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1일 일요일

◆정의(justice)와 법의 형식과 일반의지(General will) 사이에서 [by. 물파스] +)질답

[정의(justice)와 법의 형식과 일반의지(General will) 사이에서]



"총통의 의사가 곧 법이다!"

나치 독일에서 히틀러(Adolf Hitler)의 명령은 "법(法)" 그 자체였습니다.
1935년 유대인을 말살하기 위해 나치가 제정한 <뉘른베르크 인종법>과 ... 전선에서 도망치는
병사들은 무차별적으로 사살하라며 당시 나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히믈러(Heinrich Himmler)가
내린 <초토화 명령> ... 그리고 정신병자들은 독일에서는 살 가치가 없는 생명으로 규정한
히틀러의 비밀지령 <안락사 명령> 등은 히틀러 시대의 대표적 악법이었습니다.

그래서 독일에게 나치 청산을 위해 가장 시급했던 문제는
<뉘른베르크 인종법>, <초토화 명령>, <안락사 명령> 같은 악법들의 효력이 부정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치시대의 법이 비록 "악법" 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법들은 분명 합법의 외관(형식)을 갖춘
법률이었기 때문에 법(악법)들의 정당화 사유들이 반드시 부정되어야만 나치청산(처벌)이 가능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틀러와 나치(Nazi)는 당시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민주적으로 선출된 합법적인 정권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시대(나치)에 만들어진 법(악법)은 <(법의)형식과 절차>를 중요시하는 <법률실증주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불법이 아닌 분명한 <합법>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히틀러 체제가 붕괴한 후, 과거청산(나치청산)을 위해 독일사회가 만약 새로운 법을 만들어
나치 악법들을 청소하려 했다면 독일은 흔히 얘기하는 <뮌히하우젠(Münchhausen) 백작의 곤경>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 엄청난 허풍쟁이로 유명한 동화 속 인물 뭔히하우젠 백작은
어느 날 늪에 빠졌다가 자신의 팔로 직접 자기 머리채를 잡아 올려 늪에서 빠져나왔다는 허풍을 칩니다.
그리고 당시 독일의 상황이 바로 늪에 빠진 뮌히하우젠 백작의 상황과 유사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히틀러 체제 붕괴 후, 새로운 법을 만들어 <사후적인 적용(처벌)>을 하려한다면
"법률은 그 법률이 제정되기 전에 발생한 사실에 대해 소급해서 적용되지 않는다!" 는
소위 <법률 불소급의 원칙(法律不遡及-原則)>을 위배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 법의 형식과 절차를 무시한 "법률실증주의를 위배"]

결국 독일은 나치청산 과정에서 자신의 팔로 늪에 빠진 본인의 머리채만 붙잡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늪에 빠졌을 때 뮌히하우젠 백작처럼
허풍으로 늪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 아니라, 더 진지하고 논리적인 그리고 압도적인 법철학적
논법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그리고 이러한 고민 끝에 등장한 논법이 바로
그 유명한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 formula)> 입니다.

법은 남성의 젖꼭지와 여성의 젖꼭지를 차별 없이 동등하게(평등하게) 취급합니다.
법의 형식과 절차를 중요시하는 법률실증주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당연하며, 또한 오류가 없는
가장 안전한 법의 기능중 하나입니다.(@ 법적안정성) ~ 하지만 사회가 너무 법률실증주의에만
몰입되다 보면, 남성은 그렇지 않지만 여성의 젖꼭지는 아기에게 젖을 먹여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냥 쉽게 지나쳐 외면할 수 있습니다.

구스타프 라드브루흐(Gustav Radbruch)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표적 법철학자 였습니다.
법철학을 한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거쳐야 한다는 독일 법학계의 거장 라드브루흐(Radbruch)
잠시 그의 필모(Filmography)를 살펴보면 ~ ~ ~

@ 1902년 라이프치히 대학과 베를린 대학(박사)에서 법학을 공부
@ 1903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교수자격 취득, 제1차 세계대전 간호병으로 참전,
@ 전쟁이 끝난 후, 1919년 킬 대학 정교수, 1920년 국회의원 선출
@ 법무장관(1921~1923년) 제직시절 억압적이고 봉건적인 법제를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적인
법제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진행, 1926년 정계를 떠나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복귀(교수),
이 시기에도 친(親) 바이마르 성향 교수로써 저술 활동을 지속함.
@ 1933년 나치 집권 후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해직됨.
@ 영국에 머물던 1년을 제외하고 나치체제 하에서 모든 사회활동(정치, 강연 등)을 금지 당함.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복귀하여 "법치국가" 재건을 위해 헌신.
이 당시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그의 핵심 주장이라 할 수 있는,
그리고 수많은 법철학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 formula)>이 탄생함.
@ 이후 <라드브루흐 형법초안>, <법철학> 등 무려 스무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함.

