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30일 목요일

◆지식을 쌓고 글쓰기 능력을 기르는 방법(경험) [by 물파스]

20대 마지막닢
물파스형님 항상 형님 글 읽을때마다 감탄조차 죄송합니다. 혹시 한번 지식을 쌓는 혹은 체득하고 이를 글로 쓸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기르시는지 정말 염치없지만 여쭈어도될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물파스형님이 지향하는 롤모델이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파렴치하지만 형님의 100분의 1이라도 지식을 쌓고 싶은 사람으로서 묻습니다.ㅠㅠ


물파스

20대 마지막닢//


[@ 공부가 많이 부족해서 다른분들에게 조언을 드릴만한 사람이 아니라는걸
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 다만 부족함에도 응원을 주시니 그저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그래서 도움이 되실지는 모르겠지만, 또 그렇게 많은 세월을 살지는 않았지만,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꼈던 경험적인 이야기 위주로만 해볼까 합니다.]
========


중.고등학교 까지만 해도 읽고, 쓰고, 생각하는 내 모든 공부들은
오직 대학입학 이라는 한 점을 위한 행위들이었습니다.(뭐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 )
그리고 대학과 사회(직장)라는 공간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현상(현실)들을 경험하게 되었는데
저는 그 곳에서 그동안 교과서가 정직하게 얘기해주던 활자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수많은
“가짜”들을 만났습니다. ... 진짜라고 믿었던 활자의 세계는 거짓이었고, 오히려 <거짓으로 가득 찬>
현실이 진짜였던 것입니다.

교과서의 활자는 배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했지만, 현실에서의 배신은 개인에게는 현명한 전략적
선택도구의 하나였음을 종종 확인하기도 했었습니다. ... 그리고 이러한 나의 주관적 목격담이
이미 500년 전 <마키아벨리>라는 이탈리아 사상가가 솔직히 얘기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후배들로부터 존경받던 시대를 비판하던 진보성향의 선배가 사실은 그 누구보다 더
독선적이며 이기적이었음이 돈 문제를 통해 발각된 사실이며, 의리로 뭉쳤던 15년 지기 친구놈이
언제부턴가 친구들 사이에서 협잡꾼 노릇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현실은 대개 <가짜들의 총합>
이라는 걸 깨닫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던 걸로 기억됩니다.

“병신 같은 새끼!” ... ....... 업무 파악에 서툴렀던 신입시절 직장 상사에게 처음 들었던 욕설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나약함> 이라는
내가 만든 스스로의 변명으로 상사의 욕설을 정당화 시켜주고 있었습니다. ... 이런 행위는 분명
내가 아닌 가짜인 ‘나’인데도 불구하고 저는 계속해서 <가짜들의 총합>의 크기를 키워가는
현실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지하 셋방에 살면서 가난한 현실을 탓하던 사람들이 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들을 보면
자신에게도 최소한 그들로부터 지켜야할 자산(?)이 있음에 안도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 그리고
언젠가는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며 자본주의 사회를 찬양합니다.

자본으로 성(s.ex), 정신(ideology), 신(God)을 구매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때문에 인간이 ‘노예’ 따위로 전락하는 건 이젠 일도 아닙니다. ... 그래서 저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논문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는 통찰을 키우기 위한
공부입니다. 정해진 시간은 없습니다. 이미 평생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를 예수에 비유했던 흰머리 서석구 변호사의 나이가 74세 라고 합니다.(1944년생)
아직도 한국 사회에는 현역 변호사로 활동하는 나이 많은 변호사분들이 많습니다. ... 그런데 만약
10대, 20대 젊은 청년들에게 60대, 70대 변호사 분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하냐고 질문한다면
뭐라 대답할 것 같습니까? ..... ... 능력을 차치한다면 대부분의 청년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늙은 변호사들!”

대학을 재수, 삼수를 하든
고시를 2~3년 늦게 합격하든 ... 결국은 세월이 흐르면 모두에게는 앞에 <늙은>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것입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공부에는 늦은 나이가 없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우리 모두에게 <늙은(지식인)> 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 마르크스, 다윈, 칸트, 헤겔, 니체, 고흐, 프로이트, 아담 스미스, 케인즈 ... 등
인류역사에 크나큰 족적을 남긴 위인들은 저마다 천착한 분야만 달랐을 뿐이지 모두가 평생을
공부했던 사람들입니다.

