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6일 화요일

◆ 또 하나의 냉전, 한.미.일 관계와 그 이상의 경계에서 - (5) 국제 정치편 [by. 물파스]


(@ 한일 간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뜻하는 '지소미아(GSOMIA)' 종료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입니다. ~ 한국과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치밀한 수싸움을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과 미국은 각각 총선과 대선이라는 본격적인 선거모드에
돌입한 상황입니다. ~ 북미간 비핵화 협상 또한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미국이 왜 그렇게 지소미아 파기에 대해 우려하는지,
미국이 왜 그렇게 황당한 수치의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하는지 ... 이에 대한 근본적 이유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 분량이 너무 많아 이야기는 5편으로 나눠서 게시물이 새로
업데이트 될 때마다 한 편씩 올려볼 생각입니다. ~ 아래는 도움 받은 자료와 각 편마다 들어있는
중심내용을 소개한 것입니다.)

<@ 도움 받은 자료들 >

(국제분쟁의 이해/ 조지프 나이/ 한울 출판)
(거대한 체스판/ Z.브레진스키/ 삼인 출판)
(포스트콜로니얼/ 고모리 요이치/ 삼인 출판)
(일본 전후 정치사/ 이시카와 마스미/ 후마니타스 출판)
(결정의 본질/ 그레이엄 앨리슨, 필립 젤리코/ 모던아카이브 출판)
(인간.국가.전쟁/ 케네스 왈츠/ 아카넷 출판)
(냉전의 역사/ 존 루이스 개디스/ 에코리브르 출판)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 이용인, 테일러 워시번/ 창비)
(전환시대의 논리/ 리영희/ 창비)
~ 그 외 한국은행, KDI, 국회 등

(1) 경제편 - 일본의 경쟁력과 위기
(2) 국제정치 - 패전국 일본에 대한 GHQ 점령초기 상황
(3) 국제정치 - GHQ 점령기의 일본 신헌법 제정과정과 자민당 탄생과정
(4) 국제정치 - 일본의 대미추종과 자주파 그리고 신(新)미.일안보조약
(5) 국제정치 - 미국의 세계대전략(Grand Strategy)의 변화 과정과 동맹(alliance)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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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지난 게시물중 <반일 불매운동 근황>이라는 게시물에 올려져 있습니다.
2편: 지난 게시물중 <1991년, 인터넷의 발명과 인터넷 브라우저 전쟁>이라는 게시물에 올려져 있습니다.
3편: 지난 게시물중 <국민이 묻는다 참가자들>이라는 게시물에 올려져 있습니다.
4편: 지난 게시물중 <남편 용돈 최신 트렌드>라는 게시물에 올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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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나의 냉전, 한.미.일 관계와 그 이상의 경계에서 - (5) 국제 정치편
- 미국의 세계대전략(Grand Strategy)의 변화 과정과 동맹(alliance)의 의미

국가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국가들이 모인 공간이 바로 국제 정치의 세계이며, 국가들은
개인(국민)의 이성이 아닌 국가이성(Reason of State), 즉 <레종 데타(raison d’État)>의 지시를 받고
행동합니다. ... 따라서 국가 간의 동맹은 <레종데타와 레종데타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는 레종데타들의 결합이라 할 수 있는 <동맹(alliance)>, 특히 한.미.일 동맹관계와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특히 동아시아 전략변화) 과정에 대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전후(해방 후), 한.미.일 관계의 거의 대부분은 <미국의 세계전략(동아시아 전략)>이라는 큰 틀
안에서만 움직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 그중 한.일 관계의 공식적 시작점은 박정희
정권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에 형성된 한.일 관계가 냉전체제하에서의 한.일 관계의 기본적
성격을 규정하게 됩니다.

계속 언급했었지만, 전후 일본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의해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해야만 했습니다. ~ 그렇다면 왜 일본이었을까? ~ 패전 후, 일본이 아무리 굴욕적인 미국의
점령정책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일본은 1853년 미국의 해군 제독 페리의 통상압력에 의한 ‘개국’
선택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항복 선언까지 대략 백년 가까운 시간동안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
경쟁하면서 이미 상당한 수준의 국가경쟁력을 쌓아놓고 있었습니다. ... 이를테면 국민들의 높은
교육수준과 산업기술력, 관료조직 체계, 기업들의 기획.관리 및 연구개발 능력 등을 감안했을 때
당시 아시아에서 일본을 대체할만한 마땅한 국가가 없었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 이 때문에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한일 관계는 지금까지 미일 관계의 하부 시스템, 또는 부속 체계로서만
작동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따라서 <한일 관계>는 <미일 관계>라는 상위의 틀 안에서만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1961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경제발전에 모든 역량을 집중합니다. ... 천연자원은 물론
산업기술력과 도로, 항만, 전기, 통신, 철도 같은 산업인프라 그 어떤 것도 준비되지 않았던 당시의
한국 현실을 감안한다면 박정희 정권이 경제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건 너무나 당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때문에 외부의 자본유입 없이 자력으로 경제가 발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정권이 생각했던 건, 바로 일본의 경제협력 이었습니다. ~ 여기엔 박정희의
친일성향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장면과 박정희는 식민지시대 일본인들 통치하에 생활했다.
장면은 가톨릭계 중등학교 교장이었으며, 박정희는 만주, 일본 사관학교 졸업 후 일본장교를 지냈다.
두 사람 모두 식민지 정권에서 출세했고, 일본어와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을 알았으며, 많은 일본인
친구들을 사귀었다. 이승만에 있어서 일본은 적이었으나, 이 젊은 두 지도자들에게 일본은 하나의
본보기였다.“ - (한국과 일본: 정치적 관계의 조명. 1985. 이정식) ]

냉전체제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관계개선이 없다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보유지가 매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일본에게 일종의 동맹국으로서의 ‘책임분담’을
요구하게 되었고, 한일 관계는 이렇게 미국이 만든 <큰 틀(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안에서 규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보의 책임을 일정부분 나눠가진
일본은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가장 먼저 <경제협력>에 힘을 쏟습니다. 여기에 때마침 일본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박정희 정권은 <한일 국교정상화>를 서둘렀고, 한일 교섭은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 대신 과거사(식민지 지배청산) 문제와 영토분쟁(독도) 같은 한일
간의 핵심적 쟁점 사항들은 미국의 큰 틀과 일본의 경제협력에 가려져 외롭게 방치되어버립니다.
이렇게 박정희 정권 당시의 한일 관계는 미국의 전략적(동아시아 전략) 이해가 상당부분 반영되어
유지됩니다. (@ 물론 이후의 한일 관계도 미국의 큰 틀 안에서 작동되었습니다.)

이어서 1969년 11월 미국의 닉슨 대통령과 일본의 ‘사토 에이사쿠(자주파, 요시다 계열)’ 총리는
공동성명에서 <한국조항>을 추가했는데 그것은 <“한국의 안전이 곧 일본의 안전과 직결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 이는 만약 한국이 적(敵.소련.북한,중국 등의 공산권)으로부터 공격을 받는다면
일본은 그것을,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미국은
이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내 미군기지(주일미군)와 그 설비들을 즉각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일본이 최대한 협조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 이후 1975년 미국의 베트남전 종료, 같은 해
4월 김일성 북경방문과 전쟁 도발적 발언, 카터의 미 지상군 철수선언, 비무장지대(DMZ) 북한 땅굴
발견 등의 일련의 사건과 사태들은 한국과 일본이 <지역안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하여 서로간의
협력과 이해를 증진시킬 수밖에 없는 당위적 계기를 만들어주었습니다. ... 냉전시대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협력과 갈등을 반복하며 이어져 오다가 1990년대 초 공산진영의 붕괴,
즉 <탈냉전>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 이에 따라 미국에게는 탈냉전 시대에 맞는 새로운
세계전략이 요구되었고, 한국과 일본 또한 관계의 재설정을 필요로 하는 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냉전시대가 종식되었고(탈냉전), 세계는 ‘미국과 소련’의 <양극체제>에서
미국 중심의 <단극(일극)체제>로 힘의 전이가 일어납니다. ~ 이는 미국에게 수많은 동맹국들과의
동맹관계를 새롭게 조정해야할 필요성을 안겨주었습니다. 물론 여기엔 한국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2009년 <한.미 동맹을 위한 공동비전>에서 한국과 미국의 동맹관계는 북한 위협을 억지하는 단순한
군사동맹에서 ‘한반도를 넘어서 지역안정과 글로벌 위협에 대처‘하는 소위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한.미 동맹을 새롭게, 그리고 발전적으로 재규정합니다. [@ ‘포괄적 전략동맹’은 한.미 관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 미국과 일본(고이즈미 정권)은 우리보다 빠른 2005년 10월 29일
<미.일 동맹 – 미래를 위한 변혁과 재편>이라는 공동문서에 서명을 했는데 ... 이는 과거(1960년)
기시정권 때 체결했던 <신(新)미일안보조약>에 새로운 전략이 추가된 것이었습니다.(확장판) ~
이전까지만 해도 미.일 안보조약에 포함된 지역은 일본과 극동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확장판에서는
“미.일 동맹 관계는 글로벌 과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협력한다.”로 수정됩니다. 이는 미.일 간의
군사협력의 범위가 극동에서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냉전 시절 한국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절대적 조건은 바로 <한.미 동맹>이었습니다. 그런데
탈냉전시대를 맞이한 오늘날의 국제정치질서는 미국을 정점에 두는 <단극체제>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 이것은 냉전시대 형성된 동맹관계의 성격변화가 불가피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국을 예로 들면, 한국이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발생하는 ‘연루의 위험과 방기의 공포’,
‘자율성 제한’, ‘비용분담증가’ 같은 소위 <동맹 비용>과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이득>의 비교가
냉전시대 때와 탈냉전 시대인 지금의 시점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 한국입장에서 ‘연루의 위험과 방기의 공포’는 일종의 딜레마입니다. ~ 연루의 대표적 사례는
한국군의 해외파병과 사드배치 문제입니다. 국내적으로 찬반대립이 심해 국민들의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미국과의 동맹관계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 “한국과 미국은 동맹 관계이므로 한국은
미국이 계획하는 일에 참여하라“ ~ 국가안보의 핵심부분을 세계 최고수준의 무기체계를 보유한
미국에 의지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어쩔 수없이 미국의 세계전략(동아시아 전략)에 <연루>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 미국의 요구를 거절한다면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는 <방기의 공포>가
발생합니다.]

