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4일 수요일

[◆ 비정규직 문제와 계열화로 전염되는 절망적 현실 [by 물파스]

(@ 이 글은 제가 그동안 이슈인에 올렸던 몇몇 글들과 또 그 중에서 가장 분량이 많았던
<일반의지(General will) - 계열화되는 사실과 사실들의 결합> 이라는 제목의 글 에서
중요 부분을 발췌하고 여기에 몇 가지 다른 내용을 추가한 글입니다. 상당부분 저의
주관적 견해가 섞인 글인데, 분량을 줄인다고 했는데도 너무 깁니다. ~ 죄송합니다. )



[◆ 비정규직 문제와 계열화로 전염되는 절망적 현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리고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을 전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하나의 상상을 해보면서 글을 시작합니다.

지금 눈앞에서 총알 하나가 날아가고 있습니다. ... 그리고 날아가는 총알을 기준으로 앞뒤 상황을
바라보니, 총알 뒤에서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사람은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였으며, 총알의 앞에는
과녁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은 게임(사격)을 의미합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상황을 바라보니 총알 뒤에서 방아쇠를 당기는 사람은 사냥꾼이었으며,
총알 앞에는 야생 멧돼지가 거칠게 뛰어다니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은
(멧돼지)사냥이 됩니다. 그리고 이번엔 날아가는 총알을 기준으로 앞뒤에 각각 군인들이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장면이 포착됩니다. ... 예상하시겠지만 이 상황은 (절대)일어나서는 안 되는
전쟁 상황인 것입니다.

<총알, 올림픽 메달리스트, 과녁, 사냥꾼, 멧돼지, 군인> ... 이렇게 각각의 사실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어떻게 결합되고 배열(계열화) 되는가에 따라서 그 의미는 다양하게 생성되기도
하며, 또 증폭될 수도 있습니다. ... 더불어 이러한 사실들의 계열화는 우리에게 <사실>과 <사고>와
<사건>을 구별할 수 있게도 만듭니다.

대기업 사원 김철수가 빨간 마티즈(소형차)를 타고가다 마포대교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습니다.
이것은 보통의 (교통)사고이며, 또 사실입니다. ... 그런데 김철수는 바로 얼마 전, 유력 정치인과
재벌이 연관된 불법 정치자금 비리를 폭로했던 <내부고발자라는 사실>과 본인 소유의 중형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티즈를 렌트했다는 사실> ... 그리고 하필 우연히도 사고 당일
<블랙박스가 고장나있었다는 사실>이 결합하여 계열화 되면, 이것은 하나의 <사건>이 됩니다.

다시 김철수로 돌아가 봅니다. ~ 이번에도 김철수는 마티즈를 타고가다 마포대교 아래로
추락사 했습니다. ... 그동안 회사의 가장 핵심 부서였던 전략기획실에서 근무하며 (비)자금 관리를
담당했던 김철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죄책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다 병원 종합검진에서
악성 종양이 발견되었고 본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김철수는 고민 끝에 비자금
비리를 폭로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비리 폭로전 마지막 휴가를 위해 혼자서 조용히 여행을
떠나려다 결국은 삶의 의미를 잃고 무기력하게 자살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나의 예를 더 들어봅니다. ... 앞의 두 시례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김철수는 마티즈를 타고가다
마포대교 아래로 떨어져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의 김철수는 결혼을 약속한 자신의 애인 수지가
명동의 한 호텔 앞에서 낯선 남자와 진한 키스를 나누면서 함께 차를 타고 가는 광경을 목격한
것입니다. 자신의 애인인 수지가 분명하다면 수지는 지금쯤 부모님과 함께 제주도에서 유채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불법 정치자금 폭로 문제로 머릿속이 너무나
복잡했는데 ... ... 분노와 절망 등 복잡한 심경에 오늘 만나기로 했던 언론사 기자들과의 약속을
모두 취소하고 흥분상태에서 수지와 그 남자가 함께 탄 차를 무리하게 뒤쫓다 과속(난폭)운전이
원인이 되어 사고가 난 것이었습니다.

위의 세 가지 (교통)사고는 모두 <마티즈를 타고 가던 김철수가 마포대교 아래로 추락사>한
사고입니다. 하지만 ... <내부고발, 악성종양(시한부 삶), 바람난 애인> 이라는 사실들이 김철수와
이웃 항으로 연결되면서 (교통.추락)사고는 <정치적 사건, 자살(생명의 가치), 사랑의 배신> 이라는
전혀 다른 의미(결과)로 계열화(사건화) 되어 생성되고 있습니다.