글을 (잘)쓰려면 기본적으로 많이 읽어야 합니다.
인풋이 없으면 아웃풋 또한 당연히 존재할 수 없습니다. ... 더불어 읽는 행위는 그 무엇보다도
“(생리적)습관화”가 중요합니다. ... 아침에 일어나 양치하듯, 그리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배설을 하는 행위들처럼 읽는 행위는 단순히 일회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밥 먹고 똥을 싸듯
하나의 생리현상처럼 몸의 기억으로 습관화 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화장실에 들어갈 때는
무조건 활자로 된 그 무엇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스마트폰도 가능하겠지만 폰 사용은 영상이나
음악처럼 셋 길로 빠질 가능성이 많아서 저는 오직 활자에만 집중할 수 있는 책을 들고 들어갑니다.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무조건적으로 책을 봅니다.
저 스스로의 내면에 일종의 “강제성”을 주입해서 습관화 시켰습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 ... ..... 이 말을 꼭 기억해두세요 ~

(읽는 행위가)습관화되면 이제 본인의 머리(뇌)가 싫다고 해도 몸은 저절로 행위를 일으킵니다.
너무 피곤해서 그래서 읽기 싫어도 몸은 자연스럽게 책을 손에 쥐게 만드는데 ... 그러다 보면
최소한 책속의 한 문장이라도 읽게 되며 이 과정에서 어느 순간 스스로가 책 내용에 깊게
빠져드는 경험을 (자주)하게 될 것입니다. ... “몸의 기억은 생각보다 강렬합니다!”

읽는 버릇(습관)이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면, 이제는 쓰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건 “절대로 부끄럽거나 주저하지 말라!” 입니다.

본인이 쓴 글이 스스로도 부족하다 생각되어도 주저하지 말고, 또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말고
과감하게 어느 곳이든 올리십시오! ~ 좀 더 완벽하게 준비하고 다듬어서 올려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 처음부터 “어른”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터넷에는 무한의 글이 존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글을 쓰려는 사람들에게는 최상의 조건이 준비된 시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설이든, 기사든, 논문이든 ... 많은 글을 읽어보면서 글쓴이의 주장, 즉 글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달하려는지 파악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파악된 글쓴이의 주장에 최소한 한 번쯤은
본인 스스로가 되묻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 “저 주장이 과연 타당한가?”

글쓴이의 주장에 동의하기 힘들다면~ 그럼 나의 주장은 무엇인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라며 그 글에 대해서 반대 주장을 한번 써보는 연습을 해보세요 ~
상대의 주장을 반박하는 단계인데 그러려면 자연스럽게 반대 논거를 찾게 됩니다. 그렇게 찾은
객관이 담보된 반대 논거를 사용하여 “본인 주장”을 해보는 것입니다. ... 여기서 본인의 반대 주장이
훌륭하게, 또는 그렇지 못하게 작성되었다 해도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건
이러한 “쓰기의 과정”, 즉 상대 주장에 타당성을 사유해보고 아니다 싶어서 본인의 주장을 생각하고
그러한 본인 생각을 글에 담는 과정에서 논거를 찾고 ... 이러한 모든 <쓰는 과정> 자체가
헬스클럽에서 근육을 키우는 과정처럼 본인의 글 쓰는 능력을 상당히 높게 끌어올려줄 것입니다.

읽기와 쓰는 과정을 몸의 기억으로 습관화 시켰다면, 이후부터는 글에 맵시(모양새)를 더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 이 과정에서는 다양한 단어나 (아름다운)문장의 “수집”이 중요합니다.
이 수집 과정을 속성으로 익힐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시(詩) 읽기입니다.
시인들이 시를 통해 표현하는 단어는 가장 함축적이며 맵시가 좋은 단어들입니다.

읽기, 쓰기, 글 맵시 등을 몸의 기억으로 담는 과정에서 또 하나 쉬지 말고 습관화 시켜야 하는것이
바로 <생각하기! , 사유하기!> 입니다. 이것은 어느 단계를 끝내고 하는것이 아니라
읽고 쓰고 맵시를 뽑내는 전 과정의 가장 밑바탕에서 기초로서 아주 튼튼하게 자리해야 합니다.
<생각하고 사유하는> 방법중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철학과 역사 입니다.

