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6일 목요일

◆ 이슬람과 근본(원리)주의란 무엇인가? (by 물파스)

글을 올릴까, 말까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 
예전 다른 주제의 글에서도 제 글이 너무 길다며 불편해 하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이번 글은 제가 지금까지 이슈인에 올린 글들 중에 아마도 가장 긴 글이 될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시간내서 읽어보신다면 "이슬람(Islam)"에 대해서 최소한 핵심내용은 
충분히 가져가실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 글이 시작되는 처음 부분은 전에 이슈인에서 한 번 언급했던 내용입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몇 가지 개념 구분이 필요합니다 ... 바로 
중동, 아랍, 이슬람(교)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있어야만, 본격적인 얘기를 진행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앞 부분은 전에 이슈인에서 한 번 언급했던 내용입니다.)

[◆ 중동(Middle East) ]

과거 유럽인들이 보기에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지배하던 지역이 
자신들과는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상당히 이질적인 곳(다른 곳)이라 생각하여, 
유럽과 가까이 있는 동양이라고 불렀는데 ... 그 의미가 바로 근동(近東, Near East)입니다 

여기에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같은 나라는 아주 ‘멀리 있는 동양’이라 하여
극동(極東, Far East ) 이라고 불렀습니다 ... 그리고, 그 중간을 중동(中東, Middle East) 이라고 했는데,
실질적으로는 과거 유럽에서는 오늘날의 중동지역을 ‘근동’이라는 명칭으로 더 자주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중동’ 이라는 명칭이 서서히 일반화되기 시작했는데 ... 예를들어, 
전쟁 기간 동안에 이집트 주둔 영국군 부대를 ‘중동육군지휘부’ 라고 부르는 등 ‘중동(中東)’ 이라는 
명칭이 완전히 이 시기에 일반화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중동(Middle East) 이라는 명칭은 유럽중심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본 
지리적 의미가 강한 개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정확한 (지리적)의미의 중동은 딱히 정해진 바는 
없습니다. 다만 일반적인 중동의 지리적 구분을 얘기할 때는, 동쪽의 아프가니스탄에서, 북쪽의 터키, 
서쪽의 이집트, 남쪽의 수단을 아우르는 지역을 얘기하는데, 여기에 종종 북아프리카의 리비아, 모로코 등을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참고로 세계은행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포함시킨 
메나[MENA 중동과 아프리카] 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UN은 ‘서아시아’라고 부르고, 중국은 지리적으로 
중립적인 ‘서남아시아’라는 용어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또한 냉전이 종식되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했던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과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들 일부를 중동에 포함시켜야 된다는 주장들도 있습니다.
또한 미국 국무부에는 국무차관보가 이끄는 '근동 및 남아시아 문제 담당 사무국'이 있는데
명칭에서 보듯이, 공식적인 외교 라인에서 중동보다 ‘근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제 중동(中東, Middle East)은 유럽중심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본 지리적 의미가 강한 개념 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 다음은 아랍(Arab)입니다.

[◆ 아랍(Arab) ]

보통 아랍(Arab) 국가들은 아랍어(Arabic-language)를 모국어로 사용하면서 
이슬람교를 믿는 국가들을 지칭하는데, 중동(Middle East)이 지리적 의미가 강했다면, 
아랍을 구분 할 때는 주로 언어(아랍어)가 강조됩니다. 

우리는 신문이나 뉴스 같은 미디어를 통해서 "아랍민족"이라는 용어에 꽤 많이 익숙해져 있습니다.
사실 "민족"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정의하기가 어려운 개념입니다. 때문에 "아랍민족" 이라 부르는 것도
조금은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아랍민족에는 백인과 흑인이 함께 공존하기 때문에 혈통적 구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랍(Arab)은 언어(아랍어 Arabic-language)와 종교 문화적 의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아랍민족(국가)"을 언급 할때는 
아랍어(Arabic-language)를 모국어로 사용하면서 주로 이슬람교를 믿는 "거대 공동체"라고 이해하는 것이 
"아랍(Arab)"에 대한 빠른 이해의 방법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페르시아어(Persian language)를 사용하는 
이란과 터키어(투르크어)를 사용하는 터키는 이슬람교를 믿는 중동 국가이긴 하지만, 
아랍 국가는 아니라고 할수 있습니다 ... 더불어 히브리어와 유대교 국가 이스라엘도 중동에는 포함되지만
아랍 국가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 이러한 이유로 이란, 터키, 이스라엘은 아랍연맹에서 제외 됩니다.
[@ 아랍연맹(Arab League) 국가들(22개국)에는 중동(中東)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모리타니, 튀니지, 알제리 같은 국가들과 아프리카 남동부의 섬나라 코모로(Comoros)가 포함됩니다. 
대부분이 아랍어를 사용하고, 이슬람교(수니파) 국가들입니다(수니파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 ]

이렇게 "아랍(Arab)"이라는 개념은 언어(아랍어 Arabic-language)와 종교 문화적 의미가 강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언어(아랍어) 문화적인 의미가 강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특히 레바논 같은 경우는 
이슬람 인구가 약 55% 이며, 기독교를 믿는 인구도 40%를 넘고 있습니다. 그 외 다른 아랍연맹소속 
국가들 중에서도 대부분은 이슬람을 믿지만, 기독교와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도 존재하기 때문에, 
아랍을 언급 할때는 종교 보다는 "언어" 문화적 의미가 좀더 강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참고 – 아랍연맹에 속한 아랍에미리트[UAE - United Arab Emirates) ]는 
석유가 풍부한 아라비아 반도 동부 연안에 있는 7개의 국가로 이루어진 연합국입니다. 
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 아지만, 움알카이와인, 라스알하이마, 푸자이라 - 7개국 연합.]


