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30일 월요일

◆ 고자 파시즘(Fascism) [by 물파스]

[◆ 고자 파시즘(Fascism) ]



민주노총이 대화를 거부했습니다. ... 대화를 제안한 상대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습니다.
<노동>이 국가 권력에 의해 탄압받고 상당수 국민들에게 붉게 물든 억울한 타자로 누명을
받고 있을 때에도 앞장서서 그들을 대신해 권력에게 항변했던 사람이 지금의 대통령입니다.

물론 과거의 인정(人情)과 연대의 애환이 공적인 대의로 치환될 수는 없을 겁니다. ... 또한
그러한 흐릿한 명분이 권력에 다가가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도 안 됩니다. ... 정(情)은 나누되
현실은 객관화 할 필요가 있는 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의 대화거부는 정(情)을 뿌리친 것일까? ~ 아니면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려는 어설픈 대의 찾기 놀음인가? ... 과연 무엇이 그들의 진심일까?

만약 대화거부의 이유가 전자라면 민주노총은 국민들의 도덕적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들의 피해자적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할 것입니다. ... 더불어 대화거부의 이유가 후자라면
찾고자 하는 그 어설픈 ‘큰 뜻(大義)’의 정체 또한 낱낱이 밝혀야 합니다. ... 하지만 과거 한때
정성을 다해 피해자의 상처를 치료해주던 대통령에게 그들 스스로가 피해자적 입장을 당당히
말하기는 매우 곤란할 것입니다. 마치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주던 의사를 향해
<"당신은 가해자다!"> 라고 말해야하는 착란적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 따라서
이제 민주노총은 자신들은 <선한 의사를 가해자로 몰아세우는> 광기에 사로잡힌 집단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 <큰 뜻(大義)>의 정체를 밝혀야할 일만 남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이 생각하는 <큰 뜻>은 과연 무엇일까?
어쩌면 그들이 추구하는 큰 뜻의 정체는 <노동>이 아니라 <민주노총> 그 자체일수도
있겠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 생각입니다.

[◆ 독일 파시즘은 대중들의 심리적 구조에 뿌리내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으며, 따라서 청소년과 어린이를 파악하는데
가장 커다란 비중을 두었다. 독일 파시즘은 금욕적이고 성을 부정하는
교육의 기본적인 전제 조건인 '권위에 대한 예속'을 불러일으키고
습관화시키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수단도 가지지 못했다.
유아기부터 시작되어 계속해서 만족되기를 바라는 이성에 대한
자연스런 성적 갈망은 왜곡되고 오도된 본질을 가진 동성애적이고
가학적인 감정으로 대체되었으며, 부분적으로는 금욕주의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대체는 소위 '단련과 복종의 정신'을 이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노동봉사캠프에서 이식되었던 이른바 '동지정신'을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이런 구호들은 야만성을 풀어주고 자극하여 제국주의 전쟁에 유용하게
사용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 '가학성은 충족되지 않은 오르가즘적 열망에서 생긴다.'

- ( 파시즘의 대중심리. 280페이지/ 빌헬름 라이히 (Wilhelm Reich)/ 그린비 출판) ]


천재는 확실히 세상(사회)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준 책입니다.
책이 출판 된지 벌써 8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세계 수많은 지식인들에게 읽히고 있는
라이히의 치밀하고 섬세한 대중심리 분석서입니다. ... 의학을 전공한 라이히(1897년~1957년)는
프로이트를 알게 되면서 정신분석의 세계에 매료됩니다. 그리고 공부가 여기서 그쳤다면
그는 그냥 평범한 프로이트 전공자중 한명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라이히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노동운동을 포함한 사회운동의 본질을 찾으려 할 때 우리는 보통 거시적 관점에서 분석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운동(노동운동)이 사실은 <개인>이라는 원자단위의 집합이라는
부분을 우리는 자주 간과합니다. ... 그리고 개인의 정체(본질)는 철저히 <미시적> 관점에서만
파악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라이히가 프로이트(미시적)와 마르크스(거시적)의 통합을 시도하려
했던 것은 아마도 <대중심리>의 진정한 본질을 찾으려는 가장 올바른 행보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이히가 <파시즘의 대중심리>에서 말하고자 했던 가장 핵심적 사유는 <성경제학>입니다.
<성경제학>은 생물학적 에너지 조절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라이히가 사용한 개념입니다. 한마디로
개인이 성적 에너지를 얼마만큼 오르가즘으로 배설(분출)하는지, 혹은 분출하지 못하는지를
분석하는데 ... 라이히의 주장에 따르면 개인이 성적에너지를 오르가즘으로 분출하지 못하고
그래서 오르가즘 억압을 지닌 사람들은 그 반대급부로 <권위주의>를 찾게 된다고 합니다.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성욕>은 단지 국가의 미래 노동력 확보를 위한 생식(출산)의 관점에서만
이해되어야 하며 ... 그렇기 때문에 여성, 특히 <어머니>라는 신분은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성욕과
양립할 수 없는 금욕적 관념이 주입됩니다. 이것은 결국 섹.스(성욕)가 <생식(출산)>의 목적에
부합할 때만 도덕성을 인정받는다는 것입니다. ... 라이히의 책(파시즘의 대중심리)이 출판되던
1930년대 초반에는 나치와 파시즘이 광풍처럼 불어 닥치던 시기였습니다. ... 그리고 우리나라의
유신시대 또한 권위주의가 극에 달하던 시대였습니다. 이 시대에 생식을 위해서만 존재하던
어머니의 맞은편에는 남편이라는 <아버지>도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권위주의 사회 안에서 그들
<아버지들> 또한 규율과 근면, 성실한 노동자로서 자신들의 성적 오르가즘을 억압하며 스스로를
<무성화> 시켰습니다. ... 이러한 (권위주의)시대의 습관적 무성화 시도는 결국 <국가> 라는
전체에 함몰되고, 주체성을 상실한 노동자 개인은 자신들의 억압된 오르가즘을 국가가 반대급부로
쥐어준 소위 <가부장(家父長)> 이라는 또 다른 권위로 돌려받습니다.