철학자들도 어려워한다는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이렇게 각각의 <사실>들이 이웃 항과 어떻게 연결되고 배열되는가에 따라 드러나는
다양한 계열화의 양상(의미)들을 보여주며 (내부고발자), (시한부 인생), (배신당한 남자) ... 라는
그 <차이의 반복(마포대교 추락)>이 생성하는 <사건의 변이>를 우리에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 마티즈가 마포대교 아래로 떨어진 교통사고라는 점이 반복되고 있지만, 각각의 사고에는
내부고발과 시한부 인생, 사랑의 배신이라는 <차이(사실)>들이 질료처럼 사용되어 계열화 되면서
그 결과는 각각 다른 의미로 <사건화>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작은 다툼에서조차 잘잘못을 따지고 또 화해를 시키는데 꽤 많은 세심함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애들 싸움이라며 그래서 그 <다툼>을 가볍게 취급하려는
시도는 향후 감당해야할 부담의 무게를 생각한다면 <애들 싸움>은 이제 단순한 섣부름을 넘어선
단계까지 왔다고 생각됩니다. ~ 또한 아이들도 엄연히 아이들만의 <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다툼은 그 <세계> 안에서만큼은 충분히 유치하지 않으며 나름의 의미가 부여됩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세계를 넘어 성인의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다툼의 양상들은 그 복잡성
측면에서는 아이들의 그것과는 비교조차 안 될 것이며, 무엇보다 성인의 다툼 안에는 관념적 우위를
점하는데서 끝나지 않고 <법의 현실과 (경제적)생존> 이라는 본인의 삶이 반영됨으로써 그 어느
누구에게도 함부로 양보를 권유할 수 없는 상태로까지 갈등과 대립은 평행선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다툼이 <개인 vs 개인>이 아닌, 그 개인들이 모인 <집단 vs 집단>의 다툼으로 확장된다면
이때부터는 <법> 이라는 공동체가 마련한 합리적 기준만으로는 해결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까지
진행되며 다시 <타협, 양보, 화해> 라는 관념적 속성으로 회귀하여야만 해결이 가능하다 할 것입니다.
특히 그 다툼의 중심에 <노동>이 자리하고 있을 때는 <타협, 양보, 화해>는 절대적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한 번 밥그릇에 빠져보니 뒤집어 엎을수도 없고, 또 다른 밥은
맛이 없어 먹기가 힘들더라 ~ " - 40년 경력의 흙집 미장쟁이의 직업이야기 ]

즐겨보는 TV프로 <극한직업>에서 평생을 흙집 미장일을 하던 분이 촬영하던 카메라를 보며
넋두리처럼 했던 말입니다.

인간에게 일(노동) 이란 밥의 동의어이며, 밥은 생명과 직결됩니다.
먹고사는 일이 전부인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바라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그것은 살기위한 처절한 몸부림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다툼의 상대보다
더 우월한 지위를 얻고자하는 것도 아니며, 단지 <먹고> ... 그래서 <살려고>하는 생존본능에 다름이 아닙니다.

우리 정부는 2007년 기간제법을 도입할 때 회사의 직원들이 갑자기 아프거나(질병) 육아휴직 같은
특별한 사유가 발생했을 경우에만, 즉! 그 업무 공백을 메울 필요성이 있을 때에만 기간제 직원을
한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었습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보통의 일상 업무에는 기간제
직원을 둘 수 없도록 규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2년 기간제를 허용(기간제법 통과)함으로서 그 기간(2년)
동안은 자유롭게 비정규직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현행법상 비정규직 2년을 채우면 기업은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1) 1년 미만 근무시: 퇴직금 지급의무 없음.
(2) 2년 미만 근무시: 정규직 전환의무 없음.

직원들이 아파서 업무공백 상태를 보완할 필요가 있거나 아니면 (중소)기업들이 자사의 주력업무 외에
(국제)법률이나 회계, 특허, 금융 같은 전문적 근로가 필요하지만 계속적 채용(상시근로)에는
비용 부담이 너무나 커서 그들을 일시적으로 사용(고용)할 수 있도록 만든 비정규직 법의 시작은
아쉽게도 기업들의 고용방식이 왜곡되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 근로자를 2년을 넘게 사용한다면
그것은 분명 일시적인 업무공백이 아니라 계속적인 업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당시 이 법을 만들 때, 위에서 언급한 대로 비정규직 기간을 1년과 2년 이라는 기준을 마련하여
각각 퇴직금 지급과 정규직 전환 기준을 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업측은 정규직 전환에 대한 부담 때문에 근로자가 2년의 기간을 다 채우기도 전에
계약을 파기 하거나, 퇴직금 및 야근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비용절감) 근로계약을
5개월, 8개월, 10개월 ...처럼 소위 <(근로)계약기간 쪼개기> 같은 편법을 사용하는게 다반사입니다.

OECD가 발표한 수치로 보면, (2014년 기준)한국의 (1년 뒤)정규직 전환율은 대략 11% 수준입니다.
조사 대상국 16개국 순위 중에 우리가 16위로 꼴찌였는데, 우리보다 한 단계 높았던 일본(15위)의
정규직 전환율은 17.5%, 14위 프랑스가 대략 18% 수준이었습니다.[@ 조사대상 16개국 평균 1년뒤
정규직 전환율은 35.7%, 3년뒤 정규직 전환율 평균은 53.8%,(한국 3년뒤 정규직 전환율 22% 수준)]

그동안 기업과 (친기업)언론들은 노동유연화의 성공사례로 독일의 <하르츠 개혁(Hartz-Reformen)>을
자주 언급했습니다. ~ 이들은 오늘날 독일 경제가 유럽의 리더로서 자리할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중에는
바로 하르츠개혁이라는 노동 개혁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어쩌면 비정규직이 더 많이 양산될수도 있는
한국형 하르츠 (노동)개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의 하르츠개혁 이면에는
노동개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야말로 절박한 구조적 원인이 있었습니다.
파산한 국가(동독)를 외상으로 구매한 것과 같았던 1990년 (동서독)통일은 이후 저성장과 극심한 실업난을
몰고 왔으며, 여기에 고령화로 인한 사회보장비용 지출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노동)개혁의 당위적 필요성이
사회전반에서 형성되었습니다. 결국 독일은 2003년 슈뢰더 총리 주도로 "아젠다 2010" 이라는
노동개혁(하르츠개혁) 을 발표하게 됩니다.
[◆ 독일 실업률: (1992년 7.5%), (1997년 11.5%), (2001년 9.5%), (2005년 12%) ... 이러한 실업률은
통일문제와 함께 유로존 출범 초기인 2,000년 초에 독일이 마르크화 환율이 너무 높은 상태에서
유로존에 가입했던 부분도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 마르크화 강세 => 수출부진=> 실업 ) ]