냉전의 해체로 세계는 벌써 30여 년째 탈냉전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 한국(남한)은 여전히
‘북한과의 대립’ 이라는 냉전모드를 지속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그렇다 하더라도 단극체제하의
<한.미 동맹의 성격변화>는 필연적인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냉전시대 미국이 동맹을 필요로 했던 이유는 아시다시피 공산진영, 특히 소련의 팽창위협을
억지하고 미국의 이익을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소련의 팽창위협이 사라진
지금에도 미국은 여전히 다수의 국가들과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 냉전시절 미국에게
‘소련’은 그 존재 자체가 <구조적 위협>이었지만 지금은 그러한 <구조적 위협(소련)>이 대부분
소멸되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동맹유지를 원하는 국가들 모두에게 동맹우산을 제공해야할
동기가 현재로서는 거의 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아직까지 많은 국가들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려는 걸까? ~ 그것은 아마도 <미국의 이익>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이것은 <◆“이제 미국은 자국의 필요에 따라 동맹 파트너를 일방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탈냉전 시대인 지금의 세계가 미국중심의 단극체제하에 놓인 상황에서
<(한.미)동맹의 성격변화>의 본질을 파악하려면 미국의 세계전략, 즉 <대전략(Grand Strategy)>을
반드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대전략(Grand Strategy)은 장기적, 거시적 측면에서의 <국가이익>을 먼저 규정하고 ... 그렇게
규정한 국가이익에 위협이 되는 모든 요인을 파악하여 다양한 정책수단 및 확실한 대응을 체계화한
<최상위 안보전략지침>입니다. ~ 대전략은 <국가이익>을 넓게 설정하면 할수록, 위협요인 또한
비례적으로 커지게 됩니다. 때문에 대응 전략에 더 많은 자원을 동원해야하고 또 배치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 북한을 위협요인으로 상정하면 이제 북한과 거래하는 국가 및 (초국적)기업들을 감사하고
정보를 수집해야하며, 그들 국가 및 (초국적)기업들과 거래하는 또 다른 연계 그룹들을 감시해야
합니다. ... 그러다보면 종국에는 수집해야할 정보와 감시대상이 엄청난 수로 증가하게 되고, 또한
그렇게 증가한 대상들의 가치(정보가치)를 판별하는 문제까지를 감안한다면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더 많은 군사력과 경제력, 치밀한 외교력과 정보수단 등이 총 망라되는
것입니다. ... 따라서 <대전략(Grand Strategy)>은 최초의 설정을 어떻게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1980년대 후반, 미국은 자신들의 최고의 정보력과 외교력으로 냉전의 해체를 예감합니다. 이에 따라
미국 의회는 ‘한.미 동맹’을 포함한, 아시아지역에서의 미국의 모든 동맹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동맹관계 재검토)>를 요청하기 시작합니다. ~ 상원군사위원회 ‘넌’ 위원장과 공화당의
‘워너’ 의원은 유럽지역의 주둔미군, 주일미군, 주한미군 및 해외주둔 미군속(군무원) 유지 경비 등에
관한 4개의 법안을 하나의 일괄법안으로 수정제출 하였고, ‘넌-워너’ 수정법안에 의거해 국방부는
1990년 1차보고서를, 1992년 2차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합니다. 이를 <넌-워너 보고서>라고 합니다.
이후 미국의 <대전략(Grand Strategy)>에 가까운 보고서들이 계속 발표됐는데, 클린턴 행정부시절인
1995년 <나이 보고서(Nye Report)>와 1998년에 국방부가 발표한 <동아시아전략보고서>가
대표적입니다.

부시 행정부시절(아버지 부시.George H. W. Bush)인 1990년 4월에 미 국방부가 의회에 제출한
<1차 동아시아전략보고서>는 냉전해체 이후의 미국이 자신들의 동맹전략에 대한 입장을 처음으로
정리한 문건입니다.(특히 아시아 국가들과의 동맹관계) ... 당시 보고서에서 부시행정부가 강조했던
대전략(Grand Strategy)의 핵심은 탈냉전시대 세계의 일극(pax americana)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한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과연 어떠한 전략(동맹관계)을 가져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데 ~ 이를
직관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미국의 압도적 힘의 우위만이 세계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 - (미국유일 우월전략)>

미국이 모든 잠재적 경쟁 상대국(주로 강대국)들을 압도적인 힘의 우위로 제압할 만큼의 충분한
역량을 키워야만 평화가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경쟁 국가들의 부상은 국제질서의 가장 큰
위협이자 동시에 미국의 최대 위협이며, 이는 자칫 전쟁발발의 위험으로까지 전이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이들 경쟁 국가들과 단순히 평화를 유지하는 차원을 넘어선 그 이상의 것(힘), 다시 말해
미국의 압도적인 정치, 군사, 경제적 우위로 잠재적 경쟁 국가들이 미국에 대한 도전 자체를 아예
시도조차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1992년 보고서(@방어지침) 또한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어떠한 국가도 잠재력 있는 미래 경쟁자로 부상하지 못하게
미국의 전략은 다시 집중되어야 한다.” - (New York Times. March 8. 1992) >

미국의 대전략(Grand Strategy)을 파악하면, 미국이 필요로 하는 동맹의 속성은 쉽게 도출됩니다.
잠재적 경쟁국가들(중국, 러시아,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을 가장 큰 위협이라 인지했던 미국이
그들의 출현(부상)을 최대한 억지하기 위해 세웠던 동맹전략의 핵심 골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나토(NATO)를 통해 러시아 견제와 독일의 독자적인 대외정책을 차단하고,
중국 견제와 일본 통제를 위해 ‘미.일 동맹’을 맺고, 걸프 지역의 사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과 후견관계를 유지한다.“ >

이와 같은 핵심 골격은 ~ 유럽, 중동 그리고 아시아를 포함, 사실상의 전 지구적인 영역이 모두
미국의 영향력아래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더불어 미국의 힘에 의한 우월전략에서 지역적 갈등이나
인종갈등, 환경, 종교 및 인권과 난민 같은 인도주의적 문제 등은 이제 더 이상 미국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다만 경쟁국 및 동맹국과 연관되어 세계패권 유지에 영향이 있을 때에만 미국은 비로소
지역갈등이나 인도주의적 문제 등에 적극적 개입의지를 보입니다. ... 냉전해체 이후, ‘소련’이라는
확실한 적(敵)이 사라지고, 이제는 그 빈 자리를 <경쟁국>이라는 존재가 차지함으로써 미국에게는
<적(敵) 개념>의 선명성이 상당히 흐려진 상황입니다. ~ 따라서 미국은 자신들의 압도적 힘의 우위,
특히 군사력을 탈냉전 시대에 맞게 재설정을 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했는데, 이는 냉전시기 소련의
팽창위협을 억지하기 위해 독일, 일본, 한국에 집중되었던 전진배치 병력을 재조정해야 하는 문제로
이어졌고, 그중에 가장 큰 규모로 병력 재조정을 고려했던 국가가 바로 한국이었습니다. ~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한.미 동맹의 성격변화(관계의 재설정)> 문제로 이어지게 됩니다.
(@ 이것이 무려 30여 년 전의 보고서 내용입니다.)

