(International Swap Dealer Association)가
결성되어 오늘날의 스왑시장이 <딜러시장>으로 변모하는데 많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상품스왑(Commodity swap)>의 가장 기본적 거래형태를 살펴볼 텐데 ... 여기서는
스왑거래에 <딜러(Dealer)>가 개입했을 때 거래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도 함께 살펴볼 것입니다.
상품스왑에서는 교환되는 상품이 같을 수도, 혹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 상품의 종류가 같다면
앞서 금리스왑에서 보셨듯이 명목원금의 교환은 불필요하고, 만약 상품종류가 다르다면 명목원금
교환이 필요하긴 하지만 ~ (@실질적으로는 보통 명목원금 교환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앞서 여러 스왑거래형태를 살펴본 것처럼 상품스왑 또한 사례를 통해 살펴보는 것이 이해하는데
가장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 [◆ ex). 거래주체: (1)원유생산자, (2)정유회사, (3)스왑 딜러(은행)]
=========================
@ 원유생산자: [ 매월 5천 배럴규모의 원유를 생산하는데 최근 원유시장의 가격변동성이 커져서
경영의 안정과 가격변동을 헤지하기 위해 원유공급가격을 3년 정도는 배럴당 50.5달러($) 수준에서
고정시키고 싶어 합니다. ]
@ 정유회사: [ 매월 8천 배럴의 원유를 수입하는데, 정유회사도 원유생산자와 마찬가지로
원유시장의 불안정한 변동성 때문에 원유매입가격을 향후 3년 정도는 배럴당 50.7달러($) 수준에서
고정시키고 싶어 합니다. ]
@ 스왑 딜러: [ (원유)스왑 거래의 욕구가 있는 두 당사자인 원유생산자와 정유회사 사이에 개입해
각각의 거래 상대방이 되어줍니다. ... (딜러 - 원유생산자), (딜러 - 정유회사) ]
<◆ 스왑거래 시작 – 원유 현물 시장에서는 원유가격이 매일 변동하고 있음(@평균현물가격)>
(1) 원유생산자: [ 현물시장에 원유 5천 배럴을 공급(매도)하고 그날에 형성된 평균현물가격을
매도대금으로 받습니다. 그렇게 원유를 판매하고 받은 평균현물가격(매일변동)을 스왑딜러에게
지급합니다. 대신 스왑딜러로부터 50.5달러($)를 고정적으로 지급받습니다. ]
(2) 정유회사: [ 현물시장에서 원유 8천 배럴을 매입하고 평균현물가격을 스왑딜러로부터 지급받아
원유매입 대급으로 사용합니다. 대신 정유사는 50.7달러($)를 고정적으로 스왑딜러에게 지급합니다.]
(3) 스왑 딜러: [ 스왑거래에 개입해 원유생산자로부터 지급받은 평균현물가격을 정유회사에게
지급하고, 정유회사로부터 고정적으로 받은 50.7달러($)에서 0.2달러($) 제하고 나머지 50.5달러($)를
원유생산자에게 줍니다. 이 과정에서 스왑딜러는 0.2달러($)의 차익을 확보합니다.]
============= =============
스왑거래에서는 스왑딜러가 취한 0.2달러($)를 보통 <호가 스프레드(bid-ask spread) 차익> 이라고
하는데, 사례처럼 만약 스왑딜러의 개입이 없었다면 원유생산자나 정유회사 모두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의 거래 상대를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0.2달러($) 차익은 스왑딜러가 스왑시장에
일종의 <유동성을 공급한 대가>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더불어 원유생산자와 정유회사와의
원유거래량에서 3천 배럴의 갭(8천-5천)이 발생하는데, 이는 스왑딜러가 모두 감당해야할 몫입니다.
그래서 차이나는 3천 배럴에 대해 스왑딜러는 다른 거래상대(제3자)를 찾아야 합니다. ... 만약
제3자의 거래상대를 찾는데 시간이 예상보다 오래 걸린다면 스왑 딜러(금융기관)는 원유선물이나
원유옵션을 활용해 헤징작업을 진행합니다. [◆ 사례에서 만약 원유생산자가 자신이 원하는
스왑조건을 1월1일에 의뢰를 했을 때, 은행은 그 즉시 바로 원유생산자의 조건에 딱 맞은 상대를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 때문에 우선 은행 스스로가 원유생산자의 스왑거래 상대가 됩니다.
그리고 3개월 후에 조건에 딱 맞는 정유회사를 찾게 되면 은행 입장에서는 비로소 거래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은행은(dealer) 원유생산자와 정유회사가 각각 제시하는
호가차이, 즉 <호가 스프레드>를 조절하여 이익을 취하게 됩니다. ... 처음 스왑얘기를 시작할 때
“금융기관”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했던 이유를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
더불어 이렇게 은행이 스왑거래의 딜러(dealer)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 스왑거래자(기업) 입장에서는
은행은 언제 어느 때고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의 거래상대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스왑거래자들은
점점 더 증가하게 됩니다. 은행 입장에서도 다양한 거래자들과의 거래가 증가하면 할수록 다양한
<스왑조건>을 보유하게 되는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은행들(dealer)은 좀 더 여유로운 스왑운영이
가능해 집니다.(@ 스왑유동성 증가)
또한 사례에서 등장하는 삼성전자, GM, 애플 등의 여러 스왑거래자들은 딜러인 은행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분리되므로 은행(dealer) 입장에서는 스왑장부(swap book)를 관리하기가 예전보다 상당히
편리해집니다.
