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6일 목요일

◆유로존 문제 (by 물파스)

유로존 이야기는 이슈인에서 여러번 언급했었지만 ... 그때 얘기했던 부분과 
몇가지 다른 내용을 추가해 간단히 얘기해 보겠습니다.

독일이 생각한 유럽 통합의 완전한 모습은 바로 "정치통합" 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치)통합으로 가는 과정중에 가장 먼저 해결해야될 부분이 "화폐통합" 이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유로화" 사용이었던 것이죠 ...

그럼 독일이 생각한 정치통합의 실질적 의미는 무엇인가 ... 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공동의 재정 및 예산정책", "공동의 경제정책", "공동의 사회복지" ... 그리고 
어떠한 정치적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공동의 중앙은행" ... 이것이 독일이 생각했던
유럽의 궁극적인 "정치 통합" 의 개념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독일의 구상대로 (정치)통합이 이루어 진다면 많은 부분에서 마찰이 예상됩니다.
바로 경제주권에 대한 부분인데 ... 예를들어, 프랑스와 이탈리아 같은 무역적자국 들은 
재정정책이나 예산결정권 같은 주체적 권한을 잃게 되면서 흑자국들의 입김에 좌지우지 될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야! ~ 프랑스! 우리 공동으로 예산과 재정관리 하기로 했는데, 
니들 아주 개판이야! 내년부터는 돈 쓰는거 조심해라!"

그래서 프랑스는 적자국과 흑자국이 서로가 사이좋게 정책을 함께 조율해야 한다고 주장 했었습니다. 
(40 여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독일과 프랑스의 입장 차이는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독일의 이러한 정치통합 구상과 화폐통합 구상 속에서 
유럽경제공동체(EEC) 국가들은 1972년 3월 환율의 변동폭을 2.25%로 제한 하자는 
일명 "스네이크 체제(변동률이 마치 터널속의 뱀모양과 비슷하다는 것에서)" 로 합의를 보았지만
후에 흐지부지 되었고 계속해서 접점을 찾지 못하고 혼란속에 방황을 하게 됩니다.
(각국은 경제 상황에 따라 자국 화폐의 평가 절상.절하를 반복함) ... 여기에 
1974년 1차 오일쇼크는 혼란스런 상황을 더욱더 가중 시킵니다.

이즈음 독일은 더욱 악착같이 자신들의 전통적인 원칙을 고수합니다.
인플레이션과 재정을 철저히 억제하고 관리 하면서 불경기를 벗어나려 했지만, 
나머지 유럽경제공동체(EEC) 국가들은 정부지출과 재정적자를 확대하며 불경기 이겨보려 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독의 마르크화 가치는 상승하고, 유럽은 화폐통합의 자리에
마르크화를 주입 합니다. 쉽게말해 유럽은 조금씩 "마르크화 연합"이 되어 간 것입니다.

하지만 독일도 이러한 상황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습니다
마르크화의 수요가 많아지면서 증대된 통화절상의 압력은 수출중심의 독일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고,
결국은 예전의 스네이크 체제 같은 최소한의 환율조정장치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유럽 각국들의 협상과 결렬 등이 반복되는 시행착오의 과정 속에서 
1979년 1월에 유럽통화제도(EMS)가 설립 됩니다. 이 제도는 회원국 통화간의 환율을 고정시키는 
"환율조정장치(ERM)"를 만들었고, 회원국간의 환율변동폭을 상.하 2.25%로 고정시켜 놓았습니다.

(1980년대 후반)
시간이 흐르면서 유럽내에서의 독일의 경제적 영향력은 점점더 커져갔지만, 
프랑스는 이러한 독일의 경제적 위상을 어떻해서든 약화 시키려 했습니다. 
당시 독일 마르크화는 유럽내에서 자연스럽게 "기축통화" 역할을 하고 있었고 유럽공동체 내에서도 
독일이 통화안정을 충분히 유지 시킬수 있으리라 모두가 암묵적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는 특히 독일의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상당한 정책결정 권한을 
유럽 국가들의 각각의 중앙은행으로 분산 시키려 하였습니다. 
물론 독일은 강력히 반발했지만, 당시의 외무장관 이었던 한스 디트리히 겐셔(Hans-Dietrich Genscher)는
[독일 역사상 최장수 외무장관(재위 1974~1992)] 정치적 이유로 프랑스의 의도에 크게 반발하지는 않았습니다. 