<투쟁> 이라는 에너지 넘치는 발.기상태가 아니라 <"나도 한때는 발.기 좀 해봤다!">처럼
과거를 추억하는 고자의 신세로 쪼그라들고 있는 오늘날 한국 시회의 노동자들은
결국 개인의 발.기(상태)를 <민주노총>이라는 집단정신에 헌납함으로써 <고자 파시즘>을
완성해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결론적으로 대통령의 대화를 거부한 민주노총의 <큰 뜻>은 바로 노동자 개인들을 모두 고자로
만들어 <민주노총>을 국가위에 존재하는 <고자 파시즘>으로 각인시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 노동자(개인)는 점점 더 소외되고 있는데, 노조의 힘의 크기는 더욱 더 커져가고 있는
전복된 현실을 그래서 저는 <(고자)파시즘>에서 찾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중들은 어째서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도 되는 양 자신에 대한 억압을 욕망하는가?"
- 빌헬름 라이히 (Wilhelm Reich) >





[@ 이 글은 한국사회의 노동과 노조의 가치를 폄훼하고자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노조의 목적과 가치의 본질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광경이 우리 노조에서
자주 목격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서 주제넘게 주관적 생각을 얘기해 본것입니다. ]

2017년 10월 22일 일요일

◆ 사회 민주주의 ... 그리고 질서자유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 [by 물파스]

[◆ 사회 민주주의 ... 그리고 질서자유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


[@ 오래전 <독일의 사상적 기반 - 질서자유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 라는 주제로
장문의 글을 올렸었는데 ... 핵심적 내용만 정리해 다시 올려봅니다. ~ 포털에서
이 기사 내용을 보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시장경제'를 마치 공산주의 경제체제로
오해를 하시더군요. 심지어 어떤 댓글에서는 아이들에게 "빨갱이 경제"를 가르친다는
황당한 주장도 보였습니다. ... 무식(無識)과 무지(無知)는 언뜻 비슷한 의미로 생각되지만,
둘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무식은 지식과 정보의 빈곤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는
정보 과잉의 사회입니다. 따라서 무식은 언제든지 극복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무지는 "알고 싶지 않다" ... 라는 마음이 지속되는 상태입니다. 부족한 저의 글이 사람들의 무지를
깨우쳐 줄 정도의 깊이는 안되더라도 최소한 올바른 정보는 전달해주리라 생각되어 글을 올려봅니다. ]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부자와 가난한 자들의 갈등이 더 깊어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한마디로 양극화의 심화였죠 ... 더불어 이러한 상태가 계속된다면 결국에 세계는 매우 적은 수의
부자들과 나머지 대부분이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로 나눠지게 될 것입니다.

노동이 가치창출의 원천이라든가 불변자본과 가변자본, 자본의 유기적 구성 같은
마르크스 자본론의 핵심적 이야기를 여기서 모두 얘기하는건 어렵겠지만 ... 아무튼 중요한건
마르크스는 부자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을 착취하면서 자신들의 부를 쌓아간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이러한 불평등한 세상을 좀 더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로 만들려면
모든 노동자(프롤레타리아)들이 연대하여 소수의 부자들을 폭력으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른바 <폭력 혁명론> 입니다. 그래서 사회주의자들은 폭력혁명을 통해서만 자본주의 사회가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로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점은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는 민주주의, 특히 <의회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았던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기득권 권력(왕정, 군주제 등)을 타파하고 진정한 민주 혁명을 완수하려면
당시 상황에서는 <힘에 의한 체제전복>, 즉 폭력혁명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폭력혁명>은 어찌보면 시적대 당위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 다시말해
마르크스가 거친 폭력론자였다는 부분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했을때 일정부분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 아무튼 이러한 시대적 흐름속에서 훗날 <베른슈타인(Bernstein| Eduard)>
이라는 독일의 사회주의자가 나타납니다.

