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1일 목요일

◆ 타자를 규정하는 힘 - 잔혹성의 배후를 말하다. [by 물파스]

.
[◆ 타자를 규정하는 힘 - 잔혹성의 배후를 말하다. ]



(@ 이 글은 소년법 강화(폐지)에 관한 찬반의 글이 아닙니다. ... 인간의 "잔혹성"에 관한
저의 주관적 견해가 많이 포함된 글입니다. ~ 저의 학창시절에도 일탈을 감행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최근의 청소년만큼 잔혹한 폭력을 사용하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됩니다.
그래서 단순히 처벌 강화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좀 더 근원적인 물음을 스스로에게 해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왜 이렇게 잔혹해졌을까?" ~ 그러다보니 청소년들의 잔혹성에서 "인간의 잔혹성"으로
자연스럽게 범위가 확장되었습니다. ... 더불어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다보니 죄송스럽게도
또 다시 글이 너무나 길어졌습니다. ... 양해를 부탁드리며 편하게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 도움 받은 자료들 ]
@ 광기의 역사/ 미셸 푸코
@ 아동의 탄생/ 필리프 아리에스(Philippe Arie's)
@ 잔혹: 피와 광기의 세계사/ 콜린 윌슨
@ 진화 심리학/ 데이비드 버스(David M. Buss)
@ 변신/ 카프카
@ 우상의 눈물/ 전상국



프랑스의 역사학자(아날학파) 필리프 아리에스(Philippe Arie's)는 자신의 저서 <아동의 탄생>에서
성인과 미성년의 경계(구분)에 대한 역사성을 얘기합니다. 현대인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인식되고
있는 “아동”이라는 개념이 사실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18세기를 전후로 유럽에서 비교적 새롭게
탄생되고 정의된 개념이라고 합니다.

중세 유럽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어른과 어린이>의 구별이 없었으며, 대신 <어른과 작은 어른>
이라는 크기상의 구별(차이)만이 존재했었다고 합니다. ... 그래서 당시 <작은 어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서둘러 사용되어야 할 <잠재적 노동력> 근처에서만 맴돌면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인식의 보편성은 그 당시 프랑스 화풍(세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특히 갓 태어난 아기들이 성인 남자의 근육을 가진 모습으로 자주 그려지기도 했었다는 점입니다.
요즘말로 아기들이 아주 훌륭한 식스팩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죠. ~

그러다가 <어린이>라는 개념은 유럽사회에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태동하던 17세기 중반 무렵부터
근대적 가족의 성립과 맞물리면서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소위 <작은 어른>은 <어른(성인)>에
비해 약하지만 매우 귀엽고 애교 많은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작은 어른> 에게는
사회가 보호해야할 “약자”의 개념이 부여되었고, 이러한 약자의 의미부여는 자연스럽게 <의존성>과
연결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작은 어른>들은 언제나 누군가(가족.학교.국가 등)에게 의지하거나 의존해야
하는 존재들, 즉 <어린이다움>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어린이들은 시민사회에서 <어린이다움>을 배우기 위해 학교를 통해 교육(규율과 질서)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로 규정되었고, 그렇게 학교 교육을 통해서만 어른이라는 <질서세계>에 편입될 수
있었습니다. 이 말은 결국 <어린이 = 반질서적> 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 여기서 표면적으로 보면
산만하고 미성숙한 <어린이>들이 질서체계에 서투른 집단이라는 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반질서적인 (범죄)사례는 <어른>세계에서 더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객관적(통계적) 현실입니다. ... 또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린이 = 반질서적> 이라는 규정은 모두가
어른세계에서 부여한 개념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는 어른의 질서 체계에 편입하려는
(어른의)하위개념인 <작은 어른>이 아닌 <다른 어른>, 즉 사회적 벤치를 함께 공유하거나 나눠서
점유하는 일종의 <타자>로 규정해야 한다는 견해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 한마디로 어린이는
어른에 종속되어 끊임없이 <질서(체계)>를 요구받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다른 벤치에 앉아 마주보는
<다른 어른>, 즉 <(수평적)타자>의 자리에 배치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어른은 질서체계 안에서 끊임없이 반질서적(전쟁.테러.쿠데타.학살 등) 이었고
반질서적 어린이는 (군대식)교육을 통해 쉬지 않고 질서체계로의 편입을 목적합니다. ... 어쩌면 이것이
당연할 수도 있는 이유는 인간의 일평생이 이성과 (원시)본능의 쉬지 않는 대립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 그래서 저는 필리프 아리에스(Philippe Arie's)의 어린이 구분을 이렇게 바꿔보려 합니다.

<@ 어린이와 아주 큰 어린이 > ... 왜냐하면 질서체계 안에서 발생하는 지속적인
반질서적 행위의 대상에 함부로 <(참다운)어른>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오직 <어린이와 좀 더 큰 어린이>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인간에게 <미성숙>은 거부할 수 없는 필연이며, 이 한계를 극복해 나아가는 과정이 바로 진정한
<질서>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한 번쯤 이런 의문을 가져볼 수도 있을 겁니다.
힘의 우위에 있는 지배적 집단(어른)들이 어떤 대상이나 타자를 자신들의 잣대로 편리하게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은가? ... 앞서 규정된 <어른과 작은 어른(어린이, 큰 어린이)> 같은
사회적, 혹은 사적 정의(definition)는 과연 얼마나 타당한가? ... 다시 말해 어떤 대상(타자)에 대한
<정의(규정)>가 그것이 심도 있는 관찰이나 논의를 통해 결정되었든, 아니면 급격성에 의한
무분별한 결정이었든 상관없이 오로지 <정의(규정).definition> 그 자체로서의 위험성과 그로 인해
초래될 부작용은 없는 것인가? ... 바로 이 지점에서 저는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부분은 세계적인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시선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계속해서 다음 이야기로 이어가 보겠습니다.

유럽에서 정신병자(광인)를 <감금>하기 시작한 시기는 17, 18세기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근대적인 도시와 국가의 개념도 함께 시작되었는데 ... 그 이전의 중세 시기에는
정신병자, 즉 광인들은 지역사회에서 큰 거부감 없이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았으며,
그들(광인)만의 고유한 <사회적 역할>도 존재 했었습니다. 당시 광인은 초자연적인 힘에 사로잡힌
일종의 <악마>로 간주되었는데 ... 이것은 <죄가 몸에 스며든 사람> 의 구체적인 모습으로서
사회구성원들에게 신앙을 가져야할 하나의 당위적, 또는 “살아있는 교훈”의 역할을 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광인들이 일반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이었고,
또 자연스런 일이었습니다. [@ 당시의 광인들은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었음.]