[◆ 스왑창고(swap warehouse)]
1. [ 삼성 6개월 외환스왑 – A딜러(dealer)]
2. [ 삼성 24개월 변동금리 스왑 – A딜러(dealer)]
3. [ 애플 만기 3년 통화스왑 – A딜러(dealer)]
4. [ IBM 만기 5년 통화스왑 – A딜러(dealer)]
5. [ GM 만기 1년 상품스왑 - A딜러(dealer)]
.
.
.
100. [ 살로만 은행 딥스왑(Diff swap) - A딜러(dealer)]
은행이 딜러(dealer)가 되어 여러 스왑조건의 거래자들과 거래하게 되면 스왑유동성은 늘어나지만,
이것이 모든 거래자들의 조건을 100%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맞춰주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미세한 조건 불일치가 발생하면 앞서 얘기했듯이 은행(dealer)은 또 다른 스왑거래나 선물, 옵션 같은
다른 분야의 파생상품을 활용하여 헤지를 하게 됩니다. ... 더불어 이러한 상황 속에서 거래가
다양한 형태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이어진다면 스왑딜러인 은행의 거래규모는 당연히 상당한 수준의
규모로 커지게 되고, 커진 규모만큼 은행은 수많은 스왑을 보관하고 있는 일종의 <창고>가 되는
것입니다. ... 그래서 <스왑창고(swap warehouse)> 라는 새로운 개념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A딜러(dealer)는 일단 각 거래자들의 조건에 맞는 상대를 찾기 어려워 A딜러(dealer)
스스로가 거래 상대가 되어 현재 100개의 다양한 스왑(Swap)을 보관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A은행은 현재 수많은 고객들과 100개의 스왑계약을 체결한 상태임.] ... 그리고 이때
101번째 새로운 스왑거래자(고객)가 A딜러(dealer)를 찾아와 자신의 스왑조건을 제시했을 때,
A딜러(dealer) 입장에서는 이미 100개의 다양한 스왑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101번째 거래자의
요구조건을 충족시켜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겁니다. ... 그래서 그 조건에 부합하는 스왑이 만약
80번째 스왑이었다면, 이후 A딜러(dealer)는 본격적으로 호가 스프레드를 조절하여 본인의 실질적인
스왑수익을 취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
<80번 거래자 – A딜러(dealer) - 101번 거래자>
그리고 이것이 바로 <스왑창고(swap warehouse)>의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스왑(Swap)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인 <통화스왑(currency swap)>과
<금리스왑(Interest rate swap)> ... 그리고 <상품스왑(Commodity swap)>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에 <스왑창고(swap warehouse)>의 개념과 함께 딜러(dealer)가 개입하면 스왑의 수익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스왑은 거래주체들의 개별적 거래조건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표준화하기가 쉽지만은 않지만, 그나마 <통화스왑, 금리스왑, 상품스왑> 등은
현재 상당부분 거래형태가 표준화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자주 먹는 아이스크림 중에
첨가물이 없는 가장 순수하고 흔한 아이스크림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대부분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생각할 것입니다. ... 그래서 업계에서는 <통화스왑, 금리스왑, 상품스왑> 등을 가장 순수하고 흔한
일반적(표준) 스왑이라는 의미에서 일명 <바닐라 스왑(Vanilla Swap)> 이라고 부르며, 좀 더 길게
부르고 싶을 땐 <플레인 바닐라 스왑(Plain Vanilla Swap)> 이라고도 부릅니다. ... 그럼 지금부터는
이러한 기본적(이론적) 지식을 바탕으로 좀 더 실무적인(현실적) 내용을 거시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 ========
[@ 2편에서는 스왑거래와 외환시장의 상관관계, 즉 외환시장의 다양한 메커니즘에 대해서
실무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읽으신 기본적(이론적) 지식을 바탕으로
실무적인(현실적) 내용을 거시적 관점에서 살펴볼 것입니다. ... 2편(실무편)은 다음 업댓 게시물 중
최대한 금융경제와 관련된 게시물에 올려보려 하는데, 만약 관련 게시물이 올라오지 않았다면
첫 게시물에 올려보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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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2차면접을 남겨둔 취준생
물파스 형님 항상 양질의 글 정말 잘 읽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글은 제가 취업을 준비중인 분야와 관련된 글이라 특히 더 재밌게 읽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름 아니라 다음 2편과 관련된 내용을 접할수 있는 참고 사이트를 알 수 있을까요?? 당연 물파스 형님이 쓰는 글을 보는 것이 제일 좋지만 바쁠실 것을 알기에 부탁드립니다.
