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6일 목요일
◆ 독일의 노동개혁 이야기 (by 물파스)
박근혜 정부는 노동의 효율이 떨어진다며 "노동 유연화" 라는
자신들 나름의 개혁[or혁신(?)]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개혁내용을 보면 "노동"을 사회전체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단순히 노동을 "독립된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새것으로 교체하려는 시도만 존재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혁신의 주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명명된 이름만으로는 부드럽고 여성성 넘칠 것 같은 "노동의 유연화" 라는 사슬로
소통을 배제한 채 혁신의 주체들을 구속하게 된다면, 그들은 이제 고용불안과 저임금 등의 굴레 속에서
영원히 혁신의 주체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바꾸고 고쳐야할 혁신의 대상을 혁신의 주체에게 의족처럼
덧씌우고 정상(성)을 요구한다는 것은 비정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정부와 일부 언론들은 현재 한국의 노동문제를 해결할 가장 적합한 롤 모델로
독일의 "하르츠개혁(Hartz-Reformen)" 을 언급하며, 독일의 (숫자적)결과를 노동문제 해결로
결론지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네덜란드 '바세나르 협약' 또한 우리의 노동개혁 롤 모델로
거론됐지만 독일과 관련된 부분만 얘기 하겠습니다. ]
사람이 아프면 약을 먹기도 하지만 완치를 위해 수술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외과)수술 중에서도 장기이식은 난이도가 가장 높은 수술이라고 합니다.
출혈도 많을 뿐 아니라 새로운 장기와 기존혈관을 일일이 연결하는 과정은 일반적인 외과수술에 비하면
엄청난 정교함을 요구하며 (수술)시간도 상당히 많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 여기에 무사히 수술이 끝났다
하더라도 이후 면역거부반응과 같은 여러 부작용에도 세심하게 대비해야 합니다.
정부는 위로받고 치료받아야할 한국의 노동을 들어내고, 그 자리에 독일과 네덜란드의 노동개혁 사례를
우리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새로운 "희망" 이라며 이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 출혈이 많을 것입니다.
또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라는 말처럼 세밀하고 많은 정교함이
요구되면서 동시에 심각한 충돌이 일어날 것입니다 ... 그리고 결정적으로 "면역거부반응" 이라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현실화 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노동의 문제는 몸 안의 어느 한 부분이 고장 나서 떼어내고 새것으로 바꾸면 해결되는 차원이 아닙니다.
노동의 문제는 한 나라 경제 전체의 생체리듬을 좌우하는 "경제" 그 자체이자 "생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다른 나라(독일)의 결과가 좋았으니 우리도 그들 것을 이식하면 건강해지리라는 막연한
기대는 오히려 우리의 생명을 더 위태롭게 만들 수 도 있습니다.
[◆ "독일의 하르츠개혁은 한국에 맞지 않습니다(not applicable)"
산업 구조로 봤을 때 한국과 독일은 차이가 크다. 한국이 삼성 현대 등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독일은 반대로 지역사회와 촘촘히 얽힌 중소기업(강소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한국에선 대기업 주도의 수출이 이뤄지다 보니, 모든 경쟁력이 대기업에만 집중됐다.
직업 교육도 대기업 중심으로, 심지어 복지도 대기업 중심으로 제공된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이 아닌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지원에서 소외되는 이중 구조를 갖게 됐다.
노사협상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노조는 강한 협상력으로 기득권을 지킬 수 있다.
독일은 지역사회와 노조와 회사가 정기적으로 노사협의회(work council)을 갖는다.
직업 교육도 협의회 차원에서 접근한다. 협의회가 학교와 연계해서 인재를 육성하고 장학금을 주고 인재를 영입한다.
사회 전체가 (노동문제에 있어) 골고루 사회적 비용을 분담하고 성장하는 구조다 ... 더욱이 한국은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현대 한국은 개인의 후생을 오롯이 가족이 책임지는 구조다.(정부는 없다.)
이런 구조에서 노동 개혁을 했다가는 오히려 사회 전체가 한꺼번에 무너질 수도 있다.