[◆ 얼마전 까지만 해도 광기는 환한 대낮에 논의되었다.
‘리어왕’을 보라, ‘돈키호테’ 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반세기도 안 되어 광기는 갇히고
고립되었으며, 수용의 요새에서 이성에, 도덕규범에 ... 그리고 도덕규범의 획일적
어둠에 묻혀버렸다. -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광기의 역사 中 ]

이렇듯 근대 이전에는 광인도 사회 안에서 정당한 지위(역할)를 부여받고 살아가는 정당한 구성원
이었습니다. ... 다시 말해 중세시기의 유럽에서는 보통의 사람들이 악마(광인), 신, 성령, 천사 등과
세계를 함께 나눠 쓰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부터는 사회에 점차 인간주의적
가치관이 퍼지면서 <광인>들도 추방되기 시작합니다. 세계는 <표준>에 부합한 인간만이 사는 장소가
되었으며, 그 표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철저하게 <배제>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푸코(Foucault)는 17세기 유럽을 대감금의 시대라고 규정짓습니다. 이 시기에는 표준의 바깥에 있던
모든 대상들 ... 예를 들어 정신병자(광인), 장애인(기형), 실업자, 부랑자, 거지, 빈민 등 다양한
<비표준적인 것들>을 강제적으로 격리하고 배제했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표준> 이라는 개념이
더욱더 정밀하게 다듬어지면서 유럽의 감금 시설에는 자유사상가, 성적 도착자, 주술사, 무신론자,
과소비자 등 ... 표준에서 벗어남은 물론이고, 표준의 경계에 모호하게 걸쳐있기만 해도 감금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 광기에 대한 새로운 이해 방식이 생겨났다. 이 이해 방식은 더 이상 종교적이지
않고 사회적이다. 중세의 인간적 풍경 안으로 광인이 친숙하게 나타난 것은 광인이
다른 세계(천사, 악마, 성령 등이 사는)로부터 온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광인은
도시민들의 질서에 관련된 ‘통치’ 문제의 바탕위에서 뚜렷하게 부각되는 존재가 된다.
예전에 광인이 사회에 받아들여진 것은 그가 다른 곳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광인이 배제되는 까닭은 그가 바로 이곳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배제된다. 그리고
광인들은 이제 가난한 사람, 궁핍한 사람, 부랑자 사이에 끼기 때문이다.
- 푸코(Foucault). 광기의 역사 中 ]

푸코(Foucault)에 따르면 광인이 다른 세계에서 온 손님일 때는 공동체로부터 환대를 받았고,
이 세계의 시민에 편입될 때는 공동체로부터 배제됩니다. ... 그리고 이렇게 배제된 광인은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지 잘 아는 사람>이 되면서부터 배제가 시작된 것입니다.

< “저 놈이 바로 광인이다! ~ 요놈도 광인이다! ... 어! 쟤도 광인이네!” >

조직적인 광인의 배제가 진행되면서 광인을 결정하는 권리도 <사법>에서 <의료>로 이동했습니다.
17세기까지 광인의 감금을 결정하는 것은 ‘사법관’ 이었습니다. 또한 ‘반사회성’ 이라는 측면에서
광인은 가난한 자와 동격이었습니다. ... 그런데 18세기로 들어서면서부터 광인에게 보다 새로운
경계선이 그어지게 됩니다. ... 바로 <치료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별도의 카테고리로 분류된 광인은
이제 그들만의 시설이 만들어지고, 광기는 <증상>으로서 관찰되며, 병리학적 징후로서 범주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 동시에 광기는 <비정상성>도 갖게 됩니다.

이제 광인은 사법에 의한 감금이 아니라, 의사에 의한 치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표면적으로 보면 광인에 대한 처우가 상당히 인도적이며 합리적인 방법으로
바뀐 것처럼 보여 집니다. ... 하지만 여기에는 생각보다 견고하게 엮여져 있는 암묵적 공범관계가
숨어있습니다. ... 바로 의료와 정치, 즉 <지식과 권력>의 관계가 바로 그것입니다.

고대에는 권력이 자주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이러한
권력의 실체가 안개처럼 점차 흐려져 갑니다. 권력의 힘이 약해졌다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부드럽고
친화적인 모습으로 세상에 부쩍 가까이 다가간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권력이 자신의 앞에
<이성적인 대리인>을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 바로 <학술적인 지(지식)>를 통해서 권력은 자신의
모습을 감추며 치밀하게 행사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푸코(Foucault)를 통해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할 중요한 포인트는 권력의 통치방식과
제가 개인적으로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바로 <비정상성>입니다. ... <비정상성>은 한마디로
표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배제>의 대상입니다. ... 사회가 광인을 <죄가 몸에 스며든> 악마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의료의 대상, 즉 <환자>로 규정 하면서부터 광인은 이제 사회에서 배제되어야 할
<비표준적인 것>으로 정해지고 <비정상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 더불어 <비정상성>은
공동체가 규정한 질서체계에 편입될 희망 또한 상당히 낮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타자(대상)를 규정하는 방식에 따라 타자(他者)는 공동체의 당당한 일원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공동체 밖으로 쫓겨나 <비정상성>을 가진 반질서적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작은 어른> 또는 <큰 아이> 상태를 영원히(상당기간) 지속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타자(他者)의 규정을 상당히 조심스러워 해야 합니다. [◆ 1971년부터 방송을 시작해 20여 년간
시청자의 사랑을 크게 받았던 MBC의 전설적인 범죄수사 드라마 “수사반장”은 군사 독재시절 실추된
경찰의 이미지를 끌어올리는데 많은 공헌을 했는데,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당시 범인 역할로 가장
많이 출연했던 배우는 “변희봉”씨 였으며, 범인의 출신지역은 전라도가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 (출처: 이데일리 TV. 2012년1월)]

시대가 속도를 갖고 변하게 되면 그 사회의 타자에 대한 규정도 속도를 갖게 됩니다. 더불어
규정하는 방식도 그것이 선동이든, 정상적 보편화의 총합이든 마찬가지로 속도를 갖게 됩니다.
그러한 규정변화가 어느 한 순간 전체가 바뀌지는 않았어도 사회는 참 바쁘게도 항상 타자가
앉은 자리를 의심하며 타자 본인도 모르게 서서히 다른 빛으로 채색하고 있었습니다. ... 아이를 위해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본인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사랑과 헌신’으로 대표되던 엄마들이 언제부턴가
<맘충>으로 채색(규정)되기 시작했으며, 여성 할례 위험과 아동(여아) 성폭력 및 아동 노동착취 등
제 3세계 및 개도국 등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낙후된 여성 현실에 대해 유엔(UN)과 세계를 상대로 투쟁하던
초창기 진정한 페미니즘의 정신이 어느 순간부터 남근(penis)을 희화하고,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서의
섹.스(S.ex)에 까지 간섭하며 "삽.입이 이루어지는 모든 섹.스는 강.간이다!(앤드리아 드워킨.Andrea Dworkin)" 라는
급진을 넘어 "극단"에 가까운 주장을 펴는 운동으로 변질되자 그녀들은 <꼴페미, 페미나치(feminazi)> 등으로
새롭게 규정되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해 희생되었던 1980년 광주 시민들은 한때는 <폭도와 빨갱이>로 규정되기도
했었고, 한국을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수많은 노동자들 역시 <쇠파이프와 빨갱이>로
규정되었습니다. 군사독재시절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모든 청춘을 받쳤던 386세대들의 숭고한 정신은
자본이 과잉인 요즘시대에 각자의 가정에서는 낡은 잡지의 <부록 같은 아버지>로, 밖에서는 쉰내 나는
<꼰대와 아재>로 탈바꿈되는 비참한 현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언제부턴가 살인, 강.간
같은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사람들은 지역을 먼저 떠올리기 시작했습니다. ... 결국 우리가 타자를
어떻게 정의(definition) 하느냐에 따라서 그 집단(타자)의 성격과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너무나 쉽게 전복되고 또 가볍게 파악되기도 합니다. ... 그리고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렇게
규정된 결과가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우리사회에 몰고 올 심각한 파급력인데 ... 한마디로 우리 사회가
(규정된)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세심한 관찰 없이 오직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만 선택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결론적으로 정상에서 비정상으로 또는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과정>자체는
완전히 무시되면서 일종의 <시선의 공백>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 어떤 집단을 부정적으로 규정하든, 긍정적으로 규정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 다만
한 번 규정된 사회적 시선은 그 집단에 대한 <맹목성>을 갖게 만들며, 사회가 그들을 사유하는
방식은 <기준(표준)>과 <배제>라는 두 가지 사항뿐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