항상 댓글을 읽어보기만 하는 입장이라 염치 없는 부탁이라는 것은 알지만 부탁드립니다ㅠㅠ
물파스
금융권 2차면접을 남겨둔 취준생//
경제를 하는 사람들에게 '외환'은 그야말로 신의 영역입니다.
외환시장 메커니즘에는 이론적 논리와 함께 각국의 경제사정과 정치, 여기에
초국적 자본들의 차익거래 욕구와 헤지수요, 실물시장(금, 원유, 곡물 등) 영향 등이
모두 녹아들어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시장입니다. ... 따라서 훌륭한 서적이나
몇몇 사이트나 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더불어 통합적 시각을 갖기 위해서는
경제금융 뿐만 아니라 국제정치나 역사,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공부가 필요하다 생각됩니다.
요즘에는 국내 금융기관(은행, 증권사 등) 및 언론 사이트에도 상당히 좋은 자료가 많습니다.
또한 공공기관(금감원 다트, 한은, 통계청, 기재부-재정정보공개시스템)과 기업 민간 연구소 등도
좋은 자료가 차고 넘칩니다. ... 결국 공부하고자 하는 분들의 의지의 문제라고 봅니다.
국내 사이트는 포털에서 언제든지 검색가능하므로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가 자주가는 해외 사이트를 몇개 소개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할까 합니다. ~ 건승하세요!
=======
@ 월스트리트저널(마켓 데이터) h ttps://markets.wsj.com/usoverview
(금시세, 리보금리, GDP디플레이터 등 다양한 정보검색 가능)
ex). 리보금리 검색- [첫 화면 상단 Overview - (Rates 클릭) - Libor(리보) 클릭!]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 h ttp://ecos.bok.or.kr/EIndex.jsp
(국내 경제 통계는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 전 세계 모든 통화에 대한 달러($) 환율 검색 h ttps://www.x-rates.com/
(첫 화면 좌측에 Configure Converter 보면, 미리 1달러 설정 되어있고,
세 번째 칸에 원하는 국가의 통화만 설정하면 바로 환율 시세 검색 가능합니다. 매우 편리함.)
@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 주요국(G20국가는 거의 포함됨) 과거 환율 조회
첫 화면에서 검색기간 설정하고 GO버튼 클릭! - 국가 선택 클릭!
h ttps://www.federalreserve.gov/releases/h10/hist/
이 사이트의 가장 큰 특징은, 조회 국가마다 차이가 있지만 70~80년대부터 2018년 현재까지 조회가능하며
더욱 놀라운 점은 무려 일별 조회가 된다는 점입니다. 한국은 81년부터 현재(2018)까지 일별 조회가능 합니다.
(IMF 외환위기 시절, 특히 1997년 11월부터 98년 상반기까지 환율변화 추이를 보면 아주 스펙터클 합니다.)
경제를 하는 사람들에게 '외환'은 그야말로 신의 영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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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녹아들어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시장입니다. ... 따라서 훌륭한 서적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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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사이트는 포털에서 언제든지 검색가능하므로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가 자주가는 해외 사이트를 몇개 소개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할까 합니다. ~ 건승하세요!
=======
@ 월스트리트저널(마켓 데이터) h ttps://markets.wsj.com/usoverview
(금시세, 리보금리, GDP디플레이터 등 다양한 정보검색 가능)
ex). 리보금리 검색- [첫 화면 상단 Overview - (Rates 클릭) - Libor(리보) 클릭!]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 h ttp://ecos.bok.or.kr/EIndex.jsp
(국내 경제 통계는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 전 세계 모든 통화에 대한 달러($) 환율 검색 h ttps://www.x-rates.com/
(첫 화면 좌측에 Configure Converter 보면, 미리 1달러 설정 되어있고,
세 번째 칸에 원하는 국가의 통화만 설정하면 바로 환율 시세 검색 가능합니다. 매우 편리함.)
@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 주요국(G20국가는 거의 포함됨) 과거 환율 조회
첫 화면에서 검색기간 설정하고 GO버튼 클릭! - 국가 선택 클릭!
h ttps://www.federalreserve.gov/releases/h10/hist/
이 사이트의 가장 큰 특징은, 조회 국가마다 차이가 있지만 70~80년대부터 2018년 현재까지 조회가능하며
더욱 놀라운 점은 무려 일별 조회가 된다는 점입니다. 한국은 81년부터 현재(2018)까지 일별 조회가능 합니다.
(IMF 외환위기 시절, 특히 1997년 11월부터 98년 상반기까지 환율변화 추이를 보면 아주 스펙터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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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고 추가 너무 좋아" 연상의 걸프렌드가 말했다. "생긴 것도 색깔도 크기도." "나는 그닥 좋지 않은데" 덴고는 말했다. "왜?" 그녀는 덴고의 발.기하지 않은 페니스를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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啓寵納侮] ( 열 계, 사랑할 총, 들일 납, 업신여길 모 ) 지나치게 寵愛(총애)하면 도리어 輕蔑(경멸)을 받게 된다는 뜻. 계총이란 총애한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