겐셔는 중앙유럽과 동유럽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공산권의 몰락) 있었습니다.
따라서 독일의 전쟁과오를 부각시키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서유럽 동료들, 특히 프랑스와 영국과 좀더 유연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독일은 경제와 정치의 양면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힘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1992년 2월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히트에서 하나의 거대하고 대담한 실험인 
그 유명한 "마스트리히트(Maastricht Treaty) 조약"이 성사 됩니다.

이 조약은 유럽공동체의 정치와 경제, 통화연맹 등의 진정한 "하나의 유럽"으로 가는 새로운 뼈대가 됩니다.

특히 독일의 강력한 입김으로 
통화연맹에 가입할 국가들은 까다로운 기준(조건)을 따라야 했습니다.
(단일화폐 "유로화"를 사용하기위한 유럽통화연맹은 1999년에 출범할 예정임)

<마스트리히트 조약 중심 내용> 

◆ 국가채무가 GDP의 60%를 넘으면 안된다. 

◆ 정부 재정적자가 GDP의 3%를 넘으면 안되고, 적자는 꾸준히 3%에 가까워야 한다.
또는 3%를 넘더라도 이는 예외적이고 일시적 이어야 하며, 최대한 3%로 유지되어야 한다.

◆ 통화연맹에 가입하려는 국가들중 물가상승률이 가장 낮은 세국가의 평균보다
물가상승률이 1.5% 이상 높은면 안된다.

◆ 통화연맹에 가입하려는 국가들중 물가상승률이 가장 낮은 세국가의 평균보다
장기금리가 2% 이상 높으면 안된다.

◆ 유럽통화제도의 환율조정장치를 따라야 하며 연맹 가입에 선행하는 2년 동안
가입국의 통화가 평가 절하를 겪은 적이 없어야 한다

독일이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을 마련한 이유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최종 목표인(그리고 독일의 최종 목표인) "정치통합" 때문 이었습니다. 다시말해
당장 정치통합이 어렵다면 최소한 경제와 예산정책의 통합만이라도 이루어 낸다면
이것이 곧 정치통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아무리 통합된 경제라도 
안정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독일의 원칙이 어느정도 반영된 결과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 외에도 마스트리히트 조약중에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또다른 두가지 조건들이 존재합니다.

@ 첫째, 국가 중앙은행이나 유럽중앙은행은 어떤 종류의 정부 재정적자도 직접적으로 지원해서는 안된다.
@ 둘째, 조약은 구제금융 금지 조항을 명시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개별 회원국들의 재정운용과 관련해서는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튼튼하고 철저한 가입조건과 조항들을 만들어 놓고도 유럽의 통화제도는 
점점더 불안해 지기 시작합니다.

그 대표적 이유중 하나가 바로 "1990년의 독일 통일" 이었던 것입니다.
독일의 통일은 정부에 막대한 재정 적자를 안겨 주게 됩니다 ... 한마디로 
파산한 국가를 서독이 외상으로 구매한 것이나 다름 없었던 것입니다. 
[(언론마다 편차가 있지만 ... ) 독일이 통일을 위해 지금까지 쓴 비용은 
대략 1조 5,000억 유로(우리돈으로 약 2천조원) 정도라고 합니다.]

부유한 서독의 돈이 가난한 동독으로 흘러들어 갔는데, 사실 그 당시 서독 마르크화와 동독 마르크화의 
적절한 교환비율은 1(서독): 4(동독) 정도 였는데 ... 실제로는 1:1 비율로 교환해 주었습니다.
이는 실물경제의 생산량과는 상관없이 통화량 공급이 엄청나게 늘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분데스방크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고금리를 유발하는 "금융긴축(고금리)" 정책을 실시합니다.