이제 어떤 대상이나 타자를 규정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얼마나 신중하고 조심스러워 해야 하는지
나름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근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문제로 크게
부각되고 있는 잔혹한 청소년 범죄에 대해서 ... 그 범죄의 당사자인 <소녀(소년)>들을 우리사회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규정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녀)들이 저지른 범죄를 어른의 질서체계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해법(사법적)을 모색할 것인지, 아니면 그(녀)들에게 <비정상성>을 부여해 광인처럼
사회(질서) 밖에서 전혀 다른 새로운 해결책(@상담과 정신치료의 대상)을 찾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청소년들의 잔혹성 때문에 대한민국사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수십만 명이 소년법 폐지를 요구하며 서명운동을 펼치기 시작했고, 정치권에서도 부랴부랴 입법적
대안을 마련하는 모습입니다. 부실 수사에 경찰은 비난세례를 받았고, 가해자들의 신상이 털리자
그 부모 및 가족들에게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욕설과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또한 가해자들 중 일부
청소년들은 SNS에 자신들의 무책임한 행동을 장난처럼 얘기하기도 하여 피해자 가족과 국민들의
공분을 더 크게 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대다수 국민들이 분노하는 와중에도 몇몇 정치인과
여성부 관계자들, 그리고 SNS상에서 일부 사람들이 청소년들의 잔혹한 범죄성을 인정하면서도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며 그(녀)들의 사적 일탈을
<사회화>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그 대표적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진부하다 못해 이제는 너덜너덜한 삼류 시나리오 대본 같은
<불우한 가정환경> 이라는 것입니다. ... 여기서 <불우(不遇)>는 주로 <빈곤(가난)>과 연계됩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었고, 그러한 기회의 불평등은 경쟁에서 낙오하여
결국은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도 전에 이미 실패의 사례로 남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는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까지 거론하는
사람들도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개인적인)잔혹한 범죄성을 사회 구조적 문제로 확장하여 거시 동기로 치환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저는 상당히 많은 의문이 듭니다. 사실 불우한 가정환경이 반드시 <가난> 하나와
짝지어진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중산층이나 상류층 가정의 자녀들도 나름 그들만의 불우한 환경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성공한 아버지의 불륜을 바라보는 자녀의 도덕적 혼란,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와 음악을 하고 싶다는 자녀 사이의 갈등, 사회에서 선함으로 칭송받던 아버지가 집안에서는
권위적인 아버지로 돌변해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목격한 자녀 ... <불우한 가정환경>의
충분조건은 그 사회만큼 대단히 폭넓고 다양합니다.

[◆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는 불안한 잠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아주 흉물스런
갑충(벌레)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 철갑처럼 단단한 등껍질, 불룩한 갈색의 배는
활처럼 휘어져 여러 개의 각질의 칸으로 나눠져 있었고, 몸뚱이에 비해 가느다란 수많은
다리들은 애처롭게 허공에서 버둥거리고 있었습니다. ...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꿈은 아니었습니다. ... 그레고르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 (변신 中. 프란츠 카프카) ]

평범한 영업사원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아주 징그러운 갑충(벌레)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회사가 달라도 우리사회 회사원의 아침은 거의 대부분 비슷합니다. 출근에 늦지 않으려 허둥대는
모습이나 아침(식사)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모습 등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광경입니다. ... 그런데
자신이 흉물스런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보다 제시간에 출근하지 못할까 지각을 더 걱정하는
회사원이라면 이 사람은 과연 정상일까?

< “제가 지금 벌레로 변해서 출근이 좀 늦을 것 같습니다!” >

어떤 말이든 좋습니다. ... 다만 그레고르의 말은 상대에게 모두 변명처럼 들릴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했던 그레고르는 ... 이미 벌레지만
꿈틀거리면서라도 출근해야 합니다. 그레고르 본인이 아니라면 누가 자신의 가족을 부양할 것이며,
또 가족이 아니면 누가 그레고르를 지켜줄 것인가 ~ 그래서 <가족>은 세상의 변명으로부터
그레고르를 지켜줄 유일한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레고르의 어머니는 기절소동을 벌이고
아버지는 아들의 등껍질을 향해 사과를 던집니다. <가족>은 그렇게 인간이 아닌 갑충 그레고르를
증오하며 그를 유폐시키고, 가장 가까웠던 여동생마저 그레고르에게 죽음을 재촉합니다.

안식처가 되어야할 <가족>이라는 따스한 공간에서 오직 돈 버는 <기능>만 강조된다면
가족의 일원이라는 정서적 유대감도 조금씩 소멸될 것입니다. ... 그리고 시간이 흘러 유일하게
남는 것은 돈 버는 <기능>으로서의 기계, 즉 <인간(성)>이 사라진 껍데기 하나뿐일 것입니다.
결국 갑충(벌레) 그레고르는 <기능(일벌레)>으로서만 존재하는 <인간소외>의 전형인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헌신하고, 자녀는 부모의 기대를 위해 모든 걸 감내합니다.
더불어 자녀는 부모에게 모든 헌신을 요구하고, 부모는 자녀에게 자신들의 기대충족을 요구합니다.
이렇듯 <기능>으로서의 가족주의는 부모와 자녀가 각각 서로에게 혐오스런, 즉 변신한 <갑충>으로
보여 질뿐입니다. 한마디로 우리사회 모든 구성원들은 잠재적 그레고르(갑충)인 것이죠 ... 아마도
<가족>은 그 탄생의 순간부터 <해체>를 필연적으로 목적하는 운명공동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카프카가 <변신>에서 말하고 싶었던 <가족주의의 역설>인 것입니다.