1990년 <1차 동아시아보고서>는 미군병력 감축과 전진배치의 필요성에 대한 재고를 주장합니다.
미국의 국내적 압력(특히 의회)과 동맹국의 경제성장과 같은 몇몇 조건들은 탈냉전 시대를 맞이한
미국에게 동아시아 지역 내의 새로운 안보환경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으며, 이는 결국 돈의 효율성
문제로 환원됩니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패권유지) ... 또한 당시 지상군 전진배치의 상당수가
한국이었기 때문에 현실적인 동아시아 안보재설정 대상의 1순위는 <한.미 동맹>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보고서에는 주한미군에 대한 한국 측의 기여, 즉 <방위비 분담금 증액>에 대한 요구와 함께
<미군감축>에 대한 내용도 함께 포함하고 있었는데, 이는 동아시아에서 <주한미군의 역할>을
새롭게 규정하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 따라서 과거 주한미군의 전통적 역할이었던
<지역 균형자 및 최종 안보 보증인>에서 단순한 <국지적 안정화>로 주한미군의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주장합니다. ~ 결국 <보증인>이라는 단어를 삭제함으로써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의
안보를 더 이상 보장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보고서는 반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동북아시아 지역의 갈등의 부재를 미국이 보장할 수는 없지만,
적대 행위를 국지화, 최소화함과 동시에 미국에게 갈등 해결에 필요한
외교적 레버리지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 (1차 동아시아전략보고서. 1990) >

정리해보면 ~ 미국은 한국 안보의 최종 보증인 역할에서 벗어나야하며 만약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그 분쟁의 확산을 방지하고 최소화, 국지화하는데 주한미군의 역할을 한계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보고서는 북한의 위협을 과소평가 하거나 외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는 않습니다. ~ 대신
주한미군이 아닌, <주일미군>이 북한위협을 억지하는데 훨씬 더 효율적이라 주장합니다. ... 그러나
이러한 <넌-워너 보고서. 1990. 1992>의 계획(주한미군 감축 및 역할축소)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유보됩니다. <넌-워너 보고서>는 탈냉전 초기, 미국의 동맹전략의 방향성을 알려줌으로써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분명한 것은 북한 위협에 대한 억지력의 상당부분이
한국의 경제성장과 맞물려 점진적으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 이를테면
핵을 제외한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에 대한 억지력은 전적으로 한국이 책임져야 한다는 부분입니다.

<넌-워너 보고서. 1990. 1992> 이후, ~ 1995년 <나이 보고서(Nye Report)>는 클린턴 행정부의
(안보)대전략을 <개입과 확산> 전략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 이 전략의 핵심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미국의 안보와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 <자유시장경제의 확산>이 필수적이어야 하고,
그것은 <지역 안보환경의 안정> 없이는 불가능 하다고 주장합니다. 더불어 지역안보의 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동맹 간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개입과 확산> 전략은 과거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는 큰 전쟁이 거의 없었다는 경험에 비추어, 오늘날 강대국들 상당수가 민주주의
국가들이거나 민주주의로 이행중인 국가들이라는 점에서 강대국들 사이에서는 대규모 전쟁이나
갈등이 촉발될 가능성이 낮다고 보며, 대신 약소국들의 군사도발과 소규모 국지적 분쟁 등을 오늘날
지역안보의 실질적 위협이라고 보고서는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클린턴 행정부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에게 실질적 위협이 되는 요소로 약소국들의 군사도발, 이를테면 <북한 핵보유> 등을
꼽습니다. ~ ~ 결론적으로 미국은 지역의 안보환경을 안정화 시키는데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적 자유시장경제공동체>가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최대한 힘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개입과 확산> 전략의 핵심내용입니다.

앞서 보셨듯이 <넌-워너 보고서>가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역할(특히 주한미군)을 축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 <나이 보고서(Nye Report)>는 반대로 동아시아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했습니다.
이는 한국, 중국, 대만과 같은 개도국들의 경제성장이 미국 경제와 연관되어 그 비중이 추세적으로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동아시아 지역의 안정적 안보환경과 경제성장이 미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에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강조하는데 ~ 특히, 동북아 안정의 핵심을 <한반도>라고
규정하고 이에 따라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합니다. ~ <넌-워너 보고서. 1990. 1992>가
한반도의 갈등을 국지적 차원으로 격하시켰다면, 클린턴 행정부는 한반도의 안정을 동북아 안정의
핵심이자 필수요인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클린턴 행정부의 <개입과 확산> 전략에 가장 방해가 되는 요인이자, 동시에
동아시아 안보에 심각한 위협요인이 됩니다. 여기에 북한의 재래식 군사위협까지 더해지기 때문에
주한미군의 주둔필요성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보고서는 주장합니다. 1990년의 <넌-워너 보고서>가
북한의 재래식 군사위협을 전적으로 한국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 <나이 보고서>는
주한미군의 계속적, 주도적인 역할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철수나 감축계획은 없어야하며,
무엇보다 <전시작전권 전환>같은 문제는 한국군이 지금보다 더 현명하고 성숙(maturity)해진 미래
어느 시점에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주장합니다. ~ 그런데 몇 년 뒤, 미국의 대전략에
큰 변화를 가져온 ‘초대형 사건’이 터져버립니다. 부시(George Walker Bush. 아들부시) 행정부 출범
초기였던 2001년에 일어난 <9.11테러>입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본토가 공격당한 그야말로 충격적인 테러사건이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납니다. ~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과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워싱턴)을 대상으로
항공기 자살 테러가 일어난 것입니다. ~ ~ 9.11 테러이후, 미국의 안보 대전략(Grand Strategy)은
전면적인 대변환을 계획합니다. ~ <치명적(lethal), 경량화(light), 이동성(mobile)>을 국방 변환의
중심적 지침으로 삼고 해외주둔 미군병력(특히 전진배치 지상군)에 대한 재배치 계획을 수립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전략적 유연성 계획>입니다. ... <전략적 유연성>은 말 그대로 해외주둔
미군을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라 언제든지 유연하게 활용하겠다는 의미인데, 주둔국의 동의 없이도
미군이 신속하게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주한미군’ 또한 미국이 원하면
언제든지 한국을 떠나 다른 곳에 배치될 수 있는 것입니다. [◆ 부시 행정부시절 미 국방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Rumsfeld)’와 그의 추종그룹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주한미군을
국제 분쟁지역(ex. 중동, 남중국해)에 적극적으로 활용(파견)하려는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하지만
미.중 간의 군사적 충돌 같은, 다시 말해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는 다른 나라들의 분쟁에 개입될 수
있다는 위험 때문에 한국정부는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도입에 거부의사를 밝힙니다. 그러나 결국
2000년대 중반 한미 양국은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를 합니다. 합의 내용은,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라 ‘주한미군’이 한국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데 한국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파견 병력이
다시 한국으로 귀환할 시에는 양국 간 논의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이는 앞서 언급했던
‘연루의 위험과 방기의 공포’의 전형적인 사례였습니다.]

9.11테러 이전까지 미국의 안보전략을 지배했던 기본 방침은 고정된 적들만 위협으로 간주한다는
<위협기반 전략> 이었습니다. ~ 그러다가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전략적 유연성’과 함께 내세운
전략이 <역량기반 전략>입니다. ~ <위협기반 전략> 하에서는 ‘적(敵)개념’이 선명합니다. 때문에
적(敵)의 위치와 성격, 힘의 크기 등이 뚜렷하여 대응전략 또한 현명하게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9.11 테러는 미국의 안보 전략이 더 이상 <위협기반>에 머무를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불확실성 시대에 <위협의 원천>이 더 이상 고정된 적이 아니라 <불확실성> 그 자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 이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우발적, 기습적 위협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반드시 <유연성>이 더해져야 합니다. ~ 물리적 힘(군사력)도 센데, 거기에 더해
그 힘이 너무나 치명적이며, 언제 어디서든 신속하게 나타날 수 있는 이동성까지 갖추고 있다면
예측하기 힘든(불확실성) 기습적 역량을 키우려했던 적(敵)의 계획 자체를 아무 의미 없는(futility)
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역량기반 전략>의 핵심인 것입니다.

