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칸트의 정언명령]
(@ 오래전 박근혜와 최순실 관계에 대해 상당히 긴 글을 올렸었는데, 그때 글의 일부내용입니다.)
모두가 그 어떤 배려나 양보 없이 오로지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한다면
세계는 그야말로 하루가 멀다고 온통 대립과 분쟁에 휩싸여 혼란스런 세상의 연속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분쟁의 해결을 위해서는 흔히 “이성적으로 판단하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감정에 휘둘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해 편향된 사고나 성급한 판단을 내리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는 이성을 힘을
빌려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인간들의 이기적이고 비양심적인 본성이 수시로 나타난다면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즉
혼란을 막을 수 있는일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공동체의 이성으로 만든 <법과 제도>라는
합의된 강제성을 활용한다면 문제가 비교적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성적인 결과인 거죠.
하지만 인간 사회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는 걸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너무나 많이 배워 왔고,
또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혼란스러운 사회 상태에 대해서 법과 제도로도 어찌해볼 수 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교통사고를 당해 피를 흘리며 도로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친다거나,
하루종일 굶었다며 거리에서 배고픔을 호소하며 돈이나 빵을 구걸하는 걸인을 보고도 그냥 모른 채 하며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들은(무관심한 사람들) 사회가 만든 법과 제도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 그래서 이러한 이기심과 무관심이 공동체 내에 만연하게 된다면 이성으로 만든, 아무리 훌륭한
법이 존재한다고 해도 사회는 그야말로 극단적인 삭막함 속에 놓이게 되어 공동체라는 말이 무색해 질 정도의
말 그대로 껍데기만 공동체인 사회가 될 가능성이 매우 커질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아무리 공동체의 선과 평화를 위한다 해도 인간의 <도덕적 양심>까지
우리 공동체가 강제할 수단은 없다는 것입니다. ... 한마디로 인간의 "도덕"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이성적 사고만으로는 어찌해볼 방법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좀 더 근원적인 해결 방법은
없는 것인가? ~ 하는 물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300년 전에 태어난 독일의 대철학자 칸트(Immanuel Kant)의
견해를 들어볼까 합니다.
등산객이 비탈진 등산로에서 아래로 굴러 떨어져서 다쳤다 해도 우리는 산(山) 에게 책임을 물을 수가 없습니다.
이는 단지 중력이라는 과학적 <인과법칙>에 따라 그러한 사고가 발생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윤리적, 도덕적 양심은 어떨까?
과학(법칙)같은 지식적 측면의 이성은 우리 인간이 얼마든지 사유가 가능한 영역입니다.(이론적 접근 가능)
한마디로 과학은 충분히 이성으로 사유가 가능한 대상인 것입니다. ... 하지만 신, 영혼, 자유, 도덕 같은 영역은
유의미 하지만 이성으로 사유(검증)하기에는 불완전, 혹은 불가능 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각자의 양심에 따른
도덕적 행동을 왜 해야만 하는지는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며, 대신 신과 종교가 과학적 질문을 허용하지 않듯이,
인간의 도덕적 행동에도 그 어떤 질문이나 이유를 묻지 않아야 한다고 칸트는 주장했습니다. ... 한마디로
인간의 도덕적 행동은 그 어떤 이유나 이해 없이 무조건 양심이 시키는 명령에 따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칸트의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칸트는, 과학은 이론적인 이성으로는 접근이 가능했지만 ... 신과 영혼, 도덕 등은
이론적으로는 접근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형이상학적 개념들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이성의 지식적 측면이 아닌,
다른 측면의 이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며, 인간의 도덕적 행동은 직접적인 <"실천(행동)">으로, 즉
아무 조건을 달지 말고 그냥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칸트는 이렇게 우리 내면에
우리를 도덕적으로 행동(실천)하게 만드는 "의무적인 의식"이 존재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실천이성">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살펴보면, 칸트가 규정한 "도덕"은 너무나 막연한 것 같습니다. ... 또한
<"의무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부분도 조금은 억지스럽고 이해하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좀 더 확실히 이해하려면 너무나 유명한 칸트의 발언을 살펴봐야 합니다.
