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8일 금요일

◆ 한국만의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 formula)을 위하여 ~ [by. 물파스] (+33)

(@ 이 글은 저의 예전 글(법의 지배)을 참고했습니다.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연합국의 군사법정에서 독재정권(독재자)을 처단하려할때
튀어나왔던 항변이 있습니다. ... 바로 <승리자 법정(victor's Justice)>입니다.

프랑스 혁명의 빌미를 제공한 루이 16세, 청교도혁명으로 처형된 영국 왕 찰스 1세,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과 칠레의 피노체트, 유고의 전범 밀로셰비치 등은
모두가 하나같이 재판의 불공정성을 주장한 인물들입니다. ... 한마디로 재판은
승리자들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성립된 것이며 처벌은 억울(?)하지만 실각한 본인들의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공정한 법의 판단이 아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만약 독일이 승리했다면 영국의 처칠이나 미국의 트루먼이 전범으로
처벌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 실각한 그들의 이러한 주장은 나름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과거에도 정권(체제)이 교체될 때면 실패한 권력의 처벌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법 논리보다는
어쩌면 관행적으로 이루어졌던 경우가 많았었고, 또한 그것이 그 시대의 보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쟁의 승패와 (잔혹한)전범의 처벌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연합국이 나치의 지휘부를 처벌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나치가 패배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나치가 전쟁범죄와 잔인한 인도에 반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형사법정 자체가
구성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문명국을 자부하는 나라들은 대체적으로 인명을 살상하는 파괴적이고 잔혹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범죄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통상적인 절차만으로도 국가범죄나 전쟁범죄에서
드러난 잔혹한 행위를 처벌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때는 그 행위(잔혹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정당화 사유가 존재하지 않아야 하며, 공소시효 미도래 같은 처벌에 필요한 법적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실질은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서 상당수 (문명)국가들은 공소시효를 배제하고 있음.]

잔혹한 학살과 폭력 및 인권유린 등이 벌어지는 전쟁범죄와 국가범죄는
그것이 합리적 정치체제든, 독재체제든 결국은 최종적인 책임의 주체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과거청산의 핵심은 곧 <인적청산>이 될 텐데, 그럼 우리의 현실을 어땠을까? ~ 박정희 시대에
자행됐던 수많은 인권유린 행위들과 끔찍했던 광주학살의 주범인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들은
아직도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등에 업고 한국사회에서 (정치적)수명을 연장해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 면면을 들여다보면 육법당(陸法黨) 인사들과 국보위(國保委) 위원들, 수많은 정치적 사건에서
갖은 고문과 조작을 일삼던 자들, 권력에 부역했던 언론과 지식인들 등 ...국가범죄의 핵심인물
뿐만 아니라 그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모든 인사들이 바로 악마적 장수(長壽)의 주체들입니다.

[◆ 육법당(陸法黨) - 육사와 서울대 법대 출신들이 모여서 만든 정치결합체.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져 전두환 정권에서 권력의 정점을 찍는다. 이 시기에 이들 정치검사들이 만든 해괴한
법논리들이 당시에 자행된 수많은 국가폭력을 변호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 국보위(國保委) -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의 신군부가 1980년 5월 31일
통치권 확립을 위해 설치한 임시 행정기구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말한다. ]

중대한 인권침해행위를 저지른 국가범죄에 대해서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 것을 <불처벌(Impunity)>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불처벌 상황을 극복하는 것을 <비상적(extraordinary) 정의>라고 하는데,
1987년 체제의 한국사회는(@엄밀히 말하면 한국 사법부) 과거청산 과정에서 이러한 비상적 정의를
실현하는데 너무나 소극적이었습니다.

특히 <전쟁범죄와 인도에 반한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부적용조약> 같은 기본적인 국제규범조차
따르지 않았고, 이탈리아나 프랑스가 국가범죄(전쟁범죄 및 인도에 반한 범죄)에 대한 처벌을 아예
강행 규정이나 국제관습법으로 이해하고 있을 때, 당시의 한국(사법부)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이후 <5.18 특별법(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 대한 위헌여부 판단으로 이어집니다.

<5.18 특별법>은 헌법재판소에서 합헌으로 결정 났지만, 보다 중요했던 것은
합헌 과정(예비적 판단)에서 드러난 당시 헌재의 인식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주요 쟁점사항은 <공소시효> 였는데 ~ 한마디로 공소시효가 완성된 국가범죄에 대해서 사후에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는 새로운 법(@ 진정소급입법 – 소급입법금지원칙)이 만들어진다면
과연 그 법은 (위헌인가? 합헌인가?)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 그리고 사후처벌을 위해
법(5.18특별법)이 만들어진다면 위헌이라는 견해가 당시에 우세했던 것입니다.
[◆ 당시 5.18 특별법에 대한 위헌심사에서 재판관 9인중 5인이 실질적인 소급입법이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견해를 밝혔고, 4인의 재판관은 법(5.18 특별법)이 시효가 완성된 범죄자들의 신뢰이익과
법적안정성을 물리치고도 남을 만큼 월등히 중대한 공익을 추구하기에 합헌이라고 판단합니다.]

<@ 어쨌든 신하는 군주를 처형할 적법한 권한이 없다! - (찰스 1세)>

권력을 상실한 패자가 승리자의 법정에서 항변했던 대표적 사례입니다.
어디서 한번쯤 들어본 것 같은 익숙한 뉘앙스(nuance)라 생각되지 않습니까?

<@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 (광주학살의 주범 전두환을 수사했던 1995년 한국 검찰)>

비상적(extraordinary)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 많이 불편했던 당시의 신군부와 육법당의 잔재들 ... 그리고
체제가 붕괴됐음에도 잔혹했던 군부독재의 관성에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던 당시의 대한민국 법원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외쳤던 검찰에 뒤질세라 다음과 같은 기막힌 어록을 남기며
전두환과 노태우를 비롯한, 권력에 부역했던 자들의 형(刑)을 감해줍니다.

<@ 항복한 장수는 죽이지 않는다! - (항장불살 降將不殺)>

우리 사법부의 당시의 상황인식과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 결과였습니다. ... 그러나
국가범죄에 대한 불처벌에 대해서 정치적, 도덕적으로는 비난할 수 있어도 <법치주의 원칙>으로
따져 묻는다면 아무리 중대한 인권침해행위였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가 당시의 국내법상 적법했다면
사후에 처벌할 수 없으며, 그들(국가범죄 주역들)의 불처벌은 현재 승리를 쟁취한 (민주)정권이
감당해야할 일종의 <정치적 대가>라고 생각해야한다는 반론이 있습니다. ... 1987년 체제이후 비록
전두환과 신군부 잔재들에게 (사후에)사면권이 남발되며 처벌 같지 않은 처벌이 내려지긴 했지만,
당시 우리 사법부의 인식이 바로 이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법부가 이렇게 <중대한 인권침해행위 범죄>에 대한 처벌문제를 놓고 인식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을 때, 프랑스는 리옹의 도살자로 불렸던 나치 정권의 게슈타포(비밀경찰조직) 지도자
<클라우스 바르비(Klaus Barbie)>의 재판에서 인도에 반한 범죄는 아예 공소시효를 배제한다는
법률을 만들어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이 법률이 제정될 당시(1964년)에는 이미 바르비는
공소시효가 완성된 상태였습니다. 그러자 프랑스 최고법원이 가지고 나온 논리가 <국제관습법>
이었던 것입니다. [◆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전쟁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규칙(160번)을 국제관습법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또한 1997년 이탈리아(군사법원)는 로마에서 유대인 335명을 학살한 나치 친위대 <에리히 프립케>
재판에서 전쟁범죄 공소시효 배제 원칙을 (국제사례를 참고로)아예 강행법으로 선언해버렸습니다.
정리해보면 우리 사법부가 <성공한 쿠데타론과 항장불살>같은 어디 무협지에서나 볼법한 판타지를
써내려가고 있을 때,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국내법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국제법(국제관습법)을
포함한 다방면의 해법을 열심히 찾았던 것입니다.

그럼 자국 땅에 나치(Nazi)를 파종한 법률 강국 독일과 독일 국민들의 선택은 어떠했을까? ~ 많이 궁금합니다.

◆ "총통의 의사가 곧 법이다!"

나치 독일에서 히틀러(Adolf Hitler)의 명령은 "법(法)" 그 자체였습니다.
1935년 유대인을 말살하기 위해 나치가 제정한 <뉘른베르크 인종법>과 ... 전선에서 도망치는
병사들은 무차별적으로 사살하라며 당시 나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히믈러(Heinrich Himmler)가
내린 <초토화 명령> ... 그리고 정신병자들은 독일에서는 살 가치가 없는 생명으로 규정한
히틀러의 비밀지령 <안락사 명령> 등은 히틀러 시대의 대표적 악법이었습니다.

그래서 독일에게 나치 청산을 위해 가장 시급했던 문제는 <뉘른베르크 인종법>, <초토화 명령>,
<안락사 명령> 같은 악법들의 효력이 부정되는 것이었습니다. ~ 왜냐하면 나치시대의 법이
비록 "악법" 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법들은 분명 합법의 외관(형식)을 갖춘 법률이었기 때문에
법(악법)들의 정당화 사유들이 반드시 부정되어야만 나치청산(처벌)이 가능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틀러와 나치(Nazi)는 당시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민주적으로 선출된 합법적인 정권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시대(나치)에 만들어진 법(악법)은 <(법의)형식과 절차>를 중요시하는 <법률실증주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불법이 아닌 분명한 <합법>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히틀러 체제가 붕괴한 후, 과거청산(나치청산)을 위해 독일사회가 만약 새로운 법을 만들어
나치 악법들을 청소하려 했다면 독일은 흔히 얘기하는 <뮌히하우젠(Münchhausen) 백작의 곤경>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 엄청난 허풍쟁이로 유명한 동화 속 인물 뭔히하우젠 백작은
어느 날 늪에 빠졌다가 자신의 팔로 직접 자기 머리채를 잡아 올려 늪에서 빠져나왔다는 허풍을 칩니다.
그리고 당시 독일의 상황이 바로 늪에 빠진 뮌히하우젠 백작의 상황과 유사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히틀러 체제 붕괴 후, 새로운 법을 만들어 <사후적인 적용(처벌)>을 하려한다면
"법률은 그 법률이 제정되기 전에 발생한 사실에 대해 소급해서 적용되지 않는다!" 는
소위 <법률 불소급의 원칙(法律不遡及-原則)>을 위배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 법의 형식과 절차를 무시한 “법률실증주의를 위배!”]

결국 독일은 나치청산 과정에서 자신의 팔로 늪에 빠진 본인의 머리채만 붙잡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늪에 빠졌을 때 뮌히하우젠 백작처럼
허풍으로 늪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 아니라, 더 진지하고 논리적인 그리고 압도적인 법철학적
논법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그리고 이러한 고민 끝에 등장한 논법이 바로
그 유명한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 formula)> 입니다.

법은 남성의 젖꼭지와 여성의 젖꼭지를 차별 없이 동등하게(평등하게) 취급합니다.
법의 형식과 절차를 중요시하는 법률실증주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당연하며, 또한 오류가 없는
가장 안전한 법의 기능중 하나입니다.(@ 법적안정성) ~ 하지만 사회가 너무 법률실증주의에만
몰입되다 보면, 남성은 그렇지 않지만 여성의 젖꼭지는 아기에게 젖을 먹여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냥 쉽게 지나쳐 외면할 수 있습니다.

구스타프 라드브루흐(Gustav Radbruch)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표적 법철학자 였습니다.
법철학을 한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거쳐야 한다는 독일 법학계의 거장 라드브루흐(Radbruch)
잠시 그의 필모(Filmography)를 살펴보면 ~ ~ ~

@ 1902년 라이프치히 대학과 베를린 대학(박사)에서 법학을 공부
@ 1903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교수자격 취득, 제1차 세계대전 간호병으로 참전,
@ 전쟁이 끝난 후, 1919년 킬 대학 정교수, 1920년 국회의원 선출
@ 법무장관(1921~1923년) 제직시절 억압적이고 봉건적인 법제를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적인
법제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진행, 1926년 정계를 떠나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복귀(교수),
이 시기에도 친(親) 바이마르 성향 교수로써 저술 활동을 지속함.
@ 1933년 나치 집권 후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해직됨.
@ 영국에 머물던 1년을 제외하고 나치체제 하에서 모든 사회활동(정치, 강연 등)을 금지 당함.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복귀하여 “법치국가” 재건을 위해 헌신.
이 당시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그의 핵심 주장이라 할 수 있는,
그리고 수많은 법철학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 formula)>이 탄생함.
@ 이후 <라드브루흐 형법초안>, <법철학> 등 무려 스무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함.