미국의 안보 대전략이 <전략적 유연성>과 <역량기반 전략>으로 대변환 되면서 주한미군의 재배치
문제 등 전반적인 <한.미 동맹의 성격변화>가 불가피 했습니다. 결국 2004년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을 승인하였고, 당시 주한미군 2사단 3,600명 규모의 전투 병력을 이라크로
파견하게 됩니다. 여기에 3만 7,000명 규모의 주한미군을 2008년 9월 까지 2만 5,000명 수준으로
감축함과 동시에 주한미군의 허브를 한강 이남의 <오산.평택 및 대구> 기지로 재배치(이전)하는
계획을 발표합니다. 이는 주한미군이 북한의 재래식 군사위협, 즉 장사정포 사거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 아무튼) 주한미군 개입의 개연성을 최소화 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북한 재래식 군사위협이 예측하기 어려운 <역량기반>의 위협이 아닌, 충분히
예측 가능한 <위협기반>이라 판단하여 억지 가능한 위협으로 규정짓고, 대신 <오산.평택 및 대구>
두 곳의 허브기지에 병력을 집중 재배치함으로써 이제는 주한미군이 한반도를 넘어선 국제분쟁
지역에 언제든지 투입 가능한 <전략적 유연성>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미국의 핵심 안보자산이라는
의미도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2008년 게이트 국방장관 때 28,500명으로 주한미군의
숫자는 동결되었고, 현재 주한미군은 이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미국은 지난해
<2019회계연도 국방수권법>에서 주한미군을 현재의 수준보다 6,500명 적은 2만2,000명 수준으로
감축하려던 계획(“2만2,000명 이하로는 줄일 수 없다.”)에서 다시 지금 수준인 2만 8,500명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최근(2019년 5월)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가 발표한 상황입니다. ~ G2로 부상한 잠재
경쟁국 중국과 러시아 및 북한의 견제를 위해서 아직까지 주한미군이 현재 수준인 2만 8,500명에서
유지되는 것이 미국의 전략적 판단이라는 것인데, ~ 이러한 주한미군의 성격변화는 결국 미국의
‘세계대전략(Grand Strategy)’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주한미군의 병력 수 및 역할 변화의 문제는 미국의 의지와 대전략에 따른 결과입니다. 간혹 언론을
통해 ‘주한미군 감축 및 철수’ 같은 내용이 보도될 때마다 <“외교가 개판이네!”>라며, 사태 변화의
책임을 오롯이 한국 정부의 외교력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너무나 편협하고 무지에
가까운 단순한 시선입니다. 주한미군과 한.미 동맹의 성격변화는 한국정부의 이념 성향과는 무관한,
더불어 외교력의 유능과 무능과는 별개로 미국의 <대전략 논리>가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전략은 ~ 전 세계에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혹시 모를 다양한 가상의 긴박사태를
상정하고 그에 대한 수많은 대응 시나리오까지도 자신들 안보전략의 한 파트에 포함시켜놓고
있는데, ~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북한정권의 급작스런 붕괴>입니다.

다트머스대학 행정학과의 제니퍼 린드(Jennifer Lind) 교수와 미국 최대의 글로벌 정책연구소인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 베넷(Bennett) 박사는 2001년 하버드대학 케네디 행정대학원 산하
국제문제센터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국제안보(International Security)> 가을호에 게재한 논문
<북한의 붕괴: 군사임무와 소요사항 (The Collapse of North Korea: Military Missions and Requirements)>에서
북한 붕괴에 대비한 군사작전과 이때에 소요되는 군 인력을 산출해 발표했었습니다. ~ 당시 논문은
<북한 붕괴 시 필요한 병력 규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 (1)북한 전역의 안정화를
위해 18만~31만 2천명, (2)대량살상무기(WMD) 확보에 3천~1만명, (3)난민 유입이 예상되는 북한,
중국, 러시아, 한국 간 국경지대에 배치할 국경통제병력 2만 8천명, (4)저항세력 억지 및 궤멸 작전
투입 병력 7천명~1만 5천명, (5)재래식 무기 무장해제 4만 9천명 등 ~ 이를 모두 더한다면 필요
병력수는 최소 26만 7천명에서, 최대 40만 9천명 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 이와 같은 수치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미군과 나토(NATO) 평화유지군이 코소보나 이라크 등 세계 여러 국제분쟁
지역에서 실제 활동을 하면서 소요된 병력 수를 근거로 산출한 수치입니다. 이에 따라 린드 교수와
베넷 박사는 북한인구 1천 명당 13명의 안정화 병력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도 북한군의
큰 저항이 없는 낙관적 상황을 가정했을시의 수치라고 얘기했습니다.

린드 교수는 <북한의 급작스런 붕괴>에서, 필요병력 ‘수치’보다 세계가(특히 미국)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할 핵심중의 핵심을 <대량살상무기(WMD)의 안전한 확보>라고 주장합니다. ... 대량살상무기는
치명적 파괴력을 지닌, 말 그대로 인명을 대량으로 살상할 수 있는 핵폭탄, 생화학무기(ex.탄저균),
중장거리 미사일 등의 무기들을 말합니다.[@ Weapons of Mass Destruction] ~ 그런데 진짜 문제는
무기들의 가공할 살상력뿐만이 아닙니다. ~ 그 엄청난 살상력이 다른 곳으로도 전이될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그리고 이를 미국입장에서 보면 앞서 언급한 <역량기반 전략>과 맞닿아 있습니다.
미국의 안보전략은 2001년 9월 11일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 냉전해체 후, 세계 유일의 일극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었던 미국에게는 <고정된 적(敵)>만이 유일한 위협의 개념이었습니다.(위협기반)
하지만 9.11테러는 그동안 미국이 인식하고 있었던 위협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핵의 존재>는 북한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 미국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적(敵) 개념>이 되는 것입니다. ~ <북한의 핵 능력이(핵물질과 핵무기 제조기술)> 테러집단에게
이전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만에 하나라도 <북한의 핵능력>이 불확실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테러조직에게 이전되어 그들이 소형화된 전술핵무기나 핵배낭 같은 치명적인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게 된다면, 향후 미국의 <역량기반 전략>이 감당해야할 정치적, 심리적, 경제적
비용은 엄청나게 증가할 것입니다. 린드 교수가 강조했던 <대량살상무기(WMD)의 안전한 확보>는
바로 이런 맥락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한 집단의 의사결정 과정과 그 이면에서 펼쳐지는 숨은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들이
꽤나 많습니다. ~ 그중에 거대규모, 특히 국가단위의 전략과 정책결정(의사결정) 과정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국가이성’에 의한 의사결정, 즉 <레종데타에 의한 의사결정 과정>에는
우리가 모르는 신비한 <연역적 메커니즘>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 2003년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 안보 대전략의 핵심이었던 <전략적 유연성>에 보조를 맞추듯 이라크 파병을
결정합니다. 서민을 대표하며 진보를 상징하던 노무현 정권이 집권하자마자 가장 우파적 결정을
내렸던 이유는 대통령의 의지가 아니라 바로 <레종 데타(raison d’État)>라는 국가이성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때에도 분명히 <레종데타에 의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쳤을 것이며 그러한
과정 중에는 거부할 수 없는 어떤 신비한 힘(연역 메커니즘)이 작동됐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는
특히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주 경험되는데, 즉 한 국가의 의사결정은 비록 최고결정권자(대통령)가
존재하더라도 도출된 최종적 결과는 최고결정권자 단독에 의한 결정이 아니며, 정부 내의 다양한
구성원들의 권력배치와 거기서 양산되는 상호적 긴장관계의 연속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뒤에서 이어질 이야기를 위해 꼭 필요하다 생각되어, 과거 미국의 실제 의사결정
사례를 참고해 간략히 살펴보고 계속해서 나머지 이야기를 이어갈 볼 생각입니다.