앞서 제가 <불우한 가정환경>의 사회화는 무리한 시도라고 했던 부분이 바로 카프카의
<가족주의 역설>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사회 모든 <가정>은 결국 저마다의 서로 다른
수많은 갑충의 군집이기 때문입니다. ... 결론적으로 청소년들의 범죄성(잔혹성)을
<불우한 가정환경> 따위(?) 하나로 규정해 <사회화>라는 거시동기로 치환하려는 시도는
상당히 성급하고 위험한 발상이라 생각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보다 본질적인 인간의 <잔혹성>의
근원을 찾기 위해 사회화라는 거시동기의 깊이보다 더 깊고 어두운 곳으로 내려가 <가족과 개인>의
숲에서 잔혹성의 <미시적 동기>를 좀 더 자세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미국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A. H. Maslow. 1908~1970년)는 1943년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눈 이론을 발표합니다. 그의 이론을 간단히 살펴보면, 1단계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심리욕구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먹는 욕구(생리적 욕구)>입니다. ... 이후 배고픔이 충족되면 인간의 욕구는 다음
단계로 옮겨가는데 2단계 욕구는 <안전 욕구>입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상태에서 이제 사람들은
좀 더 차원 높은 정신적, 심리적, 경제적 안정에 대한 욕구를 원한다는 것이죠 ... 3단계 욕구는
<사회적 욕구>인데 사랑과 섹.스(S.ex), 그리고 주변과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갈망입니다. 4단계 욕구는
<자존감 욕구>입니다. 타인에게 더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말합니다. ... 그리고
가장 높은 마지막 5단계 욕구는 <자아실현>입니다. 모든 인간의 욕구가 반드시 이 단계(5단계)를
지향한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인간에게 <자아실현>은 결국 본인의 창조적 충동을 어떠한 형태로든
외부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는 차원 높은 욕구임에는 분명합니다.

1956년 [아웃사이더] 라는 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콜린 윌슨(Colin Wilson)은
자신의 연구(인간의 심층 분석)에서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설>과 범죄의 동기가 어쩌면 상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쉽게 말해, 해당 사회(국가)가 처한 현실적 (욕구)단계에 따라
그 사회의 범죄의 양상 또한 변해간다는 것입니다.[@ 물론 반드시 상응(대응)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콜린 윌슨의 주장에 따르면, 19세기 초까지 대부분의 범죄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단순 동기에 의해
일어났다고 합니다. 매슬로우의 1단계인 <생리적 욕구>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먹고사는 <생계>
문제 해결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단계인 것이죠. ... 예를 들면, 당시 에딘버러의 시체도둑 버크와
헤어라는 범죄자들은 희생자들을 죽일 때 몸에 최대한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 목을 조르는 방법을
많이 사용했는데, 이는 (깨끗한)시체를 1구당 7파운드를 받고 의료기관에 팔아넘기기 위해서였습니다.

19세기 중엽이 되면 범죄의 양상이 달라집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의 번영과 풍요는
영국 사회에 중상류 계급의 가정들이 생겨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당시 특이한
범죄의 양상은 바로 <가족 살인>의 증가였다고 합니다. ...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이후에 어렵게
확보한 심리적, 정신적, 경제적 안정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비록 가족의 일원이지만 본인에 대한
가족들의 심리적, 정신적 위협과 내적 갈등으로부터 스스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가족 살인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또한 강도 살인범 찰리 피스는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 이웃주민들과 자주 친목을
도모했는데 그는 이러한 중류계급의 생활(경제적)을 계속적으로 유지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는데 ... 이는 매슬로우의 2단계와 3단계가 복합적으로 섞여 작용한 대표적 사례였습니다.

19세기 말이 되면 과거와는 전혀 다른 유형의 범죄가 발생하게 됩니다.
바로 강.간과 연쇄살인 같은 <성범죄> 유형입니다. ... 1888년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는
대략 3개월에 동안 영국 런던에서 무려 다섯 명이 넘는 매춘부를 토막 내거나 장기를 파헤치는 등
극도의 잔인한 방식으로 살인(연쇄살인)을 저질렀습니다. ... 이후 범죄의 단계(양상)는 다시 새로운
수준으로 이동하는데 매슬로우의 4단계 욕구인 <자존감>입니다. ... 자존감의 의한 범죄를 저지른
상당수의 범죄자(살인자)들은 사회가 본인들을 인정해주지 않았고 정당한 평가 또한 없었으며,
자신의 개성을 존중해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은 결국 사회가 져야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펼쳤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범죄에 대한 정당성을 <자존감 욕구>로부터 도출한 것입니다.
물론 당시 모든 범죄의 이행단계가 매슬로우 욕구 5단계 수순에 딱 맞춰 진행된 것은 아니었지만
범죄의 방향성만은 대체적으로 유사한 흐름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콜린 윌슨이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설과 범죄의 상응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밝혔던 또 다른 사실은
국가별 범죄(특히 살인)의 양상 또한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 예를 들면,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정열적인 범죄, 독일은 사디스틱한 살인, 영국은 치밀하고 용의주도한 계획 살인, 미국은 성급한 살인이
주로 나타났다고 했는데, 여기에 더해 10년 단위, 즉 시대별 범죄 양상도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고
합니다. ... 결론적으로 폭력(범죄)의 양상은 인간의 욕구 5단계라는 큰 틀 안에서 국가(문화)와 시대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양상의 변화를 겪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래서 지금부터는 좀 더 아래로
내려가 그 폭력 양상의 <뿌리>에 해당하는 부분을 얘기해볼까 합니다.

1930년대 중엽, 매슬로우는 ‘욕구의 단계’ 연구를 위해 미국 뉴욕의 브롱크스 동물원(Bronx Zoo)에서
원숭이를 관찰합니다. 그러다가 문뜩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 “프로이트는 모든 노이로제의 원인이 섹.스(S.ex)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한편 아들러(Adler. 1870~1937)는 인간의 삶은 열등감과의 싸움이며, 그 주요 동기는
“권력에 대한 의지” 라고 주장한다. ...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 (잔혹: 피와 광기의 세계사. 24페이지/ 콜린 윌슨/ 하서 출판) ]

프로이트와 아들러(Adler), 둘은 모두 오스트리아의 출신입니다.
매슬로우가 브롱크스 동물원에서 가장 크게 충격을 받았던 것은 원숭이들의 그칠 줄 모르는 성행위와
지배의 행동양식이었습니다. 원숭이들의 성행위는 무차별적입니다. ... 수컷은 암컷에게 시도 때도 없이
올라탔지만, 어느 땐 수컷이 수컷에게 올라타기도 했습니다. 또한 암컷도 수컷의 행동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핏 보면 원숭이들의 성행위는 그야말로 무차별적인 난.교(亂交)로 보입니다.
다만 이러한 광경에서 분명한건 지배력이 강한 원숭이가 약한 원숭이를 얕잡아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슬로우에게는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주장은 모두 타당해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매슬로우는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을 포착하게 됩니다. ... 원숭이의 성별과는 무관하게
오직 지배력이 강한 원숭이가 자신보다 약한 원숭이에게(수컷이든 암컷이든 상관없이) 올라탄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상대가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되면 무조건 올라탄다는 것이었죠. ... 그리고
매슬로우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 “최소한 이 문제에서만큼은 프로이트보다는 아들러(Adler)가 옳았다!” >

결국 원숭이들의 행동양식의 핵심에는 <지배력>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 그렇다면
원숭이들의 행동양식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 ~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그래서 지배력에 관한 인간적용 부분(@실제 사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조금은 다른 시선, 즉 <진화심리학>에서 바라본 지배력에 관한 부분을 다른 동물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면서 우리의 시야를 조금 더 확장해 보겠습니다.