즉! 정부는 통일 때문에 돈을 계속해서 풀게되는 재정확대 정책을 실행하지만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본연의 업무이자 독일의 중요한 원칙중 하나인 물가상승을 막기위해
금융긴축 정책을 실행하게 된 것입니다. (재정확대 + 금융긴축)
통일이 되면서 독일이 실행한 고금리 정책은 유럽에 큰 혼란을 초래 합니다

< ◆ 당시 국제 (투기)자본의 시선 >

"오 ~ 우! 독일이 통일 되더니 금리가 장난 아니게 높아졌네! 
어차피 환율조정장치(ERM)로 환율도 제한적으로 고정되어 있으니
유럽의 시중 은행들에서 낮은 금리로 돈 빌려서 독일에 투자하면 대박 이겠구나! 하! 하! 하! "

유럽국가들의 이러한 움직임을 금융 용어로 말한다면 "아비트러지(Arbitrage)" .. 즉! 
"무위험 차일거래" 라 말할수 있습니다. ... 이러한 독일의 고금리는 유럽의 돈을 흡수하기 시작했고 
나머지 국가들은 가만히 앉아서 자국의 자본유출을 보게 됩니다. 그러자 이를 방어하기 위해 나머지 국가들도 
어쩔수 없이 고금리 정책을 실행합니다. 이것은 결국 국내투자 위축과 실업을 양산하고 불황을 유발하게 되었습니다. 

1992년 가을에는 프랑스와 영국의 실업률은 무려 10%를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IMF(1993년 보고서) 자료에 따르면 독일이 통일되던 1990년부터 1992년 후반까지
무려 3,000 억달러 규모의 자본이 아비트러지 게임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무위험 차익거래에는(낮은금리로 돈을 빌려서 높은 금리에 투자) 
한가지 전제되어야 할게 있습니다. 바로 환율이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들면, (1달러=1,000원) 일때 
미국의 심슨이 미국 골드만 은행에서 5% 이자율로 1,000달러를 빌려(1년)
한국의 국민은행에 100만원(1,000$)을 이자율 10%로 예금(1년)을 했다면
1년뒤 국민은행에서 110만원을 받아 미국에 돌아가서 1,100달러로 환전하고 
골드만 은행에 이자 포함 1,050달러를 갚고 나면, 심슨은 아무런 위험없이 앉아서 
50달러(5만원)의 수익을 얻을수 있습니다. 이것은 (1달러=1,000원) 이라는 환율이 
변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만약 심슨이 1년뒤 국민은행에서 예금을 찾을때 그동안 환율이 변해서 
(1달러=1050원) 으로 달러가치가 상승(고환율) 했다면, 심슨이 국민은행에서 찾은 110만원은 
미국에서 달러로 환전하면 약 1,048달러가 됩니다. 하지만 이 금액은 심슨이 골드만 은행에 갚아야할 
1,050달러에 2달러 부족한 액수가 됩니다. 이처럼 환율이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지역간(한국, 미국) 이자율 차이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위험이(환위험) 존재하는 거래가 됩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환율조정장치[ERM, 환율 변동폭 상하 2.25% 고정]는 
바로 이러한 고정환율에 대한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쉽게말해,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영국의(파운드화), 이탈리아(리라화), 스페인(페세타화) 같은 화폐들을 언제라도 고정된 가격으로 
독일 마르크화로 교환해 주어야 했기때문에 
[위의 심슨 사례에서 (1달러=1,000원)에 고정되어 있던 것처럼]
항상 적절한 양의 외환보유고(마르크화)를 보유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독일통일과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환율조정장치로(고정환율에 가까운) 인하여 
아비트러지(Arbitrage) 게임과 함께 각국의 고금리 경쟁이 이루어 지지만, 
결국은 각국의 자본 크기와 경제적 위상 때문에 유럽국가들 사이에서 고정환율에 대한 믿음이
서서히 흔들리고 급기야 몇몇 국가들은 자국의 통화를 절하.절상 하는 일도 벌어지게 됩니다.