제가 굳이 라드브루흐의 필모그래피, 즉 인생궤적을 언급한 이유가 있습니다.
20세기 천재 철학자라는 비트겐슈타인이 인생 전반기와 후반기에 (본인)사상의 변화를 겪었던 것처럼
라드브루흐도 본인의 법가치관의 뚜렷한 변화(입장변화)를 겪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변곡점은
<1933년 나치 집권>입니다.

라드브루흐는 철저히 법적 안정성을 추구하는 <법률실증주의자> 였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이 모인 <국가>라는 틀 속에서 매일매일 다툼하며,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너무나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다툼과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하여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동의하는 절대적인 규칙이나 규범이 존재해야만 가능합니다.
한마디로 <법(法)>의 존재이며, 그 법은 어떤 외적 간섭이나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즉 공동체를 뛰어넘는
암묵적 절대성을 내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회의 법(法)은 철저한 형식과 절차를 통해야만 절대성,
다시 말해 <법적 안정성>이 보장됩니다.(@ 법질서 확보) ... 그리고 초창기 라드브루흐는
이러한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933년 나치 집권 후 제정된 수많은 악법들과 그 법 체제하에서 자행된 끔찍한
학살과 폭력 등을 지켜보면서 라드브루흐는 큰 혼란에 빠집니다 ... 그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후 전쟁(제2차 대전)이 끝나고 (전후의)라드브루흐는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 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는데, 이 논문은 독일 사회가 나치를 청산 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저는 앞에서 법이 남성과 여성의 젖꼭지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짧게 얘기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젖꼭지를 모두 동등(평등)하게 취급한다면 이것은 실정법에서 바라본 생각입니다.
하지만 여성의 젖꼭지가 아기에게 젖을 물려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산과 바다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류에게는 보편이자 <자연>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여성이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편견 없이 모두가 같은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국가와 같은 정치공동체가 법이라는 인위적인 힘으로써 <여성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행위>, 즉
"자연법칙"과 같은 행위를 제한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류가 누려야할
당연한 권리나 정의(혹은 불변의 법칙)를 <자연법(natural law)> 이라고 합니다. ~ 더불어 자연법은
우리 현실의 실제 삶에 적용되는 일반적인 법(실정법)의 개념과는 다른, 좀 더 포괄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자연법은 주로 실정법의 비교개념으로 사용됨.)

하지만 법적 안정성(형식과 절차)을 중요시 했던 라드브루흐에게는 자연법적 가치관이
근거가 부족하고 오래된 관습적 경향과 비슷하다 생각해서 다툼이 생결을 때는 합리적(이성적)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때로는 감정적(정치적) 판단으로 오히려 법질서(법적안정)에 방해되는 낡은 생각으로
비춰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라드브루흐는 자연법론자들과 자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선출된 나치와 그 체제에서 만들어진 악법의 야만적 만행을 지켜보던 라드브루흐는
큰 충격과 함께 자기모순에 빠져버립니다. ~ 나치의 법도 철저한 형식과 절차위에서 분명 적법하게 만들어진
합목적성(合目的性)을 갖춘 법이었기 때문입니다. ~ 그러던 라드브루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나치의 법은 법이 아니라, 법률의 탈을 쓴 불법이다!" - 라드브루흐(Gustav Radbruch)>

거의 180도로 바뀐 입장변화입니다. ... 충실히 법의 외관(형식과 절차)을 지켰던
나치의 법(실정법)에 대해 <자연법에 반하는 실정법은 법이 아니다.> 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것이 전후의 라드브루흐가 주장한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에 들어있는 생각이며,
여기서 바로 그 유명한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 formula)>이 탄생합니다.
[◆ "실증주의의 사울(Saul)에서 자연법의 바울(Paul)로!" ~ ~ 일부 학자들은
라드브루흐의 법철학 일관성을 놓고 법률실증주의자였던 라드브루흐가 자연법론자로
전향했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 formula)>은 자연법에 가까운 <실질적 자연법>입니다.
이것은 실정법(나치법)이 극도로 부정의 하다면 법이 표면적으로 합법적인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으며, 그래서 앞서 살펴본 히틀러 체제하에서 실행된
<뉘른베르크 인종법>, <초토화 명령>, <안락사 명령> 같은 악법(명령)들은 인류의 당연한
정의라고 할 수 있는 자유와 인권, 평등의 원칙을 위반했기 때문에 불법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참고 - 라드브루흐의 부정의한 법의 3등급>

(1) 명백하게 부정의해서 처음부터 법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
(2) 법적안정성을 무시하고 효력을 박탈할 정도로 법의 내용이 부정의한 경우
(3) 법의 내용이 정의롭지 못하지만 법적안정성을 위해 효력을 인정해야 하는 경우

라드브루흐 공식은 나치청산 과정에서 중요한 <청산 기준>으로서 자주 원용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나치 시대의 악법의 효력을 부정함으로써 합법적인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할 수 있었는데
이는 <법률 불소급의 원칙>을 위배하지 않고서도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기 때문에 허풍쟁이
뮌히하우젠 백작에게 일격을 가한 셈이 된 것입니다.

그럼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 formula)>이 담긴 라드브루흐의 명문장을 소개하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 정의와 법적안정성의 갈등은 다음과 같이 해결할 수도 있겠다.
실정적인, 즉 규정과 힘을 통해 정립된 법은 비록 그 내용이 정의롭지 못하고
목적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우선성을 갖는다. 그러나 정의에 대한 실정법의 모순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러 법률이 <“부정의한 법”> 으로서 정의 앞에서 물러나야
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않다. 법률적 불법과 내용상 정의롭지 못하지만 그래도 효력이
있는 법률 사이에 더 예리한 경계선을 긋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아주 분명하게 경계를 확정할 수 있다. 정의를 전혀 추구하지 않는 경우,
법률을 제정할 때 정의의 핵심인 평등을 의도적으로 부인하는 경우, 그때 법률은 한갓
악법에 그치지 않고 아예 법적인 성격을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법, 즉 실정적인 법도
의미상 정의에 봉사하는 규율과 규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 보면 나치법은 전부 효력 있는 법의 품격에 이르지 못했다. ... 히틀러 인격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 즉 히틀러로부터 유래하여 나치의 모든 “법”의 본질로 귀결되었던
특성은 바로 진실에 대한 감각과 법에 대한 감각의 총체적 결핍이다. ... 정당이 당파적인
성격을 가질 뿐이라는 점을 무시하고 나치당을 국가 전체와 동일시했던 법률도
법적인 성격을 갖지 못한다. 즉흥적인 위하(힘과 위엄)의 필요에 이끌려 범죄의 경중에 대한
고려 없이 죄질이 다른 범죄에 같은 형벌을 부과하고, 빈번히 사형을 부과하는
온갖 형벌법규도 법적인 성격을 갖지 못한다. 이 모든 것들이 법률적 불법의 사례들일 뿐이다.
- (국가범죄, 461~462 페이지/ 이재승/ 도서출판 앨피)]


라드브루흐는 자신의 이 명문장에서 <"실정적인 법도 의미상 정의에 봉사하는 규율과 규정">
이라며 형식과 절차위에, 즉 법적안정성을 무엇보다 우선시했던 본인의 기존 법철학위에
<정의> 라는 자연법적 가치관을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부정의한 법의 3등급 중에서 (2)와 (3)의
구별은 정도나 형량의 문제이므로 둘 사이의 (예리한)경계선을 긋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했지만,
(1)과 (3)의 경계는 “(1)” 자체가 아예 처음부터 법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이 둘 사이의
경계는 선명하게 그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나치청산 과정에서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 formula)>은 몇 차례 판결에 원용되긴 했지만
형사적 책임보다는 주로 배상책임과 관련해서 원용된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실질적
청산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는 라드브루흐 공식이 (나치)체제 청산의 논리로는
전혀 작동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 왜냐하면 종전 후 나치청산 과정의 상당부분을 연합국
군정청이 주도하면서, 그리고 나치청산 작업을 빠른 시간 안에 마무리하기 위해서 핵심전범의
(청산)처리만 연합국 군정청이 도맡았고 나머지 인적청산 문제는 그냥 독일에게 넘겼는데 ~ 당시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상황 속에서 미국은 서독의 재건을 동구권의 사회주의 물결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 하나의 방어벽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나치청산을 조기에 마무리하려했던 결과였습니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당시에 라드브루흐 공식을 활용할 여지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나치에 부역했던 상당수 공무원들이 다시 복직되기도 했는데,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독일이 <탈나치화에서 재나치화>로 향하고 있다며 거센 비난을 쏟기도 했습니다.

<◆ 권위주의 정권에서 저질러진 범죄는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국가에 대한 범죄(쿠데타), 둘째는 인권 범죄, 셋째는 부역(附逆)입니다.
과거청산 국면에서는 둘째 유형의 범죄가 주로 처벌되고, 셋째 유형은 도덕적 비난은
받아도 좀처럼 범죄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 >

독일의 과거청산(나치청산) 작업은 통일과정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히틀러 체제하에서 수많은 사법살인을 저질렀던, 다시 말해 나치에 부역했던 그 많던
서독 출신 법조인들은 거의 대부분 살아남아 현직으로 복귀했습니다. 하지만 통일독일에서
동독 출신 법조인들에게는 상황이 많이 달랐습니다. 종전 후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했던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 formula)>이 나치 전력이 있던 동독 법조인들을 단죄할 때는 상당한
힘을 발휘한 것입니다. 동독 법조인 보다 더 심했던 서독의 광신적 나치 법조인들은 거의 대부분
무죄로 현직에 복귀시켰던 독일이, 통일 후 동독 출신들에게는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의
잣대를 준엄하게 들이대며 <승리자 법정(victor's Justice)>을 재현한 것입니다.

독일의 나치청산은 자연법의 바울(Paul)로 변신한 라드브루흐가 그렇게 애타게 부르짖던
<정의>를 위해 정의의 바깥에서 <부정의>하게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 그래도 우리가 독일의
과거청산 사례를 의미 있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비록 (나치)청산 과정에서
동서독이 구분되는 오류가 생성되긴 했지만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 formula)> 이라는
치열한 법철학적 고민이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 반면 한국은
<항장불살(降將不殺)>, <성공한 쿠데타론> 같은 천박한 판타지의 고민만 있었을 뿐입니다.

제가 글의 제목을 <한국만의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 formula)을 위하여 ~ > 라고 정했던 이유는
민주화 이후 아직까지 한국사회는 라드부루흐 공식같은 제대로된 한국만의 법철학적 고민이
단 한번도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독일 철학자 칸트는 "인간성이란 휘어진 목재" 라는 말을 했습니다.
휘어진 나무로는 그 어떤 반듯한 물건을 만들수가 없다며 ... 이것은 결국 인간(인간성)이 휘어져 있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제도 자체도 불완전 할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법은 최소한입니다!
저는 절대성이 부여될수 있는 것은 오직 <정의 Justice> 하나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제는 한국의 법치 위에 라드브루흐 공식같은 <한국형 정의 Justice>의 철학을 올려놓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 그런데 2017년의 한국사회는 여전히 <항장불살(降將不殺)>과
<성공한 쿠데타론> 같은 천박한 패턴만 반복되고 있는것 같습니다.

약 24년전인 1993년, 영국에서 한 흑인 고등학생이 백인 인종주의자 5명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가 되었는데 ... 일명 <시티븐 로런스 살인사건> 입니다.
당시 시민들의 분노는 폭발했지만 법원은 최종 판결을 받은 사람에게는 같은 죄를 두번 물을수 없다는
소위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들어 다시 재판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이 시건은 더욱더 확대되면서
사회적 갑론을박을 거치게 되는데 ~

< 800년간 지켜온 영국법의 원칙(일사부재리) Vs 무고한 죽음을 밝히는 것이 원칙보다 중요하다. >

결국 수많은 논의 끝에 800년간 이어져온 영국의 사법체계를 흔들위험을 감안하고도
영국에서 내놓은 해법은 바로 "형사 정의법" 제정이었습니다.

<형사정의법 - 살인, 성폭행 같은 강력 범죄에 대해 새로운 증거가 확보되면 범죄자를 다시 심판할수 있다!>

이후 2012년, 사건용의자들은 유죄가 입증되어 약 15여년의 실형을 선고 받게 됩니다.