[◆ ◆ ◆ 본격적인 이야기 – 이슬람(Islam) ]

원래 기독교와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구세주)라고 믿는 것이 기독교이며, 
아직 메시아는 세상에 오지 않았다고 믿는 것이 유대교 ... 그리고 예수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모세처럼 
예언자의 한 사람 일뿐이고, 그러한 예언자 중에서 최후(최고)의 예언자는
오직 무함마드[Muhammad, 마호메트] 뿐이다 ... 라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이슬람교 입니다 ... 따라서 
이들 세 종교가 믿는 신(神)은 결국 같은 "신(神)"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 종교(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하나의 뿌리(일신교)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들 종교의 경전에는 당연히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존재합니다. ... 즉, 유대교의 경전 토라(Torah)는
기독교의 구약성서에 해당하고, 기독교는 구약성서에 예수의 생애와 그 제자들의 활동을 기록한 
신약성서가 더해집니다. 그리고 이슬람교의 경전은 최후의 예언자 무함마드(Muhammad)가
신(알라.Allah)의 말씀을 고스란히 인간 언어로 기록했다는 "코란(Koran,꾸란)" 입니다 ... 또한 코란에도 
구약이 포함되어 있는데, 결국 구약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세 종교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슬람교는 성서에는 신의 말씀이 아닌 것도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정확한 신의 말씀은 오직 코란 뿐 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차이점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슬람교에서 코란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하디스(Hadith)"입니다. 코란 다음으로 권위가 있으며, 코란 해석의 일차적 자료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무엇보다 하디스(Hadith)는 모든 무슬림(이슬람교도)이 배우고 따라야할 하나의 삶의 지침서라는 것입니다.
[@ 알라(Allah) - 특정한 신의 이름이 아닌, 영어로 "God", 즉 "신" 이라는 의미의 일반명사입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Jesus christ)" ... 즉!,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등장하고, 이후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는 아브라함, 모세와 같은 예언자 중 한 사람일 뿐이며, 예언자 중에서는 오직 무함마드가(Muhammad)가 
최고, 최후의 예언자이며 유일한 신(神)의 대리인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신(神)의 아들 이므로 예언자 차원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로 
그 "신(神)의 아들" 이라는 주장 때문에 기독교 내부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즉!, 신(神)의 아들이기 때문에 예수는 "진정한 신(神)이 될수 없다!" 라는 주장과 
"아니다! 신의 아들도 분명히 신성(神性)이 존재한다!" 라는 주장이 대립하게 된 것입니다 ... 그리고 
이러한 기독교 내부의 충돌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 에게도 신성(神性)이 존재한다" 라는 주장이 승리하며 
마무리 됩니다. 유일신 여호와는 이스라엘 민족만 선택한다는 선민사상(選民思想)의 유대교와는 달리, 
교세가 크게 확장 되어가던 기독교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신(神)으로 섬기고자 하는 열망은 
이렇게 점점 더 커져만 갔던 것입니다.

하지만 신(아버지)과 아들(예수), 모두를 신(神)으로 인정하게 된다면, 유일신 체계가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신(神)이 두 명이 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기독교는 아버지 신(神)과 아들 신(神)을 하나의 신(神)으로 만들어줄 어떤 매개적(媒介的) 성격의 
무언가가 간절히 필요했었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聖靈)" 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성부(聖父)와 성자(聖子)와 성령(聖靈)은 모두 하나라는 소위 "삼위일체(三位一體)"설 이 정론으로 
굳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의 신성(神性)을 부정(신이 아니라 예언자다!)하는 
이슬람교는 일종의 이단이었으며, 한편 알라신(유일신)과 그 알라신의 말씀을 온전히 인간의 언어로 
무슬림(이슬람교도)에게 전해준 무함마드(Muhammad)를 따르는 이슬람교의 입장에서도 
기독교는 진정한 유일신 종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 이슬람(Islam) 
"예수는 구원자(메시아)가 아니다! ~ 그냥 모세와 같은 예언자일 뿐이지! ... 그리고 
많은 예언자 중에서 단연 최고이자 최후의 예언자는 오직 무함마드뿐임을 잊지 마라!"

@ 기독교
"웃기지마라! ~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 유대교
"다들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군! ~ 아직 메시아는 오지도 않았구! ... 행여 그 분이 오시더라도 
우리 유대인에게만 오실 예정이다!(선민사상)" .... (곧 오신다구 했는데, 언제 오시려나 ~ -_-;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결국 모두 같은 신(神)을 두고, 서로가 다른 해석을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교의적 차이 말고도 또 다른 몇 가지 차이점이 존재하는데 ...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정치와 종교의 분리 부분입니다. 기독교는 시작부터 정교 분리의 기본원칙을 가지고 시작 했지만, 
이슬람교는 정교(정치,종교) 분리의 원칙이 없었습니다 ... 사실 없었다고 말하기보다는 이슬람교의
가르침 자체가 굳이 정치와 종교를 분리할 필요성이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무슬림(Muslim) ~ 즉,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슬람(Islam)"의 의미는 
종교, 정치, 경제, 사회 활동 전반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하나의 커다란 "삶의 지침"이라고 할수 있는데, 
여기에 더 나아가 이슬람 세계는 "거대한 가정"의 의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기쁨, 슬픔, 분노 등 사람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삶의 모든 희로애락을 이슬람의 가르침 속에서 
무슬림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공동체적(가족)" 의미가 강하다는 것입니다 ... 결론적으로 
"이슬람 공동체(움마 Ummah)" 는 시작부터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경제적 공동체였으며, 
또한 무슬림들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가족의 의미가 강했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슬람은 국가나 인종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족(이슬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바로 무슬림의 삶이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슬람교" 라는 표현보다는 "이슬람(Islam)" 그 자체로 
불리어지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적절한 표현이라고 합니다.
[◆ 제가 제목을 그냥 "이슬람(Islam)" 이라고 정한 이유입니다 ... 이 게시물에서도
이슬람"교" 라는 표현보다는 그냥 "이슬람(Islam)" 이라는 표현이 많습니다.]

이렇게 살펴보면 이슬람의 "공동체 의식" 이라는 것은 개인주의가 만연한 오늘날의 현실과는
조금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슬림(Muslim)들의 
삶과 의식 속에는 아직도 "이슬람 공동체(Ummah)" 의식이 상당히 깊게 침투하여 관념화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슬람에서는 "라마단(Ramadan)" 이라는 단식월이 있습니다. 
이슬람력으로 아홉 번째 달을 말하는데, 이 시기는 코란이 계시된 신성한 달로 여겨 
무슬림들은 한 달 동안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모든 음식과 흡연, 성교 등을 할 수가 없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라마단(Ramadan) 기간 동안에는 자신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모든 무슬림들이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이 역시 공동체 의식과 가족성은 강화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교)는 (예언자)무함마드가 40세가 되던 7세기 초인 610년경에 창시한 종교입니다. 
우상숭배를 멀리하고 오직 유일신 알라를 믿으며 살아가는, (앞서 언급했듯이)무슬림의 삶 자체가 
바로 이슬람의 삶인 것입니다. [@ 무슬림(Muslim) - 이슬람을 믿는 사람]

지난 2015년 1월 23일, 압둘라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자산이 18조가 넘는 갑부의 장례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간소하고 소박했었습니다. 
부자를 넘어 한 나라 국왕의 마지막 가는길이 이렇게 평범하고 소박했던 이유는 
사우디의 지배 이념인 수니파 이슬람주의(와하비즘) 지침을 따른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 이들에게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장례 절차는 일종의 "우상 숭배"에 가까운 죄악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아무리 국왕이나 부자라고 해도 공식적인 애도기간을 두거나 추모 집회를 여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15억 ~ 16억명으로 추산되는 오늘날 무슬림 인구는
그 어떤 종교보다도 빠르게 전파되어 왔습니다.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무슬림(이슬람 신자)이 되고자
할 때는 어떤 특별한 형식이나 절차가 필요 없습니다 ... 다만, 

"라 일라하 일라 알라, 무함마드 라술룰라"
(There is no god but Allah; Muhammad is the messenger of Allah,
알라 이외에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신의 사자이다.) 

