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모두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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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을 때면 항상 여자를 옆에 앉히는
버릇을 가졌던 나는 생일날 친구네 식구들을 초청하여
술을 마시다가 나 자신도 모르게 친구 아내의 사타구니에
손을 넣는 바람에 대판 싸우고 친구까지 잃었다.
"애새끼들만 아니면 네놈하고 안 살아!“
아내는 울고불고하다 지갑을 압수하고
신용카드란 카드는 모두 가위로 잘라버렸다.
"신용 지랄하네! 그놈의 물건도 그냥 잘라버려!"
어린 아들은 전자밥으로 강아지를 키우는
일제 다마고치를 가지고 놀다가 갑자기
아내가 키우던 애완견이 밥도 골라먹고
마음에 안 든다며 목을 졸라버렸다.
"이 새끼야! 어쩌면 부자지간 똑같아!"
아내는 파리채가 부러질 때까지 아들놈을 때리더니
징징거리며 죽은 애완견을 쓰레기 봉지에 싸서
아파트 분리수거함에 던져버렸다. ... 다음날 오전
무심하게 무심하게도 참으로 무심하게도 쓰레기를 옮겨가는 청소부
(@ 우리 집에서 생긴 일 - 공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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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시인이 쓴 <시론(詩論)>이라는 책에서 건져넨 시(詩)입니다.(175 페이지)
이 시를 읽은 후, 저의 첫 번째 반응은 "웃음"이었습니다. ... 어쩌면 (씁쓸한)미소일수도 ~
우리는 종종 "웃으며 살자"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든 ... 혹은 TV방송의 어느 힐링 프로그램이든,
시대는 이렇게 쉬지 않고 우리에게 <웃음>을 강요하며 삶의 희극화를 요구하는것 같습니다.
"가난하면 적(敵)을 선택할 수가 없다" ... 앙드레 말로가 그랬답니다.
사랑보다는 우정의 무게가 더 무겁다는 착란을 일으켰던 20대 청춘의 시절.
시대를 비판하고 국가의 미래를 고민했던 나름의 꼴값 하나 정도는 가져보았던
그 시절의 친구들 A, B, C, D ....
학교를 졸업하고 빈 몸으로 사회에 내동댕이쳐진 순간부터
삶의 빈곤과 사투를 버리면서 우리는 모두 서로를 지워가고 있었습니다.
빈곤은 우리에게 그렇게 적(敵)이 아닌 친구를 붙잡아둘 기회마저 가져가 버렸습니다.
20대라는 생물학적 전성기를 한참이나 지나고나서
어느 날 친구 A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내가 많이 아픈데 병원비가 부족하다. 도와 달라! ~ "부탁한다!"
설득 이론의 대가 로버트 치알디니(Robert B. Cialdini) 교수는
자신의 저서 <설득의 심리학>에서 "부탁합니다." 라는 말의 효용에 대해서
생각보다 많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 우리는 보편적으로 친한 관계에서는
<부탁합니다.> 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부탁합니다.>라는
말에는 의외로 상당한 힘이 농축되어 있다는 걸 강조합니다. ... 쉽게말해
가장 흔한 말 같으면서도 막상 친한 사이의 대화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부탁합니다>의 효과는 우리가 생각하는것 보다는 그 위력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A가 치알디니 교수의 책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부탁한다!"는 친구의 말에 제가 상당히 강한 기운을 느꼈던건 사실입니다.
다시 전화를 주기로 하고 ... 다른 친구 B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 새끼 지금 강원랜드에 미쳐있다! ~ 속지마라!
편의점인지, 커피가겐지 ... 아무튼 장사하다가 접었다는데,
마누라는 보험회사 텔레마케터로 보내놓고 강원랜드에 미쳐있다고 하더라!"
C, D ... 나머지 다른 친구들에게는 전화를 하지 않았지만(할 필요가 없었지만)
결국 비슷한 답이 돌아올 거라 생각되었습니다. 왜냐하면 B의 아내가 바로
A의 아내와 같은 회사를 다니기 때문입니다.
<부탁한다.>는 마법의 주문에 걸릴 뻔 했지만, 아마도 A는 더 많은 마법의 주문의
가지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 이럴 때 A가 자신의 생일이라며 초대라도 한다면
나도 공광규 시인처럼 A의 아내의 사타구니라도 더듬겠는데 ...
<"웃음이란 실제적이거나 상상적이거나 같이 웃는 다른 사람들과의 일치.
말하자면 공범의식 같은 것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 앙리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
친구 A의 실패에서는 나는 안타까움 보다는 알 수 없는 웃음이 새어나왔습니다.
나머지 친구 B, C, D ... 또한 A의 아내의 사타구니를 더듬는 상상을 했을 거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사랑보다 더 많은 가치를 부여했지만
이제는 그 무게를 조금씩 덜어내 언젠가는 하늘로 날려버려야 할 만큼의
가벼움으로 전락한 <우정>의 비극을 우리는 삶의 빈곤으로 희극화 하며 살고있습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웃고 계신 분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당신도 저의 공범입니다.
[@ 살아보니 "친구"라는 존재는
철도 선로처럼 평행선의 의미를 담고있는것 같습니다.
만날수는 없어도 언제나 함께 하는 존재 .... ...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모두들 건강관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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