"원칙"이 다수의 합의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정의를 찾는 일에 국민들 스스로가 너무 소극적이거나
"원칙"을 마치 "범용성 높은 정의"로 착각해 버린다면, 국가도 정의를 찾는 일에 소극적이거나
정의를 대체할 더 많은 "범용성"을 찾는 것에만 노력할 것입니다. 원칙은 두루 사용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입니다. 하지만 사용빈도가 높다고 정의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정의 Justice>는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관념의 중력법칙입니다. ... 따라서 "정의"에 기반한
법철학적 고민은 언제나 <현재성>을 갖습니다. 정의를 훼손한 명백한 죄인들에게
남성과 여성의 젖꼭지 쓰임새 하나 구분하지 못하는 법의 잣대를 들이밀며 정의를 넘어서려는
한국의 사법계에 이제 국민들은 진지하게 개혁을 요구해야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국만의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 formula)을 위하여 ~




[@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모두들 건강 잘 챙기시고, 편안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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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글은 잘 읽었지만
이 글이 게시물과 뭔 상관이지
판사가 부정의한 법에 근거해서 판결을 내렸다는 뜻인가
아니면 박근혜에 대해 사법적 관용을 베푼단 말인가

팩트도 틀렸는데
긴급조치에 관한 위헌판결을 보면
한국에서 그런 법철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 없을걸
90년대에 이미 견해가 분분했고
20년이 지나서 대통령 탄핵결정까지 내린 마당에
사법부가 법적안정성만을 중시한다는건 억측이지
근거라도 대던가

게다가
성공한 쿠데타론은 검찰의 주장이었을 뿐이고
헌재는 검찰에 재수사결정 & 대법원은 사형판결로
사법정의를 바로 세웠지만
후에 그 정의를 완벽하게 짓밟은 행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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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파스


33//

조윤선이 석방되고 김기춘의 형량이 정해졌습니다.
국민 기대에 못 미치는 선고였다고 생각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한국법이 부정의 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 다만
나라를 뒤흔든 '국가적 부정의 사태'에 대한 우리 사법부의 대응 방식이
여전히 정의가 배제되고 오직 법의 조문에만 매몰된 <모범적(?) 일관성>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 과거 성공한 쿠데타론과 항장불살은
그 <모범적(?) 일관성>의 대표적 사례인 거죠!

전두환에 대한 대법원의 사형판결로 우리가 사법정의를 바로 세웠다고 하셨는데
전두환은 지금도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으며 멀쩡히 살아서 골프치러 다닙니다. ... 그는 유령인가요?
저는 아직도 전두환이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만의 라드브루흐 공식을
(지금부터라도)정립해야 하는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 한마디로
지금 우리는 입법이 아니라 <정의 위에 세워질 한국만의 법철학>이 매우 절실한 시점이라
생각된다는 뜻입니다. ... 그리고 이것이 글에서 제가 얘기하고자 했던 내용입니다.

아무튼 고견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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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사형판결로 바로 세울 수 있었던 사법정의를 무너뜨린건
사법부가 아니라 대통령의 사면이었음
물론 사법계는 개혁할 것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원댓글에서처럼 사법계에 한정해서 사법정의를 요구할게 아니란 뜻이었음
이 게시물에서처럼
인민재판으로 미리 결론을 내려놓고
판결이 그에 따라오기를 사람들이 널려있는데
사법정의가 쉽게 서겠음?
그래서 원댓글처럼 사법부의 과거 잘못된 행적만을 나열하면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유도하는 듯한 늬앙스에 동의할 수 없다는 거임
암튼 이번 판결은 겨우 1심이고 검찰은 항소할거임
아직 부정의를 언급할 때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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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파스

33//

음! ~ 계속 논점을 벗어나고 계신데 ... 님께서 하고싶은 얘기가 무엇인지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글에서 하고 싶었던 얘기는 <부정의>가 아닙니다. 핵심은 제목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한국만의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 formula)을 위하여 ~ >

잘 아시겠지만 ... 법 해석에 대한 권한이 특정 (관료)집단의 배타적 영역이 되어버린다면
민주주의는 크게 위협받게 될겁니다. 이 부분은 역사적 사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다 아는
그리고 모두가 인식할수 있는 기본적 상식입니다. ... 대한민국 판사들이 독립적(?) 이라고 해서
그들이 반드시 공정하게 행동한다고 기대할 수 있는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1970년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을 당시 대한민국 근로기준법에는 노동자들의 기본권이
선진국수준으로 열거되어 있었습니다. ... 민주화 이전 군사독재 체제하에서도 우리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를 천명했었습니다. ... 법과 현실의 괴리! ~ 이것이 바로
한국사회 법치에 지속적으로 '부정의'를 잉태하는 근본적 원인입니다.
치열한 법철학적 고민보다는 오류가 발생할때마다 조문으로 땜질만 반복하다보니
언제부턴가 우리의 법은 누더기 법이 되어버린지 오래입니다.

저는 우리 사법부의 과거 잘못된 행적의 열거를 나열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한국 법치주의 전체(친일청산, 분배정의, 통일 등)를 관통하는 우리만의 법철학(라드브루흐 공식)을
정립할 시기가 됐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야만 소수의 <법을 앞세운 지배>가 아니라
진정한 <법의 지배>가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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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B



군대에서 서글펐던 기억


2017년 7월 14일 금요일

◆ 덕장의 고시낭인들에게 [by 물파스] [ + 네거]

[◆ 덕장의 고시낭인들에게 ]


"낭인(浪人)" 이란 일정한 직업 없이 비어있는 채로 돌아다니는 사람이라 하는데
여백 없이 책으로 가득찬 한 평 남짓한 공간속에서 피를 토하며 활자에 구속된 처지를
생각한다면 "고시낭인(浪人)"들 에게는 낭인(浪人)이 그렇게 쓸 만한 수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시간은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는 의미를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이들이기에 그래서 고시낭인들에게 시간을 할애 하면서까지 어울리는 수사를 찾는 일은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삶의 작동기제가 "중독과 환상"이라는 속성 때문에 고시낭인들은
마약 중독자의 삶과 어쩌면 섬뜩할 정도로 닮아있습니다.

고시와 마약은 인간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찬란하게 삶의 의지 또한
불러일으킵니다. ... 빛바랜 다짐과 치명적인 무기력, 이것이 사람의 정수리를 관통하여
항문으로 나와 흐르는 고시와 마약 속에 내재된 공통된 악마적 속성입니다.

낡은 꼬챙이에 대가리가 뚫리고,
인장강도 높은 노랑 포장용 밴딩끈에 주둥아리가 묶여서
한 겨울 내내 얼고 녹기를 스무 번 해야만 상품가치를 인정받는 덕장의 황태들처럼
도전과 포기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생각과 말의 변비를 스무 번 이상 견뎌내야
하는 것이 바로 고시낭인들의 삶인 것입니다.

순간의 삶이 쾌를 이루고, 술꾼의 속 풀이에 북어가 제격인 것처럼
고시낭인 스스로의 속 풀이는 타인(경쟁자)의 실패로부터 위로가 되지만,
이 또한 낭인 스스로도 그 "타인" 이라는 작자와 등치(等値) 관계에 묶여있어
대가리와 똥구녕이 뚫리고, 주둥아리가 밴딩끈에 묶여진 신세는 매한가지 입니다.

결국 그 작자 "타인"과 고시낭인은 서로가 서로에게 술꾼과 북어의 삶을 수시로
맞교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칼바람 부는 고시덕장의 운명적인 동기들인 것입니다.

얼고 녹기를 이미 스무 번은 더 했지만, 여전히 낭인은 덕장을 떠나지 못하고
정작 떠나간 것은 수중의 돈과 애인뿐 ~ ~ 그래서 세상의 시선을 서투른 몸에 칼금으로
새겨 넣고 그렇게 고시낭인들은 시나브로 "낭인(浪人)"이 되어 갑니다.

사정을 전해들은 먼저 온 덕장의 비린내 나는 선배는 하늘의 회색 구름보다 더 높게
떠있다 하여 우리에게는 청운(靑雲)의 꿈이 있으니 떠날 것들은 미련을 갖지 말고 조용히
떠나보내라 ... 속 풀이 북어처럼 위로를 합니다. 그래서 고시낭인은 오늘도 스무 번 얼기 위해,
또 스무 번 녹기 위해 ... 그렇게 덕장에서 봄이 오길 기다립니다.

생각과 말의 변비에서 해방되어 빛나는 삶을 되찾기를 ...
지금도 활자와 씨름하고 있을 전국의 수많은 고시낭인들에게 씁쓸한 응원을 보냅니다.



[@ 사시를 8년을 했던 선배 H와 지난주 동네 편의점에서
가볍게 맥주를 마셨습니다. ... 그리고 지난 과거를 훌훌 털고 일어서나 싶더니
이번에 안되면 노무사로 간다며 오늘 다시 낭인이 되기를 선언해 왔습니다.

파스칼은 도박을 즐기는 인간들을 향해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 가장 확실한 것을 걸고 내기를 한다" 고 말했습니다.
출구를 틀어막고 가진것 없는 자에게 가장 확실한 것을 요구하는 한국 사회의 이 못된 버릇은
비단 고시 사회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 다같이 수평적 공동체를 부르짖으며
모든 구성원들에게 수직적 부품화가 되기를 요구하는 우리사회 이 기형적 카지노 변증법은
오늘 선배 H의 8년의 시간을 비웃었습니다.

<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 >

시대는 1룩스(lux) 보다 못하게 흐린데
니체는 선배 H에게 다가가 과연 인생의 반복을 권유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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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거


저멀리 높은 나무 꼭대기에 달려있는 달콤해보이는

과실은 나 이외의 타인에게도 달콤해보이기 마련.
그것이 한정되어 있다면 매년 하나씩 열리는

그 과실이라는 결실을 얻기위해 높은 나무도 마다하지

않고 때로는 미끄러지며, 또 때로는 떨어지며

계속계속 높은 나무 끝 위태롭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그 과실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그 누구도

비난해서는 안된다. 타인이 보기엔 그것이 무의미하다

말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의 찬란한 젊음이자

용기의 단편이기에.

G20 사진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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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1일 화요일

◆ 조선업 & 해운업 이야기 [by 물파스]

[◆ 조선업 & 해운업 이야기 ]



[@ 게시물의 내용적인 측면에서 약간은 멀어진 얘기일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배(선박)>와 관련된 내용이므로 이쪽 분야에 대한 기본적 상식을 넓혀보자는 생각에서
글을 올려봅니다. ... 글의 분량은 상당히 많습니다만, 관련분야 전문 지식이 전혀 없는 분 누구라도
조선과 해운업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실수 있을 정도로 아주 쉽게 풀어보았습니다. 그래서
글을 다 읽고 나시면 이후 뉴스에서 조선이나 해운업 관련 내용이 나올때 최소한 뉴스 내용의 90% 이상은
충분히 이해하실수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이번 글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 다만 글을 끝까지 읽어보신후에도
어렵다고 느끼신다면 모두 저의 능력부족임을 미리 밝히는 바입니다. ]

한진해운 파산 등으로 한국 해운사정이 많이 어려워 졌습니다. 또한 대우조선해양 사태로 조선업황도
사정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닙니다. ... 특히 한국의 해운수송 능력은 한진해운 파산이전과 비교해보면
거의 절반수준으로 줄어든 상황인데, 사정이 이렇다보니 우리 수출기업들이 제품을 해외로 수출하려면
어쩔 수없이 외국 해운선사를 이용해야 합니다. ~ 당연히 비용(해상운임) 상승이 유발됩니다.
[◆ 업계는 한국발 미주 및 유럽 노선 운임이 2~3배 수준으로 상승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전체적으로 조선업보다는 해운업을 중심으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선박에 관련된 이야기다보니 배의 물리적 부분을 살펴보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먼저 기초적인 배의 구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 이어서 해운 산업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와 함께 (조선.해운)산업의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단순 정보 그 이상으로
자세히 살펴보려 합니다.

조선과 해운업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배를 만들고, 그 배를 가지고 어떻게 돈을 버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간단하죠? (-_-;)

경제의 기본중의 기본은 바로 “교환(무역)”입니다.
상품(자동차, TV, 의류 등)을 교환하고, 에너지(원유, 석탄 등)를 교환합니다.
농.수산물(곡물, 과일, 어패류 등)을 교환하고, 서비스(여행, 금융, 법률, 회계 등)도 교환하죠.
하지만 이러한 모든 교환 대상들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나라들(목적지)로 누군가가 쉬지 않고
열심히 실어 날라야 합니다.(운송) ... 그리고 그 대표적 운송수단 중에 하나가 바로 선박(船舶)입니다.

물론 항공과 철도 또한 상품과 사람들(여객)을 열심히 실어 나르는 중요한 운송 수단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세계경제(무역)에서 선박이 차지하는 그 위상과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세계 교역 물량의 75%~80%가 바다(선박)를 통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는 교역의 99%가 바다(선박)를 통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거의 전부인 거죠.]

선박(船舶)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 해상법상 상행위를 할 목적으로 물위를 항해하며 명칭, 국적, 선적항 따위를 가지는
본래는 동산이지만 부동산에 준하는 취급을 받는 구조물] ... 이라고 정의 하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자산(Asset) 이라고 한다면,
토지나 아파트, 상가건물처럼 소위 “부동산”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유형자산이 있으며,
자동차, 요트(선박)처럼 움직일 수 있는 유형자산이 존재합니다. 여기에 주식, 채권 은행예금 같은
금융자산과 영업권, 특허권 같은 무형자산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많은 자산들 중에, 특히 규모가 크고 움직일 수 없는 부동산(토지, 건물) 같은
고정자산의 경우에는 주식이나 은행예금(통장)처럼 소유 관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등록”이라는
제도를 통해 소유권을 구분하고 있습니다.(ex. 부동산 등기)

그런데 움직일 수 있는 유형자산은 보편적으로 등록제도가 없습니다. 하지만 자동차나 선박은
움직이는 유형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등록제도”를 통해 소유관계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동차나 선박은 왜 등록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가?