... 라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신앙고백 하나면 충분합니다.
흔히 "샤하다(shahadah)" 라고 하는 이슬람식 신앙고백인데, 이렇게 간단한 입교절차는 이슬람이 세계로 
빠르게 전파되는데 나름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기 모양을 보시면, 길게 뻗은 날카로운 칼 위에 아랍어 문자가 두 줄로 적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라 일라하 일라 알라, 무함마드 라술룰라"
(There is no god but Allah; Muhammad is the messenger of Allah,
알라 이외에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신의 사자이다.) ... 라는 "샤하다(shahadah)" 의 신앙고백을 뜻합니다.
[@ 그림파일을 올릴수 없으니 궁금한 분들은 검색해서 사우디 국기모양 한 번 보고 오세여 ~ ] 

샤하다의 고백, 즉 "알라 이외에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신의 사자이다(예언자)" 라는 
이슬람의 신앙고백에서도 알수 있듯이, 그 어떤 권력(국왕)과 부의 소유여부도 모두가 알라 앞에서는 
평등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 하지만, 신(알라) 앞에 모두가 평등하며 거대한 공동체적 의미를 가진
이슬람이 만약 민주주의와 만난다면 어떤 결과가 야기될까 궁금해집니다.

먼저 민주주의는 의회를 통해 법률(헌법)이 제정되고, 그것이 통치의 근간이 되어야합니다.
하지만 이슬람에는 알라의 뜻이 담긴 코란을 바탕으로 한 "샤리아(Sharia)" 라고 하는 절대적인
이슬람의 법체계가 존재합니다. 또한 신이 주신 법률이기 때문에 "샤리아(Sharia)는 완벽" 그 자체 
일뿐만 아니라, 그 무엇도 샤리아(Sharia)를 대신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 따라서 민주주의 의회가
샤리아(Sharia)를 대신하여 통치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신을 모독하게 되는 행위인 것입니다 

이슬람이 민주주의와 양립 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바로 이러한 "샤리아(Sharia)" 라고 하는 
이슬람식 법체계가 많이 거론되고 있는데 ... 여기에 더해 대표적 오리엔탈리스트인 프린스턴 대학의 
버나드 루이스(Bernard Lewis) 교수는 이슬람 세계는 전통적으로 전제 정치가 지배적 역할을 해왔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이슬람 역사를 살펴보면 의회나 그에 준하는 대의(代議)적 기구, 혹은 지방자치와 같은 
제도는 존재한바 없었으며, 오직 샤리아(Sharia) 안에서만 무슬림의 정치가 존재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더불어 독재 권력이 들어서면 일단 복종 하는 것이 차라리 혼란스런 무정부 상태보다는 더 낫다는 것이 
수천 년 이슬람의 세계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져 왔다고 말합니다.

"독재가 혼란보다 낫다!" - 버나드 루이스(Bernard Lewis)

통치권력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매력적인 구호입니다. 이러한 버나드 루이스(Bernard Lewis) 교수의 주장은 
특히 아프리카 지역에서 이슬람이 빠르게 확산되는 모습을 보면 어느정도 설득력을 얻을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다시말해 "샤하다(shahadah)" 라는 간단한 신앙고백 하나만으로도 무슬림이 될 수 있다는
점과(간단한 입교절차) "독재가 혼란보다 낫다" 라는 통치권력 입장에서는 상당히 환영받을 만한 교리들이
부족간의 전쟁이 많고 혼란스러웠던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다른 어느지역 보다도 이슬람을 받아들이는데 
유리하지 않았나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구글에서 무슬림(Muslim)의 분포도를 검색해보면 
대부분 수니파(Sunni) 이슬람과 시아파(Shia) 이슬람으로 구분됩니다. ... 또한 아프리카 대륙은 
모로코나 알제리, 리비아 같은 북아프리카는 물론이고, 이제는 모리타니, 말리, 차드, 부르키나파소 등 
중앙아프리카 지역까지 이슬람이 비교적 빠르게 확산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참고로 유네스코(UNESCO)에 따르면 아프리카 지역에서 이슬람의 전파속도는 매년 1km씩 
남하하고 있다고 합니다. [@ 수니파, 시아파의 개념은 조금 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새로운 이슬람은 근대화는 받아들이되 서구 문화는 거부하며, 
이슬람에 다시 귀의하는 것을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차원에서 
근대 세계의 올바른 생활방식으로 이해한다 ...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고위 관리는 
"수입품은 아주 근사하고 최첨단을 달린다. 그러나 밖으로부터 유입된 무형의 정치사회 제도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이란의 국왕에게 물어보라 이슬람은 우리에게 단순히 종교가 아니라 
생활 그 자체다. 우리는 근대화는 원하지만, 그렇다고 서구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설명하였다. ... - 문명의 충돌 (p143, 새뮤얼 헌팅턴) ]

세계적인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도 무슬림 세계에서의 민주주의 발전가능성은 상당히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더불어 이슬람의 역사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환영받았던 적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요즘 
언론에서도 많이 언급되는 소위 "이슬람 원리주의(근본주의)"로 대변되는 극단주의 세력의 부상이
이슬람에서 민주주의가 정착되는데 상당히 큰 저해요인이 될 것이라 예견했습니다.