1992년 6월 - 분데스방크 금리인상 (8% -> 8.75%)
1992년 9월 - 이탈리아 리라화 (평가절하), 스페인 페세타화 (5% 평가절하)
1992년 9월 - 영국, 이탈리아 환율조정장치에서 탈퇴
1992년 8~9월 -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영국 파운드화 공격


◆ 조지 소로스(George Soros)의 퀀텀펀드 & 스텐리 드루켄밀러(퀀텀펀드 책임자) ◆ 

(◆ 1992년 8월 첫째주)

" 유럽국가들 대부부의 재무장관들이 한결같이 고정환율제도(환율조정장치)는
큰 문제가 없다고 얘기하고 있군! ... 근데 이상하다! 시장참여자들은 많은 변화를 느끼고 있는데
저들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 모두 같은말만 되풀이 하고있어! "

(◆ 1992년 8월 둘째주)

"우리 정보팀에서 올라오는 보고서를 보면 약세 통화를 가진 나라들의 중앙은행들이 최근 들어 
독일 마르크화가 모자라 보유고를 채워넣기 위해 마르크화 대출을 받으려고 정신이 없다고 하던데 ... 
이것은 결국 돈이 마르크화로 몰리고 있다는 신호다! ... 오~케! 바로 이거야! ~ 굿 ! "

(◆ 1992년 8월 셋째주)

"1팀!, 2팀!, 3팀! ~ 니들 잘들어! ... 오늘부터 영국 파운드화 무조건 끌어모아(빌려와)
그 다음, 끌어모은 파운드화를 영국의 여러 시중은행에 가서 독일 마르크화로 모두 바꿔!(파운드화 팔아) ~ 알았나! "

(◆ 1992년 8월 넷째주)

"팀장님!(드루켄밀러) 우리가 엄청난 양의 마르크화를 계속해서 사니까
영국 은행들이 마르크화가 다 떨어졌나 봅니다!(외환보유고 바닥) 걔들이 이젠 지들 중앙은행(영란은행)에 
마르크화 좀 달라고 난리치고 있습니다 "

(◆ 1992년 8월 넷째주) - 또 다른 투자팀들

" 야! ~ 소로스 애들이 큰거 하나 터뜨리려고 하는것 같다! 
우리도 똑똑한 얘들로 팀 하나 만들어서 똑같이 따라해! "

(◆ 1992년 9월 첫째주) 

"팀장님 말대로 저희들 전략을 모방하는 팀들이 계속해서 늘고 있습니다!
결국 영란은행(중앙은행)이 시장에서 마르크화를 사기위해 파운드화를 대량으로 쏟아낼 것이 분명 합니다! 
그렇게 되면, 파운드화는 폭락할 것이고 우리는 그동안 바꿔놓은 비싼 마르크화로 
헐값의 파운드화를 되사서 최초에 빌려온 곳에 갚으면 대박 일 겁니다! ~ 크 크! "

(1992년 9월 15일 - 독일 분데스방크 총재 헬무트 슐레징어 기자회견 에서)
"유럽통화제도도 이제는 어느정도 환경변화에 '적응' 해야 합니다! "

(◆ 1992년 9월 15일)
"독일 중앙은행 총재가 영국을 버렸구나! 크 크 크 ... 당연한 결과다!
독일이 영국을 돕기위해 마르크화를 계속해서 빌려 주었다면 
마르크화의 공급이 늘어나 인플레 유발을 우려할 것이기 때문에, 영국을 돕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

(◆ 1992년 9월 16일 - 오전 11시)
"팀장님! 영국이 독일의 도움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재무장관인 노먼 레이먼트를 시켜 금리를 2% 인상 했습니다!
영국 파운드화를 싸게 빌릴수 없게 만들겠다는 전략 입니다! ~ 금리를 인상하니 파운화 가치도 조금은 오르는것 같구요! 
어떻게 하죠? ~ 우리 모방하던 애들도 주저하고 있습니다! "

(◆ 1992년 9월 16일 - 오후 3시 - 소로스)