책이나 가방, 담배, 스마트폰 등의 물건들은 우리가 특별히 구청에 가서 등기나 등록을 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물건을 현재(지금) 들고 다니는(점유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물건의 주인일
것이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또한 그러한 생각들에 대해서 그 어떤 누구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선박은 어떠한가? ... 당연한 얘기지만 선박은 휴대폰처럼 들고 다닐 만큼 작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대형 선박들은 쉬지 않고 전 세계 바다를 돌아다닙니다. 더불어
특정국가에 머무는 시간도 항만에서 짐(화물)을 내리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바다위에서 보내게 됩니다 ... 다시 말해 공해(high sea)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므로 실질적으로
선주(배 주인)가 실물(선박)을 점유하고 있는 시간도 짧지만, 오래 점유하고 싶어도 그럴수록 배를
놀리는(수익창출을 못하다) 상태가 되기 때문에 재무적인(매출) 상황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선박은, 특히 대형 선박은 그 가치(가격)가 웬만한 부동산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는 경우가
비일비재 합니다. 따라서 대출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선박에 대한 확실한 법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선박은 전쟁 같은 특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국가적인 전략자산으로서의 가치가 상당히 높은 자산입니다. ... 이러한 이유로 선박은 등록 제도를
필요로 합니다. [◆ 국가필수선대 - 국가가 전쟁 같은 비상사태를 대비해 일반 선사가 보유하고 있는
배중에 적정 기준에 부합하는 선박을 국가필수선박으로 지정하는데, 필수선박으로 지정되면 여러
제한(선원고용 및 항로 등)이 따릅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민간 선사의 손해는 정부가 보상합니다.
때문에 군(해군)에서는 우리 국적 선박을 보호하는 일이 중요한 임무 중에 하나입니다. ... 지난 2011년
1월 삼호해운 소속 <삼호 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되었을 때, 우리 청해 부대가 작전명
<아덴만 여명작전>으로 해적들을 소탕하고 인질을 구출한 것을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그리고 지금도
청해 부대는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서 한국 및 외국 선박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전 세계 교역 규모도 과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 졌습니다.
이에 따라 선박에 대한 등록의 의미도 점점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1980년대부터는
국제법(UN협정 90조)에 의거해 모든 상업선단은 자국에 치적(置籍: 배의 국적.호적)할 권리를 가지며
치적된 상업선단의 배는 공해를 운항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집니다.
[◆ 선박의 등록(치적)과 관련된 부분은 상당히 중요하므로 뒤에 가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조선과 해운업도 관련업계 종사자가 아니라면, 매우 낯설고 생소한 (전문)용어들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의 편안한 이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전문용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배 이야기” 이므로 선박에 관한 기본적인 용어 및
용례(쓰임새)에 대해서 먼저 시작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최첨단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예측불허의 천재지변을 맞닥뜨리면
인간은 하염없이 작아집니다. ... 더구나 그러한 예측불허 상황을 바다 한가운데서 만난다면
거의 절망적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두발로 딛고 서있는 땅 위에서조차 불안한 인간에게
아무리 큰 배를 가지고 바다 위를 달린다 해도 변화무쌍한 바다의 변덕 앞에서는 항상 위험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 그래서 세계(국제협약)는 바다 위를 지나는 모든 선박 및 선원의 안전과 해양 환경을
최우선으로 하여 국제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따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 한마디로 대양(ocean)을
다닐 정도의 배는 절대로 어설프게 만들지 말라는 거죠! ... 때문에 선체(배의 몸체) 구조는 대단히
견고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선수(배의 앞부분)와 선미(배의 뒷부분), 기관실, 화물창 등은
다른 부분보다 더 튼튼하고 세심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배를 잔잔한 물에 띄우면 수면 아래로(물속) 배가 잠기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배가 잠긴 부분 중 수면에서 (배의)가장 깊은 곳까지의 수직 거리를 흘수[(吃水).Draft]
라고 하는데, 이렇게 물에 잠긴 선체와 수면의 분계선을 흘수선(Draft mark) 이라고 부르며
모든 (대형)선박은 이 흘수선을 표시해야 합니다.

또한 배에 화물이나 사람을 싣게 되면, 더 이상 실을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르는데,
무작정 화물이나 사람을 많이 싣게 되면 배가 전복되거나 물속으로 가라앉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화물이나 사람을 실을 수 있는 최대한도를 설정하여 표시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만재흘수선”입니다.
더불어 만재흘수선 또한 “만재흘수선국제조약”에 따라 반드시 배 측면에 표시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바닷가 혹은 TV뉴스에서 자주 보는 (대형)선박은 보편적으로 흘수선 윗부분만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박은 이 흘수선 아래 부분, 즉 물에 잠긴 부분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은 이 흘수선 아래 부분은 붉은색 페인트를 칠하여 구분하는데, 이것은 색의 조화 같은 디자인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은 오염방지의 목적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염방지는 배의 성능과
연관되기도 하는데, 해양 동.식물이 배의 표면에 달라붙어 서식하게 되면 추진 성능에 영향을 줄 수가
있습니다.[◆ 연료소모가 많아질 수 있음]

배의 추진 성능을 떨어뜨리는 것은 해양 동.식물 뿐만이 아닙니다. ... 여기에 추진 성능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요인 중 하나가 바로 파도인데, 잔물결 없는 아주 고요한 상태에서 배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면 이때 파(Wave)가 발생하게 됩니다.

파(Wave)가 발생한다는 것은 결국 에너지를 소모했다는 것이며, 이러한 에너지 소모는 곧바로
저항을 발생시키게 되는데 이렇게 배가 전진하면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저항이 바로 파도입니다.
(@ 조파저항. wave making resistance) ... 그래서 배를 설계할 때 이와 같은 조파저항을 상쇄시키기
위해 선수(배의 앞부분) 아래 부분을 마치 커다란 혹부리 모양의 돌출된 타원형으로 설계하는데
이것을 구상선수(球狀船首,bulbous bow) 라고 합니다.

배의 구조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프로펠러(propeller)입니다.
프로펠러는 엔진의 회전력(어떤 축을 중심으로 빙빙 돌아가는 힘)을 추진력(앞으로 나가려는 힘)으로
변환하는 장치입니다. 한마디로 배가 앞으로 힘차게 나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중요한 장치인 거죠.
그렇다면 프로펠러를 아주 크게 만들면 배가 더 빠르고 힘차게 앞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하지만, 프로펠러를 무한정 크게 만들면 오히려 물의 저항을 더 많이 받게 됩니다.
그래서 프로펠러는 선종(배의 종류), 선형(배의 모양)과 선박의 크기 등이 고려되어 신중하게 결정되고,
많은 추진력을 필요로 할 때는 프로펠러가 두 개인 쌍축선 형식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대충 선박의 아래 부분, 즉 흘수선 아래의 구조에 대해서 살펴보았으므로,
선박의 윗부분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배를 물위에 떠있게 만들어 주고, 또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게 해줄 수 있는 구조는 어느 배든지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물에 잠긴 부분(흘수선 아래)의 배 구조는 대동소이 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배의 윗부분의 구조는 선종과 선형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노 젓는 1인용 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대형)선박에는 갑판(Deck)이 있습니다.
갑판(Deck)은 배 위에 나무나 철판으로 깔아 놓은 넓고 평평한 바닥을 말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형선박 갑판에는 “데크하우스(Deck House)” 라는 상부 구조물을 설치하는데, 여기에는 배를 조종하는
조타실과 선원들이 먹고 자고, 쉴 수 있는 선원 거주구 및 사무실 등이 포함 됩니다 ... 쉽게 말해
(보통)5~8층짜리 작은 고급호텔을 배의 상부에(갑판위에) 레고 블록을 쌓듯이 올려놓았다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편할 겁니다.

그런데 데크하우스(Deck House) 제작에는 상당한 기술력이 요구됩니다.
만약 데크하우스를 너무 크게 만들면, 그 무게 때문에 배의 무게중심을 맞추기가 까다로워질 수
있으며 연료소모 또한 많아집니다. 따라서 데크하우스는 조타실과 선원들의 피로를 풀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최대한 안전을 고려하면서도, 동시에 가볍고 튼튼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육상의 건물이었다면 철근콘크리트로 골조를 만들었겠지만, 데크하우스의 골조는 대부분 철판으로
만들며, 벽면, 천장, 바닥도 모두 철판으로만 제작하는 고난이도 공법이 요구됩니다.

이렇게 고난이도 공법이 요구되는 데크하우스(Deck House) 라는 상부구조물을 제작하는 업체 중
세계 1위 업체가 바로 우리나라 오리엔탈정공 이라는 회사인데, 이 회사가 만드는 데크하우스는 주로
<파나막스급(파나마운하를 통과할 정도의 크기의 선박)> 이상의 대형 선박에 탑재되며 데크하우스를
하나 수주하면 보통은 40여 개 협력업체가 달라붙어 90~120일 만에 완제품을 만들어 냅니다.
[◆ 파나막스급(Panamax) 선박 얘기도 뒤에서 자세히 설명합니다.]

더불어 데크하우스에는 선원 거주구역 이외에도 (앞서 언급했듯이)조타실을 포함하는데,
배를 조종하는 조타실은 보편적으로 선미(배의 뒷부분) 쪽에 설치합니다. 배가 깊은 바다로 나가게
되면 선수(배의 앞부분) 쪽은 선미에 비해 상하운동이 심해서 조종에 어려움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화물을 실을 공간을 좀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한 이유도 있습니다.

배 구조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보겠습니다. ~ 보통 화물선의 바닥은 이중 구조로 만듭니다.
배가 좌초했을 때, 바닷물이 선내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 화물을 보호하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반대로 유조선 같은 경우는 바다로의 기름 유출을 막고자 하는 목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1983년
해양오염 방지에 관한 국제협약과 1989년에 알래스카연안에서 발생한 초대형 유조선 엑손 발데스호의
좌초사고로 이중선체 구조에 대한 국제협약이 더욱 강화되기 시작했습니다.
[◆ 알래스카 산 원유 5천300만 갤런을 실은 엑손 모빌 소속 유조선 엑손 발데스호는 1989년 3월24일
새벽 캘리포니아로 가던 중 알래스카 만의 해협인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에서 좌초했다. 이 사고로
선체가 파손돼 선적 원유의 20%인 1천80만 갤런(24만 배럴)이 흘러나와 알래스카만 일대를 뒤덮었다.
h ttp://media.daum.net/foreign/others/newsview?newsid=20071209234110632 ]

이후 미국 같은 경우는 1990년부터 미국 연안을 항해하는 모든 유조선에 대해서 이중선체 구조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만들었고, 국제해사기구[IMO: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 또한
신조(@새로 건조되는 선박) 유조선의 이중선체 구조를 의무화 하였습니다.

배는 다른 운송수단(자동차, 철도, 항공 등)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속도가 많이 느린 편입니다.
따라서 공기저항은 적지만, 바람이나 파도 같은 다른 저항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물에 직접 접촉하는
프로펠러 같은 보이는 부분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선박)엔진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동안 뉴스를 통해 많은 분들은 한국의 조선 산업이 (중국의 추격이 만만치 않지만)세계 1위라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선박엔진 산업 역시 세계 1위라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 선박엔진의 세계1위 업체는 바로 현대중공업인데, 이 업체는 현재
세계 40여 개국으로 수출하고 시장점유율이 약 35% 수준입니다. 그 뒤를 이은 선박엔진 세계 2위
업체로 두산엔진(시장점유율 20%)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세계 선박엔진의 절반 이상은 한국 업체들이
생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박의 속력은 주로 노트(Knot)로 표시하는데(@기호는 kn, kt) ... 1노트는 배가 1시간에 1해리를
가는 속력을 말합니다.(1해리: 1,852m) ~ 따라서 배의 속력이 27노트라면, 대략 시속 50km를 뜻합니다.
그래서 배가 24시간동안 27노트를 유지하며 항해 한다면, 대략 1,200km 항해할 수 있다는 뜻이며,
이 속력으로 부산항을 출발하면 대략 9일후에 미국 남서부 로스앤젤레스(LA) 롱비치 항만에 도착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해운업 이야기를 위한 아주 기본적인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사실 이정도 내용만으로는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배의 종류와 함께 몇 가지 기본적인 내용을 좀 더 살펴보고
해운업 관련 이야기로 이어가 보겠습니다.