파리 주간지 <샤를리 엡도> 테러, 최근 휴양지 <니스테러>, <성당 테러>, <독일 자폭 테러> ... 등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의 무차별 테러로 세계의 골칫덩어리이자 세계적 공포로 부각된
"IS(이슬람국가)" 같은 새로운, 혹은 기존 세력에서 파생된 이슬람 급진적 무장단체의 출현이 
점점 더 규모화 되고 증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헌팅턴의 (당시 논란이 많았던)"문명의 충돌" 이라는 
20년전의 텍스트가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더 과격하고 복잡한 (폭력)현상으로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소름이 돋습니다. 다만 IS(이슬람국가)는 급진적 혹은 광신적 "근본주의 세력"이라고 
단순하게 정의하기에는 조금은 복잡한 면이 많습니다. 
[@ 서구 중심적 시각이라며, 당시 논란이 많았던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재평가 받기도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찬반의 견해가 많이 나뉘고 있습니다 ]

아무튼 이렇게 이슬람은 민주주의와 양립할수 없다는 주장들이 많지만 ... 반면에 
이슬람도 충분히 민주주의와 양립할수 있다는 긍정론적 시각도 물론 존재합니다 ... 아랍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현대 아랍시의 황제, 아흐마드 샤우키(Ahmad Shawqi) 는 초기 무슬림들의 주요 저작들을 분석하고, 여기서 
정의(justice)와 권리(haqq) 그리고, 오늘날 서구사회의 의회와 비슷한 협의체인 슈라(shura)와 
평등(musawaat) 이라는 가치관을 발견했는데, 이러한 모든 것이 결국은 서구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 다시말해 이슬람 사회는 시민들의 권리와 정의를 인정하고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있는 자결권을 부여함으로서 서구가 주장하는 민주주의의 개념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이슬람이 민주주의로 교체될 수 있느냐의 의미가 아니라, 
이슬람 안에서 민주주의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느냐의 의미입니다 ) ... 또한 튀니지의 이슬람 원리주의 정당인 
알 나흐다(Al-Nahda) 창시자인 라시드 간누치(Rachid Ghannouchi)는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는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실천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슬람은 알라 이외에 그 어떤 존재도 신성시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말해, 어떤 절대권력이 개입하여 인간을 통치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코란(Koran)은 무슬림 상호간의 협의(shura)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고 얘기합니다. 이것은 결국 
사회가 정당과 의회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는 민주주의의 의회제도와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 "칼리프[Caliph]" > ... 라는 지도자의 직위는, 특정한 개인이나 계급, 집단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무슬림 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개방적인 지위이며, 이러한 지도자 선출은 무슬림의 자유로운 참여의지 
안에서 이루어지며, 지도자의 권위가 독점이나 세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민주적 가치관에도 
부합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럼 이쯤에서 이슬람의 대표적 종파인 "수니파(Sunni)", "시아파(Shia)"의 개념을 살펴보고, 
"칼리프[Caliph]" 라는 신분(제도)이 이슬람 세계에서 과연 어느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도 
자세히 한번 들여다봐야 할 것 같습니다 ... 분명한 것은 이들의 의미를 모른다면 
수많은 중동 분쟁은 물론, 이슬람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 ! !

632년에 사망한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안타깝게도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따라서 무함마드를 대신해 이슬람을 이끌어갈 누군가가 필요하게 되었는데, 한마디로 후계자가 필요했던 겁니다. 
그리고 이 후계자를 < 칼리프[Caliph] > 라 부릅니다. [@ 칼리파, 할리파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슬람과 민주주의는 공존이 가능하다는 긍정론자들은 칼리프의 지위가 독점이나 세습이 아닌 
선출(선거)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민주적 가치관에도 부합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무함마드 사후에도 긍정론자들의 주장처럼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된 4명의 칼리프가 존재했었는데, 
이 시대를 소위 "정통 칼리프 시대" 라고 합니다. 

최후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죽고난 후 ... 4명의 칼리프가 존재했던 정통 칼리프시대부터 
우마이야 왕조까지 불과 100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이슬람은 거대한 제국을 형성 했습니다.
파키스탄 중앙을 관통하는 인더스 강 유역과 중국 변경, 중앙아시아 일부, 북아프리카, 스페인이 포함된 
대서양 연안까지 ... 제국의 크기가 점점 커져갈 때마다 이러한 대제국을 이끌어갈 칼리프의 권한도
함께 커져만 갔던 것입니다. [◆ 우마이야(Umayya) 왕조 - 중앙아시아로부터 에스파냐까지 지배하고
서유럽에 이슬람 문화를 전하기도 하였으나 750년 아바스 왕조에 멸망하였음 ]

그래서 당시 "칼리프" 라는 존재는 종교지도자이자, 정치지도자 및 군사령관의 역할도 동시에 주어졌던 
그야말로 이슬람 세계의 최고의 권위자 였던 것입니다. [◆ 다만, 칼리프가 아무리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해도, 
당연히 신(알라)을 넘어설수는 없었으며, 어디까지나 최후의 예언자 무함마드를 계승하는 자리였음.] 

이슬람의 정치 사상가들은 칼리프제도가 세습제가 아닌 선거제이며, 국민들에게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준수케 하고, 칼리프와 국민들 사이에는 사회계약이 존재한다는 점을 들어 18세기 유럽사회의 
여러 민주적 제도들 보다 앞섰다고 주장합니다 ... 참고로, 칼리프의 권위는 오스만 제국 시절에 
칼리프의 권위가 퇴색되면서부터 "술탄(sultan)" 이라는 칭호로 이어졌고, 지방 각지의 지배자들이 
너도나도 술탄의 칭호를 사용하면서 수많은 술탄이 출현하게 됩니다. 그러나 술탄.칼리프 제도는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 터키 공화국이 들어선 1924년에 폐지됩니다. 
[◆ 이번 터키에서 일어났던 6시간 쿠데타 이후, 에르도안 대통령은 통행금지, 집회금지 같은 
국민들의 기본권 제한과 정보 요원의 시민에 대한 일방적 차량.가택 수색 권한 등으로
전보다 더 강력한 통치권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국제사회는 에르도안이 마치 자신이 "술탄"에 등극하려는 것 같다며, 우려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 

[◆ ◆ 4대 정통 칼리프 ]
@ 제1대 칼리프 - 아부 바크르 (632~634) 
@ 제2대 칼리프 - 우마르 (634~644) 
@ 제3대 칼리프 - 우스만 (644~656)
@ 제4대 칼리프 - 알리 (656~661)

