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5일 월요일

◆군집에 포섭된 개체들에 관하여 [by. 물파스]

[ 군집에 포섭된 개체들에 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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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네 마을의 개 - 기형도)

전쟁은 장마비처럼 줄기차게 대지에 흙줄을 파며 지나갔다.
노마네 마을은 구멍투성이였다.
전쟁이 끝난 후 마을 사람들은 다리를 놓고 종루를 고치며
밭을 일구기에 여념이 없었다.
가을이 다 갈 때까지 마을 사람들은 분홍빛 사막 위에 꽃을 피우듯이
열심히 마을을 깁고 기웠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겨울이 소리없이 다가왔을때 노마의 마을에는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밤이면 흰빛의 미친개가 나타나 사람을 물어 죽인다는 소문이 그것 이었다.
더구나 그 개는 전쟁 동안 굴 속에 숨어 죽은 사람을 뜯어먹으며 살아왔다고
사람들은 수군대었다. 마을 사람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하였다.
밤이면 문을 걸어잠갔으며 어느 날 밤부턴가는 마을이 대낮같이 횃불을
머리에 인 채 활활 타올랐으며 언제부턴가는 밤마다 갓난아이의 입을
헝겊으로 틀어막아 소리를 못 지르게 하는 집이 하나하나 늘어갔다.
밤마다 소문은 비누거품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더욱 부플어올랐고,
두려움은 점점 그 개를 보았다는 사람이 늘어감에 따라 커져갔다.

어느날 흰눈이 구름 허물어지듯 마을을 뒤덮으면서,
마을 사람들은 급기야 그들의 눈에 뜨이는 개란 개는 모조리
미친개처럼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 후로 개들이 하나하나 죽어갔다.
하얀 개뿐이 아니라 검정, 노랑, 빨강 개까지 죽음을 당하기 시작했다.
마을은 또 다른 전쟁으로 번져갔다. 개들은 밤마다 피를 흘리며 쇠줄을 끊고
산속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달아난 개들은 다음날이면 산 중턱에 사금파리에 베인
발바닥같이 배를 가른 채 죽어 있었다. 사람들은 미친개의 피를 먹으면
미친개에 물리지 않는다는 또 다른 소문으로 인하여, 죽은 개 주위에
붉게 물든 눈까지 한 움큼씩 퍼서, 그 배인 피를 빨아먹었다.

그러나 노마는 자기의 삽살개를 광 속 깊이깊이 감추어 두었다.
삽살개는 절대로 미치지 않았다고 노마는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숨겨둔 개까지 찾아내어 죽이기 시작했을 때,
어느 날 밤 노마는 삽살개를 끌어안고 얼음 뒤덮인 산을 올라갔다.
산꼭대기의 바위 사이에 삽살개를 감추어두고 노마는 울면서 내려왔다.

다음날, 최후의 개인 삽살개를 잡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손에 손에
몽둥이와 칼을 들고 산으로 올랐다. 산은 온통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같았다.
사람들은 뻣뻣이 굳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없이 산을 올랐다.
노마도 어른들을 따라 올랐다. ... 삽살개는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사람들은 바위 틈, 소나무 가지 끝이며 덤불 속까지 샅샅이 뒤졌다.
사냥은 저녁까지 계속되었고, 희끗희끗 눈발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은 바람 속에 섞이어 꽃처럼 흩날리었다.

눈이 그치고 새파란 밤하늘에 달이 떠오르고 산밑의 동네가 얼음처럼
빛나던 밤중에, 삽살개는 산꼭대기 바위 틈에서 쪼그린 채
문풍지같이 떠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사람들이 다가갔고 삽살개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학살당하였다.
사람들이 그 피를 건져 먹기 시작했을때, 눈 위에 꽃잎 같은 핏방울이
점점이 떨어질 때, 노마의 가슴에는 약솜처럼 고요한 피곤이 몰려왔다.

