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6일 목요일

◆가장(家長)의 과거 (by 물파스)

"요즘 사람들은 모든 것의 가격은 알지만, 어떤 것의 가치는 모른다" 
- 오스카 와일드(아일랜드 시인이자 작가)

든든하고 푸근했던 우리 "아버지"들의 가슴에 
언제부턴가 숫자(월급,호봉)가 문신처럼 하나 둘씩 새겨지더니 
이제는 부성(父性)과 맞바꾼 "가장(家長)"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로 
아버지들은 다시 태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환생(還生)이란, 죽은 생명체가 다시 살아난다는 뜻인데
2016년 끄트머리에 위태롭게 서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家長)" 이라는 명제는 
환생의 기쁨보다는 "아버지"라는 과거의 죽은 모습을 더 그리워하는 
슬프고 많이 아픈 역설적 존재인 것입니다. 

수레에 가족이라는 무거운 추(錘)를 싣고
소처럼 묵묵히 앞으로만 걸어가야 하는 가장(家長) 이라는 삶은
본인도 "능력" 이라는 하나의 사회적 추(錘)로서 평가받아야 하는
참 기구한 프랙탈(Fractal)적 운명의 주인공입니다.

가정에 아이가 하나, 둘씩 꽃 필 때 마다 수레에 실린 추와 
사회에서 평가받는 본인의 능력의 추의 무게는 
비록 정(正)의 상관관계 안에서 산술적으로 증가하지만,
영혼에 가해지는 가장의 무게는 지수 함수적입니다. 

그래서인지 작년에 셋째 딸을 낳은 소 같던 선배는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우스갯소리로 자신이 마치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Mephisto)에게 영혼을 팔았던 
파우스트 박사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했습니다.

괴테를 담은 선배의 농담은 비굴하며 또 어둡습니다.

가장(家長) 이라는 프리즘(prism)을 통해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현재 진행되는 한국적 현상의 거의 모든 스펙트럼(spectrum)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가라는 거대 공동체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잘게 미분된 "가장(家長)"이라는 
보잘 것 없는, 혹은 부록 같은 사회 구성요소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건, 
분명 우리 사회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영국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논리학자였던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의 
진리를 향한 치열한 과정을 그린 "로지코믹스"라는 책을 지난 일요일에 읽었습니다.
작년에 사두고 책장 한 귀퉁이에 대충 꽂아놓았었는데 ... 시간이 흐르다가
우연히 책장 앞에서 "내가 이 책을 다 읽었었나?" ~ 하는 생각에 무심코 
집어 들었는데, 그냥 그 자리에서 읽게 된 책입니다. ... 그런데 그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과거가 좋았다고 생각되는 최고의 증거는 바로 현재다" - [ 로지코믹스 284p ]

한국 사회에서 수많은 "가장(家長)" 들에게 
가장 좋았던 그 때는 바로 "과거"일 것입니다 ... 그리고, 그 과거는 
바로 "아버지"라는 과거일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 부성(父性)을 잃어버린 한국 사회 모든 아버지들을 위해 
주제넘은 짧은 감상 하나 남깁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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