◆ "너의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 타당하도록 행동하라." - 칸트(Immanuel Kant)
인간의 도덕은 지식적인(이론적인) 이성으로는 사유가 불가능 합니다. 그런데 칸트는 이러한
형이상학적(신, 영혼, 도덕 등) 영역을 과감히 이성의 영역 안으로 끌고 들어옵니다. ... 그리고
인간의 도덕(도덕적 행동)에도 과연 과학법칙(중력) 같은 "보편적인 원리"가 있을 수 있겠는가? ~ 를
끊임없이 사유하며 고뇌한 끝에 내 놓은 결론이 바로 위의 원칙입니다.
등산객이 넘어져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거나 밤나무에서 밤송이가 떨어지거나 ... 그리고
타자가 친 홈런 볼이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가다가 결국은 외야 관중석으로 떨어지는 것은
모두가 '중력법칙' 이라는 보편적인 과학 원리에 따른 결과인 것입니다. ... 그렇다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도덕의 원리가 있을 수 있을까? ... 여기에 칸트는
<"보편적 도덕법칙(원리)">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칸트의 주장처럼 모든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도덕법칙(원리)을
찾아보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 예를 들어, 거리에서 구걸하는 걸인에게 천 원짜리 한 장을 건넨 행위를
어떤 이는 매우 도덕적인 행동이라 생각하고 있는 반면, 이와는 반대로 그러한 행위(적선)는 오히려 걸인의 자활의지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별로 좋은 행동이 아니라는 의견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실제 인간사회의 현실에서는
"도덕적 행동"에 대한 기준이 개개인 마다 주관적이며 편차가 있기 때문에 칸트의 주장은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칸트가 주장한 것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 그래서 칸트를(칸트의 발언)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한 발짝 더 깊게 들어가서 ... 먼저 법(法)과 선(善)에 대한 그동안의 인식을 전환시켜야 합니다.
꾸준히 사회적 이슈로 많이 거론되고 있는 보복운전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구성원(국민)들이 보기에는 보복운전은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라고 얘기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보복운전은 "선(善)한 행동이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공동체는 보복운전을 하게 될 경우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공동체의 보편성이 담긴 법(法)을 만들어
적용하게 됩니다. ... 한마디로 우리는 보복운전을 하지 않는 것이 선(善) 이라는 보편적 시선을 갖기 때문에
이후에 법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선한 판단이 먼저 존재한 후에, 그 뒤를
법이 따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입법원리(법이 만들어지는 과정)는 선한 판단 뒤에 법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칸트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러한 입법의 원리를 전복시킵니다.
근대철학 이전까지만 해도 신(God)은 그 자체로서 진리였습니다.
때문에 신의 계율(말씀, 명령) 또한 묻고 따지지 말아야 할 엄격한 법(法) 이라고 할 수 있었으며,
그러한 신의 말씀(명령)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선이라 생각했습니다. ... 한마디로 법(신의 계율)이 먼저 존재한 후에,
그것을 따르는 것이(신의 말씀을 따르는 삶) 바로 선(善) 이라는 것입니다. ... 그리고 칸트는 여기서 힌트를 얻어,
인간의 <보편적 도덕법칙>또한 신의 계율처럼 그 자체로서 하나의 법(法)이며, 그것을 지키는 것이 선(善)이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선한 판단 같은 건 따지지 말자는 거죠. 그냥 (보편적)도덕법칙대로 행동하는 것! ~ 이 자체가
바로 선한 행동(도덕적 행동) 이라는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칸트가 주장한 <보편적 도덕법칙>이란
아무 조건도 따지지 말고 <“의무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 해야만 한다!) 규칙(원칙)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원칙(규칙)에 따라 사는 것이 바로 진정한 선이며, 도덕적 행동 이라고 했습니다.[◆ 의무에 따르는 삶!]