제가 굳이 라드브루흐의 필모그래피, 즉 인생궤적을 언급한 이유가 있습니다.
20세기 천재 철학자라는 비트겐슈타인이 인생 전반기와 후반기에 (본인)사상의 변화를 겪었던 것처럼
라드브루흐도 본인의 법가치관의 뚜렷한 변화(입장변화)를 겪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변곡점은
<1933년 나치 집권>입니다.

라드브루흐는 철저히 법적 안정성을 추구하는 <법률실증주의자> 였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이 모인 <국가>라는 틀 속에서 매일매일 다툼하며,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너무나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다툼과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하여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동의하는 절대적인 규칙이나 규범이 존재해야만 가능합니다.
한마디로 <법(法)>의 존재이며, 그 법은 어떤 외적 간섭이나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즉 공동체를 뛰어넘는
암묵적 절대성을 내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회의 법(法)은 철저한 형식과 절차를 통해야만 절대성,
다시 말해 <법적 안정성>이 보장됩니다.(@ 법질서 확보) ... 그리고 초창기 라드브루흐는 이러한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933년 나치 집권 후 제정된 수많은 악법들과 그 법 체제하에서 자행된 끔찍한
학살과 폭력 등을 지켜보면서 라드브루흐는 큰 혼란에 빠집니다 ... 그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후 전쟁(제2차 대전)이 끝나고 (전후의)라드브루흐는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 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는데, 이 논문은 독일 사회가 나치를 청산 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저는 앞에서 법이 남성과 여성의 젖꼭지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짧게 얘기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젖꼭지를 모두 동등(평등)하게 취급한다면 이것은 실정법에서 바라본 생각입니다.
하지만 여성의 젖꼭지가 아기에게 젖을 물려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산과 바다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류에게는 보편이자 <자연>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여성이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편견 없이 모두가 같은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국가와 같은 정치공동체가 법이라는 인위적인 힘으로써 <여성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행위>, 즉
"자연법칙"과 같은 행위를 제한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류가 누려야할
당연한 권리나 정의(혹은 불변의 법칙)를 <자연법(natural law)> 이라고 합니다. ~ 더불어 자연법은
우리 현실의 실제 삶에 적용되는 일반적인 법(실정법)의 개념과는 다른, 좀 더 포괄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자연법은 주로 실정법의 비교개념으로 사용됨.)

하지만 법적 안정성(형식과 절차)을 중요시 했던 라드브루흐에게는 자연법적 가치관이
근거가 부족하고 오래된 관습적 경향과 비슷하다 생각해서 다툼이 생겼을 때는 합리적(이성적)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때로는 감정적(정치적) 판단으로 오히려 법질서(법적안정)에 방해되는 낡은 생각으로
비춰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라드브루흐는 자연법론자들과 자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선출된 나치와 그 체제에서 만들어진 악법의 야만적 만행을 지켜보던 라드브루흐는
큰 충격과 함께 자기모순에 빠져버립니다. ~ 나치의 법도 철저한 형식과 절차위에서 분명 적법하게 만들어진
합목적성(合目的性)을 갖춘 법이었기 때문입니다. ~ 그러던 라드브루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나치의 법은 법이 아니라, 법률의 탈을 쓴 불법이다!" - 라드브루흐(Gustav Radbruch)>

