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0일 일요일

◆ 공 처럼 작은 할머니 ... 카프카의 심판은 정당한가? [by 물파스]

[◆ 공 처럼 작은 할머니 ... 카프카의 심판은 정당한가?]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을 지날 때였습니다.
시골 마을이 다 그렇듯 ~ 가장 흔해 보이는 파란대문 집 앞마당에서
서너 분의 할머니들이 모여앉아 밭에서 금방 수확한 곡식들을 펼쳐 놓고
자식들 수다와 함께 당신들의 죽음을 축제처럼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할머니들 모두가 등이 굽어있어
멀리서 보면 낡은 공 여러 개가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식들을 위해 시나브로 공처럼 작아진 할머니들은
이제는 당신들의 죽음을 향해 서둘러 굴러가는 일만 남겨놓은 것입니다.

때로는 발길에 걷어차이고,
비오는 날 진흙탕 속을 헤매면서도
오직 굴러갈 수만 있다면 족하다고 말하기를 수만 번 ...
그렇게 힘들어도 멈출 수가 없었던 낡은, 아니 늙은 공이 되어버린 삶.
그래서 더 높은 곳은 엄두조차 낼 수 없었습니다.
점점 더 안으로만 굽어서 더 작게 늙어버린 공.
삶의 중력에 순응하는 것이 최선이었던 할머니들은 '공' 이었습니다.

언젠가 죽음의 끝에서
낡고 다 헤진 공의 가죽을 주름처럼 남겨놓고
중력과 이별하며 할머니들은 바람이 될 것입니다. ...

======


요제프 K는 어느 날 갑자기 처음보는 낯선 두 남자에게 체포됩니다.

"당신을 체포합니다."

성공한 지식인(은행원)으로서 요제프 K는 단지 자신의 삶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죄명이 뭔지도 모르고, 그렇게 일 년여의 시간을 요제프 k는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 하지만 요제프 k가 기소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그의 친척을 비롯한, 주변의 k를 알던 모든 사람들이 지금의 이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입니다.
변호사, 삼촌, 여자친구 등은 이제 소송에서 요제프K가 어떻게 하면 이길수 있을지만 논합니다.
사태는 요제프 k가 <'왜? 기소 되었는가?'>가 더이상 중요해지지 않은 것입니다.

혹시 자신이 모르는 또는 무심코 그냥 지나쳤을 과거의 어떤 숨겨진 죄가 있었는가를
생각하면서 반성과 참회의 시간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 요제프 k는 그렇게
자신의 삶에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시간>을 추가하며 죄가 없던 과거의 본래의 삶에
충실합니다. ... 변한건 없습니다. 추가된 시간때문에 삶의 속도가 조금 빨라졌을 뿐입니다.
질서에 <순응>하듯 소송 준비에도 한치의 소흘함이 없도록 노력했고,
법원에서 정식 출두요구서가 발부되지도 않았음에도 자발적으로 법원에 출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결국 요제프 K는 형장으로 끌려갑니다.
두명의 낯선 남자중 한 남자가 k의 목을 누르자 또 다른 한 명은 k의 심장을 칼로 후벼팝니다.

"개 같은 ... "

요제프 k는 <개 같은>이라는 욕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합니다.
k는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던 것일까? ... 국가 폭력의 억울한 희생자였을까?
아니면 과거에 k 본인도 몰랐던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준 대가였을까?
두남자에게 형장으로 끌려가면까지 그들의 보폭에 걸음걸이를 맞췄던 요제프 K는
빈틈없이 제도적이었고, 오직 본인 삶에 충실했다는것 이외에는 그 어떤 죄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 그렇다면 카프카는 <심판>이라는 이 소설에서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독자가 모르는 당연히 죽어야 할 죄가 아니였다면
결국 요제프 k의 죄는 하나로 압축됩니다. ... <저항없는 삶의 "순응">
삶의 순종과 순응은 <죄 없음>을 대표하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을 담보할 수있는 공표방식입니다.
그러나 니체는 이러한 <순종, 순응>이야말로 가장 비참한 <생의 모독>이라고 말합니다.
죄악인 거죠 ...

철저히 제도적이었고, 그래서 이성과 법의 힘을 믿었던 요제프 k 에게
끝내 그 어떤 기적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몇몇 구경꾼의 동정어린 시선 몇 개를 제외한다면 ... 결국
요제프 k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은 자신의 심장을 세 번이나 후벼파던 집행인에게
"개 같은 ..." 이라는 거친 욕설 뿐이 전부었습니다.

그런데 k의 "개 같은 ..." 이라는 단말마의 비명같은 욕설은
진정 자신의 심장을 후벼파던 집행인에 대한 저주의 욕설이었을까? ~ 소송을 준비하는 동안
제대로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던 판사, 이기적인 법정, 모순으로 덧칠된 제도 ... 결론적으로
"개 같은..." 이라는 욕설은 요제프 k 자신에 대한 일갈과 같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저항과 투쟁과 의심없이 그저 <순응과 순종>에 충실했던 제도적 삶을 살았던
모순덩어리 요제프 k. ... 그래서 소설은 <"수치만이 죽음 뒤에도 살아남을 것이다."> 라며
끝을 맺습니다.

======

삶에 순응했던 공 처럼 작아진 할머니와 요제프 k의 삶은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다만 k가 자신의 심장을 칼로 후벼파이는 처형을 당할때
할머니는 공처럼 작아져 바람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청년은 할머니보다
하루를 더 오래사는 삶을 원하는 방식으로 시대의 집행을 기다립니다.

그래서 저는 카프카의 심판을 2017년 한국의 현실로 가져와 그 심판의 정당성을 묻고자 합니다.




[@ 오래전 직장생활을 할 때 서해로 휴가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어촌 마을에 어느 파란 대문집 앞마당에 여러 할머니들이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계셨는데 ... 그 때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물어보았더니
누가 먼저 죽는지 내기 하고 있었다며 ... 어떤 할머니는 본인이 먼저 죽으면
말려놓은 고추가루와 뼈가루를 바다에 함께 뿌리라며 다른 할머니들에게
부탁하려던 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 평생 고기들 잡아 자식들 먹여살렸는데,
이제 당신 한 몸 고추가루와 함께 바다에 뿌려 고기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며
시원한 '할머니 탕' 한 그릇 대접해야 사람 도리가 아니겠냐고 저에게 반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상에서 무언가 새로움을 얻어갈때면 으레 그 순간 느꼈던 감정을 글로 남겨두는
버릇(?)이 있어서 그 때 남겨놓은 때 묻은 글을 먼지를 털고 가지런히 정렬해서
주제넘지만 이렇게 짧은 감상 하나 올려봅니다. ]

.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부동산과 경제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