19세기말 독일의 노동자들의 삶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모든 시민에게는 선거권이 주어지고, 초등학교 의무교육 실시와 하루 8시간 노동제 등
노동자들의 전반적인 삶이 개선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그리고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을 대변해 꾸준히 목소리를 높여갔으며, 또한 선거를 통해 의회에 입성한
노동자 정당과 대표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베른슈타인(Bernstein| Eduard)은 생각합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의 힘이 강해지려면 폭력혁명으로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했는데
노동자가 의회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것도 폭력혁명 못지않게 매우 긍정적 결과를 도출하고
있는 것 같다! ... ... 음 ~ 그렇다면 굳이 폭력을 써가면서까지 사회주의를 할 필요는 없잖아!
그래! ~ 의회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어!"

이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것이
바로 오늘날 유럽 선진국들의 소위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 인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사회주의자들은 베른슈타인의 주장을 개무시 하면서 비난을 합니다.

"이단자새끼!, 수정주의 새끼!, 개량주의! ~~~ "

그리고 이후 1917년 유럽의 사민주의자들을 비판하며 많은 실망을 했던 러시아의 어느 급진적
사회주의자는 혁명을 하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민주의 새끼들은 타락한 자본주의와 타협했다! ~ 그들은 오염됐다!"

그가 바로 레닌(Lenin) 입니다. ... 그리고 레닌은 자신들의 혁명이념을 <공산주의>라 명명 합니다.
이렇게 해서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는 서유럽의 중심의 <사민주의>와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로
갈라서게 됩니다.

이렇게 탄생한 사회민주주의는 유럽에서 사민주의 이념을 받아들인 정당을 탄생시켰고 ... 이후
사민주의 이념의 정당들은, 특히 독일을 중심으로 소위 <사회적 시장경제> 라는 그들만의
독특한 경제체제를 만들어 갑니다.

오늘날 독일경제를 지탱해온 그들만의 경제체제인 <사회적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는
사실 발터 오이켄의 <질서자유주의> 라는 아주 튼튼한 사상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질서자유주의>라는 사상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도로위의 차선(중앙선)이나 횡단보도는 단순한 페인트칠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선을 벗어나거나 넘어서면 안 된다는 사회구성원간의 암묵적 약속이며,
체계를 갖춘 하나의 '틀'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이러한 '틀'은 빨간 신호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빨간 신호등은 단순히 붉은색 전구에 불이 켜진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 다시말해, 움직이지 말고
정지해 있으라는 구성원간의 약속인 것입니다. 하지만,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하고 가만히(정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미묘하지만)자유를 억압받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다만 정지신호를 받은 사람의 자유가
잠시 제약 받고 있을 때, 도로위의 다른 차들은 (푸른 신호등 아래서)간섭 없이 달리면서 자신들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 즉, 도로 위에서 각각의 주체들은 서로간의 약속의 범주 속에
자신들의 자유 중 일부를 반납함으로써 대체적으로 반납된 자유보다 더 큰 자유를 누리며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유를 미묘하게 제한 받고는 있지만, 차선이나 신호등 같은 규격화되고 체계화된
틀(질서)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는 거의 다 누리면서 운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로 위의 모든 주체들에게는 이처럼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마음껏 달리고 싶은 자유와 욕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차선과 신호등 같은 하나의 <틀(질서)>이 부여됨으로써 사회는 소위 <"교통체계"> 라는
질서(틀)가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 만약 이러한 질서(틀)가 부여되지 않는다면 도로 위는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될 것입니다. ... 결국 질서라는 말속에는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암묵적 약속이
내포되어 있으며 이것은 하나의 체계적 "틀"로서 작용하는 것입니다.
[@ 법(法)은 질서가 극대화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결론적으로 오이켄이 주장한 질서자유주의 핵심은
국가는 민간의 사적권력, 즉! ~ 독점을 제한하고, 시장에 질서를 부여해(경쟁질서) 최고수준의 자유경쟁을
보장하는 것이며, 경제주체들(기업, 국민)의 시장과정(자유로운 경제활동)에는 절대 개입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정부는 이러한 부분들이 자유.방임적 조건하에서 스스로(내생적) 만들어지기만을 바라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실현되도록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한마디로 "자유경쟁"을 최대한 보장하되
그러한 경쟁적 과정에서 발생할수 있는 불합리(ex. 독과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조정하라는 것이죠!

한마디로 오이켄은 (민간)독점 권력같은 불합리가 발생하게 되는 원인을 정책 및 법과 같은 정부측의 잘못도 있지만,
설사 정부개입이 없었다 하더라도 경쟁이 자유로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독점 권력의 생성은 필연적이며,
또 자연스럽게 발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이켄은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즉, 시장경제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는 정부가 <최소한의 질서>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 @ 최소한입니다! ~ 오이켄은 케인즈의 개입주의도 비판했던 사람입니다.
정부가 하나, 둘 간섭하다보면 결국 또 다른 나치(중앙관리경제)가 등장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오이켄은 정부가 최소한의 질서(개입)를 부여하는 것은 이러한 "자유경쟁"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 주장했던 것입니다.]