"그래서 니들은 아직 멀었다고 하는거야! 알겠니!
걱정하지 말고, 내말 잘들어! 무조건 마르크화 사 모아라! 다시말해
시장(외환시장)에서 영국 파운드화 있는대로 팔고 마르크화로 바꿔라!
파운드화가 더 필요하면, 금리가 높아졌다고(2% 인상) 하더라도 괜찮으니까
계속 빌려서 시장에 내다 팔고 마르크화 사 모아라! 알았나! "

(◆ 1992년 9월16일 - 또 다른 투자팀들)

"야! 소로스 얘네들은 영국 금리인상은 신경도 안쓰고 예전보다 더 격렬하게 파운드화 팔고 있네! 
소로스 애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저럴리 없는데 ! ... 맞아! 이건 필시 파운드화가 무조건 떨어진(가치하락)다는 신호다!
아마도 금리인상 2% 했던것 모두 감안 하더라도 남는 장사(환차익) 일거다!
얘들아! 우리도 가지고 있는 파운드 모두 팔아 버려라! 빨리! "

(◆ 1992년 9월 16일 - 오후 4시)
"팀장님! 영국 중앙은행이 외환보유고 절반을 써버렸답니다!
그리고 환율조정장치에서 탈퇴 한답니다! ... 그리고 
우리는 대략 10억달러(1조원) 조금 넘게 벌어 들인것 같습니다! ~ 와 ~ 우! "


소로스의 과감한 베팅으로, 주저하던 다른 투자자 들은 확신을 하게 됩니다.
소로스같은 외환투자(투기)자들이 이렇게 막대한 수익을 올리며 성공할수 있었던 것은 
유럽통화제도에 그만큼 허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급기야 1993년 8월에는 유럽통화제도 내의 환율변동 폭이 ±15%로 높아집니다.
다시말해 고정환율을 지향했던 유럽통화제도(환율조정장치)가 무너지는 순간 이었습니다! 
이후 독일도 고집을 꺾고 통화정책을 완화하며 금리를 낮추기 시작합니다. 금리수준은 
1993년 8월에 6.75%, 1994년 5월에 4.5%, 1995년 8월에 3.5%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독일통일, 그 외 환투기와 아비트러지(Arbitrage)게임 등의 여러변수들 때문에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핵심 이었던 ‘유럽통화제도(환율조정장치)’는 상당한 혼란을 겪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럽국가들은 이러한 시행착오를 경험 하므로서 단일화폐(유로화)의 중요성과 당위적 필요성을 
더욱더 크게 느끼게 됩니다. 환율조정장치가 아무리 고정환율에 대한 믿음을 충분히 제공 할수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이번에 독일 통일같은 변수에 의해 허점이 드러났었고, 이러한 문제점을 완벽히 보완할 방법은 
역시 오직 "단일화폐(유로화)" 밖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1999년 1월1일에 출범 예정이던 유럽통화연맹(단일화폐 "유로화" 도입)에 가입하려면
앞서 얘기한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까다로운 가입조건이 문제였습니다.
통화연맹 가입국가들은 최소한 유럽통화연맹이 출범(1999년)하기 2년 전인 1997년 까지는 
가입조건을 맞춰 놓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재정적자는 GDP 3%를 넘어서면 안되고, 국가채무도 GDP의 60%를 넘어서면 안된다는 조건입니다.
그런데 가입조건 평가 시기인 1997년이 점점더 다가오자 상당수 국가들은 여전히
국가채무가 GDP 60%를 훨씬 초과 하였고, 재정적자는 말할것도 없었습니다.
결국 통화연맹에 가입을 원하지만, 가입조건에 미달 하거나 아슬아슬 했던 대부분의 국가들은
다음과 같은 편법을 동원합니다.

1. 지출내용을 회계장부에 기록하지 않는다.
2. 국가자산(토지같은 부동산 등)을 매각하고 받은 일회성 돈을, 
매년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경상이익으로 회계 처리함
3. 금융 불법거래와 탈세 등의 사회적 불법행위를 적발하여 거둬들일 예상수입 부풀리기
4. 실행하지 않을 긴축재정 계획안 발표. 세금인상안 발표
5. 명목 GDP 수치 부풀리기 - 부채비율 줄어듬.