독일은 "하르츠개혁(Hartz-Reformen)" 이후 수치상으로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경제활동 참가율이 상승했고, 12%수준의 실업률이 4~5%대까지 낮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미하엘 교수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합니다.

[◆ "독일의 실업률이 낮아지고, 경제가 회복한 것을 하르츠개혁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많은데,
이것 또한 사실이 아니다. 2002년부터 현재까지 10여 년의 독일 성장은 유럽 통합에 따른 통화 절하 효과에 따른
것이다! ~ 일단 하르츠개혁은 '노동법'을 수정한 게 아니다 ... 실업급여와 연금제도를 손 본 것이 개혁의 골자다.
'실업급여'의 수급기간을 단축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미니잡(minijob)을 만들어 탄력적 저임금 일자리를 늘린
것이다. ~ 한국이 지금 '노동개혁'이라고 이야기하는 임금피크제나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법 개정,
노조의 협상력을 낮추는 등의 개혁이 아니라는 뜻이다." - [요르그 미하엘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유로화라는 화폐통합이 독일경제에 상당한 도움이(통화절하) 되었다는 미하엘 교수의 주장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하르츠개혁의 효과가 전혀 없었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하르츠개혁의 효과는 분명히 존재했었습니다. 하지만 통계수치의 개선이 꼭 질적 성공으로까지 이어졌다고는
장담 할 수 없습니다.

하르츠 개혁의 원래 취지는 실업급여만 받고 일을 하지 않는 미취업자들을 일터로 나오게 만들기 위한
압박용 목적이 컸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르바이트 개념과 비슷한 "미니잡(mini job)" 을 만들어
실업률을 낮추고자 했던 것입니다. 대신 미니잡은 월 450유로(대략 59만원)의 임금상한선이 정해져 있는데
부족한 급여는 정부가 지원해주고, 미니잡 노동자에게는 소득세를, 고용주에게는 사회보험료 납부를
보조(면제)해 주기로 한 것입니다 ... 또한 1년 이상 미취업 상태가 지속되거나 특별한 사유 없이 취업을
거부할 땐 하르츠 법에 의해 실업급여가 (단계적)삭감되기도 합니다 ... 더불어 독일정부는 사람들을 이렇게
일터로 나오게만 한다면 미니잡을 통해서 더 나은 일자리로 갈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 한마디로
미니잡은 "나쁜 일자리"에서 "좋은 일자리"로 가기위한 하나의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 장담했었습니다.

이러한 미니잡 정책으로 2003년 제도를 도입할 당시 약 598만명 이었던 미니잡 종사자들의 수는
2013년에는 733만명으로 대략 135만명 증가했고, 같은 기간 독일 사회보험 가입자 수는 232만명 증가하게
됩니다. 결국 10년간의 고용증가분중 약 60% 정도가 미니잡에서 발생한 것입니다.[▶(135/232 = 58%)]
하지만 미니잡 정책은 저임금 일자리만 확대시켰으며, 특히 청년들의 기회를 빼앗아 버렸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2010년 기준으로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를 해보아도 ... 미니잡 같은 파트타임 뿐 만 아니라
전일제 고용에서도 저임금 비율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이 같은 결과는 비록 고용률은 증가시켰지만
저임금을 비롯한 사회의 소득 불평등을 더욱 더 심화 시키기도 했습니다 ... 그러자 독일정부는 하르츠개혁의
부작용을 인정하고 그 대안으로 먼저 최저임금제를(8.5유로) 도입하게 됩니다.
[◆ 독일의 최저임금 도입 논의는 유럽연합에 가입한 동유럽 8개국 근로자의 거주이전의 자유가
2011년 5월 1일부터 전면적으로 허용된다는 부분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뜩이나 하르츠개혁(미니잡)으로 저임금과 함께 사회전반에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었는데,
여기에 임금수준이 낮은 동유럽 근로자들까지 유입된다면 독일 노동시장은 그야말로 "임금 덤핑(Lohndumping)"이
발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 한국이었다면 임금덤핑이 위기였을까요? ~ 아니면 기회였을까요? ]

하르츠개혁은 현재 독일 내에서도 "재개혁"(re-reform)이 논의 중입니다.
넘어지고 부딪혀서 찢어진 상처를 봉합하듯 실업률, 고용률 및 경제활동 참가율 등의 수치적 외과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 나쁜 일자리와 저임금, 소득 불평등(양극화) 같은 내과적 질병은 점점 더 깊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노동자 보호수준은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대표적으로 2002년 말 독일은 하르츠개혁을 추진하면서 근로자 파견에 관한 법률을 기업들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개정하게 됩니다. 당시 실업률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신규고용창출에 초점을 맞춘
(법률)개정이었는데, 이때 독일정부는 (기업들이 원하는 수준으로)규제를 대폭 완화해 주면서
대신 중요한 조건(반대급부)을 내걸었습니다 ... 바로 < "평등대우 원칙의 확대" > 였습니다.