종합해보면 오이켄의 이러한 사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서독)에서
"사회적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 라는 새로운 경제질서가 만들어지는 견고한 토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전부터 한국사회에서 선거 시즌만 되면 각 정당들이 내세우는 최대 화두인
소위 "경제민주화"는 바로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을 상당부분 차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참고: 독일의 맥주 제조는 그들의 식품법 중에서 가장 오래된 순도법(Reinheitsgebot: Purity Law)을 따릅니다.
이 법은 맥주를 제조할때 물과 보리 그리고 호프 이외에 다른 첨가물을 절대 넣으면 안된다는 조항입니다.
1516년에 만들어진 이 법은 독일 전지역으로 확대되어 적용되고 있었는데, 1990년대에 와서 조금은 완화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독일의 수많은 맥주 장인들은 이 법(순도법)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자신들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맥주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 결론적으로 오늘날 독일의 맥주는 "물, 보리, 호프" ... 라는 "질서(틀)" 안에서
수많은 장인들이 각자가 생각해낸 노하우로 자유롭게 경쟁한 산물(결과)인 것입니다. ... 독일사회를 차분히
살펴보다보면, 많은 부분에서 "질서자유주의" 라는 그들만의 사상적 기반을 발견할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이제 <사회적 시장경제>의 핵심을 살펴보면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구)서독에서 경제학자 뮐러-아르막에 의해 성립된 체제입니다.
고전적 자유.방임의 단점과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폐단을 모두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나타났는데
앞서 살펴본 오이켄의 질서자유주의를 바탕으로 1949년 5월 서독 헌법에 해당하는 "연방기본법"이 통과되면서
법적 기반을 마련하게 됩니다.

연방기본법에는 가격안정과 완전고용의 유지, 국제수지 균형달성 등의 <경제적 목표>와 함께
사화적 균형, 사회적 안정, 사회적 진보 등의 <사회적 목표>가 규정되었습니다. ... ... 그래서
경제적 목표와 사회적 목표를 함께 추구한다고 "사회적 시장경제" 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먼저 <"국가가 해야 할 일">과 <"국가가 해서는 안될 일">을
아주 엄격하고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오이켄의 질서자유주의의
질서정책과 규제원칙의 범주에서 찾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 사회적 시장경제의 가장 큰 특징은 시장경제체제 하에서의 "사회적 조정" 기능입니다.
다시 말해, 사적 의사결정과 사회적 목적이 충돌할 때 정부가 나서서 조정을 한다는 점입니다.

(1). 고용기회 보장 및 피고용자 권익보장
(2). 소득분배 개선
(3). 산업체 의사결정의 민주화 등과 관련된 분야에서 주로 사회적 조정이 이루어지는데 ...

고용기회와 피고용자 권익보장은 대부분의 시장경제 국가에서 이미 실천되고 있는 부분이라 특별할게
없지만, 중요한건 (2)와 (3)의 내용에 의해 독일이 <사회적 시장경제>라 명명되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소득분배 개선은 모든 국민에게 재산 소유와 그에 따른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국가의 책임으로 생각하고
국가(정부)가 국민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재산을 형성할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 예를들면
저소득층의 주택구입을 위한 정부의 이자지원과 임대주택 사업재원의 정부 부담, 기업이윤 중 일부를
투자기금의 형태로 근로자가 소유하여 기업의 생산자본에 투입하게 함으로써 근로자가 기업에 대해
<공동 소유권>을 가질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이러한 부분에서 정부가 나서서 조정자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특징은 <노사의 공동의사결정> 입니다.
2천명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기업은 근로자 대표와 경영진이 회사경영에 공동으로 참여하여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때문에 독일의 노조는 투쟁 보다는 협력과 소통이 우선시 됩니다. 한마디로
산업민주주의를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정리해보면,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 "자유로운 경쟁" >을 국민경제 발전의 근간으로 봅니다.
하지만 경쟁에서 탈락한 국민(경제적 약자)은 국가가 사회적 조정을 과정을 거쳐(국가 개입)
기본적인 생활을 할수 있도록 도움을 줌으로써 사회적 갈등과 긴장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독일의 이러한 사회적 시장경제가 오늘날 독일의 발전의 원동력이라 얘기합니다.

민주주의(정치)를 잘하기 위해서는 제대로된 "헌법"이 필요하듯이
시장경제가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만의 헌법">이 필요하다는 것이
질서자유주의자들의 생각이었고 ... 그것이 이후에 오늘날 독일을 성공으로 이끈 독일만의 경제체제인
"사회적 시장경제"로 이어진 것입니다. ... 다시한 번 강조하지만 <사회적 시장경제>는
"자유경쟁"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합니다. ~ 다만 이 과정에서 발생할수 있는 불합리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개입) 조정하여 ... <패자(탈락자)의 양산을 막는 사회!>를 추구하자는 것입니다.