거의 180도로 바뀐 입장변화입니다. ... 충실히 법의 외관(형식과 절차)을 지켰던
나치의 법(실정법)에 대해 <자연법에 반하는 실정법은 법이 아니다.> 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것이 전후의 라드브루흐가 주장한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에 들어있는 생각이며,
여기서 바로 그 유명한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 formula)>이 탄생합니다.
[@ "실증주의의 사울(Saul)에서 자연법의 바울(Paul)로!" ~ ~ 일부 학자들은
라드브루흐의 법철학 일관성을 놓고 법률실증주의자였던 라드브루흐가 자연법론자로
전향했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 formula)>은 자연법에 가까운 <실질적 자연법>입니다.
이것은 실정법(나치법)이 극도로 부정의 하다면 법이 표면적으로 합법적인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으며, 그래서 앞서 살펴본 히틀러 체제하에서 실행된
<뉘른베르크 인종법>, <초토화 명령>, <안락사 명령> 같은 악법(명령)들은 인류의 당연한
정의라고 할 수 있는 자유와 인권, 평등의 원칙을 위반했기 때문에 불법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참고 - 라드브루흐의 부정의한 법의 3등급]

(1) 명백하게 부정의해서 처음부터 법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
(2) 법적안정성을 무시하고 효력을 박탈할 정도로 법의 내용이 부정의한 경우
(3) 법의 내용이 정의롭지 못하지만 법적안정성을 위해 효력을 인정해야 하는 경우

라드브루흐 공식은 나치청산 과정에서 중요한 <청산 기준>으로서 자주 원용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나치 시대의 악법의 효력을 부정함으로써 합법적인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할 수 있었는데
이는 <법률 불소급의 원칙>을 위배하지 않고서도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기 때문에 허풍쟁이
뮌히하우젠 백작에게 일격을 가한 셈이 된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잠시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 formula)>이 담긴 라드브루흐의 명문장을 소개해봅니다.

[@ 정의와 법적안정성의 갈등은 다음과 같이 해결할 수도 있겠다.
실정적인, 즉 규정과 힘을 통해 정립된 법은 비록 그 내용이 정의롭지 못하고
목적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우선성을 갖는다. 그러나 정의에 대한 실정법의 모순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러 법률이 <“부정의한 법”> 으로서 정의 앞에서 물러나야
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않다. 법률적 불법과 내용상 정의롭지 못하지만 그래도 효력이
있는 법률 사이에 더 예리한 경계선을 긋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아주 분명하게 경계를 확정할 수 있다. 정의를 전혀 추구하지 않는 경우,
법률을 제정할 때 정의의 핵심인 평등을 의도적으로 부인하는 경우, 그때 법률은 한갓
악법에 그치지 않고 아예 법적인 성격을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법, 즉 실정적인 법도
의미상 정의에 봉사하는 규율과 규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 보면 나치법은 전부 효력 있는 법의 품격에 이르지 못했다. ... 히틀러 인격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 즉 히틀러로부터 유래하여 나치의 모든 “법”의 본질로 귀결되었던
특성은 바로 진실에 대한 감각과 법에 대한 감각의 총체적 결핍이다. ... 정당이 당파적인
성격을 가질 뿐이라는 점을 무시하고 나치당을 국가 전체와 동일시했던 법률도
법적인 성격을 갖지 못한다. 즉흥적인 위하(힘과 위엄)의 필요에 이끌려 범죄의 경중에 대한
고려 없이 죄질이 다른 범죄에 같은 형벌을 부과하고, 빈번히 사형을 부과하는
온갖 형벌법규도 법적인 성격을 갖지 못한다. 이 모든 것들이 법률적 불법의 사례들일 뿐이다.
- (국가범죄, 461~462 페이지/ 이재승/ 도서출판 앨피)]

라드브루흐는 자신의 이 명문장에서 <"실정적인 법도 의미상 정의에 봉사하는 규율과 규정">
이라며 형식과 절차위에, 즉 법적안정성을 무엇보다 우선시했던 본인의 기존 법철학위에
<정의(justice)> 라는 자연법적 가치관을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부정의한 법의 3등급 중에서 (2)와 (3)의
구별은 정도나 형량의 문제이므로 둘 사이의 (예리한)경계선을 긋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했지만,
(1)과 (3)의 경계는 “(1)” 자체가 아예 처음부터 법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이 둘 사이의
경계는 선명하게 그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모든 권리를 국가에 반납하는 대신 <국가의 주권>, 즉 공동체의 최고 권력인
<국가권력>을 모든 국민들이 똑같은 양으로 분배받습니다(1인 1표) ... 따라서 국가의 주권에는
곧 국민 전체의 의지가 반영되어야 하며, 그 의지는 공공의 이익을 향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루소가 얘기한 <일반의지(General will)>는 한마디로 <공동의 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루소의 일반의지는 <민의(民意)>, 즉 "국민의 뜻"인 것입니다. 더불어 이러한 일반의지가
명문화 된 것이 오늘날의 <법(法)>입니다. ... 그래서 현대사회 법체계는 말합니다.