귀뚜라미는 자신이 다른 귀뚜라미와 싸웠던 일을 정확히 기억한다고 합니다.
수많은 싸움에서 승리한 귀뚜라미는 이후 다른 싸움에서는 더욱 더 공격적인 성향으로 변하는데,
반면 패배한 귀뚜라미는 이후의 대부분의 싸움을 (의도적으로)피하려 하면서 <복종>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합니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알렉산더(Richard Alexander.1961)의 <모형 귀뚜라미> 실험은
미세하게 컨트롤이 가능한 모형 귀뚜라미를 진짜 귀뚜라미와 대결시켜 진짜들을 제압하는 실험입니다.
실험에서 모형에게 패배한 진짜 귀뚜라미들은 이후 모형이 아닌 다른 진짜 귀뚜라미와의 대결에서는
패배하는 비율이 월등히 높아졌다고 합니다. ... 이것은 (패배한)귀뚜라미들이 자신의 전투능력을 다른
귀뚜라미와 비교 평가하여 각각의 상황에 따른 유불리를 선택한 것입니다. ~ 이로써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한 무리의 귀뚜라미 그룹은, 그룹 내에서 자연스럽게 계급, 즉 순서대로 지배서열이 정해집니다.
더불어 암컷 귀뚜라미들은 승리 횟수가 많았던 지배서열이 (가장)높은 귀뚜라미를 교미상대로 선택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아진다고 합니다.

귀뚜라미가 자신의 전투능력을 상대와 비교 평가하여 지배서열을 정하는 현상은 암탉들 사이에서도
비슷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한 우리에 암탉들을 모아놓으면 처음엔 싸움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싸움의 빈도는 점점 줄어들면서 평화로운 상태가 찾아옵니다. ... 한마디로
집단이 안정화되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평화가 정착되면 이제 개개의 암탉들은 자신이 누구보다
우월하고 열등한지를 스스로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은 모든 암탉들에게 이롭습니다.
지배력이 강한 암탉은 우월한 지위를 지키기 위해 더 이상 에너지 낭비가 심한 싸움을 할 필요가 없고
열등한 암탉들도 복종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부상당할 위험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개체들이 다른 상대를 만날 때 마다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전략입니다.
패자는 부상이나 죽음을 각오해야하기 때문에 차라리 굴복을 선택하는 것이(@ 먹이나 배우자를 양보)
더 나을 수 있고, 승자는 싸움 때문에 부상이나 먹이, 배우자를 확보할 시간과 기회를 빼앗길 수
있습니다. ... 결국 사전에 우위와 열위를 간파할 수만 있다면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이익이 됩니다.
이렇게 자신의 전투능력을 상대와 비교 평가하는 능력은 개체 진화에 유리한 선택인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단순한 완력의 우위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족, 주변 친구처럼 동맹을 이끌어내는
부분까지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동물계에서 일어나는 <지배와 복종> 전략 보다는 좀 더 복잡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배와 복종> 전략이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비용을 막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배서열이 정해지면 이제는 그 지배력을 유지하는 <지배성> 문제가 대두됩니다.
가재는 서열이 정해지지 않으면 같은 세력권에 두 마리 이상이 함께 살수 없습니다. ... 따라서
동일 세력권에 들어온 경쟁관계의 가재들은 우선 탐색전에 들어갑니다.

상대의 힘을 비교 평가하기 위해 서로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마치 회전목마처럼 빙빙 돌게 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격렬한 난투극을 벌이는데, 싸움에서 이긴 승자는 뻐기는 몸짓으로 세력권을 유유히
활보하며 돌아다닙니다. 반면 패자는 세력권 외곽으로 쫓겨나 승자와의 접촉을 피합니다.

가재들의 대결을 관찰한 연구자들은 승자와 패자의 (싸움후의)행동이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혹시 가재들의 신경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닐까 추측했습니다. 그리고 연구결과
가재들의 특정 뉴런(신경세포. neuron)이 지위(서열)에 따라 세로토닌(신경전달 물질)에 다르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 지배적 가재, 즉 승리한 가재는 세로토닌이 뉴런에 신경신호를
발사하도록 했지만, 패자는 신경신호 발사를 억제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의 대결(전투)로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영구적으로 고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번엔 A그룹, B그룹에서 각각 패배한 가재들만 골라내 이들을 C그룹 이라는 새로운 세력권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러자 그룹 C안에서는 다시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 그리고 이들
C그룹 가재들의 뉴런을 검사했더니 지배적 가재의 핵심 뉴런은 C그룹에 오기 전, 즉 복종적(패배자)
지위에 있을 때처럼 세로토닌 때문에 신호발사는 억제되고 있었지만 대신 계속적인 (다른)자극을 받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 결국 상황이 변하면서 패배자였던 복종적 가재의 지위는 지배적(승자)
지위로 쉽게 이동한 것입니다. ... 그런데 특이한 것은 바로 그룹 A와 B에서 각각 승자였던 <지배적>
가재들에게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한때 각자의 그룹(A, B)에서 승자(지배적)의 지위에 있었던 가재들을 D라는 새로운 세력권에 집어넣자
역시나 그룹 D에서도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만들어졌는데 ... 특이한 점은 패배했던 복종적 가재는
패배이후에도 전혀 굴복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승자에게 <도전>을 했던 것입니다. ... 그리고 이러한
도전은 심지어 죽는 순간까지도 지속되었는데 ... 이는 마치 한번 맛본 <지배성>을 절대로 빼앗기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처럼 보였습니다.

이제 관찰 대상을 영장류로 옮겨봅니다. ... 영장류 사회에서도 서열은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더 높은 지위를 위해 끊임없이 경쟁합니다. 때로는 이미 가장 높은 지위에 있던 우두머리
수컷의 지위를 빼앗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두머리 수컷에게 직접적인 도전을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두머리 수컷이 노화했거나 부상을 당했을 때와 같이 불안정한 시기를 노려 비어있는
우두머리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몇몇은 동맹을 이끌어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영장류 집단에게는 서열 상승을 위한 조건 중 <사회적 능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 동맹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이죠.