[@ 얼마전 중국과 한국의 통화스왑이 연장되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와 관련된 글을 퇴근후 조금씩 정리하고 있는데, 내용 자체가 파생금융이다보니
어렵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쉽게 풀어가는데 애를 많이 먹고 있습니다. 그나마 조금씩 정성을
쏟다보니 조만간 마무리 될 것 같은데 ... 문제는 또 분량이 꽤 많다는 점입니다. ;;
단순히 스왑의 개념만 정리한것이 아니라 ~ 실무적인 금융메커니즘 부분도 연결해서 함께
다루다보니 분량이 많아졌습니다. ... 어차피 '물파스'는 긴 글 올리는 사람임을 많은 분들이 아시고
또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하고 분량이 많더라도 한번 올려볼 생각입니다. ]

2017년 10월 17일 화요일

◆ 천박한 정신의 변주곡 [by 물파스]

[◆ 천박한 정신의 변주곡]



한서(漢書)에 이런 (사건)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선제(宣帝.기원전 90~49년 제위)때 승상을 지냈던 병길(丙吉.기원전~55년)이
어느 날 외출을 합니다. 한참 길을 가다 시장거리에서 큰 소란이 일어났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패싸움이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병길은 이 광경을 지켜보고도 그냥 무심하게 지나쳐
가던 길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러다 이번엔 소가 끄는 수레를 몰고 가는 농부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농부는 소를 향해 크게 소리치며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는 혀를 길게 내밀며 침을 질질 흘리고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듯이
제자리에서 가쁜 숨만 내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병길은 즉시 농부에게 다가가 대체 지금까지 몇 리나 수레를 몰고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또한 소의 기운과 같은 건강 등에 관한 부분을(최근의 상태) 자세히 물어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병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하인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병길에게 물었습니다.

< "사람들의 싸움은 무심하게 지나치면서 고작 동물인 소가 숨을 헐떡이는 것에는
유독 관심을 많이 보이시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 다른 숨은 뜻이 있는 것이옵니까?" >

그러자 병길은 너그럽게 웃으며 하인에게 다음처럼 답합니다.

< "백성들이 싸우는 일은 직책상 장안의 현령이나 경조윤[한(漢)나라 때 하급 관리.]이
나서서 말리고 주변을 정리하면 될 일이다. 나는 승상으로서 연말에 가서 상황에 근거해
현령이나 경조윤이 일을 잘 처리했는지 살핀 다음, 상벌을 황제에게 보고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소의 기운을 살피는 일은 다르다. 지금은 계절상 봄으로 그렇게 더운 절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소가 숨을 헐떡거리며 기운을 내지 못한다면 이것은 혹시나 절기가 고르지 못해
장차 나라에 동물의 전염병 같은 큰 재난을 염려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승상이 해야 할 일이다." >

< "무당은 공짜 돈 안 받는다!" > ... 저의 어머니가 가끔 하시는 말입니다.
저를 포함 집안에 종교를 믿는 가족이 없는 관계로 주변에서 누군가가 앞일을 잘 본다는 얘기만 나오면
친구 분과 기어코 한 번은 다녀오셔야 직성이 풀리시는 성격인지라 ... 그때마다 당신의 앞일보다는
자식의 앞일만 챙겨 오시는 통에 아들과 사소한 말다툼이 일 때마다 금언처럼 하시는 말입니다.

무당이 사이비든 혹은 진정으로 신(神)빨이 최고조에 오른 신령님이든 ... 어쨌든 그들은
나의 어머니 전언에 따르면 "공짜돈은 받지 않습니다." ~ 최소한 무당 본연의 임무와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 하물며 국민들의 세금으로 존재하는 나랏일을 하는 작자들이 염치불구하게도
무당도 받지 않는 공짜 돈을 마구 받아 처먹는 작태에 그저 한 숨만 절로 나올 뿐입니다.

소의 기운을 살펴 절기의 이치를 깨우치는 승상의 지혜로움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백성들의 싸움을 말리고 주변을 정리해야하는 현령의 순발력 또한 바라지도 않습니다.
대신 국민들을 속이는 천박한 기만의 짓거리만이라도 하지 말았음을 바랐습니다.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수많은 구성원들은 모두 본인들만이 욕망하는 삶의 위치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삶의 (진정한)주인 됨을 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각자 <주인됨>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는 본인이 원하고 욕망하는 모든 것들이 오직 본인의 의지대로
완벽히 이루어져야 진정한 <주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주인이다!"> 라는
의욕에 가득 찬 (간편한)외침만 있으면 되는 것일까? ~ 이러한 외침(주장)만으로 편리하게 주인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그렇게 할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주인>이 되고 싶다면 본인의 (단순한)주장이 아니라 타인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주변 다른 수많은 구성원들 간에 소위 <인정투쟁>이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 전쟁]

싸움(전쟁)은 승자와 패자를 구분할 것이며, 패자는 죽음으로써 <주인됨>을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승자는 패자를 죽이지 않습니다. ... 승자의 <주인됨>은 오직 패자가 존재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승자는 싸움에서 승리한 후 패자를 <노예>로 삼습니다. ... 본인 옆에 전리품인
<노예>가 있어야만 비로소 승자는 진정으로 <주인됨>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주인과 노예, 지배와 예속의 관계 생성]

이것이 바로 헤겔이 자신의 저서 <정신현상학>에서 언급했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입니다.
그런데 (주인-노예) 까지의 관계는 대강 그 의미는 알겠는데 "변증법"은 왜 붙었을까?

