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1일 토요일

◆ 인간의 동일성에 관한 단상(斷想) [by. 물파스]

[◆ 인간의 동일성에 관한 단상(斷想)]


1월 1일 ... 대학교수 김철수는 본인의 사회적 신분에 어울리는 고급시계 2개를 구입합니다.
가격과 디자인, 부품 등에서 모두 동일했던 시계에 김철수는 각각 <사랑>과 <행복> 이라는
이름을 부여합니다.

다음날부터 김철수는 <사랑>을 조심스럽게 손목에 차고 학교에 출근합니다.
<행복>은 김철수 집 금고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습니다. ... 고가의 시계라 조심스럽게
사용한다고는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랑>은 조금씩 상처가 나며 낡은 시계가 되어갑니다.
더불어 ‘고급’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자주 고장 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사랑>의 부품을
떼어내고 집에 있는 <행복>의 부품으로 교체합니다. 그렇게 시간은 조금씩 흐르고 어느덧
12월 31일이 되었을 때 ... <사랑>의 모든 것은 <행복>의 것으로 대체됩니다.

김철수의 손목을 감싸고 있던 초침, 분침, 시침 등의 바늘은 물론, 시계 내부를 구성하고 있던
2천여 개의 정교한 부품들 거의 대부분은 이제 <행복>으로 대체된 것입니다.

자 ~ 그럼 ... 1월 1일의 시계 <사랑>은 12월 31일 시점에서 보았을 때
<사랑>과 동일한가? ~ <행복>과 동일한가?

시계가 <사랑>과 동일하다고 주장한다면 12월 31일 시점에서 시계의 모든 부품이
<행복>의 것이라는 사실과 상충됩니다. ... 반면 12월 31일의 시계는 <행복>과 동일하다고
주장한다면, 1월, 2월, 3월, 4월 ... 12월 31일 이라는 시간을 거쳐 오는 동안 김철수가
시계를 여전히 <사랑>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인식의 지속>과 상충됩니다.

생명이 없는 개체(상품)라도 동일성에 대해 진중하게 천착하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스스로에게 많은 사유를 요구하게 됩니다. ... 하물며 살아있는 유기체, 그것도 의식행위가 가능한
<인간의 동일성>을 파악하는 문제는 우리에게 상품(무생물)을 넘어서는 엄청난 무게의 사유가
필요한 물음입니다.

헤겔(Hegel)은 인류 역사가 <정(正)-반(反)-합(合)>이라는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다고
주장합니다. 헤겔 변증법의 핵심 사유는 바로 <모순>입니다. <모순>은 인간과 사회 안에 내재된
필연이며 인류는 그 <모순>을 극복하고 좀 더 차원 높은 ‘합(종합)’의 상태로 발전(진보)합니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헤겔 변증법은 <인간의 동일성>에 대해 적절한 답을 내어줄 수 있을까?

1월 1일의 ‘나’와 12월 31일의 ‘나’는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지식적으로도 많이 변해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라는 존재의 본질, 즉 <정체성(identity)>은 변증법의 변화(발전)의
과정(흐름)속에서도 오롯이 보존됩니다. 다시 말해 헤겔 변증법은 과거의 모순을 모두 극복하고(품고)
더 나은 상태로의 안착을 의미하기 때문에 <인간의 동일성>은 ‘모순’에 의해 붕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다분히 반(反)헤겔적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사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상당히 당황스럽습니다. ... 물론 헤겔의 변증법은
어느 한 개인(개체)이 아닌, 인류(세계) 전체의 변화(발전된 역사)의 과정을 얘기합니다.
아무튼 그가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기 동일성을 상실해가고 있는 근본적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시선을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쪽으로 돌려볼까 합니다.

오래전 마광수 교수의 책(사라를 위한 변명)에서 보았던 글이 기억이 납니다. ~ 마광수 교수는
자신이 초등학교(국민학교)때 세계문학전집(100여권)을 참 많이, 또 부지런히 읽었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읽을거리가 귀했던 시절이라 그때 읽었던 문학전집이 훗날 소중한 문학적 자산이 되었다고
회고하면서 한 가지 특별했던 경험을 얘기했는데 ... 그때의 문학전집에는 각 권마다 첫 장에
<이 책의 등장인물>이라는 인물소개란이 있었다는 겁니다. 거기에는 등장인물의 얼굴 삽화와
주요 인물의 역할과 성격 등이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 그리고 마광수 교수는
그때부터 등장인물의 선.악을 미리 결정해 버리는 버릇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후 이러한 버릇은
영화나 다른 분야에까지 영향을 주어 (성인이 되기 전까지)세상을 선과 악, 즉 <흑백논리>로만
바라보는 습관이 한 동안은 계속 되었다고 책에서 반성적 고백을 하였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를 통째로 흔들고 있는 그 사람의 지지층은 마광수 교수가 그랬던 것처럼
본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문학전집의 <이 책의 등장인물>란에 소개된 인물처럼 그를 선한 존재(주인공)로
이미 규정해버린 듯합니다. ... 생명 없는 개체의 동일성조차 진지하게 파고들면 어려운데,
이성을 가진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선함과 악함>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한계에 갇혀버린다는 건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원래 인간과 사회 안에 <모순>은 필연적으로 잠재되어 있는데, 그래서 어쩌면 그 사람은
1월 1일과 12월 31일, 두 시점에서 모두 변함없이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존재였는데
많은 분들이 <이 책의 등장인물> 소개란을 보고 그를 신앙으로 미리 규정해버린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헤겔(Hegel)은 조국을 구원할 수 있을까?



[@ 태어나 처음으로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다양한 치료법이 많아서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 치료는 거의 다 끝나가는데,
치료가 끝나면 '한미일 관계'에 대한 내용으로 긴 글을 하나 올려볼 생각입니다.
편안한 추석 연휴 즐기시길 바랍니다. ~ ]

부동산과 경제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