"법은 만인을 위해 하나의 입으로 말한다"

하지만 일반의지가 공동체에 아무리 정당하게 투영되었다 하더라고,
그 공동체가 "정의(justice)"라는 기초위에 성립된 것이 아니라면, 공동체는 언제든지 "전체주의"라는
전복된 일반의지로 재형성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결국 전체의지(Will of All)가 민의 위에 군림하며
세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유일한 가치관이 되는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라드브루흐가 "나치의 법은 법이 아니라, 법률의 탈을 쓴 불법이다" 라고 말한것은 나치 정권이
바로 "정의(justice)"를 배제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괴테의 "파우스트(Faust)"는
괴테가 30세가 되던 1779년에 집필을 시작하여 82세인 1831년에 탈고한,
무려 52년이라는 세월이 요구되었던 괴테, 아니 세계의 명작입니다. 괴테가 작품을 구상하고 습작했던
20대 시절의 시간까지 더한다면 파우스트는 60년 이라는 시간의 산물인 것입니다.

파우스트 박사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서약을 합니다.
메피스토가 제공하는 지상의 모든 쾌락을 체험한후 그에 굴복하게 된다면, 죽음 이후
파우스트 박사의 영혼은 메피스토가 지옥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약속한 것입니다.

파우스트 박사의 죽음이 가까워 지자 메피스토는 악령들을 불러모으고 무덤을 파게 합니다.
결국 파우스트 박사는 죽게되고, 서약대로 메피스토가 박사의 영혼을 가져가려 하자 ~ 이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이 파우스트의 영혼을 구원하려 악령들과 치열한 싸움을 시작합니다.

천사들이 뿌린 신성한 장미꽃들은 불꽃처럼 강렬한 기운을 내뿜으며 악령들을 불태웠고
그 사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가장 아름다운 천사의 유혹에 잠시 넋을 놓고 황홀감에 취합니다.
그리고 천사들은 파우스트 박사의 영혼을 안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여기서 잠시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 그렇다면
악마(메피스토펠레스)를 유혹한 천사는 과연 천사적인가? 악마적인가? ~ 무슨말인가하면
메피스토에게 선악의 관점이 아닌 단순 <직업성>을 부여하고 바라보자는 뜻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직업적 본분, 즉 파우스트 박사의 영혼을 지옥으로 가져가야할 소임을 맡은 메피스토의
영업을 천사들이 방해한 것은 아닐까? ... 다시 말해, 천사와 악마(메피스토)에게 직업성을 부여하여
판단한다면 천사들에게는 명백히 영업방해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사태를 '직업윤리'라는 형식의 틀(법률 실증주의) 안에서 판단할 것인가, 아니면
정의(영혼의 구원)라는 자연법적 가치관에서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로 고민이 나눠지게 됩니다.




[@ 사회가 고도화되고 전문가의 영역이 더 많아질수록 이러한 고민들과 담론들은
더 많이 생성될 것입니다. ... 법적 형식틀에서 규정되는 '심신미약'과 일반의지가 투영된
국민들의 공분을 정의(justice)이라는 기초위에서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 저 또한
상당히 어려운 질문이라 생각됩니다. ... 편안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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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ㅇㄹ
 
정말 잘읽었습니다. 직접쓰신 글이라면 대단하네요. 법에 ㅂ 자도 모르는 중생이 읽어도 이해가 쏙쏙되네요. 질문 몇가지만 드리고 싶습니다.
1. 말씀하신 대로라면 정의(justice) 를 정의(define) 하는 것이 자연법적인 사고에서는 굉장히 중요하겠는데, 이에대한 논의나 재미있는 일화를 알고계시다면 소개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 말씀하신것을 간단히 요약하면 독일은 나치청산을 위해 '후향적으로보아 정의에 심하게 벗어났다고 판단되는 법, 그리고 그 법에 따른 행위는, 이전에 적법한 절차를 거쳐 만들어졌더라도 위법이다' 라는 논리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시대에 걸쳐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했어야 옳은걸까요? 예컨데 나치집권시대에 태어나, 나치가 만든 법과 분위기에 자란 세대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사상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정의(justice) 라고 생각하며, 정의로운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고 유대인 학살에 동참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것이 부정의인지 정의인지를 판단할 충분한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자란세대가 패전이후에 '나는 그 당시에 그것이 정의인줄 알았고, 또 모두 합법적인 행위들이었다' 라고 이야기 한다면 그사람을 과연 처벌하는게 옳을지 고민됩니다. (요약하자면 "'법적안정성' 이 너무 무너져 억울한 자들이 생기지 않았을까.. 그들은 그럼 그당시에 어떻게 행동했어야 하나" 라는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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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파스
 