칼리프의 권한과 그 중요성이 점점더 커져감에 따라 칼리프를 선출하는데 있어서도 
모든 무슬림들에게 인정받는 투명하고 공정한 선출이 요구 되었습니다 ... 그리고 무함마드 사후 
2대 칼리프 까지는 후계자를 선정하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3대 칼리프로 선출된 우스만(우스만 이븐 아판)은 당시 자신의 친족이었던 
우마이야 가문 사람들에게 노골적으로 권력을 집중 시켰습니다 ... 그러자 무슬림들 사이에서는
균열이 발생했으며, 3대 칼리프 우스만과 그 친족 우마이야 가문의 독재를 비판하고 반대하던 일파가 
무함마드의 유일한 혈족(사촌)이자 사위였던 알리(Ali) 를 4대 칼리프로 추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4대 칼리프 알리가 암살을 당하면서 정통 칼리프 시대는 끝나게 되었고, 이후의 칼리프 직위는
우마이야 왕조의 세습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여기서, 당시 4대 칼리프 알리를 추종했던 세력을 "시아트 알리(알리의 추종자들)" 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오늘날의 시아파(Shia)로 이어진 것입니다. 더불어 시아파는 이슬람 전체에서 10%를 차지하고 
있으며[@ 시아(Shia)는 분파, 파벌을 의미합니다] ... 전체 이슬람의 90%는 수니파입니다.
[@ 참고: (수니파 맹주는 사우디아라비아), (시아파 맹주는 이란) ]

시아파(Shia)는 정통 칼리프 시대의 1대, 2대, 3대 칼리프 모두를, 알리의 칼리프 지위를 빼앗은 찬탈자들 
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무함마드의 후계자는 유일한 혈족이었던 4대 칼리프 알리뿐이며, 
알리가 1대~3대 칼리프 보다 앞선 진정한 1대 칼리프라고 주장합니다. 다시말해 시아파는 1대~3대 칼리프의 
적법성을 모두 부정하는 종파인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봤던 이슬람의 신앙고백 샤하다(shahadah) 즉!
"라 일라하 일라 알라, 무함마드 라술룰라"(There is no god but Allah; Muhammad is
the messenger of Allah, 알라 이외에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신의 사자이다) ... 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시아파는 여기에 "알리(Ali)는 신의 사랑을 받은 자이며, 신자들의 사령관이고,
신의 친구이다" ~ 라는 구절을 추가합니다.

전체 이슬람의 90%를 차지하는 수니파(Sunni), 그리고 이슬람의 10%를 차지하는 시아파는
이슬람의 경전 코란과 무함마드의 언행(@ 수나.Sunna)을 기록한 하디스(Hadith) 를 믿고 따르는
부분에서는 서로 차이가 없습니다.
[◆ 수나(Sunna)는 쉽게말해 무함마드의 일상생활에서의 말과 행동이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입으로 전해진 일종의 구전율법이며, 하디스(Hadith)는 그러한 수나(Sunna)의 내용들을 좀더 
구체화하고 명문화한 것입니다. 또한 하디스(Hadith)는 후에 이슬람율법인 샤리아(Sharia)가 
만들어지는데 매우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

특히 수니파(Sunni)는 무함마드의 언행(수나.Sunna)과 하디스(Hadith)를 신앙의 가장 중요한 
기초라고 생각했으며, 무함마드가 최후의 예언자였기 때문에 당연히 신앙의 모든 부분도 오직 무함마드의 
언행(수나)과 기록(하디스)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정통 칼리프(4대 칼리프)시대 이후로는 
비록 칼리프 직위가 세습되긴 했지만, 무함마드의 언행(수나.Sunna)과 하디스(Hadith)가 계승되는 부분에
있어서는 큰 문제가 없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세습된 왕조의 칼리프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 
바로 수니파의 생각인 것입니다. 더불어 이러한 생각들이 진정으로 무함마드를 계승하는 것이라 주장하며 
수니파(Sunni)는 자신들을 이슬람의 주류, 즉! ~ "이슬람 진짜 정통파" ... 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진정한 계승자는 유일한 "혈통"이었던 알리(제4대 칼리프) 뿐이라고 주장하며, 
당연히 칼리프도 알리 이외에는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또한 알리가 무함마드의 
혈통이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 알리의 12대 후손까지) 에게도 칼리프에 버금가는 권위와 존경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후손들도 무함마드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최고 지도자(칼리프)의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아파는 알리의 12대 후손들까지를 소위 "12 이맘(imam)"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는데, 뿐만 아니라 여기서 시아파는 수니파와는 달리 "12 이맘(imam)" 즉! ~ 알리를 포함한
12대 후손들의 가르침도 "신앙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최후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Sunna)과 하디스(Hadith)를 신앙의 중심으로 생각했던 
수니파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시아파의 주장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 더불어 
칼리프의 계승문제 부분도 시아파는 너무 혈통주의만을 내세우는 것 같아 수니파가 보기에는 못마땅한 
부분이 많았는데 ... 이렇게 보면, 수니파는 칼리프 직위 계승에 대해서는 시아파 보다는 조금은 넓고 느슨한
입장을 취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수니파에서 "이맘(imam)"은 칼리프와 거의 비슷한 의미로 사용됐지만, 
1924년 터키 공화국에 의해 칼리프 제도가 폐지된 이후, 오늘날의 이맘(imam)은 
예배의 주관자이거나, 만약 혼자서 예배할 경우에는 본인이 이맘(imam)이 될수도 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시아파는 오로지 무함마드의 혈통이었던 알리와 그 후손들(12대 까지) 만을 신성시하며
칼리프의 권위와 존경을 부여하기 때문에, 만약 "이맘(imam)"이라는 용어가 시아파에서 사용될 때에는 
여전히 칼리프의 권위처럼 알리와 12대 후손들에게 (무함마드를 계승한) 신앙적 의미가 부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사실 이맘(imam)에 대한 해석은 각 종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 다만 
수니파, 시아파 불문하고 공통적으로 사용될 때가 있는데, 바로 이슬람에 대한 학식이 뛰어난 학자들에게 
존경의 의미로 사용할 때입니다. ... 우리가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분들에게 "선생님" 혹은 "참 스승님" 
이라고 존칭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결론적으로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의 씨앗은
결국 4대 칼리프 였던 "알리"가 죽고(암살)난 이후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이슬람 사회에서는 
1대 ~ 4대 칼리프 알리까지의 "정통 칼리프시대"를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이슬람의 가장 최고의 
전성기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실제 그 당시(4대 정통 칼리프시대) 이슬람의 영토와 문화 또한 
가장 크고 빛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소위 "숨은 이맘(imam)" 이라는 사상이 있습니다. 