<요르그 미하엘 도스탈(Jörg Michael Dostal)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2015년 9월 7일. 조선비즈 인터뷰 中 ◆]
한국과 독일은 분단의 경험과 수출중심 국가라는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기업문화를 비롯한 법과 제도 및 오늘날 독일만의 경제체제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사상적 뿌리는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그들의 사례를 일방적으로 수용한다면
어떤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파산한 국가(동독)를 외상으로 구매한 것과 같았던 1990년 (동서독)통일은
이후 저성장과 극심한 실업난을 몰고 왔으며, 여기에 고령화로 인한 사회보장비용 지출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노동)개혁의 당위적 필요성이 사회전반에서 형성되었습니다. 결국 독일은 2003년 슈뢰더 총리 주도로
"아젠다 2010" 이라는 노동개혁(하르츠개혁) 을 발표하게 됩니다.
[▶ 독일 실업률: (1992년 7.5%), (1997년 11.5%), (2001년 9.5%), (2005년 12%) ...
이러한 실업률은 통일문제와 함께 유로존 출범 초기인 2000년 초에 독일이 마르크화 환율이
너무 높은 상태에서 유로존에 가입했던 부분도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마르크화 강세 => 수출부진=> 실업 ) ]
독일은 "하르츠개혁(Hartz-Reformen)" 이후 수치상으로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경제활동 참가율이 상승했고, 12%수준의 실업률이 4~5%대까지 낮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미하엘 교수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합니다.
"독일의 실업률이 낮아지고, 경제가 회복한 것을 하르츠개혁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많은데, 이것 또한 사실이 아니다. 2002년부터 현재까지 10여 년의 독일 성장은
유럽 통합에 따른 통화 절하 효과에 따른 것이다!"
"일단 하르츠개혁은 '노동법'을 수정한 게 아니다 ... 실업급여와 연금제도를 손 본 것이
개혁의 골자다. ... '실업급여'의 수급기간을 단축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미니잡(minijob)을 만들어
탄력적 저임금 일자리를 늘린 것이다."
"한국이 지금 '노동개혁'이라고 이야기하는 임금피크제나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법 개정,
노조의 협상력을 낮추는 등의 개혁이 아니라는 뜻이다." - [요르그 미하엘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유로화라는 화폐통합이 독일경제에 상당한 도움이(통화절하) 되었다는 미하엘 교수의 주장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하르츠개혁의 효과가 전혀 없었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하르츠개혁의 효과는 분명히 존재했었습니다. 하지만 통계수치의 개선이 꼭 질적 성공으로까지 이어졌다고는
장담 할 수 없습니다.
하르츠 개혁의 원래 취지는 실업급여만 받고 일을 하지 않는 미취업자들을 일터로 나오게 만들기 위한
압박용 목적이 컸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르바이트 개념과 비슷한 "미니잡(mini job)" 을 만들어
실업률을 낮추고자 했던 것입니다. 대신 미니잡은 월 450유로(대략 59만원)의 임금상한선이 정해져 있는데
부족한 급여는 정부가 지원해주고, 미니잡 노동자에게는 소득세를, 고용주에게는 사회보험료 납부를
보조(면제)해 주기로 한 것입니다 ... 또한 1년 이상 미취업 상태가 지속되거나 특별한 사유 없이 취업을
거부할 땐 하르츠 법에 의해 실업급여가 (단계적)삭감되기도 합니다 ... 더불어 독일정부는 사람들을 이렇게
일터로 나오게만 한다면 미니잡을 통해서 더 나은 일자리로 갈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 한마디로
미니잡은 "나쁜 일자리"에서 "좋은 일자리"로 가기위한 하나의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 장담했었습니다.
이러한 미니잡 정책으로 2003년 제도를 도입할 당시 약 598만명 이었던 미니잡 종사자들의 수는
2013년에는 733만명으로 대략 135만명 증가했고, 같은 기간 독일 사회보험 가입자 수는 232만명 증가하게
됩니다. 결국 10년간의 고용증가분중 약 60% 정도가 미니잡에서 발생한 것입니다.[▶(135/232 = 58%)]
하지만 미니잡 정책은 저임금 일자리만 확대시켰으며, 특히 청년들의 기회를 빼앗아 버렸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2010년 기준으로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를 해보아도 ... 미니잡 같은 파트타임 뿐 만 아니라
전일제 고용에서도 저임금 비율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이 같은 결과는 비록 고용률은 증가시켰지만
저임금을 비롯한 사회의 소득 불평등을 더욱 더 심화 시키기도 햇습니다 ... 그러자 독일정부는 하르츠개혁의
부작용을 인정하고 그 대안으로 먼저 최저임금제를(8.5유로) 도입하게 됩니다.