ㅁㅇㄹ//


1. 정의를 논할때 빼놓을수 없는 사람이 바로 세계적인 정치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 입니다.
그의 주장에서 가장 핵심적인 논의가 바로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인데 ... 무지의 베일은
그 누구도 미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불확실한 상황이며, 이러한 상황 하에서 사람들은 최소한의
사회적 틀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 우리는 태어나기 이전에 우리가 정상인으로 태어날지 장애인으로 태어날지
전혀 알수 없습니다. 물론 장애인 보다는 정상인으로 태어날 가능성이 더 높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장애인이라는 작은 가능성에 누구나 포함될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원초적 상황> 하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기본적인 사회적 배려(제도, 시설, 우대 등)를 하게 된다는 개념입니다.

더불어 원초적 상황에서 형성될 가장 기본적 정의를
누구나 자유를 갖는다는 것과, 불평등은 모든 사람에게 이득이 될 때에만 존재해야 된다는 것이라고
롤스는 말합니다. ... 여기서 불평등이 이득이 된다는 뜻은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인 이득을 얻는데 있어서
"기회가 공정"하다면 그 지위나 이득으로부터 오는 불평등은 충분히 인정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롤스의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이라고 합니다. ~ 롤스의 원초적 상황 하에서의
사회적 틀 형성과 사회적 약자(빈곤층)에 대한 효용 극대화 등은 조금은 극단적인 평등주의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바탕에 <합리적인 불평등>도 인정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복지 선진국인 북유럽 국가들이
최빈곤층에게 실시하고 있는 복지정책은 위에서 얘기한 롤스의 분배적 정의론과 상당부분 깊은 연관이 있기도 합니다.

원형 모양의 감옥이 하나 있습니다.
중앙에 높은 감시탑이 하나 있는데 ... 이 감시탑은 늘 어둡습니다. 그리고 죄수의 방은 밝게 해놓았는데
이러한 구조는 감시탑 안에서는 감방안의 죄수들이 항상 보이므로 언제나 감시가 가능하지만, 감방안의 죄수들은
중앙 감시탑의 교도관이 보이질 않습니다. 따라서 죄수는 교도관이 지금 잠시 자리를 비우거나 졸더라도
항상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탈옥 같은건 절대로 꿈꾸지 못합니다 ... 이 감옥이 바로
1791년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이 제안한 원형감옥 "판옵티콘(Panopticon)"의 모습입니다.

인간에게 쾌락을 가져다주는 행위가 바로 선이며 옳은 것이라는 윤리관이 "공리주의" 입니다.
방금 언급한 원형감옥 판옵티콘을 설계한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의 주장인데,
공리주의에서는 사회의 행복은 그 사회의 포함된 개인들 각각의 행복(쾌락)을 모두 합한 것입니다.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 입니다.

따라서 공리주의 주장대로라면, 사회의 이익(행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행복을 증진시켜야 하며, 이때 소수의 행복은 배제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 예를들어,
고압 송전탑 건설은 벤담의 "공리주의" 입장에서 보면 다수의 국민들과 기업들의 전력수요를 위해서
송전탑 인근에 사는 주민들의 행복은 배제될수 있는 것입니다.

언뜻 살펴보면 매우 불공정하고 비상식적인 일처럼 보이겠지만... 이와 비슷한 일들이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태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생생한 현실임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 그리고 이러한
공리주의적 관점은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소위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더 중요한 점은 오늘날의 "자본주의"와 궁합이 탁월하게 잘 맞는다는 점입니다.