개들은 이제 그 그림자조차 가위에 잘리운 채 마을에서 사라졌다.
이제 마을의 밤은 성대를 잃은 고요 속에서 예전의 어둠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 고요는 오래지 않아 미친개가 언제 또다시 나타나지 않을까하는
불안에 빠져들면서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또다시 횃불과 몽둥이를 준비하였지만
개들은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다.
개들이 나타나지 않을수록 마을 사람들은 더욱 초조하였고
두 눈에 빨강 거미줄을 세우며 밤을 지새웠다.
그러다가 겨울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이상하게도 마을 사람들이 하나하나 밤마다 산과 들을 쏘다니기 시작하였다.

나뭇가지에 걸려 찢긴 윗옷을 걸치고 신발을 잃어버린 채
그들은 미친개를 찾아 헤매기 시작하였다.
아침이면 그들은 큰 소리로 울부짖다가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해의 마지막 눈이 산사태처럼 쏟아지던 밤,
노마는 온 몸에 흰 눈을 맞으며 미친 마을을 떠났다.
강물처럼 무릎 위로 차오르는 눈길을 헤엄치듯 사라져
다시는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다.

[기형도 산문집(짧은 여행의 기록). 174~176페이지/1990년 초판. 살림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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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헌책방에서 7천원에 구입한 기형도 산문집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1990년 3월 7일 초판 발행, 3,500원 ... 28년전 가격 대비 정확히 두 배의 값을 치르고서야
얻을수 있었던 기형도 시인의 생각덩어리들 ~ 책을 집어들고 아무렇게나 펼쳐 도착한 곳이
바로 노마네 마을 이었습니다. ... 원래는 어머님의 부탁으로 꿈해몽 책을 사러 갔었는데
노마네 마을의 강렬함에 빠져 책방 주인과 가격흥정 한 번 없이 값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바람의 이빨'이라 불리는 사막메뚜기(Schistrocerca gregaria)는
혼자일때는 작은 강도 건너지 못하는 나약한 곤충입니다. ... 그러나 메뚜기들이
무리를 이루고, 떼를 이루면 ... 그리고 아사상태에까지 빠진다면 무리는 일사불란한 군집공포로
하나가 되어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로 탈바꿈합니다. 그래서 이 군집공포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건조한 바람을 타고 남태평양을 건너는 초인적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 하루에 자기 몸무게의
2배를 갉아먹는 악마적 식성은 심할때는 1000억 이란 군집공포로서 광활한 대륙을 초토화 합니다.

하지만 군집이 공포로만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호주령 크리스마스섬(Christmas Island)에 사는 홍게(Red Crab)들은
11월 산란기가 되면 바다를 향해 대이동 시작합니다. ... 그리고 이동하는 홍게들의 수가
무려 1억 마리가 넘는다고 하니, 직접 눈앞에서 살아있는 1억의 개체들이 이동하는 광경을
보게 된다면 아름답고 감탄스런 장관을 넘어 불가사의한 자연현상에 가깝다 해도 될 것입니다.

무리나 군집 상태는 인간사회에서도 자주 목격됩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선수나 팀을 응원하는 대규모 관중, 행사에 동원된 군대의 열병식,
노조원들의 노동운동, 정부(정책)를 비판하는 대규모 (촛불)집회 ... 등

군집이 공포로 다가오거나 아름다운 광경이 되는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고독한 개체에서 벗어나 무리지어 집단에 합류한 개체들이
익명의 단위로 전환되어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오직 군집의 존재를 위해서만
작용하게 될 때입니다. ... 때문에 군집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개인을 월등히 앞서는
힘과 위용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개인은 어쩔수없이 "사회" 라는 군집 안에서만
그 정체성이 확인되므로 우리 모두는 "개인"이라는 개체성을 겸비한 채 서서히 익명으로 잊혀지는
필연적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래서 두터운 군집의 외투를 뚫고 나오려는
송곳 같은 움직임을 "저항" 이라 부르는가 봅니다.

계산해보니, 7천원을 주고 산 기형도 시인의 사유는
28년 동안 해마다 연평균 2.5%의 가치가 더해져 나에게 말을 걸어 온 것이었습니다.
삽살개를 잃고 마을을 떠난 노마의 슬픔과 공포에 비한다면, 웃돈을 더 얹어주었어도
아깝지 않았을텐데 ... 책방 주인의 가격책정 솜씨가 조금은 아쉽기도 합니다. ~



[@ 날씨가 쌀쌀합니다. ~ 건강들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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