@ 예전 경제학에서는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라는 이름하에 활발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주인-대리인 관계에서 최종 의사결정자는 당연히 ‘주인’입니다. ~ 주인은 의사결정을
내리거나 행동을 취할 때, 주변에서 도움이나 조언을 얻을 수 있는 ‘대리인’을 개입시킵니다.
이론적으로 대리인은 주인의 목적 달성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예컨대 대리인은
주인이 현명한 결정을 내리도록 돕기 위해 더 많은, 그리고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 주인 A가 의사와 변호사를 만나는 경우, 이때에 의사와 변호사는
대리인입니다. 의사는 암이라는 질병과 치료 방법에 대해, 변호사는 온갖 법률문제에 대해 A보다
월등히 많은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A가 최종선택을 했다고 해서 A가 단독으로
내용을 결정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수술을 받을지 말지에 대한 최종결정은 A가 내리지만,
역시 대리인이 제공하는 정보와 판단이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그렇게 내리는 결정은 대리인, 즉
전문가 조언 없이 내리는 결정보다 더 나은 결정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다만 여기서 주인과
대리인이 가진 각자의 정보는 <비대칭적>이며, ~ 동시에 양측의 이해관계 또한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약 처방만으로 충분한 단순 감기증상에 대해 의사는 주인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MRI, CT 등의 각종 비싼 검사를 권유합니다. 주인은 대리인의 행위가 진정으로 자신을 위한건지,
아니면 대리인 본인의 이익을 위한 행위인지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 이 지점에서
주인과 대리인의 <정보 비대칭성>이 문제가 됩니다. ... 회사 경영권 방어를 위해 주인(주주)은
변호사를 고용했지만, 변호사가 (더 큰 이익을 위해)상대측과 공모해 회사에 불리한 자문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이 절대 권력으로 결정을 내리는, 위계질서가 명확한 조직에서 명목상 대리인일지라도
그는 사실상 <능동적인 참가자> 입니다. 그들은 특별한 이해관계에 대해 적절히 주의를 환기시키고,
결정의 정당성을 위해 그런 이해관계를 대변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복합적인 결정에서
대리인은 주인의 의사를 충실히 대변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의사결정에 참가하는 일종의 <경기자>
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대리인(경기자)은 문제의 결정이나 행동의 결과에 꽤 많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대리문제>속에 내포된 부정적 영향을 억제하기 위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 “모든 정보를 공유(정보 비대칭성 제거)” 함으로써 정보의 불균형을 해소한다든지,
“주인의 이익이 곧 대리인의 이익”이 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자는 식의 연구들입니다. 하지만
‘케네스 애로(노벨 경제학상)’는 신탁 의무를 지우거나, 전문가 정신의 강조, 대리인 자신의 전문가적
평판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등의 제안은 전통 경제학의 연구영역 밖의 문제라고 얘기합니다.
더구나 집단의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대리문제>가 정부의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요소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면 ... <대리문제>는 당장이라도 위와 같은
개선방법을 적용시켜야 할 것입니다. ~ 앞서 얘기했듯, 대리인이 <대리인과 경기자의 경계>를
오고갈 때 복잡한 문제의 발생은 필연적입니다. 이는 클린턴 행정부시절 보스니아에 미군 2만 명을
보내는 문제에서 잘 드러났습니다.

[◆ 1995년 6월 어느 여름밤, 백악관에서는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를 위한 만찬이
열리고 있었다. 만찬이 끝날 무렵 국무부 차관보 ‘리처드 홀브룩’이 잠시 여유가 생긴 대통령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날 아침 클린턴은 보스니아에 주둔 중인 UN 평화유지군이 세르비아군에
포위됐다는 보고를 받았었다. 그 상황에서 프랑스.영국.네덜란드 군대가 주축이 된 UN 평화유지군이
철수하겠다고 할 때 미국이 해야 할 일을 놓고 백악관 참모들 사이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홀브룩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 ~ ~
내가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 멋진 저녁 분위기를 망치지나 않을까 우려됩니다만,
분명히 할 것이 있습니다. ... 지금의 NATO 계획에 따라 UN이 철수하기로
결정할 경우 미국은 보스니아에 군대를 파견키로 ‘이미’ 결정했습니다.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습니다만, 그 문제에 대해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통령이 놀라서 나를 보며 물었다.
“무슨 소리요? 병력파견 문제는 때가 되면 내가 결정할 겁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 내가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 NATO가 이미 철수 계획을 승인했습니다. ... 이 과정은 그러니까
자동적입니다. 특히 UN이 철수를 결정할 경우 NATO 병력을 지원한다고
우리가 공개적으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국무부 장관 워렌 크리스토퍼를 돌아봤다.
“이게 사실입니까?”
“예, 그런 것 같습니다.” ... 크리스토퍼가 짧게 답했다.
“이 문제는 내일 아침에 다시 얘기합시다.”

대통령이 불쾌한 듯 말했다. 그리고는 힐러리의 손을 잡고 입을 다문 채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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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개월 전 클린턴 대통령은 동맹국에 보스니아로의 파병을 권유하면서 만일 문제가 발생하면
철수를 돕겠다고 약속합니다. ~ 동맹국들은 군대를 파병했고, 클린턴은 다른 더 시급한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당시 NATO는 미국 국방부 전문가가 참석한 가운데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고,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안전한 철수를 위해 미군 2만 명을 파병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NATO
집행위원회는 이 계획을 승인했고 미국 대표도 대통령 아래 급에서 승인한 지침에 따라 찬성을
하게 됩니다. ~ 하지만 위에서 ‘리처드 홀브룩’이 묘사한 상황을 보면 클린턴 대통령은 ‘자신의’
정부가 내린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였습니다. ...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대통령 집무실
책상위에는 클린턴이 지금껏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수백 페이지짜리 긴급보고서가 놓여있었고,
거기에는 클린턴이 한 번도 브리핑 받은 적이 없는 대단히 세세한 작전계획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 하지만 보고서를 작성한 군인도 미군의 보스니아 파병에 관심이 없었고, 군부와
펜타곤에서 일하는 군무원들은 오히려 파병에 반대했습니다. ... ‘대통령’이라는 신분은 전체를
조망하는 자리입니다. 따라서 군부 의견도 중요했지만 동시에 외교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미국 정부의 외교를 전담하는 곳은 <미국 국무부>입니다. 당시 국무부 차관보였던
‘리처드 홀브룩’은 만약 미국이 파병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NATO 동맹에 균열이 생길 것이며,
모든 비난의 화살은 대통령(클린턴)을 향하게 될 것이라며, <국무부 관리로서> 해야 할 말을 강하게
주장한 것입니다. ... 이제 클린턴 대통령은 새로운 결정을 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
‘UN평화유지군’의 철수를 위해 미군 수만 명을 보스니아에 파병하든지, 아니면 보다 그럴듯한
다른 명분을 찾아내 파병하든지, 둘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클린턴 대통령, 펜타곤(Pentagon), 국무부 외교관(홀브룩)의 이해관계는 같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보와 전문지식은 철저히 <비대칭적> 이었습니다. 심지어 국무부 차관보
홀브룩은 펜타곤이 이미 2년 전에 작성해놨던, 긴급 상황에 대한 다양한 보고서(보스니아 사태포함)를
국무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6일 전에야 겨우겨우 펜타곤을 압박해서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견해를 접고, 양보하고 순응해야 했습니다. 결국 클린턴 대통령이
양보하고 순응하며 관리들의 견해를 따랐고, ~ 파병에 대해 방어적 입장을 취했던 펜타곤보다
더 강한 주장을 펼쳤던 국무부 관리 ‘리처드 홀브룩’의 견해가 최종적으로 승리(관철)하게 됩니다.
그러나! ~ 리처드 홀브룩의 견해가 관철되는 동안은 상황이 이미 늦었음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보스니아인 수천 명 이상이 학살당했고, 크로아티아가 공세를 취했으며, 동맹국들은 자체적으로
철수를 시작한 다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참고: (결정의 본질. 316~320페이지/ 그레이엄 앨리슨, 필립 젤리코/ 모던아카이브 출판) ]
========

여러 사람이 참가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 누가 어떤 자격으로 참가하는지를 알기 전에는
결과 예측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보스니아 사태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 메릴랜드 대학의
존 스타인브루너 교수는 정책결정 패턴을 <세 가지 부류>로 분류했습니다.

(1) 미정형 사고방식(uncommitted thinking) - 고위정책결정자들은 보다 많은 융통성이 있기
때문에 미정형 사고방식을 가집니다.

(2) 이론형 사고방식(theoretical thinking) - 전문가들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통하는
이론형 사고방식을 가집니다.