독일의 파견 근로자에 대한 "평등대우 원칙"은 사실 하르츠개혁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2001년 근로자파견법 개정당시 도입되었는데 ... 파견근로자가 동일 사용사업주에게 연속하여 12개월
사용된 경우에는 그 사업장의 비교가능한 근로자와 동일한 근로조건을 보장할 것을 규정한 것입니다.
[(구)근로자파견법 제10조 제5항 ]

한마디로 파견근로자는 자신이 비록 비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파견되어 근로를 제공하는 사용사업장의
다른 (정규직)근로자와 동일한 근로조건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다시말해
철저한 <"동일노동.동일임금(gleicher Lohn für gleiche Arbeit)">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당시 정부의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르츠개혁 당시 독일정부는 이미 2001년에 존재했던 "평등대우 원칙"을 더 넓게 확대하자는
조건(반대급부)을 내걸면서 기업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파견)규제를 대폭적으로 완화해주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근로자파견에 관한 규제(ex.업종확대)는 대폭적으로 풀었지만, 동시에 (파견)근로자 보호에 있어서는
더 크게 강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번 밥그릇에 빠지면 뒤집어 엎기도 힘들고 다른 밥은 맛이 없어 먹기가 참 힘들다는
40년 경력의 흙집 미장쟁이의 말처럼 "노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결국 노동을 시장논리로만 접근하려는것은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앞에서도 언급했었지만 노동의 문제는 <타협과 양보와 화해>가 반드시 수반되어야만 그 해결이
가능하다 할수 있습니다. ... 그리고 독일은 이러한 문제의 초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한 국가의 노동의 문제에서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그동안 자국의 노동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그 역사적 흐름을 잠시만 살펴보겠습니다.

시대마다 기업의 형편과 변명은 늘 존재했었습니다.
일요일은 제발 좀 쉬게 해 달라며, 그래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을
서슬 퍼런 군사독재 권력을 향해 던지며 자신을 불태웠던 47년 전 전태일 열사의 희생은
한국사회에 노동의 주체성을 일깨워 주었던 가장 진보적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소장은 건의서 뒷면의 연서장들을 들쳐보고 나서 고개를 들었다.
“투쟁이란 건 파업을 의미하는 건가?” ~ 동혁이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말한다.
“파업도 포함됩니다.” ~ (중략) ~ “어쩌면 자네들은 혜택을 못 받게 될지도 모를 텐데?
돈이 생겨, 술이 생기는가? 도대체 뭘 바라구 이런 짓을 벌이나? 덮어놓고 불평, 불만을
터뜨려 보자는 식이로군.“

“우리가 못 받으면, 뒤에 오는 사람 누군가 개선된 노동 조건의 혜택을 받게 될 거요.”
“우리 노사 관계를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 이야기해 봄세. 자네들 의견을 존중해서
터놓구 얘기하구 싶군. 노가다는 솔직하랬다구. 얼마를 요구할 텐가? 자네들 심정을
다 알지. 우리 바꾸는 게 어떤가?“

“그 따위 말에는 대답하고 싶지 않소. 최소한 두 가지의 조건만이라도 확답을 하고
각서를 써 주시오. 두 가지 사항은 노임과 감독조에 관한 것 말입니다.“

동혁의 옆에 묵묵히 서 있던 3함바 고참 인부가 소장에게 달려들 태세로 말했다.
“당신에게 일러두겠는데, 10분 내로 감독조 새끼들을 우리한테 인도하라구.
안 되면 우리가 사무실로 밀구 들어가겠소!“ - (객지 中. 황석영. 1971) ]