혈통을 중시한 시아파는 알리의 후손 중에 열두 번째 (12대)후손이었던 "무함마드 알 문타자르"가 
어느날(4세) 갑자기 사라지자 충격에 빠졌습니다.(873년) 이제 막, 이맘(imam)의 적통을 이어받아 자리에 
올랐는데, 4세라는 너무나 어린나이에 사라진 것입니다. 또한 죽었다고는 더더욱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아파는 이것은 모두 신(알라)의 뜻이라 생각하고, 그를 "숨은(숨어버린) 이맘(imam)" 이라고 
칭했으며, 훗날 사라진 숨은 이맘(imam)이 마흐디(Mahdi 구세주)가 되어 세상에 다시 나타나 
이슬람 세계에 진정한 평화와 정의를 선물하고 비로소 하나의 이슬람을 완성할 것이라 
믿었던 것입니다(이슬람 공동체) ... 그리고 이러한 "숨은 이맘(imam) 사상"은 오늘날까지 
시아파 무슬림들에게 깊게 파고들어 강력한 믿음이 되었습니다. 

물론 수니파 이슬람에도 "숨은 이맘(imam)" 사상이 존재합니다 ... 다만 시아파와 차이점 있다면, 
숨은 이맘(imam)이 마흐디(Mahdi 구세주)가 되어 세상에 나타나는 시기가 인류가 멸망하는 
마지막 날(최후의 심판) 이라는 것입니다 ... 한마디로 전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의 재림인 것입니다.

[◆ 숨은 이맘(imam) 사상은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Islamic Revolution) 당시 
절대자 아야툴라 호메이니(Ayatollah Ruhollah Khomeini)의 출현과 맞물리면서 
시아파 무슬림들 사이에서는 호메이니를 숨은 이맘(imam)의 재림으로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호메이니의 절대적 지도력은 (이란)시아파 무슬림들의 숨은 이맘 사상 때문이라는 
주장이 많았었습니다. ]

이슬람 종파 얘기가 나오면 당연히 수니파와 시아파가 언급 됩니다. 
이슬람에서 이 두 파가 워낙 압도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슬람에는 수니파와 시아파, 그 어느파에도 
속하지 않는 하리즈파 라는 종파도 존재하며, 또한 시아파(Shia) 안에서도 여러 분파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 시아파에는 무려 70여 개의 분파가 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 -_-;)

또한 앞서 살펴본 12이맘(imam) 파는 시아파 안에서도 다수를 차지하는 
한마디로 시아파내에서의 다수파이며, 이러한 12이맘(imam)의 전통이 큰 문제없이 잘 이어져 내려오다가, 
일곱 번째 이맘(imam), 즉! 7대 이맘(imam)을 선정할 때 시아파 내부에서 또 다른 분열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맘(imam) 제도는 당연히 이맘의 후손이 후계자로 선정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후손들 중에서는 
장남이 이맘(imam)을 이어가는 것이 가장 무난하고 또 보편적인 관례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 그런데
6대 이맘(imam) 이었던 ‘자파르 알 사디크’의 두명의 아들 중에, 장남이었던 이스마일(ismailism) 이 
아버지보다 먼저 사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생존한 차남 "무사"를 이맘(imam)으로 추대하자는 
사람들과 죽은 장남 이스마일(ismailism)의 아들을 7대 이맘(imam)으로 추대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서로 
충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죽은 형 이스마일(ismailism) 쪽을 지지했던 추종자들을 가르켜 
7이맘파, 또는 이스마일파 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7이맘 파는 시아파 내부에서 12이맘 파 다음으로 비중이 큽니다.]

이 외에도, 5대 이맘(imam)을 결정할 때 분열되었던 자이드파 라는 분파도 있으며, 
현재 예멘(과거 북예멘)의 상당수가 자이드파 입니다. 또한 자이드파는 시아파이면서도 가장 수니파적 
성격(교의)을 가진 종파라 할수 있습니다. 더불어 7이맘파 안에는 드루즈파(Druzes)와 알라위파(Alawi) 등의
여러 소수 분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텐데 ... 여기까지 차분히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오늘날 무슬림들의 삶에서 그들에게 "이슬람(Islam)"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대강은 감을 잡으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 제가 서두에서 "이슬람 = 삶" 이라고 했던 의미가
이제는 이해되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칼리프의 계승문제와 순혈주의, 그리고 이맘(imam) 선정의 분열 등 ... 지금까지 "이슬람(islam)" 이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는 이렇게 다양한 종파와 분파들의 갈등이 녹아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은 무함마드의 유일한 혈통이었던 4대 칼리프 알리(Ali)가 암살을 당한 
661년 이후로 오늘날까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 또한 용광로 속에서 
수많은 갈등과 대립이 종파나 분파를 초월하여 하나의 붉은 쇳물로 녹아 흐르기를 많은 무슬림들은 희망하고
있지만, 희망과는 다르게 붉은 쇳물은 수많은 곳에서 과격한 "이슬람 원리주의(근본주의)"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체 이슬람의 90%가 수니파인 상황에서 시아파는 수적 열세를 못 이기고 쫓기다시피 물러나며 
정착한 곳이 바로 지금의 이란과 이라크(일부지역) 였습니다 ... 그래서 흔히들 이란을 시아파의 맹주라고 부릅니다.
[@ 수니파 맹주 사우디아라비아] ... 

더불어 우리는 뉴스에서 간혹 "이슬람 근본주의(원리주의)" 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전세계 모든 무슬림들이 이슬람이 가장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바로 그 시절!
즉, "4대 정통 칼리프 시대" 로 돌아가자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 그래서 IS 같은 일부 테러리스트들이 
가끔 유투브(YouTube)에 복면을 쓰고나와 인터뷰하는 장면을 내보내곤 하는데, 그때 그들이 강조하는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 자신들은 "이슬람 근본주의"로 돌아가서 가장 빛나는 이슬람을 만들려고 한다는 내용이 
많다는 걸 알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자막에 보이는 이름에는 "칼리프"를 집어 넣은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이유가 그 이유인 것입니다. 

중동지역, 아랍, 이슬람, 걸프만(The Gulf) ... 뉴스에서 이와 관련된 단어만 나와도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뉴스를 자세히 보지 않고서도 대부분은 모두가 비슷한 내용을 추측합니다 ... 그 내용은 
분명 전쟁(분쟁) 아니면, 석유(Oil)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잡하게 꼬여있는 현대 중동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의 뿌리성격의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앞에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는 원래 하나의 뿌리였다고 설명 드렸는데 ... 중동(분쟁)을 거론할때는 
당연히 "종교"가 모든 분쟁의 가장 큰 뿌리임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대 중동문제(테러 포함)는 "종교(이슬람)" 라는 근원 위에서 이해될 수 있는 ... 지금의 
(복잡한)문제를 야기한 "작은 뿌리 성격"의 원인이 또 있습니다. 바로 이-팔 분쟁과 이란-이라크 분쟁,
그리고 오늘날의 현대사를 바꾼 아프칸전쟁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여러 중동국가들 ... 사우디,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 등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국가들입니다. 

