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런 황(?)소에 대한 슬픈 단상(斷想) ]
국어사전에서 ‘황소’를 찾아보면 <몸집이 큰 수소>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오랫동안 한자 문화권에서 살아온 탓에 우리는, 아니 저는 지금까지 ‘황소’를 말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레짐작으로 누런색의 큰 소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 황소의 ‘황’을 한자 ‘황(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사전적 의미에서 보셨다시피 황소는 ‘누렇다’는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크다>라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 이라고 합니다.
‘하다’는 크다는 뜻의 우리 옛말인데 ... ‘하다’의 어간인 ‘하’에 형용사를 만드는 어미 ‘ㄴ’을
붙인 뒤 명사와 결합해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 예를 들어, 크게 내쉬는 숨을
뜻하는 ‘한숨’과 자동차나 사람이 많이 다니는 큰 길을 뜻하는 ‘한길’, 장마나 큰 비를 뜻하는
‘한비’, 큰물을 뜻하는 ‘한물’, 그리고 대전(大田)의 옛 이름인 ‘한밭’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여기에 그동안 우리가 한자어로 알고 있던 <한강(漢江)> 또한 원래는 ‘큰 강’이라는 뜻 이었는데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에 한자 소리를 빌려와 크다는 의미의 ‘한’을 대신 표기한 것입니다.
<황소>는 크다는 의미의 순우리말인 ‘한’이 변한 것입니다. ... 우리는 간혹 ‘역할’을 ‘역활’로
소리 내어 읽는 경우가 많은데, 마찬가지로 ‘한’이 ‘황’으로 소리가 바뀐 원리라고 합니다. ... 이는
우리의 문헌기록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싸호 한쇼를 두소 자바시며(方鬪巨牛)>라는
‘용비어천가’ 대목에서는 큰 소를 뜻하는 한자 ‘거우(巨牛)’에 우리말 한쇼가 대응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에도 <한쇼>가 나옵니다. ... 이렇듯 우리의 ‘황소’라는
이름은 “한쇼>항쇼>황소” 라는 변천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니 나는 지금까지 황소를 왜 <누런 소>라고 알고 있었을까?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소들이 사육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가축 소 대부분은
<오록스(Aurochs)> 라는 하나의 종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유라시아 전역과 아프리카 북부에
넓게 분포되어 살던 오록스는 선사시대 동굴벽화에도 자주 등장할 만큼 중요한 수렵 대상이었지만
1627년 폴란드에서 마지막으로 잡힌 것을 끝으로 야생에서 완전히 멸종됐다고 합니다. ... 그런데
오록스의 후예들이 자신의 조상을 멸종시킨 인간의 손에서 다시 살아남아 지구위에서 번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씁쓸한 모순입니다.
우리의 한우는 오록스(Aurochs)의 피를 물려받은 후예입니다. ... 오랜 시간동안 우리 조상들의
손에서 길러지며 한우 고유의 특성을 지니게 되었고, 더불어 우리 전통 한우는 원래 검은색부터
누런색까지 색도 다양했으며 여기에 무늬도 다양한 소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칡소>라고 불리는
소는 온몸에 마치 칡덩굴 같은 짙은 줄무늬가 얼기설기 감겨있는 것 같아 이름 붙여진 소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색과 무늬를 자랑하던 우리의 전통 한우는 1920년대 말부터 일본이 본격적으로
우리소를 누런색으로 통일하려는 계획을 세우면서 누런 소를 제외한, 다양한 색과 무늬의 소들이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 이후 1969년 한우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해 <상품가치>를
높이려는 정부의 한우개량사업이 펼쳐지면서 우리의 전통한우는 <누런 소> 하나로 굳어지게
된 것입니다. ... 1927년 정지용의 시 <향수>에는 “얼룩백이 황소”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황소가
누런 소라면 ‘얼룩백이’라는 표현은 영 어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 도축장서 소가 정육업자 등 공격…1명 사망·1명 부상(종합) - 연합뉴스 (2018-03-27)
h ttp://news.nate.com/view/20180327n09858
(서산=연합뉴스) 김소연 기자 = 27일 오전 4시 54분께 충남 서산시 팔봉면 한 도축장에서
소 한 마리가 A(77) 씨와 B(67) 씨를 들이받고 달아났다. 이 사고로 A씨가 숨지고 B씨가 다쳤다.
당시 정육업자인 A씨가 소를 도축장에 옮기는 과정에서 소가 갑자기 이들을 공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
소는 인간을 위해 턱밑에 워낭을 달고 평생 노동만 합니다.
노동이 힘든 어떤 소는 평생 젖을 짜도록 강요당하기도 하지요
시비(是非)는 옳고 그름을 말하는데 인간의 시비를 가리기위해
또 어떤 소는 싸움판에 뛰어들어 날카롭게 간 뿔을 동료에게 들이댑니다.
젖이 마르고 노동이 끝나고, 뿔마저 ... 썩은 나무 동강처럼 무뎌져서
소용이 다할 무렵이면 소는 머리부터 꼬리, 간, 창자까지 자신의 전부를
인간에게 내어줍니다. ... 이때다 싶어 인간들은 안심살, 마구리, 홍두깨,
제비추리 등 ... 소의 몸을 총 40여개로 분할하여 멋들어진 이름을 붙여줍니다.
사태가 여기까지 왔다면 한번쯤은 비명을 지르고 울분도 토할만한데
소에게는 그 비명과 울분조차 ‘우설(牛舌)’ 이라는 미식(美食)을 논하는
대상으로 치환되어 소리 없이 사라집니다.
푸근했던 ‘누렁이’라는 하나의 주체는 이제 40여개의 세련된 이름으로
분류되면서 객관화된 상품으로 격상됩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에게 있어서만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말했지만 ~ 이 심오한 철학을 소에게 대입하면
실존과 본질의 관계는 전복됩니다.
소의 본질은 인간을 위해 소멸되는 것입니다.
소의 실존은 소멸이 목적이기 때문에
소는 “본질이 실존에 앞섭니다.”
[@ 5월이 가기전에 채권(채권지표)에 관련된 긴 글 하나를 올려 볼 생각입니다.
기초적인 내용부터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지표해석에 관한 내용이 주가 될 것 같습니다.
꽤 긴 글이 될텐데 ~ 미리 양해를 부탁드리며, 오늘은 짧은 감상 글 하나로 인사를 드립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