배는 사용 목적에 따라 보통 상선과 군함, 어선 및 특수선 등으로 분류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상선의 주 수입원은 여객과 화물을 운송하며 받는 운임입니다. 상선은 다시
화물선과 화객선(화물과 승객을 함께 운반하는 배), 여객선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 글에서는
<상선>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화물의 종류를 먼저 생각해봅시다.
(대형)선박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운송하는 대표적 화물에는 원유와 석유제품, 천연가스, 석탄,
철광석, 곡물 등이 있으며, 이들 화물은 현재 세계 교역량의 대략 60%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포장화물(컨테이너) 같은 기타 건화물(Dry Cargo)이 포함됩니다.

건화물(Dry Cargo)은 원유 같은 액체가 아닌 광석이나 곡물, 기계류 및 각종 공산품(잡화) 등의
고체화물로 일반 화물선이나 벌크선, 컨테이너선 등으로 운송 됩니다. 특히 석탄과 철광석, 곡물 등은
특별한 포장이나 묶음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흔한 말로 그냥 선창(화물칸)에 들이부어(산적, 쌓다.)
쌓은 형태로 운송합니다.(@산적운송) 그리고 이렇게 산적 형태를 전문으로 운송하는 배를
보통 벌크선(Bulk Carrier) 이라고 부릅니다 ... 그런데 여기서 원유나 액화천연가스(LNG) 또한
따지고 보면 (포장하지 않고)산적 형태로 운송하는 형태인건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워낙 화물의 특수성이 높아서 따로 전용선(@탱커.Tanker)을 만들어 운영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곡물 같은 경우는 계절적 수요와 특정 수확시기로 인한 변동이 다른 화물보다 잦기 때문에
전용선을 두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여러 화물 종류의 물동량에 맞춰 운영합니다. 더불어
해운회사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빈 배(공선) 운송을 줄이는 것이 수익에 도움이 됩니다. 한마디로
부동산 임대시 공실률을 낮추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다른 종류의(2종류 이상)
화물을 운송할 수 있도록 선창(화물칸)을 개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 예를 들면, 중동에서 원유를 싣고
유럽으로 운송한 다음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프리카에 들러 철광석 등의 원자재를 싣고 오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원유(@땅속에서 방금 뽑아낸 천연 그대로의 석유)나 정유[@정제한 석유(휘발유, 경우, 등유 등)]처럼
액체 상태의 화물이 아닌 건화물에는 방금 전 얘기한 석탄, 철광석, 곡물 이외에도 우리가 보통
상품이라고 부르는 TV, 냉장고, 휴대폰, 의류 등의 각종 공산품(생활 잡화 포함) 등이 포함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산품은 보통은 안전하게 포장되어(포장화물) 운송되는데,
이에 가장 적합한 배가 바로 컨테이너선입니다. [◆ 주요 수출품목 중 하나인 자동차는
PCC(Pure car carrier), PCTC(Pure Car and Truck Carrier) 라는 자동차 전용운반선으로 운송됩니다.
자동차 전용선은 보통 9~10층의 갑판으로 설계되고, 육상의 대형마트 지하 주차장처럼 통로 끝에
나선형의 주행로를 설치하여 자동차가 각 층마다 스스로 이동하여 선적하는 방식인데, 최근에는
13층 이상 크기의 선박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정도 크기면 한 번에 대략 5천대 이상의 자동차를
선적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는 대표적인 자동차 운송기업이 바로 “현대글로비스”입니다. ]

컨테이너선(container ship)은 갑판 아래의 선창(화물칸)뿐만 아니라 갑판 위에도 컨테이너를
적재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 이 배는 모두가 잘 알다시피 컨테이너(container) 라는
규격화된 네모난 철재상자 용기에 (포장)화물을 담아 운송을 하는 것입니다.

컨테이너선은 1960년대 미국의 시랜드(Sealand) 사와 매트손 내비게이션 사에 의해 개발되었는데
이후로 하역비 절감과 하역시간 단축 등 컨테이너선의 등장은 그야말로 물류의 혁명이라고 할 만큼
해상운송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컨테이너선의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로는 주로 TEU(티이유. twenty footer equivalent unit)를
사용합니다. 1TEU는 20피트(6미터) 짜리 컨테이너박스 한 개를 뜻하며, 40피트를 뜻하는
FEU(forty footer equivalent unit) 컨테이너박스도 있습니다.]

최근에 건조되는 대형 컨테이너선은 보통 1만 TEU를 가볍게 넘어섭니다 ... 한마디로 컨테이너 박스
1만개를 적재할 수 있다는 뜻인데, 1만 TEU 급이면 하루 300톤 이상의 연료소모량에 길이는 보통
400m, 높이만도 50m에 가까운 엄청난 크기의 선박인 것입니다. 그런데 1만 TEU급 컨테이너선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히 선박의 물리적 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거죠.!

만약 20피트(6미터)짜리 컨테이너 1만개를 일렬로 이어붙인다면(60km) 자동차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인천공항까지 갈수 있는 엄청난 거리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컨테이너 1만개를 육로를 통해 운송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 우선 1만대의 트레일러가 필요합니다. 또한 1만 명의 운전자가
있어야 하는데 이에 따른 엄청난 인건비와 연료비용, 차량 대여비용, 운전자 식비 및 주유하는데 걸리는
시간까지 감안한다면 정말 상상 이상의 대규모 이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광경을 공중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내려다본다면 서울 광화문에서 인천공항까지 거리와 맞먹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초대형
아나콘다(Anaconda) 한 마리가 도로를 점령하며 꿈틀 꿈틀 기어가는 현기증 나는 광경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때 1만 TEU급 컨테이너 선박이 등장 한다면, 이 모든 현기증 나는 고민이 한 번에 해결됩니다.
인원은 많아봐야 고작 20명~30명이면 충분하며, 연료비용과 시간 측면에서도 컨테이너 선박이
압도적이라 할 만큼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결론적으로 경제성과 효율을 따져본다면
해상운송은 아직까지 감히 그 어떤 운송수단 보다도 월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보편적으로 선박(운임비용)은 육상 운임에 비해 1/5 수준이며, 항공 운임의 1/50 수준입니다.]

다음은 유조선인데, 간략히 살펴보고 다음 이야기로 계속 이어가보겠습니다.

유조선! ~ 한마디로 원유와 석유제품을 운반하는 선박을 총칭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종류에는 원유(@천연 그대로의 석유)를 운송하는 원유운반선[Crude oil Tanker],
정제한 석유제품(가솔린, 등유, 경유 등)을 운송하는 정유운반선[Product carrier],
황산, 벤젠, 톨루엔 등의 화학제품을 주로 운송하는 (액체)화학제품 운반선[Chemical tanker]
LPG, LNG, 액화암모니아 등을 운반하는 (액화)가스운반선[Gas Carrier] 등이 있습니다.
[◆ LNG 선은 천연가스를 영하 163도에서 1/600로 압축하고 액화시켜 운반하는 특수선박으로서
화물창 구조 또한 제작하는데 고난이도 공법이 요구됩니다. 그래서 선가(배의 가격) 또한 지금까지
언급했던 여러 화물선 중에서도 가장 비싼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선박종류가 있는데 ... 냉동선, 카페리(자동차와 사람을 동시에 실을 수 있는 선박),
보통 유람선, 크루즈선(cruise ship), 화객선(화물과 사람을 동시에 운반) 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선박의 종류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선박의 크기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데, 이 부분은 단순히 <배가 크다!, 작다!> 차원을 넘어서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앞서 컨테이너선을 얘기하면서 TEU를 언급했었는데, 이렇게 컨테이너선의 크기를 말할 때는
보편적으로 만재 TEU를 사용합니다. 다시 말해, “최대 몇 개의 컨테이너를 배에 실을 수 있느냐?”를
따져보는 것으로 컨테이너선의 크기를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 당연한 얘기지만, 이것은 컨테이너
박스가 규격화, 표준화 되어있기 때문에 컨테이너선끼리의 비교는 그 개수(컨테이너 개수)로서 크기를
다투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비교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벌크선이나 유조선 같은 경우는 앞서 언급했듯이 화물을 그냥 산적(쌓음) 형태로 운송하기
때문에 가장 합리적인 비교 방법은 그냥 화물의 무게(중량)를 재는 방법이외엔 특별한 방법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쉽게 말해 “이 배는 철광석을 1만 톤을 실을 수 있다!”처럼 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최대 무게를 따져서 선박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화물의 무게를 측정하는
단위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기준이 바로 <DWT(Deadweight Tonnage)> 라는 “재화중량톤수”입니다.

앞서 배의 구조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흘수선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았던 기억이 나실 겁니다.
축구장 크기의 아주 큰 욕조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물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는데
거의 한 두 방울이면 욕조가 넘칠 듯 말 듯, 최대한 가득 채우고 물이 잔잔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배를 띄웁니다. 당연히 배의 무게 때문에 욕조 밖으로는 일정량의 물이 밀려나갈 것입니다.
이렇게 욕조 밖으로 밀려난 물의 중량을 소위 “배수중량” 이라고 하는데, 이 배수중량은 배의 흘수선
아래, 즉 수면 아래 물속에 잠긴 배의 용적(부피)과 물의 비중을 곱한 값과 같은 무게인 것입니다.
그리고 배수중량을 톤으로 나타낸 값을 “배수톤수” 라고 합니다.

이미 앞에서 자세히 언급했듯이 배에는 선원들이 먹고, 자고, 쉴 수 있는 공간(데크하우스)이
따로 마련되어 있으며, 그 곳에는 선원들 개인용품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식당이나 창고에는
식량 및 음료수가 있을 것이며, 연료탱크에는 당연히 연료가 들어있습니다. 또한 배에서 사용되는
여러 비품(선용품)과 수리나 점검에 필요한 각종 도구들이 실려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화주(화물 주인)로부터 돈을 받고 운송해 주기로 약속한 진정한 화물(순수화물)이 아니기 때문에
진정한 화물의 무게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순수화물 이외의 것들을 모두 제외해야 합니다. 그래서
(순수)화물을 실은 상태에서 배를 띄웠을 때의 배수톤수에서 순수화물 이외의 것들을 빼주고 나면
그 값이 바로 재화중량톤수(DWT)가 되는 것입니다. ... 결론적으로 재화중량톤수는
“얼마나 많은 (순수)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느냐!”와 같이 선박의 수송능력을 평가하는데 가장 적합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가에서 운영되는 지하철이나 버스 운송체계를 살펴보면
모두 특정한 지역만을 오고가는 소위 <노선> 운영체계가 주류를 이룹니다. 한마디로 지하철이나 버스는
목적지 없이 자기들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노마드(nomad)적 속성을
내포하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지하철과 버스는 숨막히게 규칙적이며 계획적이고, 반복적인
시스템인건 확실합니다.

서울의 지하철은 1호선~9호선과 기타 노선(분당, 인천 등)이 있으며, 버스도 고유 번호가 있어
정해진 경로와 목적지로만 다니면서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노선 운영체계는
비단 버스와 지하철에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하늘에는 비행기들만의 노선이 있으며(항공노선)
바다에도 배들만의 노선(항로. 해로)이 있습니다. ... 그리고 현재 전 세계에는 배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정해진 바닷길(노선)이 있는데, 그 대표적 항로에는

[1] 아시아-미주(아메리카 대륙)항로
[2] 아시아-유럽항로
[3] 미주-유럽항로

이렇게 3곳의 항로가 전 세계 대부분의 선박이 가장 많이 누비고 다니는 대표적 바닷길(노선)입니다.
더불어 이 3곳의 항로들의 핵심 중간 경유지가 바로 <파나마 운하와 수에즈 운하> 입니다.
[◆ 파나마 운하(Panama Canal) -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파나마 지협을 종단하여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약 80㎞ 길이의 운하. 1914년 개통된 뒤 미국이 관할하다가 1999년 12월 31일
운하의 전권을 파나마에 이관하였다. 2016년 6월 새로운 갑문을 건설한 확장 공사가 완공되었다.]

많은 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파나마 운하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이어주는 관문입니다.
만약 한국 부산항에서 화물을 실은 선박이 미국 뉴욕 등의 동부해안을 가려고 할 때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지 않는다면 남미의 최남단에 있는 케이프 혼[Cape Horn]을 돌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보통 화물선의 경우 대략 17일 ~20일 정도의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따라서 연료비용을 포함한 각종
비용을 고려한다면 파나마 운하는 (해운사 입장에서는)무조건 통과해야 하는 핵심 경유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성이 높은 파나마 운하 통과에도 한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아니 문제점이라고 하기 보다는 “까다로운 조건” 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네요 ~
그 까다로운 조건이란 바로 파나마 운하는 아무 선박이나 다 통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운하의 크기가(폭과 길이 등)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선박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뜻입니다.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선박의 최대 크기는 재화중량톤수(DWT)로 대략 7만 7천DWT 입니다.
실제 길이와 폭을 따져보면 길이는 약 230미터, 폭은 약 33미터 정도의 크기의 선박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정도 크기의 선박을 소위 <파나막스(Panamax)> 선박이라고 부릅니다.