[◆ 예를 들면, 관찰 기록된 한 사례에서는 지위가 낮은 수컷이 알파(우두머리) 수컷과 동맹 관계를
끝냈는데, 그 수컷이 특정 암컷에 대한 성적 접근을 놓고 다른 수컷과 경쟁을 벌일 때 알파 수컷이
지원을 거부했다. ... (진화 심리학. 562페이지/ 데이비드 버스(David M. Buss)/ 웅진지식하우스) ]

영장류 사회에서 서열(지위) 상승을 위해 동맹을 이끌어내는 능력(사회적 능력)은 무엇보다
중요한 조건인 것입니다. ... 알파 수컷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하지 못함으로써 지위가 낮은 수컷은
특정 암컷과의 성적 접근경쟁에서 밀려나고 결국 번식 기회마저 점점 더 줄어들게 됩니다.
이 부분은 <침팬지 정치학> 사례를 들여다봄으로써 확실한 이해를 도울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 아른헴(Arnhem)에 있는 동물원에는 무리지어 사는 침팬지들이 있는데, 이곳의 우두머리는
<예로엔(Yeroen)>이라는 수컷 침팬지입니다. 예로엔은 자신이 우두머리임을 각인시키기 위해서인지
항상 폼을 잡고 걸어 다녔습니다. 가끔 다른 녀석들에게 지배력을 보여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낄 때면 털을 곤두세우고 녀석들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들었고 그러면 모여 있던 다른 침팬지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집니다.

무리 중 수컷어른은 4마리가 있었지만, 암컷들과의 짝짓기의 75%는 예로엔 혼자서 독차지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예로엔이 노쇠해지자 침팬지 무리에 변화가 찾아옵니다. ... <라위트(Luit)> 라는
젊은 수컷이 강하게 성장해 예로엔에게 도전을 한 것입니다. 그동안 예로엔에게 복종을 표시하던
일종의 그들만의 <인사> 제스쳐를 하지 않음으로써 라위트는 더 이상 복종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라위트는 도전과 저항 의사를 간헐적으로 보여주면서 때론 예로엔을 손으로
가격하거나 심지어 날카로운 송곳니로 예로엔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했습니다. ... 하지만 대부분의
싸움은 소리를 크게 지르거나 털을 곤두세우는 허세 등의 상징적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암컷들 대부분은 예로엔을 계속적으로 지지했습니다. ... 그러나 라위트의 지배력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이제 표면적으로도 힘의 우위를 쉽게 구분할 수 있게 되자, 암컷들은 하나둘씩
예로엔을 배신하고 라위트 편을 들기 시작합니다. 결국 두 달 뒤, 권력이동이 종결되었고 예로엔은
권좌에서 물러나 라위트에게 <복종적 인사>를 하는 지경까지 가게 됩니다. ... 이후 짝짓기 지분에도
변화가 생겼는데, 라위트는 과거에는 전체 짝짓기 지분의 25% 수준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권좌를
차지한 후의 지분은 50% 수준으로 상승했습니다. 반면 예로엔의 짝짓기 지분은 0%가 되었습니다.

앞서 영장류 사회에서의 서열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마찬가지로 예로엔은 자신이
현재는 비참하게 권좌에서 밀려난 신세가 되었지만 이 상황을 완전히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로엔은 또 다른 젊은 수컷인 니키(Nikkie)에게 동맹을 제안합니다. 예로엔과 니키는 각자가
혼자서 라위트와 상대하기에 벅찼지만 힘을 합친 동맹의 상황에서는 충분히 라위트와 대결이 가능하다
생각했던 것입니다. ~ ~ ~ < 폭풍 전야(暴風前夜) ! > ~ ~ 드디어 결전이 날이 다가왔고 싸움은
격렬하게 벌어졌습니다. 싸움에 참여한 상당수 침팬지들이 부상을 입었지만 결국 <예로엔-니키>
동맹이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이로써 니키(Nikkie)가 권좌를 차지하면서 짝짓기 지분 50%를 확보했고
예로엔은 비록 권좌를 다시 찾지는 못했지만 0%였던 짝짓기 지분을 25%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결론적으로 예로엔은 <동맹>을 이끌어내는 <사회적 능력> 덕분에 짝짓기 지분을 일부라도 찾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참고 - 진화 심리학. 데이비드 버스(David M. Buss)]
[◆ <침팬지 정치학>에서 보여주듯 ...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핍박하면서도 중동의 한 복판에서
여전히 <지배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잔혹성과 폭력의 근원을 찾기 위해 여기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매슬로우(Maslow)는 브롱크스 동물원(Bronx Zoo)에서 원숭이들의 무차별적인 성행위와 지배의
행동양식을 관찰하며 프로이트 대신 아들러(Adler)의 주장에 손을 들어줍니다. 바로 <권력에의 의지>,
즉 <지배성>을 포착한 것입니다. ... 결국 폭력과 잔혹성은 <지배력>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당위적, 혹은 진화적 산물인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어디까지나 동물세계에 한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화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 동물세계(곤충, 갑각류, 조류, 영장류 등)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지배성>의 면면들을 살펴보면서 이를 검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인간의(실제 사례) 지배성 문제를 살펴볼까 합니다.

1965년 영국 맨체스터(Manchester)에서 <“이언 브래디(남)”와 “마이러 힌들레이(여)”> 라는
두 남녀가 경찰에 체포됩니다. ... 콜린 윌슨은 <늪의 살인자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이 바로 인간의
<지배성>을 가장 확실히 관찰할 수 있는 사례라고 말합니다.

경찰에 의해 밝혀진 이들 두 남녀가 저지른 살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 레슬리 앤 다우니라[10세 소녀, 크리스마스이브 날에 실종, 늪에서 발견(1964년)]
@ 존 킬브라이드[12세 소년, 늪에서 발견(1964년)]
@ 에드워드 에번스[17세 청년, 도끼로 살해, 브래디와 마이러가 동거했던 집에서 발견]

브래디(남)와 마이러(여)는 1960년 1월에 처음 만나게 됩니다.
마이러(여)는 밀워스라는 화학약품 회사의 경리로 근무했는데 마이러가 입사했을 당시 브래디는
마이러보다 네 살 많은 체격 좋은 젊은이였습니다. 마이러는 가톨릭신자였으며 동물과 어린이를
좋아하던 전형적인 노동자계급의 평범한 딸 이었습니다. 반면 브래디는 13세부터 경찰서와 소년원을
들락거렸고 나치를 숭배했으며 갱 소설을 좋아했습니다. ... 더불어 <사드(Sade)>의 비도덕주의 철학과
범죄성에 심취하기도 했습니다. [◆ 마르키 드 사드(Marquis de Sade) - ‘사디즘(sadism)’ 이라는 어원을
만들어낸 프랑스의 성애 문학의 대가 ]

사내에서 반항아적인 모습을 자주 보였던 브래디에게 점점 더 매력을 느끼던 마이러는 어느새
그를 흠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머릿속은 온종일 브래디 생각으로 가득 찼고, 그녀의 일기장은
온통 브래디를 칭송하는 말로 채워졌습니다. ... 그가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날에는 일기장에 저주를
퍼붓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브래디를 찬양하는 말들로 일기장을 채웠습니다. ... 하지만 브래디는
마이러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당시 <늪의 살인자사건>을 관심 있게 지켜봤던
극작가 엠린 윌리엄스는 어쩌면 브래디는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마이러를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배성)

마이러와 뜨거운 밤을 보낸 후, 브래디는 자신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그녀에게 세뇌를 시작합니다.
사드의 소설과 철학을 읽게 하고, 나치를 숭배하게 만들었으며 ... 특히 사드의 철학(비도덕주의)을
본격적으로 그녀에게 주입하기 시작합니다.