(3) 판에 박힌 사고방식(grooved thinking) - 직업관료(하위관료) 조직원들의 사고방식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임명되는 고위관리는 대개는 내부 발탁보다는 외부 인사를 추천받아
임명하는 정치적인 방식이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임명된 관리들과 직업관료 사이에
존재하는 사고방식 차이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사고방식의 차이는 결국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뭉치게 만듭니다. 세력이 형성되는 거죠. 흔히 <파벌 또는 계파>라고 하는데,
앞서 일본의 전후 정치를 얘기할 때, <당인파와 관료파>처럼 출신의 차이가 사고방식의 차이를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 정치적으로 임명된 관리들 대부분은 본인이 맡은 정부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편입니다. 설령 그 분야 전문가라 할지라도 오랜 시간동안 직업 관료들 사이에서만
형성되어온 공통문화와 끈끈한 신뢰관계, 다시 말해, 그들만의 <관료 생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방금 임명장을 받은 고위관리가 직업관료 생태계에 적응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정권이 끝나면 고위 관리도 대부분은 함께 떠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임명된 고위관리는 태생적으로
<한시적> 이라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 ~ 반면 직업적 관료 권력은 스스로가 사표를
던지지 않는 이상은 아주 긴 시간을, 즉 본인의 인생 전체를 관료로 시작해 관료로 끝을 맺을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한번 상승한 지위는 이후 능력이 떨어져도 최소한의 지위를 보장받습니다.
(@ 지위의 하방경직)

집단의 크기가 클수록, 특히 국가단위의 의사결정 과정에는 ~ 주인, 대리인, 경기자 등의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합니다. 더불어 이들 각자가 보유한 정보와 전문지식은 <비대칭적 상호관계>
하에 놓여있습니다. 또한 ‘(경기)참여자’가 누구냐에 따라 경합하는 사고방식도 제각각입니다. 때문에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교류(힘겨루기, 이해관계)>과정을 거쳐서 도출되는 최종결과는 일반의 처음
예상과는 다른 형태의 결론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마디로 <비대칭적 상호관계의 경기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죠. ... 이로 인해 <정부 부처 간 엇박자>, 임명직 고위
관리와 직업 관료간의 사고방식 차이로부터 유발되는 보고오류 및 누락 같은 <조직 내 소통불화>,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직업 관료에 대한 장악력 약화> 등의 문제들이 자주 발생하곤 합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비가측적 상황의 연출은 일시적,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잠재되어 있다가
정부의 의사결정이 있을 때마다 등장하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연역적 메커니즘>이라고 생각됩니다.
========

국가단위의 의사결정 과정 속에 숨어있는 복잡성(비대칭적 상호성) 문제는 여기까지 살펴보고,
이제 다시 앞의 이야기를 가져와 계속 이어가 보겠습니다. ... <북한의 급작스런 붕괴>에 관하여
린드(Jennifer Lind) 교수는, 필요병력 수치보다 우리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할 핵심 사항으로
<대량살상무기(WMD)의 안전한 확보>를 언급했습니다. ~ 9.11테러 이후, 미국의 안보 대전략이
<전략적 유연성 및 역량기반 전략>으로 대변환 되면서부터 이제 북한을 바라보는 미국의 인식은
<대량살상무기(WMD)를 확산시키는 존재>로 초점이 이동한 상태입니다. ...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북한 인식변화 속에는 “북한의 재래식 군사위협은 남한이 충분히 억지할 수 있다.” 라는 의미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남한에서의 주한미군 역할의 점진적 축소를 예고하는
것입니다. 주한미군은 더 이상 <북한 억지>라는 하나의 목적에만 국한된 안보자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더불어 이러한 변화는 <전략적 유연성과 역량기반 전략>하에서 미국이 필요로 하는
동맹의 개념이 전 지구적 위협에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느냐의 <동맹 효율성> 개념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미국이 생각하는 동맹 개념이 <가성비>를 따져 묻는 단계까지 도달한 것이죠.

미국이 동맹에게 ‘효율성(가성비)’을 따져 묻겠다는 의미는 결국 <비용(돈)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은 천문학적인 돈을 썼습니다. ~ 과거와 같이
전 세계 주요 분쟁지역마다 개입하여 압도적 군사력(돈)을 쓸 여력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경험 때문에 국제문제 개입에 대해서는 이제 (미국)국내적으로도
정치적 부담이 많아진 상황입니다. ‘소련(공산진영)’ 이라는 선명하고 구조적인 위협요소가 사라진
지금의 현실에서 세계를 무대로 테러방지, 재해구조,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같은 수많은 안보이슈에
상당한 비용(군사력)을 반복적으로 지출하고 있는 정부에게 다수의 미국 유권자들은 많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 ~ ~ 그러나! ~ 미국은 이러한 현실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
<일극(pax americana)>으로서의 지위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 “미국의 세계패권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써야할 돈(군사력)이 부족하다?”>

결국 답은 기존 동맹국들과 지역안보 책임을 함께 나눠 갖는 것입니다.(돈과 군사력의 공동부담)
특히 미국에게 지속적인 패권유지의 당위성을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바로 중국의 부상인데
그중 미국이 유독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이 <중국 군사력의 질적 증강>입니다.

중국은 해양의 중요성과 장거리 공군력 및 정보화 전력 등에 힘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군의 현대화 및 정보화, 정예화로 대표되는 <군의 질적 증강>입니다. ~ 과거 ‘인해전술’의
국가로 상징되던 중국 ‘인민해방군(중국군)’이 환골탈태(換骨奪胎)하며 첨단 군대로 새롭게 거듭나고
있는 것입니다. ~ 인민을 대량 동원하는 ‘인민전쟁’ 개념을 더 이상 고수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에 따라 중국은 가장 먼저 병력을 감축하기 시작했습니다. ~ 여기에 항공모함 확보로 해군력을
증강시켰고, 전자기파(EMP) 무기 및 해커.바이러스 등의 정보마비 무기 같은 비대칭 전력증강,
스텔스 전투기 젠-20, 항공우주산업 육성으로 인한 유인우주선 발사 등 전반적인 군의 질적 증강
및 군사기술혁신(RMA: 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 이는
병력 1인당 군사비 지출내역을 보면 쉽게 이해됩니다.

◆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IISS(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의 자료를 참고로
2009년, 2014년 주요국의 병력 1인당 국방비 지출내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달러($) 기준]

<2009년 주요국의 병력 1인당 국방비 지출>
@ 미국 - 43만 7천 달러($)
@ 한국 – 3만 7천 달러($)
@ 일본 – 22만 8천 달러($)
@ 중국 – 3만 1천 달러($)
@ 러시아 – 4만 달러($)

<2014년 주요국의 병력 1인당 국방비 지출>
@ 미국 - 40만 5천 달러($)
@ 한국 – 5만 3천 달러($)
@ 일본 – 19만 3천 달러($)
@ 중국 – 5만 5천 달러($)
@ 러시아 – 9만 달러($)

미국은 한해 700조원에 가까운 국방비를 지출하는 세계 최고의 군사대국답게 ~ 병사 1명에게
지출되는 비용이 무려 40만 달러($)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원화로 환산(최근환율)하면 4억 5천만
원이 넘는 돈입니다. 압도적이죠! ~ 일본도 2억 원이 넘습니다. 물론 이 금액이 오롯이 병사를 위해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체 국방비를 병력수로 나눈 수치이기 때문에, 병사 1명당 국방비 지출이
높다는 것은 군대의 정예화 및 현대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자료(IISS)를 보면
중요한 변화가 보입니다. ~ 우선 한국은 북한과 직접 대치하고 있는 휴전국가라는 특수성 때문에
병력 1인당 국방비 지출의 증가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2014년 수치는
2009년과 비교해보면 병력 1인당 국방비 지출액수가 (추세적으로)줄어든 상황이며, ...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수치가 큰 폭으로 상승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2009년 한국보다 낮았던 중국은
2014년에 한국을 추월한 상황입니다. 이는 인민해방군의 정예화.현대화 속도가 한국군을 앞서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1인당 GDP(2018년 기준)가 한국은 3만 달러($)를 진즉에 넘어섰고,
중국은 이제 겨우 1만 달러($)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현재 중국의 인민해방군에 대한 자본집중도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 북한과 대치중인 상황이라 한국은 지상군(육군)의 절대규모가 반드시 요구되는 상황이며,
따라서 지상군 위주의 대병력 체계유지는 일정부분 당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대륙세력
견제를 원하는 미국도 한국 측에 강력한 지상군 운용을 바라기 때문에, 한국은 주변 강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해공군력의 자본집중도가 떨어집니다. ... 결국 한국군의 정예화 및 현대화는 지상군의
(점진적)축소 없이는 달성되기 어려운 목표이며, ~ 설령 지상군 축소를 계획한다고 해도 지상군의
‘절대규모’ 라는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한다면 한국 군대의 정예화 및 현대화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한국 지상군은 해공군력과의 조화, 즉 육.해.공 합동 전력을(첨단 정보화 전력포함)
극대화시킴으로써 전체 군사력을 증강시켜야 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한.미 동맹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련(공산진영)’ 이라는 명징한 적(敵)이 사라진 오늘날, 중국의 부상은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 한마디로 <경제는 중국 & 안보는 미국> 이라는 딜레마에
빠진 상태라는 것입니다. ...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조차 경제부문만 놓고 보면 중국시장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매력적인 가치를 지닌 시장입니다. ~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유럽도
마찬가지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패권 경쟁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적으로 커지게
될 것입니다. 다만 중국경제의 상당부분이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시장경제>의 틀 밖에서 작동되고
있다는 점이 미국을 자극합니다.(@특히 금융.자본시장) ~ 더불어 중국의 폐쇄적인 경제민족주의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아닌, 중국 자신들이 룰 메이커(Rule maker)로써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최근 타결된 ‘RCEP(알셉)’은 경제부문에서 중국의 존재감이 세계에 확실히
각인된 상징적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물론 RCEP의 핵심은 아세안 국가들이라는 의견도
많습니다. ~ 그렇다 하더라도 ‘RCEP 타결’이 전 세계에 중국의 부상을 알리는데 충분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지속적인 세계패권을 원하는 미국에게 지금 눈앞으로 다가온 현실적 문제는 결국 <비용>입니다.
특히 경제와 군사안보 분야에서 점점 더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중국의 존재는 ~ 그렇지 않아도
세계패권 유지에 많은 돈을 쓰고 있는 미국에게 더 많은 지출 부담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 결국
중국 견제와 동북아 지역에서의 지속적 패권유지를 원하는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은 <동맹의 포괄적 활용>입니다. ~ 여기에는 비용(돈)뿐만 아니라, 지역 안보의 공동책임까지
포함되는데 ... 그 핵심이 바로 <아시아 집단안보체제(다자동맹)>의 구축입니다. ~ 아시아의 안보를
미국이 홀로 책임지는 것보다, 다수의 동맹국들이 함께 나눠 책임지는 것이 비용측면에서 훨씬 더
부담이 덜하기 때문입니다.