노예는 패배의 대가로 목숨은 건졌지만, 대신 주인을 위해 노예의 삶을 살아갑니다.
주인을 대신에 농사도 짓고, 집안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합니다. ...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이제 노예는 노동(농사)을 통해 <생산>이라는 숭고한 의미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작물들이
노예 자신의 의지대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삶의 참다움을 깨닫게 됩니다. ... 나무로 소소한
가구들도 만들어보고, 옷도 만들며 닭이나 양들을 키우면서 생명의 신비로움도 직접 체험하게 됩니다.

노예가 이렇게 노예생활동안 삶의 참다운 의미를 깨우쳐갈 때, 주인은 게으르고 나태해져서
무기력의 수렁 속으로 더 깊게 빠져버립니다. ... 이쯤 되면 주인은 단순히 주인의 <형식>, 즉
주인의 외피만 둘러쓰고 있는 자립성을 상실한 실질적 노예 상태가 되는 것이며, 반대로 노예는
본인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은 실질적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 주인과 노예의 전복!
말 그대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헤겔의 이러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오늘의 한국사회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권력이 쥔 자들이 어느 순간 노예로 전락하여 <천박한 정신>으로 외화(外化)되는 것을
지금 전 국민이 목도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객석의 조명이 어두워집니다. ... 동시에 무대의 조명이 밝아집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피아니스트)이 무대 중앙에 거만하게 놓여있는
고풍스런 피아노를 향하여 조심스럽게 다가옵니다. 순간 모든 공간은 정적으로 메워집니다.

< 4분 33초 ........ >

적막, 정적, 침묵, 고요 등 ... 아무튼 그 무엇이 됐든지 간에
여인(피아니스트)은 4분 33초 동안 피아노 앞에서 <소리 없음>을 연주합니다.
현대 음악가 존 케이지(John Milton Cage)의 <4분 33초> 라는 작품의 내용입니다.
작가가 청중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음악은 바로 <4분 33초> 동안의 적막 속에서 발산되는
청중들의 <수군거림> 그 자체입니다. ... 수군거림(소음)이 바로 음악(작품)인 것입니다.

"소음(노이즈)" 이라는 불편하고 거북한 현상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기성 가치관의
전복을 시도함으로써 이제 가장 반질서적인 노이즈는 또 하나의 질서적인 형태를 갖게 됩니다.
한마디로 <노이즈가 질서를 생산>하게 된 것입니다.

지난 정권은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에서 서서히 수장되어가고 있는 시간에 공백을 둠으로써
국민들의 비명과 절망적 수군거림을 본인들만의 예술적 작품(?)으로 창조하려 했던 걸까요?
아쉽지만 이미 주인됨을 상실하고 <천박한 정신>으로 전락한 그들의 어이없는 작태는
너무나 불편하고 거슬리는 "소음(노이즈)" 그 자체일 뿐입니다.





[@ 어처구니가 없어 화가 많이 나는 하루였습니다.
오늘부터 기온이 많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모두들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 연휴 뒤의 넋두리 - "뭣이 중헌디!" [by 물파스]

[◆ 연휴 뒤의 넋두리 - "뭣이 중헌디!"]



지난 2013년 4월 12일.
서울에 사는 한 평범한 50대 남성의 자살이 언론에 크게 화제가 됐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가 늘상 따라붙던 한국사회에서 개인적으로는
참 많이 슬픈 뉴스였지만, 그렇다고 평범한 50대 가장의 자살이 당시 포털 검색순위 상위를 차지할
만큼의 중요한 사건이었는지는 그래서 저에게는 그의 사연이 너무나 궁금했었습니다.