시리아 내전, 이라크 내전, 예멘 분쟁 ... 등 재스민혁명(아랍의 봄) 이후 
현재 중동에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분쟁과 갈등의 저변에 흐르는 기본적 전제는 모두가 잘 아시다시피 
수니파와 시아파라는 종파의 대립입니다 ... 하지만 우리가 앞서 살펴봤듯이 예언자 무함마드(마호메트)의 
혈통인 4대 칼리프 알리가 암살당한 661년 이후부터 시작된 종파분쟁의 씨앗은 오스만제국[1299~1922] 
시절에는 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 이러한 이유는 바로 오스만제국이 
중동의 핵심국가(중심국가)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인데 ... 그래서 새뮤얼 헌팅턴도 문명의 충돌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자 이슬람의 핵심국가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 (중략) 
따라서 20세기 대부분의 기간동안 다른 이슬람 국가들이나 비이슬람 국가들에 의해 
이슬람의 지도국으로 수용되고 그러한 역할을 맡기에 충분한 실력과 문화적, 종교적 
정통성을 가진 핵심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 이슬람을 특징짓는 내부적 외부적 
분쟁 다발의 주요 원인은 바로 "이슬람 핵심국의 부재"였다 ... 중심없는 의식이
이슬람에게는 약점이 되었고 다른 문명들에게는 커다란 위헙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 문명의 충돌 (p237 ~238, 새뮤얼 헌팅턴) ]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론은 1993년 [포린 어페이스]지 여름호에 실린 논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좀 더 깊이 연구하고 다듬어서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 
이슬람의 "중심국 부재"가 오늘날 분쟁의 원인이라는 20년전의 헌팅턴의 주장을
2016년 현재에 대입해도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 다만 헌팅턴의 주장에 개인적으로 제가 생각한 
분쟁원인을 주제넘게 추가해 보려 합니다. ... 그것은 바로 이슬람이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민족"이라는 
다양한 분자들의 이질적 괴리라고 제 나름대로 분석해 본 것입니다.

쉽게말해, "이슬람" 이라는 버스안에서 나를 지켜줄 유일한 수단은 "민족"이라는 안전벨트 뿐입니다.
중동이라는 거대한 절대 공간에서 수많은 민족이 존재하며, 앞서 살펴봤듯이 이슬람 이라는 
삶의 방식(종교)에서도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며, 심지어 그 속에서 시아파는 70여개로 또 다시 
나뉘어지는데 ... 한마디로 이슬람 이라는 거대한 강 속에서 수많은 다양한 물고기(민족)들이 모여 
강(이슬람)의 생태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는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 거대한 중국대륙에도 
수많은 민족이 존재하지만 그들에겐 핵심적 민족인 "한족"의 존재가 중국을 이끄는 것처럼 말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들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 속에서 
오늘날의 중동국가들(사우디,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등)은 탄생했습니다. 
오스만 제국 멸망으로 (제국 입장에서 보면)텅 빈 공간으로 남게 된 중동이라는 공간에
유럽인들은 수백년전 부터 그 곳에서 살고 있었던 이슬람(중동인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슬람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유럽은 자신들끼리 합의 하에 국경선을 긋고 ... 그래서 중동 이라는 
공간속에서 잘 살아가던 수많은 민족과 종교는 수십.수백갈래로 찢겨지고, 피를 흘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의 한 세기가 흐른 지금, 그때에 갈라지고 피를 흘렸던 수많은 이슬람인들중 일부가 
과거 찬란했던 이슬람(4대 정통 칼리프 시대)을 그리워 하며, "폭력(테러)"이라는 수단으로 
과거를 다시 찾으려고 합니다. (@ 이슬람 원리주의)

이슬람의 원리주의는 코란을 자구 그대로 해석하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4대 정통 칼리프 시대가 거대한 제국을 이루었고, 이슬람의 가장 전성기 였기 때문에
극단주의 자들이 추구하는 윈리주의는 단순히 코란을 따르는 것을 넘어서
가장 강력했던 이슬람을 열망하며, 21세기 새로운 (정통)칼리파 시대로의 열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즉, IS 같은 급진 무장세력의 모습 속에는 이슬람 역사에서 가장 화려하고 평화로웠던 
정통 칼리프(4대 칼리프) 시대가 투영되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정통 칼리프"라는 
1,400 년전의 시대적 환영이 현재의 IS를 아편처럼 유혹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 다시말해 
이슬람의 역사에서 가장 강력했던, 또한 제국으로서의 면모도 가장 화려했던 4대 칼리프에 대한 열망은 
새뮤얼 헌팅턴이 지적했던 이슬람의 "중심"과 치환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근본주의자들은 
오늘도 그 중심에 서기위한 싸움을 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그들(원리주의자)이 과거 이슬람(4대 칼리프 시대)을 찾고자 하는 의미의 본질은 무엇일까?
단순히 영토를 넓혀서 많은 무슬림들이 예전처럼 오직 종교(이슬람) 안에서만 생활하기를 바라는 것인가?
그래서 세계적인 정치학자 안토니오 네그리는 자신의 저서 "제국"에서 다음과 같은 시선을 제공합니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탈근대적 현상이다 ... 즉, 서구근대화의 실패에 대한 
필연적인 이데올로기적 반응이다" - [ 제국 / 207 페이지/ 이학사] 

따라서 근본주의가 규정하는 반근대화의 추동력은 사실 탈근대화 궤도에서 더 잘 이해될수 있다는 것이 
안토니오 네그리의 생각인 것입니다. ... 한마디로 이슬람의 근본주의는 미국과 유럽 같은 
서구의 선진근대화(제도,법,문화 등)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 최소한 그들과 
동등한 수준의 "새로운 근대화"를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앞서 얘기했던 이슬람의 가장 
화려했던 4대 정통 칼리프 시대의 정신을 어쩌면 현대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한마디로 현재 이슬람의 근본주의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원리주의자들의 "4대 정통 칼리프 시대"는 
"세계 최고 수준의 근대화" 라는 것이 그들 원리주의자들이 말하는 원리주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더불어 앞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서 사우디의 고위 관료가 지적한 
"우리는 근대화는 원하지만, 그렇다고 서구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대목에서 
그들(원리주의자)이 원하는 근대화가 결국은 네그리의 저서 "제국"에서 언급하고 있는 
"새로운 근대화"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슬람 원리주의, 특히 IS가 추구하는 원리주의를 이렇게 정의해 보려 합니다. 