훌륭한 문학 작품은 시대를 반영합니다.
이 작품은 황석영 선생님의 <객지(客地). 1971년> 라는 소설의 한 대목입니다.
1970년대 “아세아 건설”이라는 건설회사가 추진한 “운지 간척 공사장”이 배경입니다.
당시 우리의 노동현실과 노동자들의 투쟁과정을 너무나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그려내서
한국의 대표적인 <노동소설>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소설에서 비인간적 생존(노동) 현실을 감당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사측과 첨예한 대결구도로
발전하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타협파와 투쟁파로 갈립니다. 사측은 폭력배가 주축이 된
감독조와 경찰력을 이용해서 노동자들의 저항에 대응합니다. ... 이후 명문화되지 않은 사측의
회유책과 공작에 흔들린 많은 노동자들은 투쟁의 현장을 이탈합니다. 결국 동혁이 주도한 쟁의는
실패로 돌아가지만, 동혁은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위 대목에서 동혁은 현장소장에게 내일의 빛을 담아 얘기합니다.
< “우리가 못 받으면, 뒤에 오는 사람 누군가 개선된 노동 조건의 혜택을 받게 될 거요.” >
이것은 작가(황석영)가 동혁을 통해 미래 한국노동에 대한 희망을 얘기한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가 희망한 미래한국, 즉 2017년 한국의 노동현실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 존경하는 ‘아세아 건설’ 회장님 귀하. 저희들은 운지 간척 공사장의 일용 인부로 고용된
사람들입니다. 애초에 우리는 이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생각하고 말없이 일만 해왔습니다만.
그냥 참고 견디기엔 너무도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궐기하기로 하면서 몇 가지 건의 말씀을
드립니다. 노임을 법정 임금에 미달된 액수로 받으면서 게다가 간조가 보름 간격인지라,
현금 없는 대부분의 우리 부랑 인부들은 전표를 헐값에 팔아 일용품을 사든지 전표를
본 가격보다 싸게 함바의 숙식대로 치르고 있습니다. 서기들은 전표로 부당한 이윤을 취하고,
함바는 거기대로 노임을 착취합니다. 대부분의 객지 인부들은 함바와 서기, 그리고 그들이
경영하는 매점에 이삼천 원 정도의 빚을 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다른 일터를
찾아 뜨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가 없어서 묶여버린 것입니다. ~ (중략) ~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의 네 가지 문제를 시정해 주십사 건의하는 바입니다. ~ 첫째, 노임을 현재의
도급 임금과 같은 액수로 올려 줄 것. 단, 노동량에 상관없이 날품일 때에도 적용할 것.
둘째, 정확한 시간 노동제를 확립할 것. 셋째, 감독조를 해산시키는 대신 인부들이 교대로
자치 담당하게 할 것. 넷째, 함바를 개선하고 식당을 통합하여 회사가 운영할 것. 그래서
일일 전표를 식권과 직결시키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지불해 줄 것. ~ 위와 같은 우리의 요구가
실현될 때까지는 다음의 서명자들은 여하한 투쟁이라도 불사하겠음을 알려드립니다.
- 운지 간척공사 일용인부 일동 .... (객지 中. 황석영. 1971) ]

한국에서 노동운동은 곧 진보운동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 그리고 한국 노동이
2017년까지 걸어왔던 길은 말로는 다 표현 못할 고달픔과 처절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때 권위주의적 정권은 한국 노동운동에 과도할 정도의 <이데올로기>를 덮어씌웠습니다.
국가와 회사(자본가)에 대한 노동자의 정당한 요구는 빨갱이로 덧칠됐고,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쟁의 행위는 대부분 <불법>으로 규정되었으며, 불법은 다시 <폭력>이란 이름으로 명찰을 바꿔달고
대중에게 재생산 되었습니다.

◆ 그럼 여기서 잠시 질문을 하나 드려보겠습니다. ~ ~ ~ <“누가 빨갱이인가?”>

분단 이후 한국사회가 군사독재라는 잿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을 때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는
독재 권력의 강요와 선동으로 <악(惡)의 범용성>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집단(개인) 이라면 먼저 <공산주의는 무엇인가?> 라는 접근 방식을 사용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공산주의는 생산수단을 공유하자는 사상이며, 반면 이러한 문제가 있군!”> ... 질문은 이렇게
대상에 대한 다면적 평가로부터 시작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반공 이데올로기>라는
틀 속에서 이미 <빨갱이 = 악(惡)> 으로 규정해 버립니다. ... 따라서 이제 독재 권력은
<“누가 빨갱이인가?“> 라며 의심하고 대상만 선정하면 자신들의 앞길에 걸림돌이 될 만한
모든 것들은 순식간에 악(惡)으로 규정되어 처참하게 찢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 그리고 이때
(무지한)대중들의 자발적이며 열광적인 참여까지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사회가 파시즘의 징후에
매우 가깝게 다가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마녀사냥(빨갱이 사냥)이 강압이 아닌
흥분과 최면(선동)에 의한 대중의 자발성을 유도하는 형태를 취했다면 이것은 파시즘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아무튼 군사독재 시절 한국 노동의 외피에는 그렇게
빨갱이가 덧칠되었던 것입니다. ... 더불어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작동방식에 대해서 슬로베니아의
천재 철학자라는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은 <이데올로기적 전도효과> 라고 설명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가진 것은 <노동력> 뿐입니다. ~ 따라서 노동자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바로 <노동력 제공거부(파업)> 뿐입니다. 한마디로
노동자가 자신의 현재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파업을 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실정법은 파업의 조건과 절차를 엄격하게 따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파업)조건을 위반하면 노동자의 파업행위를 모두 불법으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과도하게
묻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실정법은 노동자 파업행위를 <형법상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하지만,
정당화 사유를 갖춘 때에만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논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파업은 범죄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이 현재 한국의 실정법이 한국의 노동을
바라보는 현실이며, 이렇게 범죄로 규정된 파업에는 다시 <폭력>의 이미지가 덧칠되어 대중을 향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 어떤 프레임을 부정하면 그 프레임이 활성화 된다 ... 그리고 프레임은
자주 활성화 될수록 더 강해진다. 이 사실이 정치 담론에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내가 상대편의 언어를 써서 그의 의견을 반박할 때,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상대편의 프레임이 더 활성화되고 강해지는 한편 나의 관점은 약화된다. 이는 진보주의자들이
보수 세력의 언어와 그 언어가 활성화하는 프레임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들의 언어가 아닌 우리의 언어를 써서 우리의 신념을 말해야 한다는 뜻이다. ]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조지 레이코프 / 외이즈 베리 출판. 2015) ]