정리해보면 "파나막스(Panamax)"급 선박은 파마나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선박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선박을 뜻하며, 길이는 230미터, 폭은 33미터, 재화중량톤수(DWT)는 대략 7만~8만DWT,
만재흘수(@ 배가 화물을 더 이상 실을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실었을 때 물속에 가라앉는 최대 깊이)는
약 12미터 정도의 선박을 말하며, 컨테이너선은 대략 4,000 ~ 4,500TEU 수준을 말합니다.

수에즈 운하[Suez Canal.1869년 개통]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두 대륙의 경계인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중해와 홍해, 인도양을 연결하는 관문입니다. 보통 우리나라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이 영국과 유럽 대륙으로 가려할 때 자주 이용하는 운하입니다.
[◆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최단 항로]

앞서 언급한 파나마 운하와 마찬가지로 부산항을 출발한 선박이 유럽으로 가고자 할 때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않는다면 아프리카 최남단인 희망봉[Cape of Good Hope. 남아프리카 공화국 남서쪽 끝]을
돌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보통 화물선인 경우 대략 15일이 더 소요됩니다.

수에즈 운하 또한 파나마 운하처럼 통과할 수 있는 선박의 최대 크기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선박의 최대 크기는 약 15만DWT 수준이며, 이 정도 크기의 유조선을 <수에즈막스(Suezmax) 탱커> 라고
부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산업이 대형화 고도화 되는 등 국제교역이 활발해지자 해상물류 또한
비약적 성장을 하게 되었고, 당연히 파나마운하와 수에즈운하 또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50년대의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가 주변국들과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로 인한 분쟁 때문에
몇 차례 폐쇄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었습니다.

1952년, 군인이었던 이집트의 가말 나세르(Gamal Nasser)는 민족주의 성향의 소장파 장교들과 함께
당시 국왕이었던 파루크(Farouk)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우며 권력을 잡게 됩니다. ... 이집트는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입니다. 또한 연간 강수량도 차마 강수량이라 할수 없을 정도로 비가 적게 내려서
권력을 잡은 나세르 입장에서는 국민들의 가난을 해결하고 국력을 키우기 위한 가장 최우선 과제가
바로 용수 확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나일강을 활용한 댐건설 이었습니다.
[◆ 아스완 하이댐[Aswan High Dam] - 높이 111m, 총 용적 1,690억 세제곱미터 – 1970년 완공]

당시 나세르가 계획했던 아스완 하이댐[Aswan High Dam]은 그 규모가 엄청났기 때문에
댐 건설에 소요되는 비용 또한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영국과 미국이
댐건설 비용에 대한 원조를 약속했는데, 이때 이집트가 공산진영이었던 체코와 소련으로부터 비밀리에
전쟁 물자 지원협정을 맺자 미국과 영국은 모든 댐 건설 지원약속을 취소하게 됩니다.[@1956년 7월]

나세르는 댐건설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하자, 곧 바로 그 대안으로 운하 주변에 과감히 군대를
배치하며 “수에즈운하는 이집트 꺼!(국유화)”를 선포합니다. 운하 운영수입으로 댐 건설비용을
충당하겠다는 것이었죠. ... 여기에 티란 해협도 봉쇄하여 이스라엘의 홍해 진출로도 막아버렸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과 서방세계에 불만이 많았던 아랍인들은 이러한 나세르의 과감한 행보에 환호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 티란 해협 –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홍해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해로 ]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자 최초 수에즈운하가 만들어질 때부터 전문 관리회사를 만들어(지분참여)
운하에 대한 상당한 영향력(통제)을 행사하고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격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는 비밀계획을 세웠고, 이스라엘에게 이집트를 공격하면 뒤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제의합니다. 가뜩이나 티란 해협과 (이집트)게릴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이스라엘은 1956년 10월
이집트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2차 중동전쟁”입니다.[◆ 수에즈 전쟁, 2차 아랍-이스라엘 전쟁]

하지만, 이 전쟁은 미국과 유엔의 반대 등으로 얼마기지 못해 끝나게 되는데, 당시 미국의 생각은
만약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이 참전하게 되면, 아랍 민족들이 가지고 있던 그동안의 미국과 서방에 대한
적개심을 더 크게 불러일으켜, 자칫 소련을 비롯한 공산진영의 아랍권에 대한 영향력이 확대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수에즈 운하는 이러한 긴박하고 복잡한 지정학적 사정 때문에 몇 번의 운하 폐쇄를 경험하였고,
그 결과 중동산 원유 운송이 많았던 유조선들은 유럽과 북미지역으로의 최단 항로가 막혀버려
어쩔 수없이 아프리카 대륙을 우회해서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많은 해운선사들은 생각했습니다.[@당시 유럽의 중동산 원유 의존도 70% 육박]

“툭하면 (수에즈)운하가 막혀서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가야 하니까, 이왕 돌아가야 할 바엔
배라도 더 크게 만들어서 한 번에 많은 화물(원유)을 수송하는 것이 훨씬 더 회사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결과 탄생한 선박이 바로 초대형 유조선인 “VLCC[Very Large Crude oil Carrier]” 와
초대형 벌크선인 “케이프사이즈[Capesize]” 선박입니다.[@ 10만~18만DWT 규모]
[◆ 케이프사이즈 선박은 만재흘수 18미터 이하일 땐 수에즈운하는 통과 가능하며 ... 더불어
VLCC의 크기는 딱히 정해진 바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20만 ~30만DWT 규모를 말하는데,
이것이 얼마나 큰 규모인가 하면, VLCC 규모로 우리가 원유를 한 번 수입하면, 우리나라 전체가
하루 동안 소비할 수 있는 원유의 양인 것입니다. ]

[◆ 2016년 6월 26일 파나마 운하가 드디어 9년의 확장 공사를(6조원 투자) 끝내고 개통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새 운하는 폭 49m, 길이 366m의 포스트 파나막스급 선박도 지나갈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은
전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92%, 모든 선박 종류의 97%를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현재 세계적인 경기침체 상황이 장기적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해운경기 또한 침체를 벗어
나려면 아직은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파나마운하의 확장으로 뉴파나막스급 선박의
신조(새로 건조)가 약간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물동량 또한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 하지만
이것은 해운사 입장에서는 (선박)공급 과잉이므로 운임 수익률은 전보다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며,
반면 화주(화물 주인) 측은 조건이 전 보다 좋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 참고로 파나막스, 수에즈막스
외에도 핸디사이즈, 핸디막스, 수프리막스 등 크기에 따른 좀 더 다양한 선박의 분류기준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결혼을 하고, 또 소중한 아이까지 낳게 된다면 출생신고를 하게 됩니다.
당연히 국적도 취득하게 될 겁니다. ... 그런데 선박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배가 건조되면
배도 출생신고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국적을 갖게 되는 거죠. 이것을 보통은 “선박을 치적(置籍)”한다고
말합니다. [◆ 치(置) - 둘 치(사물을 배치, 예금을 예치) // 적(籍) - 문서 적(국적, 호적) ]

사람의 국적은 본인이 태어난 국가를 제외하면, 다른 나라 국적을 갖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선박은 어디에서 태어나든(만들어지든), 또 누구의 소유이든[선주(배주인)의 국적] 상관없이
원하는 국가에 출생신고(치적)를 할 수 있습니다.

선박 치적(置籍)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전통적(과거에는)으로는 어느 특정국가의 국민이 소유하는 선박은 반드시 그 국민이 속한 나라에
등록을 해야 했으며, 그 나라 국민들을 선원으로 고용해야 했고(@ 자국 선원 의무고용), 앞에서도
언급했었지만 전쟁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정부의 징발령에 따라 <국가필수선박>으로 지정되어
정부의 명령을 따라야 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이렇게 강제성이 부여된 치적 관행에 대해서 선주가
특별한 이의를 제기하기가 어려웠으며, 반드시 선박은 선주(배주인)가 태어나고 자란 자국에 등록(치적)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1950년대를 넘어서면서 부터 세계 해운시장에서 국제선박등록(치적)제도에 관련해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일부 국가들이 다른 나라 국적의 (외국)선박을 자국에도
치적(등록)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 소위 <편의치적(便宜置籍)>
이라고 하는데, 선주가 선박을 자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등록하는 것을 말합니다.
[◆ 영국은 1894년에 발효된 자국의 상선조례(Merchant Shipping Act)에 따라 무려 일백년 가까운
1988년까지 영국인이 소유한 선박은 반드시 영국에 등록하고, 주로 영국인 선원을 고용해야 했으며,
영업의 상당부분을 영국에서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1989년 법이 바뀌면서 이제는 영국을 벗어나
다른 국가에도 선박등록이 가능해 졌습니다. ... 참고로 오늘날 세계 해운업에서 영국의 위상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과거 빅토리아(Victoria) 시대로 불리던 19세기에 영국은 세계최강국의 지위를 누리며
소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세계 곳곳에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의 항구를 활용했던 경험이 영국의 해운업을 급격히 발전시켰으며, 이때의 경험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면서 세계 해운산업에서 <영국법>의 중요성은 그대로 남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런던은 아직까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해운센터중 하나이며, 세계 상당수의 해운사들이 런던의
보험시장을 통해 (선박)보험 및 재보험을 가입하고 있습니다. 또한 각종 해운 분쟁이 발생할 경우에는
상당수의 분쟁 당사자들이 <영국법>을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중재 장소 또한 런던 법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다시말해 제도와 해운관련 법령은 여전히 <영국법>이 세계시장에서 상당한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주나 (해운)기업들은 자신들 선박을 왜 자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등록(편의치적)하려 할까?

선박, 특히 대형 선박은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특수 운송장비입니다. 또한 이들 선박은 대부분의
시간을 외부세계와 고립된 상태로 바다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신속한 대응을 할 수 있는 고도로 훈련된 전문 인력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전문교육을 받은 해기사,
선원 등이 필요하며, 육상에서는 비상사태에 대비해 (선박)보험 및 기타 행정사무를 지원할 인력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보통 선진국의 이러한 전문 인력 인건비는 개도국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때문에 선진국 선원들의 고용은 바로 고임금으로 이어지고, 여기에 선진국들은 선박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과 각종 규제[ex.자국선원 의무고용]도 많이 까다롭고, 무엇보다도 세금 부담이 상당히 무겁습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일부 나라들에서 세금 부담이 매우 적거나 심지어 거의 세금을 안 내도
될 정도로 선박에 관한 각종 (조세)규정과 규제를 모두 없애버린 나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외국선박들을 본인들 나라로 적극 유치하려는(치적하도록) 국가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들 나라도(편의치적국) 소액이지만 등록비용 및 등록세, 그리고 기타 부수적 수입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해운업, 특히 해상운송서비스는 특별한 차별서비스가 어려운 업종입니다.
쉽게 말해, 화물을 원하는 날짜에 원하는 곳으로 안전하게 운송해주는 것 이외에는
해운사가 화주에게 특별히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 해운회사 직원이 화주에게 발 마사지를 해줄 것도 아니고 ~ ) ... 따라서 해상 운송업은
범용적 성격의 업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배만 있으면 누구나 운송을 해줄 수가 있으므로)
이것은 달리 말하면 화주 입장에서는 거래처(해운회사)를 바꾸는데 비교적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업종의 성격이 이렇다보니 수많은 해운선사들은 치열한 경쟁 상황에(완전경쟁) 놓여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현실 때문에 대다수 해운선사들은 경쟁사보다 앞서기 위해 (운송)원가절감에
상당히 민감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가절감의 가장 무난한 방법은 바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단위당 운송원가를 줄이는 방법을 많이 활용합니다. ... 이렇게 차별서비스가 어렵다보니,
비용절감 차원에서 <편의치적>은 상당히 매력적인 경영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편의치적의 시작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국적의 크루즈선이 파나마로 선박의 국적을 옮김으로써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어서 라이베리아, 온두라스, 바하마, 사이프러스, 버진아일랜드, 마셜제도 등의
국가들이 편의치적국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 보시다시피 열거된 국가들 대부분은 조세피난처로
유명한 국가들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편의치적국들에 선박을 등록(치적)하게 되면 조세피난처라는
이름 그대로 세율이 아주 낮거나 거의 세금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이들 나라에 본사를
두게 된다면 세금 걱정을 거의 안 해도 되는데, 어차피 (대형)선박은 쉬지 않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기
때문에 상당수 해운선사들은 본사가 어디에 있든 크게 개의치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 여기에 많은
해운사들이 편의치적을 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인 (금융)구조적인 부분도 있는데, 이 부분은
뒤에서 용선이야기를 하면서 풀어보겠습니다.