"반도체형 원리주의 !" 

컴퓨터의 핵심을 이루는 반도체(마이크로칩)는 지표면에서 가장 흔한 물질인 
규소[실리콘(silicon)], 알루미늄, 산소로 만들어 집니다. 물론 미량의 다른 원소들이 첨가 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이것들은 중요한 원소들입니다. ... 그리고 인류사에서 저항 혹은 억압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가장 흔한 수단은 바로 "폭력"이었습니다. 

IS는 세상에서 가장 흔하고 단순한 "폭력(테러)" 이라는 재료를 사용하여 자신들만의 국가를 만들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획득한 영토의 토착민들에게 도로와 상수도를 보수해주고 전력을 공급하며,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기도 합니다. 또한 페이스북과 SNS를 통하여,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로 자신들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많은 주민들은 IS로 인해 전보다 마을 형편이 좋아졌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 물론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한다든지, 남의 여자를 쳐다보면 구타를 당한다든지 ... 하는 일부 폐쇄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IS는 극단적 폭력으로 영토를 확보하면서, 동시에 그곳의 정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던 
사회경제적 인프라 건설 이라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민심을 얻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 IS는 극단적 테러단체이기전에 매우 치밀한 정치조직 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 제가 이들을
"반도체형 원리주의" 라고 정의 했던 이유가 바로 이러한 사정 때문입니다. ... 다시말해
지구상에서 가장 흔한 폭력(테러) 이라는 방법으로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가장 최첨단(페이스북, SNS, 유튜브, 치밀한 정치전략 등) 으로 스스로의 효용가치를 증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정신(사상,신앙)은 발전없는 가장 후퇴한 공간(코란을 문자 그대로 해석)에 머무르면서 
육체(행동)는 최전선에서 가장 최첨단 기술인 SNS, 트윗터, 스마트폰 등을 활용하여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도체형 원리주의가 됐든, 4대 정통 칼리프 시대를 그리워 하든, 
서구 열강을 넘어서는 "새로운 근대화"를 원하든지 간에 ... 이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행사하는 무차별 "폭력"에 대해서는 ... 그들 스스로는 과연 그 어떤 양심의 가책이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일까? ... 이에 대한 답은 "동유럽의 기적", 천재 철학자" 등 
극찬을 받고있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의 답변으로 대신해 보겠습니다. 

[◆ 종교적 근본주의의 핵심에는 "만약 내가 신을 대신해서 행동한다고 믿는다면, 
신의 의지를 충족하고 실현시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습니다. 
폭탄을 터뜨릴 수도 있고, 뭐든지요. 보다 정치적인 예를 든다면(이것이 바로 스탈린주의가 
종교적 구조를 가지는 이유인데) 스탈린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역사의 법칙을 알고 역사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정당화 하고, 수백만명을 죽이는 일이 
가능한 거죠.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아닌 성스러운 법이나 의지이고 
자신들은 단지 도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 (임박한 파국. 슬라보예 지젝의 특별한 강의 112 페이지/ 꾸리에 출판) ] 

그리고 책에서 지젝은 라캉(프랑스 철학자, 정신분석학자)을 인용하며 이렇게 얘기합니다. 

" '만약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금지된다'는 말을 넘어 심지어 
'신이 있다면 모든것이 허용된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 ~ ~ ~ ~ (끝)




[@ 작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주간지 <샤를리 엡도> 에 대한 IS 테러가 발생하고 난후, 
이슬람(islam)에 관한 지식이 너무나 부족했던 제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공부좀 하자는 차원에서 
썼놨던 글입니다. 그때는 다른 사이트를 오가며 글을 올리고 있었는데, 그때 어느 한곳에 올렸다가 
글이 길다고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 그리고 지금도 긴 글 불편해 하시는 분들이 계실까봐 
조금은 걱정이 됩니다. ... 그냥 정성글로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미완성된 글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이-팔 전쟁, 아프칸 전쟁, 그리고 
현재 IS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테러 단체와 관련한 부분도 
처음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을때 계획했던 부분인데, 그 내용이 빠져있습니다. 
나중에라도 이 부분이 완료되면 한번 올려보겠습니다. ... 끝으로 제 글이 퍼갈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간혹 글을 퍼가도 되겠냐는 질문이 보이는데, 저는 글을 상업적 목적으로 쓰는것이 아니라
저 스스로의 부족함을 채우고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출처만 언급해 주신다면 
얼마든지 가져가셔도 상관없습니다. ]









이슬람 근본주의의 일반적 형태는 <호메이니 집권 후의 이란>이 좀 더 전형에 가깝다고 보고요,
무슬림들조차 인정하지 않는 IS를 근본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면 오히려 오해의 소지가 크다고 봅니다.
IS는 이슬람계 사이비 종교 + 테러리스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글 내용중에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저는 이미 IS(이슬람국가)를 "근본주의 세력" 이라고 단순하게 정의하기에는 
조금은 복잡한 사정이 많다고 언급하였습니다. ... 또한 여기에 IS 에 대해
"반도체형 근본주의" 라는 제 나름의 개인적 정의를 추가해 설명드렸고요 ~ 

첨언 하면, IS는 님께서 지적한대로 
(이슬람계 사이비 종교 + 테러리스트) 수준으로만 이해하시면
IS를 한개도 모르는 것입니다. ... IS의 정확한 본질을 알기위해서는
알카에다, 탈레반, 지하드 그리고 IS의 전신이었던 소위 레반트 이슬람으로 불리웠던 
ISIS 또는 ISIL(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의 약칭)과 이-팔전쟁, 아프칸 전쟁, 시리아 내전 등 
수많은 복잡한 사정을 모두 얘기해야 하며, 그것은 결국 제가 지금 올린 글 보다 
수배 더 많은 분량의 배경지식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IS를 단순하게 근본주의 세력으로 정의하기에는 어렵다며 
"복잡한 사정" 이라는 문구로 갈무리 한 것입니다. ... 다시한 번 말씀드리지만 
IS는 단순한 사이비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아닙니다. 그 뒤에 숨겨진 거미줄 같은 이야기가 
정말로 어마어마 하다는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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