이러한 조작을 뻔뻔하기 했던 용의자로는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벨기에 등이 대표적 이었습니다.
프랑스는 조작은 아니고, 정부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서 거대 통신사였던 프랑스텔레콤의
연금기금을 사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후에 벨기에도 따라함) 
사실 가입조건을 꼼꼼하게 감시해야할 유럽위원회는 정치적 압력과 유럽국가들의 
단일화폐 도입에 대한 우선적인 열망 때문에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었습니다.

유로화가 출범되고 나서 만성적인 인플레이션과 환율 불안에 시달리던 국가들은
통화연맹의 중심에 있었던 독일의 혜택을 보게 됩니다.

다시말해 문제아 국가들[피그스(PIIGS) - 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이 
유로존에 가입하므로서 철저한 국가신용을 관리해 오던 독일과 비슷한 위치로 올라오게 됩니다. 
이것은 문제아 국가들이 빚을 내는데(국채 발행) 있어 매우 적은 비용(낮은금리)을 물게 합니다. 
이 부분은 결국 문제아 국가들의 재정적자와 부채증가로 이어집니다.

낮은 금리로 맘껏 돈을 빌릴수(국채발행) 있으니, 정부입장 에서도 국민들에게 선심쓰듯 
돈을 쓸수 있고(포퓰리즘), 국민들도 각종 복지 혜택으로 유로존 가입을 최고의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문제아 국가들이 파티를 즐기고 있을때, 독일은 엄청난 통일비용과 치솟는 실업문제로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집안 문제도 골치 아픈데, 문제국가들 놈들은 신나서 좋아 죽는구만!"

유로화 도입이 독일에게는 남좋은 일만 시키고 별다른 도움이 안되는것 같아 후회스럽기도 했지만
여기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 독일은 곧 이것이 엄청난 기회라는걸 깨닫게 된 것입니다.

독일은 수출중심의 경제입니다. ... 단일화폐 유로화 도입후 환율 위험이 제거된 유로존은 
독일에게는 거대한 하나의 내수시장과 마찬가지 였습니다. 
특히 유로존 내에서는 독일의 수출(상품)경쟁력을 따라올 나라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독일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보는 국가들은 유로존 가입 전이었다면 환율을 평가절하 하여
무역적자의 해소가 어느정도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유로존에 들어온 이상 
각 국가들의 환율정책에 대한 주권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독일은 거대한 단일시장(내수시장)인 유로존을 
통일이후 늘어난 재정적자와 실업문제를 해결할 매우 적절한 기회로 생각하고 
좀더 적극적인 계획을 추진 합니다. ~ 이 즈음 프랑스는 독일의 점점더 커져가는 정치.경제적 패권을 
더 큰 조직인 유로존 안으로 흡수하므로서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독일같은 무역 흑자국이 아닌이상, 
다른 유럽 국가들(적자국)에게는 환율조정이 불가능 하기 때문에, 
만약 경제사정이 어려워 지면 가장먼저 비용절감[ex) 인건비, 실업]으로 경쟁력을 확보해야만 합니다.

EU의 붕괴? ...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향후 EU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질지 모르겠으나
현재 유럽의 상황은 정치와 경제, 국제정세 등 좀 더 입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 게시물을 늦게 봤습니다. .... 그래서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아는대로 적어봤습니다. 
참고로 글 내용중에, 조지 소로스 사례는 재미를 위해 제가 극적 요소를 곁들여 재구성해 본것입니다. 
소로스가 영란은행을 공격했던 시기는 비슷하나, 날짜는 제가 임의로 설정한 것입니다. 

시사나 경제 뿐만 아니라 사람사는 얘기, 감동, 연예 등 이슈인에서 참 얻어가는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얻어가는 만큼 제가 아는 관심분야에 대해서는 정성글로 보답하고 싶은데 
이슈인에 올라오는 게시물이 양도 많고 다양하기 때문에 그냥 못보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글을 못올리는 경우도 있으니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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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과 경제성장