야구에서 빈볼시비가 발생하면 더그아웃(dugout)의 모든 선수들이 뛰쳐나와 상대편으로 향합니다.
동료 선수에 대한 위협은 팀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모두 함께 싸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국제정치에서 말하는 ‘집단안보체제’의 의미는 바로 야구의 빈볼시비 개념과 유사합니다. 실제로도
<국제연합헌장 51조>에는 이러한 내용의 조약원칙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 “회원국 하나에 대한 공격은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된다.”
- (국제연합헌장 51조. ‘집단적 자위의 원칙’) >

미.소 냉전시기 ‘냉전의 설계자’라고 불리던 미국 외교전문가 조지 케넌(George F. Kennan)은
종전 이후의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세계에는 기술적, 산업적 창조력이 매우 뛰어난 네 곳의 중요 지역이 있는데,
이들 지역이 <어느 쪽과 동맹을 맺느냐>에 따라 국제적인 <세력균형>의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 ~ 그 네 곳의 지역은 미국, 소련, 유럽, 일본이다.“

케넌의 이러한 주장은 <집단안보> 개념으로 이어집니다. ~ 그리고 여기서 또 한 명의 전문가인
존 루이스 개디스(John Lewis Gaddis) 예일대 교수 말을 들어보면 집단안보 개념이 좀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 개디스 교수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남한의 위상은 국제 세력균형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남한의 방어를 위해 전쟁 참여를 신속하게 결정한
이유는 국제연합(UN)이 승인한 경계 38도선을 넘은 북한의 남침이 미국에게는 <집단안보체제>라는
전체 구도(국제질서)가 도전받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연맹>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연합(UN)> 창설은 그야말로
<집단안보체제>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제 1.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계인 모두는
지구에서 더 이상의 참혹한 전쟁비극은 없어야 한다며, 따라서 어떠한 형태의 침략전쟁도 불법으로
간주하고 이를 어기는 국가에 대해서는 다른 나머지 국가들이 합심하여 (자동적으로)처절한 응징에
나서야 한다며, <국제기구(국제연맹, 국제연합)> 창설을 통해 약속했던 것입니다. ... 그리고 이것이
국제기구를 통한 <집단안보체제>의 개념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 그렇다면 왜 아시아에서는
<나토(NATO)>와 같은 집단안보 체제가 구축되지 못했을까? ~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지난 글에서 말했듯이, 아시아에서 안보 동맹 체제는 (미국-일본), (미국-한국), (미국-대만), (미국-태국),
(미국-호주) 처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개별적인 양자동맹(쌍무동맹) 관계만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다같이 함께 참여하는 <다자안보체제>가 구축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 물론
<시토(SEATO)> 라는 동남아시아 집단방위 기구가 존재하긴 하지만, 여기엔 한국과 일본, 대만이
빠져있기 때문에 사실상 ‘다자안보기구’로써의 기능은 거의 작동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아시아에서는 나토(NATO)와 같은 서방자유진영의 다자 안보체제가 형성되지 못했는데,
그 대표적 이유로 일본에 대한 아시아 주변국들의 반감 및 거부감이 지적됩니다. 아시아 국가들
입장에서는 전범국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도 없는 상태에서 일본에게 큰 지분이 배분되는
<아시아 집단안보체제> 구축에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던 건 당연했습니다. 여기에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다자안보체제에 참여하려는 뜻이 별로 없었다는 점도 중요한 대목입니다.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미국에게 아시아 집단안보체제의 참여는 실익측면에서도
그렇게 매력적인 이벤트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 냉전시기 미국에게 중요했던 지역은 유럽이었으며,
조지 캐넌의 말처럼 유럽이 어느 쪽과 동맹을 맺느냐에 따라 국제적 <세력균형>의 판도가 달라질
것을 미국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미국에게 아시아는 문화적 수준이나 동질성이 매우
낮은 지역으로 인식되었고, 이러한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아시아 집단안보체제>
구축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 대신 아시아는 공산세력의 팽창을 막기 위해
일본 하나만 제대로 키우면 된다는 생각이 그 당시 미국의 세계대전략(Grand Strategy) 이었던
것입니다. ~ ~ 하지만 냉전이 끝난 지금의 동아시아 질서는 중국의 부상과 함께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진행 중입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전략적 유연성 & 역량기반 전략> 이라는 미국의 대전략(Grand Strategy)
변화는 해외 주둔 미군부대와 동맹국의 안보이익 범위가 전 지구적으로 넓어짐으로써, 동맹국들은
이제 미국과 안보이익을 함께 공유(?)하는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한 상황입니다. ~ 하지만 말이
안보이익 ‘공유(?)’지 실질은 미국이 원하는 지역안보에 동맹국들도 함께 동참해야(ex. 해외파병)
한다는 묵시적 강제성이 내포된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따라서 주일미군, 주한미군의 역할은
이제 일본과 한국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얽매인 안보자산이 아닌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동맹국의
군대인 자위대, 한국군 등은 <포괄적 동맹관계>하에서 전 지구적 안보에 미국과 함께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 다만 일본은 군대가 헌법상(9조) 제약에 걸려있고, 호주는 군사적(세계 군사력)
측면에서는 20위 수준으로 약소국에 가까우며 ~ 20위권 밖에 있는 태국이나 필리핀 등의 동남아
국가들에 비하면, 미국에게 한국군의 대전략적 가치는 상당히 우수합니다. ~ 한국은 세계 7위의
군사강국으로써 전장에 즉시 투입가능한 잘 훈련된 대규모 지상군 병력체계와 효율적 해공군력을
갖춘 국가입니다. ... 따라서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국들 중에 한국은 군사안보역량이 가장 뛰어난
국가라고 할 수 있으며 ~ 노무현 정부시절인 2005년 미국이 우리에게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강력히 요구한 이유도 바로 이러한 한국군의 즉각적 전투능력과 잠재력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09년 출범한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라는
미국의 새로운 대전략(Grand Strategy)을 발표합니다. ... 미국 외교의 중심축을 아태(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것인데, 그동안 중동(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지역에 주로 집중되었던 미국의
외교 및 군사안보 역량을 아시아지역으로 이동시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실질은 <중국 견제>
였습니다.

냉전 종식 후, 일극(pax americana)의 주체로써 많은 비용을 지출해가며 세계경찰 노릇을 하던
미국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그동안 세계경찰을 하면서 소요됐던 비용에
더해 천문학적 비용을 추가적으로 지출하게 됩니다. 여기에 중국의 부상(특히 군사력 질적 증강)은
미국의 대전략(Grand Strategy)을 수정.보완하게 만드는데, 그것이 바로 동맹을 활용하여 비용을
최대한 줄이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것입니다. ~ 그중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나토(NATO)와 같은
<아시아 집단안보체제(다자동맹)>인 것입니다. ... 하지만 앞서 보셨듯이 아시아 국가들의 일본에
대한 반감 때문에 이는 당장 성사되기는 어려웠고, 대신 미국이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전략이 바로 <소다자 동맹체제>였던 것입니다.