[◆ 서울 50대男 권총 자살 "밀수 총기 가능성"
연합뉴스 기사전송 2013-04-12. - h ttp://news.nate.com/view/20130412n13434?mid=n0402

미제 22구경 사용 "군경서 유출된 적 없어"…경찰, 대공 용의점 등 수사
오씨가 사용한 권총은 미국 제닝스사가 1989~90년에 제작한 22구경 모델 J-22로
민간인인 오씨 신분상 정상 경로를 통해서는 소지할 수 없는 것이다. 경찰은 총기 일련번호를
확인한 결과 이 총기가 경찰이나 민간에서 보유·관리하는 것은 아니며 경찰이 사용하는 22구경
권총과도 다른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군에 문의한 결과 군에서 유출된 총기도 아니라고
한다"며 "밀수품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총기사고인 만큼 군과 합동으로 입수 경위와 대공 용의점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한 사회의 50대 가장이 <권총>으로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개인의 총기소지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쉽지 않은 자살입니다. ... 기사를 읽고 나서야
'오씨'라는 50대 남자의 자살이 왜 검색순위 상위를 차지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3년 전부터 아내와 별거 중이었던 50대 남성 <'오씨'> ... 그 남자 '오씨'는
자살 전날 가정법원에서 이혼판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과 경찰, 언론 등에서는
권총의 입수경위에 더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소멸 되었는데 기사내용의 대부분은
"왜?"라는 질문보다 도대체 "권총은 어디서 탄생했느냐"가 중요해진 것입니다. ... 그래서 어쩌면,
50대 남자의 뇌를 관통한건 총알이 아니라 제도에 대한 공동체의 염려(念慮)일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50년이라는 삶의 무게가 <3년의 별거와 이혼판결>이라는 단말마 같은 짧은 기사 한 줄로 요약되고,
대신 <권총의 입수경위>에 모든 걸 양보했던 그 남자 "오씨!" ... 그나마 익명으로 전환되던 찰나에
"오씨" 라는 성(姓) 하나는 건졌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 어쩌면 소멸된 생명의 본질은
이후 쇠붙이의 탄생비밀에 경의를 표해야할 지경입니다. 윤회(輪廻)를 믿는다면 다음 생에 "오씨"는
반드시 권총으로 다시 태어나리라 결심했을 것입니다.

[◆ 남자는 조건만 허용된다면 1년에 100명의 자기 자녀를 낳게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여자는 아무리 남자가 많고 조건이 허용되어도 1년에 한 명 이상은 낳을 수 없다.
남자는 끝없이 다른 여자를 탐내는데 여자는 한 남자에게 충실하고 의지하려고 하는 것은
자연의 본능적인 결과일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순결이란 남자에게는 부자연스럽고
거추장스러운 것이지만 여자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예로부터 여자의 외도는
남자의 외도에 비해 훨씬 더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다스려온 것이다. - (쇼펜하우어)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사회에서 특히, 여자에게는 사회가 일종의 <순결강박>을 강요했었다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순결(purity)>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일본계 미국인인 정신과 의사 진 시노다 볼렌(Jean Shinoda Bolen)은 자신의 저서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에서 얘기합니다. ... 고대 아프리카 원주민 문화에서는 여자가 임신을 하면
아기를 만들기 위해 몸에 피를 담아 둔다고, 그래서 임신과 수유의 기간에는 월경이 멈추는 것이라
생각했으며, 폐경도 여성이 몸 안에 피를 가두는 것인데 이때에는 아기가 아니라 <지혜>를 만들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굳이 아프리카 원주민 문화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순결>은 <피(血)>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이
분명해보입니다. 한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서는 남성은 처녀막(處女膜)이라는 여성의 처음이자 마지막
저항을 파괴시켜야 합니다. 고대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피를 담기 위해 피를 쏟아야 하는
역설적 물리와 관념의 정설이 동시에 일어나는 신비로운 광경인 것입니다. ... 이러한 신비로운 희소성
때문에 현대사회에서의 순결, 즉 <처녀성(virginity)>은 남성들에게 소유의 대상, 또는 정복의 대상으로서
공간적 개념을 배태(胚胎) 합니다. 공간, 즉 처녀성(virginity)에 장소의 개념이 부여되자 이제 남자들에게
순결한 처녀는 <정복 가능한 땅>으로서 서서히 관념화 되어버린 것입니다. ~ 그리고 이러한 개념들이
<자본주의>와 만나면서 정복의 야욕은 더욱 더 노골화 됩니다.

생명의 순수 결정체인 태아와 정신의 결정체인 지혜를 담아두던 처녀성(virginity)이 이제는 상품으로
전화되어 화폐가치로 측정가능해진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 물론 이러한 생각들은 이미
우리 과거에 진작부터 존재했었습니다.

[◆ 웨일스의 법들을 보면 배상은 주로 가축으로 계산되고, 아일랜드 법들을 보면
주로 여자 노예 또는 황소로 계산되었다. 그리고 게르만의 법전에서는 주로 귀금속이
사용되었다 - 20세기 최고의 고전(古錢. 옛날돈)학자 필립 그리어슨(Philip Grierson)의
바바리아 법전(Barbarian Law Codes) 연구 中
<바바리아 법전 (Barbarian Law Codes) : 로마제국 멸망뒤 고트 사람과 프리즐란드 사람,
프랑크 사람 등 게르만 민족들이 정리한 법전. 훗날 러시아, 아일랜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게까지 전파되어 현지에 그와 비슷한 법전을 낳았음.]