[▶ 독일의 최저임금 도입 논의는 유럽연합에 가입한 동유럽 8개국 근로자의 거주이전의 자유가
2011년 5월 1일부터 전면적으로 허용된다는 부분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뜩이나 하르츠개혁(미니잡)으로 저임금과 함께 사회전반에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었는데,
여기에 임금수준이 낮은 동유럽 근로자들까지 유입된다면 독일 노동시장은 그야말로 "임금 덤핑(Lohndumping)"이
발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 한국이었다면 임금덤핑이 위기였을까요? 기회였을까요? ]
하르츠개혁은 현재 독일 내에서도 "재개혁"(re-reform)이 논의 중입니다.
넘어지고 부딪혀서 찢어진 상처를 봉합하듯 실업률, 고용률 및 경제활동 참가율 등의 숫자적 외과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 나쁜 일자리와 저임금, 소득 불평등(양극화) 같은 내과적 질병은 점점 더 깊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노동자 보호수준은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대표적으로 2002년 말 독일은 하르츠개혁을 추진하면서 근로자 파견에 관한 법률을 기업들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개정하게 됩니다. 당시 실업률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신규고용창출에 초점을 맞춘
(법률)개정이었는데, 이때 독일정부는 (기업들이 원하는 수준으로)규제를 대폭 완화해 주면서
대신 중요한 조건(반대급부)을 내걸었습니다 ... 바로 "평등대우 원칙의 확대" 였습니다.
독일의 파견 근로자에 대한 "평등대우 원칙"은 사실 하르츠개혁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2001년 근로자파견법 개정당시 도입되었는데 ... 파견근로자가 동일 사용사업주에게 연속하여 12개월
사용된 경우에는 그 사업장의 비교가능한 근로자와 동일한 근로조건을 보장할 것을 규정한 것입니다.
[(구)근로자파견법 제10조 제5항 ]
한마디로 파견근로자는 자신이 비록 비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파견되어 근로를 제공하는 사용사업장의
다른 (정규직)근로자와 동일한 근로조건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다시말해
철저한 "동일노동.동일임금(gleicher Lohn für gleiche Arbeit)"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당시 정부의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르츠개혁 당시 독일정부는 이미 2001년에 존재했던 "평등대우 원칙"을 더 넓게 확대하자는
조건(반대급부)을 내걸면서 기업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파견)규제를 대폭적으로 완화해주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근로자파견에 관한 규제(ex.업종확대)는 대폭적으로 풀었지만, 동시에 (파견)근로자 보호에 있어서는
더 크게 강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독일)강화된 평등대우 원칙 >>
♦ 파견근로자는 파견기간 중 임금을 포함한 중요 근로조건과 관련하여 사용사업 내에
비교가능한 근로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평등대우원칙에 위반하는 합의는 무효가 된다.
(근로자파견법 제9조 제2호)
♦ 파견사업주와 파견근로자 간의 합의가 무효인 경우에, 파견근로자는 사용사업 내에
비교가능한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임금을 포함한 중요 근로조건을 보장할 것을 파견사업주에게
요구할 수 있다(근로자파견법 제10조 제4항)
♦ 평등대우원칙을 준수하지 않는 경우에는 파견 허가가 거절되거나 이미 부여된 파견허가가
철회될 수 있다(근로자파견법 제3조 제1항 제3호 및 제5조)
♦ 사용사업주는 근로자파견 계약서에 사용사업 내에 비교가능한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임금을
포함한 중요 근로조건을 기재하여야 한다(근로자파견법 제12조 제1항 제3호)
♦ 파견근로자 자신이 평등대우원칙이 준수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파견근로자에게는 사용사업 내 비교가능한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중요 근로조건에 대한 정보를
사용사업주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다(근로자파견법 제13조)
참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고용법제 국제비교 연구(한국노동연구원 김훈)]
[@ 최저임금 관련 부분은 워낙 논쟁적인 사안이라 의견이 분분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최저임금인상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 그리고 최저임금인상이
경제에 어떤 파급효과를 미칠것인가 보다 정책결정자들의 "의지'의 문제라고 봅니다.
노동분야를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명쾌한 답을 하기는 어렵겠지만
최저임금은 우리사회가 분배정의를 실현하기위한 가장 소중한 가치이자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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