예전에 여당의 유력 정치인이 우리가 국민소득 3만 불을 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노조의 쇠파이프> 때문이라는 발언을 해서 수많은 노동자들의 공분을 샀던 적이 있었습니다.
비정규 노동자가 800만 이라는 현실이 증명하듯 현재의 우리 노동현실을 외면한 여당 인사의
당시 발언은 <노조의 쇠파이프와 국민소득 3만불> 사이에 교묘한 프레임을 형성해 놓았습니다. 다시 말해
이러한 프레임은 우리가 반복하여 <노조>를 말할 때마다 국민들의 머릿속에서는 <노조 = 쇠파이프>가
계속 되새김질되어 폭력적 이미지가 자동적으로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정치적 수사(Rhetoric)속에 얼마나 파괴적이고 잔인한 속성이 은폐되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이념>으로 덧칠되었던 노조는 오늘날 민주화된 시대에는 <폭력>으로 덧칠되어
이미지의 교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 더불어 대학에서 공부하는 경제학 서적들은 어느새 1천 페이지라는
육중한 무게를 넘어서며 우리에게 조용히 다가와 수요와 공급을 얘기하고, 생산과 소비, 시장과 정부를 얘기하며
소득과 분배, 상품과 기업을 얘기 합니다. 또 성장과 경쟁을 얘기하고 무역과 환율, 은행과 화폐 ... 여기에
환경과 게임이론, 인간의 행동(경제) 까지 ... 이렇게 오늘날의 경제학은 한계를 모르는 암세포처럼 지속적으로
자기영역을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경제(활동)의 불변의 근간은 바로 사람의 <일(노동)> 입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 두꺼운 경제학에서 일(노동)을 언급할 때는 오직 딱 한 번, 바로 일(Labor)이 없는 상태인
<실업>을 논할 때 빼고는 거의 없습니다. 과거에는 빨갱이라는 <이념>으로 덧칠되었고,
그나마 민주화가 많이 진행된 시대에도 한국의 노동운동은 <폭력(적)>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결백을 증명하느라
많이 바쁩니다. 그런데 이제는 1천 페이지 분량의 경제학 교재에서조차 한 자리를 차지하려면 눈치를 봐야하는
신세입니다. ~ 한마디로 (경제)영역 확장의 가장 큰 공헌을 했던 <노동(일)>이 정작 자신을 알리기 위해 배분받는
활자는 가장 적은 양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도 <노조(노동운동), 권위주의, 민주주의, 이념,
쇠파이프, 프레임> 이라는 각각의 사실들이 생성하는 서글픈 노동의 계열화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대한민국의 노동법(노동관계법)은 놀랍게도 1953년 한국전쟁(6.25) 중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때 제정된 <노동관계법>은 미국의 와그너법과 일본 노동법을 모태로 만들어졌는데,
이 법은 당시 여야의 초당적 합의에 의해 탄생된 것입니다. 하지만 (1950년 ~1960년대)의 한국은
아직 산업화 이전의 국가였습니다. 결국은 당시 제정된 노동관계법은 현실적인 실천과는 무관하게
<“한국에도 근대적 노동법이 존재한다!”>라고 국제사회에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장식효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법(노동관계법)이 한국의 노동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기능했으려면
우리는 좀 더 많은 시간을 인내하며 차분히 미래를 기다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이후의 한국 상황은 군사독재라는 더 깊은 어둠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 와그너법(Wagner Act.) - 1935년에 미국에서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정해진 노동관계의 법.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 교섭권 및 단체 협약을 인정하고, 부당 노동 행위를 금지하였다. 1947년에
태프트하틀리법(Taft-Hartley法)에 의하여 수정됨.]

[◆ "공산주의자들은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질서를 강제력으로
전복시킴으로서만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언한다.
지배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전율케하라. 프롤레타리아들은 혁명에서
족쇄 말고는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세계를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 " <공산당 선언 87쪽> ]

1864년 런던에서는 최초의 국제적인 노동자 조직이 탄생합니다.
조직의 정식명칭은 <국제노동자협회(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인데,
바로 그 유명한 <제1인터내셔널(First International)>입니다. ~ 이러한 국제적 노동조직이 만들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모두가 잘 아시겠지만 바로 <칼 마르크스(Karl Marx)> 입니다.

2017년 기준으로 대략 170여년 전(@1848년 공산당 선언),
<노동자들이 잃을 건 족쇄뿐이며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에게 단결하라>는 마르크스의
이 전율적인 외침은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세계에 <노동의 담론>을 투척한 것입니다. 즉 세계는
마르크스 이후부터 노동을 바라보는 <시선의 전복>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한국에게는 그로부터
100년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박정희 (개발)독재체제시기. ~
특히 1970년은 한국 <노동운동 역사의> 첫 출발점 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70년은 바로 청계천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해입니다.

하루 평균 14~15시간의 노동과 한 달에 28일을 근무했던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마치 고문과 같았던 노동조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평화시장 노동자들은 만성 질병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사정 때문에 <“평화시장 여공은 시집가도 3년밖에 못 써먹는다!“>는 말까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 앞서 살펴봤듯이 산업화 이전에 만들어진 <노동관계법>에서 보장하는
자율적인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은 서슬 퍼런 유신독재체제에서는 전혀 행사되지 못했습니다.
이에 전태일은 홀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실태를 언론에
호소해 보기도 했고, 유럽이 19세기 중반에 국제적인 노동조직 <제1인터내셔널>을 조직했을 때,
한국에서는 100년보다 더 많은 시간이 더 흘러서야 겨우겨우 전태일이 평화시장 재단사 모임인
<바보회>를 만들어 계속해서 투쟁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소설 <객지(客地)>의 주인공 동혁이
실패했던 것처럼, 전태일의 투쟁은 국가를 상대로 그것도 군사독재 권력을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역부족 이었습니다. 결국 전태일은 죽음으로 항거를 다짐합니다. ~ 그리고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성냥불을 붙입니다.