자본주의에서는 가장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달성하면, 그보다 더 완벽한 성과는 없습니다.
다시말해, 가장 적은 비용으로 다수가 행복해 진다면 그보다 좋은건 없다는 것이지요! ~ 그래서
앞서 살펴본 벤담의 원형감옥, 즉 판옵티콘(Panopticon) 에도 자본주의적 논리가 암묵적으로 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는데 ... 수많은 감방을 감시하는데 있어서 중앙의 감시탑 하나만(교도관 1명) 있으면
해결(모든 죄수의 감시)이 가능하므로, 이것은 감옥의 구조나 감시체제를 논하기 이전에,
최소의 비용(교도관 1명)으로 최대의 효과(성과)를 올릴수 있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산물에 가깝다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 이러한 자본주의와 공리주의와의 천박한 만남에 대해서 존 롤즈는 다음 처럼 일침을 가합니다.

"모든 인간은 전체 사회복지라는 명목으로도 유린될 수 없는 정의에 입각한 불가침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정의는 타인들이 갖게 될 보다 큰 선(善)을 위하여 소수의 자유를 뺏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을
거부한다. 다수가 누릴 보다 큰 이득을 위해 소수에게 희생을 강요해도 좋다는 것을 정의는 용납할 수 없다"
- by J. Rawls, 「A Theory of Justice < 롤즈의 정의론 中 >

그럼 이쯤에서 상당한 고민과 혼돈이 발생합니다.
사회정의를 위해 환자의 상태를 다수에게 공개한 어느 의사의 행위는

<"다수(공동체의 안전)가 누릴 보다 큰 이득을 위해 소수에게
희생(환자의 상태,개인 신상)을 강요하는 것은 정의가 용납할수 없다" - 롤스>

~ 라는 롤스의 '정의'에 대한 개념에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 결국 정의는
하나의 정답으로 존재하는 개념은 아닌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는 철학의 문제로 확장됩니다.

1번 물음에 대한 저의 생각은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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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권위주의 정권에서 저질러진 범죄는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국가에 대한 범죄(쿠데타), 둘째는 인권 범죄, 셋째는 부역(附逆)입니다.
과거청산 국면에서는 둘째 유형의 범죄가 주로 처벌되고, 셋째 유형은 도덕적 비난은
받아도 좀처럼 범죄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 ]

나치청산 과정에서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 formula)>은 몇 차례 판결에 원용되긴 했지만
형사적 책임보다는 주로 배상책임과 관련해서 원용된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 한마디로 실질적
청산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는 라드브루흐 공식이 (나치)체제 청산의 논리로는
전혀 작동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왜냐하면 종전 후 나치청산 과정의 상당부분을 연합국
군정청이 주도하면서, 그리고 나치청산 작업을 빠른 시간 안에 마무리하기 위해서 핵심전범의
(청산)처리만 연합국 군정청이 도맡았고 나머지 인적청산 문제는 그냥 독일에게 넘겼는데 ~ 당시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상황 속에서 미국은 서독의 재건을 동구권의 사회주의 물결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 하나의 방어벽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나치청산을 조기에 마무리하려했던 결과였습니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당시에 라드브루흐 공식을 활용할 여지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나치에 부역했던 상당수 공무원들이 다시 복직되기도 했는데,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독일이 <탈나치화에서 재나치화>로 향하고 있다며 거센 비난을 쏟기도 했습니다.

독일의 과거청산(나치청산) 작업은 통일과정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히틀러 체제하에서 수많은 사법살인을 저질렀던, 다시 말해 나치에 부역했던 그 많던
서독 출신 법조인들은 거의 대부분 살아남아 현직으로 복귀했습니다. 하지만 통일독일에서
동독 출신 법조인들에게는 상황이 많이 달랐습니다. ... 종전 후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했던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 formula)>이 나치 전력이 있던 동독 법조인들을 단죄할 때는
상당한 힘을 발휘한 것입니다.

동독 법조인 보다 더 심했던 서독의 광신적 나치 법조인들은 거의 대부분 무죄로 현직에 복귀시켰던 독일이,
통일 후 동독 출신들에게는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의 잣대를 준엄하게 들이댔던 것입니다. ... 결국
독일의 나치청산은 우리의 예측영역 밖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자연법의 바울(Paul)로 변신한 라드브루흐가
그렇게 애타게 부르짖던 <정의>를 위해 정의의 바깥에서 <부정의>하게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 그래도 우리가
독일의 과거청산 사례를 의미 있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비록 (나치)청산 과정에서
동서독이 구분되는 현실적 오류(부정의)가 생성되긴 했지만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 formula)> 이라는
치열한 법철학적 고민이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2번 물음의 대한 답은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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