이러한 습관화와 연습을 통해 생산된 본인의 글이
비록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거나 타인에게 비판을 받더라도 마음 상하지말고 지속해야 합니다.
본인글에 대해 상대의 비판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앞서 얘기했듯이 논거를 찾아
반박을 하고 ... 만약 속마음이 불편해도 상대 비판에 수긍이 간다면 그 즉시 인정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그래도 내가 옳다"가 아니라,
"그래 니 말이 맞는것 같다. 인정한다!" ~ 처럼 타인을 인정하는 용기가 자신을 더 성숙한 단계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글을 (잘)쓰는 능력은 훈련을 통해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훈련은 자의적 속성을 내포하기 때문에 습관을 통한 몸의 기억으로 각인시켜야 합니다.

읽을 꺼리가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글을 쓰는 공간 또한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 최상의 조건이 준비된 시대에
이제 본인의 몸에 글을 쓰는 능력을 문신처럼 새겨넣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됩니다.




[@ 퇴근후라 답변이 늦었습니다.
답글은 모두 저의 주관적 견해이므로 정답의 글이 아닙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차별은 비용을 치른다 (하지만 당신은 그것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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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혐오다!" ... 라는 말(言)에 대해서 [by 물파스]

[◆ "여성혐오다!" ... 라는 말(言)에 대해서 ]



저게 바로 "여성혐오다!" ... 라는 말 자체는 푸코의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권력>입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권력의 생산과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집단(페미니즘)이, 혹은 사회가 <여성혐오>를 반복적으로 외칠 때마다 사회의 무의식은
그 외침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도로(Road)로 착각하게 됩니다. ... 공공재가 되는 것이죠.
이제 <여성혐오>의 구호는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저기가 길(road) 이므로 따르자!" 라는
집단의 생각이 흐르는 거대한 권력으로 변모 됩니다.

집단의 생각이 안심하고 흐를 수 있는 거대한 길이 만들어지고, 그 길로 인하여
무의식이 권력화 된 의식으로 전환됨으로써 이제 집단(페미니즘)의 의식은 흔히 얘기하는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의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언어가 사회 안에서 규모의 경제로 사용된다면 이후 언어(규정된 용어)는 수행적(performative)
효과를 누리며 하나의 큰 힘, 즉 <권력화>가 되는데 ... <"주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 이것은
단지 말(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를 대통령의 자리에서 진짜 물러나게 만드는 아주 큰 힘을 가진
실체적 권력에 다름이 아닙니다.(@ performative)

20세기 후반, 소련 붕괴 이전의 세계는 오직 <미국과 소련>의 한계 안에서만 해석되었습니다.
당시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사건과 사고의 원인에는 반드시 <미국, 소련> 이라는 양대 강대국이
대입되어야만 해석이 가능한 시대였습니다. ... 세계는 <미.소 양강>이라는 언어(용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그들을 자연스럽게 권력화 시켰는데, 한마디로 세계가 <미.소>의 구호를 반복할 때마다
미국과 소련의 발언권은 더욱 더 확대되고 강화되었습니다.

물론 미국과 소련의 물리적인 힘(군사, 경제, 정보)이 당연히 뒷받침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언어로써 규정된 <미.소>의 수행적(performative) 효과는 결코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집단의 무의식이 언어(규정된 용어)와 만나 규모의 경제를 이루며 반복적으로 사용되면,
어느 순간 언어는 <권력화 된 의식>으로 전환되고, 사회 안에서 수행적(performative) 효과를 누리며
진짜 힘을 갖게 됩니다.

언어로써 무엇을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지배성>과 연결됩니다. ... 힘(권력)을 갖는 것이죠!
개인으로써의 불완전한 생각은 집단(페미니즘)에 합류한 순간에 박탈당하고 대신 자신을(자신의 사고)
박탈한 주체(페미니즘)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권위를 분배 받습니다. 따라서 그녀(그)는 곧 <"우리">가 되고,
그녀(그)의 힘은 <"우리의 힘">으로 증폭됩니다.