불길은 삽시간에 전태일의 온몸을 감싸며 타올랐고, 그렇게 불길에 휩싸인 채 전태일이 외쳤던
비장한 한마디는 마르크스의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같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일요일은 쉬게 하라!“> 같은 처절함과 절박함 그 자체였습니다.
이때가 그의 나이 불과 스물두 살이었습니다.

병원에 실려간 전태일 열사는 울먹이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어머니 담대해지세요. ~ 내가 못 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주세요 ~”> 하고
마지막 유언을 남기며 그렇게 생을 마감합니다.

박정희 시대에 한국이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이는 전태일 열사와 같은 수많은 평범한 국민들의 희생이 가장 낮은 곳에서 든든한 토대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박정희 정권이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며, 이는 국가의 가장 상위법인 <헌법>을 위반한 것입니다. ...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 국민들은 <수단이 결과에 의해 정당화>되는 또 하나의 <혼돈의 계열화>를 목격하게 됩니다. ~ 다시 말해
한국과 박정희에 <군사쿠데타>라는 사실이 이웃항으로 연결돼 계열화되면 그는 헌정질서를 파괴한
독재자가 되지만, <고도의 경제성장> 이라는 사실이 이웃항으로 연결돼 계열화되면 박정희는 주식회사 한국을
성공적으로 이끈 존경받는 CEO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독재자 박정희>라는 사실과
<주식회사 한국의 존경받는 CEO> 라는 사실이 다시 이웃항으로 연결돼 계열화되면
이는 <국민적 딜레마>라는 이중화된 계열화의 양상이 새롭게 생성되어 쌓이게 됩니다.

화가(painter)는 자신과 함께하던 개가 아프면 가족애를 느끼며 개의 고통에 마음아파 합니다.
하지만 개의 자리에 닭이 온다면 그 순간부터 화가는 <생산>을 염려하는 <자본가>로 둔갑합니다.
이렇듯 계열화는 단순한 양상의 변화를 넘어 우리의 예측영역 바깥에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후 본격적으로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그러나 무려 47년 이라는,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노조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은
OECD 꼴찌에 가까운 10% 수준밖에 안 되며, 비정규 노동자가 800만 가까운 현실에서 정부와 여당은 노조 때문에
해고가 어렵다며, 그래서 <노동 유연화>라는 세계적 추세를 따라야만 경제가 살아난다며 (노동)개혁안을
국민들에게 들이밀고 있습니다. ...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무리 모든 경제주체들이 수긍하는 훌륭한,
또는 상당히 합리적인 대안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악어의 입처럼 법(노동)과 법적용 사이의 (현실적)간극이
계속해서 벌어져만 있다면 서글픈 <노동의 계열화>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해서 생성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려는 최근에 현실로 더 빠르게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 끝내 비정규직 우산 빼앗은 기아차노조
h ttp://news.nate.com/view/20170428n34492?modit=1493388399

기아차 노조가 끝내 분리 투표를 통해 비정규직의 우산을 빼앗았다.
조합의 정규직 근로자들이 “연대”보다는 “각자도생”을 택하면서 기아차 노조의
<1사 1노조>는 9년 만에 막을 내렸다. 기아차 비정규직의 처우는 더욱 열악해질
위기에 놓였다. ~ (중략) ~ 금속노조는 2006년 산별노조를 실현하고 정규직, 비정규직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1사 1노조> 원칙을 담은 규약을 채택했다. 기아차지부는
2008년 완성차 정규직노조 가운데 처음으로 사내하청지회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1사1노조를 건설하며 <연대 투쟁>의 모범이라는 평가를 노동계에서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기아차 노사가 사내하청 비정규직 1,049명을 정규직으로
신규채용하기로 합의한 것과 관련해 사내하청분회가 “나머지 2,000여명은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라는 것”이라고 반발하며 독자 파업을 실시하는 등 지부와 갈등을 빚었다.
갈등이 봉합되지 않자 지난 6일 지부 대의원회의에서 한 정규직 대의원이 1사1노조 유지에
대해 조합원 의견을 묻는 총투표를 하자는 안건을 내면서 총투표로 이어졌다. ]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최적화된 작동원리는 바로 <수직적 복종과 수평적 경쟁>입니다.
그리고 그 (수평적)경쟁의 진짜 본질은 바로 <없는 놈들끼리!> ~ 라는 식은땀 나는 구호입니다.
<99% 들의 경쟁!> ... 그래서 노조에게 <연대>는 바로 생명입니다. 그런데 (정규직)노조가 업고가도
모자를 판에 자기 자식(비정규직)을 거리에 그냥 내다버린 사건이 지난 2017년 4월 28일 한국의 대표
노조인 기아자동차에서 일어났습니다.