그리어슨의 바바리아 법전 연구내용을 보면 ... 소, 말, 양 같은 가축절도나 사기 및 상대방에 대한
상해 그리고, 개인들간의 채무관계 위반에 대한 부분 등 기타 여러 사회적 문제에 관한 형벌조항이나
배상조항들이 나옵니다. 그중에서 아일랜드 법의 배상조항에 있는 ‘여자 노예’ 라는 조항이 눈에 띠는데
이것은 곧 사람(개인)이 하나의 통화기능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노예제 시대의 일반적
노예(사람) 개념은 하나의 상품적 의미가 강했지만 ... 바바리아 법전에서는 엄연히 배상조항의
한 항목으로서 상품 보다는 ‘화폐적‘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굳이 바바리아 법전같은 오래된 고대역사를 들추지 않고도 프랑스의 인류학자
장클로드 갈레이(Jean-Claude Galey)가 동부 히말라야 지역에서 목격한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여자 노예’와 비슷한 궤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 장클로드 갈레이에 따르면 1970년대 까지도
이곳(동부 히말라야 지역)의 하층민들은 <정복당한 사람들>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수세기전에 현 지주계층의 선조들에게 자신들(하층민)의 조상이 정복을 당했었고, 자신들은 그 후손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 입니다 ... 땅도 없고 돈도 없던 하층민들에게 하루를 버티며 사는 것도 힘겨운
일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결혼과 장례라는 큰 행사는 그들(하층민)에게는 매우 부담되는 일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상당히 많은 돈이 필요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하층민) 결혼이나 장례 같은
집안의 대사가 있을 때면 지주에게 돈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 그럴때면 상류층(지주) 대부자들은
하층민들의 딸을 담보로 요구하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합니다. ... 예를 들어, 만약 어느 하층민이
자신의 외동딸 결혼을 위해 돈을 빌리려 할 때, 딸(신부 본인)은 결혼 첫날밤을 남편과 보내고,
다음 날 부터는 그 상류층 대부자의 첩으로 수개월을 지내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대부자가 딸에게
싫증을 느끼게 되면, 딸(신부)은 노동자가 많은 가까운 벌목장 같은 곳으로 보내져 매춘부로 1~2년을
생활하면서 아버지의 남은 빚(딸의 결혼비용)을 갚게 되고, 빚이 모두 청산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의 남편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합니다.

" 이런 얘기를 듣고나면 누구나 분노나 충격을 느낄겁니다. 그러나 정작 그곳(동부 히말라야)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이 불행하다거나 불공정 하다고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으며, 세상사가
다 그렇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또한 지역의 최고 중재자인 브라만(최고 계급인 승려 계급)
들도 이런 현실에 큰 우려를 표하지는 않았습니다. ... 왜냐하면 대부자의 중에는 브라만 계급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 장클로드 갈레이(Jean-Claude Galey) "

갈레이의 사례가 조금은 극단적 일수는 있겠지만 ... 보다 중요한 것은 바바리아 법전의
<여자 노예>나, 동부 히말라야 지역 <하층민의 신부>는 모두 한 개인(주체)이 부채(Debt)
그 자체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부채와 주체의 동질화) ... 그리고 이러한 동질화 현상은
세분화되어 좀 더 다양한 모습으로 파생되기도 하는데... 성(S ex), 신체(Organ), 명예(Honor) 같은
것들입니다 ...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사회에는 상당수의 유흥업소 (여성)종사자들이 선불금 이라는
일명 '마이킹' 때문에 자신을 저당 잡혀 사는 경우가 여전히 많이 존재하며, 빚을 감당하지 못해 자살을
선택하기도 하고, 자신의 신체를 담보로 보험사기를 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 이러한
개인들의 불안한 관계들은, 곧 자신(주체)과 부채(Debt)를 맞교환 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처녀성(virginity)>의 대표적 상징이었던 10대소녀의 피의 결정(結晶)이 전기신호에 의해 손 안에서
너무나 쉽게 가격이 책정되면서 이제 사회는 인간의 순결이 훼손되는것보다 공동체의 위생에 대한 염려가
더 크게 부각됩니다. ... 앞서 언급했듯 우리 사회가 순결강박을 요구하는 사회로 다시 돌아가자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공동체의 위생에 대한 염려를 가볍게 취급하자는 뜻도 아닙니다. ... 자본주의 사회가
어려운 이유입니다. 어떤 사태가 자본과 만난다면 우리에게는 반드시 "뭣이 중헌디?" 라는 물음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오씨"는 성(姓) 하나는 건졌다지만 10대 소녀의 피의 결정은 완벽한 익명으로 전환되어
공동체의 위생에 대한 염려 속으로 아주 깊게 파묻혀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 ~ (진짜 뭣이 중할까?)





[@ 연휴의 후유증이 생각보다 치명적(?)입니다.
이슈인분들 모두 편안한 연휴 즐기셨는지요 ~ 더 알찬 글을 위해
오늘을 짧은 넋두리 하나 던지고 갑니다. ]

부동산과 경제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