<우리의 힘>은 이제 법에 준하는 힘으로 자신들에게 도전하거나 반대되는 타자를 심판할 수 있으며
그렇게 <우리의 힘>으로 규정된 타자들은 한 순간에 <비정상성>을 갖는 비표준적인 것들로 전락하게
됩니다. ... 결론적으로 <우리의 힘>은 단순히 (현재의)열위상태를 벗어나려는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행보가 아니라 사회 안에서 우위를 점하거나 우위 상태를 유지하려는 <권력에의 의지>가 진짜 본질입니다.
더불어 언어로써 타자를 규정한다는 의미는 모두에게 타자에 대한 <생각의 허용한계>를 미리 설정하는 것이
진정한 <타자규정의 힘>입니다.

이 부분은 우리가 훌륭한 한국 문학작품 한편을 통해 이해를 도울 수 있습니다.

[◆ 고등학교 2학년인 최기표는 악마의 자식이자 ‘폭력’ 그 자체입니다.
같은 반 아이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자 절대자입니다. ... 잔혹성, 무자비함,
예측불허의 괴팍한 성격 ... 단지 (현재)자신의 기분이 안 좋다는 이유만으로
동급생을 칼로 위협하고, 담뱃불로 지지기도 합니다. ~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던 어느 날, 반장 형우는 자발적으로 부정행위를 하며 기표를 도와줍니다.
하지만 기표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을 도왔다며 형우에게 심한 폭력을
행사합니다.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은 형우는 치밀한 복수를 시작하는데
침묵으로, 즉 아무런 대응 없이 마치 자기가 기표를 너그럽게 용서해준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면서 형우는 사실 기표는 심성이 착한 아이이며, 가난하지만
부모님에게는 그 어떤 아들보다 효성이 지극한 아이이고, 친구가 되면 그 누구보다
의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정한 사나이라며 기표를 치켜세웁니다.
호수에 붉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 서서히 반장 형우의 언어로 새롭게 <규정>되어가는
기표는 어느새 악마에서 선한 천사로 변하게 됩니다. ... 그리고 형우는 마지막으로
기표의 삶을 위대한 학생의 승리로 포장하여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도록 만듭니다.
화제의 주인공 최기표! ~ 기표의 가공된 미담은 이제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기표 스스로는 예전과 같이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지만, 새롭게 규정되면서부터
영화화 될 정도까지 나아갑니다. 그러나 영화 제작사 직원들이 찾아올 무렵쯤
기표는 홀연히 사라지기로 마음먹고 여동생에게 한마디 말을 남깁니다.

"무섭다! ~ 무서워! 더 이상 무서워서 못 살겠다!" - (우상의 눈물/ 전상국) ]


소설은 두 개의 폭력(잔혹성)을 다룹니다. ... 하나는 기표의 <물리적 폭력>이며
또 하나는 새로운 타자로 규정된 <존재론적 폭력>입니다. ... 제가 주장하는 <타자 규정의 힘>은
바로 형우에 의해 새롭게 규정된 기표인 것입니다. <생각의 허용한계>가 미리 설정된다는 뜻은
결국 새롭게 규정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선한 최기표!) ... 한마디로
선전의 힘이 극대화 되는 것입니다. ... 기표를 선함으로 미리 설정해 버리자 이제 주변에서는
기표의 또 다른 <선함>만 찾게 됩니다. 선하다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직 미담만 계속해서
생산되는 것이죠 ... 그래서 영화화 단계까지 가게 됩니다.(@극대화 되는 선전의 힘)

<타자규정의 힘>은 이렇게 잔혹한 속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개인 보다는 집단의 힘이, 즉 <우리의 힘>으로 배설되는 말(言)의 힘은 개인의 힘(言)을 월등히
넘어서며 보이는 모든 현상을 "여성혐오"로 해석하게 됩니다. ... 한마디로 <우리의 힘>에 의해 설정된
<생각의 허용한계>는 "선한 기표"만 찾듯이 <여성혐오>만 찾게되는 것입니다.