정규직, 비정규직, 귀족 노조, 산별 노조 ... 명칭과 구분은 무엇이든 좋습니다.
결국 문제는 (노동)법과 그 법이 현실에서 적용될 때의 간극의 크기를 더 이상 좁히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허탈한 <노동의 계열화>가 생성된 것입니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후 우리에게는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 한국의 노동운동은 주어진 시간을 다시 반납하고 있습니다.

◆ 그럼 여기서 잠시 <대한민국 헌법 제32조 1항, 3항>을 살펴보겠습니다.
h ttp://www.law.go.kr/lsEfInfoP.do?lsiSeq=61603#

[1] -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
[3] -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

<비정규직> 이라는 말속에는 이미 술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한 수식어는 필요치 않지만,
그들(비정규직)이 명문화된 법과 현실적 법적용의 괴리 안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고 있는지는
상당한 설명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 우리 헌법은 국가가 노동자들이 적정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명시합니다. 또한 노동자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아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 하지만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동일노동을 하고서도 거의 절반 수준의 임금밖에 받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노동)현실입니다. 더불어 원청과 하청의 노동구조에서는 애초부터 인간의 존엄성은 제외하고 시작합니다.

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에서 크레인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고로 6명의 근로자가
생명을 잃었고 25명의 근로자가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바로 <근로자의 날>이었습니다.
또한 사상자 전원 모두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었습니다. 삼성중공업 소속 정규직들은 대부분
가족들과 휴일을 만끽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죽음은 국민들에게 더욱 안타까운 소식으로
전해졌습니다. ... 정규직들은 노동절이나 공휴일에 쉬어도 임금이 지급되며, 만약 일을 하더라도
가산임금이 지급됩니다. ~ 하지만 하청 노동자들에게는 <근로자의 날>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문제는 법과 그 법이 적용되는 현실적 간극의 크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노동의 퇴행적 계열화>, 혹은 <노동의 음(-)의 계열화>는 지속적으로 생성될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나는 인류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을 제기해 왔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곧 <문제의 발견>이 해결이라는 뜻인데, 그렇다면 <법과 법적용의 간극> 이라는
문제의 발견은 마르크스의 말대로 우리도 곧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일까요?

오늘날 한국 경제에 절대적 강자로 군림한 재벌 대기업에는 비정규직이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예 채용하지 않기때문에 처음부터 논란의 소지를 없애놓은 것입니다. 대신 재벌들은 그 인력들을
대부분 아웃소싱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 기업 입장에서는 아주 효율 높은 고용전략입니다.
하지만 한국경제 전체로 보면 고용의 질이 저하되는 것입니다. ~ 무엇이 옳은 겁니까?
한국 경제성장의 절대적 역할을 담당하고있는 재벌 대기업의 효율높은 고용전략이 잘못된 것일까요?
아니면 한국경제 전체의 고용의 질이 떨어지는 노동시장의 구조가 잘못된 것일까요?

솔직히 저도 "정답은 이것이다!" ~ 라고 자신있게 말하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래서 처음 글을 시작할때 저는 <타협과 양보와 화해> 라는 비겁한 뉘앙스로 저 나름의 도피처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나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문제의 원인을
사실과 사실들이 이웃항으로 연결되어 생성하는 <계열화>의 퇴행적 현상이라고 저는 진단하고 있습니다.

과거 KTX의 경우를 살펴보면 ~
당시 비정규직 노조였던 여승무원 노조는 철도공사측에 직접 채용을 요구했었습니다.
하지만 공사측은 정규직 채용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 노조는 <연대가 생명>과 같습니다.
그래서 만약 그때 KTX 정규직 노조가 나서서 이렇게 말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여승무원 정규직 채용으로 수반되는 추가 비용상승분은 우리 정규직 노조가 분담하겠다!
그들의 고통을 우리가 함께 나눠갖겠다! ~ 그러니 여승무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라!"

그러나 현실에서 KTX 정규직 노조는 관객의 입장으로 여승무원 (비정규)노조를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앞서 언급한 <타협과 양보와 화해> ... 그 어느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현재 우리 한국사회에서 드러나고 있는 노동의 문제에서 가장 큰 오류가
<타협과 양보와 화해>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기업과 (정규직)노조와 정부 등이
각자의 고루한 <자기역할(?)>에만 충실하고 있는 상황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기업은 효율을 지향하고 !
노조는 현재의 안위를 보존하며 !
정부는 법과 규제만을 양산한다 ! ........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그에 걸맞는 최선을 다한다고는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모두는 거리에서 죽어가는 노숙자를 바라보기만 하는 <방관자>로서만 존재할 뿐인 것입니다.

비정규직, 고용비용, 정규직 이익침해, 정부(정당) 지지율 같은 각각의 수많은 사실들은
서로에게 어떻게 이웃항으로 연결되어 계열화 되느냐에 따라서 한국사회 노동의 문제는
순간마다 자기 자식을 버리는것과 같은 충격적인 (새로운)계열화가 지속적으로 생성될 것입니다.

[◆ "한 번 밥그릇에 빠져보니 뒤집어 엎을수도 없고, 또 다른 밥은
맛이 없어 먹기가 힘들더라 ~ " - 40년 경력의 흙집 미장쟁이의 직업이야기 ]



[@ 밥그릇을 두 번 엎었던 경험자에 입장에서 보면 한국사회에서 노동문제는 정말 풀기가 어렵습니다.
환절기라서 그런지 독감이 유행인가 봅니다. ~ 건강들 잘 챙기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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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과 경제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