◆ 중국(북한 포함) 견제를 위한 미국의 ‘소다자 동맹체제’
(1) 동북아 지역안보 - (미국, 한국, 일본)
(2) 동남아 지역안보 - (미국, 일본, 호주)
(3) 인도양 지역안보 - (미국, 일본, 인도)

신속성과 정확성이 생명인 군사안보 분야에서 이러한 <소다자 동맹체제>가 효율적으로 운영되려면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가 바로 <정보공유 및 교류 >입니다. ... ‘동북아 지역’의 소다자 동맹
구축을 위해 오바마 대통령이 정권말기(2016년)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전략(Grand Strategy)에
따라 강력히 추진했던 정책 중 가장 큰 성과가 바로 <지소미아(GSOMIA)>라고 하는 한.일간 군사
정보보호협정 이었던 것입니다. ...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대전략(Grand Strategy)은 트럼프 정부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트럼프 정부가 내놓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라 오바마,
아니 그 이전 정부부터 조금씩 수정되고 보완되면서 이어진 미국 대전략(Grand Strategy)의 아주 큰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미국을 보면 ... 동쪽으로는 대서양, 서쪽은 태평양으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은 캐나다, 남쪽은 멕시코라는 우방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지리적 이점은
그 어떤 나라도 미국 이라는 나라를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 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 세계 최강의 해양세력 미국,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미국이
지금 나토(NATO), 독일, 일본, 한국 등 최고의 동맹국들을 상대로 엄청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우리에게는 주한미군 감축 및 철수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참고): 작년 8월 발효된 ‘국방수권법’은 2019년 한해를 기준으로하기 때문에 ...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말까지 결심한다면, 주한미군 숫자를 6,500명 감축하여 2만 2,000명 수준으로 만드는
것은 가능합니다. <주한미군 순환배치> 계획에 따라 내년(2020년) 3월 말까지는 반드시 한국을
떠나야 하는 미군부대가 있으며, 그 떠난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다시 한국에 들어와야 하는 새로운
미군부대가 있는데,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안에 한국에 들어올 새로운 미군 부대를 지정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그냥 끝이 납니다. 그럼 현재 2만 8,500명 수준인 주한미군 숫자에서 마이너스(-)
상황만 발생하게 되는 것이죠. 한마디로 주한미군이 자동적으로 감축된다는 것입니다. ~ 따라서
미국은(트럼프) 어쩌면 이 부분을 이번 지소미아(GSOMIA) 연장문제와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위한
‘협상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지금까지 보셨듯이, 주한미군 감축이나 이동 및 역할 변화는 미국의 세계대전략(Grand Strategy)
하에서 움직이는 부분이므로 우리의 외교력이 발휘되기는 어려운 영역입니다. 더구나 ‘지소미아’는
<소다자 동맹체제>라는 미국 대전략의 핵심이었습니다. ~ 결국 ‘지소미아’ 문제는 우리 외교력을
넘어선 <미국 대전략>에 속한 문제였기에 저는 개인적으로 현 정부가 너무 성급했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지소미아 문제가 원상복구 되지 않는다면, 그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돈의 문제는 다릅니다. 외교력은 이럴 때 발휘하는 것입니다. 최근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한국에게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요구는 일단 미국이 명분 하나를 얻고 출발하는 셈입니다.(한국은 이제 잘사는 나라다!)
하지만 현재 트럼프 정부의 요구는 아무리 생각해도 비상식적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을 상식선, 이를테면
15~20억 달러($) 수준의 액수로 낮춰 우선적으로 협상테이블에 올려놓고 ~ 여기서부터 협상을
진행하되, 협상과정에서 한국 측의 요구, 예를 들면 ~ 미사일 사거리 지침을 없애거나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하여 우라늄 농축을 현행 20%에서 30%이상으로 할 수 있게끔 요구하는 것입니다.
즉 줄건 주되, 최대한 우리도 주는 부분을 상쇄시킬 정도의 군사.경제적 이득을 요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미국의 대전략 범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 우리가 외교력을
얼마나 잘 발휘하느냐에 따라 결과 또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난 글(1~4편)에서 보셨듯이 ~ 미국이 일본을 다루는 방식을 보면 느끼는 점이 참 많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 미국입장에서는 한국과 일본에 과연 어떤
성향의 정부가 들어서는 게 이득일까? 좌파적인 정부일까, 우파적인 정부일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아마도 ~ ~ ~ <“미국이 다루기 쉬운 정부”>가 답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됩니다.
아니 역사적으로 항상 그러했습니다. 반면 동맹국 입장에서 트럼프 정부는 <예측하기 힘든 정부>
입니다. ~ 동맹을 다루는 방식이 과거의 전통적 방식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해고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트럼프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 어쩌면 앞서
얘기했던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가 현 트럼프정부 내에서 활발히 작동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예측하기 힘든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황당한 수치의 방위비 분담금 요구도 트럼프 정부 내 <비대칭적 상호관계의 경기>가 하나의
원인 제공을 했을 수도 있다는 개인적 추측을 해봅니다.

지난 글(4편-일본의 대미추종과 자주파)에서 얘기했듯이 현 일본 총리 아베의 외조부였던
기시 노부스케는 ‘강성 자주파’ 였습니다. ... 현재 겉으로 보여 지는 아베총리의 모습은 적극적
대미추종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아베의 내면에는 외조부 기시의 정신(자주파)이
아주 강렬하게 착근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평화헌법(9조) 개정으로 정상적 군대 갖기에서
단순하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의 혼이 아베에게 그대로 이어져 미국과의
종속관계를 벗어나 진정하고도 독립적인 군국주의로의 회귀의 염원이 아베의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 그래서 동아시아 안보질서의 가장 큰 변수는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이라 생각됩니다. ... 이는 현실적인 문제로도 도미노처럼 이어집니다. ~ 평화헌법 개정은
연이어 ‘미.일 안보조약 개정’으로, 다시 ‘한.미 안보조약 개정’으로 ... 그리고 미국의 세계대전략 중
하나였던 <소다자 동맹체제>와 이러한 변화는 중국, 러시아, 북한 등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 결국 동북아 전체를 뒤흔들 대형 사건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바로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글을 쓰면서 참고했던 <'결정의 본질'>이라는 책에 나왔던 문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 결정의 궁극적인 본질은 제3자가 이해할 수 없다.
사실, 결정하는 사람 자신도 모를 때가 많다. 의사결정 과정에는 가장 깊이 관여한
사람조차도 알 수 없는 어둡고 혼란스러운 부분이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 존F. 케네디 >

< 나는 공직에 참여하지도 않고 역사를 기록하는 지식인과, 생각하지도 않고
중대한 결정에 참여하는 정치인을 만난 적이 있다. 전자는 항상 일반적인 원인을 찾는
경향이 있는 반면, 후자는 일관성이 없는 일상을 살면서 모든 것이 특정 사건 탓이고
자신이 잡아당기는 밧줄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둘 다 세상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 알렉시 드 토크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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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 이념, 이데올로기(Ideologie) ... 어떤 단어를 사용하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건 가치관이 개입되는 글을 쓸 때면 평범했던 글자 하나와 단어 하나도 어느새
거대한 빙산으로 바뀌어 비교적 짧은 구절하나 심는 작업도 마치 썰매개가 그 큰 빙산의 무게를
짊어지고 극한의 추위 속에서 수십, 수백키로를 달려 구토 직전의 노동(뜀박질)을 체험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면은 용암이 분출하듯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올라
온 몸의 신경을 타고 밖으로 그 열기를 내 뱉습니다. 이렇게 극저온의 껍질과 극고온의 내면을 오고가며
어느 정도 글이 완성될 즈음엔 정작 내 정신은 어느 온도에 맞춰야 안정이 될까 불안하기도 합니다. ...
글을 마무리 하며 모두분들이 각자 평안함을 느끼는 적당한 온도를 찾기를 바랍니다.
이와 더불어 단순한 사상의 기능공이나 가치관의 숙련공이 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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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글 주시는 분들마다 ~ 한분 한분 고맙다는 답글을 하고 싶지만
그럴수록 스크롤 압박만 더 커져 다른 분들의 불편이 우려됩니다. 다만
주시는 응원글 아래 투명하게 "고맙습니다"라는 답글이 달려있는셈 쳐주시면
저도 마음이 편할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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