당대표를 제거해도 당은 살아야 하고, 대통령은 임기가 있지만 국가는 영원해야 하듯이 ...
다시 말해 집단의 크기는 일정 수준, 즉 임계점을 넘는 순간부터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개별성은
상실(박탈)하고 오직 <집단의 존재> 그 자체만을 위해 존재하게 됩니다. 흔히 동물학에서는 <초개체성>
이라고 하는데, 초개체성은 일벌의 사례에서 자주 목격됩니다. 일벌들은 갑자기 난입한 침입자를 침으로
찌름으로써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고 벌집을 지킵니다. ... 그런데 인간세계에서도 이러한 일벌들의
초개체성이 자주 목격됩니다. 자신이 소속된 세력(집단)을 본인과 동일시하며 집단이 위협받을 때
언제든지 자신은 집단의 생존을 위해 희생합니다. ... 왜냐하면

<"집단이 규정한 언어는 보편적 논리보다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보편적으로 성숙한 집단(세력)은 어른의 질서체계 안에서 작동되며, 운영 또한 민주적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타자규정은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내부동의(합의)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투명성을 바탕으로 한 타자규정은 한 번 결정되면 반질서적 집단의 타자규정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무서운 힘을 갖습니다. ... 그래서 때론 <민주적>이라는 의미는 상당한 파괴력을 내포한
<잔혹성(폭력)>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 ... ... 그리고

한국의 많은 여성학자들은 한국형 페미니즘 또한 상당히 민주적이라고들 합니다!





[@ 겨울의 상징인 12월이 코 앞인데, 아직도 모기가 있습니다.
모기를 겨울 곤충으로 다시 규정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전에 얘기했던 스왑(swap) 관련 이야기는 정리가 다 끝나가는데
도표 없이 말로만 쓰려다보니 분량이 너무나 많아졌습니다. 마무리 되는대로
올려보겠습니다. 건강들 잘 챙기십시요. ]

2017년 11월 7일 화요일

◆ 아파트의 풍요와 재래시장의 가지 [by 물파스]

[◆ 아파트의 풍요와 재래시장의 가지 ]



거만한 모습으로 하늘을 뚫을 듯 솟아오른 고층 아파트.
그곳의 담장 또한 주인을 잘 따르는 개 처럼 아주 높게 서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죄수들을 가둔 교도소의 담장과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은 주변과의 조화를 생략한 채 ... 점점 더 자폐화 되어가는
단지 안의 격리된 주거문화를 <풍요>라고 말합니다.

단지 앞 카페에 모인 일부의 여인들(혹은 여사님들)은
육아와 여성인권을 얘기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인근 재래시장의
이전 문제와 아파트 가격의 상관관계를 논하기 시작합니다. ...

김칫거리는 마트보다는 재래시장 물건들이 더 신선하고 값도 싸다는
어머니의 평소 소신과 주관에 따라 (이젠 더 이상 신선하진 않지만)철지난 늙은 아들도
카트를 끌며 어머니를 따라 나섰습니다.

시장 입구에서 옆집 할머니를 만나 잠시 수다 삼매경에 빠진 어머니 뒤로
아들은 시장입구 옆, 떡집 매대에 랩으로 참 먹음직스럽게 포장되어 진열된
각종 떡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과연 '무슨 맛일까?'를 희망차게 상상해봅니다. ~ 순간!
한 팩에 2천원인데 세 팩을 사면 5천원에 준다며 화장을 짙게 한, 생각보다 젊어 보이는
떡집 아주머니가 나에게 흥정을 걸어옵니다. ... 그때 어차피 다른 떡집도
세 팩 5천원에 준다며 어머니가 지원사격을 합니다. ... 옆집 할머니도 거듭니다. 그리고
두 분은 다시 수다를 이어갑니다.

그러자 떡집 아주머니는 어차피 오늘은 일찍 문 닫을라고 했다며,
그럼 네 팩을 6천원 가져가라며 결정타를 날립니다. ... 어머니와 옆집 할머니는
수다를 멈추고 떡집 매대로 다가와 이건 바람떡, 저건 쑥인절미, 요건 호박떡 등
아들이 처음부터 궁금해 하던 각종 떡의 이름과 맛을 논하기 사작합니다.
덕분에 늙은 아들은 간접적이나마 대부분의 떡의 종류를 알게 되었습니다.

옆집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천 원짜리 2장 있냐며 물어옵니다.
어머니가 없다고 하자 할머니는 바지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떡 네 팩을 골라 계산하고 바람처럼 사라집니다. ... 어머니는 아들의 의견을 반영해
먹고 싶은 떡을 골라보라고 권합니다. 아들이 화려한 모양의 호박과 콩이 섞인
주황빛 나는 떡을 고르려 하자 바람떡이 맛있다며 어머니는 그렇게 바람떡 세 팩과
쑥인절미 한 팩을 고르고 지갑에서 천 원짜리 6장을 꺼내 떡 값을 지불합니다.