[◆ 사회는 완전히 타락했다. 인간의 생명 따위는 아주 보잘 것 없다. 자연은 인간에게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고 순환만 되풀이 한다. 우리들은 우연에 의해 창조된 무의미한
우주에 살고 있다. 도덕성이란 가난뱅이를 억누르기 위해 지배자가 발명한 환영에 불과하다.
쾌락이야말로 유일의 참된 선이다. 스스로의 성적 욕망을 완력으로 발산하는 인간은, 강자의
당연한 특권을 행사하는데 불과하다. - (잔혹: 피와 광기의 세계사. 27페이지/ 콜린 윌슨/ 하서)]

브래디의 세뇌를 통해 마이러는 세상의 보편에 맞서는 비범한 판타지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또한
말끔한 정장차림으로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독일어 원문으로 읽어대는 브래디에게서 마이러는
평범한 노동자의 딸이 감히 다가갈 수 없는 교양인(지식인)의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 그리고
이러한 세뇌의 끝은 결국 마이러가 브래디를 <주인>으로 인식하는 단계까지 흘러갑니다.
이제 평범한 젊은 남녀의 관계는 <사랑>이 아닌, <주종>의 관계로 변질되면서 브래디는 본격적으로
<지배성>을 만끽하게 됩니다.

브래디가 처음 그녀에게 제안한 사업(일탈)은 <은행 강도>였습니다. 처음엔 말도 안 된다 생각했지만
브래디의 계획과 화려한 언변에 빠져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브래디는 그녀에게 총을 구해오라고
지시합니다. ... 이 와중에도 브래디는 또 다른 사업을 구상했는데 바로 <포르노사진 판매> 였습니다.
마이러에게 각종 화려하고 야한 속옷을 입혀 포즈를 취하게 하고, 그녀의 엉덩이에는 맞은 자국을
붉게 표시해 <사디즘>의 느낌이 물씬 풍기도록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던 브래디는 처음 생각했던 은행 강도 사업은 포기하기로 결정합니다.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부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체포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인데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지배성 유희>를 즐길 수 없게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 그래서 생각한
가장 위험이 적은, 즉 체포될 가능성이 낮은 사업(범죄)을 구상합니다. 바로 <유괴>입니다.

앞서 언급한 브래디와 마이러의 (유괴)범죄 행각에서처럼 ... 주인과 노예였던 이들 두 남녀는
어린 소년과 소녀들을 살해해 늪에 묻고, 마치 캠핑을 온 사람들처럼 늪 주변에서 담요를 덮고
달을 보며 하룻밤을 보냅니다. ... 경찰에 체포된 후 재판과정에서 마이러는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고 말했지만, 브래디는 끝까지 묵비권을 행사했습니다.

<지배성>에 빠진 인간들은 잔혹한 폭력에 대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본인의 심연 속에 숨겨져 있던 분노와 울분의 감정들이 탈출구를 찾기 위해 사방을 헤매다가
지배욕구와 만나게 된다면, 그래서 <지배성>을 쟁취하게 된다면 이후의 그 감정들은 자신의 노예들,
즉 복종하는 자들을 통해 대리 표출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본인이 직접적으로 감정표출을 했을 때
보다는 더 쉽고 경제적인 방식입니다. ... 그리고 그 분노의 감정들을 외부에 모두 쏟아놓을 때까지
<잔혹성>은 계속해서 강화됩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한번 정리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의 제목처럼 <타자를 규정하는 힘>과 <잔혹성>은 과연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 하는
물음입니다. ... 더불어 지금부터는 거의 저의 주관적 견해로만 채워질 텐데, 앞서 얘기한 내용들을
종합해 마무리하는 단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개인 A, B, C, D가 있습니다. ... 이때 개인의 힘을 10으로 가정한다면
(A+B=20), (C=10) 이므로 [(A+B) > (C)] 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사회에서 개인들이 소위
<세력(집단)>을 형성해 개인과 마주한다면, 이때의 세력의 힘은 단순히 산술급수적이지 않고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따라서 (A+B)의 힘은 20이 아니라 100(10의 2승)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A+B+C)의 힘의 크기는 1,000(10의 3승), (A+B+C+D)는 10,000으로 세력의 힘의 크기는
급격히 증가합니다.

물론 이러한 (세력의)힘의 정체는 단순한 물리적 완력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가하는 정신적, 심리적
공포와 함께 상대와 친밀하게 관계된 외부(가족, 친구, 이웃, 명예 등) 환경적 조건들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 따라서 인간이 <세력>을 형성한다는 의미는 소위 무가치한 <패거리> 그 이상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력>의 힘은 어른의 질서체계 안에서는 더욱 더
치밀하게 조직되어 그 가짓수를 크게 늘립니다. 한마디로 비용대비 효용가치는 훨씬 더 크게 증가하는
것입니다.

군대, 경찰, 검찰, 감사원, 국세청, 국정원 등의 국가기관도 결국은 <증폭된 세력>에 다름없습니다.
다만 이들 집단은 <질서체계>안에서 그들의 힘의 크기를 법의 의해 제한받고 있다는 사실만 다를 뿐
입니다. 여기에 정당과 시민단체, 기업단체(전경련), 종교단체, 노조 등도 모두 <협회 또는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뭉쳐진 <세력>의 다른 이름인 것입니다. ... 여기서 시선을 좀 더 큰 무대로 옮겨 본다면
이제 세력의 의미는 국가단위, 즉 <국제정치>로까지 확장됩니다. <한.미.일 동맹과 북.중.러>,
<나토(NATO)>, <유럽연합>, <아세안(ASEAN)> ... 심지어 알카에다(아프가니스탄), 헤즈볼라(레바논),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 PKK(터키 쿠르드 노동자당), FARC(콜롬비아 혁명군), IRA(아일랜드 공화국군)
등의 전 세계 수많은 테러 조직들 또한 <세력>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력의 배후에는 <권력의지>라는
질긴 뿌리가 숨어있습니다.