자! ~ 이제 선박의 (편의)치적이 완료되면 그 배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돈을 버는 과정에 들어갑니다.
여러분이 만약 배의 주인(선주)이라면 그 배를 가지고 어떻게 돈을 버시겠습니까? ~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선주가 직접 나서서 개인이나 기업의 화물을 원하는 곳까지 운송해주고
운송비를 받는 방법이 있습니다.[@해상운임] ... 또 다른 방법은 운송(업)을 하겠다는 기업(개인)에게
배를 (통째로)빌려주고 돈을 받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용선(Charter)인데, 이 용선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배를 빌려 쓰는 방법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 부분도 뒤에서
다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배(선박)를 이용해 돈을 버는 <해운업>은
먼저 정기선(Liner Shipping)과 부정기선(Tramper Shipping)으로 구분됩니다. 정기선은 말 그대로
화물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정기적(규칙적)으로 운항하는 것을 말하는데,
지하철과 버스처럼 정해진 시간에 특정 노선(항로)을 따라 특정 항구를 반복적, 규칙적으로 운항하면서
미리 정한 <표준운임>을 받는 운송입니다. 이에 반해 부정기선은 콜택시처럼 화물이 있을 때만, 즉
화주가 원할 때만 운항됩니다.(@ 화주가 원하는 시기에 화물을 특정 항구로 운송)

정기선은 주로 여러 화주들로부터 개별적으로 선적요청을 받은 수많은 개개의 화물들을 모아서
운송하는데, 대부분은 규격화된 컨테이너 화물(포장화물)을 운송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운송 계약을
<개품운송계약> 이라고 합니다.

시골사시는 부모님이 고구마 한 상자를 서울 사는 자식에게 보낼 때는 보통은 택배를 이용하겠지만,
만약 농사지은 쌀 100가마니를 서울 거래처에 보내야 한다면, 이때는 그냥 트럭을 통째로 빌리는 게
더 나을 것입니다. ... 부정기선은 이처럼 배를 통째로 빌려 쓰는 <용선>의 형태가 많은 계약입니다.
앞서 살펴보았듯 철광석, 석탄, 곡물 등의 산적화물을 주로 운송하는데 사용되는 벌크선(Bulk Carrier)도
부정기선의 한 형태인데, 이러한 원자재 성격의 화물들은 한 번 운송할 때 마다 보통은 대규모로
운송해야하기 때문에 배를 통째로 빌려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 더불어 벌크선 같은 경우에는
화주(혹은 용선자)와 선주가 선적항에서 도착항까지 한 번(1회 항해 단위) 운송하기로 계약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러한 형태의 운송계약을 <항해용선계약> 이라고 합니다.
[◆ 원유나 액화천연가스 같은 액체화물(Liquid Cargo)은 탱커라는 전용선으로 운송되는데, 이러한
탱커시장은 전 세계 수요량의 거의 절반 수준을 국제 오일 메이저라는 소수의 화주(기업)들이 점유하고
있으며, 이 탱커시장도 부정기선 시장의 특징들을 공통적으로 따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품운송계약인 정기선의 경우에는 규칙적인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므로 지하철이나 버스 요금처럼
운임동맹(해운동맹)에서 미리정한 <표준 운임률>에 따라 운임이 결정되는 구조입니다. ... 반면
항해용선계약(부정기선)은 화주가 원할 때, (대규모)화물을 1회 항해 단위로 운송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화주와 선주의 개별적 협상에 의해 운임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하지만 실질은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선박브로커 회사와 화물 중개인들의 활동을 통해 운임정보의 대부분이
공유되기 때문에 사실상 운임은 경쟁에 노출되어 철저히 시장가격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참고로 세계 주요 선박브로커 회사들은 고객을 위해 주간, 월간, 연간 등 정기적으로
세계 해운시황 정보(해운 리포트)를 발행하는데, 그 중에서 정보의 공신력이 가장 큰 회사가 바로
영국의 클락슨(Clarksons) 이며, 대부분의 언론들이 클락슨의 정보를 인용합니다.]

항해용선계약(부정기선)은 화주와 선주간의 개별적인 계약이기 때문에 양식을 갖춘 별도의 계약서가
필요하지만, 개품운송에는 특별한 계약서는 필요하지 않고, 보통은 <선하증권(船荷證券)>이 계약서를
대신합니다.

자! ~ 그럼 여기서, 선하증권의 개념과 함께 상식을 넓히는 차원에서 아주 간략히
(일반적)수출입 과정에 대해 살펴보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2014년 12월에 종영된 화제의 드라마 <미생>을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프로 바둑기사가 꿈이었던 주인공 장그래(임시완)는 프로 입단에 실패한 후, 무역회사의 인턴 사원이
됩니다. ... 영업 3팀에 배정된 장그래는 어느 날 선박회사가 발행하는 비엘[BL(bill of landing)] 이라는
증권을 해당부서에 전달했는데 중간에 그 BL이 사라져 한바탕 소동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때 언급된
비엘(BL)이 바로 <선하증권> 이라는 증서인데, 선박회사(해운사)가 발행하는 증서입니다.

수출입 과정에는 수많은 역할들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대표적 주체들이
있는데 바로 무역회사와 포워더(운송중개업), 해운회사(해상운송회사)입니다.

먼저 포워더(Forwarder)는 선박이나 항공기 없이 운송 업무를 합니다.
다시 말해 무역회사가 수출(수입)을 할 때, 포워더는 배를 가지고 있는 선박회사나 항공기를
가지고 있는 항공회사를 무역회사와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 포워더: 집주인과 세입자를 연결해 주는 부동산 공인중개사 역할과 유사함]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무역회사 신입직원인 장그래는 국제 운동기구 전시회에서 우리 중소기업이 개발한 런닝머신에
관심이 많은 바이어와 상담을 합니다. 상담이 잘돼서 1천대 수출계약을 체결하고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이어서 장그래는 바이어가 원하는 (약속)날짜에 상품이 잘 배송될 수 있도록 물량 등의 생산일정을
확인하고, 약속한 날짜에 배송이 가능한지 포워더 업체에게 물어서 선박(항공기) 예약을 확인합니다.
더불어 장그래는 항구나 공항까지 상품(런닝머신)을 실어 나를 트럭도 알아봐야하며, 컨테이너 까지도
확보해야 합니다. ~ 그런데 장그래 회사는 작은 무역회사라서 특별히 거래하는 트럭회사도 없으며,
컨테이너도 준비가 안 된 상황이라면, 이 모든 준비들 또한 포워더 업체가 대신해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수출입 업무에서 포워더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왜 선박(항공) 회사는 자신들이 직접 장그래 회사(무역)를 상대로 영업을 하지 않고 포워더를
통해서 수출(수입) 화물을 확보하는 걸까? ~ 쉽게 말해 자신들의 영업사원을 장그래 회사에 보내서
“수출(수입)예정 화물 없습니까?” 라고 화물 운송영업을 하지 않느냐는 거죠 ... 우리는 앞에서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파나막스(Panamax)나 수에즈막스(Suezmax)급 선박이 얼마나 엄청난 규모의
선박인지 이제는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날 화물운송을 전문으로 하는 선박들은 한 번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양 또한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그 큰 적재공간을 모두 채우려면 영업사원 또한
상당수의 인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당연히 인건비 부담도 늘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 틈새를 비집고
포워더가 진입해 선박(항공)회사를 대신해서 운송영업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장그래 회사가 추진한 런닝머신 수출이 매끄럽게 잘 진행돼서 약속한 날짜에 무난히
상품(런닝머신)을 선적했다면 ... 선박회사(or 포워더)는 장그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네들이 운송 의뢰한 상품(런닝머신) 1천대를 배에 모두 잘 실었고, 또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선박회사(or 포워더)가 장그래에게 발급해 주는 증서가 바로 비엘(BL) 이라는
선하증권인 것입니다. BL 에는 수출자(수입자)의 이름과 주소, 연락처, 그리고 화물의 종류와
선적항, 도착지항 등 여러 중요사항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 <선박회사가 발행하는 BL = (Master BL) >, <포워더가 발행하는 BL = (House BL) > ]

그리고 장그래는 선박회사가 발행한 비엘(BL)을 항공편(국제특송)을 통해 바이어에게 보내고,
바이어는 장그래가 보낸 BL(원본)을 가지고 있다가 화물(런닝머신)이 도착하면 통관을 거쳐 화물을
인수하면 되는 것입니다. [@ 여기서 바이어는 BL 원본이 있어야만 상품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

보통 배로 운송되는 화물은 다른 운송수단(항공, 철도 등) 보다는 느리기 때문에,
바이어는 화물(런닝머신)보다 BL 원본을 먼저 받아봅니다. 그런데 간혹 화물이 BL 원본보다 먼저
도착지에 도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착지가 우리나라와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일 경우에 이런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데, 이때는 바이어가 BL 원본이 없는 상태기 때문에 화물을 찾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도 수입자(바이어)가 기다리지 않고 바로 화물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든 증서를 <써렌더 비엘(Surrender BL)> 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써렌더 BL 상황이 되면 장그래는
포워더에게 연락해 “BL 써렌더 해주세요!” 라고 합니다. 그러면 포워더 업체는 BL에 “SURRENDER”
도장을 찍어 장그래에게 발행하고, 장그래는 써렌더 비엘을 스캔해서 메일이나 팩스로 바이어에게
보내면 바이어는 화물을 바로 찾을 수 있게 됩니다.
[◆ 참고로 장그래 입장에서는 상품(런닝머신)만 수출하고 바이어에게 수출대금을 떼일 걱정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장그래의 이러한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만든 제도가 바로 은행이
발행하는 엘씨(LC)라고 하는 <신용장(Letter of Credit)>입니다. 일종의 구매보증서인데, 신용장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이렇습니다. ... “어이! ~ 장그래씨! 은행인 내가 보증할 테니까 우리 믿고 맘 편히
수출하세요! 바이어가 수출대금 떼먹으면 내가 대신 수출대금 지급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

이제 선하증권(BL)의 개념과 함께 수출입 과정에 대한 기본적 이해는 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앞서 이야기하다 마무리 못한 용선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해야 하는데, 그전에 한 가지 더
<발틱운임지수(Baltic Dry Index)> 라는 경제지표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앞서 한번 언급했지만,
부정기선은 화주가 배를 (통째로)빌려써야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만 비정기적으로 배를 빌려 쓰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부정기선 시장의 용선료는 철저히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가격(용선료)이
결정되는 구조라고 말했습니다.(@완전경쟁시장) ... 결론적으로 운임이 <표준운임>으로 이미 정해져
있는 정기선 시장의 운임은 쉽게 변동하지 않지만, 부정기선 시장의 운임(용선료)은 그때그때의
시장상황에 따라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향후(미래) 해운시황과
세계 경기 등을 미리 점쳐보려는 수많은 조선 및 해운업 관계자들과 언론, 투자자, 금융기관 등이
우선적으로 살펴보는 대표적 (해운)정보가 바로 <발틱운임지수(Baltic Dry Index: BDI> 라는 지표입니다.

발틱운임지수(BDI)는 런던에 있는 <발틱해운거래소>에서 발표합니다.
영문 이름이 말해주듯이 마른 화물, 즉 우리가 앞서 살펴본 철광석, 석탄, 곡물 같은 원자재를
주로 운송하는 벌크선(Bulk Carrier)과 관계가 깊은 지표입니다. 업계에서는 벌크선을 흔히
<바다를 오고가는 덤프트럭> 이라고 얘기하는데, 세계 26개 주요 항로의 벌크화물(건화물) 운임과
용선료 등을 모두 합해 계산한 <종합운임지수> 성격으로 만든 지수가 바로 <발틱운임지수>입니다.
또한 미래 어느 시점에서 배를 빌리려고 할 때의 가격이 아니라, 현물시장에서 오늘 당장 배를 1척
빌리는 가격으로 지수는 구성됩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배를 빌리는 가격(용선료)은 (선박)수요가 증가하면 오르는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부분은 선박의 공급은 아무리 선박 수요가 (단기적으로)증가한다고 해도 당장은 그 수요를 따라가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새로 발주한 (대형)선박은 한 번 주문하게 되면 배가 완성되기까지 보통은
2~3년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계경기가 살아나(호황) 물동량이 늘어나게 되면,
이때 단기적으로 사용가능한 선박 공급량은 고정에 가깝기 때문에 용선료는 상승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경기가 살아나면 사람들의 주택구입(부동산)과 대표적 내구재인 자동차 같은 소비가
증가하고 이러한 내구재 소비증가는 연속적으로 그 소비재를 생산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강철 등의
수요 증가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강철 생산에는 반드시 철광석과 석탄이 필요한데, 이는 곧
원자재 수요증가로 이어지고, 원자재 수요증가는 벌크선 수요증가라는 사이클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에 바로 <발틱운임지수>가 그 힘을 톡톡히 발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금융자본(ex. 원자재 펀드, 헤지 펀드)은 이 기회를 노려 상장해운사 중에서도 용선 편성이
벌크선 위주인 회사의 주식에 투자해 차익을 얻기도 합니다. ... 물론 쉽지만은 않습니다. 보편적으로
용선료 시장에서는 장기계약이 많기 때문에, 호황인 상황에서 현재 용선료 수준이 아무리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용선계약이 과거 불황기의 용선료가 낮은 수준에서 이루어 졌다면 이런 회사는 호황의 효과를
누리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벌크선에 대한 해운사들의 잔여 용선기간과 신조(새로 건조된 배)
공급량 같은 여러 다양한 상황변화 또한 함께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발틱운임지수>는 경기의 선행지표로서 이렇게 우리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이 지수가 중요한 이유는 벌크선이 실어 나르는 화물이 세계 물동량의 60%를 넘게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용선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 마무리를 한다면 ... 용선, 즉 배를 빌려 쓰는 방법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앞서 살펴보았던 <항해용선>과 함께 여기에 <정기용선>, <나용선>
등이 포함되는데 ... 항해용선은 설명한 대로 1회 항해 단위(일회용선)로 배를 빌려 쓰는 것이며,
<정기용선>은 일회성으로 배를 빌리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배를 빌릴 때는 일정기간(단기,중기.장기)
동안 배를 용선하는(빌려 쓰는) 형태입니다. [@ 정기적(반복적) 의미가 아닌 일정기간을 의미.]