시장입구 떡집에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지체한 탓인지
어머니는 서둘러 시장 안으로 들어갑니다. ... 아들은 호박과 콩이 섞인 떡은
과연 '무슨 맛일까?'를 상상하며 ~ "쿠르르 ~ " 카트를 끌고 다시 어머니의 뒤를 따라
시장 안으로 들어갑니다.

김칫거리를 파는 채소가게에서 배추와 쪽파와 마늘 등 각종 김칫거리를 고르던
어머니에게 채소가게 아주머니가 떡을 많이 샀다며 무슨 떡을 샀냐고 물어옵니다.
그런데 분명 채소가게 아주머니는 떡의 종류를 물어왔지만 어머니는 6천 원을 주고
떡 네 팩을 샀다며 떡의 수량으로 응수합니다. ... 그리고 뿌듯해 하십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소통이 이루어 집니다.

그때 채소가게 맞은편 기름집 아주머니가 다가와 어머니에게 정보를 하나 알려줍니다.
떡집 여편네는 과부인데 최근 젊은 총각을 만나 매일 매일이 즐거울 거라고 합니다.
나이 오십 줄에 마흔 셋 직업군인, 그것도 총각을 만났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거라며
떡 네 팩이 아니라 마흔 팩을 퍼줘도 요즘은 전혀 아깝지 않은 기분일거라며 부러움 섞인 말투로
정보를 누설합니다.

~ 그 순간!

"집에서도 청소나 빨래 같은 궂은일도 다하고, 가게 문 닫을 때도 자주 나와서 챙겨주고,
누가 지 마누라 훔쳐 갈까봐 하루 종일 물고 빨고 한 순간도 놔주질 않는 데요 ... 아무튼
팔자 좋은 여편네는 자빠져도 가지 밭이라는데 ~ 호! 호! 호! "

기름가게와 옆으로 나란히 붙어있는 건어물 가게 아주머니가 김칫거리를 고르던
어머니 옆으로 다가와 굵은 가지 하나를 골라잡고 크게 흔들며 웃습니다. ... 어머니도 웃고,
채소가게 아주머니도 웃고, 기름집 아주머니도 웃습니다.

아들은 호박과 콩이 섞인 떡이 '무슨 맛일까?'를 계속해서 생각하느라
아주머니들의 웃음에 화합하지 못했습니다.

- 2017년 11월 ... 단풍이 뉴스를 장식하던 어느 일요일 오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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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와 해학은 개인의 삶 뿐만이 아니라 시대의 (정서적)가뭄을 해소하는 역할도 합니다.
모든것이 바쁘게 <새 것>으로 교체되어도 풍자와 해학은 여전히 살아남아 자신들의 공간을 고수하며
아파트 단지의 <풍요>와 재래시장의 <가지>를 등치관계로 만드는 비범성을 갖습니다.

재래시장이 이전하면,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올지 공공시설이 들어올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사실은 <오래된 것들은 > 아무튼 <새 것>에 의해 주변부로 자꾸만 ~ 자꾸만 밀려나가는
신세라는 점입니다. ... 그리고 더 이상 밀려나갈 공간이 없는 주변부의 끝에 당도했을때
오래된 것들은 <풍자와 해학>만 남겨놓고 우리들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새 것>들의 공격적 밀려듦을 너무도 잘 표현했던 김수영의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 금성(金星) 라디오 ]

금성라디오 A504를 맑게 개인 가을날
일수로 사들여온 것처럼
오백원인가를 깎아서 일수로 사들여온 것처럼
그만큼 손쉽게
내 몸과 내 노래는 타락했다

헌 기계는 가게로 가게에 있던 기계는
옆에 새로 난 쌀가게로 타락해 가고
어제는 카시미롱이 들은 새 이불이
어젯밤에는 새 책이
오늘 오후에는 새 라디오가 승격해 들어왔다

아내는 이런 어려운 일들을 어렵지 않게 해치운다
결단은 이제 여자의 것이다
나를 죽이는 여자의 유희다
아이놈은 라디오를 보더니
왜 새 수련장은 안 사왔느냐고 대들지만

- [ 금성라디오, 김수영 전집1, 1966.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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