결국 앞의 사례에서 걸인에게 천원을 건넨 행위는 잘했다는 칭찬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칸트의 도덕법칙에 따르면 도덕적 행동은 아닌 것입니다. ...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도덕적 행동과 칸트가 생각하는 도덕적 행동과는 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아무튼 마음속 깊은 곳에서
타인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즉 동정심이 마구마구 샘솟아 자선을 베풀었다고 해도 칸트는 그것이 아무조건 없이
<“의무적(해야만 한다)”>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정한 도덕적 행동이 아니라고 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칸트의 도덕적 행동은 <“천원을 주고 싶다!”>가 아니라 <“천원을 줘야 한다!”>가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 "너의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 타당하도록 행동하라." 라는 칸트(Kant)의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 당신이 하려는 어떤 도덕적인 행동이(의지가) 모든 사람이 보기에
법으로 만들어져도 전혀 이상할 것 없을 정도로 보편성을 내포하고 있다면, 그렇게 행동하라!> ~ 라는 뜻입니다.
좀 더 쉽게 풀어보면, 당신이 지금 하는 행동에 대해서,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똑같이 본인을 따라 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행동은 보편성(일반원칙)을 가진 도덕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걸인을 볼 때 마다 나는 그에게 의지박약한 놈이라며 주먹질을 할 것이다!"
이러한 행동을 과연 다른 모든 사람에게 따라하도록 얘기할 수 있을까? ~ 당연히 이것은 칸트가 얘기한
도덕적 행동이 아닐 것입니다. ... 칸트에게 도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자 의무>였습니다.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었지만, 모든 인간이 개인의 이기심과 비양심적인 행동만을 추구하게 된다면
종국에는 모두의 자유가 박탈당하게 되는 상황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결국 참된 도덕은 이성에서 나오며,
도덕은 의무적인 법칙으로 규정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 정리하는 의미에서 윤리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조지아 주립대학 로버트 L. 애링턴 교수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 동정심이라는 동기는 "도덕적 내용이 부족하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동정심이라는
동기로부터 행위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옳은 것을 행하는데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단지 동정심이라는 경향성을 만족시키는데 관심을 쏟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이 행하는 바의
도덕성에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 사람은 분명히 “도덕적 가치”를 갖는 방식으로 행위 하는데
실패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칸트는 오직 의무라는 동기만이 행위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 (중략) ~ 칸트는 도덕적 가치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의무를 행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무에 따라
행위하는 경우라고(@ 이러한 경우에는 행위의 동기가 오직 의무감뿐이기 때문에) 주장한다.
- 서양 윤리학사. (414~415 페이지)/ 로버트 L. 애링턴/ 서광사 ]
칸트는 개인의 동정심의 성취욕구나 타인을 도와줌으로써 칭찬받고 싶다는 마음 같은 것을
“경향성”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도덕적 행동은 이러한 경향성이 도덕적 행동의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으며, 인간에게 의무적으로 도덕적 행동을 유발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실천하는 능력”>밖에는 없으며 인간의 이성은 이러한 실천 능력에 쉬지 말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앞서 이미 언급했듯이 이러한 이성을 바로 칸트의 <"실천 이성">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도덕(도덕적 행동)이 “의무”라면 그것은 곳 명령이 됩니다.(@ 신의 말씀이 곧 명령인 것처럼)
그래서 칸트의 보편적 도덕원리(법칙)를 <"정언명령(定言命令)">이라고 부르며, 정언 명령은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상관하지 말고 행위 자체가 선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따라야할
도덕적 명령을 말합니다. ... 이와는 반대로 조건을 달고 행동하는 것을 <"가언명령(假言命令)"> 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칭찬받고 싶다면 거지에게 천원을 주어라!" ... 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결국 목적이 칭찬받는 것이기 때문에 가짜 도덕인 것입니다. 따라서 가언명령이 됩니다.
그래서 ... <"너의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 타당하도록 행동하라."> ~ 라는 명령은
칸트의 대표적인 정언 명령이 되는 것이며, 인간(타인)을 위해 행하는 도덕에는 그 어떤 조건도 달지 말고,
그냥 의무감으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서 대하라 뜻입니다.
[@ 의무감에서 남을 돕는 행위가 동정심보다는 더 도덕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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