우리사회 질서의 근간인 <법(法)>의 진면목은 바로 <타자(대상)를 규정하는 힘>에 있습니다.
법은 세금을 내야하는 자를 규정하고,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을 규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최저임금의
크기를 규정하고, 기업의 크기도 규정합니다. 학교를 규정하고, 학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도 있습니다.
지하철을 무료로 탈수 있는 자와 그렇지 않는 자를 규정할 수 있습니다. 도박을 즐길(?)수 있는 공간을
규정할 수 있습니다. ... 한 가정을 파괴한 음주 운전자의 처벌을 (어이없게)규정합니다.
촛불을 든 자들을 폭도로 규정할 수도 있고 시민의 권리로 규정할 수도 있습니다.

<세력(집단)>을 형성하면 이들에게는 <법(法)>의 힘이 간접적으로 부여됩니다. ... 그리고 그 힘의
크기는 세력의 크기에 정비례 합니다. 한마디로 타자를 규정할 수 있는 힘이 부여되는 것입니다.

< “저 새끼들은 빨갱이다!” >, < “너 노조원이냐?” >, < “좌파냐! 우파냐!” >

타자를 규정할 수 있는 힘은 곧 <지배성>과 연결됩니다. ... 법에 준하는 힘으로
타자를 심판할 수 있으며 그렇게 그들(세력)에 의해 규정된 타자들은 한 순간에 <비정상성>을
갖는 비표준적인 것들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세력을 지향하는 자들은 단순히 (현재의)열위상태를
벗어나려는 평화로운 외침보다 우위를 점하거나 우위 상태를 유지하려는 권력에의 의지가 진짜
본질입니다. ... 결론적으로 <세력>을 형성한 모든 집단은 권력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타자규정의 힘>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 단순히 열위 상태를 벗어나고자 함이 아님.)
더불어 타자를 규정한다는 의미는 타자에 대한 단순한 프로필을 주입하는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타자에 대한 <생각의 허용한계>를 미리 설정하는 것이 진정한 <타자규정의 힘입니다!>
이 부분은 우리가 훌륭한 한국 문학작품 한편을 통해 이해를 도울 수 있습니다.

[◆ 고등학교 2학년인 최기표는 악마의 자식이자 ‘폭력’ 그 자체입니다.
같은 반 아이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자 절대자입니다. ... 잔혹성, 무자비함,
예측불허의 괴팍한 성격 ... 단지 (현재)자신의 기분이 안 좋다는 이유만으로
동급생을 칼로 위협하고, 담뱃불로 지지기도 합니다. ~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던 어느 날, 반장 형우는 자발적으로 부정행위를 하며 기표를 도와줍니다.
하지만 기표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을 도왔다며 형우에게 심한 폭력을
행사합니다.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은 형우는 치밀한 복수를 시작하는데
침묵으로, 즉 아무런 대응 없이 마치 자기가 기표를 너그럽게 용서해준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면서 형우는 사실 기표는 심성이 착한 아이이며, 가난하지만
부모님에게는 그 어떤 아들보다 효성이 지극한 아이이고, 친구가 되면 그 누구보다
의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정한 사나이라며 기표를 치켜세웁니다.
호수에 붉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 서서히 형우의 언어로 새롭게 <규정>되어가는
기표는 어느새 악마에서 선한 천사로 변하게 됩니다. ... 그리고 형우는 마지막으로
기표의 삶을 위대한 학생의 승리로 포장하여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도록 만듭니다.
화제의 주인공 최기표! ~ 기표의 가공된 미담은 이제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기표 스스로는 예전과 같이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지만, 새롭게 규정되면서부터
영화화될 정도까지 나아갑니다. 그러나 영화 제작사 직원들이 찾아올 무렵쯤
기표는 홀연히 사라지기로 마음먹고 여동생에게 한마디 말을 남깁니다.

“무섭다! ~ 무서워! 더이상 무서워서 못 살겠다!” - (우상의 눈물/ 전상국) ]

소설은 두 개의 폭력(잔혹성)을 다룹니다. ... 하나는 기표의 <물리적 폭력>이며
또 하나는 새로운 타자로 규정된 <존재론적 폭력>입니다. ... 제가 주장하는 <타자 규정의 힘>은
바로 형우에 의해 새롭게 규정된 기표인 것입니다. <생각의 허용한계>가 미리 설정된다는 뜻은
결국 새롭게 규정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선한 최기표!) ... 한마디로
선전의 힘이 극대화 되는 것입니다. ... 기표를 선함으로 미리 설정해 버리자 이제 주변에서는
기표의 또 다른 <선함>만 찾게 됩니다. 선하다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직 미담만 계속해서
생산되는 것이죠 ... 그래서 영화화 단계까지 가게 됩니다.(@극대화 되는 선전의 힘)

<타자규정의 힘>은 이렇게 잔혹한 속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은 지배성을 추구하며, 그렇게 확보한 지배성은 세력을 원하는 단계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세력이 형성되면 이제 그들은 <타자규정의 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 그런데 여기서
특징적인 현상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형성된 세력에 포함된 개별 주체들의 행동양식입니다.

집단이 소수일 때는 지배자(리더)를 위해 복종과 존경을 표하지만, 그 집단이 대규모로 세력화 된다면
이제 그들은 지배자가 아닌, <세력(집단)> 그 자체를 위해 복종합니다. 그들의 목적은 지배자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세력(집단)>의 붕괴를 막아 <영속성>을 바라는 것입니다. ... 당대표를 제거해도
당은 살아야 하듯이, 대통령은 임기가 있지만 국가는 영원해야 하듯이 ... 다시 말해 집단의 크기는
일정 수준, 즉 임계점을 넘는 순간부터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개별성은 상실하고 오직 <집단의 존재>
그 자체만을 존재합니다. 흔히 동물학에서는 <초개체성> 이라고 하는데, 초개체성은 흔히 일벌의
사례에서 자주 목격됩니다. 일벌들은 갑자기 난입한 침입자를 침으로 찌름으로써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고 벌집을 지킵니다. ... 그런데 인간세계에서도 이러한 일벌들의 초개체성이 자주 목격됩니다.
자신이 소속된 세력(집단)을 본인과 동일시하며, 집단이 위협받을 때 언제든지 자신은 집단의 생존을
위해 희생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희생의 과정에서 우리는 또 한 번 <잔혹성>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성숙한 집단(세력)은 어른의 질서체계 안에서 작동되며, 운영 또한 민주적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타자규정은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내부동의(합의)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투명성을 바탕으로 한 타자규정은 한 번 결정되면 반질서적(ex. 청소년) 집단의 타자규정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무서운 힘을 갖습니다. ... 그래서 때론 <민주적>이라는 의미는 상당한 파괴력을
내포한 <잔혹성(폭력)>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하나의 사태를 놓고도 누군가는 저항으로 규정하기도 하고, 폭력으로 규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사회는 청소년을 <작은 어른과 큰 아이> 사이에 올려놓고 그들을 새롭게 규정하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 오지랖이 발동하여 또 글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정성글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환절기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부동산과 경제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