다음은 가장 중요한 <나용선>인데,
나용선을 간단히 정의하면 금융기관으로부터 장기로 대출받아 배(신조선)를 구입하는 것입니다.

보통의 용선(항해용선, 정기용선)은 선주가 배를 빌려 쓰고자 하는 용선자에게 선박의
<이용권>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선주는 배를 빌려주기 전에 항해 인력(선장, 선원 등)과
선박 용품 같은 일체의 부속기구를 완료해 취항준비를 끝낸 상태에서 배를 빌려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용선 계약>은 이러한 모든 것을 용선자가 부담합니다. 즉 선원 등의 인적요소와 함께
보혐료, 수리비, 선박용품 등의 물적 요소를 모두 배를 빌려 쓰고자 하는 용선자가 부담하는 형태의
용선계약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나용선은 선주가 특별한 준비 없이 그냥 배 자체만 빌려주는 용선계약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일종의 선박 임대차 계약임 – 선주는 선박 통제권을 포기.]

이러한 나용선 계약은 일반적으로 금융과 연계된 신조선(새로운 배 건조) 구입과 관계가 깊습니다.
특히 나용선 중에서도 <국적취득조건부 나용선>은 신조선 구입에 있어서 자주 거론되는 나용선 계약의
한 형태인데, 처음에는 중고선을 구입할 때 자주 이용되었으나, 1984년 해운산업 합리화 조치 일환으로
점차 신조선 확보수단으로 발전한 상황입니다.

앞서 선박의 종류를 살펴보면서도 얘기했지만, 초대형 유조선인 VLCC 와 초대형 벌크선인
케이프사이즈(Capesize) 선박의 시세는 1척당 무려 8천만 달러($)에서, 비쌀 땐 1억 달러($)를
가뿐히 넘기는 고가 선박입니다. 따라서 해운선사들이 이러한 고가 선박을 비롯한 여러 다양한
선박들을 확보하고자 할 때는 자가 구입의 부담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배를 빌려서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결론적으로 (운송)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글로벌)해운사들은 자사의
재무적 상황과 세계경기(해운시황)에 따라 선박의 자가 보유와 용선을 적절히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 한진해운은 파산 이전에 대략 140여척(컨테이너선 100여척, 벌크선 40여척)의 선박을 운영했었는데
이중에 60여척은 사선이며, 80여 척의 선박이 장기간 빌려 쓰기로 한 <용선> 이었습니다. ]

결국 해운사들이 선박을 자가 보유하고자 할 때는, 중고선을 구입하거나 배를 새로 발주(신조)하는
방법 밖에 없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형선박의 신조는 주문 후 배가 완성되기까지 보통은 2~3년의
절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신조선(새로운 배)이 시장에 공급될 때까지는 어쩔 수 없는
시차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것은 해운호황기 선박 발주량이 증가하게 되면 2~3년 뒤 선박이 본격적으로
공급되는 시점에서는 선박의 공급과잉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때가 만약 해운경기의
불황이 시작되는 시기라면 선박을 발주했던 해운사들에게는 상당히 치명적인 위기를 불어오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운사들은 신조선의 주문도 (미래)시장 상황을 세심하게 분석한 후 주문을 합니다.

하지만 현재 시장상황이 매우 호황이며, 그래서 경쟁사에 뒤지지 않기 위해 당장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운송원가를 절감하려는 해운사가 있다면, 이들은 2~3년의 시차가 발생하는 신조선 보다는
(현실적으로)중고선 시장에서 배를 구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독특하게도 선박시장에서는
중고선이 신조선 보다 가격이 더 높게 형성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선박시장은
신조선 시장뿐만 아니라 중고선 시장거래도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중고선의 담보가치 또한
양호한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수한)선박시장 상황에서 (어느)해운선사가 중고선과 신조선 구입을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신조선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면, 이제는 엄청난 선박구입대금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의
문제만 남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 바로 금융을 통한
<국적취득조건부 나용선>인 것입니다.

국적취득조건부 나용선은 <구매조건부 나용선> 이라고도 하는데 ~ 단순하게 살펴보면
그냥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아 배를 구입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다만 대출금을 모두
갚을 때까지 선박의 (법률적)소유권은 계속 금융기관에게 있으며, 선박대금을 용선료 형태로 매년(매달)
갚아나가는데, 대출금(선박대금)을 모두 상환하게 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선박 소유권이 해운사로
이전됩니다. 그래서 해운법에서는 이를 <소유권을 이전 받기로 약정하고 임차한 선박 >이라고
표현합니다. ... 결론적으로 해운사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배를 빌려쓰는 용선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실질은 (장기)대출받아 배를 구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좀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 살펴보면
특별한 점이 몇 가지 더 있는데, 그 과정을 사례를 통해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국적취득조건부 나용선 계약의 과정 - (일본 금융기관과 한국해운선사의 대화)]

(@한국해운선사) - “1만 TEU급 컨테이너선 신조하려 하는데 대출 부탁드립니다.”

(@일본금융기관) - “대형 선박은 워낙 액수가 커서 ~ 그럼 우리가 라이베리아(조세피난처)에
회사(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를 하나 만들 테니까, 그 회사와 먼저 용선 계약을 하시죠?“

(@한국해운선사) - “라이베리아의 페이퍼 컴퍼니요?”

(@일본금융회사) - “일종의 명목선주죠! ~ 그 명목회사(명목선주)가 한국의 조선사에게
1만 TEU급 컨테이너선을 발주하고, 이후에 배가 완성되면 당신들에게 바로 인도될 겁니다.
대신 선박의 (법률적)소유권은 우리에게 있을 거에여 ~ ”

(@한국해운선사) - “그럼 선박 대금은요?”

(@일본금융기관) - “라이베리아에 있는 명목회사와 용선 계약을 맺는 것이기 때문에
선박대금(할부금)은 용선기간동안 용선료 형태로 명목회사에 지불하면 됩니다. ~ 더불어
완성된 배는 라이베리아에 편의치적 될 텐데, 용선료(할부금)가 모두 완납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당신들에게 소유권이 이전될 겁니다.“


보시다시피 <국적취득조건부 나용선 계약>은
(1)일본금융기관(실제선주), (2)명목선주(라이베리아 페이퍼 컴퍼니), (3)한국선사 .... ....... 사이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데, 이는 앞서 살펴본 항해용선계약이나 정기용선과 비교해 리스크가 가장 적은
용선계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운사 입장에서는 해운시황이 아무리 출렁거린다 해도 대출원금과
이자비용을 합한 금액보다 좀 더 높은 금액으로 화주와 <장기운송계약>을 하거나 다른 운송회사에게
선박을 <재용선> 할 수만 있다면 상환기간 만기가 되었을 때 아무런 위험부담 없이 선박의 소유권을
차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A해운사가 일본의 금융기관과 국적취득조건부 나용선 계약(10년)을 하고, 이와 동시에
포스코(화주)의 대표적 수출품목 중 하나인 열연제품과 전기강판의 수출운송계약을 장기(10년)로
했다면, 그래서 포스코로부터 예상되는 10년간의 운송료 수입이 A해운사가 일본금융기관에게
매달(매년) 상환해야할 용선료(대출 원리금) 보다 많다면 A해운사는 아무런 위험부담 없이 10년 뒤
고가의 선박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A해운사가 시황 예측을 탁월하게 잘해서 만약 3년후 배가 완성되는 시점에 선박가격의 상승이
예상된다고 했을때 A해운 회사는 일본금융기관과 특약조항을 넣어 (새로운)계약을 추가할수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 1만 TEU급 컨테이너선을 1천억원에 계약(발주)하고 3년후 배가 완성되는 시점에서 업황이 호황이라
1만 TEU급 컨테이너선이 1,500억원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면, 이때 A해운사는 배가 완성되는 그 즉시
바로 배를 매각해 수익(매각익) 500억원을 일본금융기관과 공동으로 나누는 계약을 할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더불어 제가 앞서 해운사들이 편의치적을 할 수 밖에 없는 금융 구조적 원인이 있다고 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국적취득조건부 나용선 계약>의 독특한 거래 메커니즘 때문인 것입니다.

이제 해운사들이 보편적인 선박확보 방법과 용선에 대한 개념을 알게 되었는데 ... 여기에 더해
해운사들의 <해운동맹> 개념까지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넷이 보편화되었고, 이에 따라 우리의 상거래 문화도 상당수는 온라인으로 이동한 상황이며,
그 추세는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택배 또한 우리 일상 생활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만약 여기에 택배회사 X, Y, Z 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택배회사 X와 Y는 전국 주요 광역 대도시 위주로 택배업을 하는 제법 규모가 큰 회사들이며,
Z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남해 일대의 크고 작은 섬들로만 택배업을 특화시킨 회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물류시장의 국제화에 따라 조만간 세계적 규모의 거대 회사들이 한국의 택배 시장에 진출한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 그런데 이때 이들 X,Y,Z 회사가 모두 하나에 소속된 (물류)동맹을 맺는다면, 이후부터
전국의 모든 소비자들은 X,Y,Z 그 어느 회사와 계약을 하더라도 화물이 가지 못할곳은 거의 없을 것이며
가격 경쟁력까지 생길 것입니다. ... 마찬가지로 해운사가 어느 해운 동맹에 (가입)들어가느냐에 따라서
그 회사의 물류 능력의 간접적인 평가가 이루어진다고 할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세계에서 가장 선박이 많이 다닌다는 바닷길인

[1] 아시아-미주(아메리카 대륙)항로
[2] 아시아-유럽항로
[3] 미주-유럽항로

뿐만 아니라, 남극의 세종기지, 알래스카 같은 지구상의 극한의 장소까지 물류가 가능하다면
화주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러한 해운사(혹은 그 회사가 가입한 해운동맹)를 선택하게 될것입니다.

현재 세계 1위 해운동맹은 머스크(덴마크)와 MSC(스위스)의 "2M"으로 점유율은 35% 수준이며
그 아래로 "G6"와 "오션" 등이 있는데 ... 한진해운 파산을 전후로 동맹시장이 재편되는 과정이므로
이 부분은 계속적인 확인이 필요합니다.




[@ 앞서 일본 아베노믹스와 관련된 게시물을 보았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단순한)현상, 즉 니케이상승 및 고용여건 개선 등 일부 긍정적 현상만으로
일본 경제의 미래를 장미빛으로만 보는 분들이 계셔서 그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했습니다.
단순한 반론이 아니라 현상 이면에 감춰진 일본 경제의 실질적인 <본질(특히 금융부문)>을 얘기하고
싶었는데, 그 얘기를 하자면 자본주의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본의 GDP대비 230%대라는 <국가부채> 얘기와
맨큐 경제를 비롯한 그 어느 경제학(자)에서도 말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국채시장 관련 이야기,
그리고 "엔화"와 "달러"에 대한 외환스왑, 여기에 더해 금리 부분에서의 마이너스 금리까지 언급해야 하므로
분량은 차치하고서라도 우선 내용 자체가 상당히 전문적인 금융메커니즘을 언급하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워낙 전문적이고 어려운 내용이다 보니 전공자 분들이 아니면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거라 생각되어
이 이야기는 좀 더 시간을 투자해 최대한 알기 쉽게 풀어서, 또 정리해서 한번 올려볼까 합니다. ~ ]

CPR (feat. 우리 주변의 영웅)



존경.

이승엽





뫼비우스의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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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과 경제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